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은 불을 견딜 것인가?
“각자는 자기가 어떻게 그 [기초] 위에 짓고 있는지 계속 살펴야 합니다.”—고린도 첫째 3:10.
1.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제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어떤 희망을 품습니까?
그리스도인 부부가 이제 막 태어난 자신들의 아기를 바라봅니다. 왕국 전도인이 성서 연구생의 얼굴에 열정과 관심이 역력히 나타나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인 장로가 연단에서 가르치는 도중에 청중 가운데서 자기 성서로 열심히 성구를 찾아보고 있는 새로운 관심자를 눈여겨봅니다. 이 충실한 여호와의 종들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히 ‘이 아기가, 혹은 이 사람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섬기게 될 것인가? 그리고 끝까지 충실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러한 결과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결과를 얻는 데는 일 즉 노력이 필요합니다.
2. 사도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치는 일의 중요성을 어떻게 일깨워 주었으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무슨 자기 검토를 해 보게 합니까?
2 매우 능숙하게 가르치는 자였던 바울은 가르치고 제자를 삼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시간으로 볼 때에 여러분은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할 터[입니다].” (히브리 5:12) 바울에게 그러한 편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믿는 사람이 된 기간을 생각해 볼 때, 거의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기는커녕 진리의 기본적인 부면에 대해서도 다시 일깨움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도 때때로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점검해 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3. (ㄱ)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제자를 삼는 과정을 무엇에 비하였습니까? (ㄴ) 그리스도인 건축자로서 우리는 무슨 큰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3 바울은 넓은 의미로 적용되는 예를 사용하여, 제자를 삼는 일을 건물을 건축하는 과정에 비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동료 일꾼들입니다. 여러분은 경작되고 있는 하느님의 밭이요,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고린도 첫째 3:9)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관련된 건축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세우는 일 즉 사람들을 건축하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의 동료 일꾼으로서 그렇게 합니다. (히브리 3:4) 이것은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베푼 영감받은 교훈이 우리가 우리의 일에 더욱 능숙해지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가르치는 기술”에 특히 초점을 맞추어 살펴볼 것입니다.—디모데 둘째 4:2.
올바른 기초를 놓는 일
4. (ㄱ) 그리스도인 건축 활동에서 바울의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ㄴ) 예수는 물론 그분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까지도 튼튼한 기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견고하고 내구성 있는 건물이 되려면, 튼튼한 기초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에 따라 지혜로운 공사 감독처럼 기초를 놓았습니다.” (고린도 첫째 3:10)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비슷한 예를 사용하셔서, 건축자가 견고한 기초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폭풍을 견딜 수 있었던 집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가 6:47-49) 예수께서는 기초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여호와께서 바로 이 땅의 기초를 놓으셨을 때 함께 계셨습니다.a (잠언 8:29-31) 예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도 튼튼한 기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때때로 돌발 홍수나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럴 경우 튼튼하게 기초가 놓인 집들만이 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무슨 기초를 염두에 둔 것입니까?
5. 그리스도인 회중의 기초는 누구이며, 그 점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었습니까?
5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놓여 있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 첫째 3:11) 예수를 기초에 비한 것이 이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이사야 28:16에서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여호와께서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아들을 그리스도인 회중의 기초로 삼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시 118:22; 에베소 2:19-22; 베드로 첫째 2:4-6.
6. 바울은 어떻게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기초를 놓았습니까?
6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에 놓여져 있는 기초—예수 그리스도—외에는 기초가 없습니다. 바울은 확실히 그러한 기초를 놓았습니다. 철학이 매우 높이 평가받던 고린도에서, 바울은 세상적인 지혜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기둥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는데, 이방 사람들은 그것을 매우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 배척하였습니다. (고린도 첫째 1:23) 바울은 예수께서 여호와의 목적에서 중심이 되시는 분이라고 가르쳤습니다.—고린도 둘째 1:20; 골로새 2:2, 3.
7. 우리는 바울이 자신을 “지혜로운 공사 감독”으로 언급한 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7 바울은 자신이 “지혜로운 공사 감독처럼” 그러한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 본위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놀라운 선물을, 즉 조직하고 인도하는 일이라는 선물을 자신에게 주셨음을 단순히 시인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첫째 12:28) 오늘날 우리에게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기적의 선물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자신이 뛰어난 재능을 선물로 받은 가르치는 자라고 생각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의미에서 우리는 뛰어난 재능을 선물로 받은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돕기 위해 자신의 성령을 주십니다. (비교 누가 12:11, 12) 그리고 우리는 여호와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말씀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참으로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선물을 사용하여 올바른 기초를 놓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합시다.
8. 우리는 제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를 기초로 놓을 수 있습니까?
8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초로 놓을 때, 그분이 구유에 있는 무력한 아기라거나 삼위일체 신의 한 위로서 여호와와 동등하신 분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한 비성경적인 개념들은 사이비 그리스도인들의 기초가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분이 이제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분이라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완전한 생명을 포기하신 분이라고, 여호와께서 임명하신 왕으로서 지금 하늘에서 통치하고 계신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로마 5:8; 계시 11:15) 우리는 또한 연구생들에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그분의 특성을 본받으려는 동기를 심어 주고자 노력합니다. (베드로 첫째 2:21) 우리는 연구생들이, 봉사의 직무에 대한 예수의 열심과 비천하고 압제받는 자들에 대한 그분의 동정심과 자기가 지은 죄에 억눌린 죄인들에 대한 그분의 자비와 시련에 직면해서도 흔들림이 없는 그분의 용기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예수께서는 탁월한 기초가 되십니다. 그러면 기초를 놓은 다음에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합당한 재료로 건축함
9. 바울은 주로 기초를 놓는 일을 하였지만, 자신이 가르친 것을 진리로 받아들인 사람들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9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그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목재나 건초나 곡초 그루터기로 집을 짓는다면, 각자의 일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것이 불에 의해서 밝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 그 자체가 각자의 일이 어떤 것인지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3:12, 13) 바울의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울이 그러한 말을 한 배경을 고려해 봅시다. 바울은 주로 기초를 놓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선교 여행 중에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그리스도에 관해 들어 본 적이 전혀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로마 15:20) 사람들이 그가 가르친 진리를 받아들이면서, 회중들이 형성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충실한 사람들에 대해 깊이 염려하였습니다. (고린도 둘째 11:28, 29)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수행하는 일 때문에 계속해서 옮겨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에서 18개월을 보내면서 기초를 놓은 후에, 다른 도시들에서 전파하기 위해 그 곳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 곳에서 수행했던 일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계속 돌보고 있는지에 대해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사도 18:8-11; 고린도 첫째 3:6.
10, 11. (ㄱ) 바울은 서로 다른 건축 재료들을 어떻게 대조하였습니까? (ㄴ) 고대 고린도에는 실제로 어떤 종류의 건물들이 있었을 것입니까? (ㄷ) 어떤 종류의 건물들이 불을 더 잘 견딜 수 있으며,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 제자를 삼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교훈이 되는 예가 됩니까?
10 바울이 고린도에서 놓았던 기초 위에 짓는 일 즉 건축하는 일을 하던 일부 사람들은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 문제를 분명히 지적하기 위해, 두 종류의 건축 재료를 대조합니다. 한 가지는 금과 은과 보석이며, 다른 한 가지는 목재와 건초와 곡초 그루터기입니다. 건물은 질 좋고 내구성 있는 내화 재료로 세울 수도 있고, 쉽게 부서지고 금세 손상되는 인화성 재료로 급히 지을 수도 있습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고린도와 같은 대도시에는 두 종류의 건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거대하고 값비싼 석재들로 만든 인상적인 신전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신전들은 앞쪽 면이나 일부분이 금과 은으로 입혀져 있거나 장식되어 있었을 것입니다.b 내구성 있는 그러한 건물들은 잘 다듬어지지 않은 목재로 기둥과 보를 만들고 짚으로 지붕을 인 근처의 허름한 오두막과 헛간과 가게들에 비해 참으로 웅장해 보였을 것입니다.
11 이러한 건물들에 화재가 났을 경우 어떻게 됩니까? 그 대답은 우리 시대만큼이나 바울 당시에도 명백하였습니다. 사실 고린도 시는 과거 기원전 146년에 로마 장군 무미우스에게 정복당하여 불에 탄 적이 있었습니다. 목재나 건초나 곡초 그루터기로 된 많은 건물들은 틀림없이 전소되었을 것입니다. 석재로 지어서 금과 은으로 장식한 튼튼한 건물들의 경우는 어떠하였습니까? 틀림없이 그 건물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에 있던 바울의 연구생들은 날마다 그러한 건물들 옆을 지나다녔을 것입니다. 근처의 내구성 없는 건물들은 오래 전에 완전히 주저앉았지만, 그러한 석재 건물들은 재난을 견디고 당당하게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참으로 실감나게 요점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가르칠 때 우리는 자신을 건축자로 간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내구성이 가장 강한 최상의 재료로 건축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수행한 일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구성 있는 재료란 무엇이며, 그러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일은 불을 견딜 것인가?
12. 고린도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날림 공사를 하듯 건축을 하고 있었습니까?
12 분명히 바울은 고린도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건축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문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 회중은 분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회중의 연합에 위협이 되는데도 인간의 성품에 찬사를 돌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아폴로스에게 속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육적인 생각과 영적인 비장성이 가득하고 “질투와 분쟁”이 만연한 분위기가 감돌게 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첫째 1:12; 3:1-4, 18) 그러한 태도가 분명히 그 회중 내에서 그리고 봉사의 직무에서 수행되던 가르치는 일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로 인해 날림 공사를 하듯 제자를 삼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질이 나쁜 재료로 부실 공사를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한 일은 “불”을 견디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무슨 불에 대해 말한 것입니까?
13. 바울의 예에 나오는 불은 무엇을 상징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점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까?
13 우리 모두가 생활 가운데 직면하게 되는 불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시험들입니다. (요한 15:20; 야고보 1:2, 3)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우리처럼 다음과 같은 점을 반드시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즉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침받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서글픈 결과를 거두게 될지 모릅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그 위에 건축한 일이 남아 있다면 그는 상을 받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일이 타 버린다면 그는 손실을 입겠지만, 그 사람 자신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불을 통과한 것 같을 것입니다.”c—고린도 첫째 3:14, 15.
14. (ㄱ) 그리스도인 제자를 삼는 사람들이 어떻게 “손실을 입”을 수 있으며,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불을 통과하는 것처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손실을 입을 위험성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까?
14 실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자가 되도록 돕기 위해 열심히 일하였는데, 결국 그 사람이 유혹이나 박해에 굴복하여 진리의 길을 떠나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경우에 손실을 입게 된다고 말함으로 바로 그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한 경험은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구원이 ‘불을 통과하는 것 같’다고 묘사됩니다. 마치 불이 나서 모든 것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진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은 어떻게 손실을 입을 위험성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까? 내구성 있는 재료로 건축하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연구생들의 마음에 이르도록 가르쳐서 그들이 감동을 받아 지혜와 분별력과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과 진정한 믿음과 같은 귀중한 그리스도인 특성들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된다면, 우리는 내구성 있는 내화 재료로 건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 19:9, 10; 잠언 3:13-15; 베드로 첫째 1:6, 7) 이러한 특성들을 얻게 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계속 행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첫째 2:17) 하지만 우리는 바울의 예를 어떻게 실제로 활용할 수 있습니까? 다음의 몇 가지 예들을 고려해 보십시오.
15.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성서 연구생들과 관련하여 날림 공사를 하듯 건축하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까?
15 성서 연구생들을 가르칠 때 우리는, 여호와 하느님보다 인간을 더 두드러지게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 자신을 지혜의 주된 근원으로 여기도록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이 지침을 얻기 위해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조직을 바라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는 그들이 하는 질문에 대해 단지 우리 자신의 견해로만 대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서와 “충실하고 분별 있는 종”이 마련해 준 출판물들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대답을 찾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마태 24:45-47) 그와 비슷한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성서 연구생들을 독점하려고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연구생들에게 관심을 나타낼 때 기분 나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연구생들에게 그들의 애정을 ‘넓혀서’ 가능한 한 회중 내의 많은 사람들과 친숙해지고 그들의 좋은 점들을 알아 나가도록 권해야 합니다.—고린도 둘째 6:12, 13.
16. 장로들은 어떻게 내화 재료로 건축할 수 있습니까?
16 그리스도인 장로들 역시 제자를 세우는 일에서, 즉 건축하는 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장로들은 회중 앞에서 가르치는 일을 할 때, 내화 재료로 건축하려고 노력합니다. 가르치는 능력과 경험과 개성은 매우 다양할지 모르지만, 장로들은 그러한 차이점들을 이용하여 추종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비교 사도 20:29, 30) 우리는 고린도 회중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바울에게 속해 있다”거나 ‘나는 아폴로스에게 속해 있다’고 말하였던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충실한 장로들 자신은 결코 그러한 분열적인 생각을 조장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견해들 때문에 우쭐해졌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견해들을 강력하게 논박하였습니다. (고린도 첫째 3:5-7) 그와 비슷하게 오늘날에도 장로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양 무리”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둡니다. (베드로 첫째 5:2) 하느님의 양 무리는 어느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어느 한 사람이 양 무리나 장로의 회를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을 경우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장로들이 겸손한 열망이 동기가 되어 회중을 섬기고 마음에 호소하고 양들이 영혼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도록 돕고 있다면, 그들은 내화 재료로 건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17.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어떻게 내화 재료로 건축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까?
17 그리스도인 부모들 역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영원히 사는 것을 보기를 진정으로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의 원칙들을 “부지런히 가르”쳐서 자녀들의 마음에 새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신명 6:6, 7) 그들은 자녀들이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는데, 단지 일종의 규범집이나 장황한 교리 설명문으로서가 아니라 만족스럽고 보람 있으며 행복한 생활의 길로서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디모데 첫째 1:11)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 즉 건축하기 위해, 사랑이 많은 부모들은 내화 재료를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참을성 있게 자녀들과 함께 노력하면서, 자녀들이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특성들을 다 뿌리 뽑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특성들을 기르도록 돕습니다.—갈라디아 5:22, 23.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18. 어느 제자가 건전한 가르침을 배척할 경우, 그것이 반드시 그를 가르치고 훈련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이러한 검토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도와 주려고 노력하였으나 그 사람이 진리에서 떨어져 나갈 경우, 그것은 우리가 가르치는 자로서 실패하였음을,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질이 나쁜 재료로 부실 공사를 한 것이 틀림없음을 의미합니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말은, 제자를 삼는 일 즉 건축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튼튼하게 건축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거나 우리가 도우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경우 우리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건축자로서 우리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 외에도 관련된 다른 요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 한 이러한 말에 유의하십시오. 바울은 이 건축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가르치는 자들에 대해서조차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는 손실을 입겠지만, 그 사람 자신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3:15) 그러한 사람도 결국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연구생에게 그리스도인 성품을 심어 주려고 즉 건축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불 같은 시험에 직면하여 “타 버린” 경우라고 할 때,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됩니까? 분명히 우리는 충실한 행로를 걸을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주된 책임은 연구생 자신에게 있다는 견해를 여호와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19. 이어지는 기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살펴볼 것입니까?
19 개인적인 책임 즉 각자의 책임이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입니다. 구체적으로 성서는 이 문제에 관해 무엇이라고 가르칩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그 점을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a “땅의 기초”라는 말은 지구와 모든 천체가 제 궤도에 머물게 해주는 물리학적 힘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더욱이 지구 자체는 결코 “요동”하지 않도록, 즉 멸망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시 104:5.
b 바울이 언급한 “보석”이 반드시 다이아몬드나 루비와 같은 보석류라고는 할 수 없다. 대리석, 설화석고, 화강암과 같은 값비싼 건축용 석재를 말한 것일 수도 있다.
c 바울은 건축자가 아니라 건축자의 “일”이 구원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신 영어 성서」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어떤 사람의 건물이 서 있다면 그 사람은 상을 받을 것이지만, 건물이 불에 탄다면 그는 손실을 입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불 속에서 나오는 사람처럼, 도피해 나와 목숨은 건질 것입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기초”는 무엇이며, 그 기초는 어떻게 놓이게 됩니까?
□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건축 재료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 “불”은 무엇을 상징하며, 불로 인해 어떻게 일부 사람들이 “손실을 입”게 될 수도 있습니까?
□ 성서를 가르치는 자들과 장로들과 부모들은 어떻게 내화 재료로 건축할 수 있습니까?
[9면 삽화]
많은 고대 도시들에는 내화 재료로 지은 석재 건물들과 허술한 건물들이 함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