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얻는 구원
“여호와는 나의 빛, 나의 구원.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시 27:1.
1. 여호와께서는 생명을 주는 무슨 마련들을 해 주십니까?
여호와는 지상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햇빛의 근원이십니다. (창세 1:2, 14) 그분은 또한 영적 빛의 창조주이기도 하신데, 그 빛은 사탄의 세상의 치사적인 어둠을 걷어 냅니다. (이사야 60:2; 고린도 둘째 4:6; 에베소 5:8-11; 6:12) 그 빛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시편 필자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 나의 구원.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시 27:1ㄱ) 하지만 예수 당시에 그러했던 것처럼, 어둠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는 불리한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요한 1:9-11; 3:19-21, 36.
2. 고대에, 여호와의 빛을 배척한 사람들과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은 각각 어떻게 되었습니까?
2 이사야 시대에, 여호와의 계약 백성 대부분은 빛을 배척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사야는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한 나라로서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멸망되었고, 유다 주민들은 포로로 잡혀 가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은 그 당시의 배교에 저항할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기원전 607년과 관련하여,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1:8, 9) 오늘날 빛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 당시에 있었던 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에베소 5:5.
빛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
3. 오늘날 우리는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며, 무슨 “의로운 나라”를 사랑합니까? 그리고 그 “나라”는 어떤 “견고한 도시”를 가지고 있습니까?
3 “우리에게는 견고한 도시가 있네. [하느님께서] 구원으로 성벽과 누벽(壘壁)을 삼으시네. 너희는 충실한 행실을 지키고 있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도록 성문들을 열어라.” (이사야 26:1, 2) 이것은 여호와를 신뢰한 사람들이 말한 환희에 넘친 표현입니다. 이사야 시대의 충실한 유대인들은 안전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실제적인 근원으로서, 동족들이 섬기던 거짓 신들이 아니라 여호와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인 “하느님의 이스라엘”을 사랑합니다. (갈라디아 6:16; 마태 21:43) 여호와께서도 그 나라의 충실한 행실 때문에 그 나라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의 이스라엘은 그분의 축복 덕분에 “견고한 도시”, 다시 말해서 그 나라를 지원하고 보호해 주는 도시와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우리는 어떤 정신 태도를 기르는 것이 좋습니까?
4 이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잘 지지되는 의향을 [여호와께서] 지속적인 평화 가운데 잘 지키실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여호와를] 신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의로운 원칙들을 따르려는 정신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십니다. 따라서 유다의 충실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사야의 권고에 유의하였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토록 신뢰하여라. 야 여호와 안에 한정 없는 때까지 이르는 반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26:3, 4; 시 9:10; 37:3; 잠언 3:5) 이러한 정신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야 여호와”를 유일하게 안전한 반석으로 바라봅니다. 그들은 그분과 “지속적인 평화”를 즐깁니다.—빌립보 1:2; 4:6, 7.
하느님의 적들이 겪은 굴욕
5, 6. (ㄱ) 고대 바빌론은 어떻게 굴욕을 당하였습니까? (ㄴ) “큰 바빌론”은 어떻게 굴욕을 당하였습니까?
5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환난을 겪을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얼마 동안 그러한 일들을 허용하시지만, 마침내 구출을 가져다 주시며, 그들에게 그러한 환난을 초래한 사람들은 그분의 심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둘째 1:4-7; 디모데 둘째 1:8-10) “높여진 성읍”이라고 불린 한 도시의 경우를 고려해 봅시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높은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 높여진 성읍을 쓰러뜨리셨네. 그분은 그것을 낮추시고, 땅에 낮추시네. 그것을 흙먼지에 닿게 하시네. 발이 그것을 짓밟으리니, 괴로움을 당하는 자의 발이, 낮은 자들의 발걸음이 그렇게 하리라.” (이사야 26:5, 6) 여기에서 언급된 높여진 성읍은 바빌론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 도시는 분명히 하느님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바빌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원전 539년에 메디아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함락되었습니다. 참으로 큰 굴욕을 당한 것입니다!
6 우리 시대에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은 1919년 이후로 “큰 바빌론”에 일어난 일을 잘 묘사합니다. 그 높여진 성읍은 1919년에 여호와의 백성을 영적인 포로 상태에서 놓아주지 않을 수 없었을 때에 굴욕적인 무너짐을 경험하였습니다. (계시 14:8) 그 다음에 발생한 일은 훨씬 더 굴욕적이었습니다. 그 작은 집단의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과거에 자기들을 포로로 잡아 두었던 자를 ‘짓밟았’던 것입니다. 1922년에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다가오는 끝을 선포하기 시작하였고, 계시록 8:7-12에 나오는 네 천사의 나팔 소리와 계시록 9:1–11:15에 예언된 세 가지 화를 널리 알렸습니다.
“의로운 사람의 길은 올바릅니다”
7. 여호와의 빛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 인도를 받고, 누구에게 희망을 두고 있으며,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7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빛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그러한 사람들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바와 같습니다. “의로운 사람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은 올바르시니, 의로운 사람의 행로를 평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의 심판의 길을 찾아, 우리는 당신에게 희망을 두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당신의 기념을 영혼이 사모하였습니다.” (이사야 26:7, 8) 여호와는 의로운 하느님이시며, 그분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의로운 표준을 지켜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시며, 그들의 행로를 평탄하게 하십니다. 이 온유한 사람들은 그분의 인도에 유의함으로써, 그들이 여호와께 희망을 두고 있으며 그분의 이름—그분의 “기념”—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나타냅니다.—탈출 3:15.
8. 이사야는 어떤 모범적인 태도를 나타냈습니까?
8 이사야도 여호와의 이름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사야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제 영혼으로 제가 밤에 당신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안에 있는 영으로 제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으로부터 땅에 대한 심판이 있을 때에, 생산적인 땅의 주민들이 틀림없이 의를 배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6:9) 이사야는 ‘그의 영혼으로’, 즉 그의 존재 전체로 여호와를 사모하였습니다. 조용한 때인 밤 시간을 이용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아주 깊은 생각을 표현하고 여호와의 인도를 열렬히 구하는 예언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참으로 훌륭한 모범입니다! 더욱이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신 일들로부터 의를 배웠습니다. 이 면에서 이사야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서 여호와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늘 깨어 살필 필요가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어둠을 선택하는 사람들
9, 10. 여호와께서는 불충실한 그분의 나라에 대해 어떤 친절한 행동을 하셨으며, 하지만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9 여호와께서는 유다에 큰 사랑의 친절을 나타내셨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그에 반응을 나타낸 것은 아닙니다. 흔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진리의 빛이 아니라 반역과 배교를 택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악한 자는 은혜를 입을지라도, 결코 의를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바른 땅에서도 불공정하게 행하며 여호와의 탁월함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이사야 26:10.
10 이사야 시대에 여호와의 손이 적들로부터 유다를 보호하였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평화로 그들을 축복해 주셨을 때에도 그 나라는 감사하는 태도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버리셔서 그들이 “다른 주인들”을 섬기게 하셨고, 마침내 기원전 607년에는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가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26:11-13) 하지만 결국 그 나라의 남은 자들은 징벌을 받은 후에 고토로 돌아왔습니다.
11, 12. (ㄱ) 유다를 포로로 잡아 두었던 자들의 미래는 어떠하였습니까? (ㄴ) 1919년에,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종들을 포로로 잡아 두었던 자들의 미래는 어떠하였습니까?
11 유다를 포로로 잡아 두었던 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사야는 예언적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들은 죽어 있습니다. 그들은 살지 못할 것입니다. 죽어서 아무것도 못 하기에, 그들은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들을 멸절하시고 그들에 대한 모든 언급을 없애 버리시려고 주의를 돌리신 것입니다.” (이사야 26:14) 그렇습니다. 기원전 539년에 무너진 후에 바빌론의 미래는 절망적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 도시는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 도시는 “죽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될 것이었으며, 그 거대한 제국은 역사 속에 묻혀 사라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현 세상의 강력한 것들에 희망을 두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경고가 됩니다!
12 이 예언의 여러 부면들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기름부음받은 종들이 1918년에 영적인 포로 상태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셨다가 1919년에 그들을 해방시키셨을 때 성취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과거에 그들을 포로로 잡아 두었던 자들, 특히 그리스도교국의 미래는 암울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백성 앞에는 실로 풍성한 축복이 놓여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 나라를 늘리셨습니다”
13, 14.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종들은 1919년 이후로 무슨 풍성한 축복을 즐기고 있습니까?
13 하느님께서는 1919년에 그분의 기름부음받은 종들의 회개하는 영을 축복하시어 그들이 증가되게 하셨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이스라엘의 최종 성원들을 모으는 일에 주의가 기울여졌으며, 그 후 “다른 양들”의 “큰 무리”가 모아들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계시 7:9; 요한 10:16) 그러한 축복들이 이사야의 예언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 나라를 늘리셨습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은 이 나라를 늘리셨습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땅의 모든 경계를 멀리까지 넓히셨습니다. 오 여호와여, 고난 중에 그들은 당신에게 주의를 돌렸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징계를 받을 때에 기도의 속삭임을 쏟아 놓았습니다.”—이사야 26:15, 16.
14 오늘날 하느님의 이스라엘의 “경계”는 지구 전역으로 넓혀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더해진 큰 무리의 수는 이제 약 600만 명이나 되며, 이들은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마태 24:14) 여호와께서 베푸신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또한 그로 인해 그분의 이름에도 참으로 큰 영광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오늘날 235개 나라와 지역에서 들리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분의 약속이 놀랍게 성취되고 있습니다.
15. 1919년에 어떤 상징적인 부활이 있었습니까?
15 유다가 바빌론의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여호와의 도움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사야 26:17, 18) 그와 비슷하게, 1919년에 하느님의 이스라엘이 해방된 것은 여호와께서 지원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분의 지원이 없었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상태가 매우 놀랄 만하게 달라졌으므로 이사야는 그 일을 부활에 비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당신의 죽은 자들은 살 것입니다. 저의 주검—그들은 일어날 것입니다. 흙먼지의 거주자들아, 깨어서 기뻐 외쳐라! 당신의 이슬은 당아욱의 이슬 같고, 땅은 죽어서 아무것도 못 하던 자들까지도 출산할 것입니다.” (이사야 26:19; 계시 11:7-11)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죽어서 아무것도 못하던 자들이 새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 재출산될 것이었습니다!
위험한 때에 보호를 받음
16, 17. (ㄱ)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이 무너졌을 때 살아남기 위하여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였습니까? (ㄴ) 오늘날 “밀실”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으며, 그러한 밀실은 우리에게 어떻게 유익을 줍니까?
16 여호와의 종들에게는 항상 그분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분은 사탄의 세상에 대해 마지막으로 손을 뻗치실 것이며, 그분의 숭배자들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방식으로 그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 첫째 5:19) 여호와께서는 그 위험한 때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가거라, 내 백성아. 너의 밀실에 들어가서 네 뒤의 문을 닫아라. 질책이 지나갈 때까지 잠시 동안만 숨어 있어라. 보라! 여호와께서 자신의 처소에서 나오셔서 땅의 주민에게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리니, 땅이 틀림없이 그 피흘림을 드러낼 것이며 그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더는 덮어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26:20, 21; 스바냐 1:14) 이러한 경고를 통해 유대인들은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이 무너질 때 살아남는 방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경고에 유의한 사람들은 자기 집에 머물러 있음으로, 거리에 있는 정복해 들어온 병사들에게 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17 오늘날 이 예언에 나오는 “밀실”은 세계 전역에 있는 수만 개의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회중들은 심지어 지금도 보호가 되며, 그리스도인들이 장로들의 사랑에 찬 돌봄을 받으면서 형제들 가운데 안전을 누리는 장소가 됩니다. (이사야 32:1, 2; 히브리 10:24, 25) 생존 여부가 순종에 달려 있을 때인 이 사물의 제도의 끝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특히 그러합니다.—스바냐 2:3.
18. 여호와께서는 머지않아 어떻게 ‘바다 괴물을 죽이실’ 것입니까?
18 그때와 관련하여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단단하고 크고 강한 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뱀 리워야단, 곧 구불구불한 뱀 리워야단에게 주의를 돌리시어, 바다에 있는 그 바다 괴물을 틀림없이 죽이실 것이다.” (이사야 27:1) 현대의 “리워야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원래의 뱀”인 사탄과 그의 악한 사물의 제도를 말하는 것 같으며, 사탄은 그 제도를 사용하여 하느님의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웁니다. (계시 12:9, 10, 17; 13:14, 16, 17) 1919년에 리워야단은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였습니다. 때가 되면 리워야단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계시 19:19-21; 20:1-3, 10) 그렇게 함으로 여호와께서는 ‘바다 괴물을 죽이실’ 것입니다. 그 사이에 리워야단이 여호와의 백성을 치기 위해 시도하는 어떤 일도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이사야 54:17) 이 사실을 확신한다면 참으로 큰 위로가 됩니다!
“거품 이는 포도주를 내는 포도원”
19. 오늘날 남은 자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19 여호와께서 주시는 이 모든 빛을 고려해 볼 때, 우리에게는 기뻐할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그렇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백성이 누리는 기쁨을 다음과 같은 말로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그 날에 너희는 이 여자를 위하여 노래를 불러라. ‘거품 이는 포도주를 내는 포도원! 나 여호와는 그것을 잘 지키고 있다. 수시로 내가 거기에 물을 줄 것이다. 아무도 거기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도록, 내가 밤낮으로 그것을 잘 지킬 것이다.’” (이사야 27:2, 3)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포도원”인 하느님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돌보아 오셨으며,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동료들도 돌보아 오셨습니다. (요한 15:1-8) 그 결과,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며 지상에 있는 그분의 종들 사이에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 열매가 생산되어 왔습니다.
20.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어떻게 보호하십니까?
20 여호와께서는 일찍이 그분의 기름부음받은 종들에게 분노하셨으므로, 그들이 1918년에 영적 포로 상태가 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께서 더는 그러한 분노를 나타내지 않으시는 데 대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격노할 일이 없다. 누가 싸움터에서 나에게 가시덤불과 잡초를 주려고 하느냐? 나는 그것들을 밟겠다. 나는 그것들을 한꺼번에 불태우겠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의 성채에 고착하고, 나와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나와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사야 27:4, 5)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포도나무들이 “거품이 이는 포도주”를 계속 풍성하게 산출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마치 잡초를 짓밟고 불태워 버리듯이 그분의 포도나무들을 부패시킬 가능성이 있는 잡초 같은 영향력은 무엇이든 모두 제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리스도인 회중의 복지를 위협하지 못하게 합시다! 우리 모두 ‘여호와의 성채에 고착’하여 그분의 은혜와 보호를 구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이사야가 두 번이나 언급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일인 하느님과 평화를 이루는 일을 하게 됩니다.—시 85:1, 2, 8; 로마 5:1.
21. 생산적인 땅은 어떻게 “소출”로 가득 채워져 왔습니까?
21 축복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훗날에 야곱이 뿌리를 내리고, 이스라엘이 꽃을 피우며 실제로 싹을 낼 것이다. 그들이 생산적인 땅의 표면을 소출로 가득 채울 것이다.” (이사야 27:6) 이 구절은 1919년 이후로 성취되어, 여호와의 능력에 대한 참으로 훌륭한 증거를 제시해 왔습니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땅을 “소출” 즉 영양분이 풍부한 영적 양식으로 가득 채워 왔습니다. 그들은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도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의 높은 표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증가의 축복을 베풀고 계십니다. 그 결과, 그들의 동료인 수백만 명의 다른 양들이 “주야로 [하느님께] 신성한 봉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계시 7:15) 우리에게는 “소출”을 함께 먹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는 웅대한 특권이 있음을 결코 잊지 말기 바랍니다!
22.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됩니까?
22 어둠이 땅을 덮고 있으며 흑암이 나라들을 덮고 있는 이 위급한 시대에,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영적 빛을 비추어 주고 계신 데 대해 감사하지 않습니까? (이사야 60:2; 로마 2:19; 13:12) 그러한 빛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빛은 현재 정신의 평화와 기쁨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그 빛은 미래의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고무하여 여호와께 찬양을 드리면서 시편 필자처럼 이렇게 말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 생명의 성채.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여호와께 희망을 두어라. 용기를 내고 네 마음을 강하게 하여라. 그래, 여호와께 희망을 두어라.”—시 27:1ㄴ, 14.
기억하십니까?
● 여호와의 백성을 압제하는 자들의 미래는 어떠합니까?
● 이사야서에는 어떤 증가가 예언되어 있습니까?
● 우리는 어떤 “밀실”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여호와의 백성이 누리는 상태로 인해 그분에게 찬양이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2면 네모]
새로운 출판물
이 두 가지 연구 기사에서 검토한 대부분의 내용은 2000년에서 2001년에 열린 지역 대회 프로그램에서 연설로 제공된 것이다. 그 연설의 끝 부분에서 새로운 출판물이 발표되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이사야의 예언—온 인류를 위한 빛 제1권」이었다. 416면으로 된 그 책에는 이사야서의 처음 40개 장을 한 구절씩 해설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18면 삽화]
의로운 사람들만이 여호와의 “견고한 도시”인 그분의 조직에 들어가도록 허락된다
[19면 삽화]
이사야는 “밤에”도 여호와를 찾았다
[21면 삽화]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포도원”을 보호하시며 그곳에서 많은 열매가 생산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