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장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교훈
이 장면은 성서 역사상 가장 잊지 못할 장면에 속합니다. 예수께서 산 중턱에 앉으셔서 유명한 산상 수훈을 베풀고 계십니다. 장소는 갈릴리 바다에서 가까운 곳으로, 아마 가버나움 근처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나서 조금 전에 제자들 중 12명을 사도로 택하셨습니다. 뒤이어 예수께서는 그들 모두와 함께 산의 평평한 이곳으로 내려오십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예수께서는 이제는 몹시 피곤하시어 좀 주무시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그중에는 멀리 100 내지 110킬로미터 떨어진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쪽에 위치한 해안 지방인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리고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온 것입니다. 심지어 사단의 악한 천사인 악귀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내려오시자 병든 사람들이 그분을 만지려고 가까이 나아오며, 예수께서는 그들 모두를 고쳐 주십니다. 그 후 예수께서는 그 산의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그곳에 앉으셔서 앞의 평평한 곳에 퍼져 있는 무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그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제 그 모든 청중 가운데 심한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처럼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선생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주로 제자들에게 유익하도록 교훈을 베푸십니다. 아마 제자들은 그분 바로 곁에 모여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역시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마태와 누가는 그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산상 수훈에 대한 마태의 기록은 누가의 기록보다 네 배 정도 깁니다. 더욱이 마태가 기록한 어떤 부분을, 누가는 예수께서 봉사 기간중 다른 시기에 말씀하신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를테면 마태 복음 6:9-13과 누가 복음 11:1-4을, 그리고 마태 복음 6:25-34과 누가 복음 12:22-31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뜻밖의 일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같은 점을 여러 번 가르치셨음이 분명하며, 누가는 이러한 가르침 중 일부를 다른 배경 가운데 기록하기로 한 것입니다.
예수의 산상 수훈이 그토록 값진 이유는 그 영적 내용이 깊이가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러한 진리를 전하신 방식이 단순하고 명료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일상적인 경험에서 이끌어 내시고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들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에서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점을 아시고 참으로 행복한 사람에 대한 묘사로써 산상 수훈을 시작하십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산상 수훈은 많은 청중의 주의를 즉시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서두의 말씀은 많은 사람에게 틀림없이 모순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왕국”, 「신세」]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면] ···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공동번역」)
이것은 누가가 기록한 예수의 산상 수훈의 서론입니다. 그런데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온유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그들이 땅을 상속할 것이고 자비를 받을 것이고 하나님을 뵐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예수께서는 지적하십니다.
그러나 행복하다는 예수의 말씀의 뜻은 재미있는 일을 할 때처럼 단순히 유쾌하다거나 흥겹다는 뜻이 아닙니다. 참다운 행복이란 흡족이라는 사상을 지닌 보다 깊은 것으로서, 생활에서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알려 주신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란 영적인 필요를 인식하고, 자신의 죄 있는 상태를 슬퍼하며, 하나님을 알게 되어 그분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이유로 미움이나 박해를 받는다 하더라도 행복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상을 받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부유하고 쾌락을 즐기는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바와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생각이 사실과 반대됨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대조법을 사용하여 말씀하시는데, 틀림없이 많은 청중을 깜짝 놀라게 할 말씀입니다.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받을 위안을 이미 받았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굶주리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기뻐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슬퍼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할 때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도 거짓 예언자들에게 그와 같이 행했다.” (「새번역」)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부요하고 웃으면서 쾌락을 추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누리는 것이 화근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한 것을 지니고 소중히 여기게 되면 하나님께 대한 봉사가 생활에서 밀려나게 되는데, 하나님께 대한 봉사만이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수께서는 단지 가난하고 굶주리며 슬퍼하는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러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예수의 가르침에 반응을 나타낼지 모르며, 그 결과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 다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문자적인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상, 소금은 일종의 방부제입니다. 여호와의 성전 제단 곁에는 소금이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거기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은 이것을 사용하여 제물에 소금을 쳤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보존시키는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세상의 소금”입니다. 참으로, 그들이 전하는 소식은 그 소식에 반응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보존시켜 줄 것입니다! 그 소식은 그러한 사람들의 생활에 영속성과 충성과 충실함이라는 특성을 가져다 주고, 어떠한 영적·도덕적 부패로부터도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등불은 바구니 아래가 아니라 등잔대 위에 두므로, 예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공개적인 증거를 할 뿐 아니라 성서 원칙과 일치한 행실의 빛나는 본이 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추종자를 위한 높은 표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다고 생각하면서 얼마 전부터 그분을 죽일 모의를 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을 계속하시면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새번역」)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극진히 존중하시면서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것을 권유하십니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거나 또 어기도록 사람을 가르치면 하늘나라[“하늘 왕국”, 「신세」]에서 그를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번역」) 그러한 사람은 왕국에 결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시기는커녕 율법을 어기게 하는 태도까지도 단죄하십니다. “살인치 말라”는 율법의 말씀을 지적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계속 노를 품는”, 「신세」]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동료에게 계속 노를 품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며 심지어는 살인을 범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로 힘써야 하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교훈하십니다. “그러므로 [희생]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십계명 중 일곱 번째 계명에 주의를 돌리시면서,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간음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는 태도조차 단죄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여자를 계속 바라보고 그에게 정욕을 품는”, 「신세」]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단지 부도덕한 생각이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바라보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계속 바라보는 것은 욕정을 일으키게 되어 기회가 닿는다면 급기야 간음을 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어느 정도로 극단적인 조처가 필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병든 수족을 기꺼이 희생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부도덕한 생각이나 행위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눈이나 손처럼 소중한 것이라도, 무엇이든 “내버리”는 것은 한층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람들은 영원한 멸망을 상징하는 게헨나(예루살렘 근처의 쓰레기 소각장)에 던져질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설명하십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해를 입히거나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십니다.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는 것이 그분의 교훈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이나 가족이 공격을 당할 경우 방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뺨을 치는 일은 신체적으로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욕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말씀은 누군가가 문자 그대로 손바닥으로 침으로써 싸움을 걸어오거나 모욕적인 말로 자극하여 언쟁하려고 할 경우 보복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법에 주의를 이끄시고 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해야 할 강력한 이유를 이러한 말로 덧붙여 제시하십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심이니라.]”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의 이 부분을 이러한 훈계로 마치십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께서는 절대적 의미에서 사람이 온전해질 수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받음으로써 원수까지 포용할 만큼 사랑을 넓힐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 유사한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기도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을 계속하시면서 가장된 경건을 보이는 사람들의 위선을 단죄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위선자들”, 「새번역」]가 ···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위선자들”]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예수께서는 오히려 이렇게 하라고 교훈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예수께서 친히 공개 기도를 하셨으므로, 지금 그분이 단죄하시는 것은 공개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비난하시는 기도는, 듣는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감탄하는 찬사를 이끌어 내기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더 나아가서 “기도할 때에 이방사람들처럼 빈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교훈하십니다. (「새번역」) 예수께서는 반복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자신도 “동일한 말씀”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기도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승인하시지 않는 기도는, 기도문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면서 구슬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암기한 문구를 “되풀이”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청중이 기도하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일곱 가지 청원이 담겨 있는 본이 되는 기도를 알려 주십니다. 당연하게도 처음 세 가지 청원은 하나님의 주권과 목적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일,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요청입니다. 나머지 네 가지는 개인적 요청으로서, 일용할 양식, 죄를 용서받는 일, 견디기 어려운 유혹을 받지 않는 일 그리고 악한 자에게서 구출되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예수께서는 물질적 소유물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것의 올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강력히 권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도둑질한다.” (「새번역」) 그러한 보물은 없어지기 쉬운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아무런 가치 있는 공적도 쌓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생활에서 하나님의 봉사를 첫째 자리에 둠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앞에 쌓아 놓은 가치 있는 공적 혹은 그로 인한 웅대한 상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덧붙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물질주의의 올무에 대해 이러한 예를 들어 한층 더 말씀하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단순하면”, 「신세」]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 눈이 올바로 기능을 발휘할 때, 그것은 몸에 있어서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등불과 같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보려면 눈이 단순해야 합니다. 즉 한 가지 사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초점을 상실한 눈은 사물을 잘못 평가하여, 물질을 추구하는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보다 앞 자리에 둠으로써 “온 몸”을 어둡게 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강력한 예로써 이 문제를 절정으로 이끄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께서는 이러한 교훈을 하신 후에, 하나님의 봉사를 첫째 자리에 둔다면 물질적 필수품을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청중에게 보증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물으십니다.
다음에, 예수께서는 들에 피어 있는 백합화를 가리켜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음을 지적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끝을 맺으십니다.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왕국”, 「신세」]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생명에 이르는 길
생명에 이르는 길은 곧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을 심하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고,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을 계속하시면서, 이렇게 훈계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니라.]”
지나치게 비평적인 바리새인들의 인도를 따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그 위험성을 이러한 예로 설명하십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새번역」)
다른 사람에 대해 과도하게 비평적이 되어, 그들의 잘못을 과장하며 들추어 내는 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위선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이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과 관련해서 분별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진리는 거룩한 것입니다. 그것은 비유적으로 진주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개나 돼지처럼 이 귀중한 진리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그런 사람을 떠나 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을 하시면서 앞서 기도에 관하여 이야기하셨지만, 이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계속”, 「신세」]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강력히 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점을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겠느냐]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유명한 행동 규범이 된, 흔히 황금률이라고 하는 것을 제시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규범에 따라 사는 데에는 자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면서 적극적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관련됩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다는 점은 예수의 이러한 교훈에 나타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잘못 인도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거짓 예언자들을 삼가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엉큼한 이리들이다.” (「새번역」)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를 그 열매로 알 수 있듯이, 거짓 예언자인지는 그들의 행실과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고 예수께서는 지적하십니다.
계속하여,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가 되려면 말만이 아니라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가 자신들의 주라고 주장하면서도 예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을 경우, 예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침내,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의 잊지 못할 결론을 맺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비가 내리고 큰 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것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새번역」)
반면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언명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리고 큰 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치면 무너져버린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대단할 것이다.” (「새번역」)
예수께서 산상 수훈을 마치시자, 무리는 그분의 가르치시는 방식에 놀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권위 있는 분처럼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6:12-23; 마태 5:1-12; 누가 6:24-26; 마태 5:13-48; 6:1-34; 26:36-45; 7:1-29; 누가 6:27-49.
◼ 예수께서는 가장 잊지 못할 교훈을 어디에서 베푸시며, 누가 참석해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 그 교훈을 베푸시기 바로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누가가 산상 수훈의 일부를 다른 배경 가운데 기록한 것은 왜 뜻밖의 일은 아닙니까?
◼ 예수의 교훈이 그토록 값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화를 당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어떻게 예수의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입니까?
◼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존중심을 어떻게 나타내십니까?
◼ 예수께서는 살인과 간음의 원인을 뿌리뽑도록 무슨 교훈을 하십니까?
◼ 다른 쪽 뺨을 돌려대라는 예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온전할 수 있습니까?
◼ 예수께서는 기도에 관해 무슨 교훈을 하십니까?
◼ 하늘의 보물이 더 나은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습니까?
◼ 물질주의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무슨 예들이 언급됩니까?
◼ 예수께서는 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렇지만 제자들이 사람들과 관련하여 분별력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어떻게 알려 주십니까?
◼ 예수께서는 기도에 관하여 어떤 점을 더 말씀하시며, 무슨 행동 규범을 제시하십니까?
◼ 예수께서는 생명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으며 잘못 인도될 위험성이 있음을 어떻게 알려 주십니까?
◼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을 어떻게 끝맺으시며,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