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경주를 포기하지 말라!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써 달립시다.”—히브리 12:1.
1, 2. 흥분하게 하는 무슨 일들이 이 마지막 날에 여호와의 종들을 가슴 설레게 해 왔습니까?
우리는, 흥분하게 하는 시대인 동시에 도전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80여 년 전인 1914년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하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셨습니다. “주의 날”이 그리고 그와 더불어 현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계시 1:10; 다니엘 12:9) 그 때 이후로 생명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경주에는 긴박감이 고조되어 왔습니다. 하느님의 종들은 여호와의 하늘 조직인 그분의 하늘 수레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힘써 노력해 왔으며, 그 하늘 수레는 여호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저지할 수 없게 전진하고 있습니다.—에스겔 1:4-28; 고린도 첫째 9:24.
2 하느님의 백성은 영원한 생명을 향한 ‘경주를 달리’면서 기쁨을 발견해 왔습니까? 그렇습니다. 참으로 기쁨을 발견하였습니다! 증인들은 예수의 형제들의 남은 자들을 모으는 일을 보고 가슴 설레었으며, 14만 4000명의 남은 자들에게 최종 인장을 찍는 일이 거의 완료되어 가는 것을 깨닫고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계시 7:3, 4) 더욱이 증인들은 여호와께서 임명하신 왕이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수확할 것”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분별하고는 흥분하고 있습니다. (계시 14:15, 16) 더욱이 수확할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마태 9:37) 지금까지 500만 명이 넘는 영혼들이 모아들여져—‘아무도 셀 수 없는, 모든 나라와 부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계시 7:9) 어느 누구도 이 무리가 마침내 얼마나 큰 무리가 될 것인지를 말할 수 없는데,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무슨 일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영을 배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까?
3 사실, 우리가 이 경주에서 속도를 내어 계속 달릴 때 사탄은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우리의 속도를 늦추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계시 12:17) 그리고 이 마지막 때의 특징을 이루는 것들인 전쟁과 기근과 역병과 그 밖의 온갖 난관들 속에서 계속 달려 온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태 24:3-9; 누가 21:11; 디모데 둘째 3:1-5) 그렇지만 경주의 끝이 가까워짐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고동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그 당시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지라고 강력히 권한 이러한 영을 반영하고자 애씁니다.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다시 한번 말하는데, 기뻐하십시오!”—빌립보 4:4.
4.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종류의 영을 분명히 나타냈습니까?
4 바울에게서 그러한 권고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틀림없이 자기들의 믿음 가운데서 기쁨을 발견하고 있었을 것인데, 바울이 그들에게 “주 안에서 계속 기뻐하십시오”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3:1) 빌립보 사람들의 회중은 열심과 열정을 가지고 섬기던 관대하고 사랑에 찬 회중이었습니다. (빌립보 1:3-5; 4:10, 14-20) 그러나 1세기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그러한 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 쓴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를 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염려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5. (ㄱ) 최초의 그리스도인 회중이 형성되었을 때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영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ㄴ) 기원 60년경에 일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냈던 영을 설명해 보십시오.
5 세계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그리스도인 회중은 육적 유대인들과 개종자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기원 33년에 예루살렘에서 설립되었습니다. 그 회중은 어떤 종류의 영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사도들의 활동 책의 처음 몇 장만 읽어 보아도, 그 회중이 가졌던, 심지어 박해에 직면해서도 가졌던 열정과 기쁨에 대해 알게 됩니다. (사도 2:44-47; 4:32-34; 5:41; 6:7)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르면서 상황이 변했으며,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위한 경주에서 속도를 늦추었던 것 같습니다. 한 참고 서적에서는 기원 60년경에 존재했던 그들의 상황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태하고 지친 상태, 기대가 어긋나고 희망이 뒤로 미루어지고 패배감에 싸여 매사가 불신에 찬 상태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들이 받은 부르심의 영광스러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러한 상태에 빠질 수 있었습니까?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기원 61년경에 기록된 편지)의 일부를 고려해 보는 것은, 우리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한 고려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그와 비슷하게 영적으로 약한 상태에 빠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6. 모세의 율법 아래 드리던 숭배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숭배 사이에는 무슨 차이점들이 있습니까?
6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에서, 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순종한다고 주장하는 제도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율법의 매력에 계속 이끌렸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것이 여러 세기 동안 여호와께 가까이 가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또한 제사직과 정기적인 희생과 예루살렘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전을 갖춘 인상적인 숭배 제도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그와는 달랐습니다. 그리스도교에는 모세가 가졌던 것과 같은 영적인 시력이 필요한데, 모세는 “[먼 장래에 있을] 상 주심을 열렬히 바라보았”으며 “보이지 않는 분을 보고 있는 것처럼 계속 확고하게 행하였”습니다. (히브리 11:26, 27)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그러한 영적인 시력이 약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목적 의식을 가지고 달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7. 우리가 나온 사물의 제도는 생명을 위한 경주에서 우리가 달리는 방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7 오늘날에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존재합니까? 물론 상황이 그 당시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랑하기를 대단히 좋아하는 사물의 제도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흥미진진한 기회들을 제공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에게 힘겨운 요구를 합니다. 그에 더하여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회의적인 태도가 널리 퍼져 있으며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자아 제일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제도에 영향을 받게 우리 자신을 내버려 둔다면, ‘우리의 마음의 눈’은 쉽게 흐려질 수 있습니다. (에베소 1:18)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더는 명확하게 분별할 수 없다면, 어떻게 생명을 위한 경주를 잘 달릴 수 있겠습니까?
8. 그리스도교가 율법 아래 드리던 숭배보다 우월한 몇 가지 부면은 무엇입니까?
8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고무하기 위해,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교 제도가 모세의 율법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육적 이스라엘 나라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율법 아래 있었을 때, 여호와께서 영감받은 예언자들을 통해 그 나라에 말씀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울에 의하면, 오늘날 그분은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를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셨으며, 그를 통하여 사물의 제도들을 만드셨습니다.” (히브리 1:2)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자신의 “동료들”인 다윗 가계의 모든 왕들보다 더 크십니다. 심지어 그분은 천사들보다도 더 높으십니다.—히브리 1:5, 6, 9.
9. 바울 시대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9 그러므로 바울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교훈하였습니다. “우리는 들은 것들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 2:1) 그리스도에 관해 배워 아는 것이 놀라운 축복이기는 하였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둘러싼 유대 세계의 영향력에 대항하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선전들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연구 습관을 발전시키고 유익한 성서 읽기 계획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의 뒷부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또한 집회에 참석하고 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에서 정기적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 10:23-25) 그러한 활동은 우리가 계속 영적으로 깨어서 우리의 영광스러운 희망을 잊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을 여호와의 생각으로 채운다면,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한다 하더라도 압도당하거나 균형을 잃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시 1:1-3; 잠언 3:1-6.
‘서로 계속 권고하십시오’
10. (ㄱ) 여호와의 말씀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서로 계속 권고”할 수 있습니까?
10 우리가 영적인 것들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경우, 하느님의 약속은 쉽사리 비현실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1세기에도 있었는데, 그 당시는 회중 전체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사도들 가운데 몇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을 때였습니다. 바울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 중에 누구도 살아 계신 하느님에게서 떠나가 믿음이 결핍된 악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도리어 ‘오늘’이라고 부르는 동안에 매일 서로 계속 권고하여, 여러분 중에 누구도 죄의 기만적인 힘에 의하여 완고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히브리 3:12, 13) “조심하십시오”라는 바울의 표현은 깨어 있을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핍—“죄”—이 우리의 마음속에 생길 수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 4:8) 바울은 우리에게 “계속 서로 권고”할 것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에게는 형제 교제가 주는 따뜻함이 필요합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잠언 18:1) 그러한 교제의 필요성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회중 집회와 크고 작은 대회들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게 합니다.
11, 12. 우리가 단지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를 아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바울은 자신의 편지의 나중 부분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이러한 교훈을 더 베풉니다. “시간으로 볼 때에 여러분은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할 터인데, 하느님의 신성한 선언에 관한 초보적인 것들을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다시 가르침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사람들, 곧 사용함으로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하도록 지각력을 훈련시킨 이들에게 속한 것입니다.” (히브리 5:12-14) 분명히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해력에 있어서 진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할례와 관련하여 증가된 빛을 받아들이는 데 느렸습니다. (사도 15:27-29; 갈라디아 2:11-14; 6:12, 13) 그런가 하면 매주 안식일과 엄숙한 연례 속죄일과 같은 전통적인 관습들을 여전히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릅니다.—골로새 2:16, 17; 히브리 9:1-14.
12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떠났으므로, ··· 장성을 향하여 밀고 나아갑시다.” (히브리 6:1) 식단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는 마라톤 주자는 길고 기진 맥진하게 하는 경주를 인내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그와 비슷하게—기본 교리, 즉 “초보적인 교리”만으로 국한시키지 않고—영적인 자양분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는 그리스도인은 경주로에서 이탈하는 일 없이 완주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비교 디모데 둘째 4:7) 이렇게 하는 것은 진리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킴으로 장성을 향하며 진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에베소 3:18.
‘여러분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13.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어떻게 자기들의 믿음을 분명히 나타냈습니까?
13 기원 33년 오순절 직후에 있었던 기간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격렬한 박해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8:1) 아마 바울은 그 기간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썼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을 당하면서 큰 싸움을 인내한 이전의 날들을 계속 기억하십시오.” (히브리 10:32) 그러한 충실한 인내를 통해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분명히 나타냈으며 그분 앞에서 말의 자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요한 첫째 4:17) 바울은 그들에게 믿음의 결핍 때문에 그러한 자유를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권고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강력히 권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의 성취를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조금만’ 있으면 ‘오실 분이 도착하실 것이며 지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히브리 10:35-37.
14. 여호와를 여러 해 동안 섬겨 왔다 하더라도, 무슨 사실들이 우리가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까?
14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 대부분은 처음으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알게 되었을 때 열심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버”렸습니까? (계시 2:4) 우리는 열심이 식었거나, 어쩌면 다소 실망하게 되었거나, 아마겟돈을 기다리는 데 지치지는 않았습니까? 하지만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십시오. 진리는 이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는 여전히 하늘에 계신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지상 낙원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을 바라고 있으며, 우리가 여호와와 누리는 관계도 여전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오실 분이 도착하실 것이며 지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5. 예수처럼,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극심한 박해를 어떻게 인내해 왔습니까?
15 그러므로 히브리 12:1, 2에 기록되어 있는 이러한 바울의 말은 매우 적절합니다. “우리도 모든 무거운 것과 우리를 쉽게 얽매는 죄[믿음의 결핍]를 벗어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써 달립시다. 우리 믿음의 으뜸 행위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를 열렬히 바라보면서 그렇게 합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하여, 수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고 고통의 기둥을 인내하시어 하느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종들은 이 마지막 날에 많은 일들을 인내해 왔습니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충실하셨던 예수처럼, 우리의 형제 자매들 가운데 일부는 가장 혹독한 박해—수용소, 고문, 성폭행, 심지어 죽음—를 충실하게 인내해 왔습니다. (베드로 첫째 2:21) 그들의 충절을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은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되지 않습니까?
16, 17. (ㄱ)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에 도전이 되는 어떤 것들과 싸우고 있습니까? (ㄴ) 무엇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생명을 위한 경주를 계속 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까?
16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울이 덧붙인 이러한 말이 적용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죄와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 흘리기까지 저항한 일은 전혀 없습니다.” (히브리 12:4) 그렇지만 이 제도에서는 진리의 길이 우리 중 누구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세속 직장이나 학교에서 조롱을 인내하거나 죄를 짓게 하려는 압력에 저항하면서, ‘죄인들이 하는 반대하는 말’로 인해 낙담합니다. (히브리 12:3) 강한 유혹이 하느님의 높은 표준을 유지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결심을 약화시켜 왔습니다. (히브리 13:4, 5) 배교자들은 그들의 유독한 선전에 귀를 기울이는 몇몇 사람들의 영적인 균형에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히브리 13:9) 그런가 하면 개성의 차이 때문에 기쁨을 상실하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락과 여가 활동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일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약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현 사물의 제도에서 살면서 겪는 문제들로 인해 압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17 사실, 이러한 상황들 가운데 어느 것도 “피 흘리기까지 저항”하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들 중 일부는 우리 자신이 내린 잘못된 결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들은 우리의 믿음에 도전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세우신 인내의 탁월한 모범을 계속 주시해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결코 잊지 않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라는 확신을 결코 잃지 않기 바랍니다. (히브리 11:6)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생명을 위한 경주를 계속 달릴 영적인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인내하는 것은 가능하다
18, 19. 무슨 역사적인 사건들이, 예루살렘에 있던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영감받은 교훈을 청종하였음을 알려 줍니까?
18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편지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쓰인 지 약 6년 후, 유대는 전쟁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기원 66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함으로, 예수의 이러한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진을 친 군대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때에 그것을 황폐시키는 일이 다가온 줄 아십시오.” (누가 21:20) 하지만 그 당시에 예루살렘에 있었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십시오. 그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떠나십시오. 그리고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그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누가 21:21) 그러므로 로마와의 전쟁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시험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숭배의 중심지이자 영광스러운 성전이 있던 장소인 예루살렘을 버리고 떠날 것인가?’
19 갑자기 그리고 알려진 아무런 이유 없이, 로마 사람들은 철수하였습니다. 아마도 독실한 유대인들은 이 일을 하느님께서 자기들의 거룩한 도시를 보호하고 계시다는 증거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하였습니까? 역사는 그들이 도피하였다고 알려 줍니다. 그 후 기원 70년에 로마 사람들은 다시 와서 무시무시한 인명 손실을 초래하면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망시켰습니다. 요엘이 예언한 ‘여호와의 날’이 예루살렘에 닥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요엘 2:30-32; 사도 2:16-21.
20.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게 해야 합니까?
20 오늘날 우리는 또 하나의 “여호와의 [큰] 날”이 머지않아 현 사물의 제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요엘 3:12-14) 우리는 그 날이 언제 올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확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박국 2:3; 베드로 둘째 3:9, 10) 그러므로 “들은 것들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합시다. “우리를 쉽게 얽매는 죄”인 믿음의 결핍을 피하십시오. 인내가 요구되는 한 끝까지 인내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수레와도 같은 여호와의 거대한 하늘 조직은 전진하고 있습니다. 하늘 조직은 그 목적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생명을 위한 경주를 계속 달리고 또한 이 경주를 결코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기억하십니까?
◻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한 무슨 권고를 청종하는 것이 우리가 생명을 위한 경주를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까?
◻ 무엇이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려는 현 세상의 경향에 대항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까?
◻ 우리는 경주에서 인내하도록 어떻게 서로 도울 수 있습니까?
◻ 그리스도인이 속도를 늦추게 할 수 있는 것들 몇 가지는 무엇입니까?
◻ 예수의 모범은 우리가 인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8, 9면 삽화]
그리스도인은, 경주에 참여한 주자처럼,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10면 삽화]
그 어떤 것도 여호와의 거대한 하늘 수레가 하느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을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