하느님의 왕국
(Kingdom of God)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우주 주권의 표현과 행사, 또는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이 사용하시는 수단 혹은 대행 기구. (시 103:19) 이 표제어는 특히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가 왕으로서 다스리는 정부를 통한 하느님의 주권 표현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왕국”으로 번역된 단어는 바실레이아인데, 그 의미는 “왕국, 영토, 왕이 다스리는 지역이나 국가; 왕권, 권위, 지배, 통치; 왕의 위엄, 왕의 칭호와 영예”이다. (「분석 그리스어 사전」 The Analytical Greek Lexicon, 1908년, 67면)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표현은 마가와 누가가 자주 사용한 표현이며, 마태의 기록에는 대응되는 표현인 “하늘 왕국”이 30여 회 나온다.—막 10:23, 누 18:24을 마 19:23, 24과 비교. 왕국; 하늘 (영적 하늘) 참조.
하느님의 정부는 구조와 기능 면에서 순수한 신권 통치(‘신권 통치’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theocracy]는 하느님을 뜻하는 그리스어 테오스[the·osʹ]와 통치를 뜻하는 크라토스[kraʹtos]에서 유래함), 즉 하느님에 의한 통치이다. “신권 통치”라는 용어는 기원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자신의 저서 「아피온 반박문」(Against Apion, II, 164, 165 [17])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시나이에서 설립된 이스라엘의 정부 형태에 관하여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최고의 정치 권력을 군주 정치 체제에 맡기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과두 정치 체제에 맡기는 민족도 있고, 대중 정치 체제에 맡기는 민족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법 수여자는 그러한 정치 형태 어느 것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고, 다만—굳이 표현을 하자면—‘신권 통치’[그리스어, 테오크라티안]라고 할 수 있는 체제를 자신의 통치 체제로 삼았다. 이것은 모든 주권과 권위를 하느님의 손 아래 두는 체제이다.” 물론 순수한 신권 통치가 되기 위하여, 이 정부 형태는 어느 인간 입법자, 이를테면 모세 같은 사람에 의해서 제정될 수 없었으며, 하느님에 의해서 제정되고 설립되어야 하였다. 성경 기록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음을 알려 준다.
어원 “왕”(히브리어, 멜레크)이라는 말은 세계적인 홍수 후에 인간의 언어 가운데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상 최초의 왕국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위력 있는 사냥꾼”인 니므롯의 왕국이었다. (창 10:8-12) 그 후로 아브라함 시대에 이르기까지 도시 국가들과 나라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인간 왕들이 늘어났다. 살렘의 왕 겸 제사장인 멜기세덱(메시아의 예언적 모형 역할을 한 사람[창 14:17-20; 히 7:1-17])의 왕국을 제외하고는, 지상의 이 왕국들 중에서 하느님의 통치를 대행하거나 하느님에 의해서 설립된 왕국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또한 자기들이 숭배하던 거짓 신들을 왕으로 삼아, 인간들에게 통치권을 줄 수 있는 능력이 그 거짓 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성경의 대홍수 이후의 기록에 나오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왕[멜레크]”이라는 칭호를 자신에게 적용시키신 것은, 사람들이 발전시키고 사용해 온 칭호를 하느님께서도 사용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은 주제넘은 인간 통치자들이나 사람이 만든 신들이 아니라 하느님을 “왕”으로서 바라보고 그분에게 순종해야 함을 알려 주었다.—렘 10:10-12.
물론 여호와께서는 인간 왕국들이 생겨나기 오래전에도, 사실상 인간이 존재하기 전에도 주권을 가진 통치자이셨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 아들들은 참 하느님이자 자기들의 창조주이신 그분을 존경하고 그분에게 순종하였다. (욥 38:4-7; 대둘 18:18; 시 103:20-22; 단 7:10) 따라서 창조의 시작부터 그분은 무슨 칭호이든 그 칭호를 통하여, 자신의 뜻이 의당 지고함을 인정받은 분이었다.
인류 역사 초기의 하느님의 통치권 첫 인간 피조물인 아담과 하와도 여호와를 하느님이자 하늘과 땅의 창조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분이 명령을 내리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의무를 이행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삼가도록 요구하시고, 거주하고 경작할 토지를 정해 주시고, 그분의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릴 권한을 위임하실 권위와 권리를 가지고 계심을 인정하였다. (창 1:26-30; 2:15-17) 아담이 조어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창 2:19, 20), 또 여호와의 최고 권위를 인정하고는 있었지만, 그가 “왕[멜레크]”이라는 칭호를 생각해 내서 자신의 하느님이자 창조주이신 분을 가리키는 데 그 칭호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창세기의 처음 몇 장에서 밝혀 주듯이, 하느님께서 에덴에서 사람에게 주권을 행사하신 방법은 자애로우면서도 부당하게 구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순종하는 것이었다. (누 3:38 비교) 사람에게는 이행해야 할 방대한 법전도 없었다. (디첫 1:8-11 비교) 하느님의 요구 조건은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아담이 자기의 모든 행동이 끊임없이 비판적인 감시를 당하여 억압받고 있다고 느꼈음을 시사하는 어떤 증거도 없다. 도리어 하느님과 완전한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 필요에 따라 주기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창 1-3장.
하느님의 통치권의 새로운 표현이 의도되다 첫 인간 부부가 하느님의 영자(靈子)들 중 하나의 부추김을 받아 하느님의 명령을 공공연하게 어긴 것은 사실상 하느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이었다. (창 3:17-19. 나무 [비유적 용법] 참조) 하느님의 적대자(히브리어, 사탄)인 한 영이 취한 태도는 옳고 그름을 가릴 필요가 있는 일종의 도전이었으며, 쟁점이 된 것은 여호와의 우주 주권의 정당성이었다. (여호와 [최대 쟁점은 도덕적 쟁점] 참조) 이 쟁점이 제기된 곳이 땅이므로 쟁점이 해결될 곳도 당연히 땅이다.—계 12:7-12.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최초의 반역자들에게 판결을 선고하실 때에, 상징적인 말로 표현된 예언을 말씀하시면서, 반역자들의 세력을 최종적으로 쳐부술 “씨” 곧 대리자를 사용하실 자신의 목적을 발표하셨다. (창 3:15) 그리하여 여호와의 통치권 곧 그분의 주권의 표현은, 진전되어 온 모반에 대해 응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띠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될 것이었다. “왕국의 신성한 비밀”이 점진적으로 밝혀짐에 따라(마 13:11), 이 새로운 국면에는 부차적인 정부, 즉 한 명의 대리 통치자가 우두머리로 있는 통치 기구의 설립이 관련될 것임이 알려졌다. “씨”에 대한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의 택함받은 동료들과 함께 다스릴 왕국을 통해서 실현될 것이다. (계 17:14.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목적에서 극히 중요한 예수의 위치] 참조) 에덴에서의 약속이 있은 이래로, 이 왕국 “씨”를 산출할 하느님의 목적은 점진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이것은 성서의 기본 주제가 되었고 또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들과 일반 인류에게 취하신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쇠가 되었다.
하느님께서 막강한 권위와 권능을 이런 방법으로 피조물들에게 맡기신 것은(마 28:18; 계 2:26, 27; 3:21)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 이유는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의 충절에 대해 제기된 의문, 다시 말해서 그들이 하느님께 마음을 다한 정성을 나타내고 하느님의 머리 직분에 충성을 나타낼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하느님의 적대자가 제기한 쟁점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충절 [최대의 쟁점이 관련되다] 참조) 하느님께서 이처럼 대단한 권위와 권능을 자신의 피조물 누구에게나 확신을 갖고서 맡기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하느님의 통치에는 도덕적 힘이 있다는 뛰어난 증거로서 여호와의 주권을 입증하는 데 기여하고 그분의 적대자의 주장이 거짓임을 폭로할 것이었다.
하느님의 정부의 필요성 대두 인간의 반역이 시작된 때부터 대홍수가 일어난 때까지 진전되어 온 상황은, 인간이 하느님을 머리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예증해 주었다. 인간 사회는 얼마 안 있어 분열, 신체적 폭행, 살인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창 4:2-9, 23, 24) 죄인인 아담이 930년 동안 살면서, 불어나는 자신의 자손들에 대해 어느 정도나 족장의 권위를 행사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아담의 칠 대손이 살 무렵에는 충격적인 불경건한 태도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며(유 14, 15), 노아(아담이 죽은 지 약 120년 후에 태어남)의 시대에는 ‘땅이 폭력으로 가득 차게 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창 6:1-13) 상황이 이렇게 된 한 가지 원인은 영적 피조물들이 하느님의 뜻과 목적을 거슬러 허가도 없이 인간 사회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창 6:1-4; 유 6; 베둘 2:4, 5. 네피림 참조.
땅이 반역의 중심지가 되기는 하였지만, 여호와께서는 땅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세계적인 홍수는, 하느님께서 우주의 여느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상에도 자신의 뜻을 실행하실 힘과 능력을 여전히 가지고 계시다는 증거였다. 대홍수 이전 기간에도 그분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 개개인—이를테면 아벨, 에녹, 노아—의 행동을 기꺼이 인도하고 지도하시려는 자진성을 분명히 나타내셨다. 특히 노아의 경우는 하느님께서 자원하는 지상 백성에게 통치권을 행사하신다는 것을 예시해 주는데, 그 실례로서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명령과 지시를 내리시고 그와 그의 가족을 보호하고 축복하셨으며, 또한 지상의 다른 창조물—동물과 새—도 통제하고 계심을 명백히 나타내셨다. (창 6:9–7:16)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인간 사회가 끝없이 땅을 더럽히도록 결코 허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리고 적기라고 여기시는 때에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거리낌 없이 행악자들에게 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셨다. 그에 더하여, 그분은 지구의 대기를 포함하여 지구의 여러 가지 자연력을 통제하실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실증하셨다.—창 6:3, 5-7; 7:17–8:22.
대홍수 후의 초기 사회와 문제들 대홍수 후에, 족장제는 인간 사회의 기본 구조로서 어느 정도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는 “땅을 가득 채”워야 했는데, 이렇게 하려면 자손을 낳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거주 지역을 지구 전역으로 꾸준히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창 9:1, 7) 논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요소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 문제를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며, 그 문제들을 대체로 가족의 테두리 안에 있게 하고, 인구 밀도가 높거나 인구 밀집 지역에서 흔히 발생하는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낮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벨에서 허가 없이 진행된 대규모 공사로 말미암아 그와는 정반대 행로를 취하게 되어,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온 지면에 흩어지”는 일을 피하려 하였다. (창 11:1-4. 언어 참조) 그 무렵 니므롯은 족장제 통치를 버리고 최초의 “왕국”(히브리어, 맘라카)을 세웠다. 함 가계에 속한 구스 사람 니므롯은 셈족의 영지인 앗수르(아시리아) 땅을 침입하여 그곳에 자기 영토의 일부로서 도시들을 건설하였다.—창 10:8-12.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를 혼란시키심으로써 사람들이 시날 평야에 한데 모여 살려는 시도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러나 인류의 여러 가족이 이주해 간 지역들에서는 대체로 니므롯에 의해 시작된 통치권의 형태를 따르게 되었다. 아브라함 시대(기원전 2018-1843년)에는 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국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집트에서는 왕을 부를 때 멜레크가 아니라 “파라오”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왕정(王政)은 안전을 가져다주지 못하였다. 왕들은 곧 군사 동맹을 맺어 침략과 강탈과 납치를 일삼는 광범위한 군사 작전을 벌이게 되었다. (창 14:1-12) 일부 도시들에서는 낯선 방문객들이 동성애자들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다.—창 19:4-9.
그리하여 사람들은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 밀집된 지역 사회를 이루며 단결한 것이 분명하나(창 4:14-17 비교), 오래지 않아 자기들의 도시에 성벽을 두르고 마침내는 무장 공격에 대비하여 도시를 요새화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알려져 있는 아주 오래된 세속 기록물들—그 가운데 다수는 원래 니므롯의 왕국이 다스렸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나왔음—은 인간의 분쟁, 탐욕, 음모, 유혈 행위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 발견된 기록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성서 이외의 법률 기록들, 이를테면 리피트이슈타르, 에슈눈나, 함무라비의 법전들에 의하면, 도둑질, 사기, 상업상의 문제, 부동산과 임대료 지불에 관한 분쟁, 대부(貸付)와 이자에 관한 문제, 부부간의 부정, 의료비와 치료 실패, 폭행과 구타 사건 따위의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는 사회적 분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생활이 매우 복잡해지게 되었다. 함무라비가 자칭 “유능한 왕”, “완전한 왕”이기는 하였지만, 그의 통치와 법률은 고대의 다른 정치적 왕국들의 통치와 법률처럼 죄 많은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 (「고대 근동 문헌」 Ancient Near Eastern Texts, J. B. 프리처드 편, 1974년, 159-180면. 잠 28:5 비교) 이 모든 왕국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두드러진 요소였지만 참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사장들은 지배 계급과 밀접히 협력하여 왕의 호의를 얻기는 하였지만, 이것이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향상시켜 주지는 못하였다. 고대의 종교 기록물이 담긴 설형 문자 비문들에는 영적으로 고양시키는 내용이나 도덕적 지침이 들어 있지 않다. 이 비문들은 숭배받는 신들이 호전적이고, 난폭하고, 호색적이며, 의로운 표준이나 목적에 구애되지 않는 자들임을 드러내 준다.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삶을 즐기려면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느님의 왕국이 필요하였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 대하여 사실, 여호와 하느님을 자기들의 머리로 바라본 사람들이라고 해서 개인적인 문제나 불화를 겪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의로운 표준에 순응함에 따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인내하도록 도움을 받았다. 그것도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보호와 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창 13:5-11; 14:18-24; 19:15-24; 21:9-13, 22-33) 따라서 시편 필자는, 여호와의 “판결은 온 땅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수가 적어서, 매우 적어서, [가나안]에 외국인 거주자로 있었고,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한 왕국에서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다녔다. [여호와께서는] 어떤 사람도 그들에게서 속여 빼앗지 못하게 하시고, 도리어 그들 때문에 왕들을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건드리지 말며, 나의 예언자들에게 아무런 악도 행하지 말아라’ 하셨다.” (시 105:7-15. 창 12:10-20; 20:1-18; 31:22-24, 36-55 비교) 이것은 또한 땅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이 여전히 건재하며 하느님의 목적의 진전과 조화되게 행사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충실한 족장들은 가나안이나 다른 지역의 어느 도시 국가나 왕국에 소속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 왕의 정치적인 통치를 받는 어느 도시에서 안전을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나그네와 임시 거주자”로서, 외국인으로서 천막에서 살면서 믿음으로 ‘참된 기초가 있는 도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도시를 건축하고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셨다.’ 그들은 하느님을 자기들의 통치자로 받아들였으며, 하느님의 최고 권위와 뜻에 확고한 기초를 두고서 땅을 통치할 그분의 미래의 하늘 마련, 곧 하늘 대행 기관을 기다렸다. 이 희망이 실현되는 것은 당시로서는 ‘먼’ 훗날의 일이었는데도 그렇게 하였다. (히 11:8-10, 13-16) 그래서 후일에, 왕이 되도록 이미 하느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으셨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나의 날 보기를 기대하면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았고 또 기뻐하였습니다.”—요 8:56.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체결하심으로써(창 12:1-3; 22:15-18) 왕국 “씨”에 관한 자신의 약속이 한 걸음 더 진척되게 하셨다. (창 3:15) 그 계약과 관련하여, 그분은 아브라함(아브람)과 그의 아내에게서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창 17:1-6, 15, 16) 아브라함의 손자 에서의 자손들이 토후국(土侯國)과 왕국을 설립하기는 하였지만, 왕이 될 자손들에 관한 하느님의 예언적 약속은 아브라함의 다른 손자 야곱이 받게 되었음이 반복하여 언급되었다.—창 35:11, 12; 36:9, 15-43.
이스라엘 나라의 형성 여러 세기 후, 때가 되자(창 15:13-16)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이제 수백만 명에 달하는 야곱의 자손을 위하여 행동하시어(이집트 탈출 [이집트 탈출과 관련된 숫자] 참조), 이집트 정부가 종족 말살 운동을 벌이는 동안에 그들을 보호해 주셨고(출 1:15-22) 마침내 이집트 정권에 의한 가혹한 노예 생활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셨다. (출 2:23-25) 이집트 통치자 파라오는 하느님의 대리인인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자신에게 전달된 하느님의 명령을, 이집트 국사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는 근원으로부터 나온 것쯤으로 여기고 일축해 버렸다. 파라오가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기를 반복하여 거부하는 바람에 하느님의 능력이 여러 가지 재앙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출 7-12장)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땅의 자연력과 피조물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이 온 땅의 그 어떤 왕의 지배력보다 탁월함을 증명하셨다. (출 9:13-16) 그분은 무용(武勇)을 자랑하는 나라들의 왕들 가운데 그 누구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방법으로 파라오의 군대를 멸망시키심으로써 이 최고 주권의 전시를 절정에 이르게 하셨다. (출 14:26-31)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제적인 근거에 입각하여 이렇게 노래하였다. “여호와는 한정 없는 때까지, 아니, 영원히 왕으로 통치하실 것입니다.”—출 15:1-19.
그 후 여호와께서는 지구와 지구의 필수 자원인 물과 조류(鳥類)를 지배하고 계시다는 증거를 더 제시하셨으며, 또한 사람이 살기 힘든 불모의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나라를 보호하고 부양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셨다. (출 15:22–17:15) 이 모든 일을 행하신 후에 여호와께서는 이 해방된 백성에게 말씀하시면서, ‘온 땅이 나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의 권위와 계약에 순종하면 다른 모든 민족 중에서 자신의 특별한 재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제사장 왕국과 거룩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출 19:3-6) 그들이 하느님의 주권에 기꺼이 순종하는 신민이 되겠다고 분명히 밝히자,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칙령을 내려 큰 법전이 될 만큼의 법을 주셨고 왕이자 입법자로 행동하셨으며, 그것에 더하여 자신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내는,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증거를 보이셨다. (출 19:7–24:18) 장막 곧 만남의 천막은, 그리고 특히 계약의 궤는 보이지 않는 하늘 정부의 수반이 임재해 계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출 25:8, 21, 22; 33:7-11. 계 21:3 비교) 모세와 다른 임명받은 남자들이 하느님의 율법의 인도를 받아 대부분의 사건을 재판하였지만, 여호와께서는 때때로 직접 개입하여 범법자들에게 판결을 내리고 제재를 가하셨다. (출 18:13-16, 24-26; 32:25-35) 임명된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나라와 하늘 통치자 사이에 좋은 관계가 유지되도록 힘썼으며, 율법 계약의 높은 표준을 따르려는 백성의 노력을 도와주었다. (제사장 참조) 따라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정부는 진정한 신권 통치 체제였다.—신 33:2, 5.
여호와께서는 하느님이자 창조주로서 “온 땅의 ‘심판관’”이실 뿐만 아니라(창 18:25) 온 땅에 대한 “토지 수용권”을 가지고 계시므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씨에게 할당해 주신 바 있으셨다. (창 12:5-7; 15:17-21) 이제 그분은 최고 행정관으로서, 정죄받은 가나안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영토를 강제 수용하고 그들에 대한 사형 선고를 집행하도록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령하셨다.—신 9:1-5; 가나안, 가나안 사람 2번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참조.
재판관 시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많은 왕국들을 정복한 이후로 3세기 반 동안,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이 나라의 유일한 왕이셨다. 이 시대의 여러 기간에 하느님이 택하신 재판관들은 전시에나 평화 시에나 그 나라 전체 또는 일부를 인도하였다. 재판관 기드온이 미디안을 패주케 하자 백성은 그에게 나라의 통치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기드온은 거절하면서 여호와를 진정한 통치자로 인정하였다. (판 8:22, 23) 야심만만한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그 나라의 일부분을 다스리는 왕정을 수립하여 단기간 시행하였으나 결국 개인적인 재난을 당하고 말았다.—판 9:1, 6, 22, 53-56.
재판관 시대의 전반적인 상황은 이러하였다. “그 날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눈에 옳은 일을 행하였다.” (판 17:6; 21:25) 이것은 사법상의 제재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도시마다 재판관들, 연로자들이 있어서 법률상의 문의와 문제들을 다루고 공의를 시행하였다. (신 16:18-20. 법정 참조) 레위 제사직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높은 직책으로서 백성에게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쳤고, 대제사장은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통하여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하느님께 조언을 구하였다. (대제사장; 우림과 둠밈; 제사장 참조) 따라서 이러한 마련들을 활용하며 하느님의 법에 대한 지식을 얻고 그것을 적용하는 사람은 자기의 양심을 위한 건전한 길잡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자기 눈에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백성이 자원하는 혹은 자원하지 않는 태도와 행로를 나타내도록 허용하셨다. 이스라엘에는 도시 재판관들의 일을 감독하거나 시민들에게 특정 계획에 참여하도록 명령하거나 국가 방위를 위하여 사람들을 집결시키는 인간 군주가 없었다. (판 5:1-18 비교) 그러므로 악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대다수의 백성이 자기들의 하늘 왕의 말씀과 율법에 유의하고 그분의 마련을 활용하려는 자진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판 2:11-23.
인간 왕을 요청하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지 거의 400년이 지나고 나서 그리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신 지 800년 이상이 흐른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나라들에 인간 군주가 있는 것처럼 자기들을 인도할 인간 왕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들의 이런 요청은 그들을 다스리는 여호와의 왕권을 배척하는 것이었다. (삼첫 8:4-8) 사실, 백성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미 언급한 바 있음)과 일치하게, 하느님께서 설립하실 왕국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야곱이 임종 시에 한 유다에 대한 예언(창 49:8-10),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한 후에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출 19:3-6), 율법 계약의 조항(신 17:14, 15), 그리고 하느님께서 예언자 발람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신 소식의 일부를(민 24:2-7, 17) 통하여 이런 희망에 대한 근거를 더 가지고 있었다. 사무엘의 충실한 어머니 한나도 기도에서 이 희망을 표현하였다. (삼첫 2:7-10)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왕국에 관한 자신의 “신성한 비밀”을 온전히 밝히지 않으셨으며 왕국을 설립하실 지정된 때가 도래할 시기도, 그 정부의 구조와 구성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지상 정부인지 하늘 정부인지도—알려 주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백성이 인간 왕을 요구한 것은 주제넘은 일이었다.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의 침공 위협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이는 왕 겸 최고 사령관을 구하려는 욕망을 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그들을 하나의 나라로서 혹은 개인으로서 보호하고 인도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나타냈다. (삼첫 8:4-8) 백성의 동기는 그릇된 것이었다. 하지만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씨”에 의하여 자신의 미래 왕국의 “신성한 비밀”이 점진적으로 계시되게 하려는 자신의 선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셨다. 그러나 인간의 왕정은 이스라엘에게 문제들을 일으키고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었으며 여호와께서는 이 사실을 백성 앞에 제시하셨다.—삼첫 8:9-22.
그 후 여호와께서 임명하신 왕들은 하느님의 지상 대리인으로 봉사하게 되었으며, 그 나라에 대한 여호와의 주권은 조금도 축소되지 않았다. 그 왕좌는 사실상 여호와의 왕좌였으며 그들은 대리 왕으로서 거기에 앉았다. (대첫 29:23) 여호와께서는 최초의 왕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하셨으며(삼첫 9:15-17), 동시에 그 민족이 나타냈던 믿음의 부족을 드러내셨다.—삼첫 10:17-25.
이 왕정이 유익을 가져오려면, 이제 왕과 신민이 모두 하느님의 권위를 존중히 여겨야 하였다. 그들이 만일 인도와 보호를 비현실적으로 다른 근원에서 찾는다면, 그들과 그들의 왕은 쓸려가 버릴 것이었다. (신 28:36; 삼첫 12:13-15, 20-25) 왕은 군사력을 의지하거나 자기를 위하여 아내를 많이 두거나 부에 대한 갈망에 지배되는 일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왕권은 전적으로 율법 계약의 테두리 안에서만 기능을 발휘하게 되어 있었다. 왕은 그 율법의 개인용 사본을 기록하여 그것을 날마다 읽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명령 아래 있었는데, 그것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분에 대한 합당한 두려움을 갖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의로운 행로에 고착하기 위함이었다. (신 17:16-20) 왕이 이대로 행하여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정도가 된다면, 그의 통치는 축복을 가져올 것이며 압제나 고난 때문에 불평할 실제 이유도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제 왕들에게도, 여호와께서는 그 통치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들이 하느님 자신의 권위와 뜻을 기꺼이 인정하는지 아니면 인정하기를 원치 않는지를 분명히 나타내도록 하셨다.
다윗의 모범적인 통치 베냐민 사람 사울은 “이스라엘의 존귀한 분”의 우월한 권위와 마련에 대해 불경스러운 태도를 나타낸 결과 하느님의 은혜를 잃게 되었고, 그의 가계(家系)로부터 왕좌가 떠나게 되었다. (삼첫 13:10-14; 15:17-29; 대첫 10:13, 14) 사울의 후임자인 유다의 다윗이 통치를 하게 됨으로, 야곱이 임종 시에 한 예언이 한층 더 성취되게 되었다. (창 49:8-10) 비록 다윗이 인간적인 약점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그의 진심 어린 정성과 하느님의 권위에 대한 겸손한 복종 때문에 그의 통치는 모범이 되었다. (시 51:1-4; 삼첫 24:10-14. 왕첫 11:4; 15:11, 14 비교)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한 헌물을 받을 때에, 모인 백성 앞에서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여호와여, 위대함과 위력과 아름다움과 존귀함과 위엄이 당신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여호와여, 모든 것의 머리로 스스로 높이시는 분이여, 왕국도 당신의 것입니다. 부와 영광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당신은 모든 것을 지배하십니다. 또 당신의 손에는 능력과 위력이 있으니, 당신의 손에는 모두를 크게 하고 힘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 우리 하느님, 이제 우리가 당신에게 감사하고 당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찬양합니다.” (대첫 29:10-13)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한 마지막 조언도 지상의 왕권과 그 왕권의 신성한 근원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윗이 훌륭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예시한다.—왕첫 2:1-4.
여호와의 임재와 관련이 있는 계약의 궤를 수도 예루살렘으로 가져온 때에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하늘은 즐거워하고 땅은 기뻐하여라. ‘여호와께서 왕이 되셨다!’고 나라들 가운데 말하여라.” (대첫 16:1, 7, 23-31) 이것은 여호와의 통치권이 창조의 시작 때부터 행사되었지만, 그분이 자신의 통치권을 특정한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자신을 대리하는 특정 기관을 설립하실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분에 대해 특정한 때나 기회에 “왕이 되셨다”고 말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예시한다.
왕국을 위한 계약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가계에 설립되어 영원히 존속할 왕국을 위한 계약을 다윗과 맺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반드시 ··· 네 씨를 네 뒤에 일으켜서, 정녕 그의 왕국을 굳게 세울 것이다. ··· 네 집과 네 왕국이 반드시 네 앞에서 한정 없는 때까지 견고할 것이다. 네 왕좌는 한정 없는 때까지 굳게 설 것이다.” (삼둘 7:12-16; 대첫 17:11-14) 다윗 왕조와 관련하여 효력을 발휘한 이 계약은, 하느님께서 에덴에서 하신 약속—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약속—이 예언된 “씨”를 통해서 실현될 것이라는 증거를 한층 더 제시하였으며(창 3:15), 또한 그 “씨”가 올 때 그 “씨”를 식별할 수 있는 부가적인 수단을 제공하였다. (사 9:6, 7; 베첫 1:11 비교) 하느님에 의해 임명된 왕들은 기름부음을 받고 즉위하였으므로, “기름부음받은 자”를 의미하는 “메시아”라는 말은 왕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삼첫 16:1; 시 132:13, 17) 따라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설립하신 지상의 왕국은 메시아, 곧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실 장차 올 왕국의 모형 혹은 소규모 표상 역할을 하였음이 분명하다.—마 1:1.
이스라엘의 두 왕국의 타락과 몰락 여호와의 의로운 길에 고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제3대 왕의 통치 말기와 제4대 왕의 통치 초기에 발생한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불만이 고조된 나머지 반란이 일어나 그 나라가 분열되고 말았다. (기원전 997년) 그 결과, 북쪽 왕국과 남쪽 왕국으로 나뉘었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 다윗과 맺으신 계약은 남쪽 유다 왕국의 왕들과 관련하여 계속 유효하였다. 여러 세기 동안, 유다에는 충실한 왕들이 간혹 있었지만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는 전혀 없었다. 북쪽 왕국의 역사는 우상 숭배와 음모와 암살의 역사였으며 왕들은 대개 얼마 안 있어 다른 왕으로 바뀌곤 하였다. 백성은 불공정과 압제에 시달렸다. 북쪽 왕국이 세워진 지 약 250년이 흐른 뒤에, 여호와께서는 아시리아 왕이 북쪽 왕국을 짓밟게 허락하셨는데(기원전 740년), 그 왕국이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의 행로를 걸었기 때문이다.—호 4:1, 2; 암 2:6-8.
유다 왕국이 다윗 왕조 때문에 한층 더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지만, 이 남쪽 왕국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같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왕들의 노력—여호와의 말씀과 권위를 배척하고 우상 숭배로 향하는 타락한 경향을 역전시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북쪽 왕국을 능가하는 도덕의 부패상을 보였다. (사 1:1-4; 겔 23:1-4, 11) 사회적인 불공정, 폭정, 탐욕, 부정직, 뇌물, 성도착 행위, 폭력 범죄, 유혈 행위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바꾼 종교적인 위선—이 모든 일은 여호와의 예언자들이 통치자들과 백성에게 경고의 소식을 전하면서 공공연하게 비난한 것들이었다. (사 1:15-17, 21-23; 3:14, 15; 렘 5:1, 2, 7, 8, 26-28, 31; 6:6, 7; 7:8-11) 배교한 제사장들의 지원도, 다른 나라들과 맺은 그 어느 정치 동맹도, 이 불충실한 왕국의 다가오는 파멸을 막을 수는 없었다. (렘 6:13-15; 37:7-10) 기원전 607년에 바빌로니아 사람들에 의해 수도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유다가 황폐되었다.—왕둘 25:1-26.
왕이신 여호와의 지위가 손상되지 않다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의 멸망은 결코 여호와 하느님의 통치권의 질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그분의 약함을 시사하는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자진적인 봉사와 순종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명백히 나타내셨다. (신 10:12-21; 30:6, 15-20; 사 1:18-20; 겔 18:25-32) 그분은 교훈하고, 책망하고, 징계하고, 경고하고, 처벌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의로운 행로를 따르도록 왕이나 백성에게 강요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는 않으셨다. 서서히 진전된 악한 상태, 그들이 받은 고통과, 그들에게 닥친 재난,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고집 세게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미련하게도 그들 자신의 최상의 이익에 상반되는 독립된 행로를 줄곧 따랐기 때문이었다.—애 1:8, 9; 느 9:26-31, 34-37; 사 1:2-7; 렘 8:5-9; 호 7:10, 11.
여호와께서는 공격적이고 탐욕스러운 아시리아와 바빌론 강국을 자신이 정하신 때까지 가만히 있게 하심으로써, 심지어 그 강국들이 하느님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 행동하도록 조종하심으로써 자신의 최고 주권을 전시하셨다. (겔 21:18-23; 사 10:5-7) 여호와께서 마침내 이스라엘을 두르고 있던 자신의 방벽(防壁)을 제거하셨을 때, 그것은 주권을 가진 통치자이신 그분의 의로운 심판의 표현이었다. (렘 35:17) 이스라엘과 유다의 황폐는 하느님의 예언을 통해서 미리 경고를 받은 하느님의 순종하는 종들에게 충격적으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거만한 통치자들을 낮추는 일은 여호와 자신의 “찬란한 우월성”을 드높였다. (사 2:1, 10-17)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더하여, 그분은 자신을 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기근과 질병과 대량 학살이라는 상황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도, 또한 그들이 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박해를 당할 때에도 그들을 보호하고 보존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실증하셨다.—렘 34:17-21; 20:10, 11; 35:18, 19; 36:26; 37:18-21; 38:7-13; 39:11–40:5.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여호와의 대리자인 왕으로서의 기름부음받은 왕권을 나타내는 그의 면류관이 앞으로 제거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 기름부음받은 다윗 가계의 왕권은 “법적 권리를 가진 자가 올 때까지” 더 이상 행사되지 않을 것이었으며, 또한 “그가 오면 내[여호와]가 반드시 그것을 그에게 주겠다”는 약속이 주어졌다. (겔 21:25-27) 그리하여 이 모형적 왕국은 이제 폐허가 되어 기능이 정지되었으며, 장차 올 “씨” 곧 메시아에게로 주의를 다시 돌리게 되었다.
아시리아와 바빌론 같은 국가들은 배교한 왕국들인 이스라엘과 유다를 황폐시켰다. 하느님께서 이 정죄받은 두 왕국을 대적하여 그 나라들을 “일으키”거나 “데려오”는 분으로 자신을 언급하시지만(신 28:49; 렘 5:15; 25:8, 9; 겔 7:24; 암 6:14), 이것은 하느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해지게’ 하셨다고 한 말과 의미상 비슷했을 것이다. (예지, 예정 [개개인에 관하여] 참조)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그 군대들을 ‘데려오셨다’는 것은 이들 침공군이 마음에 이미 품고 있는 욕망을 이루도록 허락하시고(사 10:7; 애 2:16; 미 4:11), 또한 그들의 야심적인 탐욕의 대상이 된 이 왕국들에게서 자신의 보호의 “손”을 거두셨다는 의미이다. (신 31:17, 18. 라 8:31을 라 5:12; 느 9:28-31; 렘 34:2과 비교) 배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율법과 뜻에 복종하기를 고집 세게 거부하는 바람에, “칼과 역병과 기근에 이르게 하는 자유”에 넘겨지게 되었다. (렘 34:17) 그러나 공격을 한 이교 나라들은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승인을 받지 못하였고, 북쪽 왕국과 남쪽 왕국, 수도 예루살렘과 그곳에 있는 신성한 성전을 무자비하게 멸망시킨 일로 말미암아 하느님 앞에서 ‘깨끗한 손’을 갖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온 땅의 심판관이신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상속 재산을 약탈’한 것에 대하여 정당하게 이교 나라들을 질책하실 수 있었고, 또한 그들이 하느님의 계약 백성에게 한 것처럼 똑같은 황폐를 그들도 당하도록 정하실 수 있었다.—사 10:12-14; 13:1, 17-22; 14:4-6, 12-14, 26, 27; 47:5-11; 렘 50:11, 14, 17-19, 23-29.
다니엘 시대에 나타난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환상 다니엘의 예언은 전체적으로 하느님의 우주 주권이라는 주제를 두드러지게 강조하며, 여호와의 목적을 한층 더 명백히 밝힌다. 유다를 무너뜨린 세계 강국의 수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다니엘은 바빌로니아 군주가 본 환상의 의미를 밝히도록 하느님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그 환상은 세계 강국들의 행진과 그 강국들이 결국 여호와께서 친히 설립하실 영원한 왕국에 의해서 분쇄될 것을 예고하였다. 분명 왕의 궁정의 신하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는데, 예루살렘을 정복한 장본인인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이 이제 감동된 나머지 엎드려 유배자 다니엘에게 경의를 표하고 다니엘의 하느님을 “왕들의 주”로 인정한 것이다. (단 2:36-47) 또다시,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찍혀 넘어진 나무’에 관한 환상을 통해서 여호와께서는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 왕국의 통치자이시며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 그것을 주시고 인간 가운데 가장 낮은 자라도 그 위에 세우신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알리셨다. (단 4장. 이 환상에 대한 설명은 나라들의 지정된 때 항목 참조) 제국의 통치자인 느부갓네살은 자신과 관련이 있는 그 꿈의 성취로 말미암아 한 번 더 다니엘의 하느님을 “하늘의 왕”으로, “하늘의 군대와 땅의 주민들 가운데서 자신의 뜻대로 행하고 계[시며,] 그분의 손을 제지하거나 그분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분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단 4:34-37.
바빌론의 세계 지배가 끝나 갈 무렵, 다니엘은 짐승 같은 특성을 가진 제국들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예언적인 환상을 보았으며, 또한 여호와의 장엄한 하늘 법정이 열리고 세계 강국들에 판결을 내려 그 강국들이 통치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다고 선고하는 장면도 보았다. 그는 또 “사람의 아들 같은 이”를 보았는데, 그에게 “통치권과 위엄과 왕국이 주어져,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들이 모두 그를 섬기게 하였다. 그의 통치권은 사라지지 않고 한정 없이 지속될 통치권이[다].” 다니엘은 또한, 마지막 세계 강국이 “거룩한 자들”과 전쟁을 벌여 그 결과 그 강국이 멸절되는 것과, “왕국과 통치권과 온 하늘 아래 있는 왕국들의 웅대함이 지극히 높으신 분[여호와 하느님]의 거룩한 자들인 백성에게 주어”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단 7, 8장) 따라서 약속된 “씨”는, 왕이자 우두머리인 “사람의 아들”을 비롯하여 보조 통치자들인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자들”도 포함되는 통치 기관을 가리킨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바빌론과 메디아·페르시아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강대한 바빌론에 내리신 불변의 선고가 갑자기, 예기치 않게 시행되었으며, 그 나라의 날수가 계수되어 끝에 이르게 되었다. (단 5:17-30) 그 뒤를 이은 메디아·페르시아의 통치 기간 중에 여호와께서는 메시아 왕국에 관하여 더 자세히 계시해 주셨는데, 메시아가 나타날 때를 알려 주셨고,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며 예루살렘과 그 도시의 거룩한 곳이 두 번째로 멸망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단 9:1, 24-27; 칠십 주 참조) 그리고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바빌로니아의 통치 기간 중에 행하셨던 것처럼, 지상의 자연력과 야수를 지배하는 능력을 나타내시어, 관리들의 분노와 죽음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실 능력이 있음을 또다시 실증하셨다. (단 3:13-29; 6:12-27) 그분은 시간표에 따라 바빌론의 성문이 활짝 열리게 하시어, 자신의 계약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가 그곳에 여호와의 집을 재건하도록 자유를 얻게 해 주셨다. (대둘 36:20-23) 자신의 백성을 해방시키신 하느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시온에게 “너의 하느님께서 왕이 되셨다!”라는 공표를 할 수 있었다. (사 52:7-11) 그 후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음모가 좌절되고 하급 관리의 허위 진술과 정부가 발표한 불리한 포고도 극복되었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페르시아의 여러 왕들을 움직여 주권자이신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협력하게 하셨기 때문이다.—라 4-7장; 느 2, 4, 6장; 더 3-9장.
이와 같이 누구도 저지할 수 없는, 여호와 하느님의 불변의 목적은 수천 년 동안 진전되어 왔다. 지상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태에도 아랑곳없이 그분은 항상 상황을 장악하셨고, 반대하는 인간과 마귀보다 언제나 앞서 계셨다. 그 어느 것도 그분의 목적, 그분의 뜻의 완전한 성취를 가로막을 수 없었다. 미래에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대하실 일의 예언적 모형과 예표 역할을 하는 이스라엘과 그 나라의 역사는 또한, 하느님께서 머리이심을 마음을 다해 인정하고 복종하지 않는 한, 영속적인 조화와 평화와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예시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상과 언어와 영토 등을 공유하는 유익을 누렸다. 그들은 공동의 적에 맞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충성스럽게 그리고 충실하게 여호와 하느님을 숭배하고 섬긴 동안만은 연합과 힘과 공의와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여호와 하느님과의 관계의 띠가 약화되자 그 나라는 급속히 쇠락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왕국이 ‘가까웠다’ 메시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 유다 지파의 일원, “다윗의 자손”이 되게 되어 있었으므로, 인간으로 태어나야 하였고 다니엘의 예언에 명시된 대로 “사람의 아들”이 되어야 하였다. “때가 차자” 여호와 하느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는 여자에게서 태어났고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상속받기 위한 법적 요구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갈 4:4; 누 1:26-33.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참조)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육 개월 전에, 침례자가 되고 예수를 소개하는 사자가 될 요한이 태어났다. (누 1:13-17, 36) 이 아이들에 대해 부모들이 한 말을 보면, 그 부모들이 하느님의 통치권이 행사되기를 열렬히 기대하면서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누 1:41-55, 68-79)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그 일의 의미를 공표하도록 파견된 천사 대표단이 한 말 역시 하느님께서 취하신 영광스러운 행동을 지적하였다. (누 2:9-14) 또한 시므온과 안나가 성전에서 한 말도 구원의 행동과 해방에 대한 희망을 나타냈다. (누 2:25-38) 성서 기록과 세속적인 증거가 함께 밝혀 주는 바에 의하면, 메시아가 올 때가 가까웠다는 전반적인 기대감이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주로 로마의 지배로 인한 과중한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메시아 참조.
요한의 임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호와께로, 그분의 계약으로, “충성과 의로 두려움 없이 신성한 봉사를 드리는 특권”으로 “돌아오게” 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준비된 백성”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누 1:16, 17, 72-75) 요한은 백성에게, 그들이 하느님의 심판의 때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늘 왕국이 다가왔’으므로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과 율법에 대한 불순종의 행로로부터 신속히 돌이켜야 한다는 것을 분명한 말로 알렸다. 이것은 오직 기꺼이 순종하는 신민, 즉 하느님의 길과 율법의 올바름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사람들만을 백성으로 소유하시는 여호와의 표준을 다시금 강조하였다.—마 3:1, 2, 7-12.
메시아가 오신 때는 예수께서 요한에게 가시어 침례를 받으시고 나서 하느님의 성령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으셨을 때이다. (마 3:13-17)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왕으로 지명된 분, 여호와의 법정에서 다윗의 왕좌에 대한 법적 권리를 가진 자로 인정된 분이 되셨는데, 이 권리는 그 이전 6세기 동안 행사된 적이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침례] 참조)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또한 이 승인받은 아들이 하늘 왕국을 위한 계약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으며, 예수께서는 고대 살렘의 멜기세덱처럼 이 왕국에서 왕 겸 제사장이 되실 것이었다. (시 110:1-4; 누 22:29; 히 5:4-6; 7:1-3; 8:1. 계약 참조) 약속된 ‘아브라함의 씨’로서, 이 하늘의 왕 겸 제사장은 모든 나라 사람들이 축복을 받게 하는 하느님의 으뜸 행위자가 되실 것이었다.—창 22:15-18; 갈 3:14; 행 3:15.
여호와께서는 예수의 지상 생애 초기에 이 아들을 위하여 자신의 왕권을 나타낸 적이 있으셨다. 하느님께서는 이 어린아이가 있는 곳을 포학한 왕 헤롯에게 알리려고 하는 동방의 점성술사들을 다른 길로 돌아가게 하셨으며, 또한 헤롯이 보낸 자들이 베들레헴에서 유아들을 몰살하기 전에 예수의 부모로 하여금 이집트로 은밀히 도피하게 하셨다. (마 2:1-16) 에덴에서의 최초의 예언은 약속된 “씨”와 ‘뱀의 씨’ 사이에 적의가 있을 것을 예고한 바 있으므로, 예수의 생명을 없애려는 이런 시도는 요컨대 하느님의 적대자 사탄 마귀가 헛되게도 여호와의 목적을 좌절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음을 의미한다.—창 3:15.
침례를 받으신 예수께서는 유다 광야에서 40여 일을 보내신 후에, 여호와의 주권을 거스르는 이 주된 반대자와 맞서게 되셨다. 어떤 방법으로인가, 이 적대자인 영은 여호와의 명시된 뜻과 말씀을 어기는 행동을 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고안된 교활한 제안들을 예수에게 전달하였다. 사탄은 기름부음받은 예수에게 지상의 모든 왕국에 대한 지배권을 주겠다고 제안하기까지 하였는데, 그 제안은 예수께서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구태여 고통을 받을 필요도 없다는, 다만 사탄 자신에게 하는 한 번의 숭배 행위와 교환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여호와를 유일하신 참 주권자, 권위의 정당한 근원이신 분, 숭배를 받아 마땅하신 분으로 인정하면서 그 제안을 거절하시자, 하느님의 적대자는 여호와의 대리자를 해할 다른 전략을 구상하여, 오래전 욥의 경우에 사용했던 것처럼 인간 대행자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욥 1:8-18; 마 4:1-11; 누 4:1-13. 계 13:1, 2 비교.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의 왕국은 예수께서 전파하시던 사람들 “가운데” 있었는가?
예수께서는 자신을 보호하시고 자신에게 성공을 주실 여호와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공개 봉사를 시작하셨으며, 여호와의 계약 백성에게 “지정된 때가 찼”고 따라서 하느님의 왕국이 가까웠다고 공표하셨다. (막 1:14, 15) 이 왕국이 무슨 의미로 “다가왔”는지 판단하려면, 일부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 즉 “하느님의 왕국은 당신들 가운데 있습니다”라는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 17:21) 「해설자의 성서 사전」(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은 이 성구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의 ‘신비주의’ 혹은 ‘내면적 본질’의 예로 자주 참조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주로 오래된 번역[within you; KJ, Dy]에 근거한 것으로서, 이 경우의 이인칭 대명사(you)는 부적절하게도 현대적 의미에 있어서 단수(‘너’)로 이해된다. 하지만 여기에 사용된 이인칭 대명사(그리스어, 히몬)는 복수(‘너희’)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음—20절) ··· 하느님의 왕국이 내적인 정신 상태 혹은 개인적으로 구원받은 상태를 가리킨다는 이론은 이 구절의 문맥에 맞지 않으며, 또한 신약에 제시된 전체 견해와도 맞지 않는다.” (G. A. 버트릭 편, 1962년, 2권, 883면) “왕국[바실레이아]”은 “왕의 위엄”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므로, 예수의 말씀은 하느님의 대리자인 왕이, 즉 왕권을 얻도록 하느님에 의해 기름부음받은 자가 된 자신이 그들 가운데 있다는 의미였음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이런 자격으로 그 자리에 계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왕권을 나타내는 일들을 행하실 권위 그리고 앞으로 있을 왕국 통치에 동참할 자들을 준비하실 권위를 가지고 계시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왕국은 ‘다가왔다’고 할 수 있었다. 당시는 왕국에 동참할 절호의 기회를 잡을 때였다.
힘과 권위가 있는 정부 예수의 제자들은 그 왕국의 세력 범위가 얼마나 될 것인지 파악하지는 못하였지만, 왕국이 하느님의 실제 정부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나다나엘은 예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랍비,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요 1:49) 그들은 다니엘의 예언에서 “거룩한 자들”에 관하여 예고된 내용을 알고 있었다. (단 7:18, 27) 예수께서는 자신의 추종자인 사도들에게, 그들이 “왕좌”를 차지할 것이라고 직접 약속하셨다. (마 19:28) 야고보와 요한은 메시아 정부에서 특권 받은 지위를 차지하게 해 달라고 청하였는데, 예수께서는 그런 특권 받은 지위가 있을 것임을 인정하기는 하셨지만, 그것을 주는 것은 주권을 가진 통치자이신 자신의 아버지께 달려 있다고 언명하셨다. (마 20:20-23; 막 10:35-40) 따라서 그분의 제자들이 잘못 생각하여서 메시아의 왕정을 땅에, 특히 육적 이스라엘에 국한시켰고, 심지어 부활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는 날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행 1:6), 그들은 그 왕국이 정부 마련을 가리킨다는 것만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마 21:5; 막 11:7-10 비교.
지상의 창조물에 대한 여호와의 왕권은 자신의 대리자인 왕에 의해서 여러 방법으로 눈에 보이게 실증되었다. 하느님의 영 곧 활동력을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은 바람과 바다, 초목과 물고기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셨고, 심지어 식품의 유기 원소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시어 식품이 늘어나게 하셨다. 이런 강력한 일들로 말미암아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이 가지고 계셨던 권위에 대해 깊은 존중심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마 14:23-33; 막 4:36-41; 11:12-14, 20-23; 누 5:4-11; 요 6:5-15) 제자들에게 한층 더 깊은 감명을 준 것은, 예수께서 인체에 대한 하느님의 능력을 행사하시어 눈먼 사람으로부터 나병 환자에 이르기까지 질병을 고쳐 주시고 죽은 사람을 생명으로 회복시키신 것이었다. (마 9:35; 20:30-34; 누 5:12, 13; 7:11-17; 요 11:39-47) 그분은 고침 받은 나병 환자들을, 하느님께 권한은 받았지만 대체로 믿음이 없는 제사장들에게 보내서 병이 나은 사실을 알리고 “그들에게 증거를 삼”게 하셨다. (누 5:14; 17:14) 끝으로, 그분은 초인간적인 영들에게도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악귀들은 예수에게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였으며, 예수를 후원하는 힘을 시험하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고 예수의 명령에 따라서, 악귀 들린 사람들을 풀어 주었다. (마 8:28-32; 9:32, 33. 야 2:19 비교) 악귀들을 쫓아낸 이러한 강력한 일은 하느님의 영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이것은 하느님의 왕국이 예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이미 ‘왔다’는 의미가 되었다.—마 12:25-29. 누 9:42, 43 비교.
이 모든 것은, 예수께서 왕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계시며 이 권위가 지상의 인간적, 정치적 근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확고한 증거였다. (요 18:36; 사 9:6, 7 비교) 투옥되어 있던 침례자 요한에게서 온 사자들은 이 강력한 일들을 목격하였는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 일의 증인으로서 요한에게 돌아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그에게 알려서 예수께서 참으로 “오실 분”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도록 지시하셨다. (마 11:2-6; 누 7:18-23. 요 5:36 비교) 예수의 제자들은 예언자들이 목격하기를 갈망했던 왕국 권위에 대한 증거를 보고 들었다. (마 13:16, 17) 더욱이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의 임명받은 대리인으로서 비슷한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실 수 있었으며, 이렇게 해서 “하늘 왕국이 다가왔다”는 그들의 선포에 힘과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마 10:1, 7, 8; 누 4:36; 10:8-12, 17.
왕국에 들어가는 것 예수께서는 이렇게 벌써 도래한, 기회를 잡을 특별한 기간을 강조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소개하는 사자였던 침례자 요한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사람이 일으킴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 왕국에서는 작은 자라도 그 사람보다 큽니다. 그러나 침례자 요한의 날부터 지금까지 하늘 왕국은 사람들이 밀고 나아가는 목표입니다[비아제타이]. 그리고 밀고 나아가는 사람들은[비아스타이] 그것을 붙잡습니다. [AT 비교; 또한 「취리히 성서」(Zürcher Bibel, 독일어) 비교] 모든 예언자들의 글과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습니다.” (마 11:10-13) 따라서 처형되어 곧 끝나게 되어 있던 요한이 봉사한 때는 한 기간의 끝이자 다른 기간의 시작을 나타냈다. 이 성구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비아조마이에 관하여, 「바인의 신구약 단어 해설 사전」(Vine’s Expository Dictionary of Old and New Testament Words)은 이렇게 말한다. “이 동사는 힘찬 노력을 시사한다.” (1981년, 3권, 208면) 마태 11:12에 관하여, 독일학자 하인리히 마이어는 이렇게 지적한다. “다가온 메시아 왕국을 향한 간절하고 저돌적인 노력과 분투가 이런 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 왕국에 대한 관심은 그토록 간절하고 강렬하다(더 이상 잠잠하지도 방관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비아스타이]는 왕국을 얻기 위하여 분투노력하는 신자들이다[공격하는 적들이 아니다].”—마이어의 「마태복음 비평 및 해석 편람」(Critical and Exegetical Hand-Book to the Gospel of Matthew), 1884년, 225면.
그러므로 하느님의 왕국의 성원이 될 자격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그것은 들어가기가 거의 혹은 전혀 어렵지 않은 무방비 상태의 도시에 다가가는 것과는 다를 것이었다. 사실, 주권자이신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들어올 만한 가치가 없는 자들을 가로막는 장벽을 세우셨다. (요 6:44; 고첫 6:9-11; 갈 5:19-21; 엡 5:5 비교) 왕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좁은 길을 통과하고, 좁은 문을 찾아내고, 계속 청하고, 계속 찾고, 계속 두드려야만 하였다.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었다.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미치는 일들을 행하지 못하게 제한한다는 의미에서 그 길이 ‘좁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될 것이었다. (마 7:7, 8, 13, 14. 베둘 1:10, 11 비교) 왕국에 들어가려면, 비유적으로 말해서 정녕 한쪽 눈이나 한쪽 손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막 9:43-47) 왕국은 돈으로 왕의 호의를 살 수 있는 금권 정체(영어로는 “plutocracy”[플루토크라시])가 아니므로, 부자(그리스어, 플루시오스)가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것이었다. (누 18:24, 25) 왕국은 이 세상의 귀족 정체가 아니므로, 사람들 사이에서의 탁월한 지위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었다. (마 23:1, 2, 6-12, 33; 누 16:14-16) 인상적인 종교적 배경과 경력이 있어서 “첫째”로 여겨지던 사람들은 그 왕국과 관련된 은혜로운 특권을 받는 면에서 “마지막”이 되고, “마지막”으로 여겨지던 사람들은 “첫째”가 될 것이었다. (마 19:30–20:16) 탁월한 지위에 있었으나 위선적이었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확신하였지만, 개심한 창녀들과 세금 징수원들이 그들보다 앞서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었다. (마 21:31, 32; 23:13) 예수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르기는 하지만, 예수를 통하여 밝혀진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업신여기는 위선적인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말씀을 듣고 쫓겨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당신들을 도무지 알지 못하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여, 내게서 떠나시오.”—마 7:15-23.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물질적 관심사를 둘째 자리에 두고 왕국과 하느님의 의를 첫째로 구하는 사람들일 것이었다. (마 6:31-34)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 왕 그리스도 예수처럼, 그들은 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할 것이었다. (히 1:8, 9) 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자비롭고, 마음이 정결하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과 박해의 대상이 될지라도 장래에 왕국의 성원이 될 것이었다. (마 5:3-10; 누 6:23) 예수께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메도록 권하셨던 “멍에”는 예수의 왕권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왕처럼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가벼운 짐이 수반된 친절한 멍에였다. (마 11:28-30. 왕첫 12:12-14; 렘 27:1-7 비교) 이 말씀은 듣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었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통치에는 이스라엘 통치자이든 비이스라엘 통치자이든 이전의 많은 통치자들이 나타냈던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들이 하나도 없음을 확신시켜 주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통치에는 과중한 세금 징수나 강제 노동 혹은 여러 형태의 착취가 없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였다. (삼첫 8:10-18; 신 17:15-17, 20; 엡 5:5 비교) 예수께서 후에 하신 말씀에 나타나 있듯이, 장차 올 왕국 정부의 머리이신 분만 백성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줄 정도로 비이기적인 태도를 몸소 나타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정부에서 그분과 연합할 모든 사람도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될 것이었다.—마 20:25-28.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일과 인격적 특성) 참조.
기꺼이 복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께서는 주권자이신 아버지의 뜻과 권위에 대해 가장 깊은 존중심을 가지고 계셨다. (요 5:30; 6:38; 마 26:39) 율법 계약이 유효한 동안, 예수의 유대인 추종자들은 율법을 실천하고 율법에 대한 순종을 옹호해야 하였다. 율법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왕국과 관련하여 물리침을 당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존중심과 순종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했으며, 요구된 특정한 행위를 강조하여 율법을 단지 형식적으로 혹은 편향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공의와 자비와 충실을 포함하여 율법에 내재된 기본 원칙들을 지켜야 하였다. (마 5:17-20; 23:23, 24) 한 서기관이 여호와의 비길 데 없는 지위를 인정하고, 또한 “마음을 다하고 이해력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이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이것은, 모든 번제물과 모든 희생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하고 인정하자, 예수께서는 그에게 “당신은 하느님의 왕국에서 멀지 않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막 12:28-34)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여호와 하느님이 오직 기꺼이 순종하는 신민, 하느님의 의로운 길을 좋아하고 그분의 최고 권위 아래서 살기를 열렬히 바라는 사람들만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모든 면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다.
계약 관계 제자들과 함께 보낸 마지막 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약”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 계약은 예수께서 대속 희생을 바치게 되면 그 결과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효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었다. (누 22:19, 20. 누 12:32 비교) 예수 자신은 주권자이신 여호와와 예수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그 계약의 중개자로 일하실 것이었다. (디첫 2:5; 히 12:24) 그것에 더하여,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왕으로서의 특권에 추종자들이 동참하도록 “왕국을 위하여” 그들과 개인적인 계약을 맺으셨다.—누 22:28-30. 계약 참조.
세상을 이기다 예수께서 뒤이어 체포되고 재판을 받고 처형되시자 그분의 왕위가 약한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상 그것은 하느님의 예언이 강력하게 성취되었다는 표시였으며 그런 이유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신 것이었다. (요 19:10, 11; 누 24:19-27, 44) 예수께서는 죽기까지 충성과 충절을 지키시어, “세상의 통치자”인 하느님의 적대자 사탄이 자신에게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참으로 “세상을 이겼”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요 14:29-31; 16:33) 게다가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아들이 기둥에 못 박혀 있는 동안에도 자신에게 우월한 능력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셨다. 즉 햇빛이 한동안 어두워지게 하셨고, 또한 강한 지진이 일어나고 성전의 큰 휘장이 둘로 찢어지게 하셨다. (마 27:51-54; 누 23:44, 45) 그 후 삼 일째 되는 날에,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주권을 입증하는 훨씬 더 큰 증거를 보이셨다. 사람들이 예수의 봉인된 무덤 앞에 경비대를 배치하여 예수의 부활을 막아 보려고 헛된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아들을 영의 생명으로 부활시키셨던 것이다.—마 28:1-7.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이 지난 기원 33년 오순절에,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기들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실 때 그분이 이미 “하느님의 오른편으로 높여”지셨다는 증거를 보게 되었다. (행 1:8, 9; 2:1-4, 29-33) 이렇게 해서 “새 계약”이 그들에게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그들은 새로운 “거룩한 나라” 곧 영적 이스라엘의 핵심이 되었다.—히 12:22-24; 베첫 2:9, 10; 갈 6:16.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있게 되셨으며 이 회중의 머리가 되셨다. (엡 5:23; 히 1:3; 빌 2:9-11) 성경은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로 예수의 제자들을 다스리는 영적 왕국이 세워졌음을 보여 준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왕국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언급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위에서 구출하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습니다.”—골 1:13. 행 17:6, 7 비교.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로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적 이스라엘—하느님의 영에 의해서 태어나 하느님의 영적 자녀들이 된 그리스도인들—을 다스리는 영적인 왕국이었다. (요 3:3, 5, 6) 영으로 출생한 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상을 받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의 지상 신민이 아니라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왕들이 될 것이다.—계 5:9, 10.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 기원 1세기 말경에 성경의 일부를 기록한 사도 요한은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서, 여호와 하느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사용하시어 하느님의 통치권을 새롭게 표현하실 미래의 때를 미리 보았다. 그때에는, 다윗이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올라왔던 때처럼, 여호와께서 “큰 권세를 잡으시고 왕으로서 통치하기 시작하셨”다는 외침이 있을 것이었다. 그때는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세상 왕국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었고, 그분은 왕으로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실 것이다”라고 선포하는 때가 될 것이었다.—계 11:15, 17; 대첫 16:1, 31.
“우리 주” 곧 주권자인 주 여호와께서는 “세상 왕국”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시어, 이 땅과 관련하여 자신의 주권을 새롭게 표현할 하나의 수단을 설립하신다. 그분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왕국에서의 부차적인 역할을 맡기시며, 이렇게 해서 이 왕국은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이라고 불린다. 이 왕국은 골로새 1:13에 언급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보다 규모도 크고 광범위한 왕국이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은 기원 33년 오순절에 통치를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을 다스려 온 반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은 “나라들의 지정된 때”의 끝에 설립되어 지상의 온 인류를 다스린다.—누 21:2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왕국”과 관련된 역할을 맡으시자마자, 하느님의 주권을 반대하는 세력을 일소하는 데 필요한 조처들을 취하신다. 첫 번째 조처가 하늘 영역에서 취해지고, 사탄과 그의 악귀들이 싸움에서 패하여 지상 영역으로 내던져진다. 그 결과,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세와 왕국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권위가 이루어졌다”는 선포가 있게 된다. (계 12:1-10) 자기에게 남아 있는 짧은 기간 동안에, 이 주된 적대자 사탄은 여자의 “씨”의 “남은 자들”, 즉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 되어 있는 “거룩한 자들”과 싸움을 벌임으로써 창세기 3:15의 예언을 계속 성취시킨다. (계 12:13-17. 계 13:4-7; 단 7:21-27 비교) 그렇지만 여호와의 “의로운 법령”이 나타나고, 그분의 심판의 표현이 그분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재앙의 형태로 닥친다. 그 결과 지상에서 하느님의 종들을 박해하던 주된 박해자인 신비의 큰 바빌론이 멸망된다.—계 15:4; 16:1–19:6.
그 후에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은 아마겟돈 전투에서 하늘 군대를 보내어 지상의 모든 왕국의 통치자들과 그 군대를 치며, 그 결과 그들은 끝에 이르게 된다. (계 16:14-16; 19:11-21) 이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이러한 청원에 대한 응답이다. “당신의 왕국이 오게 하십시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마 6:10) 그러고 나서 사탄이 무저갱에 감금되고, 그리스도 예수와 그분의 동료들이 왕 겸 제사장으로서 땅의 주민들을 다스리는 천년기가 시작된다.—계 20:1, 6.
그리스도가 ‘왕국을 넘겨 드리다’ 사도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의 임재 기간에 있을 그분의 통치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신 후에, “모든 정부와 모든 권위와 권세[논리적으로 볼 때, 주권자이신 하느님의 뜻에 반대하는 모든 정부, 권위, 권세를 가리킴]를 없”애신다. 그 후, 자신의 천년 통치가 끝나면 그리스도께서는 “왕국을 자기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시어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키신 분”에게 복종할 것이며,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고첫 15:21-28.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자기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신다고 하면, 성경에 반복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영원”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베둘 1:11; 사 9:7; 단 7:14; 누 1:33; 계 11:15) 그리스도의 왕국은 “결코 파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 왕국이 성취한 일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분은 메시아 왕으로서의 역할로 말미암아 영원히 영예를 받으실 것이다.—단 2:44.
천년 통치 기간 중에 그리스도께서 땅을 통치하시는 일에는 순종하는 인류에게 제사직 마련을 시행하는 것도 포함된다. (계 5:9, 10; 20:6; 21:1-3) 이렇게 해서 죄와 죽음의 “법”에 굴복하였던 순종하는 인류를 죄와 죽음이 왕으로서 지배하는 일이 끝나고 과분한 친절과 의가 통치 요소가 된다. (로 5:14, 17, 21) 죄와 죽음이 땅의 주민들에게서 완전히 제거될 것이므로, 예수께서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죄를 위하여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신다는 의미로 “아버지 앞에서 돕는 이”로 봉사할 필요도 없게 된다. (요첫 2:1, 2) 그리하여 인류는 완전한 사람 아담이 에덴에 있을 때 누렸던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아담은 완전한 동안에는 자기와 하느님 사이에서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중재해 줄 사람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의 천년 통치가 종료되면, 땅의 주민들 역시 법적 중재자 곧 돕는 이인 누군가에게 의뢰하는 일 없이, 최고 재판관이신 여호와 하느님 앞에서 자기들의 행로에 대하여 답변할 입장에 있게 되고 또한 답변할 책임도 있게 될 것이다. 최고 주권자이신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신다. 이것은 “모든 것 곧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모으”려는 하느님의 목적이 이미 온전히 실현되었을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고첫 15:28; 엡 1:9, 10.
예수의 천년 통치의 목적은 온전히 달성되었을 것이다. 한때 반역의 중심지였던 이 땅은 우주 주권자의 영역 곧 세력 범위 내에서 온전하고 깨끗하고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 상태로 회복되어 있을 것이다. 여호와와 순종하는 인류 사이에는 더 이상 부차적인 왕국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이들 지상 신민 모두의 충절과 정성에 대한 최종 시험이 있게 된다. 사탄이 무저갱에 감금된 상태로부터 풀려난다.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는 사람들은 에덴에서 제기되었던 동일한 쟁점, 즉 하느님의 주권의 정당성에 대한 쟁점과 관련하여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들이 “거룩한 자들의 진영과 사랑받는 도시”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점을 알 수 있다. 이 쟁점은 하늘 법정에서 사법적으로 해결되고 종결 선언된 사안이므로, 이 경우 반역의 기간을 연장하도록 허락되지 않는다. 충성스럽게 하느님의 편에 서지 않은 자들은 ‘화목하게 하는 돕는 이’이신 그리스도 예수에게 호소할 수 없을 것이며,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 따라서 어떤 호소나 중재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영자이든 인간이든, 반역자들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멸망의 선고를 받아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계 2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