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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리라’깨어라!—1988 |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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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리라’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나라들 간의 충돌은 ‘따분한 일개의 전쟁 소문’에 불과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 분쟁은 새로운 양상의 전쟁 즉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전면 전쟁으로 인도하였다. 전쟁이 지속된 기간, 강도 및 규모는 이전에 알려져 있었거나 일반적으로 예상했던 정도를 모두 능가하였다. 대규모 전쟁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격동하는 세계」, 베르나도트 E. 슈미트와 해럴드 C. 버델러 공저.
1914-18년의 전쟁은 파괴 및 인명 손실이 얼마나 컸던지 프랑스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라 그랑데 게르 곧 대전(大戰)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위한 기념비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나중에 그 전쟁을 가리켜 “지상에서 이제까지 발생한 것 중 가장 엄청나고, 잔인하며, 오도된 살육 행위”라고 불렀다. 제 2차 세계 대전(1939-45년)으로 세상이 파괴되자, 대전이란 이름을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의 전쟁들과는 달랐다. 백만 대군이 서부 유럽의 평지와 삼림에서 서로 살육하였다. 기관총을 마구 휘둘러 이동하는 보병대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그윈 다이어가 그의 저서 「전쟁」(War)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개전 후] 두달 만에, 백만명 이상이 사망하였으며 ··· 자동 무기—속사포 및 1분에 600발을 발사하는 기관총—는 치사적인 강철 우박으로 공중을 가득 채웠다.” 탱크, 잠수함 및 비행기는 사고 방식과 전술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죽음의 위협이 하늘에서도 떨어지고 물에서도 솟아 올라오는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에 더하여 참호전은 독가스의 사용으로 인해 사람들을 극도의 인내와 고통 및 타락으로 몰아넣었다. 대전은 또 다른 면에서도 두드러졌다. “이 전쟁은 포로 수자만 해도 수백만명(모두 8,400,000명)을 기록하며 포로들이 장기간 억류를 당한 최초의 전쟁이었다.” (「격동하는 세계」[The World in the Crucible]) 또한 이 전쟁은 실제로 민간인 전체가 관련된 최초의 전쟁으로서, 민간인들은 방위 활동 및 무기 생산에 종사하거나 침공 및 전투의 희생자가 되었다.
1914년 당시, 여호와의 증인은 그 무시무시한 전쟁을 겪으면서 멸망에 관한 예수의 예언들이 성취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더 큰 재난이 도래하게 되어 있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괴력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도 오늘날이 마지막 날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는 사람이 자멸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버나드 라운 박사는 노벨 평화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전면 전쟁—그 방법이 파렴치하고, 폭력성에 한계가 없으며, 무차별한 희생을 초래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우슈비츠의 불가마 및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력 불구덩이는 인간의 야만성을 기록한 연대기에 훨씬 어두운 하나의 장을 아로새겨 놓았다.”
인류는 이 끔찍스런 경험을 통해서 동정심과 자비를 배웠는가? 라운 박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5천만[영국이나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의 인구와 거의 맞먹는 수]의 사망자를 남긴 그 기나긴 고통도 야만 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한 항구적 토대를 제공하지는 못하였다. 그와는 반대로, 얼마 되지 않아서, 이차 세계 대전을 수천번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 위력을 지닌 대량 학살 무기들이 쏟아져 나왔다.”—사체로는 본지에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있으며 「계시록」에 나오는 붉은 말을 탄 자가 온 땅에서 살육을 벌여 왔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태 24:7; 계시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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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유례없는 특징깨어라!—1988 |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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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유례없는 특징
“[원자 폭탄의 설계를 도운] 오펜하이머의 근본적 통찰 즉 역사의 방향이 1945년에 바뀌었다는 생각은 정확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과 같은 방식의 주요 전쟁은 결코 다시 발발할 수 없다.”—「무기와 희망」(Weapons and Hope), 프리맨 다이슨 저.
1945년에 원자 폭탄을 사용한 사건은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것은 전쟁사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원자 폭탄 발명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그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간파하였다.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원폭 실험을 했을 때, 오펜하이머는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죽음의 사자(使者),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노라.” 오펜하이머는 또한 이렇게 언급하였다. “현 세계의 민족들은 연합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고 말 것이다.”
1949년, 오펜하이머가 속해 있던 미국 원자력 위원회 소속의 어느 과학자 자문 위원회는 훨씬 더 치사적인 수소 폭탄을 개발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였다. 그 위원회의 보고서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었다. “이것은 초강력 무기로서, 원자 폭탄과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 왜냐하면 수소 폭탄의 파괴력은 매우 값싼 연료인 중수소를 첨가하면 엄청나게 증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4년 만에, 원자 폭탄은 장난감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고 말았다.
역시 그 자문 위원회 위원인 엔리코 페르미와 이지도어 라비는 보다 강력한 경고를 하였다. “이 무기의 파괴의 정도가 무한하다는 사실로 인해 그것의 존재 자체와 더불어 그 제조 방법에 대한 지식은 인류 전체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악한 것이다.” (사체로는 본지에서.) 그들은 이제는 인간이 자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수소 폭탄 개발을 만류하는 그들의 충고는 무시되었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멸망에 대한 예언’
현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파괴력의 정도는 국제 핵전쟁 방지 의사회의 공동 의장인 라운 박사가 다음과 같이 인용한 한 가지 사실이 예증한다. “현대식 잠수함 한대가 지닌 화력만해도 대략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전체 화력의 여덟배에 달하는데, 이것은 북반구에 있는 모든 주요 도시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화력이다.” 단지 잠수함 한대의 파괴 능력이 그 정도라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강대국들은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 및 함정을 수십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다 지상 및 항공 무기들을 더하면, 핵탄두 수는 도합 50,000기가 넘는다!
사람이 그와 같이 무시무시하고 공포를 자아내는 능력을 손에 쥐었던 적이 역사상 이전 어느 때에 있었는가? 라운 박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대마다 예언자들의 말을 청종하지 않은 일이 있었음을 시인한다. 그러면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시대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하여 멸망에 대한 예언을 하는 최초의 시대다.” 핵 재해가 닥칠 경우, “그와 같은 인공 대참사를 살아남을 사람이 있으리라고 가상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 과신[거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라운 박사는 말한다.
‘민족들이 곤고하는 일’의 증가
1945년에 사람은 과학 지식이라고 하는 요술 램프에서 핵전쟁이라고 하는 악한 도깨비를 끄집어내어 풀어놓고서, 다시 잡아넣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고 있다. 핵무기는 폐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든지 핵무기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지식은 어떻게 폐기할 것인가? 그러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과 더불어 초강력 핵무기의 개발로 인해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의 “큰 징조[표징들, 신세]”가 있을 가능성이 증가하였으며, 1945년 이래로 “민족들이 ··· 혼란한 중에 곤고”하게 될 일이 증가하였다.—누가 21:11, 25.
민족들이 곤고하는 일은 또한 즉각적인 통신 능력을 갖춤으로써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현 20세기에 이르러, 모든 인류는 비로소 현대식 통신 장치(라디오, TV, 컴퓨터, 위성)를 통해 전쟁과 재난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전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민족들 사이에 무서워하며 곤고하는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전세계 대중은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뿐 아니라, TV를 통해서 전쟁과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장면을 직접 지켜볼 수도 있다!
전쟁의 상처
금년 1988년에, 전세계적으로 우리가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는 증거의 일부를 체험한 가족들은 수없이 많다. 어떻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양차 세계 대전이나 그 외에 인류를 대량 살상한 주요 분쟁(한국, 베트남, 이란-이라크, 레바논 등)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한명 이상 잃은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독자의 가족도 아버지, 할아버지, 아저씨, 혹은 형제를 잃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수없이 많은 어머니, 할머니, 자매 및 아주머니가 전쟁이나 유럽의 대학살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더하여, 우리 세대 중에, 유럽과 극동에서는 군대들이 일진 일퇴를 거듭하면서 민간인들을 강간하고 약탈하였다. 그렇게 해서, 생존자들 특히 여자들은 지금까지도 학대의 상처를 지니고 있게 되었다. 사람이 그처럼 엄청난 규모의 타락과 어리석음에 그토록 깊이 빠진 적이 있었는가?
「묵시록」에 나오는 전쟁과 살육의 붉은 말 및 사망의 청황색 말은 1914년 이래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땅 전체를 짓밟아 온 것이 분명하다.—계시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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