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새 계약은 당신에게도 유익하다
1. 예레미야는 어떤 이중적인 임무를 수행했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는 “뽑고 무너뜨리고 멸하고 허물어뜨리는” 일을 해야 했지만, “짓고 심는” 일도 해야 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교만한 유다 사람들의 악을 폭로하고 그들과 바빌론에 닥칠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함으로 그 임무의 한 부면을 완수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예언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소식도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짓기로 하신 것을 짓고 심기로 하신 것을 심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일례로, 예레미야는 유다 사람들이 고토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함으로 임무의 다른 한 부면을 수행했습니다.—예레미야 1:10; 30:17, 18.
2.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심판을 집행하신 이유는 무엇이며, 어느 정도까지 그렇게 하셨습니까?
2 예레미야가 앞으로 있을 회복에 대해 선포했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백성이 무슨 잘못을 하든 다 받아 주시거나 그분의 공의의 표준을 타협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멋대로인 유다 사람들에게 심판을 집행하실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6:17, 18 낭독) 예레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에는 “공의를 행하는 자”나 “충실함을 구하는 자”가 거의 없었으며, 여호와의 참을성은 한계에 달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한탄하기에도 지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5:1; 15:6, 7) 그 유다 사람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절한 그 처음 사람들 즉 자기 조상의 잘못으로 돌아갔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거짓 신들과 간음을 범하여 하느님의 분노를 샀습니다. (예레미야 11:10; 34:18) 여호와께서는 “적절한 정도로” 자신의 백성을 시정하고 징벌하실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돌아올 것이었습니다.—예레미야 30:11; 46:28.
3. 새 계약에 대한 예언을 고려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예레미야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유익을 가져다줄 새 계약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적 기록을 검토할 때, 밝은 희망을 제시하는 이 새 계약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계약은 하느님께서 모세를 중개자로 하여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과 맺으신 계약을 대치할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31:31, 32 낭독)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주의 만찬을 제정하면서 그 새 계약에 대해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그 계약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누가 22:20) 사도 바울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계약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인용했으며 새 계약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히브리 8:7-9) 하지만 새 계약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새 계약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새 계약에는 누가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계약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제 이러한 점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왜 새 계약이 필요한가?
4. 율법 계약은 어떤 목적을 달성했습니까?
4 새 계약에 대해 알려면 먼저 이전 계약인 율법 계약의 목적을 이해해야 합니다. 율법 계약은 많은 사람을 축복할 수단인 약속된 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 여러 가지 유익한 목적을 달성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창세 22:17, 18)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 계약을 받아들였을 때 그들은 하느님의 “특별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그 계약에 따라 레위 지파에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제사장들이 나올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와 그 계약을 맺으셨을 때 “제사장 왕국과 거룩한 나라”를 언급하셨지만, 그 나라가 언제 어떤 수단을 통해 나타날 것인지는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탈출 19:5-8) 그 나라가 나타날 때까지 율법 계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의 죄를 명백히 드러냈습니다. 따라서 율법 아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정기적으로 희생을 바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희생 즉 반복적으로 드리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영구적으로 용서하는 마련이 꼭 있어야만 했습니다.—갈라디아 3:19-22.
5. 여호와께서 새 계약에 대해 예언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보면, 율법 계약이 여전히 유효한데도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또 다른 계약인 새 계약에 대해 예언하신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랑과 친절이 동기가 되어 하나의 민족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영구적인 도움을 베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미래에 맺어질 그 계약의 당사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 31:34) 이 약속은 예레미야 시대에 주어졌지만 모든 인류를 위한 놀라운 전망을 제시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6, 7. (ㄱ)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ㄴ) 새 계약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격려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며 그 사실을 피부로 느낄 때가 많습니다. 심각한 개인 문제로 고투하던 한 형제의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한 욕망에 다시 굴복하고 나면 비참한 기분이 들었어요. 내 잘못을 결코 속죄할 수 없을 것 같았지요. 그러다 보니 기도하기가 어렵더군요. 기도할 때면 ‘여호와 하느님, 이 기도를 들어 주실지 모르지만 ···’이라는 말로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처럼 나쁜 습관에 다시 굴복했거나 죄를 지은 사람들은 그들의 기도가 “구름 덩이”에 막혀 하느님께 이르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애가 3:44)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기억 때문에 여러 해가 지난 후에도 괴로움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도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게 될 수 있습니다.—야고보 3:5-10.
7 우리는 자신이 결코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 첫째 10:12) 사도 바울도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로마 7:21-25 낭독) 따라서 새 계약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새 계약의 주된 특징 한 가지는 그분이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큰 유익이 됩니다! 예레미야는 그러한 예언을 하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새 계약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그 계약으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이해하면 감동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새 계약을 체결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새 계약이란 무엇인가?
8, 9. 여호와께서는 죄의 용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셨습니까?
8 우리는 여호와를 더 잘 알게 됨에 따라 그분이 불완전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자비로우신지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시 103:13, 14) 예레미야는 새 계약에 대해 예언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예레미야 31:34) 아마도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러한 방식으로 용서하실지 궁금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새 계약을 언급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과 사람 사이에 일종의 합의나 약정이 있을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계약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용서에 관한 말씀을 포함하여 예레미야에게 주신 예언을 어떤 방법으로인가 성취하실 것이었습니다. 메시아가 할 일을 비롯한 세세한 점들을 알려면 하느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더 밝혀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9 아마 당신은 자녀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무책임한 부모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러한 부모 같은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새 계약이 발효된 방법에 그 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그냥 없애 주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죄를 용서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심으로 자신의 공의의 표준을 철저히 지키셨습니다. 바울이 새 계약을 설명하면서 기술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 점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9:15, 22, 28 낭독) 바울은 ‘대속물에 의한 석방’을 언급했으며 “피가 쏟아지지 않고는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새 계약의 경우 그 피는 율법 아래서 희생으로 바쳐진 수소나 염소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새 계약은 예수의 피에 의해 발효되었습니다. 그 완전한 희생을 근거로 여호와께서는 영구적으로 ‘잘못과 죄를 용서’하실 수 있었습니다. (사도 2:38; 3:19) 하지만 누가 이 새 계약의 당사자로서 그러한 용서를 받게 될 것입니까? 유대 민족은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율법에 따라 동물 희생을 바친 유대인을 배척하고 다른 나라를 선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1:43; 사도 3:13-15) 그 나라는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기본적으로 율법 계약은 하느님과 육적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이었지만, 새 계약은 예수를 중개자로 한 여호와 하느님과 영적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입니다.—갈라디아 6:16; 로마 9:6.
10. (ㄱ) 누가 다윗을 위한 “싹”입니까? (ㄴ) 사람들은 그 “싹”으로부터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10 적절하게도 예레미야는 앞으로 오실 분인 메시아를 가리켜 다윗을 위한 “싹”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다윗 왕가라는 나무는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봉사하던 당시에 잘렸습니다. 하지만 그 그루터기는 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예수께서 다윗 왕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는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었는데, 그 이름은 하느님께서 의에 깊은 관심이 있으시다는 점을 부각시켜 줍니다. (예레미야 23:5, 6 낭독)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독생자가 이 땅에서 고통을 당하고 죽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공의의 표준과 일치하게 다윗을 위한 “싹”이 바친 대속 희생의 가치를 용서의 근거로 사용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33:15) 그 덕분에 일부 사람들이 “생명을 위하여 의롭다”고 선언되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새 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의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또 다른 증거는 그 계약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으며 실제로 유익을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앞으로 더 살펴볼 것입니다.—로마 5:18.
11. (ㄱ) 새 계약의 법은 어디에 기록됩니까? (ㄴ) “다른 양들”이 새 계약의 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새 계약에는 또 어떤 특징들이 있습니까? 새 계약과 모세의 율법 계약의 중요한 차이 한 가지는 그 계약이 어디에 기록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3 낭독) 율법 계약의 십계명은 돌판에 기록되었으며 결국 소실되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예레미야는 새 계약의 법이 사람의 마음에 기록되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새 계약의 당사자인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법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새 계약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며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진 “다른 양들”은 어떠합니까? (요한 10:16) 그들도 하느님의 법을 기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에 살면서 모세 율법을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었던 외국인 거주자와 같습니다.—레위 24:22; 민수 15:15.
12, 13. (ㄱ) 새 계약의 법은 무엇입니까? (ㄴ) “그리스도의 법” 아래서 당신이 강요에 의해 하느님을 섬긴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새겨진 법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그 법은 “그리스도의 법”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법은 새 계약의 당사자인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주어졌습니다. (갈라디아 6:2; 로마 2:28, 29) “그리스도의 법”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사랑입니다. (마태 22:36-39)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어떻게 이 법을 자신의 마음에 기록합니까? 주된 방법은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여호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참그리스도인은 참숭배의 일부인 이러한 일들을 정기적인 일과로 삼아야 하며, 새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지만 그로부터 유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13 “그리스도의 법”은 “자유에 속한 완전한 법” 혹은 “자유민의 법”이라고도 불립니다. (야고보 1:25; 2:12) 태어날 때부터 모세 율법 아래 있게 된 사람은 많았지만, 날 때부터 새 계약의 당사자가 되거나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에 순종하게 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강요에 의해 하느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하느님의 법이 마음에 기록될 수 있다는 점과 예레미야가 예언한 그 계약의 영속적인 유익을 오늘날에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기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새 계약을 통해 용서를 가능하게 하셨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마음에 기록되는 법에 관해 배울 수 있습니까?
새 계약의 수혜자
14. 누가 새 계약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임이 분명합니까?
14 일부 사람들은 새 계약의 당사자가 14만 4000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만 그 계약으로부터 유익을 얻는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연례 기념식에서 기름부음받은 자들만이 표상물을 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기념식에서 사용되는 포도주는 “계약의 피”를 상징합니다. (마가 14:24) 하지만 새 계약의 당사자들이 예수와 함께 아브라함의 “씨”가 될 것이며 그 씨를 통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갈라디아 3:8, 9, 29; 창세 12:3)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씨”로 모든 인류를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을 새 계약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인가 이행하실 것입니다.
15.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예언되어 있습니까?
15 아브라함의 씨의 주된 부분인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 섬기고 계시며, 잘못과 죄의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완전한 희생을 바치셨습니다. (히브리 2:17, 18 낭독) 하지만 오래전에 하느님께서는 “제사장 왕국과 거룩한 나라”가 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탈출 19:6) 육적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한 지파에서만 나왔으며, 왕은 다른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왕 겸 제사장들로 이루어진 이 약속된 나라가 탄생한다는 것입니까?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첫 번째 편지를 영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에게 썼습니다. (베드로 첫째 1:1, 2) 그는 그러한 사람들을 “왕 겸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특별한 소유가 된 백성”으로 언급했습니다. (베드로 첫째 2:9) 따라서 새 계약의 당사자인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보조 제사장으로 섬길 것입니다. 그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여전히 “왕으로 통치”하고 있는 죄의 영향 아래서 날마다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다. 보조 제사장들도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로마 5:21)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느낌이 어떠한지 잘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짓는 경향을 극복해 나갈 때 그들은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6. 계시록 7:9, 14은 “큰 무리”에게 어떻게 격려가 됩니까?
16 계시록 7:9, 14은 “큰 무리”가 “흰 긴 옷을 입고” 있다고 알려 주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느님 앞에서 깨끗한 신분을 누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큰 환난”을 생존할 전망을 가진 그 큰 무리가 지금 모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어느 정도 의로운 신분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벗으로서 의롭다고 선언됩니다. (로마 4:2, 3; 야고보 2:23) 참으로 큰 유익이 아닙니까! 당신이 큰 무리에 속해 있다면 하느님이 보시기에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때 하느님께서 기꺼이 도와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17. 여호와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십니까?
17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의 죄는 어떻게 됩니까? 앞서 언급했듯이,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 31:34) 하느님께서는 예수의 희생을 근거로 기름부음받은 자들에게 이 성구의 말씀대로 하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그 동일한 “계약의 피”를 근거로 큰 무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말은 그분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어서 죄를 도저히 기억해 내실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은 일단 여호와께서 회개한 죄인에게 필요한 징계를 베풀고 용서하시고 나면, 그가 과거에 지은 죄를 마치 뒤로 던지듯이 지나쳐 주신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밧-세바와 우리아와 관련하여 지은 죄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징계를 받았고 자신의 죄로 인한 결과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 둘째 11:4, 15, 27; 12:9-14; 이사야 38:17)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죄에 대해 계속 책임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역대 둘째 7:17, 18 낭독) 새 계약에서 밝혀 주듯이 여호와께서는 예수의 희생을 근거로 일단 죄를 용서하시면 그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십니다.—에스겔 18:21, 22.
18, 19. 새 계약을 통해 용서에 대해 어떤 교훈을 배우게 됩니까?
18 따라서 새 계약은 여호와께서 죄 많은 인간에게—새 계약의 당사자인 기름부음받은 자들과 땅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시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일단 죄를 용서하시고 나면 그 죄를 다시 문제 삼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하느님께서 하신 새 계약에 대한 약속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기분이 상했더라도 용서한다고 이미 말했다면 그 일을 다시 끄집어내지 않음으로 여호와를 본받으려고 노력하는가?’ (마태 6:14, 15) 이 교훈은 사소한 잘못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배우자가 간음을 범한 경우와 같이 매우 심각한 잘못에도 적용됩니다. 배우자가 간음을 범했지만 회개해서 무고한 배우자가 그를 용서해 주기로 했다면 ‘그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물론 잘못을 지나쳐 주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여호와를 본받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a
19 우리는 새 계약에 관한 이 교훈을 제명되었다가 회개하여 복귀된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떤 식으로인가 당신에게 손해를 입혔거나 당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어떠합니까? 이제 그는 다시 회중 안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예레미야 31:34의 말씀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반응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입니까? 우리는 죄를 범한 사람을 용서하고 그 잘못을 다시 끄집어내지 않을 것입니까? (고린도 둘째 2:6-8) 분명 새 계약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이라면 일상생활에서 이 교훈을 적용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새 계약에 담겨 있는 용서에 대한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새 계약이 가져다주는 현재와 미래의 축복
20. 우리의 태도는 예레미야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다릅니까?
20 예레미야 시대에 많은 유다 사람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선을 행하지도 않으시고 악을 행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스바냐 1:12) 그들은 여호와가 누구이며 어떤 분인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분이 행동하지 않으실 것이고 그들에게 그분의 표준에 따라 살 것을 기대하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 무엇도 하느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존경심 어린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당연히 악을 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레미야 16:17) 그와 동시에 우리는 여호와께서 인자하신 아버지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분은 우리의 선한 행실을 눈여겨보십니다.—역대 둘째 16:9.
21, 22. 우리가 “너희는 여호와를 알아라”라는 말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새 계약의 중요한 특징 한 가지가 이러한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넣고, 그것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 그들이 각각 자기 동무와 형제를 가르쳐 ‘너희는 여호와를 알아라!’ 하고 말하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31:33, 34) 오늘날 지상에 있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자신들 속에 하느님의 법이 있음을 증명해 왔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법에 들어 있는 진리를 사랑합니다. 또한 성서 지식을 큰 무리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땅에서 살 희망을 가진 그들도 여호와를 알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기꺼이 그분의 인도에 복종하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합니다. 아마 당신도 그러한 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이 인격체이심을 알고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참으로 큰 유익이 아닙니까!
22 당신은 어떻게 여호와와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할 수 있었습니까? 틀림없이 당신은 그분이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고 느꼈던 때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한 체험을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인식도 깊어졌을 것입니다. 역경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성구가 떠올랐을 때 그분의 도움의 손길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경험들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계속해서 그분의 말씀을 연구함에 따라 그분에 대한 지식도 계속 증가할 것이며, 그로 인해 지속적인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23. 여호와를 알게 되면 어떻게 불필요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23 새 계약과 관련하여 우리가 지금도 누릴 수 있는 축복이 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새 계약에 따라 용서를 베푸시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일례로 하느님의 표준을 알기 전에 낙태를 한 적이 있는 사람은 잘 자라고 있는 인간 생명을 고의적으로 빼앗았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과 슬픔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쟁에서 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 계약의 기초가 되는 예수의 대속 희생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줍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면 그 문제를 지나간 일로 간주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신 죄에 얽매여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24. 예레미야 31:20의 말씀은 어떻게 격려가 됩니까?
24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분명한 증거를 예레미야 31:20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낭독) 예레미야가 활동하기 오래전에 여호와께서는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북쪽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그 왕국의 탁월한 지파의 이름을 따서 에브라임이라고도 불림)을 처벌하셨습니다. 그들은 유배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나라 백성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셨고 부드러운 애정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그들을 “귀염 받는 아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들에 대해 생각하실 때면 그분의 창자가 “소란스러웠습니다.” 이 말은 그분의 깊은 내면의 감정이 영향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새 계약이 언급된 문맥에 나오는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너그럽게 용서하시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25. 새 계약에 대해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5 새 계약을 통해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여호와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끝날 때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14만 4000명의 보조 제사장들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완전성으로 회복시킬 것입니다. 최종 시험 후에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여호와의 우주 가족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로마 8:19-22 낭독)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죄에 짓눌려 신음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여호와의 창조물인 인류는 “하느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 즉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사랑에 찬 마련인 새 계약을 통해 풍성한 유익을 누릴 수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당신은 다윗을 위한 “싹”을 통해 지금부터 영원히 유익을 얻고 “이 땅에서 ··· 의”를 누릴 수 있습니다.—예레미야 33:15.
어떻게 새 계약으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a 하느님께서 기꺼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이 호세아가 고멜을 대한 방식에 잘 나타나 있다. 호세아 2:14-16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여호와의 날을 의식하며 생활하라」 책 128-130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