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들이 일으킴을 받을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들이 부패하지 않을 것으로 일으킴을 받을 것이며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고린도 첫째 15:52.
1, 2. (ㄱ) 무슨 위로가 되는 약속이 예언자 호세아를 통해 전해졌습니까? (ㄴ)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실 의향을 가지고 계심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죽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고통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예언자 호세아를 통해 하신 이러한 약속으로부터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호세아 13:14.
2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생각이 회의론자들에게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기적을 행하실 능력을 분명히 가지고 계십니다!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실 의향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인 욥은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하고 질문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처럼 확신을 주는 대답을 합니다. “당신은 부르시겠고, 저는 당신에게 대답할 것입니다.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당신은 그리워하실 것입니다.” (욥 14:14, 15, 「신세」 참조) ‘그리워하다’라는 말은 간절히 열망하거나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교 시 84:2)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부활을 열렬히 기다리시며, 그분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사망한 충실한 사람들이 그리워서 다시 보고 싶어하십니다.—마태 22:31, 32.
예수께서 부활에 빛을 비추시다
3, 4. (ㄱ) 예수께서는 부활 희망에 어떤 빛을 비추셨습니까? (ㄴ) 예수께서 육으로가 아니라 영으로 일으킴을 받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고대의 믿음의 사람들은 욥처럼 부활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놀라운 희망에 온전히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분은 “아들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친히 주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히셨습니다. (요한 3:36) 그러면 그러한 영원한 생명을 어디에서 누릴 것입니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 대다수의 경우, 땅에서 누릴 것입니다. (시 37:11) 하지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적은 무리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왕국을 여러분에게 주는 것을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승인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12:32) 하느님의 왕국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적은 무리”가 영적 피조물로서 예수와 함께 하늘에 있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요한 14:2, 3; 베드로 첫째 1:3, 4) 참으로 영광스러운 전망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이 “적은 무리”의 수가 정확히 14만 4000명이 될 것이라고 밝혀 주셨습니다.—계시 14:1.
4 그러나 14만 4000명은 어떻게 하늘의 영광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좋은 소식을 통하여 생명과 부패하지 않음에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로 하늘에 들어가는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디모데 둘째 1:10; 히브리 10:19, 20) 먼저, 그분은 성서에 예언된 대로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53:12) 그런 다음, 사도 베드로가 후에 선언한 바와 같이,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부활시키셨”습니다. (사도 2:32) 하지만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일으킴을 받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이미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나의 살입니다.” (요한 6:51) 육체를 다시 가지게 되신다면 그 희생은 무효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베드로 첫째 3:18)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구출을 얻으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적은 무리”를 의미합니다. (히브리 9:12) 그분은 죄 많은 인류를 위해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의 가치를 대속물로 하느님께 바치셨으며, 14만 4000명은 그로부터 혜택을 얻는 첫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5. 무슨 희망이 예수의 1세기 추종자들에게 제시되었습니까?
5 예수만 하늘 생명으로 부활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가 되도록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그들이 끝까지 인내하여 자신들이 기름부음받았음을 분명히 입증하게 된다면 그러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로마 8:16, 17) 바울은 또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죽음으로 그분과 연합하게 되었다면, 또한 확실히 그분의 부활과 같은 부활로 그분과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로마 6:5.
부활 희망을 변호함
6. 부활에 대한 믿음이 고린도에서 공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며, 사도 바울은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6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초보적인 교리”에 속합니다. (히브리 6:1, 2) 그런데도 이 교리가 고린도에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일부 회중 성원들이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첫째 15:12) 그러한 소식이 사도 바울의 귀에 들어가자, 그는 부활 희망, 특히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에 대해 변호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첫째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말을 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앞 기사에서 권한 것처럼, 그 장 전체를 읽어 보았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7. (ㄱ) 바울이 중점적으로 다룬 주된 문제는 무엇입니까? (ㄴ) 누가 부활되신 예수를 보았습니까?
7 고린도 첫째 15장의 처음 두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논할 주제를 이렇게 설정합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 드립니다. 그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것이며,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였고,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 여러분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 실제로 헛되이 믿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그러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좋은 소식 안에 굳게 서 있지 못하였다면, 그들이 이전에 진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첫째 가는 것들 가운데서 나 역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그분이 묻히셨다는 것, 아니, 그분이 성경대로 셋째 날에 일으킴을 받으셨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게바에게,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분은 오백 명 이상의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는데, 그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남아 있지만 일부는 죽어 잠들어 있습니다. 그 후에 그분은 야고보에게, 다음에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는데, 맨 마지막으로 달이 차지 못해서 태어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고린도 첫째 15:3-8.
8, 9. (ㄱ) 부활에 대한 믿음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ㄴ) 예수께서 “오백 명 이상의 형제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어느 경우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까?
8 좋은 소식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일으킴을 받으셨음을 확증할 수 있었던 많은 목격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게바였는데, 그는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배반당하시고 체포되시던 밤에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는, 그 후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일로 분명히 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열두 제자” 즉 한 그룹으로서의 사도들 역시 부활되신 예수의 방문을 받았는데, 그러한 경험은 그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의 부활에 대한 담대한 증인들이 되는 데 틀림없이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요한 20:19-23; 사도 2:32.
9 그리스도께서는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도, 즉 “오백 명 이상의 형제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갈릴리 외에는 그처럼 많은 수의 추종자들이 없었으므로, 마태 28:16-20에 나오는 내용이 바로 그 경우를 설명한 것일 수 있는데, 그 때 예수께서는 제자를 삼으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강력한 증언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를 썼을 때인 기원 55년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이미 사망한 사람들을 “죽어 잠들어 있”다고 언급하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그들은 그 당시까지도 부활되어 하늘의 상을 받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10. (ㄱ)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나신 일은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떻게 “달이 차지 못해서 태어난 자”에게 나타나시듯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까?
10 예수의 부활에 대한 또 한 사람의 뛰어난 증인은 야고보였는데, 그는 요셉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야고보는 예수의 부활이 있기 전에는 믿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 7:5) 그러나 예수께서 야고보에게 나타나신 후에, 그는 믿는 사람이 되었고, 아마 나머지 형제들을 개종시키는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1:13, 14)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나셔서, 그들에게 “땅의 가장 먼 곳까지 이르러 ···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1:6-11) 후에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인 타르수스의 사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도 22:6-8) 예수께서는 “달이 차지 못해서 태어난 자”에게 나타나시듯 사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기름부음받은 자들의 부활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때가 되기 여러 세기 전에 사울이 영의 생명으로 부활되어 영광스럽게 되신 주를 미리 볼 수 있었던 것과도 같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사울은, 살해할 기세로 그리스도인 회중을 반대하던 자신의 행로를 갑자기 중단하고 주목할 만한 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9:3-9, 17-19) 사울은 사도 바울이 되어, 가장 탁월하게 그리스도인 믿음을 옹호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고린도 첫째 15:9, 10.
부활에 대한 믿음은 필수적이다
11. 바울은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그릇됨을 어떻게 폭로하였습니까?
11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잘 증명된 사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논박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으셨다고 전파되고 있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고린도 첫째 15:12) 그러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도 부활에 대해 의심이나 의문을 품고 있었으며, 또한 그러한 불신을 공공연히 표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의 추리가 그릇됨을 폭로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일으킴을 받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소식도 거짓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한 사람들도 “하느님의 거짓 증인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일으킴을 받지 않으셨다면, 대속물이 하느님께 지불되지 않은 것이 되며,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죄 가운데’ 있는 것이 됩니다. (고린도 첫째 15:13-19; 로마 3:23, 24; 히브리 9:11-14) 그리고 이미 “죽어 잠든” 그리스도인들도, 순교를 당한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진정한 희망이 전혀 없이 소멸되어 버린 것입니다. 현 생명이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할 수 있는 전부라면, 그들은 참으로 불쌍한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난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일 것입니다.
12. (ㄱ) 그리스도를 “죽어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라고 부른 것은 무엇을 시사합니까? (ㄴ)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부활이 가능해지게 하셨습니까?
12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그분은 “죽어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이십니다. (고린도 첫째 15:20) 이스라엘 사람들이 순종적으로 자신들이 생산한 첫 열매를 여호와께 바쳤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풍성한 수확을 거두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출애굽 22:29, 30; 23:19; 잠언 3:9, 10) 바울은 그리스도를 “첫 열매”라고 부름으로써, 죽음으로부터 일으킴을 받아 하늘 생명을 누리게 될 사람들을 수확하는 일이 더 있을 것임을 시사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있게 되었으므로, 죽은 사람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15:21, 22)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대속물로 주심으로써 부활이 가능해지게 하셨고, 인류가 죄와 죽음의 종살이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갈라디아 1:4; 베드로 첫째 1:18, 19.a
13. (ㄱ) 하늘로 부활되는 일은 언제 있습니까? (ㄴ) 일부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어떻게 “죽어 잠들”지 않을 수 있습니까?
13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각자 자기 순위대로 될 것입니다. 첫 열매는 그리스도요, 그 후에는 그의 임재 중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고린도 첫째 15:23)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33년에 부활되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인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은 예수께서 왕으로 임재하기 시작하신 직후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서 예언은 그분의 임재가 1914년에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4:14-16; 계시 11:18) 그 임재 기간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신성한 비밀을 말합니다. 우리가 모두 죽어 잠들 것이 아니요, 도리어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리는 동안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들이 부패하지 않을 것으로 일으킴을 받을 것이며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15:51, 52) 분명히 모든 기름부음받은 자들이 무덤에서 잠을 자면서 부활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임재 기간에 죽는 사람들은 죽는 즉시 변화됩니다.—계시 14:13.
14.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어떻게 “죽은 사람이 될 목적으로 침례를 받”습니까?
14 바울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은 사람이 될 목적으로 침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 죽은 사람들이 결코 일으킴을 받지 못한다면, 왜 그들이 또한 그렇게 될 목적으로 침례를 받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또한 시시각각으로 위험에 처해 있습니까?” (고린도 첫째 15:29, 30) 일부 성서 번역판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을 위해 침례를 받는 것처럼 번역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침례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죽은 영혼이 제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요한 4:1) 오히려 바울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논하는데, 그 가운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시시각각으로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로마 6:3) 그들은 기름부음받은 이후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같은 죽음으로 인도하게 될 행로 안으로 “침례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 10:35-40) 그들은 영광스러운 하늘 부활의 희망을 품은 채 죽게 될 것이었습니다.—고린도 첫째 6:14; 빌립보 3:10, 11.
15. 바울은 무슨 위험들을 겪었을지 모르며, 부활에 대한 믿음은 그러한 위험을 견디는 데 어떤 역할을 하였습니까?
15 이제 바울은 “나는 매일 죽음에 직면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직접 위험에 직면해 왔음을 설명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과장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비난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분에 대한 환희를 두고 이것을 확언합니다.” 「공동번역」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나의 자랑으로 생각하며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있읍니다.” 바울은 32절에서 자신이 직면한 위험들의 한 가지 예로서, “에베소에서 야수들과 싸”운 일을 언급합니다. 로마 사람들은 흔히 범죄자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야수들에게 던져 주어 처형시켰습니다. 바울이 문자적으로 야수들과 싸웠다면, 그는 오직 여호와의 도움으로만 생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활 희망이 없이 그러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인생 행로를 선택하였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장래 생명에 대한 희망도 없이 하느님을 섬기는 데 따르는 난관과 희생을 견딘다면, 그것은 거의 의미 없는 일일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죽은 사람들이 일으킴을 받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고 말할 것입니다.”—고린도 첫째 15:31, 32; 참조 고린도 둘째 1:8, 9; 11:23-27.
16. (ㄱ)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 수 있습니까? (ㄴ) 그러한 견해를 갖게 될 때 무슨 위험이 따를 수 있었습니까?
16 바울은 여기서 이사야 22:13을 인용하여 말한 것일 수 있는데, 그 구절에서는 불순종한 예루살렘 주민들의 숙명론적인 태도를 묘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피쿠로스파 사람들의 생각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사후 생명에 대한 어떤 희망도 경멸하면서 육적인 쾌락이 인생에서 최고의 선(善)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느 경우이든, “먹고 마시자”는 철학은 불경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릇 인도되지 마십시오. 나쁜 교제는 유익한 습관을 망칩니다.” (고린도 첫째 15:33) 부활을 배척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 해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교제가 바울이 고린도 회중에서 다루어야 했던 문제들을 일으켰을 수 있는데, 그러한 문제들 가운데는 성적 부도덕과 분열, 소송을 제기하는 일, 주의 만찬에 대한 불경스러운 태도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고린도 첫째 1:11; 5:1; 6:1; 11:20-22.
17. (ㄱ)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무슨 권고를 하였습니까? (ㄴ) 대답되어야 할 무슨 질문들이 남아 있습니까?
17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건설적인 권고를 합니다. “의로운 길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고 죄를 거듭 짓지 마십시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수치스럽게 하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15:34) 부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영적으로 인사불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깨어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영적으로 깨어서 세상의 회의적인 견해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늘 부활의 희망에 굳게 고착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고린도 사람들과 현재의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4만 4000명은 어떤 몸으로 일으킴을 받아 하늘로 가는가? 그리고 하늘 희망이 없이 아직 무덤 속에 있는 그 밖의 수많은 사람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부활이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입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우리는 바울이 부활에 관해 논한 내용의 나머지 부분을 검토할 것입니다.
[각주]
a 대속에 대해 검토해 보려면, 「파수대」 1991년 2월 15일 호 참조.
기억하십니까?
◻ 예수께서는 부활과 관련하여 어떤 빛을 비추셨습니까?
◻ 그리스도의 부활의 목격 증인들 가운데는 누가 있었습니까?
◻ 부활 교리가 도전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며, 바울은 어떻게 대응하였습니까?
◻ 부활에 대한 믿음이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5면 삽화]
야이로의 딸은 부활이 가능함을 보여 준 증거가 되었다
[16, 17면 삽화]
부활 희망이 없다면,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순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