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Mary) [히브리어 미리암에서 유래. “반역적인”을 의미하는 듯함]
성서에는 여섯 명의 마리아가 언급되어 있다.
1.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는 헬리의 딸이었는데, 누가가 제시한 족보에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헬리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매클린턱과 스트롱 공편 「백과사전」(Cyclopædia, 1881년, 3권, 774면)은 이렇게 알려 준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족보를 기록할 때 오로지 남자들만 고려했으며, 외할아버지의 피가 딸을 통해 외손자에게 전달된 경우에는 딸의 이름을 빼고 딸의 남편을 그 외할아버지의 아들로 간주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민 26:33; 27:4-7).” 역사가 누가가 요셉이 “헬리의 아들”이었다고 한 것은 틀림없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누 3:23.
마리아는 유다 지파에 속했으며 다윗의 자손이었다. 따라서 그의 아들 예수가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었다. (로 1:3) 예수는 다윗의 자손인 양부 요셉을 통하여 다윗의 왕좌에 대한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머니를 통해서 다윗의 “자손”, “씨”, “뿌리”로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에 대한 혈통상의 상속권을 가지고 있었다.—마 1:1-16; 누 1:32; 행 13:22, 23; 디둘 2:8; 계 5:5; 22:16.
전승이 정확하다면, 헬리의 아내 즉 마리아의 어머니는 안나였고, 안나의 자매에게는 엘리사벳이라는 딸이 있었다. 이 엘리사벳은 침례자 요한의 어머니이다. 이 전승대로라면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사촌 간이다. 마리아가 레위 지파에 속한 “아론의 자손인” 엘리사벳의 친족이라는 점은 성경 자체에도 명시되어 있다. (누 1:5, 36) 어떤 사람들은 마리아의 자매가 세베대의 아내인 살로메였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의 사도들 가운데 계수되었다.—마 27:55, 56; 막 15:40; 16:1; 요 19:25.
천사의 방문을 받다 기원전 2년 초엽에,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나사렛 성읍에 있는 처녀 마리아에게 보내셨다. 그 천사는 “크게 은혜받은 자여, 안녕하시오? 여호와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오”라는 매우 이례적인 인사를 하였다. 마리아가 수태하여 예수라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그 천사가 말하자, 그때 요셉과 단지 약혼한 상태에 있던 마리아는 “나는 남자와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천사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성령이 그대에게 내리고, 가장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덮을 것이오. 그 때문에, 태어나는 이는 거룩한 자,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오.” 마리아는 그 전망 때문에 흥분하면서도 겸허와 겸손을 합당하게 나타내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여호와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선언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누 1:26-38.
이 중대한 경험에 대한 마리아의 믿음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 그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의 친족 엘리사벳이 노년이지만 여호와의 기적의 능력으로 불임 상태에서 벗어나 이미 임신 육 개월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했는데,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 들어갈 때 엘리사벳의 태 속에 있던 아기가 기뻐서 뛰었다. 그러자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여자들 가운데 그대는 축복받은 자이며 그대의 태의 열매도 축복받았습니다!”라고 축하 인사를 하였다. (누 1:36, 37, 39-45) 그러자 마리아는 영감을 받아 여호와의 선함 때문에 그분을 드높이는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누 1:46-55.
마리아는 유다 구릉성 산지에 있는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함께 석 달쯤 머문 뒤에,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누 1:56)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것을 (아마 마리아가 그 일을 그에게 밝혀서) 알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폭로하여 마리아가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하게 하는 대신 비밀리에 이혼하려고 하였다. (약혼한 사람들은 결혼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파혼을 하기 위해서는 이혼을 해야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기는 성령에 의한 것임을 요셉에게 밝혀 주었다. 그러자 요셉은 하느님의 지시에 순응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와 관계를 갖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마 1:18-25.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낳다 이 극적 사건이 계속 진행되어 감에 따라, 모두가 자기 본적지에서 반드시 등록하라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포고령이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적시에 내려졌음이 증명되었다. 예수의 출생지에 관한 예언이 성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 5:2) 그래서 요셉은 ‘아이를 가져 몸이 무거운’ 마리아를 데리고 북쪽 나사렛에 있는 자기들의 집에서 남쪽 베들레헴까지 110킬로미터가 넘는 힘든 여행길에 올랐다. 숙박하는 곳에는 그들이 있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매우 초라한 환경에서 출산을 했고 그 갓난아기는 구유에 뉘어졌다. 이 일이 일어난 때는 아마 기원전 2년 10월 1일경이었을 것이다.—누 2:1-7. 2권, 537면 사진·삽화; 예수 그리스도 참조.
목자들은 “오늘 다윗의 도시에 구원자 곧 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태어나셨”다는 천사의 말을 들은 뒤에,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곳에서 표징을 발견했는데, 마리아의 아기가 “천으로 된 띠에 감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이 그 표징이었다. 그들은 그 행복한 가족에게 천사들의 대합창단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선의를 입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라고 노래했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마음 속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이 모든 말을 간직하였다.”—누 2:8-20.
팔 일째 되는 날, 마리아는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하여 아들이 할례를 받게 하였다. 40일째 되는 날 후에, 마리아와 그의 남편은 아이를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데리고 가서 규정된 제물을 바쳤다. 율법에 의하면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희생물로 바칠 것이 요구되었다. 그 가족이 양을 바칠 형편이 못 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게 되어 있었다. 마리아가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친 것을 보면, 요셉이 가난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누 2:21-24; 레 12:1-4, 6, 8) 의로운 사람인 시므온은 그 아이를 보고, 자기가 노년에 죽기 전에 구원자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데 대해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그는 마리아에게 “그렇습니다. 긴 칼이 당신 자신의 영혼을 꿰뚫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마리아가 문자적인 칼에 찔릴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들이 예언대로 고통의 기둥에서 죽는 일과 관련하여 마리아가 겪을 고통과 고난을 가리킨 것이다.—누 2:25-35.
나사렛으로 돌아가다 얼마 후에, 한 천사가 요셉에게 그 어린아이를 죽이려는 헤롯 대왕의 음모에 대해 경고해 주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피하라고 지시하였다. (마 2:1-18) 헤롯이 죽은 뒤에 그 가족은 돌아가서 나사렛에 정착하였다. 그 뒤 여러 해 동안, 그곳에서 마리아는 다른 자녀들—적어도 아들 넷과 딸들—을 낳았다.—마 2:19-23; 13:55, 56; 막 6:3.
여자들은 참석하도록 율법에 요구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마리아는 해마다 요셉과 함께 연례 유월절 기념을 위해 예루살렘까지 약 150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여행길에 오르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출 23:17; 34:23) 그러한 여행 가운데 한 경우로서 기원 12년경에, 그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하룻길을 간 뒤에 소년 예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부모는 즉시 그를 찾으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사흘 뒤에 그들은 예수가 성전에서 교사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마리아는 이렇게 외쳤다. “얘야, 왜 우리를 이렇게 대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정신적 고통 중에 너를 찾고 있었단다.”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왜 저를 찾아다니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을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논리적으로 볼 때 하느님의 아들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는 확실히, 그가 성경 교훈을 받을 수 있는 성전이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 속에 주의 깊이 간직하였다.”—누 2:41-51.
이 12세 소년 예수는 나이에 비해 뛰어난 학식을 나타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의 이해력과 대답에 한결같이 크게 놀라고 있었다.” (누 2:47) 성경에 대한 예수의 지식과 이해는 부모가 베푼 훌륭한 훈련을 반영하였다. 마리아와 요셉은 틀림없이 아이 예수를 매우 부지런히 가르치고 훈련하면서, “여호와의 징계와 정신적 규제”로 양육하고 안식일마다 회당에 참석하는 습관에 대한 인식을 길러 주었을 것이다.—누 4:16; 엡 6:4.
예수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다 예수는 침례를 받은 뒤에 마리아에게 특별한 편애를 보이지 않았으며,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단지 “여자”라고 불렀다. (요 2:4; 19:26) 이것은 오늘날 한국어의 용법에서 이해될 수 있는 바와 같은 불경스러운 표현이 결코 아니었다. 예를 들어, 독일어에는 이러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부인, 여사, 숙녀를 가리킨다. 마리아는 육적으로는 예수의 어머니였지만, 예수는 침례 시에 성령으로 태어난 이후 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으므로, 그분의 “어머니”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었다. (갈 4:26)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강조하셨는데, 한번은 그분이 가르치고 계실 때 마리아와 그의 다른 자녀들이 그분에게 자기들이 있는 밖으로 나오라고 하여 그분의 가르침을 중단시켰을 때 그 사실을 강조하셨다. 예수께서는 사실 자신의 영적 가족 성원들이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가까운 친족이며 영적인 문제들이 육적인 관심사보다 앞자리에 온다는 것을 알리셨다.—마 12:46-50; 막 3:31-35; 누 8:19-21.
갈릴리 가나에서 있었던 한 결혼식에서 포도주가 떨어져서 마리아가 예수에게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말했을 때, 그분은 “여자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나의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 2:1-4) 예수께서는 이때 히브리어 성경에 여러 번 나오며(수 22:24; 판 11:12; 삼둘 16:10; 19:22; 왕첫 17:18; 왕둘 3:13; 대둘 35:21; 호 14:8) 그리스어 성경에 여섯 번 나오는(마 8:29; 막 1:24; 5:7; 누 4:34; 8:28; 요 2:4), 고대에 사용되던 질문의 한 형식을 사용하신 것이다. 직역하면 그 질문은 “무엇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가 되며, 그 의미는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까?” 또는 “나와 당신이 무엇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까?” 또는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이다. 사용된 모든 경우에, 그 질문은 제안되거나 발의된 일 혹은 미심쩍은 일에 대한 이의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런 형태로 사랑을 가지고 부드럽게 반박하시면서, 자신에게 지시할 권리는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최고 권위자께 있음을 어머니에게 지적하신 것이다. (고첫 11:3) 예민하고 겸손한 성품을 지닌 마리아는 속히 요점을 파악하고 시정을 받아들였다. 마리아는 물러나며 예수로 하여금 솔선하게 하면서, 시중드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당신들에게 말하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 말하였다.—요 2:5.
예수께서 기둥에 못 박히셨을 때, 마리아는 고통의 기둥 옆에 서 있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는 단지 사랑하는 아들 정도가 아니라 메시아였으며, 마리아의 ‘주’와 ‘구원자’, 하느님의 아들이셨다. 마리아는 이 무렵 과부였던 것 같다. 그래서 요셉의 집안의 맏아들이셨던 예수께서는 사촌이었을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그의 집으로 모시고 가서 친어머니처럼 돌보아 줄 것을 요청함으로 자신의 책임을 이행하셨다. (요 19:26, 27) 예수께서 자신의 이부형제들 가운데 한 명에게 마리아를 맡기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그 장소에 있었다는 말이 없다. 더욱이 그들은 아직 믿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예수께서는 영적인 관계를 육적인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이다.—요 7:5; 마 12:46-50.
충실한 제자 성서에서 마리아를 마지막으로 언급한 내용을 보면, 마리아가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뒤에도 다른 충실한 사람들과 계속 밀접히 연합한, 믿음이 있고 헌신적인 여자임을 알 수 있다. 열한 사도와 마리아와 그 밖의 사람들은 한 위층 방에 모였으며, “그들은 모두 일심으로 꾸준히 기도하고 있었”다.—행 1:13, 14.
2. 마르다의 자매이며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성전 산에서 2로마마일(2.8킬로미터)쯤 떨어져 있고 올리브 산 동쪽 경사면에 있던 베다니에 있는 이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셨다. (요 11:18) 예수께서 봉사의 직무 셋째 해에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대접을 잘하려는 마음에서 예수를 육적으로 편안하게 해 드리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 한편 마리아는 다른 종류의 후대를 나타냈다. 그는 “주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자기의 자매가 도와주지 않아서 마르다가 불평했을 때,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이렇게 칭찬하셨다. “마리아 그는 좋은 몫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누 10:38-42.
나사로가 부활되는 것을 보다 앞에 언급한 대로 그 집을 방문한 일이 있은 지 몇 달 뒤에, 나사로가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께 기별을 보냈는데, 그분은 요르단 강 동쪽 페레아 지방 어딘가에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신속히 그분을 맞이하러 나갔지만,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다가 마을 변두리에서 돌아와 슬픔에 잠겨 있는 자기 자매에게 귓속말로 “선생님이 이르러 부르신다”고 말했을 때에야 비로소 마리아는 그분을 맞이하려고 서둘러 나갔다. 마리아는 그분의 발치에 엎드려 흐느끼며 “주여, 만일 당신이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가 한 말은 마르다가 먼저 예수를 맞이하러 나가서 한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마리아와 그와 함께 있던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주께서는 마음이 아파 신음하며 우셨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나사로를 일으키시는 엄청난 기적을 행하신 뒤에, “[위로하려고] 마리아에게 왔[던] ··· 유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믿음을 두었다.”—요 11:1-45.
예수께 기름을 붓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마지막 유월절 닷새 전에, 제자들과 함께 다시 베다니에 손님으로 와 계셨는데, 이번에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셨다. 그곳에 마리아와 그의 가족들도 와 있었다. 마르다는 저녁 식사 접대를 하고 있었고, 마리아는 이번에도 하느님의 아들에게 주의를 돌렸다. 예수께서 기대앉아 계실 때, 마리아는 “매우 값비싼 순 나드 향유 일 파운드(1년 치 삯 정도의 가치)를 가져다가” 그분의 머리와 발에 부었다. 그때는 전반적으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예수에 대한 사랑과 배려에서 우러나온 이 행동은 사실 매우 임박한 그분의 죽음과 장사를 준비하는 것을 예시하였다. 이전처럼 마리아가 나타낸 사랑은 다른 사람의 비난을 받았지만, 이전처럼 예수께서는 그의 사랑과 정성을 변호해 주시며 높이 평가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온 세상 어디든지 이 좋은 소식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알려져 그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마 26:6-13; 막 14:3-9; 요 12:1-8.
마태와 마가와 요한이 보고한 위의 사건 즉 마리아가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일을, 누가 7:36-50에 언급되어 있는 기름부은 일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 두 사건은 어느 정도 비슷한 점들이 있지만 차이점들도 있다. 누가가 보고한 더 과거의 사건은 갈릴리 북부 지역에서 있었고, 나중 사건은 남쪽 유대의 베다니에서 있었다. 더 과거의 사건은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있었고, 나중 사건은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있었다. 더 과거에 기름을 부은 사람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고 “죄인”으로 널리 알려진 여자로서 아마 매춘부였을 것이며, 후에 기름을 부은 사람은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였다. 그 두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도 일 년 이상 된다.
어떤 비평가들은 요한의 기록이, 그 향유를 예수의 머리가 아니라 발에 부었다고 말함으로써 마태 및 마가의 기록과 상호 모순된다고 비평한다. (마 26:7; 막 14:3; 요 12:3) 마태 26:7에 관해 해설하면서, 앨버트 반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상호 모순점이 없다. 그는 그분의 머리와 발에 모두 기름을 부었을 것이다. 마태와 마가는 머리에 부은 행동을 기록했지만, 요한은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빼놓은 사건들을 기록하려는 의도로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그 기름을 ‘구원자’의 발에도 부었다고 기술한 것이다. 기름을 머리에 붓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것을 발에 붓는 것은 두드러진 겸손과 ‘구원자’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는 행동이었으므로, 특별히 기록될 만하였다.”—「반스의 신약 주해」(Barnes’ Notes on the New Testament), 1974년.
3. 막달라 마리아. 구별하기 위한 막달라라는 이름은, 갈릴리 바다의 서쪽 해안에 있고 가버나움과 티베리아스 사이의 중간쯤에 있는 막달라(마가단 참조)라는 성읍의 이름에서 나왔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성읍을 방문하신 적이 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분은 그 주변 지역에서 매우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그 성읍이 마리아의 고향 또는 거주지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누가가 그를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누가가 특별하거나 독특한 어떤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누 8:2.
예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악귀를 쫓아내 주셨으므로, 그가 그분을 메시아로 믿고 그러한 믿음을 두드러진 정성과 봉사의 활동으로 뒷받침할 이유는 충분하였다. 그는 예수의 전파 활동 기간 중 둘째 해에 관한 기록에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그때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도시에서 도시로,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시면서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선포하셨다.” 헤롯의 집 관리자의 아내인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의 여자들과 함께,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소유로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의 필요를 위해 계속 섬기는 일을 하였다.—누 8:1-3.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두드러지게 언급된 것은 예수의 죽음 및 부활과 관련해서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살육을 당하러 끌려가실 때, “예수를 섬기려고 갈릴리에서부터 그분을 [따라와서]” 예수께서 고통의 기둥에 매달려 계실 때 “멀리서 보고 있던” 여자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있던 여자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그리고 또 “다른 마리아”(4번)였다.—마 27:55, 56, 61; 막 15:40; 요 19:25.
예수께서 장사되신 후, 막달라 마리아와 그 밖의 여자들은 일몰로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향료와 향유를 준비하러 갔다. 그리고 안식일이 지나고 나서 주간 첫째 날 동틀 무렵에, 마리아와 그 밖의 여자들은 향유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마 28:1; 막 15:47; 16:1, 2; 누 23:55, 56; 24:1) 마리아는 무덤이 열려 있고 아마도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서 이 깜짝 놀랄 소식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전했고, 그 두 사람은 무덤으로 달려갔다. (요 20:1-4) 마리아가 다시 무덤에 돌아왔을 무렵에는, 베드로와 요한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이때 마리아는 무덤 안을 들여다보다가 흰옷을 입은 두 천사를 보고 몹시 놀랐다. 그다음에 마리아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께서 서 계셨다. 그분이 동산지기라고 생각한 마리아는 시체를 모셔 가려고 시체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분이 “마리아!” 하고 대답하시자, 마리아는 그분을 즉시 알아보고 충동적으로 그분을 껴안으며 “랍보니!” 하고 외쳤다. 하지만 인간적인 애정을 표현할 시간이 없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시간은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에게 급히 가서 그분의 부활에 관해 알리고, 예수께서 그분의 말씀대로 “내 아버지 곧 여러분의 아버지께로, 내 하느님 곧 여러분의 하느님께로” 올라가신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였다.—요 20:11-18.
4. “다른 마리아”. 그는 글로바(알패오)(글로바 참조)의 아내이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였다. (마 27:56, 61; 요 19:25) 성경적 뒷받침은 없지만, 전승에서는 글로바와 예수의 양부 요셉이 형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마리아는 예수의 숙모가 되고 그의 아들들은 예수의 사촌들이 된다.
마리아는 “예수를 섬기려고 갈릴리에서부터 그분을 따르던” 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그분이 못 박히신 것을 목격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마 27:55; 막 15:40, 41) 이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그 고통스러운 니산월 14일 오후에 무덤 밖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 27:61) 셋째 날에, 그 두 사람과 그 밖의 사람들은 예수의 시체에 바를 목적으로 향료와 향유를 가지고 무덤에 왔다가 무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천사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고 설명한 뒤 ‘가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시오’ 하고 명령하였다. (마 28:1-7; 막 16:1-7; 누 24:1-10) 그들이 가는 도중에, 부활되신 예수께서 이 마리아와 그 밖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마 28:8, 9.
5.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바나바는 이 마리아의 조카였다. (행 12:12; 골 4:10) 마리아의 집은 예루살렘에 있는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의 아들 마가는 사도 베드로와 친밀하게 교제했는데, 이 사도는 마가의 영적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베드로는 그를 “내 아들 마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베첫 5:13) 베드로는 헤롯의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곧장 마리아의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그 집은 틀림없이 상당히 컸을 것이며, 하녀가 있었던 것을 보면 마리아는 부유한 여자였음을 알 수 있다. (행 12:12-17) 그 집이 그의 남편의 집이 아니라 그의 집이라고 했으므로, 그는 아마 과부였을 것이다.—행 12:12.
6. 로마의 마리아.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마리아에게 인사를 전하며, 마리아가 로마 회중을 위해 “많이 수고”하였다고 칭찬하였다.—로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