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Jacob) [발꿈치를 붙잡는 자, 가로채는 자]
1.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이자, 에서의 쌍둥이 동생. 야곱의 부모가 결혼 생활을 한 지 20년이 지난 기원전 1858년에 이들 쌍둥이가 태어났다. 자녀라고는 이 쌍둥이뿐이었다.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이삭의 나이는 60세였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자손을 달라는 이삭의 기도 역시 그의 참을성과 하느님의 약속들에 대한 믿음이 온전히 시험받은 후에야 응답되었다.—창 25:20, 21, 26; 로 9:7-10.
임신 중에 리브가는 태 속의 쌍둥이가 다투는 것으로 인해 괴로워했는데, 여호와께서는 그것이 적대적인 두 나라의 시작임을 설명해 주셨다. 더욱이, 여호와께서는 관습과는 반대로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에 따라서 둘째로 태어난 야곱이 출생 시에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있었고 그래서 그 이름이 “발꿈치를 붙잡는 자”를 의미하는 야곱이 되었다. (창 25:22-26) 여호와께서는 그와 같이 태아의 유전적 성향을 감지할 능력을 나타내셨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선택할 사람을 미리 택하는 예지력과 권리를 사용할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이셨지만, 결코 개개인의 최종 운명을 예정하지는 않으신다.—로 9:10-12; 호 12:3.
그의 아버지가 총애한 아들인 에서는 야성적이고 침착하지 않고 방랑을 좋아하는 사냥꾼이었던 반면에, 야곱은 “나무랄 데 없는[히브리어, 탐] 사람으로 천막에 살았”던 사람, 조용히 양 치는 생활을 하고 집안일을 믿음직하게 돌보았던 사람,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창 25:27, 28) 이 히브리어 탐은 다른 구절들에서 하느님의 승인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피에 굶주린 사람들은 나무랄 데 없는 이를 미워하여도”, 여호와께서는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의 장래가 평화로우리라”고 보증하신다. (잠 29:10; 시 37:37) 충절을 지킨 욥은 ‘나무랄 데 없고[히브리어, 탐] 올바른’ 사람이었다.—욥 1:1, 8; 2:3.
맏아들의 권리와 축복을 받다 아브라함은 손자 야곱이 15세 때인 기원전 1843년까지도 죽지 않았으므로, 소년 야곱은 하느님의 맹세로 맺어진 계약에 관해 아버지뿐 아니라 할아버지의 입술을 통해서도 직접 들을 기회가 많았다. (창 22:15-18) 야곱은 그러한 하느님의 약속들의 성취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인식하였다. 마침내 그의 형으로부터 맏아들의 권리와 그에 따른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다. (신 21:15-17) 어느 날 에서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들에서 돌아와 동생이 요리한 맛있는 죽 냄새를 맡았을 때 이 기회가 왔다. 에서는 이렇게 외쳤다. “부디 어서 붉은 것—거기 붉은 것을 조금 다오. 내가 지쳤다!” 야곱이 대답하였다. “먼저 형의 맏아들의 권리를 나에게 파시오!” “에서는 맏아들의 권리를 업신여겼”으므로 그 거래는 신속히 이루어졌고 엄숙한 맹세로 인증되었다. (창 25:29-34; 히 12:16)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이유가 충분하였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으나 에서는 미워하였다.”—로 9:13; 말 1:2, 3.
야곱이 에서로 가장한 것은 올바른 일이었는가?
이삭은 늙어서 자기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짐승의 고기를 좀 사냥해 오도록 에서를 내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먹게 해 다오. 그리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나의 영혼이 너를 축복하게 하여라.” 하지만 리브가는 그 대화를 엿듣고 속히 야곱을 보내어 자기가 이삭을 위하여 맛있는 요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염소 새끼 둘을 가져오게 했으며, 야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그것을 아버지께 가지고 가서, 아버지가 그것을 잡수시고, 죽기 전에 너를 축복하시게 해야 한다.” 리브가는 심지어 염소 새끼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붙여서, 이삭이 야곱을 만져 볼 때 그가 에서라고 결론지을 수 있게 하였다. 야곱이 음식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들어갔을 때, 이삭은 이렇게 물었다. “내 아들아, 너는 누구냐?” 그러자 야곱이 대답하였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합법적으로, 이삭의 맏아들인 에서의 역할을 맡아 행동할 권리가 있었다. 이삭은 그가 정말 에서인지 아닌지 알아보려고 야곱을 만져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기록이 알려 주는 대로 “이삭이 그를 축복하였다.” (창 27:1-29) 리브가와 야곱이 한 일은 옳은 일이었는가?
야곱이 그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는 데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그 쌍둥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리브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창 25:23) 나중에, 여호와께서 이미 예지하신 경향 즉 여호와로 하여금 에서보다 야곱을 더 사랑하시게 했던 경향과 일치하게, 에서는 자신의 맏아들의 권리를 단지 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팔았다.—창 25:29-34.
누가 그 축복을 받아야 하는지를 나타내 주는 이러한 점들에 관해 이삭이 어느 정도나 알고 있었는지를 성서 기록은 알려 주지 않는다. 리브가와 야곱이 그 문제를 그런 방법으로 처리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그 두 사람이 그 축복이 야곱에게 속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야곱은 정당하게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것을 얻으려고 악의적으로 자기의 신분을 숨긴 것이 아니다. 성서는 리브가와 야곱이 한 일을 정죄하지 않는다. 그 결과로 야곱은 정당한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삭 자신도 여호와의 뜻이 성취된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이로부터 얼마 후, 신붓감을 구하도록 야곱을 하란으로 떠나보낼 때, 이삭은 야곱을 더 축복하며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전능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축복을 너에게 주실 것이다.’ (창 28:3, 4. 히 11:20 비교) 따라서 그 일의 결말이 여호와께서 목적하신 대로였다고 결론짓는 것이 합당하다. 성서는 이 기록으로부터 이끌어 내야 하는 교훈을 명확히 알려 주며, 주의하여 “음행하는 자나 에서와 같이 신성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십시오. 그는 맏아들의 권리를 한 번의 식사와 맞바꾸어 넘겨 준 사람입니다”라고 경고한다.—히 12:16.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이동하다 (1권, 529면 지도) 야곱은 77세 때 브엘-세바를 떠나 자기 조상의 땅으로 갔으며, 그 땅에서 생애의 그다음 20년을 보냈다. (창 28:10; 31:38) 그는 북북동 방향으로 약 100킬로미터를 여행한 뒤, 밤을 보내기 위해 유다 구릉성 산지에 있는 루스(베델)에 멈추어 돌을 베개로 사용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꿈에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 또는 층계를 보았는데,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꼭대기에는 여호와께서 계신 것이 환상으로 보였는데, 그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맺은 자신의 계약을 이제 야곱에게 확증하셨다.—창 28:11-13; 대첫 16:16, 17.
이 계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야곱에게 자신이 그를 돌보고 지켜 줄 것이며 그가 누워 있는 땅이 그의 소유가 될 때까지 그리고 그의 씨의 수가 땅의 먼지 알갱이들처럼 많아질 때까지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그에 더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를 통하여 그리고 네 씨를 통하여 땅의 모든 가족이 분명히 스스로를 축복할 것이다.” (창 28:13-15) 야곱은 그 밤에 경험한 일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고 이렇게 외쳤다. “이 얼마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곳인가! 이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그래서 그는 루스의 이름을 “하느님의 집”을 의미하는 베델로 바꾸었으며, 이 중대한 사건의 증인으로서 기둥을 하나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 야곱은 또한 하느님의 지원 약속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신이 얻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틀림없이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맹세하였다.—창 28:16-22.
야곱은 여행을 계속했고 마침내 하란 근처에서 외사촌인 라헬을 만났으며, 라헬의 아버지 즉 자기 외삼촌인 라반의 초대를 받고 그들과 함께 머무르게 되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게 되어 라헬을 자기에게 아내로 준다면 칠 년 동안 라헬의 아버지를 위해 일하겠다고 계약하였다. 몇 년이 흘러가는 것도 “며칠 같았”는데, 그 정도로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이 깊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혼식 날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신부를 라헬의 언니 레아로 바꾸었으며, 이렇게 설명하였다. “작은딸을 맏딸보다 먼저 주는 것은 관례가 아니라네.” 이 결혼을 일주일 동안 축하한 후에, 라반은 야곱이 라헬을 얻는 대가로 또 칠 년을 일한다는 합의하에 야곱에게 라헬도 아내로 주었다. 라반은 또한 레아와 라헬에게 두 하녀 실바와 빌하를 각각 주었다.—창 29:1-29; 호 12:12.
여호와께서는 이 결혼 마련으로부터 큰 나라를 세우기 시작하셨다. 레아는 연이어 네 아들, 즉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야곱에게 낳아 주었다. 라헬은 계속 임신을 하지 못하자, 자기의 하녀 빌하를 야곱에게 주었으며, 빌하를 통해 두 아들 단과 납달리를 얻게 되었다. 이때는 레아도 임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아 역시 자기의 하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었으며 이 결합을 통해 두 아들 즉 갓과 아셀을 얻게 되었다. 그다음에 레아는 다시 한 번 자녀를 갖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잇사갈을, 그다음에는 스불론을 낳았고, 디나라는 딸도 하나 낳았다. 라헬도 마침내 임신하여 요셉을 낳았다. 그 결과 칠 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야곱은 많은 자녀를 갖는 축복을 받았다.—창 29:30–30:24.
야곱이 하란을 떠나기 전에 부유해지다 야곱은 아내들을 얻기 위한 14년의 고용 계약 기간을 마치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라반은 여호와께서 야곱 때문에 자기를 얼마나 축복해 주셨는지를 보고, 야곱에게 계속 자기 가축 떼를 돌봐 달라고 고집하며, 야곱이 받을 삯을 명시하라는 말까지 하였다. 그 지역에서는 양과 염소의 색이 일반적으로 단색인데, 양은 흰색, 염소는 검은색이다. 따라서 야곱은 비정상적인 색깔이나 점이 있는 양과 염소만을—모든 암갈색 양과 조금이라도 흰 점이 있는 모든 염소들을—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하였다. 라반은 “그래, 그게 좋겠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라반은 삯을 가능한 한 깎으려고 야곱의 제안대로 가축 떼에서 줄무늬나 얼룩무늬나 점이 있는 모든 염소와 어린 숫양 가운데 암갈색인 것을 모두 분리해 내어 자기 아들들에게 주어 돌보게 했으며, 두 가축 떼 사이에 전혀 교배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그들 사이에 사흘 길의 거리를 두기까지 하였다. 미래에 태어나는 것들 가운데 색깔이 비정상적인 것들만 야곱의 소유가 될 것이었다.—창 30:25-36.
따라서 여기에서 야곱이 처음에 돌보기 시작한 것은 단지 정상적인 색을 가진 양과 무늬가 없는 염소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일했으며 보통의 색이 아닌 동물의 수를 증가시켜 줄 것이라고 자기가 생각한 방법대로 하였다. 그는 때죽나무와 아몬드나무와 플라타너스나무의 어린 녹색 가지들을 가져다가 껍질을 벗겨 줄무늬와 점이 많은 모양이 되게 하였다. 그는 이 막대기들을 동물들에게 물 먹이는 구유의 물통들에 놓아두었는데, 동물들이 발정할 때 만일 그 줄무늬를 보게 되면 새끼가 태어나기 전에 영향을 주어 새끼들이 얼룩지거나 비정상적인 색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야곱은 또한 주의를 기울여 더 튼튼한 동물들이 발정할 때만 구유에 막대기들을 놓아두었다.—창 30:37-42.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무늬나 색이 보통과 다른 새끼들 즉 야곱의 삯이, 정상적으로 단색인 새끼들 즉 라반의 소유보다 더 많아졌다. 바라던 결과를 얻었으므로, 야곱은 아마 자기의 줄무늬 막대기 작전 덕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면에서 야곱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생각 즉 그러한 것들이 출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꿈에서 그의 창조주께서 그것이 원인이 아니었음을 그에게 알려 주셨다.
야곱은 꿈을 통해, 자기가 성공을 거둔 것이 그 막대기들 덕분이 아니라 특정한 유전 법칙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야곱이 돌보던 동물들은 단색이었는데, 그 환상에서는 그 숫염소들이 줄무늬와 얼룩무늬와 점이 있는 것들로 나타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 수컷들은 단색이기는 했지만 잡종들로서, 야곱이 삯을 받기 시작하기 전에 라반의 가축 떼 가운데서 이종 교배의 결과로 생겨난 것들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19세기에 그레고르 멘델이 발견한 유전 법칙으로 설명하자면, 이 동물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생식 세포 안에 미래 세대들에게 점과 얼룩무늬가 생기게 하는 유전 인자들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창 31:10-12.
야곱이 이 마련에 따라 일했던 육 년 동안, 여호와께서는 그를 크게 축복하시어 번영하게 해 주셨는데, 가축 떼뿐 아니라 그의 하인들, 낙타들, 나귀들의 수가 증가하게 해 주셨다. 라반이 합의한 삯을 계속 바꾸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 주셨다. 마침내 “베델의 참 하느님”께서는 야곱에게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셨다.—창 30:43; 31:1-13, 41.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다 야곱은 자기가 라반을 섬기는 일을 그만두고 떠나지 못하도록 라반이 또다시 붙잡으려 할까 봐, 비밀리에 자기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그리고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가지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향하였다. 창세기 31:4, 21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야곱은 이 이동을 계획하고 있었을 때 아마 유프라테스 강 가까이에서 자기 가축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라반은 자기 양 떼의 털을 깎으러 가고 없었으므로 야곱이 떠난 사실을 사흘 후까지 알지 못하였다. 양털 깎는 일을 마치고 자신의 무리와 함께 야곱을 추적할 준비를 하느라고 더 많은 시간이 경과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로 인해 야곱은 라반이 자기를 따라잡기 전에, 천천히 움직이는 가축 떼를 몰고 하란에서 길르앗 산간 지방까지 적어도 560킬로미터 되는 거리를 이동할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리는 낙타를 타고 맹렬히 추격하는 라반과 그의 친척들이 칠 일 만에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였다.—창 31:14-23.
라반은 자신의 추격 목표가 얍복에서 북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야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야곱에게 다음 사항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였다. 즉 야곱이 라반에게 자녀와 손자 손녀들에게 작별 인사로 입 맞출 기회를 주지도 않고 떠난 이유가 무엇이며, 또 그가 라반의 신들을 훔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창 31:24-30) 첫 질문에 대한 답은 비교적 명확했는데—자기가 떠나지 못하도록 라반이 붙잡을까 봐 그랬다는 대답이었다. 둘째 질문에 대해서는, 야곱은 어떠한 도둑질이 있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으며, 조사를 했는데도, 사실은 라헬이 그 가족의 드라빔을 훔쳐서 자기 낙타의 안장 바구니 속에 숨겨 두었다는 점이 밝혀지지 않았다.—창 31:31-35.
라헬의 행동과 라반의 염려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이러하다. “가족 수호신들을 소유하는 것은, 그 사람을 합법적인 상속자로 구별시켜 주었는데, 이 점은 창세기 31:26과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라반이 자기의 가족 수호신들을 야곱에게서 되찾으려고 애를 태운 이유를 설명해 준다.”—「고대 근동 문헌」(Ancient Near Eastern Texts), J. B. 프리처드 편, 1974년, 220면, 각주 51.
그들의 다툼은 평화롭게 해결되었으며, 야곱은 돌기둥을 세운 다음 돌무더기를 쌓았는데, 이것은 여러 해 동안 그곳에 서 있어서 이 두 사람이 의식상의 식사를 하며 맺은 평화의 계약의 증거물 역할을 하였다. 이 돌무더기에 붙여진 이름은 갈르엣(“증거 무더기”라는 의미)과 파수대였다.—창 31:36-55.
야곱은 이제 20년 이상 만나 보지 못했던 자기 형 에서와도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형이 아직도 품고 있을지 모르는 그 어떤 증오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야곱은 에서에게 줄 값진 선물들—수백 마리의 염소와 양, 많은 수의 낙타, 나귀, 소 떼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냈다. (창 32:3-21) 야곱이 가나안에서 도피해 나갈 때는 가진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제는 여호와의 축복 덕분에 부자가 되어 돌아오게 된 것이다.
야곱과 씨름한 천사가 야곱이 다리를 절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야곱의 집안이 에서를 만나러 남쪽으로 여행하던 중 얍복을 건너던 밤에,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하는 매우 특이한 경험을 했으며, 그의 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하느님과 겨루는 자(하느님에게 끈질김을 나타내는 자)’ 또는 ‘하느님이 겨루시다’”라는 의미인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창 32:22-28) 그 이후로 그 두 이름은 히브리어 시에 대구를 이루며 종종 함께 등장한다. (시 14:7; 22:23; 78:5, 21, 71; 105:10, 23) 이 씨름을 하던 중에 그 천사가 야곱의 넓적다리 관절의 오목한 부분을 건드려서 야곱은 나머지 생애 내내 절게 되었다. 아마도 그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며, 이 일은 그가 하느님이 주신 번영이나 천사와 씨름한 일로 지나치게 우쭐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생각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이 중대한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해 야곱은 그곳을 브니엘 또는 브누엘이라고 불렀다.—창 32:25, 30-32.
야곱과 에서의 우호적인 만남이 있고 나서, 이제 97세 정도인 이 두 쌍둥이는 각자 자기 길을 갔는데, 필시 23년 후 아버지 이삭을 함께 장사 지낸 때까지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에서는 자신이 받은 선물들을 가지고 남쪽 세일로 갔으며, 야곱은 북쪽으로 돌이켜 다시 얍복을 건너갔다.—창 33:1-17; 35:29.
외국인 거주자로 지낸 그다음 33년간 야곱은 에서와 헤어진 후에 숙곳에 정착하였다. 이곳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후에 얼마간 머무른 최초의 장소였다. 그가 얼마 동안이나 이곳에 있었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해였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가 살 영구적인 구조물과 가축 떼를 위한 초막 즉 지붕이 있는 일종의 우릿간도 지었기 때문이다.—창 33:17.
그다음에 야곱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요르단 강을 건너 세겜 부근으로 갔는데, 여기에서 그는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돈[히브리어, 케시타] 백 닢”을 주고 땅을 샀다. (창 33:18-20; 수 24:32) 그 고대 화폐 단위 즉 케시타의 가치는 오늘날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시대에는 주화가 없었으므로 백 케시타는 무게를 단, 꽤 많은 양의 은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가나안 여자들과 교제하기 시작한 곳도 세겜이었는데, 그로 인해 수장 하몰의 아들인 세겜이 디나를 범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이 사건의 결과로, 사태는 이내 야곱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전개되었다. 그의 아들들이 세겜의 주민 가운데 모든 남자를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포로로 끌고 왔으며, 그 지역 사회의 모든 재산과 부를 탈취하여 그 땅의 주민들에게 아버지 야곱을 악취로 만든 것이다.—창 34:1-31.
그다음에 야곱은 세겜을 떠나 베델로 이동하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그대로 하였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그는 자기 집안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옷을 갈아입고 그들의 모든 거짓 신들(아마 라반의 드라빔도 포함되었을 것임)과 아마 부적처럼 믿고 달고 다녔을 귀고리들을 제거하게 하였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근처에 보이지 않게 묻었다.—창 35:1-4.
베델 즉 “하느님의 집”은 야곱에게 특별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아마 약 30년 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그에게 넘겨주셨기 때문이다. 이제, 야곱이 자기 조상들의 이 위대한 하느님께 바치는 제단을 쌓고 나자, 여호와께서는 그 계약을 재언명하셨으며 또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음을 확증하셨다. 그러자 야곱은 이 중대한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해 기둥 하나를 세우고 그 위에 음료 제물과 기름을 부었다. 그의 어머니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서 묻힌 것도 이곳 베델에 잠시 머무를 때였다.—창 35:5-15.
이번에도 야곱이 베델에 얼마 동안이나 머물렀는지 알 수 없다. 그곳에서 떠나 남쪽으로 이동하는 길에, 베들레헴(에브랏)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있는 동안, 진통이 라헬에게 닥쳐서, 라헬은 둘째 아들 베냐민을 낳는 고통 중에 죽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거기에 묻고 그 무덤을 표시하기 위해 기둥 하나를 세웠다.—창 35:16-20.
이 사람 이스라엘은 장차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산출할 열두 아들이 다 채워지는 축복을 받았으며, 남쪽으로 더 멀리 계속 여행하였다. 그의 다음 야영지는 “에델 망대 건너편에 멀찍이” 있었다고 묘사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그곳은 베들레헴과 헤브론 사이의 어떤 곳이 된다. 그곳에 거주하고 있을 때 그의 맏아들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이자 단과 납달리의 어머니인 빌하와 성 관계를 가진 일이 발생하였다. 르우벤은 아버지 야곱이 너무 늙어서 그에 대해 아무 조처도 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여호와께서는 승인하지 않으셨으며, 르우벤은 근친상간을 저질렀기 때문에 맏아들의 권리를 잃게 되었다.—창 35:21-26; 49:3, 4; 신 27:20; 대첫 5:1.
야곱이 거주지를 헤브론으로 옮긴 것은 아마 요셉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헤브론에는 그의 연로한 아버지 이삭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이동의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창 35:27.
어느 날 야곱은 요셉(당시 17세)을 내보내어 형들이 아버지의 가축 떼를 돌보면서 잘 있는지 확인하게 하였다. 요셉이 마침내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도단에서 형들을 찾았을 때, 그들은 요셉을 붙잡아 이집트로 가는 대상에게 팔았다. 이것은 기원전 1750년의 일이었다. 그다음에 그들은 아버지로 하여금 요셉이 들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믿게 만들었다. 야곱은 요셉을 잃은 일 때문에 여러 날 동안 슬퍼했으며 위로받기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애도하며 나의 아들에게로, 스올로 내려갈 것이다!” (창 37:2, 3, 12-36) 그에 더하여 기원전 1738년에는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죽음으로 인해 야곱의 슬픔은 커지기만 하였다.—창 35:28, 29.
이집트로 이동하다 이삭이 죽은 지 약 십 년 후에 광범위한 기근 때문에 야곱은 어쩔 수 없이 곡식을 구하기 위해 자기 아들 가운데 열 명을 이집트로 보냈다. 베냐민은 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파라오의 식량 관리관인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동생 베냐민을 이집트로 데려올 것을 요구하였다. (창 41:57; 42:1-20) 그렇지만 그 요구에 대해 들었을 때, 야곱은 처음에는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는데, 그가 노년에 낳은 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해로운 일이 닥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때 베냐민의 나이는 적어도 22세는 되었다. (창 42:29-38) 이집트에서 얻어 온 양식을 다 먹은 때에야 야곱은 마침내 베냐민을 보내는 데 동의하였다.—창 43:1-14; 행 7:12.
요셉과 그의 형들의 화해와 더불어, 야곱과 그의 온 집안이 그들의 모든 가축과 소유물을 이끌고 이집트의 삼각주에 있는 비옥한 고센 땅으로 이사해 오라는 초대가 있게 되었다. 대기근이 앞으로 오 년 동안 더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파라오는 그들을 돕기 위해 수레들과 양식을 마련해 주기까지 하였다. (창 45:9-24) 이집트로 내려가는 도중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이 이동을 축복하고 승인한다는 것을 야곱에게 확신시켜 주셨다. (창 46:1-4) 야곱의 집안에 속하는 것으로 계수된 모든 영혼의 수는,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야곱이 죽기 전에 이집트에서 태어났을 수 있는 그 외의 사람들도 포함하여, 70명이었다. (창 46:5-27; 출 1:5; 신 10:22) 이 수에는 이미 약속의 땅에서 죽은 레아(창 49:31),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야곱의 딸들, 또는 야곱의 며느리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창 46:26. 창 37:35 비교.
기원전 1728년에 이집트에 도착한 뒤 오래지 않아, 야곱은 파라오의 궁정으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그 왕에게 축복의 말을 하며 인사하였다. 야곱은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거주자라고 불렀다(그들처럼 야곱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상속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야곱은 자기가 130세이지만 자기 조상들의 나이와 비교할 때 자기의 날들은 “적고 괴로움을 주는 것”이었다고 대답하였다.—창 47:7-10.
야곱은 죽기 직전에 손자들 즉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했으며, 하느님의 인도 아래 동생 에브라임을 형 므낫세보다 앞세웠다. 그다음에 야곱은 맏아들로서 상속 재산 가운데 두 몫을 받게 될 요셉에게 이렇게 선언하였다. “나는 너에게 너의 형제들보다 땅의 한 어깨를 더 준다. 그것은 내가 나의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다.” (창 48:1-22; 대첫 5:1) 야곱은 세겜 근처의 땅을 하몰의 아들들로부터 평화로운 방법으로 구입했으므로(창 33:19, 20), 요셉에게 한 이 약속은 야곱의 믿음을 표현한 것인 듯한데, 그 약속 가운데서 그는 미래에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이 마치 자기 자신의 칼과 활로 이미 성취된 것처럼 예언적으로 말한 듯하다. (아모리 사람 참조) 정복한 그 땅 가운데 요셉이 받을 두 부분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된 두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야곱은 죽기 전에 힘을 다하여 열두 아들을 하나하나 축복하였다. (창 49:1-28) 그는 여호와의 목적의 성취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다. (히 11:21) 야곱의 믿음 때문에 그리고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축복의 계약을 야곱에게 구체적으로 확증하셨기 때문에, 성경은 흔히 여호와를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느님으로만 아니라 야곱의 하느님으로도 부른다.—출 3:6; 대첫 29:18; 마 22:32.
마지막으로, 기원전 1711년에 즉 이집트에 거주한 지 17년 후에, 야곱은 147세의 나이로 죽었다. (창 47:27, 28) 그리하여 야곱의 출생부터 그의 죽음까지 이르는 한 시대의 막은 내려졌는데, 그것은 창세기 지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역사이다. (창 25-50장) 가나안에 묻히기를 원했던 야곱의 의사와 일치하게, 요셉은 먼저 이집트의 의사들로 하여금 여행에 대비하여 자기 아버지의 시체를 방부 처리하게 하였다. 그다음에 야곱의 아들 요셉의 탁월한 지위에 어울리게 성대한 장례 행렬이 이집트에서 출발하였다. 그 행렬이 요르단 지역에 도착하자, 거기에서 칠 일간의 애도 의식이 있었으며, 그 후에 야곱의 아들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이미 매장되어 있는 막벨라 동굴에 아버지를 장사 지냈다.—창 49:29-33; 50:1-14.
2. 예언자들은 족장 야곱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야곱”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였다. (사 9:8; 27:9; 렘 10:25; 겔 39:25; 암 6:8; 미 1:5; 로 11:26) 예수께서도 “하늘 왕국에” 들어갈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실 때 야곱이라는 이름을 비유적으로 사용하신 적이 한 번 있었다.—마 8:11.
3.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아버지.—마 1: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