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느님의 눈에 귀중하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사랑의 친절로”, 「신세」] 너를 인도하였다.”—예레미야 31:3.
1. 예수께서 당시의 평민에게 나타내신 태도는 바리새인들이 나타낸 태도와 어떻게 달랐습니까?
사람들은 그분의 눈에서 이러한 특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 예수는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전혀 달랐는데, 그분은 자상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는데,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찢겨지고 내던져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 9:36)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은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대표하는 인자한 목자들이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평민을 잡스러운 사람들에 불과한 것으로—그리고 저주받은 자들로 경멸하였습니다!a (요한 7:47-49; 비교 에스겔 34:4) 분명히, 그러한 편협하고 비성경적인 견해는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국민 이스라엘에게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예레미야 31:3.
2. 욥의 세 친구는 어떻게 욥에게 그가 하느님의 눈에 무가치한 존재임을 확신시키려고 하였습니까?
2 그러나 분명히 바리새인들은 여호와의 사랑받는 양들에게 그 양들이 무가치한 존재임을 확신시키려고 한 최초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욥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 욥은 의롭고 나무랄 데 없었지만, 세 “위로자”(「신세」)는 욥이 뒤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을 부도덕하고 악한 배교자라고 넌지시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욥의 어떤 의(義)도 하느님께 아무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천사들조차 신뢰하지 않으시며 하늘 자체도 부정하다고 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욥 1:8; 4:18; 15:15, 16; 18:17-19; 22:3.
3. 사탄은 오늘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무가치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확신을 갖게 하려고 무슨 방법들을 사용합니까?
3 오늘날, 사탄은 여전히 이러한 ‘간교한 행위’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랑받지 못하며 무가치한 존재임을 확신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6:11, 「신세—참조주」 각주 참조) 사탄이 종종 사람들의 허영심과 자만심에 호소함으로써 사람들을 꾀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린도 둘째 11:3) 그러나 사탄은 또한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는 일을 즐깁니다. 이 위급한 “마지막 날”에 특히 그렇게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본연의 애정이 없”는 가정에서 자라며, 많은 사람들은 사납고 이기적이고 제 고집대로 하는 사람들을 매일 대해야 합니다. (디모데 둘째 3:1-5) 여러 해에 걸친 푸대접이나 인종 차별, 증오 혹은 학대는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무가치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을지 모릅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거나 사랑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고 믿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4, 5. (ㄱ) 개인적으로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은 왜 성경과 반대됩니까? (ㄴ) 우리의 어떤 노력도 아무 가치가 없다고 믿는 것의 한 가지 위험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4 개인적으로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은 하느님의 말씀의 진리의 핵심인 대속의 가르침에 손상을 입힙니다. (요한 3: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사 주기 위해 그토록 비싼 대가—자기 자신의 아들의 귀중한 생명—를 치르셨다면, 분명히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분명히 우리는 그분의 눈에 매우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5 더욱이, 우리가 하느님을 불쾌하시게 하고 있으며 우리의 어떤 노력도 아무 가치가 없다는 느낌은 참으로 낙담케 할 것입니다! (비교 잠언 24:10) 이러한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하느님의 봉사에 가능한 한 더 많이 참여하도록 우리를 도우려는 좋은 의도의 격려조차 일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정죄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격려가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우리 자신의 내적 확신을 거듭 일깨우는 말같이 들릴지 모릅니다.
6. 우리 자신에 대한 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게 하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6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 속에 있는 것을 느낀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때때로 비합리적일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가혹합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사물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고 “강하게 방비된 것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디모데 둘째 3:16; 고린도 둘째 10:4) 사도 요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진리에서 나온 줄을 알게 되고, 또 우리 마음이 그분 앞에서 안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엇으로 우리를 정죄하든지 그러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첫째 3:19, 20)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께 귀중한 존재임을 성서에서 가르치는 세 가지 면을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높이 평가하신다
7. 예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눈앞에서의 그들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
7 우선, 성서는 우리 개개인이 하느님의 눈에 가치 있음을 직접 가르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작은 가치의 주화 두 닢에 팔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중의 한 마리도 하느님 앞에서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머리털까지도 다 세어져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많은 참새들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누가 12:6, 7) 당시에, 참새는 식품으로 파는 새 중에 가장 값싼 새였지만, 참새들 중 한 마리도 창조주의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매우 뚜렷한 대조를 위한 기초가 놓여진 것입니다. 즉 인간들과—훨씬, 훨씬 더 가치 있는 인간들과—관련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세부점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하나하나 세어진 것과 같습니다!
8. 여호와께서 우리의 머리털을 세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8 머리털을 센다고요? 예수의 예의 이 부면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하느님께서는 자기의 충실한 종들을 부활시키실 수 있을 정도로—그들의 복잡한 유전 암호와 그들의 전 생애의 모든 기억과 경험을 포함하여 각 세부점을 재창조하실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을 철저히 기억하신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보통 사람의 머리에서 자라는 약 10만 개의) 우리의 머리털을 세는 일은 그에 비하면 간단한 일일 것입니다!—누가 20:37, 38.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보시는가?
9. (ㄱ) 여호와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일부 특성들은 무엇입니까? (ㄴ) 왜 그러한 특성들이 그분에게 귀중하다고 생각합니까?
9 둘째로, 성서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있는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하시는지를 가르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분은 우리의 적극적인 특성들과 우리의 노력을 기뻐하십니다. 다윗 왕은 아들 솔로몬에게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역대 상 28:9) 하느님께서는 폭력적이고 증오에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수십 억의 사람들의 마음을 감찰하시면서, 평화와 진리와 의를 사랑하는 마음을 발견하실 때 분명히 매우 기뻐하십니다! (비교 요한 1:47; 베드로 첫째 3:4)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 그분에 관해 배우고 그러한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느님께서 발견하실 때 어떤 일이 있을 것입니까? 말라기 3:16에서, 여호와께서는 그분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시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 모두를 위한 “기념책”을 가지고 계시기까지 한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러한 특성들은 그분에게 귀중합니다!
10, 11. (ㄱ) 일부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의 좋은 특성들을 높이 평가하신다는 증거를 어떻게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을지 모릅니까? (ㄴ) 아비야의 예는 여호와께서 좋은 특성들을 정도의 차이 없이 높이 평가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10 그러나 자책하는 마음은 하느님의 눈앞에서의 우리의 가치에 대한 그러한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은 끈질지게 이렇게 속삭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특성들에서 나보다 모범이 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여호와께서는 그런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실 때 분명히 매우 실망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비교하시는 분이 아니며, 그분은 또한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생각하시는 완고한 분도 아닙니다. (갈라디아 6:4) 그분은 매우 섬세하게 마음을 읽으시며 또 좋은 특성들을 정도의 차이 없이 높이 평가하십니다.
11 예를 들어, 여호와께서는 여로보암 왕의 배교한 왕조 전체를 처형하여 “거름”같이 쓸어버리실 것이라는 판결을 내리실 때, 그 왕의 아들들 중 한 사람 즉 아비야만 격식을 갖추어 매장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열왕 상 14:10, 13) 이것은 아비야가 여호와의 충실한 숭배자라는 의미였습니까? 꼭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나머지 악한 집안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그도 죽었기 때문입니다. (신명 24:16)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보신 아비야의 마음속에 있는 “선한 뜻”을 높이 평가하셨으며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하셨습니다. 「매슈 헨리의 성경 전서 주석」(Matthew Henry’s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그런 유의 선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을 경우, 그것은 발견되게 마련인데,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찾으시며 아주 작은 선한 것이라도 그것을 인정하시고 기뻐하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속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어떤 좋은 특성을 발견하실 경우 여러분이 그분을 충실하게 섬기려고 노력하는 한 그 특성이 자라게 하실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12, 13. (ㄱ) 시편 139:3은 여호와께서 우리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ㄴ) 무슨 의미에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활동을 체질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12 여호와께서는 이와 비슷하게 우리의 노력도 높이 평가하십니다. 시편 139:1-3에서,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읽게 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알고 계시다는 것은 단지 인지하시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에서, ‘당신은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신다’는 표현은 “당신은 나의 모든 길을 소중히 간직하신다” 혹은 “당신은 나의 모든 길을 소중히 여기신다”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교 마태 6:19, 20)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매우 불완전하고 죄를 짓는데 어떻게 우리의 길을 소중히 여기실 수 있습니까?
13 흥미롭게도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의 길과 쉴 때를 “감찰”하셨다고 썼을 때, 그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체질하다” 혹은 “넉가래질하다”를 의미하였습니다. 한 참조 문헌은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그것은 ··· 모든 겨를 넉가래질하여 낟알만 모두 남기는 것—가치 있는 것만 모두 모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말하자면 그를 체질하셨다는 것이다. ··· 그분은 모든 겨 즉 모든 가치 없는 것을 흩으신 다음, 남아 있는 진짜 알맹이를 보셨다.” 자책하는 마음은 우리의 행위를 그와 반대되는 쪽으로 체질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무자비하게 자기를 정죄하며 우리가 해낸 일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무시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진실하게 회개하면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할 경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시 103:10-14; 사도 3:19) 그분은 우리의 선한 일들을 체질하여 걸러내시고 기억하십니다. 사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에게 충실함을 유지하는 한 영원히 그런 선한 일들을 기억하십니다. 그분은 그런 선한 일들을 잊는 것을 불의로 보시는데, 그분은 결코 불의하지 않으십니다!—히브리 6:10.
14. 무엇을 볼 때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에서의 우리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선한 일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사실상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하는 모든 일이 선한 일입니다. (베드로 첫째 2:21) 그러므로 확실히, 매우 중요한 일 한 가지는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널리 알리는 일입니다. 로마 10:15에서, 우리는 “좋은 일에 관한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기록을 읽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평범한 발을 보통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단어는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 리브가와 라헬 그리고 요셉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 것과 동일한 단어였으며—그 세 사람은 모두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창세 26:7; 29:17; 39:6)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하느님 여호와의 봉사에 참여하는 것은 그분의 눈에 매우 아름답고 귀중합니다.—마태 24:14; 28:19, 20.
15, 16. 여호와께서는 왜 우리의 인내를 높이 평가하시며, 시편 56:8의 다윗 왕의 말은 이 사실을 어떻게 강조합니까?
15 하느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또 다른 특성은 우리의 인내입니다. (마태 24:13) 기억하십시오. 사탄은 여러분이 여호와께 등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여호와께 충성을 유지하는 하루하루가, 여러분이 사탄의 조롱에 대답하는 데 기여한 또 하나의 날입니다. (잠언 27:11) 인내하기가 쉽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건강 문제, 경제적 난관, 감정적 고통 및 그 외의 장애들이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시련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련에 직면하여 인내하는 것은 여호와께 특히 귀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 왕은 여호와께 자기의 눈물을 비유적인 “병”에 담으실 것을 요청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시 56:8)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에게 충성을 유지하면서 인내하는 모든 눈물과 고난을 소중히 간직하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러한 눈물과 고난 역시 그분의 눈에 귀중합니다.
16 우리의 더 훌륭한 특성들과 우리의 노력을 생각해 볼 때, 여호와께서 우리 각자를 높이 평가하실 많은 점을 발견하신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탄의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든지 관계없이,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귀중한 존재로 그리고 “만국의 보배”의 일부로 보십니다.—학개 2:7.
여호와께서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하여 해 오신 일
17.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은 왜 여호와와 예수께서 우리 개개인을 사랑하신다는 점을 확신시켜 줍니까?
17 셋째로, 여호와께서는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하여 많은 일을 하십니다. 확실히,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은 우리가 무가치하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탄의 거짓말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답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고통의 기둥에서 겪으신 고통스러운 죽음과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지켜 보시면서 인내하신 그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우리에 대한 그분들의 사랑의 증거임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더욱이, 그 사랑이 우리 개개인에게 적용됩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와 같이 생각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넘겨 주셨습니다.’—갈라디아 2:20.
18. 여호와께서는 무슨 의미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끄십니까?
18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혜택을 이용하도록 우리 개개인을 도우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 6:4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습니다.” 우리 개개인에게 이르는 전파 활동을 통해 그리고 여호와께서 우리의 한계와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영적 진리를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우리를 돕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성령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친히 우리를 그분의 아들에게로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희망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우리에 대해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사랑의 친절로”, 「신세」] 너를 인도하였다.”—예레미야 31:3.
19. 기도의 특권이 왜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 대한 여호와의 개인적인 사랑을 확신하게 해줍니까?
19 그러나 우리가 가장 친밀하게 여호와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아마도 기도의 특권을 통해서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그분에게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권하십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5:17) 그분이 귀기울여 듣고 계십니다! 그분은 심지어 “기도를 들으시는 주”라고 불리십니다. (시 65:2) 그분은 이 직무를 다른 어떤 사람에게, 심지어 자기 자신의 아들에게도 위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주의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말의 자유를 가지고 기도로 그분에게 가까이 오라고 강력히 권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간구는 심지어 여호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그렇게 간구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를 일을 그분이 하시게 할 수도 있습니다.—히브리 4:16; 야고보 5:16; 참조 이사야 38:1-16.
20.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왜 우리의 자만이나 자기 본위에 대한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됩니까?
20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랑과 존중심에 대한 그러한 증거를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구실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나에게 베풀어진 과분한 친절을 통해서 그 곳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건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생각하십시오.” (로마 12:3)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사랑의 포근함을 흠뻑 맛보고 있지만, 건전한 정신을 갖도록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의 친절이 과분한 것임을 기억하도록 합시다.—비교 누가 17:10.
21. 우리는 사탄의 무슨 거짓말을 계속 물리쳐야 하며, 우리는 하느님의 무슨 진리를 계속 숙고해야 합니까?
21 죽어 가는 이 낡은 세상에서 사탄이 조장하는 모든 생각을 물리치기 위하여 우리 각자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는 것 중에는 우리가 무가치하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물리치는 것도 포함됩니다. 현 제도에서 살면서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으로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로 보도록, 여러분의 선한 일들을 모든 것을 보실 수 있는 그분의 눈으로도 주목할 수 없을 만큼 하찮은 것으로 보도록, 혹은 여러분의 죄를 그분의 귀중한 아들의 죽음으로도 덮을 수 없을 만큼 큰 것으로 보도록 가르침받았다면, 여러분은 거짓말을 가르침받은 것입니다. 그러한 거짓말을, 그러한 거짓말이 받아 마땅한 가장 혐오하는 태도로 배척하십시오! 로마 8:38, 39에 있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영감받은 말씀을 항상 기억하도록 합시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부들이나 지금 여기 있는 것이나 올 것이나 권세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각주]
a 사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암하아레츠 즉 “땅의 사람들”이라는 경멸적인 말로 무시해 버렸다. 한 학자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귀중품을 맡기지 말고, 그들의 증언을 신뢰하지 말고, 그들을 손님으로 맞이하지도 그들의 손님이 되지도 심지어 그들에게서 물건을 사지도 말라고 가르쳤다. 종교 지도자들은 어떤 사람의 딸이 이러한 사람들 중 하나와 결혼하는 것은 마치 꽁꽁 묶인 무력한 딸을 짐승에게 내주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탄은 왜 우리가 무가치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임을 확신시키려고 합니까?
◻ 예수께서는 여호와께서 우리 개개인을 높이 평가하신다는 점을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
◻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좋은 특성들을 귀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노력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 여호와께서는 우리 개개인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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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모든 사람에게 주목하시고 그들을 기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