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의 평화를 추구하라
다른 사람들과의 평화를 추구하려면, 먼저 자신과 평화롭게 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에 암시되어 있다. (마태 22:39) 이웃을 사랑하려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이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약점을 갖고 있고, 실수를 범하며, 죄의식을 느낀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자신의 단점에 대해 안타까와하며 그 점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좀더 나아지겠다는 결심을 하며, 그런 식으로 부담감을 주는 죄책감에서 벗어난다는 점도 알고 있다.
우리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고 행동으로 나타낸다. (마태 12:34, 35) 마음이 죄의식과 반목으로 가득차 있으면,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쌀쌀한 태도로 표출될 것이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기 가치 의식, 자중심을 가져야 하며 자신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 대해 웃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만드는 내적 혼란이 없어진다. 이처럼 내적으로 안정되면, 남에게 협박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면서 친절한 관심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려면, 자신 속에 평화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북적거리며 법석대는 가운데 압박감을 주는 현 세상에서, 내적 평화는 위협을 받고 있고 사이좋게 지내는 부드러운 기술은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거북이가 안전한 껍데기에서 목을 삐죽이 내밀고는 고개를 내민 것이 발각될까 두려워하는 그 모습으로 서로 쳐다보고 있다. 긴장을 푼 우정적인 태도는 공포와 고독에 제압당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우리가 살고 있는 위험이 따르는 시대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디모데 후 3:1-5.
그렇지만, 우정적이 되려고 솔선하는 사람은 대개 유쾌한 반응을 만나게 된다. 인도에서 지나가는 이웃에게 말하는 것, 앞마당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멈추어 몇 마디 말을 건네는 것, 공원 벤치에 함께 앉게 된 사람에게 간단히 이야기하는 것—그러한 순간들은 짧게나마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기회들을 유쾌한 것이 되게 하고 대인 관계에서 평화를 배가시키기 위해 따를 수 있는 지침들이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고려해 보자.
잘 듣는 사람이 되라
존경심을 나타내라. 이야기하는 사람을 바라보라. 당신이 눈을 두리번거리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나는 당신이나 당신이 하는 말에 관심이 없다’는 표시가 될 것이다. 아마 그런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라. 세부점을 묻거나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 한, 말을 가로채지 말라.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잠언 18:13) 그 사람과 그의 생각, 그리고 그의 입장과 느낌을 이해하기 위해 잘 들으라. 귀로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잘 들으라.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야고보 1:19.
의사 소통 및 대화를 하라
의사 소통을 한다는 것은 “지식, 사상 혹은 느낌을 전달하여 흡족하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는 것”을 의미한다. 길거나 산만하게 말하지 말고, 간단 명료하게 하라. 상대방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이해하고 있는지 살피라. 대화한다는 것은 “사상과 의견을 이야기로 교환하는 것”을 뜻한다. 대화는 강의가 아니며, 일종의 교환인 것이다. 당신이 한 가지 요점을 지적했다면, 이제 상대방의 답변을 듣도록 하라. 누군가가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보고를 할 때 당신은 듣는 사람이 된다. 대화에서 당신은 참여자인 것이다. 그 대화에 기여하고, 다른 사람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라. 융통성을 나타내고 새로운 개념에 대해 개방적이 되라. 독단적으로 고수하는 편견은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만든다.—마태 13:15.
우정적이고, 정직하고, 염려를 나타내라
소심함을 버리라.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라. 우정적인 태도는 보통 그와 비슷한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느낌은 전염된다.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를 원하는 대로 당신도 느끼라.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기를 원하는 대로 당신도 행동하라. 당신이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접하라. 거두기 원하는 것을 심으라.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라. 정직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염려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하도록 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부우드 타아킹턴이 쓴 한 소설에는, 앞 마당의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등장 인물 중 하나인 ‘꼬마 오르비에’는 자기가 아무런 주의를 끌지 못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펄쩍펄쩍 뛰고 달리면서 “날 좀봐! 날 좀보라니깐!” 하고 외쳐댄다. 어른들은 그 점에 있어 그렇게 표면화시키진 않지만, 그들 역시 주의를 기울여 주기를 원한다. 그것이 없다면 어린 아이들과 나이든 사람들은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에게 유의하라! 이웃을 잘 알고, 우정적이 되고, 이웃집 개나 장미, 그 사람의 새 옷에 대해 호의적인 말을 하라. 그러나 계산된 효과를 노려서만 아니라, 항상 진지하게 그렇게 하라.
혹평을 피하라
혹평은 백해 무익하다. 그것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며 분개하게 만든다. 그것은 일종의 공격이며 사람들은 수세를 취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며 또 보복하려 든다. 혹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람이란, 특히 공격을 당할 때는 논리적이 되기 보단 흔히 감정적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또한 그들이 혹평을 어떻게 여기는가도 생각해 보라. 정죄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하라. 격려의 말은 대단한 효과가 있다. 그들의 결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좋은 점을 보도록 하라. “남의 허물을 덮어 주면 영광이 돌아온다.”—잠언 19:11, 공동번역.
조언을 하는 일
따뜻하고 우정적이며 사랑스럽게 되라. 상대방이 먼저 그리고 충분히 이야기하게 하라. 그가 생각하거나 행동할 때 그렇게 하는 이유를 알도록 하라. 그가 바라는 바에 공감을 나타내라. 그의 관점에서 보도록 하라. 그의 행동 이면에 있는 감정적인 이유를 분별하라. 당신 역시 실수를 하며 그 사람처럼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하라. 그리고 나서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라디아 6:1) 논점에 국한된 조언을 하라. 그 사람에게 맞는 조언을 하고, 그가 요점을 이해하도록 친절하게 도우면서, 재치있게 말하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로새 4:6) 적극적으로 힘을 불어 넣어 주고, 개선된 점을 칭찬하라.
감정 이입을 갖고, 그것을 나타내라
이것은 당신이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을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타인의 필요를 감지하라. 그가 느끼는 것처럼 느끼라. 당신이 그의 입장이었다면 당신은 어떠한 대우를 받기 원했겠는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에 순응코자 한다면 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마태 7:12)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로는 감정 이입을 나타내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저 울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와 같은 감정 이입을 권하면서, 사도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말하였다.—로마 12:15.
나사로가 죽은 뒤, 마리아는 예수께 왔다. 계속되는 기록은 이러하다.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 11:33-35)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실 바를 알고 계셨지만, 그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는 마음이 동하여 그들과 함께 우셨다. 그분은 감정 이입을 나타내셨다.
악을 악으로 갚지말라
황금률을 거스려 말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남들이 당신에게 한 대로 그들에게 하’지 않도록 하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나타내신 사랑을 통해 우리도 사랑을 나타내게 자극하신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 1서 4:19) 이것은 비실용적인 이론이 아니며, 인간 본성인 것이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 다른 쪽 뺨을 돌려대는 것은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옛날 용광로 속에 쌓여 있던 석탄이 광석에서 금속을 녹여 내었듯이,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적의 분노를 부드럽게 하고 녹아 버리게 하여 그것을 이길 수 있게 한다. 한편 그의 악행으로 인해 당신이 계속 시달릴 수 있지만, 당신은 평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당신은 본분을 다했고 자신의 원칙에 고착한 것이다. 당신은 행악자가 당신을 악행으로 이끄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로마 12:17-21.
할 수 있거든, 평화를 추구하라
적극적으로 “모든 사람과의 화평을 추구”하라. (히브리 12:14, 새번역) 그러한 일은 자동적으로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항상 따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때에는 그것을 추구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라.]” (잠언 22:24) 그렇지만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로마 12:18.
예수께서 우리의 이웃에게 나타낼 것을 말씀하신 사랑에 해당하는 희랍어 단어는 아가페이다. 이 아가페의 특성에 관한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정의는 우리의 이웃과 평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의 지침을 잘 요약해 준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린도 전 13:4-8.
[5면 네모]
성서 「잠언」의 귀절들이 알려 주는 대인 관계에 관한 지침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설득력, 현대인의 성경]을 더하느니라.”—16:23.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16:24.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17:9.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17:14.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정신이 냉철한, 신세] 자는 명철하니라.”—17:27.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19:11.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20:3.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찌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20:5.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25:9.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25:17.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2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