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이는 분별력을 사용하십시오”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십시오.”—마태 24:15, 16.
1. 누가 19:43, 44에 나오는 예수께서 하신 경고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다가오는 재난을 깨어 살핀다면, 그 재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잠언 22:3) 그러므로 기원 66년에 로마인들의 공격이 있은 후에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그 도시가 포위 공격을 당하고 멸망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누가 19:43, 44)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의 경고를 청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기원 70년에 닥친 재난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2, 3. 우리가 마태 24:15-21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예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예언을 말씀하시면서, 전쟁, 식량 부족, 지진, 역병, 하느님의 왕국에 관해 전파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포함된 복합 표징을 설명하셨습니다. (마태 24:4-14; 누가 21:10-19) 예수께서는 또한 제자들을 위해 끝이 가깝다는 것을 아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실마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태 24:15) 그러한 의미 깊은 말씀이 우리의 현재와 장래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한 번 그 말씀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3 예수께서는 그 표징을 설명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읽는 이는 분별력을 사용하십시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십시오. 옥상에 있는 사람은 자기 집에서 물건을 꺼내려고 내려오지 마십시오. 그리고 밭에 있는 사람은 자기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그 날에는 임신한 여자들과 아기에게 젖 먹이는 이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피하는 일이 겨울철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 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환난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마태 24:15-21.
4. 마태 24:15이 1세기에 성취되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4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서는 부가적인 세부점들을 알려 줍니다. 마태는 ‘거룩한 장소에 서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마가 13:14에서는 그 부분을 ‘서서는 안 될 곳에 서 있다’라고 표현합니다. 누가 21:20에서는 이러한 예수의 말씀을 더 알려 줍니다. “예루살렘이 진을 친 군대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때에 그것을 황폐시키는 일이 다가온 줄 아십시오.” 이 말씀은 그 예언의 첫 번째 성취가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첫 번째 성취에는 기원 66년에 시작된 예루살렘과 그 성전—당시 여호와께는 더 이상 거룩한 장소가 아니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거룩한 장소였던 곳—에 대한 로마인들의 공격이 포함되었습니다. 완전히 황폐시키는 일은,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이 그 도시와 성전을 멸망시켰을 때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의 “혐오스러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거룩한 장소에 서 있”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아는 것은 현대의 성취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5, 6. (ㄱ) 다니엘 9장을 읽는 이들은 왜 분별력이 필요하였습니까? (ㄴ) “혐오스러운 것”에 관한 예수의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5 예수께서는 읽는 이들에게 분별력을 사용하라고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무엇을 읽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아마도 다니엘 9장을 읽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그 장에는 메시아가 나타날 때를 지적하고 그가 3년 반 후에 ‘끊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예언이 나옵니다. 그 예언은 이러합니다. “혐오스러운 것들의 날개 위에 황폐케 하는 자가 있을 것이며, 진멸되기까지, 그 결정된 것이 황폐되어 있는 것 위에 계속 쏟아질 것이다.”—다니엘 9:26, 27, 「신세」; 또한 다니엘 11:31; 12:11, 「신세」 참조.
6 유대인들은 이 예언이 약 200년 전에 안티오코스 4세가 성전을 더럽힌 일에 적용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와는 다른 견해를 표명하셨습니다. 그분은 “혐오스러운 것”이 나타나서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이 앞으로 있을 일이므로 분별력을 사용하라고 강력히 권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기원 66년에 눈에 띄는 군기를 가지고 오게 될 로마 군대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그러한 깃발들은 우상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유대인들에게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a 하지만 로마 군인들은 언제 “거룩한 장소에 서 있”을 것이었습니까? 그 일은 군기를 가지고 온 로마 군대가 유대인들이 거룩하다고 여기던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공격하였을 때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성전 지역의 성벽을 허물기 시작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실제로 거룩한 장소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이사야 52:1; 마태 4:5; 27:53; 사도 6:13.
현대의 “혐오스러운 것”
7. 예수께서 하신 무슨 예언이 우리 시대에 성취되고 있습니까?
7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로 우리는 마태 24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표징이 더 크게 성취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이러한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십시오.” (마태 24:15, 16) 그 예언의 이 부분 역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8. 여러 해에 걸쳐, 여호와의 증인은 현대의 “혐오스러운 것”의 정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습니까?
8 「파수대」(영문) 1921년 1월 1일호에서는, 이 예언이 성취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종들의 확신을 표명하면서, 중동에서의 사태진전과 관련하여 이 예언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후 「파수대」(영문) 1929년 12월 15일호 374면에서는 이렇게 명확하게 기술하였습니다. “국제 연맹의 전반적인 경향은 사람들의 주의를 하느님과 그리스도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황폐케 하는 것이자 사탄이 만든 것이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그러므로 1919년에 “혐오스러운 것”이 등장하였습니다. 때가 되자 국제 연맹은 국제 연합이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오랫동안 인간이 만든 이 평화 기구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임을 폭로해 왔습니다.
9, 10. 큰 환난에 대한 이전의 이해가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게 되는 때에 관한 우리의 견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9 앞 기사에서는 마태 24장과 25장의 많은 부분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견해를 요약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그러한 설명들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의 예언에서는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일을, 예언된 “환난”이 시작되는 것과 밀접히 연관짓습니다. 그러므로 “혐오스러운 것”이 존재한 지가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일과 큰 환난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10 한때 하느님의 백성은 큰 환난의 첫 단계가 1914년에 시작되었고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종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이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계시 16:14, 16; 비교 「파수대」(영문) 1939년 4월 1일호 110면) 그러므로 현대의 “혐오스러운 것”이 제1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거룩한 장소에 서 있었다고 한동안 생각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1, 12. 1969년에 큰 환난과 관련하여 어떤 조정된 견해가 제시되었습니까?
11 하지만 근년에 들어 우리는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69년 7월 10일 목요일, 뉴욕 시에서 열린 “지상의 평화” 국제 대회에서 당시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부협회장 F. W. 프랜즈는 매우 흥미진진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프랜즈 형제는 예수의 예언에 대한 이전의 이해를 검토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큰 환난’이 기원 1914년에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그 환난이 끝까지 다 진행되도록 허용되지 않았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1918년 11월에 제1차 세계 대전을 중단시키셨다고 하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하느님께서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큰 환난’의 최종 단계를 다시 시작하시기에 앞서, 선택된 그리스도인들인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얼마의 시간을 허용하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이 크게 조정된 견해를 설명하였습니다. “1세기의 사건들과 서로 대응시켜 생각해 볼 때, ··· 그 실체인 ‘큰 환난’은 기원 1914년에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1914-18년 사이에 예루살렘의 현대 실체 위에 일어났던 일들은 ‘진통의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 다시 일어나지 않을 그러한 ‘큰 환난’은 아직 앞으로 있을 일입니다. 그 환난은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멸망과 뒤이어 있게 될 아마겟돈에서의 ‘전능자이신 하느님의 큰 날의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큰 환난 전체가 아직 앞으로 있을 일임을 의미하였습니다.
13.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이 앞으로 있을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이것은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때를 분별하는 일과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1세기에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로마인들은 기원 66년에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지만, 갑자기 철수하였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의 “육체”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태 24:22) 따라서 우리는 머지않아 큰 환난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 환난은 하느님의 택함받은 자들을 위해 단축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주요점에 유의하십시오. 과거의 전례에서,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은 기원 66년에 갈루스 장군 휘하의 로마인들이 공격한 일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공격에 상응하는 현대의 사건 곧 큰 환난이 갑자기 시작되는 일은 아직 앞으로 있을 일입니다. 그러므로 1919년 이래로 존재해 온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은 아직은 거룩한 장소에 서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b 그러면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것입니까? 그리고 그 일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앞으로 있을 공격
14, 15. 계시 17장은 아마겟돈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14 계시의 책은 앞으로 있을, 거짓 종교를 멸망시키게 될 공격에 관해 묘사합니다. 그 책 17장에서는 ‘창녀들의 어미’인 “큰 바빌론”, 곧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 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하느님과 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비교 예레미야 7:4)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거짓 종교들은 오랫동안 “땅의 왕들”과 불법적인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그러한 종교들이 황폐됨으로 인해 끝나고 말 것입니다. (계시 17:2, 5) 누가 그러한 끝을 가져올 것입니까?
15 계시의 책은 한동안 존재하다가 없어진 다음 다시 등장하게 되는 “진홍색 야수”를 묘사합니다. (계시 17:3, 8) 이 야수는 세계 통치자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그 예언에 나오는 세부점들은, 이 상징적 야수가 1919년에 국제 연맹(“혐오스러운 것”)으로 존재하였다가 현재는 국제 연합으로 존재하고 있는 평화 기구라는 것을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계시 17:16, 17은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이 “야수” 가운데 있는 탁월한 어떤 인간 통치자들에게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을 황폐시키려는 마음을 넣어 주실 것임을 알려 줍니다. 이러한 공격은 큰 환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표가 됩니다.
16. 종교와 관련하여 어떤 주목할 만한 사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16 큰 환난의 시작이 아직 앞으로 있을 일이므로,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 역시 앞으로 있을 일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혐오스러운 것”이 금세기 초에 나타나서 수십 년 동안 존재해 오고 있지만, 그것은 가까운 장래에 독특한 방법으로 “거룩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서게 될 것입니다. 1세기에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틀림없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일이 어떻게 있게 될 것인지를 알기 위해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모든 세부점을 알려면 실제로 성취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일부 나라들에서 종교에 대한 반감을 볼 수 있고 또 그러한 반감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일부 정치 요소들은 한때 그리스도인이었다가 참 믿음에서 벗어난 사람들과 합세하여 전체 종교들에 대한 적의를, 특히 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의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시 94:20, 21; 디모데 첫째 6:20, 21) 그 결과 정치 강국들은 심지어 지금도 “어린 양과 싸우”고 있으며, 계시 17:14에서 지적하듯이, 이 싸움은 더욱 격렬해질 것입니다. 그들이 문자적으로 손을 뻗쳐 하느님의 어린 양—드높여진 영광스러운 지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을 대항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참 숭배자들을, 특히 그분의 “거룩한 자들”을 더욱 심하게 반대할 것입니다. (다니엘 7:25, 「신세」 참조; 비교 로마 8:27; 골로새 1:2; 계시 12:17) 우리에게는 어린 양과 그와 함께하는 자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보증이 있습니다.—계시 19:11-21.
17. 독단적이 되지 않으면서, “혐오스러운 것”이 어떻게 거룩한 장소에 서 있게 될 것인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17 우리는 거짓 종교 앞에 황폐케 하는 일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큰 바빌론은 ‘거룩한 자들의 피에 취해’ 있으며 여왕처럼 행동해 왔지만, 그는 반드시 멸망될 것입니다. 이 여자가 땅의 왕들에게 행사해 온 더러운 영향력은, 그들의 사이가 “열 뿔과 야수”로부터 격렬한 미움을 받는 관계로 바뀌면서 극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계시 17:6, 16; 18:7, 8) “진홍색 야수”가 종교적 창녀를 공격할 때, “혐오스러운 것”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그리스도교국의 소위 거룩한 장소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c 그러므로 황폐케 하는 일은, 스스로 거룩한 체하는 믿음 없는 그리스도교국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도피하는 일’—어떻게?
18, 19. “산으로 도피”하는 것이 종교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무슨 이유들이 있습니까?
18 예수께서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에 관해 예언하신 후에, 분별력 있는 사람들에게 행동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그 마지막 순간에—“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을 때—많은 사람이 거짓 종교에서 도피해 나와서 참 숭배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의미였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첫 번째 성취를 고려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십시오. 옥상에 있는 사람은 내려오지 말고, 자기 집에서 무엇을 꺼내려고 안으로 들어가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밭에 있는 사람은 자기 겉옷을 가지러 뒤에 있는 것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그 날에는 임신한 여자들과 아기에게 젖 먹이는 이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 일이 겨울철에 일어나지 않도록 계속 기도하십시오.”—마가 13:14-18.
19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만 도피해 나올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교 숭배의 중심지에서 나올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요지인 것처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경고는 종교를 바꾸는 것—거짓 종교에서 도피해 나와 참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언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한 종교에서 나와 다른 종교로 도피하라고 경고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원 66년에 있었던 공격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과 유대 전역에 있던 유대교 신자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하인리히 그레츠 교수는 도망하는 로마인들을 추격했던 사람들이 그 도시로 돌아왔을 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열심당원들은 (10월 8일에) 환희에 넘쳐서 군가를 소리 높여 부르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심장은 자유와 독립에 대한 기쁨에 넘친 희망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 하느님께서 그들의 선조들을 도우셨던 것처럼 자비로우시게도 그들을 도우신 것이 아니겠는가? 열심당원들의 마음 속에는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도 없었다.”
20. 초기 제자들은 산으로 도피하라는 예수의 경고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0 그러면 그 당시에 비교적 소수였던 택함받은 자들은 예수의 교훈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유대를 떠나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있는 산으로 도피함으로써,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유대 제도의 일부가 아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밭과 집을 버리고 떠났으며, 심지어 자신들의 집에서 소유물을 챙기지도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보호와 지원을 확신한 그들은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분에게 드리는 숭배를 앞자리에 두었습니다.—마가 10:29, 30; 누가 9:57-62.
21. 우리는 “혐오스러운 것”이 공격할 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습니까?
21 이제, 더 큰 성취에 대해 고려해 봅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에게 거짓 종교에서 나와서 참 숭배를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권해 왔습니다. (계시 18:4, 5) 수백만 명이 그러한 권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예수의 예언은 큰 환난이 시작되고 나서 사람들이 대규모로 순결한 숭배로 향하는 일이 있을 것임을 시사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기원 66년에도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개종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경고에 따라 도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크게 고무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22. 산으로 도피하는 것에 관한 예수의 교훈을 따르는 데에는 무엇이 관련될 수 있습니까?
22 우리가 현재 큰 환난과 관련된 세부점들을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예수께서 언급하신 그러한 도피하는 일이 우리의 경우에 지리적 이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미 세계 전역에 퍼져 있으며, 사실상 거의 모든 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도피할 필요가 있게 될 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자신과 거짓 종교 조직 사이에 명확히 구별된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할 것임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겉옷이나 다른 물건을 가지러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 역시 의미심장한 점입니다. (마태 24:17, 18)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적인 것들을 어떻게 여기는지와 관련하여 앞으로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가장 중요합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편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질 구원이 더 중요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도피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난관과 손실을 겪는 일이 관련될지 모릅니다. 1세기에 우리를 전영한 사람들처럼, 즉 유대에서 요르단 강 건너편 페레아로 도피했던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는 필요할 경우 무엇이든 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23, 24. (ㄱ) 우리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어디입니까? (ㄴ)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에 관해 예수께서 하신 경고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합니까?
23 우리는 여호와와 그분의 산과 같은 조직이 계속 우리의 도피처가 될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사무엘 하 22:2, 3; 시 18:2; 다니엘 2:35, 44) 바로 그곳이 우리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대다수의 인류를 따라서 “동굴” 속으로 도피하거나 “산의 바위 속에” 숨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큰 바빌론이 황폐된 후에 아주 잠깐 동안 존속할 인간 조직과 기구들을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시 6:15; 18:9-11) 사실, 시대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기원 66년에 유대에서 도피했던 임신한 여자들이나 춥고 비가 내리는 날씨에 여행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게 해 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여호와와 현재 왕국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시는 그분의 아들을 더욱 굳게 의지하도록 합시다.
24 우리는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당시 자신의 제자들이 두려워하기를 원치 않으셨으며, 우리 역시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두려워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마음과 정신의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거짓 종교와 현 악한 제도의 나머지 부분에 멸망이 닥칠 때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형벌을 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분별력을 나타내어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에 관한 경고를 청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단호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러한 약속을 결코 잊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인내한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마가 13:13.
[각주]
a “로마의 깃발들은 로마의 신전들에 모셔져서 종교적 경배를 받았다. 그리고 군기에 대한 로마인들의 숭상심은 그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우월함을 증명할 때마다 그만큼 더 커졌다. ··· [병사들에게 있어서 군기는] 아마도 지상에 있는 가장 신성한 물건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로마 병사들은 군기를 두고 맹세하였다.”—「브리태니카 백과 사전」, 제11판.
b 기원 66-70년에 있었던 예수의 말씀의 성취가 큰 환난에서 그 말씀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 두 경우의 성취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정확하게 상응할 수는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c 「파수대」(영문) 1975년 12월 15일호 741-4면 참조.
기억하십니까?
□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1세기에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까?
□ 현대의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게 되는 것이 앞으로 있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 “혐오스러운 것”에 의한 공격이 계시의 책에 어떻게 예언되어 있습니까?
□ 앞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도피하는 일’이 요구될 수 있습니까?
[16면 삽화]
큰 바빌론은 ‘창녀들의 어미’라고 불린다
[17면 삽화]
계시 17장에 나오는 진홍색 야수는 예수께서 언급하신 “혐오스러운 것”이다
[18면 삽화]
진홍색 야수는 종교를 황폐시키게 될 공격을 주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