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에 대한 신뢰는 헌신과 침례로 인도한다
“여호와를 의뢰[신뢰, 신세]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시 37:3.
1. 이 세상 현인들의 무슨 증언을 볼 때 인간 지도자들을 신뢰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 수 있읍니까?
우리는 누구를 신뢰할 수 있읍니까? 인간 지도자들을 신뢰할 수 있읍니까? 그들에 대한 기록을 볼 때 불완전한 인간들을 신뢰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 수 있읍니다. 심지어 이 세상 현인들까지도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경제 전문지 「비전」은 “현 상태에 관해 가장 암담한 것은 아무도 돌파구를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말한 적이 있읍니다. 그리고 경제 역사가 로버트 헤일브로너는 이렇게 지적하였읍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또 있다. 그것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 아무도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오는 문제거리들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우려감이다.”
2. 현대 과학이 주는 유익들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2 인간이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룩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유익을 가져다 주었읍니까? 결코 그렇지 못하였읍니다. 저술가 루이스 멈퍼드가 이렇게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공학과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그와 병행하는 유익을 보증한다는 개념은 ··· 이제 도저히 지지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점을 증명하는 예로서, 현재 호수와 강들을 오염시키고 있으며 나무를 수백만 그루나 죽이는 데 한몫을 하는 산성 비가 있읍니다. 더우기, 세상의 서글픈 상태—범죄, 폭력 및 테러 행위의 증가, 마약과 알콜 중독, 성 매개 질환의 증가, 불안정한 경제 상황—는 모두 우리가 인간 지도자들에게 신뢰를 두는 것이 무익한 일임을 증거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엇이라고 교훈합니까?
3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적절하게도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방백들을 의지[신뢰, 신세]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시 146:3, 4) 인간들을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는 누구를 신뢰할 수 있읍니까? 우리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신뢰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기록을 읽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신뢰, 신세]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예레미야 17:7.
여호와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
4. 여호와의 주요 속성들은 무엇이며, 그러한 속성들은 그분을 신뢰할 만한 이유를 어떻게 우리에게 제시합니까?
4 우리가 여호와를 신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여호와의 주요 속성들—사랑, 지혜, 공의, 능력—과 다른 놀라운 특성들 때문에 그분을 신뢰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분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신시켜 주며, 그분의 칭호 가운데 하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창세 28:3) 그분이 신뢰할 만한 분이라는 얼마나 확실한 근거입니까! 아무도 여호와를 대항하여 성공을 거둘 수 없으며, 아무도 그분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읍니다. 그분은 또한 전지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놀라운 창조 작품들을 통해 엿볼 수 있듯이, 그분은 처음부터 결말을 아시며 미래를 환히 아실 뿐 아니라 그분 속에는 온갖 지식과 지혜가 들어 있읍니다. 그분은 일을 처리하시면서 단 한번도 실수하신 일이 없읍니다. (이사야 46:10; 로마 11:33-35) 그에 더하여, 여호와는 완전히 신뢰할 만한 분이며, 의로우시고 충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그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신명 32:4; 디도 1:2; 히브리 6:18) 무엇보다도, 비이기적인 사랑이 그분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기 때문에, 적절하게도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되어 있읍니다.—요한 1서 4:8, 16.
5.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그분이 신뢰할 만한 분임을 증거하는 무슨 기록이 들어 있읍니까?
5 여호와께서 인류를 대해 오신 일은 그분이 신뢰할 만한 전능의 하나님이시자 지혜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한층 더 증거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는 자신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언약을 이행하시고 사랑의 친절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단언하였읍니다. (신명 7:9) 그보다 앞서,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와 그의 가족이 대홍수를 살아 남도록 보존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롯과 그의 두 딸을 소돔과 고모라의 불에 의한 멸망으로부터 구출하셨읍니다. 그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읍니다. (창세 7:23; 17:8; 19:15-26)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다니엘을 사자 굴로부터 구출하셨을 뿐 아니라 풀무불에 던져진 세명의 히브리인도 구출하지 않으셨읍니까?—다니엘 3:27; 6:23.
6.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이 잘못된 신뢰가 아님을 증명하는 무슨 현대의 증거가 우리에게 있읍니까?
6 여호와야말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는 점은 또한 그분의 현대 증인이 경험한 일에 의해서도 실증되었읍니다. 예를 들어,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에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족”을 멸종시키겠다고 호언 장담하였읍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히틀러와 그의 나치당이 멸종되었으며, 오늘날 증인의 무리는 여러 배 증가하여 119,000명이 넘습니다. 게다가, 「파수대」와 그 자매지인 「깰 때이다」에 실린 문자 그대로 수백명의 여호와의 증인의 체험담은 여호와야말로 우리가 참으로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7. 한 사람이 자신은 “여호와의 방관자”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7 하지만, 오늘날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그분의 특성과 공적을 배워 알게 된 많은 사람들까지도 그분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U. S. 가톨릭」지(1979년 1월호)에 실린 한 기사는 그런 부류의 한 사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론 조사원이 그 사람에게 좋아하는 종교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호와의 방관자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설명해 줄 것을 부탁받고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 믿는 것을 상당히 많이 믿지만, 관련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잡지는 이러한 설명을 달았읍니다. “헌신한 여호와의 증인은 기꺼이 깊은 관련을 맺는다.”
8. 무슨 기본적인 특성이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관련되고 싶어하게 만듭니까?
8 일부 사람들이 그처럼 관련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음 상태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합당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도 13:48, 신세) 예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가운데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결실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8:15) 그렇습니다. 진리는 진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없읍니다. 기본 요구 조건은 정직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또한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없읍니다.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야고보 4:6) 뿐만 아니라, 진리는 자기 만족에 빠진, 독선적인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없읍니다. 그러나 진리는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호소력이 있읍니다.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이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며,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혐오감을 주는 일들로 인해 탄식하며 우는 사람들을 말합니다.—마태 5:3, 6; 에스겔 9:4.
여호와에 대한 신뢰는 헌신으로 인도한다
9, 10. (ㄱ) 어떤 사람이 여호와를 신뢰하려면 먼저 무엇이 필요하며, 마음 상태가 올바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ㄴ) 그러한 사람들은 누구에 대한 믿음을 실천합니까?
9 어떤 사람이 여호와를 신뢰하려면 먼저 여호와에 관해 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로마 10:14) 여호와의 종들이 전파할 때, 마음 상태가 올바른 사람들은 고대 데살로니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반응을 보입니다. 그 사람들에 관해,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 전 2:13.
10 여호와에 관해 배우면서, 마음씨가 착한 그러한 사람들은 그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합니다. 이것은 극히 중요한 점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1:6) 또한 꼭 필요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있읍니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외에 다른 어떤 이름도 주신 일이 없읍니다.—사도 4:12.
11.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은 사도 베드로가 한 무슨 교훈을 따를 것입니까?
11 하나님의 말씀과 여호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사람은, 사도 베드로가 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한 이러한 교훈에 유의하도록 마음이 감동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죄가 씻겨짐을 받기 위하여 회개하고 돌이키십시오. 그렇게 하면 상쾌한 계절이 여호와라는 분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사도 3:19, 신세) 여호와와 그분의 요구 조건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됨으로써,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표현한 바와 같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 전 2:21)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 관련된 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셨읍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형주]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 16:24)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갖는 의미입니다.
헌신은 또 하나의 언약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12. 그리스도교국 내에서 “언약”이라는 단어는 종종 어떻게 사용됩니까?
12 그리스도교국에서는 “언약”이라는 단어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예수에게 하는 개인적인 언약을 강조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로마 가톨릭의 한 교직자는 “가톨릭 교인의 종교적 언약”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읍니다. 한 가톨릭 사제는 정치에 참여하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읍니다. “정계에 투신한 것은 (사제로서의) 나의 언약을 확대 적용한 것이었다.” 또한 상업 회사들은 광고하면서 “고객 여러분에게 하는 우리의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한 사람이 사업상의 언약, 사회적 언약, 정치적 언약, 종교적 언약 등 여러 가지 언약을 동시에 할 수 있읍니다.
13. 여호와께 하는 헌신에는 무엇이 관련되어 있읍니까?
13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하는 헌신은 또 하나의 언약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언약은 단순히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는 동의나 공약”입니다. 그렇지만 헌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봉사나 숭배에 혹은 거룩한 가치가 있는 것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헌신이 아니라 언약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 합니다. 그들이 그런 태도를 나타내는 것은, 틀림없이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단지 배경 음악과 같은 것일 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해주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이 참으로 하기 원하는 일을 막지는 못합니다.
14. 단순한 언약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가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그분의 뜻을 행하는 일을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게 합니다. 그러한 헌신은,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첫째가는 가장 큰 명령을 각자가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영혼, 신세]을 다하고 뜻[정신, 신세]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여호와, 신세]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전적으로 그분만을 섬기는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었읍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가 12:30; 마태 6:24) 그러므로, 단순한 언약으로는 여호와께 가납되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물에 잠겨야 하는 이유?
15. 예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있어서 무슨 본을 세워 놓으셨읍니까?
15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다른 길이 없읍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 즉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로 알려지기를 열망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께서는 이 점에 대해 본을 세워 놓으셨다고 할 수 있는데, 그분은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회개한 죄인들에게 침례를 주고 있었으므로 예수께서 침례를 받기 원하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계시 1:5; 마태 3:13-17)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을 여호와께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셨는데, 이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본을 세워 놓으셨읍니다.
16. 예수께서는 침례와 관련하여 추종자들에게 어떻게 명령하셨으며, 무엇을 볼 때 예수의 제자들이 그 명령에 순종하였음을 알 수 있읍니까?
16 그에 더하여,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 28:19, 20) 「사도 행전」의 기록을 볼 때 예수의 제자들이 그 명령에 열정적으로 순종하였음을 알 수 있읍니다.—사도 2:40, 41; 8:12; 9:17, 18; 19:5.
17. 단순히 물을 뿌리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 침례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이들은 어떤 식으로 침례를 받았읍니까?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대부분의 교회들에서 으례 하듯이, 단순히 물을 뿌리는 세례를 받았읍니까? 결코 그런 세례를 받지 않았읍니다!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신 후에 “물에서 올라오”셨읍니다. 이로 보건대 예수께서는 물에 잠기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읍니다. (마가 1:9, 10) 사실, 그 외의 다른 어떤 방법도 침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침례를 주다”로 번역된 희랍어 단어가 “담그다, 빠지게 하다”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사도 8:36-39.
18. 물에 잠기는 것이 어떤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적절히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그러한 침례는 헌신을 매우 적절히 상징합니다. 물 아래로 잠기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전 행로에 대하여 죽은 것을 잘 예시해 줍니다. 그 사람이 일으켜져 물 위로 나오는 것은 새로운 생활 행로로 다시 사는 것을 상징합니다. 결혼식이 신랑 신부에게 그들의 결혼 상태를 인상 깊게 해주듯이, 많은 목격 증인 앞에서 물에 잠기는 일은 침례 지원자에게 두고두고 인상 깊은 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즉 침례의 행위로서, 여호와께 대한 자신의 헌신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정신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섬기던 행로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행로로의 전환점이 됩니다.
19. 침례받아야 할 이유로서 또 무엇이 있읍니까?
19 여호와 앞에서 선한 양심을 얻기 위해서는 그전에 반드시 물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예사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그 점을 베드로 전서 3:21(신세)의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분명히 알 수 있읍니다. “이에 상응하는 것 즉 침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며)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여러분을 구원하고 있읍니다.”
침례는 몇 살에 받아야 하는가?
20. 유아들은 왜 침례받기에 적절하지 못할 것입니까?
20 마태 복음 28:19, 20의 예수의 말씀은, 침례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이미 그분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이로 보건대 유아(幼兒)나 아주 어린아이는 침례를 위한 성경적 요구 조건에 달할 수 없었읍니다. 유아는 하나님의 말씀, 창조주신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아는 성령이 하나님의 활동력임을 이해할 수도,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엄숙한 서약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21. 어린이들이 침례받는 것이 적절한 일입니까?
21 그러나 여호와의 백성 가운데 그와는 반대의 극단으로 흐른 얼마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십대 후반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례 문제를 거론하게 하였읍니다. 우리는 거듭거듭, 전적으로 자청하여 유효한 헌신을 하는 어린이들에 관해 듣는 일이 있읍니다. 예를 들어, 10세를 갓 넘은 한 장로의 아들은 침례받기를 진심으로 원하였읍니다. 그래서 그 소년의 아버지는 3명의 다른 장로들이 침례를 신중히 고려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질문들을 그 소년과 논하게 하였읍니다.a 그 장로들은 그 소년이 비록 어리기는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임명된 봉사자로서 침례받을 자격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읍니다. 최근에 바하마에서 있은 파이오니아 봉사 강습에는 부모가 전 시간 봉사자인 침례받은 10세 소녀가 참석하였읍니다!
22. 부모들이 자녀들 속에 그리스도인 성품을 세워 준다면, 어린 자녀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22 이 점에 있어서, 일부 부모들은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녀들 속에 그리스도인 성품을 세워 주는 데 있어서 ‘내화 재료’를 어느 정도나 사용하고 있읍니까? (고린도 전 3:10-15)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려면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가 부모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외에도, 부모는 신명기 6:6, 7과 에베소서 6:4에 주어진 훌륭한 교훈을 청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부모는 자녀들이 너무 일찍 침례받는 것을 막아서 나중에 그들에게 일일이 조언하는 일이 필요치 않게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23. 일단 헌신하고 침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또 무엇이 요구됩니까?
23 일단 헌신과 물 침례를 통해 여호와에 대한 신뢰심을 분명히 나타낸 사람은, 계속해서 그러한 신뢰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어지는 기사, “여호와의 신임받는 동역자로서 섬기는 일”은 여기에 관련된 점을 깊이 인식하도록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각주]
a 여호와의 증인으로 침례받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대답하게 되어 있는 일련의 질문이 「우리의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직됨」 책에 나와 있다. 그 내용은 침례받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대답하겠읍니까?
◻ 무슨 사실들이 인간을 신뢰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강조합니까?
◻ 여호와의 속성들과 그분이 일을 처리하시는 것을 볼 때 왜 우리에게는 그분을 신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읍니까?
◻ 여호와를 신뢰하는 데에는 단순한 언약이 아니라 헌신이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부모들은 어떻게 자녀들에게 어린 나이에 여호와께 헌신하고자 하는 욕망을 심어 줄 수 있읍니까?
[10면 삽화]
우리는, 위대한 구출자이신 여호와를 신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