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정의: 숭배의 한 가지 형태. 종교에는 종교적 태도, 신앙, 관행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제도가 포함된다. 이러한 것들은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조직이 옹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종교에는 흔히 하느님이나 다른 수많은 신에 대한 신앙이 관련되어 있다. 혹은 인간, 물체, 욕망, 권력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많은 종교들은 인간이 자연을 연구한 것에 근거해 있다. 또한 계시받았다고 하는 종교도 있다. 종교에는 참 종교와 거짓 종교가 있다.
종교가 이토록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의 한 조사에서는, 전 세계에 10개의 주요 종교와 약 1만 개의 분파가 있다고 추정하였다. 이 가운데 약 6000개는 아프리카에, 1200개는 미국에 있으며 나머지 수천 개는 여러 나라에 산재해 있다.
새로운 종교 단체가 형성되는 데는 많은 요인이 관련된다. 일부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가 종교적 진리를 제시하는 서로 다른 길을 대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교리와 의식을 성서와 비교하면,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대신 인간의 추종자가 됨으로 다양한 종교가 생겨났음을 알게 된다. 그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가르침은 성서와 다르며, 고대 바빌론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큰 바빌론” 제하 400, 401면 참조)
그러한 종교적 혼란의 선동자는 누구인가? 성서는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인 사탄 마귀라고 밝혀 준다. (고린도 둘째 4:4) 성서는 “이방 사람들이 희생으로 바치는 것들은 악귀들에게 희생으로 바치는 것이지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고린도 첫째 10:20) 그러므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참 하느님을 진실로 숭배하고 있으며 우리의 숭배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지는가?
재판관 10:6, 7: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눈에 악한 일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도렛 형상들과 시리아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그분을 섬기지 않았다. 이에 여호와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타올[랐다].” (사람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참 하느님이 아닌 어느 물체나 사람을 숭배한다면, 그의 숭배 형태는 여호와께 받아들여지지 않음이 명백하다.)
마가 7:6, 7: “그분[예수]이 [유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사야가 당신들 위선자들에 대하여 적절히 예언하였으니, 이렇게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이 사람의 명령을 교리로 가르치니, 나를 계속 숭배하는 것이 헛된 일이다.”’” (종교 단체가 숭배한다고 공언하는 대상에 관계없이, 만일 그들이 영감받은 하느님의 말씀 대신에 사람의 교리를 신봉하고 있다면 그들의 숭배는 헛된 것이다.)
로마 10:2, 3: “나는 그들이 하느님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자신의 의를 굳게 세우려고 하였기 때문에, 하느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성서를 올바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성서에 들어있는 내용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없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열심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분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숭배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종교에는 선한 것이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대부분의 종교는 거짓말이나 도둑질 등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우리는 독이 들어있는 물을, 누군가가 그 내용물의 대부분은 물이라고 보증한다고 해서, 기분 좋게 마실 것인가?
고린도 둘째 11:14, 15: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탄 자신도 계속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봉사자들 역시 계속 의의 봉사자로 가장한다고 해도 큰일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사탄에게 기원을 두고 있는 것 모두가 항상 무시무시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를 속이는 그의 주된 방법 중의 하나는 온갖 종류의 거짓 종교이며, 사탄은 그러한 종교들 중 얼마에 의로워 보이는 모습을 불어 넣는다.)
디모데 둘째 3:2, 5: “사람들은 ··· 경건한 정성의 형태는 있으나 그 능력에 대하여는 거짓됨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떠나십시오.” (우리의 동료 숭배자들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겉으로 어떻게 공표하는가에 관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생활에 진지하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성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을 것을 촉구한다.)
부모의 종교를 떠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부모가 가르친 것이 참으로 성서에 근거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고착해야 한다. 만일 부모의 종교 행위와 신앙이 하느님의 말씀과 조화되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해도 우리는 부모를 마땅히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의 어떤 습관이 건강에 해롭고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음을 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부모를 본받고 우리의 자녀들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할 것인가? 아니면 공손하게 자신이 배운 바를 부모에게 알려 줄 것인가? 이처럼 성서 진리에 대한 지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가능하다면 우리는 가족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우리는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는가? 하느님의 아들에게 순종하기를 참으로 원하는가?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 숭배를 택하기 위하여 부모의 종교를 떠나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사랑하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보다도 부모에게 우리의 정성을 더 쏟는 것은 확실히 적합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큰 애정을 가진 사람은 내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나보다 아들이나 딸에게 더 큰 애정을 가진 사람도 내게 합당하지 않습니다.”—마태 10:37.
여호수아 24:14: “이제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흠이 없고 진실하게 그분을 섬기고, 여러분의 조상들이 ‘강’ 건너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없애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십시오.” (그것은 그들 조상의 종교로부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받아들여질 만한 방법으로 여호와를 섬기기 위하여, 조상의 종교에서 사용된 모든 형상을 제거해야 하였으며 그러한 형상에 대한 어떠한 욕망도 마음에서 씻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베드로 첫째 1:18, 19: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분이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받은 열매 없는 행동 방식에서 구출된 것은 부패할 것, 곧 은이나 금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조상의 전통으로부터 돌아섰다. 그러한 전통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결코 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감사함 때문에, 하느님을 존중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생활이 열매가 없고, 진정한 의미가 없는 것이 되게 만든 그 어떤 것도 제거하기를 열망하게 되었다. 우리도 그와 동일한 태도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연합 신앙에 관한 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의로운 체 하면서 하느님께 불경을 나타낸 종교 지도자들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여기셨는가?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하느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시라면 여러분은 나를 사랑할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와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결코 자의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 마귀에게서 났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의 욕망을 행하고자 합니다. 그는 시작할 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안에 굳게 서지 않았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짓을 말할 때에 자기 자신의 성향에 따라 말합니다. 그가 거짓말쟁이이고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내가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를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 누가 내게 죄가 있음을 증명하겠습니까?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은 나를 믿지 않습니까? ··· 여러분은 잘 듣지 않습니다. 곧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요한 8:42-47.
하느님의 종들이 그분께서 정죄시하시는 일을 행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용납하는 사람들과 종교적 형제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이 하느님과 그분의 의로운 표준에 충성을 나타내는 것인가? “형제라고 하는 사람이 음행하는 자이거나 탐욕스러운 자이거나 우상 숭배자이거나 욕하는 자이거나 술 취하는 자이거나 강탈하는 자이거든 더는 사귀지 말고,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 음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이나 간음하는 자들이나 부자연스러운 목적을 위하여 있는 남자들이나 남자와 동침하는 남자들이나 도둑들이나 탐욕스러운 자들이나 술 취하는 자들이나 욕하는 자들이나 강탈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5:11; 6:9, 10) “누구든지 세상의 벗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4:4) “오 너희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들아, 악한 것을 미워하여라. 그분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자들의 영혼들을 지켜 주[신다].—시 97:10.
고린도 둘째 6:14-17: “믿지 않는 사람과 맞지 않는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의와 불법에 무슨 사귐이 있겠습니까? 혹은 빛이 어둠과 어떻게 함께하겠습니까? 더욱이, 그리스도와 벨리알 사이에 무슨 조화가 있겠습니까? 혹은 충실한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몫을 나누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이 우상들과 무슨 일치점이 있겠습니까? ···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서 나와 따로 있고, 더는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겠다.”’”
계시 18:4, 5: “그리고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나는 다른 음성이 말하였다. ‘내 백성아, 그 여자에게서 나오너라. 그 여자의 죄에 함께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여자가 받을 재앙을 함께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리 하여라. 그 여자의 죄는 쌓이고 쌓여서 하늘에까지 닿았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여자의 부정한 행위를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점은 “큰 바빌론” 제하 참조.)
조직된 종교에 속할 필요가 있는가?
대부분의 종교 조직들은 나쁜 열매를 산출하여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체를 조직하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들은 진정한 영적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가르침과 상당 부분 의식에 근거한 숭배 방식을 조장하였다. 그러한 종교들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람들의 생활을 통제하는 데 오용되어 왔다. 그들은 영적 가치보다는 돈을 거두는 일과 숭배의 장소를 치장하는 데 지나치게 관심을 두었다. 그러한 종교들의 성원들은 흔히 위선적이다. 분명히 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러한 조직에 속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참 종교는 이 모든 점들과는 기분 좋은 대조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요구 조건을 달성하려면, 참 종교도 조직되어야 한다.
히브리 10:24, 25: “서로 남을 고려하여 사랑과 훌륭한 일을 고무하며, 일부 사람들의 습관처럼 함께 모이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도리어 서로 격려하며 그 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더 그렇게 합시다.” (이 성경적 명령을 실천하려면 정기적으로 참석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집회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마련은 우리가 자신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도록 격려한다.)
고린도 첫째 1:10: “그런데 형제들이여,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일치되게 말하고,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게 하여, 같은 정신과 같은 방향의 생각으로 일치 연합하십시오.” (만일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공급되는 동일한 영적 급식 프로그램으로부터 유익을 얻고 그러한 지침을 마련해 준 대행자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연합은 결코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요한 17:20, 21 참조.)
베드로 첫째 2:17: “연합된 형제들 전체를 사랑하십시오.” (여기에는 특정한 개인 집에서 숭배를 드리기 위하여 함께 모일 수 있는 사람들만이 포함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갈라디아 2:8, 9과 고린도 첫째 16:19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국제적인 형제 관계이다.)
마태 24:14: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끝이 올 것입니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들을 기회를 갖게 하려면, 전파하는 일은 적절한 감독 아래 질서 있는 방법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하느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들의 노력을 한데 모았다.)
또한 “조직” 제하 참조.
동료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가?
두말할 나위 없이 그러한 사랑은 중요하다. (로마 13:8-10)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는 우리의 이웃을 단순히 친절하게 대하는 것 이상이 관련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참 제자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 즉 동료 신자들을 위한 사랑으로 뚜렷이 식별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13:35) 그러한 사랑의 중요성이 성서에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갈라디아 6:10; 베드로 첫째 4:8; 요한 첫째 3:14, 16, 17)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임을 예수께서는 알려 주셨으며, 그러한 사랑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나타난다. (마태 22:35-38; 요한 첫째 5:3) 그러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으며 숭배를 위하여 하느님의 동료 종들과 함께 모일 필요가 있다.
하느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가?
확실히 중요하다. 그저 형식적으로 종교 의식에 참석하는 것이 하느님과 관계를 갖는 일을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1세기에도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려 주셨다. (요한 8:41-44) 사도 바울은, 자신의 믿음에 관하여 분명히 열심이었고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였지만 하느님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한 얼마의 사람들에 관하여 기록하였다.—로마 10:2-4.
만일 우리가 현재 하느님의 명령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면 그분과 좋은 개인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그러한 명령들 중의 하나는 동료 신자들과 정기적으로 모이는 일이다.—히브리 10:24, 25.
개인적으로 성서를 읽는 것으로 충분한가?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개인적으로 읽음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만일 그들의 동기가 하느님과 그분의 목적에 관한 진리를 배우기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은 크게 칭찬받아 마땅하다. (사도 17:11)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도움 없이 성서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가? 성서는 탁월한 지위에 있었지만 성서 예언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의 필요성을 겸손히 인정한 사람에 관하여 알려 준다. 그러한 도움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한 성원에 의해 베풀어졌다.—사도 8:26-38; 사도 6:1-6; 8:5-17에 있는 빌립에 관한 다른 기록과 비교.
물론, 성서를 읽지만 생활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별로 가치가 없다. 성서를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정기적인 회중 집회에서 하느님의 종들과 틀림없이 연합할 것이다. (히브리 10:24, 25) 또한 그는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그들과 함께 참여할 것이다.—고린도 첫째 9:16; 마가 13:10; 마태 28:19, 20.
어느 종교가 옳은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그 종교의 가르침은 무엇에 근거해 있는가? 하느님인가, 아니면 대부분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디모데 둘째 3:16; 마가 7:7) 예를 들어 이렇게 질문해 보자. 성서의 어느 부분에서 하느님이 삼위일체라고 가르치는가? 성서 어디에서 인간 영혼이 불멸이라고 가르치는가?
(2) 하느님의 이름을 알게 하는지 고려하라.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셨다. “저는 당신이 세상에서 택하여 저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요한 17:6) 그분은 이렇게 선포하셨다.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숭배해야 하고, 오직 그분에게만 신성한 봉사를 드려야 한다.” (마태 4:10) 당신의 종교는 ‘여호와를 숭배해야 한다’고 가르치는가? 당신은 그 이름으로 식별되는 인격체—그분의 목적, 활동, 성품—를 알게 되어 확신을 가지고 그분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있음을 증명하는가? 여기에는 예수께서 희생하신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인식과 현재 하늘의 왕이신 그분의 지위를 인식하는 것이 관련되어 있다. (요한 3:36; 시 2:6-8) 그러한 인식은 예수께 순종함으로 나타난다. 즉 그분이 제자들에게 임명하신 일에 직접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다. 참 종교에는 행함이 수반되는 믿음이 있다.—야고보 2:26.
(4) 그 종교는 대체로 의식이나 형식에 치우쳐 있는가, 아니면 생활의 길인가? 하느님께서는 단순히 형식주의에 불과한 종교를 단호히 배척하신다. (이사야 1:15-17) 참 종교는 유행의 물결에 슬그머니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도덕 표준과 깨끗한 말을 옹호한다. (고린도 첫째 5:9-13; 에베소 5:3-5) 그 성원들은 생활 가운데서 하느님의 영의 열매를 반영한다. (갈라디아 5:22, 23) 그러므로 참 숭배에 고착하는 사람들은 집회 장소에서만 아니라 가정 생활, 세속 직장, 학교, 오락 등 자신의 생활에서 성서의 표준을 적용하기 위하여 성실히 힘쓰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식별할 수 있다.
(5) 그 성원들은 참으로 서로 사랑하는가?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가운데 사랑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이것으로 여러분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 13:35) 그러한 사랑은 인종적, 사회적, 국가적 경계를 초월하며, 진정한 형제 관계로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 이렇게 강한 사랑이야말로 그들을 참으로 다른 상태로 구별되게 한다. 나라들이 전쟁을 할 때, 무기를 들어 다른 나라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죽이기를 거부할 만큼 서로에 대한 강한 사랑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하였다.
(6) 참으로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가? 예수께서는 그의 참 제자들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15:19) 하느님께서 승인하시는 방법으로 그분을 숭배하기 위하여는 우리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점이 없는 상태”로 지키는 것이 요구된다. (야고보 1:27) 정치와 관련되어 있는 교직자들이나 다른 성원들, 혹은 물질적이며 육적인 욕망에 따라 생활 대부분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한 첫째 2:15-17.
(7) 그 성원들은 하느님의 왕국에 관하여 활동적으로 증거하는 사람들인가? 예수께서는 이렇게 예언하셨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14) 어느 종교가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 통치권을 의지하도록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왕국을 인류의 희망으로 실제로 선포하고 있는가? 당신의 종교는 당신이 이 활동에 참여하도록 그리고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하라고 가르치신 호별 방문을 통하여 그렇게 하도록 당신을 준비시켜 주었는가?—마태 10:7, 11-13; 사도 5:42; 20:20.
여호와의 증인은 자신들의 종교만이 유일한 참 종교라고 믿는가?
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믿음” 제하 참조.
누가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종교에 관심이 없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그러시군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렇게 생각해 오셨는지요?’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제가 알게 된 인상적인 점들 중 한 가지는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는 주요 교리의 거의 대부분이 성서에 들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 제하 256, 257면에 있는 자료를 사용할 수 있는데, 특히 왕국을 강조하여 그렇게 한다. 대조를 위하여 252-253면에 나와 있는, 여호와의 증인이 믿는 점들을 지적한다.)
또한 16, 17면 참조.
‘종교에는 너무나 위선적인 일들이 많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의 내용과는 전혀 딴판으로 생활하니까요. 그런데 성서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시 19:7-10)’
‘나는 내 생활로 만족한다. 나는 이웃들을 올바로 대한다. 나의 종교 생활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자기 생활에 만족하신다니 분명히 즐거운 인생을 사시겠군요? ··· 여기 계시록 21:4에 묘사되어 있는 상태 아래에서 사시게 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요한 17:3에 유의해 보시지요.’
또한 341-342면 참조.
‘나는 조직된 종교에 관심이 없다. 하느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흥미있는 점이군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오셨는지요? ··· 과거에 어떤 종교를 가진 적이 있으십니까? ··· (그런 다음 340-342면에 나오는 내용을 사용할 수 있다.)’
‘나는 나의 교회의 모든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종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차라리 내 자신의 교회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승인을 얻는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1)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을 여기 계시록 18:4, 5에서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만일 그러한 조직들을 지지한다면 우리는 그 죄에 참여하는 것임을 성서는 알려 줍니다. (또한 “큰 바빌론” 제하 참조.)’ (2) (또한 342-344면에 있는 내용을 사용할 수 있음.) (3) ‘하느님께서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시며, 연합된 숭배를 위하여 그들을 함께 모으고 계십니다. (요한 4:23, 24)’
‘종교는 다 좋다. 당신은 당신의 종교를 믿고 나는 나의 종교를 믿으면 된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확실히 폭넓은 사고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말씀에 있는 지침을 필요로 한다는 점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여기 마태 7:13, 14에서 성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매우 가치 있는 지침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낭독한다.) ··· 이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또한 337면 참조.
‘예수를 믿는 한, 어느 교회에 나가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말씀하신 바로 볼 때, 그분이 가르치신 것을 모두 받아들이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관찰했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대로 생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1) ‘마태 7:21-23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에 유의해 봅시다.’ (2)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애쓰며 그 뜻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장래가 있습니다. (시 37:10, 11; 계시 21:4)’
‘참 종교는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분명히 거의 모든 종교에는 진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성서에서는 참 믿음이 몇 개나 있다고 말합니까? 여기 에베소 4:4, 5에 기록된 내용에 유의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1) ‘이 점은 다른 성경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마태 7:13, 14, 21; 요한 10:16; 17:20, 21)’ (2) ‘그러므로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문제는 참 종교를 식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종교를 어떻게 알아 낼 수 있습니까? (342-344면의 내용을 사용할 수 있다.)’ (3) (또한 “여호와의 증인” 제하 252, 253면 참조.)
‘나는 그저 집에서 성서를 읽고 있으며 이해를 얻기 위해 하느님께 기도한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성서를 통독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계속 읽으시게 되면, 마태 28:19, 20에서 매우 흥미있는 점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 이 성구는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무엇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우리를 돕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점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이와 일치하게, 여호와의 증인은 사람들을 집으로 방문하여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씩 무료로 성서를 토의해 드립니다. 성서 토의를 어떻게 하는지 잠깐 보여 드려도 될까요?’
또한 342면 참조.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그러한 견해는 오늘날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성서의 소식에 진정한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기꺼이 다른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방문한 이유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라고 지시하신 바로 그 일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 (마태 24:14; 28:19, 20; 1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