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은 참으로 가능한가?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 19:16.
1. 인간의 수명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서에서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가 기원전 480년에 출정에 앞서 자기 군대를 사열하고 있었습니다. (에스더 1:1, 2)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그 왕은 병사들을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크세르크세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인간의 짧은 수명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지금부터 100년 후에는 이 병사들 중 단 한 사람도 살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아마 틀림없이, 인간의 생애가 가련할 정도로 짧으며 늙고 병들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유의하였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젊고 건강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삶을 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욥 14:1, 2.
2. 많은 사람들은 무슨 희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의미심장하게도, 1997년 9월 28일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는 “사람들은 살고 싶어한다”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기사에서는 어느 연구가의 말을 인용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나는 우리가 영원히 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수도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어쩌면 당신 역시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은 성서에서 우리가 이곳 지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약속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시 37:29; 계시 21:3, 4)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고 믿는 데는 성서에 나오는 이유 외에 또 다른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 몇 가지를 고려해 보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참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원히 살도록 설계되다
3, 4. (ㄱ) 일부 사람들이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다윗은 자신의 형성 과정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3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이 믿는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이 만들어진 놀라운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모태에서 형성된 과정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노화 문제의 최고 권위자 한 사람은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자연은, 수태시부터 출생시까지 그리고 성적으로 성숙하여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는 기적을 이루어 놓고 나서, 단지 그러한 기적을 영원히 유지하기만 하면 되는 훨씬 초보적인 장치 같은 것은 고안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렇습니다. 경이롭게 구성된 우리 몸을 고려해 볼 때, ‘왜 우리가 죽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4 수천 년 전에 성서 필자 다윗은, 비록 오늘날 과학자들처럼 실제로 태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바로 그러한 기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어머니의 뱃속에 가려져’ 있었다고 기술하면서, 그때 진행된 자신의 형성 과정에 관해 고찰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때 ‘자신의 신장이 지어졌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은밀히 만들어졌다’고 기술하면서, 그때 자신의 “뼈들”이 형성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태아 때의 자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이 어머니의 태 속에 태아로 있었던 것과 관련하여 ‘그 모든 부분들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기술하였습니다.—시 139:13-16, 「신세」.
5. 태 속에서 우리가 형성될 때, 어떤 기적들이 일어납니까?
5 물론, 어머니의 태 속에 있던 다윗의 형성 과정에 대한 실제로 손으로 작성한 청사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윗이 자신의 “신장”과 “뼈들”을 비롯하여 여러 다른 신체 기관들이 만들어진 일에 대해 묵상해 보았을 때,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의 발육 과정이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처럼—말하자면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어머니의 몸 속에 있는 수정된 세포에, 큰 방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책에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 몸의 형성 과정에 관한 상세한 지시가 들어 있었고 그러한 복잡한 지시가 생성되는 각 세포에 전달된 것과 같았습니다. 따라서 「과학 세계」(Science World)라는 잡지에서는 ‘발육하고 있는 태아의 각 세포에는 캐비닛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청사진이 들어 있다’는 비유를 사용합니다.
6. 다윗이 기록한 것처럼, 우리가 “신묘막측”하게 만들어졌다는 무슨 증거가 있습니까?
6 우리 몸의 경이로운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생물학자인 재러드 다이어먼드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내장의 내벽을 이루는 세포는 며칠에 한 번씩, 방광의 내벽을 이루는 세포는 두 달에 한 번씩, 적혈구는 넉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세포로 대치된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연은 우리를 매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한다.” 이 말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에 관계없이—우리가 8년을 살았든, 80년을 살았든, 아니 심지어 800년을 살았든—우리 몸은 여전히 매우 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과학자는 이렇게 추산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몸 속에 있는 원자의 약 98퍼센트는 1년 내에, 우리가 숨쉬고 먹고 마시는 가운데 섭취하는 다른 원자들로 대치될 것이다.” 다윗이 찬사를 발한 것처럼, 실로 우리는 “신묘막측”하게 만들어졌습니다.—시 139:14.
7. 우리 몸의 설계를 보고, 일부 사람들은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7 그러므로 우리 몸의 설계를 보고, 노화 문제의 권위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왜 노화가 일어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상 우리는 반드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학 기술을 통해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앨빈 실버스타인 박사가 자신의 저서인 「죽음의 정복」(Conquest of Death)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 있게 기술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의 본질을 밝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늙어 가는 과정을 ···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있게 될 것입니까? 그는 이렇게 예견하였습니다. “‘늙은’ 사람이 더는 없을 것이다. 죽음을 정복하게 해 줄 지식이 영원한 젊음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인체의 구성에 대한 현대 과학의 연구를 고려해 볼 때,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생각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처럼 들립니까?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고 믿을 만한 훨씬 더 강력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영원히 살려는 욕망
8, 9. 역사를 통틀어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어떤 자연스러운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8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라는 것에 유의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한 의사는 독일의 한 잡지에 이렇게 기고하였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염원은 아마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을 것이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에서는 고대의 일부 유럽 사람들의 신앙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지붕이 금으로 된 번쩍이는 집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그러한 근본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까!
9 「아메리카나 백과 사전」에서 기술하는 바에 따르면, 2000여 년 전 중국에서는, “황제든 [일반] 평민이든 누구나 다, 도교 사제의 인도 아래 만사를 제쳐놓고” 소위 젊음의 샘이라고 하는 “불로 불사약을 찾으려 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역사를 통틀어 어느 시대에나, 여러가지 혼합물을 섭취하거나 심지어 특정한 물을 마시기만 해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0.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현대에 어떤 시도를 해 왔습니까?
10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는 인간의 선천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현대에 바쳐진 노력도 그에 못지 않게 주목할 만합니다. 한 가지 두드러진 예는, 질병에 걸려 죽은 사람을 냉동시키는 기술입니다. 앞으로 언젠가 그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되면 그 사람을 소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그렇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인간 냉동 보존술이라고 하는 이러한 기술의 옹호자 한 사람은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의 낙관적인 전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노년의 노쇠 현상을 포함하여 온갖 손상을 치료하거나 회복시키는 방법을 알게 되면, 지금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나서 생명을 무한히 연장시키게 될 것이다.”
11. 사람들이 영원히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이러한 질문이 생길지 모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는 그러한 욕망이 그처럼 우리의 생각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인간의 정신 속에 영원을 넣어 주셨”기 때문입니까? (전도 3:11, 「개역 표준역」) 이것은 진지하게 심사숙고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히 살려는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 창조주의 목적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그러한 선천적인 욕망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창조주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는 욕망을 갖도록 우리를 창조해 놓고서 우리가 그 욕망을 결코 실현하지 못하도록 하여 우리에게 좌절감만 안겨 준다면 그것이 과연 사랑이 있는 행동이겠습니까?—시 145:16.
우리는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가?
12. 일부 사람들은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나 당신은 그러한 확신이 신뢰할 만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12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어디에 혹은 무엇에 신뢰를 두어야 합니까? 20세기나 21세기의 인간의 과학 기술입니까?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사람들은 살고 싶어한다”라는 기사에서는, “과학 기술이라는 신(神)”과 “과학 기술의 잠재력을 열렬히 신봉하는 태도”를 언급하였습니다. 심지어 한 연구가는 “유전자 증식 기술이 머지않아 노화 과정을 멈추게 하고, 어쩌면 그 과정을 역전시켜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 확신에 들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화 과정을 멈추게 하거나 죽음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모두 무위로 끝났습니다.
13. 뇌의 구조는 원래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음을 어떻게 지적해 줍니까?
13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가 가지고 있는 거의 무제한의 학습 능력과 우리 뇌의 경이로운 구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확신하게 됩니다. 분자 생물학자인 제임스 왓슨은 우리 뇌를 가리켜 “우리가 지금까지 우주에서 발견한 것 중 가장 복잡한 물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경학자인 리처드 레스택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어디를 보아도 뇌를 조금이라도 닮은 것은 하나도 없다.” 원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어 있지 않았다면, 거의 무제한의 정보를 저장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뇌와 영원히 기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몸이 우리에게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4. (ㄱ) 성서 필자들은 인간 생명과 관련하여 무슨 결론을 알려 줍니까? (ㄴ)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밖에 없는 합리적이면서도 사실에 입각한 유일한 결론은 무엇입니까? 전능하고 지성 있는 조물주께서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설계하고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아닙니까? (욥 10:8; 시 36:9; 100:3; 말라기 2:10; 사도 17:24, 25)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 시편 필자의 영감받은 명령을 현명하게 청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라].” 인간을 신뢰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편 필자가 기록한 것처럼,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살 잠재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인간은 죽음 앞에서 무력합니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3-5.
그것이 참으로 하느님의 목적인가?
15. 무엇을 볼 때,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이 하느님의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까?
15 하지만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참으로 여호와의 목적인가?’라는 질문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목적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여러 차례 그것을 약속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 영원한 생명”이라고 성서가 우리에게 확언합니다. 하느님의 종인 요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된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한 청년이 예수께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로마 6:23; 요한 첫째 2:25; 마태 19:16) 사실, 사도 바울도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느님께서 오래 지속된 시대 전에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관하여 썼습니다.—디도 1:2.
16.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께서는 “오래 지속된 시대 전에”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까?
16 하느님께서 “오래 지속된 시대 전에”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일부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한 말이 첫 인간 부부인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기 전에 사람들이 영원히 살게 하려는 목적을 하느님께서 가지고 계셨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인간이 창조되고 난 뒤의 어느 시점을 언급하고 있고 그때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적을 언명하셨다 하더라도, 여전히 하느님의 뜻에는 인간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포함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17.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그룹들이 그 입구를 지키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성서는 에덴 동산에 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 나무가 나게 하시니 ··· 생명 나무[도] ··· 있더라.” 아담이 그 동산에서 쫓겨나야 하는 이유로 제시된 것은,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하는 일이 없게, 다시 말해서 영원히 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신 후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창세 2:9; 3:22-24.
18. (ㄱ)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면, 그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을 것입니까? (ㄴ) 그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였습니까?
18 아담과 하와에게 그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을 것입니까? 바로 낙원에서 영원히 사는 특권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한 성서 학자는 이렇게 추리하였습니다. “생명 나무는 인간의 몸이 노쇠해지게 하는 일, 즉 결국 죽음을 초래하는 쇠약해지게 하는 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어떤 효능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 주장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낙원에서 그 나무에는 그러한 [노쇠] 현상을 물리칠 수 있는 약초와 같은 효능이 있었다.” 하지만 성서에서는 생명 나무 자체에 생명을 주는 효능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나무는 단지 그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허락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신다는 것을 상징하였을 뿐입니다.—계시 2:7.
변하지 않은 하느님의 목적
19. 아담이 죽은 이유는 무엇이며, 그의 후손들인 우리 역시 죽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아담은 죄를 지었을 때,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권리는 물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모든 후손들이 누릴 영원한 생명에 대한 권리까지도 상실하였습니다. (창세 2:17) 아담이 불순종하여 죄인이 되었을 때, 그는 결함을 지니게 되었고 불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아담의 몸은 사실상 죽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서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죄가 지불하는 삯은 죽음”입니다. (로마 6:23) 그뿐만이 아니라, 사실상 아담의 불완전한 후손들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프로그래밍이 된 것이 아니라 죽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었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 사람[아담]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두가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퍼졌습니다.”—로마 5:12.
20. 무엇을 볼 때 원래 인간이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20 그러면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담이 하느님께 불순종하지 않고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허락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담은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어디에서 누렸을 것입니까? 하늘에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하늘로 데려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담에게 주어진 일은 이곳 땅에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라].” 또한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 2:9, 15) 아담의 배필로 하와가 창조되자, 그 두 사람에게는 이곳 지상에서 수행해야 할 부가적인 일이 맡겨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 1:28.
21. 첫 인간 부부는 어떤 놀라운 전망을 누리게 되어 있었습니까?
21 하느님께서 내리신 이러한 지시로 인해 아담과 하와 앞에 열리게 된, 지상에서 누릴 놀라운 전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완전히 건강하게 태어난 아들과 딸들을 지상 낙원에서 양육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 그 자녀들도 그들과 함께 생육하는 일과 이 낙원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 즐겁게 동산을 가꾸는 일에 참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동물이 그들에게 복종하였을 것이므로, 인류는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경계가 확장되어 마침내 온 땅이 낙원이 될 때 느끼게 될 기쁨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도 지상에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집에서 늙거나 죽을 것을 조금도 염려하는 일 없이 완전한 자녀들과 함께 삶을 즐기고 싶습니까? 당신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대로 이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22. 하느님께서 땅에 대한 자신의 목적을 바꾸지 않으셨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2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자,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바꾸셨습니까? 결코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바꾸셨다면, 그것은 그분이 자신의 원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하여 패배를 자인하시는 것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자신이 약속하시는 대로 이행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친히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이사야 55:11.
23. (ㄱ) 의로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하느님의 목적임을 무엇이 재차 확증해 줍니까? (ㄴ)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무엇을 살펴볼 것입니까?
23 땅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성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서에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산상 수훈에서 기질이 온화한 사람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 37:29; 마태 5:5)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그러한 생명을 누리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그러한 점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고 많은 사람이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무엇을 볼 때, 원래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 땅과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원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 하느님께서 자신의 원래 목적을 이루실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