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
(holiness)
거룩한 상태나 품성. “거룩함”이란 “종교적 깨끗함 혹은 정결함, 신성함”을 의미한다. 또한 원어인 히브리어 코데시는 거룩하신 하느님을 위하여 구별되거나 그분에게만 속한 상태 또는 그분을 위해 성별된 상태라는 개념, 하느님에 대한 봉사를 위하여 따로 구별되어 있는 상태라는 개념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거룩한”(하기오스)과 “거룩함”(하기아스모스[또한 “거룩하게 함”], 하기오테스, 하기오시네)으로 번역된 단어들도 하느님을 위하여 구별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서, 거룩함이라는 하느님의 특성을 가리키는 데, 또는 개인적 행실이 정결하거나 완전함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여호와 거룩함의 특성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출 39:30; 슥 14:20) 그리스도 예수는 그분을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불렀다. (요 17:11) 하늘에 있는 자들도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여호와”라고 선언함으로 더할 나위 없을 정도의 거룩함과 깨끗함을 그분에게 속한 것으로 돌린다고 되어 있다. (사 6:3; 계 4:8. 히 12:14 비교) 그분은 가장 거룩한 분으로서 다른 누구보다도 월등하게 거룩하시다. (잠 30:3. 여기서 “가장 거룩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복수 형태는 탁월함과 위엄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대제사장의 터번의 빛나는 금패 위에 “거룩함은 여호와께 속한다”라고 새겨진 글을 볼 때마다 여호와야말로 모든 거룩함의 근원이시라는 점이 생각나게 되어 있었다. “거룩한 봉헌의 표”라고 불린 이 패는 대제사장이 특별히 거룩한 봉사를 위해 따로 구별된 사람임을 나타내 주었다. (출 28:36; 29:6) 홍해에서 구출받고 나서 부른 모세의 승리의 노래에서 이스라엘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오 여호와여, 신들 가운데서 누가 당신과 같겠습니까? 누가 거룩함에서 위력이 있음을 증명하시는 당신과 같겠습니까?” (출 15:11; 삼첫 2:2)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이행하시겠다는 것을 부가적으로 보증하기 위해 자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기까지 하셨다.—암 4:2.
하느님의 이름은 신성하며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대첫 16:10; 시 111:9) 그분의 이름 여호와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거룩하고 성별된 것으로 여겨야 한다. (마 6:9) 그분의 이름에 대한 불경은 사형에 해당한다.—레 24:10-16, 23; 민 15:30.
여호와 하느님은 모든 의로운 원칙과 법의 창시자로서(야 4:12) 모든 거룩함의 기초가 되시는 분이다. 따라서 거룩한 사람 또는 사물이 거룩해지는 것은 여호와 및 그분의 숭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거룩한 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력이나 지혜가 있을 수 없다. (잠 9:10) 거룩한 상태에 있을 때에만 여호와를 숭배할 수 있다. 그분을 숭배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부정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분이 보시기에 가증하다. (잠 21:27)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바빌론 유배 생활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길을 닦아 주시겠다고 예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거룩함의 길’이라고 불릴 것이다. 더러운 자는 그리로 지나가지 못할 것이다.” (사 35:8) 기원전 537년에 돌아온 소수의 남은 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참 숭배를 회복시키고자 하였는데, 정치적인 혹은 이기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라 올바르고 거룩한 동기로 그렇게 하였다.—슥 14:20, 21의 예언 비교.
성령 여호와의 활동력 곧 영은 그분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언제나 그분의 목적을 이룬다. 그것은 깨끗하고 정결하고 신성하며 하느님의 선한 용도를 위해 따로 구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성령” 혹은 “거룩함의 영”이라고 불린다. (시 51:11; 누 11:13; 로 1:4; 엡 1:13) 성령이 사람에게 작용하면 거룩하거나 깨끗하게 하는 힘이 된다. 어떠한 것이든 부정하거나 그릇된 행습은 그 영을 저항하는 것 즉 그 영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다. (엡 4:30) 성령 자체는 비인격체이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성품을 표현해 주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근심하게” 할 수가 있다. 어떠한 것이든 그릇된 행습은 “영의 불을 끄”게 되어 있다. (데첫 5:19) 그러한 행습이 계속되면 하느님의 성령은 사실상 “상심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하느님은 거역하는 자의 적으로 변하시게 될 수 있다. (사 63:10)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사람은 그것을 모독하는 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사물의 제도에서도 오게 될 사물의 제도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마 12:31, 32; 막 3:28-30. 영 참조.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특별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시다. (행 3:14; 막 1:24; 누 4:34) 그분의 거룩함은 여호와께서 그분을 독생자로 창조하셨을 때 그분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자신의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분으로서 그 거룩함을 유지하셨다. (요 1:1; 8:29; 마 11:27) 그분의 생명이 처녀 마리아의 태로 옮겨짐으로 그분은 하느님의 거룩한 인간 아들로 태어나셨다. (누 1:35) 그분은 인간으로서 완전하고 죄 없는 거룩함을 유지하고 지상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속 “충성스럽고, 악의가 없고, 더럽혀지지 않고, 죄인들과 구별”되었던 유일한 분이시다. (히 7:26) 그분은 그분 자신의 공적에 의하여 “의롭다고 선언”되셨다. (로 5:18)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서의 거룩한 신분을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근거해서만 얻을 수 있는데, 그분의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그 신분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거룩한 믿음”이며, 그 믿음을 지키면 그 믿음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유 20, 21.
그 외의 사람들 전체 이스라엘 나라가 거룩한 나라로 여겨졌는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 나라를 택하시고 성별하시어 그 백성만 자신과의 계약 관계 안으로 들어오게 하심으로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분에게 순종한다면 그들은 “제사장 왕국과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그분은 알려 주셨다. (출 19:5, 6) 순종을 통해 그들은 그들의 “하느님에게 실로 거룩하게” 될 것이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나 여호와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훈계하셨다. (민 15:40; 레 19:2)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식품 규정과 위생 및 도덕에 관한 법들은 그들이 하느님을 위하여 구별되고 거룩한 상태에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법들이 그들에게 가한 제한 사항들은 그들이 이교도들인 인근 민족들과 교류하는 것을 극히 한정시키는 강한 힘으로 작용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반면에, 그 나라가 하느님의 법에 불순종할 경우에는 하느님 앞에서 거룩한 신분을 상실하게 되어 있었다.—신 28:15-19.
이스라엘이 하나의 나라로서 거룩하기는 하였지만, 그 나라에는 특별한 면에서 거룩하게 여겨진 특정한 개개인들이 있었다. 제사장들과 특히 대제사장은 신성한 곳에서 봉사하도록 따로 구별된 사람들이었으며 하느님 앞에서 백성을 대표하였다. 그들의 거룩함은 그러한 신분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그들은 성별된 상태를 유지해야만 그 봉사를 수행하고 계속 하느님께 거룩하게 여겨질 수 있었다. (레 21장; 대둘 29:34) 예언자들과 그 외의 영감받은 성서 필자들도 거룩한 사람들이었다. (베둘 1:21) 사도 베드로는 고대에 하느님께 충실했던 여자들을 부를 때도 ‘거룩하다’고 하였다. (베첫 3:5) 군사 활동 중의 이스라엘 병사들도 거룩하게 여겨졌는데, 그들이 싸운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민 21:14; 삼첫 21:5, 6) 이스라엘의 처음 난 아들은 모두 여호와께 거룩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이집트에서 유월절 때 처음 난 자들을 죽지 않도록 구해 주심으로 그들은 그분에게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 3:12, 13; 8:17) 그러한 이유에서 처음 난 아들은 각기 신성한 곳에서 구속해야 하였다. (출 13:1, 2; 민 18:15, 16; 누 2:22, 23) 나실인으로 생활하기로 서원하는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서원 기간 중에 거룩하였다. 이 기간은 여호와에 대한 특별한 봉사를 위하여 온전히 바쳐진 것으로 따로 구별된 기간이었다. 나실인은 특정한 법적 요구 조건을 지켜야 하였는데, 범하면 부정하게 되었다. 부정하게 되면 거룩한 신분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특별한 희생을 드려야 하였다. 부정하게 되기에 앞서 지낸 날수는 나실인 생활을 이행한 기간으로 계산되지 않았으며 그는 서원을 이행하는 일을 새로이 시작해야 하였다.—민 6:1-12.
장소 여호와의 임재의 장소는 거룩해진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실 때 자신을 대리하는 천사들을 통해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셨다. 갈 3:19) 모세가 불타는 덤불을 보면서 서 있던 곳은 거룩한 땅이었는데, 그 덤불에서 여호와를 대리하는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출 3:2-5) 여호와의 군대의 군왕인 한 천사가 물질화하여 여호수아 앞에 섰을 때 여호수아는 거룩한 땅에 서 있다는 것을 일깨움 받았다. (수 5:13-15)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변형과 그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일에 관해 말하면서 그 장소를 “거룩한 산”이라고 불렀다.—베둘 1:17, 18; 누 9:28-36.
장막의 뜰은 거룩한 땅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봉사하는 곳이 여호와의 임재가 관련된 신성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맨발로 일하였다고 한다. 신성한 곳을 구성하는 두 칸은 각기 “성소”와 “지성소”라 불렸는데, 그렇게 불린 것은 계약의 궤와 가까운 순서에 따른 것이었다. (히 9:1-3) 나중에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도 그와 비슷하게 거룩한 것이었다. (시 11:4) 시온 산과 예루살렘이 거룩하게 된 것은 그곳에 신성한 곳과 “여호와의 왕좌”가 있었기 때문이다.—대첫 29:23; 시 2:6; 사 27:13; 48:2; 52:1; 단 9:24; 마 4:5.
이스라엘 군대는 진영을 인간의 배설물이나 다른 것으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라는 일깨움을 받았는데, 그것은 “당신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 당신의 진영 안을 두루 다니시므로, 당신의 진영은 거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분이 당신에게서 불미스러운 것을 보고서 정녕 당신과 동행하지 않고 떠나시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 (신 23:9-14) 이 경우 거룩함에는 청결함이 연관되어 있다.
특정한 기간들 이스라엘에는 따로 구별되어 거룩하게 된 특정한 날 혹은 기간들이 있었다. 그 기간 자체가 본질적으로 혹은 본래부터 거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호와에 대한 숭배에 있어서 특별히 지켜야 할 시기로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간들을 따로 구별함에 있어서 하느님께서 염두에 두신 것은 그 백성의 복지와 그들을 영적으로 세워 주는 것이었다.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이 있었다. (출 20:8-11) 이 안식일에 사람들은 하느님의 법과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일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외에 거룩한 대회 혹은 안식일이 된 날들로는 일곱째 달 초하루(레 23:24)와 속죄일이 된 일곱째 달 십 일이 있었다. (레 23:26-32) 축제 기간과 특히 그 기간의 특정한 날들도 “거룩한 대회”로 지켰다. (레 23:37, 38) 그 축제들이란 유월절과 무교절 축제(레 23:4-8), 오순절 즉 칠칠절 축제(레 23:15-21), 그리고 초막절 즉 수장절 축제였다.—레 23:33-36, 39-43. 대회 참조.
그에 더하여 매 칠 년째 되는 해는 안식년으로서 한 해 전체가 거룩하였다. 안식년 동안에는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로 두어야 하였는데, 이 마련은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의 법을 공부하고 묵상하며 자녀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하였다. (출 23:10, 11; 레 25:2-7) 마지막으로 매 50년째 되는 해는 희년이라 불렸으며 그해 또한 거룩하게 여겨졌다. 그해 역시 안식년이었지만, 그해에는 그에 더하여 그 나라의 경제를 그 땅이 분할될 때 하느님께서 확립하신 신권적 상태로 회복시키는 일이 있었다. 그해는 자유와 쉼과 새 힘을 얻는 거룩한 해였다.—레 25:8-12.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속죄일, 곧 “거룩한 대회”의 날에 ‘자신들의 영혼을 괴롭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그들이 단식을 해야 하며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여 고백하고 그에 대해 경건한 슬픔을 느껴야 함을 의미하였다. (레 16:29-31; 23:26-32) 그러나 어느 날이든 여호와께 거룩한 날은 그분의 백성이 울고 슬퍼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그날들은 여호와께서 사랑의 친절로 베푸신 놀라운 마련들로 인하여 기뻐하고 그분에 대한 찬양을 선언하는 날이 되어야 하였다.—느 8:9-12.
여호와의 거룩한 쉼의 날 성서에서 알려 주듯이, 하느님께서는 약 6000년 전에 일곱째 “날”을 신성하다고 혹은 거룩하다고 선언하시면서 창조하는 일을 쉬기 시작하셨다. (창 2:2, 3)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큰 쉼의 날이 장기간에 걸친 것임을 알려 주는데, 그는 그날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과 순종을 통해 그 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날은 거룩한 날로서 그리스도인들이 피폐하고 죄로 시달리는 세상 가운데서도 해방감과 기쁨을 누리는 때이다.—히 4:3-10. 날, 낮 참조.
물품 숭배에 사용하기 위하여 특정한 물건들을 따로 구별하는 일이 있었다. 이 경우도 그러한 것들이 거룩하게 된 것은 여호와의 봉사를 위하여 성별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자체에 거룩함이 있어서 부적이나 주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례로 거룩한 물품 중 주요한 것 한 가지는 계약의 궤였는데, 엘리의 두 악한 아들이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에 가지고 갔을 때 그것은 주물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삼첫 4:3-11)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 거룩해진 것들 중에는 희생 제단(출 29:37), 기름부음용 기름(출 30:25), 특별한 향(출 30:35, 37), 제사장의 옷(출 28:2; 레 16:4), 진설빵(출 25:30; 삼첫 21:4, 6), 그리고 신성한 곳의 모든 비품이 있었다. 그 비품들 중에는 금으로 된 분향 제단, 진설빵 상, 등잔대와 그 기구들이 있었다. 이러한 물품 다수가 열왕기 첫째 7:47-51에 열거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더 큰 의미에서도 거룩하였는데, 그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으로서 구원을 상속받을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모형적인 역할을 했다는 면에서 그러하였다.—히 8:4, 5; 9:23-28.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은 “성경” 혹은 “거룩한 기록들”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성령의 영향을 받아 기록된 것으로서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신성하게 하는 혹은 거룩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로 1:2; 디둘 3:15.
동물과 산물 소와 양과 염소의 처음 난 수컷은 여호와께 거룩한 것으로 여겨져 구속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희생으로 바쳐야 하였는데, 일부는 성별된 제사장들에게 돌아갔다. (민 18:17-19) 첫 열매와 십일조는 거룩하였는데, 신성한 곳의 봉사를 위하여 성별된 모든 희생과 모든 예물이 그러한 바와 같았다. (출 28:38) 여호와께 거룩한 것은 어느 것이나 신성하였으므로 가볍게 여기거나, 일상 용도로 속되게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일례로 십일조에 관한 법이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밀 수확의 일부를 십일조로 바치려고 따로 구별해 두었는데 그 사람이나 그 집안사람 중 하나가 고의성 없이 그중 얼마를 가져다가 요리 같은 일로 집안일에 사용할 경우, 그 사람에게는 거룩한 것들에 관한 하느님의 법을 범한 죄가 있었다. 율법에 따르면 그는 신성한 곳에 대해 배상이 되도록 같은 분량의 밀에다 20퍼센트를 더해야 하였다. 그뿐 아니라, 가축 떼 중에서 성한 숫양 한 마리를 희생으로 바쳐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호와께 속한 거룩한 것에 대한 깊은 존중심이 생기게 해 주었다.—레 5:14-16.
그리스도인의 거룩함 그리스도인들의 인도자이신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거룩하셨으며(누 1:35), 그분은 지상 생애 전체에 걸쳐서 거룩하게 된 그 상태 즉 그 거룩함을 유지하셨다. (요 17:19; 행 4:27; 히 7:26) 그것은 그분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 가득 담긴 철저하고 완전한 거룩함이었다. 희생의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자신의 거룩함을 유지하심으로써 그분은 다른 사람들도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 가능해지게 하셨다. 따라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은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디둘 1:9) 그들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형제들이 되며 “거룩한 자들” 혹은 “성도들”이라고 불린다. (로 15:26; 엡 1:1; 빌 4:21. 「개역」 비교)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에 의해 거룩함을 받는다. (빌 3:8, 9; 요첫 1:7) 그러므로 거룩함은 그들 자신의 공적을 통해 그들 안에 내재해 있는 것 혹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로 3:23-26.
성경에서 회중의 살아 있는 성원들을 “거룩한 자들” 혹은 “성도들”(「개역」, 「킹」)이라고 여러 번 부르는 것을 보면, 사람이 거룩한 자 즉 “성도”가 되는 것은 인간이나 조직에 의한 것도 아니고, 그가 사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다음에야 비로소 “성도”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다. 사람이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도록 부르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는 지상에서 사는 동안 하느님이 보시기에 거룩하며, 여호와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이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거하시는 하늘의 영계에서 살 희망을 갖게 된다.—베첫 1:3, 4; 대둘 6:30; 막 12:25; 행 7:56.
필수적인 깨끗한 행실 여호와 앞에서 이런 거룩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의 도움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에까지 이르려고 애쓴다. (데첫 3:12, 13)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인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들의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 (베첫 1:22) 또 여호와의 징계에 순응해야 한다. (히 12:9-11) 그러므로 진정으로 거룩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거룩하고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로를 추구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대의 신성한 곳에서 바쳐진, 받아들일 만한 희생이 거룩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몸을 거룩한 희생으로 하느님께 바치라는 훈계를 받고 있다. (로 12:1) 행실이 거룩해야 한다는 명령도 있다. “여러분을 부르신 거룩하신 분을 따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하게 되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베첫 1:15, 16.
그리스도의 몸의 성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룩한 자들의 동료 시민이며 하느님의 집안 식구들”이다. (엡 2:19) 그들은 여호와를 위한 산 돌들로 이루어진 거룩한 성전에 비하여지며 ‘왕 겸 제사장, 거룩한 나라, 특별한 소유가 된 백성’을 이루고 있다. (베첫 2:5, 9) 그들은 “육과 영의 모든 더러운 것에서 자기를 깨끗이 하여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성”해야 한다. (고둘 7:1) 만일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육체를 더럽히거나 해를 끼치거나 불결하게 하고 부정하게 하는 습관을 행한다면, 또는 교리적인 면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성서와 반대되는 길을 간다면 그는 하느님을 사랑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며 거룩함에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부정한 것을 계속 행하고도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거룩한 것들은 존중심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만일 성전 반열의 어느 성원이 자신의 몸을 부정한 방식으로 사용하면, 그는 자신만 더럽히고 허물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전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멸한다면 하느님께서 그를 멸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은 그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고첫 3:17) 그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다. (베첫 1:18, 19) 자신의 몸이든 여타의 봉헌된 것이든 여호와께 거룩한 것을 오용하는 사람, 하느님께 거룩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잘못을 범하는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데둘 1:6-9.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소유물들을 그토록 속되게 사용한 것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셨다. 이 점을 보여 주는 것은 모세의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 이를테면, 첫 열매나 십일조같이 거룩한 것으로 구별되어 있는 것들을 일상 용도로 속되게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그분의 법이다. (렘 2:3; 계 16:5, 6; 누 18:7; 데첫 4:3-8; 시 105:15; 슥 2:8) 또한 바빌론이 악의적으로 성전 그릇들을 오용하고 그분의 거룩한 나라의 백성을 학대한 것으로 인해 하느님께서 바빌론에 내리신 형벌을 생각해 보라. (단 5:1-4, 22-31; 렘 50:9-13) 하느님께서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반복적으로 여호와의 거룩한 자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형제들을 사랑으로 친절하게 대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기도 하고 그렇게 할 필요성에 대해 일깨움 받기도 한다.—로 15:25-27; 엡 1:15, 16; 골 1:3, 4; 디첫 5:9, 10; 몬 5-7; 히 6:10. 마 25:40, 45 비교.
하느님이 보시기에 거룩한 자로 여겨짐 예수께서 땅에 오셔서 하늘 생명의 길의 선구자로서 그 길을 열어 주시기 전에 살던 충실한 인간 남녀들도 거룩한 자들로 여겨졌다. (히 6:19, 20; 10:19, 20; 베첫 3:5) 그러므로 “인장이 찍힌” 14만 4000명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 “큰 무리”도 하느님 앞에서 거룩한 신분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에 씻은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계 7:2-4, 9, 10, 14. 큰 무리 참조) 때가 되면 하늘과 땅에 사는 자들 모두가 거룩해질 것이다. “창조물 자신도 부패의 종 상태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느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로 8:20, 21.
여호와의 축복을 받는 거룩한 신분 거룩한 신분을 지닌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가족 관계는 그 신분으로 인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혜택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께 거룩한 자인 그리스도인이 결혼한 사람일 경우, 이 사람의 배우자와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은, 그 자신들이 하느님의 헌신한 종들이 아닐지라도, 식구인 거룩한 자의 자격으로 인해 혜택을 입게 된다. 그러한 이유에서 사도는 이렇게 권한다.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않는 아내가 있는데, 그 여자가 자기와 함께 사는 데 동의한다면, 그 여자를 두고 떠나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 여자도, 남편이 자기와 함께 사는 데 동의한다면, 남편을 두고 떠나지 마십시오. 믿지 않는 남편이 자기 아내와 관련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않는 아내가 그 형제와 관련하여 거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자녀가 참으로 더러울 것인데, 지금은 그들이 거룩합니다.” (고첫 7:12-14) 그러므로 깨끗한 신분을 가진 믿는 배우자가 믿지 않는 배우자와의 관계로 인해 부정해지는 일은 없으며 하느님께서는 한 단위로 그 가족도 부정하게 보시지 않는다. 더욱이, 그 가족에게 믿는 사람이 소속됨으로 인해 식구 중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믿는 사람이 되어 인간성을 새롭게 하고 자신의 몸을 “살아 있고 거룩하고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희생으로” 바치게 될 수 있는 최상의 기회가 주어진다. (로 12:1; 골 3:9, 10) 하느님을 섬기는 믿는 사람이 조성할 수 있는 깨끗하고 거룩한 분위기 속에서 그 가족은 축복을 받게 된다.—거룩하게 함 (결혼 생활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