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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수수께끼에 불과한 숫자가 아니다파수대—2004 |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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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수수께끼에 불과한 숫자가 아니다
“그 표 곧 야수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숫자를 가진 사람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다]. 바로 여기에 지혜가 필요하다. 총명이 있는 사람은 야수의 숫자를 계산해 보아라. 그것은 인간의 숫자로서,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이다.”—계시 13:17, 18.
성서 논제들 가운데 “야수”의 신비한 표이자 이름인 666이라는 숫자만큼 많은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영화, 서적, 잡지에서만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상에서도 야수의 표는 끝없는 추측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666이 성서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표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수가 몸에 새기는 문신이나 디지털 코드가 찍힌 인체 이식용 마이크로 칩과 같은 일종의 강제 신분증으로, 그것을 지닌 사람이 그 야수의 종임을 증명하는 표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666이 가톨릭 교황권의 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교황의 공식 직함의 한 형태인 “하느님의 아들의 대리”(Vicarius Filii Dei)에 나오는 문자들을 그에 해당하는 로마 숫자로 바꾼 다음 그 숫자들을 약간 조정하여 666을 계산해 냅니다. 또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라틴어 이름이나 네로 카이사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형태로도 그 숫자가 나오도록 계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a
이어지는 기사에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기발하고 작위적인 해석은 성서 자체에서 야수의 표에 대해 알려 주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성서는 그 표를 받은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현 사물의 제도에 끝을 가져오실 때 그분의 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계시 14:9-11; 19:20) 그러므로 666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단지 흥미 있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다행히도, 사랑의 구현이자 영적 빛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종들을 무지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디모데 둘째 3:16; 요한 첫째 1:5; 4:8.
[각주]
a 수점술에 관한 설명을 보려면, 「깨어라!」 2002년 9월 8일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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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와 야수의 표가 무엇인지 식별함파수대—2004 |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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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와 야수의 표가 무엇인지 식별함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좋아합니까? 수수께끼를 풀려면 먼저 해답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단서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영감받은 말씀을 통해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야수의 이름이자 표인 숫자 666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서들을 알려 주십니다.
이 기사에서는 야수의 표의 의미를 밝혀 줄 매우 중요한 단서들인 네 가지 주요 추론 방법을 살펴볼 것입니다. (1) 성서의 이름들은 때때로 어떻게 선택되는지, (2) 야수의 정체는 무엇인지, (3) 666이 “인간의 숫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4) 숫자 6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숫자가 세 번 연거푸, 다시 말해 600 더하기 60 더하기 6인 666으로 기록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검토할 것입니다.—계시 13:18.
성서의 이름들—단순한 명칭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성서의 이름들에는 흔히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하느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일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아브람이 나라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 족장의 이름을 “무리의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창세 17:5) 하느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마리아가 앞으로 낳을 아이를 예수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의미합니다. (마태 1:21; 누가 1:31)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의미 깊은 이름과 일치하게, 예수의 봉사의 직무와 희생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요한 3:16.
따라서 하느님께서 주신 숫자로 된 이름인 666은 하느님께서 그 야수 특유의 속성으로 여기시는 어떤 것을 상징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러한 특성이 무엇인지 알려면 야수의 정체를 식별하고 야수가 하는 행동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밝혀진 야수의 정체
성서 다니엘서는 상징적인 짐승들의 의미에 대해 계몽적인 지식을 알려 줍니다. 7장에서는 “거대한 짐승 넷”—사자, 곰, 표범, 철로 된 큰 이빨을 가진 두려움을 갖게 하는 짐승—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다니엘 7:2-7) 다니엘은 이 짐승들이 광대한 제국들을 연이어서 통치할 ‘왕들’ 곧 정치적 왕국들을 상징한다고 알려 줍니다.—다니엘 7:17, 23.
「해설자의 성서 사전」(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에서는 계시록 13:1, 2의 야수와 관련하여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 짐승에는] 다니엘의 환상의 네 짐승의 특징이 합쳐져 있다. ··· 따라서 [계시록의] 이 첫째 짐승은 하느님을 반대하여 규합한 모든 정치 세력을 상징한다.” 이러한 견해가 옳다는 것은 계시록 13:7에 의해 확증되는데, 그 구절에서는 그 짐승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야수에게는 ··· 모든 부족과 백성과 언어와 나라를 다스릴 권위가 주어졌다.”a
성서에서 인간 통치권의 상징으로 짐승들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정부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짐승 같은 행동으로 유혈의 기록을 쌓아 왔기 때문입니다. 역사가인 윌 듀랜트와 에어리얼 듀랜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늘 있어 온 한 가지 요소이며, 문명이 성립되고 민주주의가 정착되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참으로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여 해롭게” 해 왔습니다! (전도 8:9) 두 번째 이유는, “용[즉 사탄]이 야수에게 그 권세와 왕좌와 큰 권위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계시 12:9; 13:2) 그러므로 인간 통치권은 마귀의 고안물이며, 따라서 짐승 같고 용 같은 사탄의 성향을 반영합니다.—요한 8:44; 에베소 6:12.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 통치자가 사탄의 직접적인 도구라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한 가지 면으로는 인간 정부들이 “하느님의 봉사자” 역할을 하여 인간 사회의 안정에 기여합니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정부들이 없다면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지도자들은 참 숭배에 참여하는 권리를 포함하여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해 왔는데, 이것은 사탄이 원치 않는 일입니다. (로마 13:3, 4; 에스라 7:11-27; 사도 13:7) 하지만 마귀의 영향 때문에 어떤 인간이나 인간 제도도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지는 못하였습니다.b—요한 12:31.
“인간의 숫자”
666의 의미를 알아내는 세 번째 단서는 그 숫자가 “인간의 숫자”라는 데 있습니다. 이 표현이 어떤 한 사람을 가리킬 수는 없는데, 그 야수를 지배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자는 어떤 인간이 아니라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4:5, 6; 요한 첫째 5:19; 계시 13:2, 18) 오히려, 야수가 “인간의 숫자” 곧 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야수의 실체가 영이나 악귀가 아니라 인간과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인간이 지닌 어떤 특성들을 나타낸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러한 특성들로 무엇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성서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느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로마 3:23) 그러므로 야수가 “인간의 숫자”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정부들이 죄와 불완전성의 표인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역사는 그 사실을 확증합니다. 미국 국무 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문명은 결국 붕괴되었다. 역사는 실패로 끝난 노력들, 실현되지 못한 염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 그러므로 역사가라면 누구나 비극을 피할 수 없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키신저의 정직한 평가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성서 진리가 참됨을 증명합니다. “땅의 사람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습니다]. ··· 자기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걷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예레미야 10:23.
야수가 무엇인지 식별하였고 하느님께서 야수를 어떻게 여기시는지를 분별하였으므로, 이제는 이 수수께끼의 마지막 단계로, 숫자 6의 의미와 그 숫자가 세 번 연거푸—다시 말해 600 더하기 60 더하기 6인 666으로—쓰여 있는 이유에 대해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6이 세 번 연거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특정한 숫자들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숫자 7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온전하거나 완전한 것을 상징하는 데 흔히 사용됩니다. 이를테면, 하느님의 창조 주간은 각각 긴 기간인 일곱 “날”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기간에 땅과 관련된 자신의 창조 목적을 온전히 달성하십니다. (창세 1:3–2:3) 하느님의 “말씀”은 “일곱 번 정제”하여 완전히 정련한 은과 같습니다. (시 12:6; 잠언 30:5, 6) 나병 환자인 나아만은 요르단 강에 일곱 번 목욕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렇게 하자 온전히 고침을 받았습니다.—열왕 둘째 5:10, 14.
6은 7에서 하나가 부족한 숫자입니다. 따라서 6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불완전하거나 결함이 있는 어떤 것을 적절하게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로 그러합니다! (역대 첫째 20:6, 7) 게다가 666으로 6이 세 번 연거푸 나오는 것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크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가 정확하다는 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666이 “인간의 숫자”라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따라서 야수가 남긴 기록과 야수가 “인간의 숫자”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666이라는 숫자 자체는 모두 하나의 명백한 결론을 지지합니다. 즉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심히 부족하고 철저히 실패하였다는 것입니다.
야수가 가진 결함에 대한 묘사를 보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 벨사살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여호와께서는 다니엘이 그 통치자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그날 밤에 벨사살은 죽임을 당했고, 막강한 바빌로니아 제국은 무너졌습니다. (다니엘 5:27, 30) 그와 비슷하게, 정치적 야수와 그것의 표를 받은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도 야수와 그 지지자들에게 끝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하느님께서는 단지 하나의 정치 제도만 제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통치의 모든 흔적을 완전히 지워 없애실 것입니다. (다니엘 2:44; 계시 19:19, 20) 그러므로 죽음을 초래하는 야수의 표를 받지 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표가 의미하는 것
계시록에서는 666이라는 숫자를 밝힌 직후에,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인 14만 4000명을 언급하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예수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 여호와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그 이름들을 지닌 자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의 소유임을 식별하게 해 주는 표가 되며, 그들은 그분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증거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야수의 표를 받은 자들은 자신들이 야수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유적으로 말해서, 오른손에 있든 이마에 있든 그 표는 그 표를 지닌 사람이 짐승 같은 세계 정치 제도에 숭배에 상당하는 지지를 보내는 사람임을 식별하게 해 주는 상징입니다. 그 표를 받은 사람들은 마땅히 하느님께 속한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칩니다. (누가 20:25; 계시 13:4, 8; 14:1) 어떻게 그러합니까? 국가와 국가 상징물과 국가의 군사력을 희망과 구원의 근원으로 바라보며 그것들에 숭배에 상당하는 영예를 돌림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참 하느님께 드린다고 하는 숭배는 단지 입에 발린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성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강력히 권합니다. “너희는 존귀한 자들을 신뢰하지 말고 땅의 사람의 아들도 신뢰하지 말아라.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으니, 그의 영이 나가면 그는 그 흙으로 돌아가고, 그 생각도 그 날로 소멸되고 만다.” (시 146:3, 4) 이러한 지혜로운 교훈을 청종하는 사람들은 정부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이 몰락할 때 환멸에 빠지지 않습니다.—잠언 1:33.
그렇다고 해서 참 그리스도인들이 뒷전에 앉아서 인류의 곤경을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참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할 하나의 정부, 다시 말해 자신들이 대표하는 하느님의 왕국을 활동적으로 선포합니다.—마태 24:14.
하느님의 왕국—인류의 유일한 희망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하느님의 왕국을 자신이 수행하는 전파 활동의 주된 주제로 삼으셨습니다. (누가 4:43)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이라고도 하는 모본이 되는 기도에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그 왕국이 오고 하느님의 뜻이 이곳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마태 6:9, 10) 왕국은, 땅에 있는 어떤 수도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온 땅을 통치할 정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 왕국을 가리켜 “하늘 왕국”이라고 하셨습니다.—마태 11:12.
이 왕국의 왕으로서, 미래에 자신의 신민이 될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적합한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사야 9:6, 7; 요한 3:16) 현재 위력 있는 영적 인격체이신 이 완전한 통치자께서는 머지않아 야수와 그 왕들과 그 군대들을 완전한 멸망을 상징하는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사탄도 제거하실 것인데, 이것은 어떤 인간도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계시 11:15; 19:16, 19-21; 20:2, 10.
하느님의 왕국은 순종하는 왕국 신민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시 37:11, 29; 46:8, 9) 슬픔과 고통과 죽음까지도 더는 없을 것입니다. 야수의 표를 끝까지 받지 않는 사람들 앞에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전망이 있습니다!—계시 21:3, 4.
[각주]
a 이 구절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보려면,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한 「계시록—그 웅대한 절정은 가까왔다!」 책 제28장 참조.
b 참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통치권이 짐승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흔히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성서의 명령과 일치하게 “위에 있는 [정부] 권위”에 복종한다. (로마 13:1) 하지만 그러한 권위들이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도록 명령할 때는, “사람들보다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순종”한다.—사도 5:29.
[5면 네모]
666의 의미를 알아내는 단서들
1. 아브라함과 예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 그러하듯이, 성서의 이름들은 흔히 그 이름을 지닌 자의 특성이나 생애에 대해 알려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숫자로 된 야수의 이름은 야수가 가진 특징들을 상징한다.
2. 성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양한 짐승들은 연이어 등장하는 인간 왕국들 곧 제국들을 의미한다. 계시록 13:1, 2에 나오는 복합 짐승은 사탄에게 권세를 얻고 그의 지배를 받는 전 세계 정치 제도를 상징한다.
3. 야수가 “인간의 숫자”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야수의 실체가 악귀가 아니라 인간과 관련이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 숫자는 죄와 불완전성으로 인해 초래된 인간의 결점을 의미한다.
4. 성서적인 의미로 온전하거나 완전한 숫자인 7보다 부족한 숫자인 6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불완전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666이라는 표는 그 숫자를 세 번 연거푸 사용함으로 그러한 결함의 정도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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