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존귀한 자들을 신뢰하지 말아라’
1, 2. (ㄱ) 유대인들은 어떤 영감받은 조언을 청종하지 않으며, 그 결과 어떤 일을 당합니까? (ㄴ) 여호와께서 “이혼 증서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물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희는 존귀한 자들을 신뢰하지 말고 땅의 사람의 아들도 신뢰하지 말아라.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 ··· 행복한 사람은 야곱의 하느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는 사람, 그는 자기 하느님 여호와께 희망을 둔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 만드신 분.” (시 146:3-6) 이사야 시대에 사는 유대인들이 시편 필자가 조언한 대로 하기만 한다면! 이집트나 어떤 다른 이방 나라가 아니라 “야곱의 하느님”을 신뢰하기만 한다면! 그렇게 한다면, 유다의 적들이 유다를 치러 올라올 때 여호와께서 유다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도움을 얻기 위해 여호와께 향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되도록, 그리고 유다의 주민들이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2 유다는 자기 자신 외에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멸망이 닥친 것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배신 행위를 하셨기 때문이거나 여호와께서 그 나라와의 계약 이행을 태만히 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합당한 근거가 없습니다. 창조주는 계약을 깨뜨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31:32; 다니엘 9:27; 계시 15:4)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여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가 쫓아낸 너희 어머니의 이혼 증서가 어디에 있느냐?” (이사야 50:1ㄱ) 모세의 율법 아래서는, 아내와 이혼하는 남자는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여자가 다른 남자의 것이 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됩니다. (신명 24:1, 2) 여호와께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유다의 자매 왕국인 이스라엘에게는 이혼 증서를 주셨지만, 유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a 그분은 여전히 유다의 “남편인 소유자”이십니다. (예레미야 3:8, 14) 분명히 유다는 이교 나라들과 교제할 자유가 없습니다. 여호와와 유다의 관계는 “실로[메시아]가 올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창세 49:10.
3. 여호와께서는 어떤 이유로 자신의 백성을 ‘파’십니까?
3 여호와께서는 유다에게 또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가 빚진 자들 중 누구에게 내가 너희를 팔아 넘겼단 말이냐?” (이사야 50:1ㄴ) 유대인들이 장차 바빌론으로 포로로 보내지는 것은, 여호와께서 무슨 빚을 지신 것이라도 있어서 그 빚을 갚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채권자에게 자녀를 팔아야 하는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과는 다르십니다. (탈출 21:7)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노예가 되는 진정한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보라! 너희의 잘못 때문에 너희가 팔렸고, 너희의 범법 때문에 너희 어머니가 쫓겨났다.” (이사야 50:1ㄷ) 유대인들이 여호와를 버린 것이지, 여호와께서 유대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4, 5.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자신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시며, 하지만 유다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4 여호와께서 뒤이어 하시는 질문은 자신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뚜렷이 강조합니다. “내가 왔을 때에 아무도 없었던 것은 어찌 된 일이냐? 내가 불렀을 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은 것은 어찌 된 일이냐?” (이사야 50:2ㄱ)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인 예언자들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백성의 집으로 오셔서 그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자신에게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셨습니다. 하지만 묵묵부답입니다. 유대인들은 지원을 받기 위해 땅의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어떤 때는 심지어 이집트로 향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이사야 30:2; 31:1-3; 예레미야 37:5-7.
5 이집트가 여호와보다 더 신뢰할 만한 구원자입니까? 이 불충실한 유대인들은 여러 세기 전에 자기 나라의 탄생으로 인도한 사건들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손이 너무 짧아 구속할 수 없겠느냐? 내게 구출할 힘이 없겠느냐? 보라! 나의 꾸짖음으로 내가 바다를 말려 버리고, 강을 광야로 만든다. 그곳의 물고기들은 물이 없어서 악취를 풍기고, 목마름 때문에 죽는다. 내가 어두컴컴함으로 하늘을 입히고, 자루천으로 그 덮개를 만든다.”—이사야 50:2ㄴ, 3.
6, 7. 이집트의 위협에 맞서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구원 능력을 어떻게 보여 주셨습니까?
6 기원전 1513년에, 이집트는 하느님의 백성이 기대하던 구출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의 압제자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이교 나라의 노예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출해 주셨는데, 그것은 참으로 감격적인 구출이었습니다! 먼저, 여호와께서는 그 나라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특히 파멸적인 열 번째 재앙이 있은 후,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나라를 떠나라고 강력히 요구하였습니다. (탈출 7:14–12:31)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떠나자마자 곧 파라오의 마음은 변하였습니다. 그는 군대를 소집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강제로 이집트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출발하였습니다. (탈출 14:5-9) 이스라엘 사람들 뒤에는 수많은 이집트 군인들이 있고 그 앞에는 홍해가 있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사이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그곳에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셨습니다.
7 여호와께서는 이집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구름기둥을 두심으로 이집트 사람들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서게 하셨습니다. 구름덩이를 가운데 두고 이집트 사람들 쪽에는 어두컴컴함이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 쪽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탈출 14:20) 그때, 이집트 군대를 그렇게 붙들어 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호와께서는 “밤새도록 강한 동풍으로 바다를 물러가게 하고 그 바다 밑을 마른 땅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탈출 14:21) 물이 갈라지자, 모든 사람들이—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홍해를 건너 안전한 곳을 향하여 갈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맞은편 해안 쪽으로 상당히 가까이 가게 되자 구름을 거두셨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을 맹렬히 추격하여 바다 밑바닥으로 돌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해안으로 안전하게 올라서자 물을 풀어 놓으셔서 파라오와 그의 군대가 물에 빠져 죽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셨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참으로 격려가 되는 일입니다!—탈출 14:23-28.
8. 어떤 경고를 무시하기 때문에 유다 주민들은 마침내 유배되어 가게 됩니까?
8 이사야 시대는 이러한 하느님의 승리가 있은 지 700년이나 흐른 뒤입니다. 유다는 이제 자신의 권리로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때때로 유다는 아시리아나 이집트와 같은 외국 정부들과 외교 협상을 벌입니다. 그러나 이 이교 나라들의 지도자들은 신뢰할 만한 존재가 못 됩니다. 그들은 유다와 어떤 계약을 맺든 그것보다는 언제나 자기들의 이익을 앞세울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들은 유다 백성에게 그러한 인간을 신뢰하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예언자들의 말은 무시됩니다. 마침내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유배되어 70년간 예속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25:11)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실 것이며, 그들을 무한정 버려두시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지정된 때가 되면 그분은 그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이 고토로 돌아와 순결한 숭배를 회복할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실로 즉 모든 사람의 순종이 속하게 될 분이 올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실로가 오다
9. 실로는 누구이며, 그분은 어떠한 선생님입니까?
9 여러 세기가 흐릅니다. “때가 차자”, 실로라고 불리는 분, 즉 주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 무대에 등장합니다. (갈라디아 4:4; 히브리 1:1, 2) 여호와께서 자신의 가장 친밀한 동반자를 유대인들을 위한 자신의 대변자로 지명하셨다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는 결국 어떠한 대변자임이 밝혀집니까? 최상의 대변자임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대변자에 불과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선생님—탁월한 선생님—입니다. 그것이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 그분에게는 아주 훌륭한 스승—바로 여호와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5:30; 6:45; 7:15, 16, 46; 8:26)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예언적으로 이사야를 통하여 하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확증됩니다. “주권자인 주 여호와께서 가르침받은 자의 혀를 나에게 주셔서 내가 피곤한 사람에게 말로 응답하는 방법을 알게 하셨다. 그분은 아침마다 깨우시고, 내 귀를 깨우셔서 가르침받은 자처럼 듣게 하신다.”—이사야 50:4.b
10.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 대해 가지고 계신 사랑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반영하시며,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에 접하게 됩니까?
10 예수께서는 땅으로 오시기 전에, 하늘에서 아버지 곁에서 일하셨습니다. 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따뜻한 관계가 잠언 8:30에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내가 숙련된 일꾼으로 [여호와] 곁에 있었으며, ··· 그분 앞에서 언제나 즐거워하[였다].”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은 예수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람의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동일한 사랑을 그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잠언 8:31) 예수께서는 땅에 와 계실 때, “피곤한 사람에게 말로” 응답하십니다. 그분은 이사야의 예언에서 다음과 같은 위로가 되는 구절을 읽어 주시는 것으로 자신의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십니다. “여호와의 영이 내 위에 있다. 그분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가난한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게 하시고, ··· 억눌린 사람을 석방시켜 보내게 하[셨기 때문이다].” (누가 4:18; 이사야 61:1) 가난한 사람들에게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지친 사람들에게 참으로 새 힘을 주는 소식입니다! 이러한 선언은 당연히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어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정말 기뻐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여호와께 가르침받은 자로서 가지고 계신 신임장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합니다.
11. 누가 예수와 함께 멍에를 메고 있으며, 그들은 어떤 경험을 합니까?
11 하지만 더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예수의 가슴 뭉클한 초대에 기쁘게 응합니다. “수고하며 짐을 진 여러분, 모두 내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겠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는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영혼에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마태 11:28, 29) 예수께 가까이 나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의 사도가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에는, 무엇보다도, 왕국의 좋은 소식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마태 24:14) 사도들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은 이 일에 참여함에 따라 이 일이 참으로 자기들의 영혼에 새 힘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동일한 일을 오늘날에는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하고 있으며, 그 일에 참여하는 것은 그와 비슷한 기쁨을 그들에게도 가져다 줍니다.
그분은 거역하지 않으신다
12.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늘의 아버지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십니까?
12 예수께서는 땅에 오신 목적—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한순간도 잊으시는 법이 없습니다. 일에 대한 그분의 견해가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주권자인 주 여호와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 않았다. 나는 반대쪽으로 돌아서지 않았다.” (이사야 50:5) 예수께서는 항상 하느님께 순종하십니다. 사실상, 그분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아들은 단 한 가지 일도 자의로 할 수 없고, 다만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행할 따름입니다.” (요한 5:19) 예수께서는 인간이 되시기 전에 필시 아버지 곁에서 수백만 년, 아니 수십억 년 이상 일하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땅에 오신 후에도 계속해서 여호와의 지시에 따르십니다. 그리스도의 불완전한 추종자들인 우리는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행하기 위해 얼마나 더 신중을 기해야 하겠습니까!
13. 예수 앞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으며, 하지만 그분은 용기 있는 사람임을 어떻게 나타내십니까?
13 여호와의 독생자를 거부하는 자들 가운데는 그분을 박해하는 자들도 있는데, 이 일 역시 예언되어 있습니다. “나는 치는 자들에게 내 등을 내주고, 털을 뽑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주었다. 굴욕적인 일들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이사야 50:6) 예언에 의하면, 메시아는 반대자들의 손에 고통과 굴욕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점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러한 박해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될 것인지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지상에서 보내는 자신의 때가 끝나가고 있는데도 그분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을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부싯돌 같은 굳은 결심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시는데, 거기서 그분의 인간 생명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자,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입니다. 그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를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한 다음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흘 뒤에 살아날 것입니다.” (마가 10:33, 34) 이 모든 악한 학대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됨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선동으로 자행될 것입니다.
14, 15. 예수를 치는 일과 그분이 굴욕을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어떻게 성취됩니까?
14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밤에, 예수께서는 추종자들 몇 사람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계십니다. 그분은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갑자기 폭도들이 나타나서 그분을 붙잡아 가 감금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여호와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버지께 간청해서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보내어 자신을 구출해 달라고 할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도들을 안심시켜 주시며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렇게 한다면, ··· 성경이 어떻게 성취되겠습니까?”—마태 26:36, 47, 53, 54.
15 메시아의 시련 및 죽음과 관련하여 예언된 모든 것이 성취됩니다. 예수께서는 산헤드린 앞에서 조작된 재판을 받으신 후 본디오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는데, 그는 예수께서 채찍질을 당하게 합니다. 로마 군인들은 “그분의 머리를 갈대로 치고 그분에게 침을 뱉”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됩니다. (마가 14:65; 15:19; 마태 26:67, 68) 성서에서는 예수의 수염 일부를 뽑는 일—극도의 경멸의 표현—이 문자 그대로 있었는지 언급하지 않지만, 이 일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c—느헤미야 13:25.
16. 커다란 압력에 직면하여 예수께서는 어떤 태도를 나타내시며, 그분이 부끄러움을 느끼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성경이 성취되기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시는 예수께서는 빌라도 앞에 서 계실 때, 목숨을 살려 달라고 간청하기는커녕 계속 의연한 태도를 나타내십니다. 로마 총독이 자기에게는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권한도 있고 예수를 놓아줄 권한도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이끌자 예수께서는 두려움 없이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위로부터 당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당신은 내게 대하여 아무 권한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 19:11) 빌라도의 군인들은 예수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지만 예수를 부끄럽게 하지는 못합니다. 예수께서 부끄러움을 느끼셔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분은 어떤 범법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사야가 뒤이어 하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권자인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굴욕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얼굴을 부싯돌처럼 굳게 하였으니, 나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이사야 50:7.
17. 예수께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기간 내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그분 곁에 서 계셨습니까?
17 예수의 용기는 여호와에 대한 온전한 확신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분의 태도는 그분이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예언과 온전히 일치하게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분이 가까이 계시다. 누가 나와 다툴 수 있겠느냐? 우리 함께 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이냐? 나에게 가까이 와 보아라. 보라! 주권자인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 주실 것이다. 누가 나를 악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보라! 그들은 모두 옷처럼 해어질 것이다. 한낱 옷좀나방이 그들을 먹어 버릴 것이다.” (이사야 50:8, 9) 예수께서 침례받으시던 날에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하느님의 영적 아들로서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사실, 그때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아들, 사랑하는 자이다. 내가 그를 승인하였다.” (마태 3:17) 지상 생애의 끝 부분에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실 때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분에게 나타나서 그분을 강하게” 합니다. (누가 22:41-43) 따라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인생 행로를 승인하신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이 완전한 아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 첫째 2:22) 그분의 적들은 그분이 안식일을 어기는 자이고, 술꾼이며, 악귀 들린 자라고 거짓 고발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거짓말로도 불명예를 당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하시는데, 누가 예수를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누가 7:34; 요한 5:18; 7:20; 로마 8:31; 히브리 12:3.
18, 19.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와 유사하게 어떤 경험들을 해 왔습니까?
18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다면 여러분도 박해할 것[입니다].” (요한 15:20) 얼마 있지 않아 벌어지는 일들은 이 말씀이 참됨을 증명합니다. 기원 33년 오순절에 성령이 예수의 충실한 제자들 위에 내리고, 그리스도인 회중이 탄생합니다. 거의 즉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 충실한 남자와 여자들이 수행하는 전파하는 일을 억압하려고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제 “아브라함의 씨”의 일부로서 예수와 연합해 있고 하느님의 영적 아들들로 입양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 3:26, 29; 4:5, 6) 1세기부터 지금까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의를 위하여 단호한 태도를 나타내면서 예수의 적들의 거짓 선전이나 가혹한 박해와 싸워야 하였습니다.
19 하지만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격려적인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러분을 모욕하고 박해하고 여러분에 대하여 거짓으로 온갖 악한 것을 말할 때에,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기뻐하고 또 기뻐 뛰십시오. 하늘에서 여러분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마태 5:11, 12) 따라서 가장 심한 공격을 받을 때에도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의기를 잃지 않습니다. 반대자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은 자기들이 하느님에 의해 의롭다고 선언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흠이 없고 아무 비난받을 것이 없”습니다.—골로새 1:21, 22.
20. (ㄱ) 누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그들은 어떤 경험을 해 왔습니까? (ㄴ)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양들”은 어떻게 가르침받은 자의 혀를 갖게 됩니까?
20 현대에,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양들”의 “큰 무리”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의를 옹호하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그들도 기름부음받은 형제들과 함께 고통을 당해 왔으며, “‘어린 양’의 피에 자기들의 긴옷을 씻어 희게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심으로 그들이 “큰 환난”에서 생존할 전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계시 7:9, 14, 15; 요한 10:16; 야고보 2:23) 지금은 그들의 반대자들이 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사야의 예언이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 반대자들은 옷좀나방이 먹어서 버릴 수밖에 없는 옷처럼 될 것입니다. 그때가 올 때까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양들”은 정기적인 기도와 하느님의 말씀의 연구와 숭배를 위한 집회 참석을 통해서 강함을 유지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여호와께 가르침을 받고 있고, 또한 가르침받은 자의 혀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신뢰하라
21. (ㄱ) 빛 가운데 걷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에게는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ㄴ) 어둠 속에서 걷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21 이제 뚜렷이 대조가 되는 상황에 유의해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그분의 종의 목소리를 듣느냐? 그 종은 계속되는 어둠 속에서 걸었고 그를 위한 밝은 빛이 없었다.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신뢰하고 자기 하느님께 의지하여라.” (이사야 50:10) 하느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빛 가운데 걷습니다. (요한 3:21)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 여호와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지니신 분을 신뢰합니다. 한때는 그들도 어둠 속에서 걸었지만, 지금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의지합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걷기를 고집하는 자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 로마 관리는 예수를 대적하여 제기된 거짓 고발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결백하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예수를 석방시키지 못합니다. 로마 군인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죽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아들을 부활시켜 영광과 영예의 면류관을 씌우십니다. 빌라도는 어떻게 됩니까?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예수께서 죽으신 지 불과 4년 후에 로마 총독의 자리에서 교체되고, 로마로 돌아가 심각한 범죄에 대한 고발에 답변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죽게 만든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40년도 채 안 되어,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그 주민들을 살해하거나 노예로 잡아갔습니다. 어둠을 더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밝은 빛이 없습니다!—요한 3:19.
22. 구원을 위해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 극히 어리석은 일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22 구원을 위해 인간을 바라보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보라! 불을 붙이며 불꽃을 피어나게 하는 너희는 모두 너희 불빛 속에서, 너희가 피운 불꽃 가운데서 걸어라. 내 손에서 너희가 틀림없이 이것을 얻게 되리니, 곧 심한 고통 속에 너희가 눕게 될 것이다.” (이사야 50:11) 인간 지도자들은 잠시 왔다가 곧 사라져 버립니다.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잠시 동안 사로잡을지 모르지만, 가장 진실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가 이룩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의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을 붙이기는커녕, 그는 아마 단지 몇 개의 “불꽃”을 피어나게 하는 정도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불꽃은 적은 양의 빛과 열만 발산하다가 곧 꺼져 버립니다. 그와는 반대로, 실로 즉 하느님의 약속된 메시아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결코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각주]
a 이사야 50장의 처음 세 구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유다 나라 전체를 자신의 아내로, 유다의 주민들 개개인을 자신의 자녀로 묘사하신다.
b 4절부터 이 장 끝까지, 필자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 같다. 그 구절들에서 언급하는 시련들 중 일부는 이사야가 경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취된다.
[155면 삽화]
유대인들은 여호와보다는 인간 통치자들을 바라본다
[156, 157면 삽화]
홍해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과 이집트 사람들 사이에 구름기둥을 두심으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