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권 통치에 밀접히 고착하라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라].”—이사야 33:22.
1. 정부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부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정부는 평화와 번영을 가져옵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느니라].” (잠언 29:4) 반면에, 나쁜 정부는 불공정과 부패와 압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합니다. (잠언 29:2) 역사 전반에 걸쳐 사람들은 여러 형태의 정부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흔히 통치자들의 압제 때문에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도 8:9) 자국 신민에게 지속적인 만족을 가져다 줄 정부가 과연 있을 것입니까?
2. “신권 통치”가 고대 이스라엘 정부를 적절히 묘사하는 표현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역사가 요세푸스는 자신의 글에서 한 가지 독특한 형태의 정부를 이렇게 언급하였습니다. “최상의 정부로 군주제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과두 정치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서민 정치를 신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법 수여자[모세]는 그러한 어느 정치 제도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고, 다만—굳이 표현을 하자면—‘신권 통치’라고 할 수 있는 체제를 자신의 법 체계의 기반으로 삼았다. 이것은 모든 주권과 권위를 하느님의 손 아래 두는 체제이다.” (아피온 반박문[Against Apion] 제2권 164-5면) 「콘사이스 옥스퍼드 사전」(Concise Oxford Dictionary)에 의하면, 신권 통치란 “하느님이 다스리는 정부 체제”를 의미합니다. 신권 통치라는 단어가 성서에 나오지는 않지만, 이 단어는 고대 이스라엘의 정부를 적절히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이는 왕을 갖게 되었지만, 그들의 진정한 통치자는 여호와이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인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라].”—이사야 33:22.
참다운 신권 통치란 무엇인가?
3, 4. (ㄱ) 참다운 신권 통치란 무엇입니까? (ㄴ) 머지않아 신권 통치는 모든 인류에게 무슨 축복들을 가져다 줄 것입니까?
3 요세푸스가 이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이래로, 신권 체제로 묘사된 사회 제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편협하고 광신적이며 잔인할 정도로 압제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 제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제도들은 참다운 신권 통치 체제였습니까? 요세푸스가 사용했던 단어의 의미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신권 통치”라는 단어의 의미가 확대되어 사용되는 데 있습니다. 「월드 북 백과 사전」에서는 그 단어를 “한 명이나 여러 명의 사제가 국가를 통치하며, 사제단이 민사와 종무에 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정부 체제”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참다운 신권 통치란 사제들 곧 제사장들이 다스리는 정부가 아닙니다. 사실상 참다운 신권 통치란 하느님의 통치, 즉 우주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정부를 말합니다.
4 머지않아 온 땅이 신권 통치를 받게 될 때가 올 것이며, 그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인류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애통과 부르짖음과 고통도 더는 없을 것입니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계시 21:3, 4) 불완전한 인간들에 의한 사제 통치는 그러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통치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 행동으로 신권 통치를 구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그분이 정하신 때에 그분의 방법대로 전세계에 신권 통치를 확립하실 때를 참을성 있게 기다립니다.—다니엘 2:44.
5. 참다운 신권 통치가 오늘날 어디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그와 관련하여 무슨 질문들이 제기됩니까?
5 하지만 그 때가 되기 전에도 참다운 신권 통치는 분명히 시행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시행되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통치에 기꺼이 복종하고 함께 협력하여 그분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충실한 사람들이 영적 “땅”에 있는 하나의 세계적인 영적 “나라”로서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남은 자들의 동료인 550만 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사야 66:8, 「신세」 참조; 갈라디아 6:16) 이들은, “영원하신 왕”이신 여호와 하느님께서 왕위에 즉위시키신 하늘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합니다. (디모데 첫째 1:17; 계시 11:15) 이 조직은 어떤 면에서 신권적입니까? 이 조직의 성원들은 세속 정부의 권위를 어떻게 여깁니까? 그리고 신권 통치의 원칙이 어떻게 그들의 영적 나라 안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됩니까?
신권 조직
6. 보이는 인간 조직이 어떻게 하느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습니까?
6 인간 조직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늘에 거하시는 여호와의 통치를 받을 수 있습니까? (시 103:19) 그것은 그 조직과 연합한 사람들이 이러한 영감받은 교훈을 따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2:6; 3:5) 그들은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고 영감받은 성서의 원칙을 날마다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하느님께서 그들을 통치하시게 합니다. (갈라디아 6:2; 고린도 첫째 9:21; 디모데 둘째 3:16; 참조 마태 5:22, 28, 39; 6:24, 33; 7:12, 21) 그렇게 하려면, 그들은 성서 연구생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 1:1-3) ‘생각이 고상한’ 고대 베레아 사람들처럼, 그들은 인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배우고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성서로 확증합니다. (사도 17:10, 11; 시 119:33-36) 그들은 시편 필자처럼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119:66.
7. 신권 통치의 감독 체계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7 모든 조직에는 권위를 행사하거나 인도를 베푸는 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예외가 아니며, 그들은 사도 바울이 약술한 이러한 권위 체계를 고수합니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십니다.” (고린도 첫째 11:3) 이와 일치하게, 자격을 갖춘 남자들만 회중에서 장로로 섬깁니다. 그리고 “모든 남자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하늘에 계시긴 하지만, 땅에도 그분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의 “남은 자들”이 있으며, 그들은 하늘에서 그분과 함께 통치할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시 12:17; 20:6) 이들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충실하고 분별 있는 종”을 구성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종”의 감독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수께 복종을 나타내며, 그리하여 예수의 머리이신 여호와께도 복종을 나타냅니다. (마태 24:45-47; 25:40) 이와 같이 신권 통치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무질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느님이십니다.”—고린도 첫째 14:33.
8. 그리스도인 장로들은 신권 통치의 원칙을 어떻게 지지합니까?
8 그리스도인 장로들은 신권 통치의 원칙을 지지하는데, 그들이 가진 한정된 권위를 행사하는 방법에 대해 여호와 앞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3:17) 그리고 결정을 내릴 때 그들은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에 의존합니다. 이 면에서 그들은 예수의 모범을 따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마태 12:42) 그렇지만 그분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단 한 가지 일도 자의로 할 수 없고, 다만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행할 따름입니다.” (요한 5:19) 장로들 역시 다윗 왕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신권 국가 안에서 막중한 권위를 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 여호와의 방식을 따르기 원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 평탄한[“올바른”] 길로 인도하소서.”—시 27:11, 「신세」 참조.
9. 신권 통치 안에서 서로 다른 희망과 서로 다른 봉사의 특권이 있는 것과 관련하여,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균형 잡힌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9 회중 내에서 권위가 오로지 자격을 갖춘 남자들에 의해서만 행사되는 것이 공정한 일인지, 혹은 일부 사람들은 하늘 희망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그 밖의 사람들은 땅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공평한 일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 37:29; 빌립보 3:20) 하지만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마련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나와 있는 것임을 인식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신권적인 마련입니다. 그러한 마련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대개 성서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에 관한 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남녀가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3:28) 참 그리스도인들이 우주 주권자의 숭배자가 되는 것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며, 따라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정해 주시는 역할이 무엇이든 기꺼이 그 역할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시 31:23; 84:10; 고린도 첫째 12:12, 13, 18) 더욱이, 하늘에서 누리게 되든 지상 낙원에서 누리게 되든 영원한 생명은 참으로 놀라운 희망입니다.
10. (ㄱ) 요나단은 어떤 훌륭한 태도를 나타냈습니까? (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요나단과 비슷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10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울 왕의 아들이며 하느님을 두려워한 사람이었던 요나단과 비슷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요나단은 아마도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이 불충실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택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요나단은 적개심을 품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좋은 벗이 되었고, 심지어 사울로부터 다윗을 보호해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사무엘 상 18:1; 20:1-42) 그와 비슷하게, 땅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도 하늘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참 그리스도인들은 회중 내에서 신권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형제들을 “사랑으로 더욱 특별히 고려해 주”며, 그 형제들이 영적 형제 자매들을 위해 부지런히 수고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데살로니가 첫째 5:12, 13.
세속 통치권에 대한 신권적인 견해
11. 신권 통치에 복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권위를 어떻게 여깁니까?
11 여호와의 증인이 신권 통치 즉 하느님의 통치를 받고 있다면, 그들은 국가의 통치자들을 어떻게 여깁니까? 예수께서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7:16)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카이사르” 즉 세속 정부들에 대한 의무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2:21) 성서에 의하면, 인간 정부들은 “하느님에 의하여 그들의 상대적 지위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권위의 근원이신 여호와께서는 정부들이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시며, 정부들이 자기들의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정부들은 “하느님의 봉사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양심 때문”에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정부들에 복종합니다. (로마 13:1-7) 물론, 국가에서 하느님의 법에 반대되는 것을 요구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보다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순종”할 것입니다.—사도 5:29.
12. 그리스도인들은 당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누구의 모범을 따릅니까?
12 정부 당국에서 참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그런 경우에 참 그리스도인들은 큰 박해의 시기를 인내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을 따릅니다. (사도 8:1; 13:50) 이러한 믿음의 시험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는데, 예수께서 이미 그러한 시련들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 5:10-12; 마가 4:17) 그러나 그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자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러한 압력을 받으면서 믿음이 약해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께서 세우신 이러한 모범을 따랐습니다. “그분은 욕을 받아도 욕으로 갚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당해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기를 계속 맡기셨습니다.” (베드로 첫째 2:21-23)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 원칙은 분개하게 만드는 사탄의 충동질을 물리쳤습니다.—로마 12:21.
13. 여호와의 증인은 자신들에 대한 박해와 비방 운동에 어떻게 대응해 왔습니까?
13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세기에 여호와의 증인은 전제적인 통치자들의 손에 큰 고난을 겪어 왔는데, 예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였습니다. (마태 24:9, 13) 어떤 나라들에서는 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불리한 조처를 취하도록 당국에 압력을 가하려는 사람들이 거짓말과 허위 사실들을 널리 유포시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쁜 평판”에도 불구하고 증인들은 훌륭한 행실로 그들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합니다. (고린도 둘째 6:4, 8) 증인들은 가능할 경우, 자신들의 입장을 관리들에게 설명하고 그 나라의 법정에 호소하여, 자신들에게 아무 잘못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증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경우 그러한 수단을 이용하여 좋은 소식을 공개적으로 변호합니다. (빌립보 1:7) 하지만 법의 테두리 내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 후에는, 문제를 여호와의 손에 맡깁니다. (시 5:8-12; 잠언 20:22) 증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필요하다면 의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베드로 첫째 3:14-17; 4:12-14, 16.
하느님의 영광을 첫째 자리에 두라
14, 15. (ㄱ) 신권 통치의 원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ㄴ) 솔로몬은 언제 자신의 감독하는 직분과 관련하여 겸손에 대한 훌륭한 모범을 세웠습니까?
14 예수께서 추종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을 때, 그분이 첫 번째로 언급하신 것은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마태 6:9) 이와 일치하게, 신권 통치를 받으며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시 29:1, 2) 성서에서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1세기에 이것은 예수를 따르기를 거부한 일부 사람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영광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사람들에게 영광받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 12:42, 43) 사실, 자기 자신보다 여호와를 더 중요하게 여기려면 겸손이 필요합니다.
15 솔로몬은 이 점과 관련하여 훌륭한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이 지은 영광스러운 성전의 봉헌식 때 한 말과 느부갓네살이 자신이 이룩한 건축 업적에 대해 한 말을 비교해 보십시오. 느부갓네살은 기고만장하여 이렇게 자랑하였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다니엘 4:30) 그와는 대조적으로, 솔로몬은 겸허하게도 자신이 이룬 일을 하찮은 것으로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역대 하 6:14, 15, 18; 시 127:1) 솔로몬은 자신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단지 여호와의 대표자일 뿐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 11:2.
16. 스스로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장로들은 어떻게 진정한 축복이 되어 왔습니까?
16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 장로들도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를 높입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한 이러한 교훈을 따릅니다. “누구든지 봉사하려면, 하느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에 의존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일에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 (베드로 첫째 4:11) 사도 바울은 “감독자의 직분”을 명예로운 요직이 아니라 “훌륭한 일”로 묘사하였습니다. (디모데 첫째 3:1) 장로들이 임명된 것은 섬기기 위한 것이지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장로들은 가르치는 사람들이자 하느님의 양 무리의 목자들입니다. (사도 20:28; 야고보 3:1) 겸손하고 자기 희생적인 장로들은 회중에 진정한 축복이 됩니다. (베드로 첫째 5:2, 3) “그와 같은 사람들을 계속 소중히 여기”고, 이 “마지막 날”에 신권 통치를 옹호할 자격을 갖춘 장로들을 매우 많이 마련해 주신 데 대해 여호와께 감사하도록 하십시오.—빌립보 2:29; 디모데 둘째 3:1.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17. 신권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어떤 면으로 하느님을 본받습니까?
17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에베소 5:1) 신권 통치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하느님을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성서는 여호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충실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신명 32:3, 4, 「신세」 참조) 이 점에서 하느님을 본받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충실함과 의를 추구하며 공의에 대한 균형 잡힌 감각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미가 6:8; 데살로니가 첫째 3:6; 요한 첫째 3:7) 그들은 부도덕과 탐심과 탐욕과 같은, 세상에서는 용인되는 많은 것들을 피합니다. (에베소 5:5) 여호와의 종들이 인간의 표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표준을 따르기 때문에, 그분의 조직은 신권적이며 깨끗하고 건전합니다.
18. 하느님의 두드러진 특성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이 특성을 어떻게 반영합니까?
18 여호와 하느님의 두드러진 특성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요한 첫째 4:8) 신권 통치란 하느님에 의한 통치라는 의미이므로, 신권 통치는 사랑에 의한 통치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사랑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이것으로 여러분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 13:35) 신권 조직은 이 어려운 마지막 날에 탁월한 사랑을 나타내 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종족 말살 분쟁이 벌어지는 동안 여호와의 증인은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이 어느 종족에 속해 있는지에 상관없이,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구유고슬라비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모든 지역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은 서로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종교 단체들은 소위 인종 청소라는 행위에 가담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개개인은 바울의 이러한 교훈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악의적인 반감과 화냄과 격분과 소리치는 것과 욕설을 모든 악과 함께 여러분에게서 없애 버리십시오. 도리어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부드러운 동정심을 나타내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을 기꺼이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기꺼이 용서하십시오.”—에베소 4:31, 32.
19. 신권 통치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에 무슨 축복들을 받게 됩니까?
19 신권 통치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큰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뿐만 아니라 동료 그리스도인들과도 평화를 누립니다. (히브리 12:14; 야고보 3:17) 그들은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 12:13) 그들은 영적인 안전을 누리고 있으며 장래에 대한 확실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 59:9) 사실상 그들은 모든 인류가 신권 통치를 받게 될 때 누리게 될 상태를 미리 맛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9) 참으로 영광스러운 시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지금 신권 통치에 밀접히 고착함으로 그 미래의 낙원에서 살 터를 튼튼히 닦게 되기를 바랍니다.
설명할 수 있습니까?
◻ 참다운 신권 통치란 무엇이며, 오늘날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 가운데서 어떻게 신권 통치에 복종할 수 있습니까?
◻ 신권 통치를 받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면으로 자신의 영광보다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구합니까?
◻ 신권 통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하는 경건한 특성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7면 삽화]
솔로몬은 자신의 영광보다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