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라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 ··· 때가 악하니라.”—에베소 5:15, 16.
1, 2. 오늘날 무엇이 실제 도전이 되며, 그러한 도전은 무엇에 비할 수 있습니까?
우선 순위를 올바로 정하고 책임을 골고루 이행하며 생활의 중요한 부면들에 합리적으로 시간과 힘을 바치는 것은 도전이 되는 일입니다. 양극단을 피하고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 역시 도전이 되는 일입니다.—에베소 5:17; 디모데 전 4:8; 베드로 전 1:13.
2 이러한 도전은 공중의 가느다란 줄을 타려고 하는 곡예사가 직면하는 도전에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균형을 잃는 것은 그에게 재난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균형을 잃는 것은 우리에게 재난을 초래할 것입니다. 공중 줄타기를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여러 가지 것들로 짐을 지지 않을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만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하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은 생활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히브리 12:1, 2.
3. 우리는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3 만일 우리가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생계를 수수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들에만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것 곧 하나님의 왕국 및 그분의 의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이방인들이 [열렬히, 신세] 구하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6:32, 33)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것들을 많이 축적하지 말도록 훈계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복잡하게 만들고 우리를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12:16-21; 18:25) 우리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교육을 잘 받았든 혹은 그렇지 못하였든 간에, 이것은 좋은 교훈입니다.
지금 그토록 중요한 이유
4.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지금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특히 지금 중요한데, 그 이유는 사단과 그의 악귀들이 이 땅으로만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데다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며 우리의 주의를 하나님의 봉사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 12:7-12, 17) 그러므로 이전 어느 때보다도 성서의 이러한 명령이 더욱 적절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절호한 시간을 사십시오, 신세]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 5:15, 16)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세계가 아니라 사단의 악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안이한 생각에 잠길 엄두를 낼 수 없습니다.—고린도 후 4:4; 베드로 후 3:7, 13.
5. 고대의 하나님의 종들은 어떻게 우리에게 훌륭한 본을 세워 놓았습니까?
5 이 마귀가 통치하는, 고대 세상에 살았던 하나님의 종들은 우리에게 훌륭한 본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시 거주자들, 신세]로라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을 구하였습니다. (히브리 11:13-16) 그들이 충성을 바친 대상은 하나님의 하늘 왕국이었으며,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나그네와 행인[임시 거주자들, 신세]”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 전 2:11; 빌립보 3:20) 사실, 예수께서는, 참 추종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온전히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요한 17:16; 고린도 전 7:31, 신세.
6. (ㄱ)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처한 상황은 무엇에 비할 수 있습니까? (ㄴ) 우리 모두는 무슨 경고의 본을 청종해야 합니까?
6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에게 속한 이 세상은 생활하기에 위험한 영역임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을 잘못 내디디면 재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요한 1서 5:19; 베드로 전 5:8) 우리가 처한 상황은 폭발물이 매설되어 있는 지대를 지나가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 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경고의 본을 언급하면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던 이스라엘인들에 관해 말하였습니다. 많은 이스라엘인이 영적 균형을 잃고 부도덕에 빠지게 되었으며 하나님에 의해 죽음에 처해졌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영적 균형을 잃고] 넘어질까 조심하라”하고 바울은 기록하였습니다.—고린도 전 10:12.
그것이 보호책이 되는 이유
7. 우리는 지혜롭게 무슨 자기 검토를 해보아야 합니까?
7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영적인 일들에 더 많은 시간과 힘을 바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보호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문을 해보는 것은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나는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생활을 복잡하게 하고 있는가? 무슨 일들이 실제로 나의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오는가? 성서 연구를 하거나 야외 봉사에 참여할 시간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마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텔레비전 시청과 같은 오락에 보내는 시간의 양과 그리스도인 활동이나 그 외 활동의 한 분야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데 보내는 시간을 비교해 보십시오. 시간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균형잡혀 있습니까? 생활을 단순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더 중요한 일들을 위해 시간을 바칠 수 있게 할 것이며, 그러한 일들 가운데에는 가장 중요한 영적인 추수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이 포함됩니다.—빌립보 1:9, 10; 마태 9:37.
8. 왕국을 첫째로 구하라는 예수의 훈계를 어떻게 청종할 수 있으며, 무슨 예가 전진 운동의 중요성을 알려 줍니까?
8 사실상, 우리의 영적 활동은 우리가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에 대한 척도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첫째로 구하라는 예수의 훈계를 청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정기적인 성서 연구, 집회 참석 및 야외 봉사에서 상당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전진 운동은 넘어지지 않는 실제적인 보호책입니다. 그것은 자전거를 타는 일에 비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실제로 정지시킬 정도로 속도를 줄이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해본 사람들은 전진 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는 영적 활동의 일과에서 상당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한, 균형을 잃고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받습니다.—빌립보 3:16.
9. (ㄱ) 우리 모두에게 생각나게 하는 좋은 말은 무엇입니까? (ㄴ) 어떤 계획을 고려중이라면, 무슨 자문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까?
9 한편,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데 즉 자신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이 연구, 집회 참석 및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바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 사업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어떤 물건을 사거나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떠맡고 싶을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추어 단순하게 지내라는 말을 상기시킵니다. 때때로 자신에게 가혹해져야 하였습니다.” 그 말은 우리 모두에게 생각나게 하는 좋은 말이 아닙니까? 아마 집이나 그 외의 어떤 것을 증축하는 것과 같은 어떤 계획을 고려중이라면, 이러한 자문을 해보십시오. 이것은 나의 영성 그리고 나의 가족의 영성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방해가 될 것인가? 나는 세상 사람들이 열렬히 추구하는 모든 것을 참으로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그러한 것들 없이도 지낼 수 있는가?
10. “육에 속한 사람”의 견해는 “영적인 사람”의 견해와 어떻게 대조됩니까?
10 그러나,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자기 희생이 꼭 필요한가? 우리는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해야만 하는가?’ 바울은 “사람의 사정”과 “하나님의 사정”에 관해 말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영적인 사람, 새번역]는 모든 것을 판단하[느니라.]” (고린도 전 2:11, 14, 15) 우리는 물질적인 종류의 불필요한 것들을 얻으려 하고 획득함으로써 쉽게 “육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자기 희생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 조롱거리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사람”의 견해가 아니라 “육에 속한 사람”의 견해입니다.
11. 노아에게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것은 균형잡히지 않은 행로였을 것이며,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균형잡힌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까?
11 영적인 사람은 믿음의 눈을 통해 문제를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물을 이해합니다. 노아를 고려해 보십시오. 만일 노아가,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나서도 더 크고 더 좋은 집을 짓고 더 많은 물질적 소유물을 얻는 데 시간을 보냈다면 그는 균형잡힌 사람이었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방주는 노아에게 참다운 안전지였습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는, 믿음 없는 ‘육에 속한 사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방주를 짓고 “의를 전파”하는 일에 온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관련되었습니다. (베드로 후 2:5; 마태 24:37-39) 그와 비슷하게, 우리는 세상의 끝이 임박함에 관해 계몽받아 왔으므로, 우리에게 있어서의 유일한 균형잡힌 생활 방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일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며, 많은 사람이 소위 정상적인 생활 방식을 희생하는 것으로 보는 일이 관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합니다.—요한 1서 2:17.
예수께서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12. (ㄱ)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하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우리는 그 대신에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ㄴ) 그처럼 목적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예수께서는 산상수훈 가운데에서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일에 관한 훌륭한 교훈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쌓는 일을 중단하시오, 신세]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을 위하여 물질적인 것들을 계속 “쌓”기만 하기 때문에 “중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되는 사람은 더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어서 하신 이러한 명령이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제자가 되는 사람은 다른 목적을 가진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그처럼 목적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를 제시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6:19-21.
13. 보물을 하늘에 쌓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점을 확신해야 합니까?
13 보물이란 우리가 참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물질적 소유물이 여러분의 보물입니까?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과 그분이 약속하신 상이 여러분의 보물입니까? 보물을 땅이 아니라 하늘에 쌓는 일에 삶을 바치기 위해, 우리는 왕국의 실재성을 철저히 확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세계가 매우 실제적인 것이어서 정신의 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고, 땅에 대한 여호와의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해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처럼,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아야 하며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실’ 것임을 굳게 확신해야 합니다.—히브리 11:6, 27.
14. 우리의 마음이 물질적인 것들에 쏠린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14 그러나 우리의 욕망과 애정이 포함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이 물질적 보물에 쏠린다면 어떠합니까?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참되고 지속적인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디모데 전 6:10; 전도 5:10)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일은, 돈과 물질적인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해를 입힌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온전한 마음”으로 섬길 것을 기대하십니다.—역대 상 28:9.
15. (ㄱ) 예수께서는 눈에 관하여 무슨 예를 드셨습니까? (ㄴ) 문자적인 그리고 영적인 의미 모두에서, 어떻게 단순한 눈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ㄷ) 우리의 눈이 단순하다면, 우리의 영적 시야가 어떻게 예수의 세 사도의 시야와 같을 것입니까?
15 우리가 물질주의의 올무에 걸리지 않는 데 도움이 되도록, 예수께서는 두 가지 예를 드셨습니다. 먼저,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단순하면, 신세]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악하면, 신세]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 (마태 6:22, 23) 문자적인 의미로, ‘단순한’ 눈은 초점이 맞아 또렷한 상을 정신에 전달하는 눈입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은 확실치 않은 흐릿한 상을 전달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단순한’ 곧 초점이 맞는 영적인 눈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또렷한 상을 전달합니다. 결코 신세계를 어떤 동화나 신화 같이 보이게 하는 흐릿하고 초점이 맞지 않은 상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 눈의 초점이 맞는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신세계는 우리에게 매우 실제적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변형되신 기적의 환상에서 왕국을 미리 보는 특권을 누렸던 세 사도에게 왕국이 실제적이었던 것만큼이나 말입니다.—마태 16:28-17:9; 요한 1:14; 베드로 후 1:16-19.
16. 두번째 예에서, 예수께서는 목적의 단일성을 나타낼 필요성을 어떻게 보여주셨습니까?
16 예수께서는 두번째 예를 드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요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시면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는 말씀으로 목적의 단일성을 나타낼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마태 6:24)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이는 다 이방인들이 [열렬히, 신세]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 6:25-32.
17. (ㄱ) 예수께서는 물질적인 것들에 관한 교훈에서 어떤 요점을 지적하신 것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서 무엇을 강조하신 것이며,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는 반드시 무엇이 수반됩니까?
17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물질적 필수품을 얻는 일을 우연에 맡기라거나, 게으른 사람이 되어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디모데 전 5:8) 그렇습니다. 요점은, 이방인들이 열렬히 구하는 이러한 물질적인 것들을 우선적으로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이렇게 훈계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왕국, 신세]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 6:33)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서 인생의 목표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헛된 일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는 우리의 눈을 왕국 권익에만 고정시키고 그 외의 모든 일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반드시 수반됩니다.
예수와 그 외 사람들의 본
18. 예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위한 올바른 본을 세우셨습니까?
18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무거운 짐과 우리가 얽매이기 쉬운 죄[믿음의 부족 혹은 상실]를 벗어버리”라고 강력히 권하면서, 또한 이렇게 권하였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를 인내로써 달립시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수석 대행자이시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열렬히 바라보면서 그렇게 합시다.” (히브리 12:1, 2, 신세) 예수께서는 오로지 왕국 권익에 몰두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처한 상황은 친히 묘사하신 바와 같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마태 8:20) 동시에, 예수께서는 금욕주의자도 아니셨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훌륭한 음식과 의복을 즐기시긴 하셨지만 예수에게 있어서의 생활의 주된 목표는 자신의 봉사의 직무를 완수하는 것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셨습니다.—누가 5:29; 요한 19:23, 24.
19, 20. (ㄱ) 바울은 물질적인 것들과 관련하여 어떤 본을 세웠습니까? (ㄴ) 많은 사람은 오늘날 무슨 교훈을 배웠으며,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 행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19 사도 바울도 우선 순위를 올바로 정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봉사의 직무, 신세]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좋은 소식, 신세]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20:24) 그렇습니다. 바울은 가장 중요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최저한의 필수품으로 만족하였지만 때때로 기꺼이 풍부함을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기록하였습니다.—빌립보 4:12.
20 문자적으로 수만명의 사람이 오늘날 동일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의 전 시간 봉사자들이며, 선교인, 파이오니아, 여행하는 감독자, 조직의 국제 본부 및 지부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그 가운데 포함됩니다. 다년간 전 시간 봉사를 한 후에 그들 대부분은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 하더라도 역시 같은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축복들
21, 22. (ㄱ) 우리가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할 때 지금도 무슨 상을 즐기게 됩니까? (ㄴ) 우리는 미래에 무슨 축복을 즐길 수 있습니까?
21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희생이 따르기는 하지만, 축복과 즐거움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큽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왕국 권익을 증진시킬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며, 관심가진 사람들을 발견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가르칠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될 것입니다. 참 만족감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며, 정신의 평화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는 확신도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도 즐길 수 있는 상입니다.—빌립보 4:6, 7.
22 그러나 미래의 축복은 훨씬 더 큰 것입니다. 그 축복은 우리가 현재 치를지 모르는 어떤 희생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것입니다. 여호와의 축복 가운데에는 “영생”이 포함됩니다. 그렇습니다. 영생 곧 여호와의 의로운 신세계에서 행복한 가운데서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가 받는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해 균형을 잃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시 21:3, 4; 37:4; 133:3.
복습 질문
◻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슨 본과 예들에 유의하였습니까?
◻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를 보호해 줍니까?
◻ 우리의 영적 눈이 단순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 예수께서는 어떻게 우리가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가르치셨습니까?
◻ 균형잡힌, 단순한 생활을 영위할 때의 축복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