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드리는 봉사에서 계속 기쁨을 유지하라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기뻐하십시오!”—빌립보 4:4.
1, 2. 한 형제와 그의 가족은 그들이 가진 소유물을 모두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제임스는 시에라리온에 사는 70세 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열심히 일을 하였으며, 그렇게 모은 돈으로 마침내 방이 네 개 있는 아담한 집 한 채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얼마나 기뻐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제임스와 그의 가족이 그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그 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났고, 그 집은 불에 타서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집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잃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2 제임스와 그의 가족은 잃어버린 것들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것들에 정신의 초점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제임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공포에 떨던 기간에도 우리는 집회를 열고, 성서를 읽고, 함께 기도하였으며, 우리가 가진 얼마 안 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썼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여호와와의 놀라운 관계에 초점을 맞춤으로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누리는 축복들에 대해,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축복인 여호와와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숙고함으로, “계속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둘째 13:11) 물론 그들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인내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 안에서 기뻐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3. 일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기쁨을 유지하였습니까?
3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제임스와 그의 가족이 겪은 것에 비할 만한 시련들에 직면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여러분이] 여러분의 소유를 강탈당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들이 기뻐한 이유에 대해, “여러분 자신이 더 나은 영속하는 소유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히브리 10:34) 그렇습니다. 1세기의 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강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강탈당하지 않을 것—하느님의 하늘 왕국의 시들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확신에 차서 고대하였습니다. (계시 2:10) 오늘날 우리의 그리스도인 희망은—하늘의 희망이든 땅의 희망이든—우리가 역경에 직면할 때에도 기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희망 중에 기뻐하십시오”
4, 5. (ㄱ) “희망 중에 기뻐”하라는 바울의 권고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시기적절한 것이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어떤 상황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희망을 잊어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까?
4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동료 신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릴 “희망 중에 기뻐”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로마 12:12) 그러한 권고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시기적절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편지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들은 극심한 박해를 겪게 되었고, 일부 사람들은 네로 황제의 명령에 의해 고문을 당하고 죽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틀림없이 그들이 그러한 고난을 견디도록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5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역시 박해를 받을 것을 예상합니다. (디모데 둘째 3:12) 더욱이 우리는 “때와 예기치 못한 일”이 우리 모두에게 닥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도 9:11)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나 절친한 벗이 불치병으로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왕국 희망에 계속 또렷이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그러한 시련들이 닥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는 “희망 중에 기뻐”하는가? 나는 얼마나 자주 시간을 내어 그러한 희망에 대해 묵상하는가? 다가오는 낙원은 나에게 실재적인가? 나는 나 자신이 낙원에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나는 처음으로 진리를 알게 되었을 때만큼 현 사물의 제도의 끝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가?’ 특히 마지막 질문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건강이 좋은 편이고, 안락한 생활을 즐길 만큼 돈을 벌고 있고, 전쟁이나 식량 부족이나 자연재해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지역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신세계가 도래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순간적이나마—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ㄱ) 바울과 실라는 환난을 겪을 때 생각의 초점을 무엇에 맞추었습니까? (ㄴ) 바울과 실라의 모범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격려가 될 수 있습니까?
6 또한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환난 아래서 인내”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 (로마 12:12) 바울은 환난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바울이 환상을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그곳 사람들이 여호와에 관해 배우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16:9) 그 즉시 바울은 누가와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배를 타고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열심 있는 그 선교인들 앞에는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환난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마케도니아의 도시 빌립보에서 전파한 후에,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분명히 빌립보의 일부 주민들은 단지 왕국 소식에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소식을 격렬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해 열심 있는 그 선교인들은 기쁨을 잃고 말았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구타를 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도, “한밤중쯤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며 노래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16:25, 26) 물론 구타를 당하면서 느끼는 고통이 바울과 실라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두 선교인이 주로 초점을 맞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여호와와 그분이 그들을 축복하고 계시는 방법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환난 아래서” 기쁘게 “인내”함으로, 빌립보를 비롯하여 모든 곳에 있는 형제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었습니다.
7. 우리가 기도 가운데 감사의 표현을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바울은 “꾸준히 기도”하라고 썼습니다. (로마 12:12) 당신은 염려가 되는 일들이 있을 때 기도합니까?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 기도합니까? 아마 당신은 자신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여호와께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누리고 있는 축복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도 기도 가운데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선한 일들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것이 “희망 중에 기뻐”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생애 중에 문제들을 많이 겪었던 다윗은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은 많은 것을 행하셨습니다, 오 나의 하느님 여호와여, 당신의 놀라운 일들과 우리에 대한 당신의 생각들을 행하셨으니, 당신에게 비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그것들에 대해 말하고 이야기하려 하여도, 내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시 40:5) 우리가 다윗처럼, 여호와께 받은 축복들에 대해 정기적으로 묵상한다면,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긍정적인 영을 유지하라
8. 그리스도인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행복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8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나더라도 긍정적인 영을 유지할 것을 격려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러분을 모욕하고 박해하고 여러분에 대하여 거짓으로 온갖 악한 것을 말할 때에,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마태 5:11) 그러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반대를 저항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여호와의 영이 우리 위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당시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치욕을 당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영, 곧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첫째 4:13, 14)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영을 통해, 우리가 인내하도록 그리고 그로 인해 기쁨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베푸실 것입니다.
9. 일부 형제들은 믿음을 위해 갇혀 있는 동안 어떻게 기뻐할 이유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까?
9 몹시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도 우리는 기뻐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돌프라는 한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이 여러 해 동안 금지되어 있었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아돌프와 그의 동료 여러 명은 성서에 근거한 자신들의 믿음을 부인하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장기 투옥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수감 생활은 고달팠지만, 아돌프와 그의 동료들은 바울과 실라처럼 하느님께 감사할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옥중 경험이 자신들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관대함이나 감정 이입이나 형제 애정과 같은 가치 있는 그리스도인 성품들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감되어 있던 한 형제가 집에서 보낸 소포를 받으면, 그는 그 속에 있는 물품을 동료 신자들과 함께 나누어 썼습니다. 그는 그러한 여분의 물품을 여호와께서 보내신 것으로,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 주신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한 친절한 행동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믿음을 파괴시키려고 그들을 가두어 놓았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조차도 사실상 그들을 영적으로 더 강화시켜 주었습니다!—야고보 1:17; 사도 20:35.
10, 11. 한 자매는 무자비한 심문과 그 후 이어진 장기 투옥 형에 어떻게 대처해 나갔습니까?
10 엘라 역시 왕국 활동이 오랫동안 금지되어 있었던 나라에 살고 있는 자매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그리스도인 희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준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엘라는 8개월 동안 무자비한 심문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재판을 받게 되었고, 여호와의 숭배자가 한 사람도 없는 감옥에서 10년간 복역하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 엘라의 나이는 겨우 스물네 살이었습니다.
11 물론 엘라가 감옥에서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고 싶어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힘으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없었으므로, 엘라는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한 결심에 따라, 엘라는 감옥을 자신의 개인 증거 구역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엘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파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이 있었으므로, 여러 해가 금방 지나가 버렸습니다.” 5년이 넘게 지난 후에 엘라는 다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문하는 사람들은 감옥의 창살이 엘라의 믿음을 파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는 당신을 석방할 수 없소.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엘라는 결연한 태도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변했습니다! 처음에 감옥에 갇혔을 때보다 지금은 더 나은 영을 갖게 되었고,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내보내기를 원치 않는다면, 저는 여호와께서 저를 풀어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실 때까지 여기에 머무를 작정입니다.” 5년 반의 감금 생활도 엘라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하였습니다! 엘라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그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당신도 엘라의 모범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까?—히브리 13:5.
12. 무엇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그리스도인에게 정신의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까?
12 엘라가 그러한 도전이 되는 일들에 직면할 수 있게 해 주는 얼마의 특별한 특성들을 타고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엘라는 선고를 받기 전 여러 달 동안 심문을 받았던 기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시인하였습니다. “이가 딱딱 맞부딪칠 정도로 떨렸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내가 겁에 질린 참새 같다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엘라는 여호와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엘라는 그분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잠언 3:5-7) 그 결과로, 엘라는 하느님을 이전 어느 때보다도 실재적인 분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엘라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심문실에 들어갈 때마다 평화가 나를 감싸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 상황이 더 무서워질수록 그러한 평화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바로 여호와께서 그러한 평화의 근원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와 더불어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의 청원을 하느님께 알리십시오. 그러면 모든 생각을 능가하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력을 지켜 줄 것입니다.”—빌립보 4:6, 7.
13. 무엇을 볼 때 우리가 환난을 겪는다 하더라도 인내할 힘을 얻게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13 석방된 이후로 엘라는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도 기쁨을 유지하였습니다. 엘라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신 힘 덕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나의 약함에 관해서 아주 기쁘게 자랑하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천막처럼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력하기 때문입니다.”—고린도 둘째 12:9, 10.
14. 그리스도인이 시련이 되는 상황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어떤 결과를 거둘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14 오늘날 당신이 개인적으로 직면하는 압력들은 이 기사에서 살펴본 것들과는 다소 다를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떤 형태의 압력이든 그에 대처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고용주가 당신이 하는 일을 매우 비판적으로—다른 종교를 믿는 직원들이 하는 일보다 훨씬 더 비판적으로—볼지 모릅니다. 그리고 다른 직업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어떻게 기쁨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아돌프와 그의 동료들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옥중 경험을 통해 매우 중요한 성품들을 발전시키는 법을 배웠습니다. 고용주가 “기쁘게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당신은 인내나 오래 참음과 같은 그리스도인 성품들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 첫째 2:18) 더 나아가, 당신은 고용인으로서 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언젠가 좀 더 만족스러운 직장을 구할 기회가 더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호와께 드리는 봉사에서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생활을 단순하게 하면 기쁨을 얻게 된다
15-17. 한 부부는,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까?
15 어떤 세속 일을 할 것인지, 어디에서 일할 것인지와 관련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 외에 당신이 조정하는 것이 가능한 생활의 부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음의 경험을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16 한 그리스도인 부부는 자기들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한 장로를 초대하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 형제와 그의 아내는 최근 들어 자신들이 생활의 압력에 짓눌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전 시간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을 구할 수 있는 입장도 못 되었습니다. 그 부부는 자신들이 그런 상태를 얼마나 더 지탱해 나갈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17 조언을 부탁받은 장로는 “생활을 단순하게” 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 부부는 각각 직장에 출퇴근하는 데 하루에 세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부부를 잘 알고 있던 그 장로는 그들이 매일 직장에 오가는 데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을 고려해 보도록 제안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시간을 절약한다면, 다른 중요한 일들을 돌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휴식을 좀 더 취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생활의 압력 때문에 다소 기쁨을 빼앗기고 있다면, 얼마의 조정을 함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18. 결정을 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압력을 줄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결정을 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그리스도인은 집을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이전에 집을 지어 본 적이 전혀 없는데도 매우 복잡한 설계도를 선택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집 설계도를 선택하기 전에 ‘자기 발걸음을 살폈’더라면 불필요한 문제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임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잠언 14:15) 다른 한 그리스도인은 동료 신자가 돈을 빌리는 데 보증을 서 주었습니다. 계약에 의하면, 돈을 빌린 사람이 그 돈을 갚을 수 없을 경우, 보증인에게 갚을 의무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돈을 빌린 사람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빌려 준 사람은 불안해하게 되었고, 보증인에게 빌려 준 돈 전액을 갚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해 보증을 선 그 그리스도인은 큰 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 빚에 대해 책임을 지기로 동의하기 전에 모든 요인들을 좀 더 신중히 고려해 보았더라면, 그런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잠언 17:18.
19. 우리가 살면서 느끼게 되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9 우리가 지치게 될 경우, 개인 성서 연구나 야외 봉사나 집회 참석에 드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우리가 받는 압력을 줄이고 기쁨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합시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여호와의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들이며, 기쁨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5:22) 그리스도인 활동은 언제나 새 힘을 주는 것으로서, 그러한 활동으로 인해 너무 지치게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마태 11:28-30)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영적인 일이 아니라 주로 세속 일이나 오락 활동입니다. 합리적인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법을 배우는 것도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휴식을 조금만 더 취하더라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사망 시까지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 성원으로 일한 N. H. 노어는 선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곧잘 하였습니다. “낙담하게 될 때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하룻밤만 잘 자고 나면 어떤 문제이든 거의 대부분 깜짝 놀랄 정도로 쉽게 느껴질 것입니다!”
20. (ㄱ) 우리가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요약해 보십시오. (ㄴ) 당신은 기뻐해야 할 어떤 이유들을 생각해 낼 수 있습니까? (17면 네모 참조)
20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하신 하느님”을 섬기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디모데 첫째 1:11) 이미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심각한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하더라도 기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왕국 희망을 계속 간직하고, 필요할 경우 우리의 견해를 조정하고, 생활을 단순하게 유지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사도 바울의 말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기뻐하십시오!”—빌립보 4:4.
주의 깊이 고려해 보아야 할 질문들
● 그리스도인들이 왕국 희망에 계속 예리하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기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생활을 단순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일부 사람들은 어떤 부면에서 생활을 단순하게 해 왔습니까?
[17면 네모와 삽화]
기뻐해야 할 또 다른 이유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기뻐할 이유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보도록 하자.
1. 우리는 여호와를 알고 있다.
2.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나오는 진리를 알고 있다.
3. 우리는 예수의 희생에 대한 믿음을 나타냄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4. 하느님의 왕국이 통치하고 있다. 머지않아 이 땅에 신세계가 도래할 것이다!
5. 여호와께서 우리를 영적 낙원으로 인도해 주셨다.
6. 우리는 건전한 그리스도인 교제를 즐기고 있다.
7. 우리는 전파 활동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8. 우리는 살아 있으며,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기뻐할 이유들을 얼마나 많이 언급할 수 있는가?
[13면 삽화]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기뻐하였다
[15면 삽화]
당신은 하느님의 신세계에서 누릴 기쁨에 넘친 전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