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heaven; sky)
히브리어 샤마임(항상 복수형임)은 “하늘(들)”로 번역되는데, 기본적으로 높은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시 103:11; 잠 25:3; 사 55:9) 하늘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우라노스)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물질적 하늘 원어의 의미에는 물질적 하늘의 모든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대개 문맥에서는 물질적 하늘의 어떤 영역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지구의 대기권인 하늘 “하늘”이라는 단어는 지구 대기권의 모든 영역을 가리킬 수 있다. 이곳은 이슬과 서리가 생기고(창 27:28; 욥 38:29), 새가 날아다니며(신 4:17; 잠 30:19; 마 6:26), 바람이 불고(시 78:26), 번개가 번쩍이며(누 17:24), 구름이 떠다니고 비와 눈과 우박이 내리는 영역이다. (수 10:11; 왕첫 18:45; 사 55:10; 행 14:17) “하늘”은 땅 위에 있는 반원형의 둥근 지붕 또는 둥근 천장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마 16:1-3; 행 1:10, 11.
대기가 있는 이 영역은 대체적으로, 창세기 1:6-8에 묘사되어 있는 둘째 창조의 기간에 형성된 “공간[히브리어, 라키아]”에 상응한다. 창세기 2:4, 탈출기 20:11과 31:17에서 “하늘과 땅”의 창조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하는 것은 이 “하늘”인 듯하다.—공간, 창공 참조.
대기가 있는 공간이 형성되었을 때, 지구 표면의 물은 공간 위에 있는 물과 나누어졌다. 이 점은 노아 시대의 세계적 홍수와 관련하여 “광대한 깊은 물의 샘들이 모두 터지고 하늘의 수문들이 열렸다”라는 표현이 사용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창 7:11. 잠 8:27, 28 비교) 홍수 때에, 공간 위에 떠 있던 물은 비로 내리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수로가 열린 것처럼 마구 쏟아지기도 한 듯하다. 이 막대한 저수조가 다 비게 되자, 그와 같은 “하늘의 수문들”은 사실상 “닫히게 되”었다.—창 8:2.
우주 공간 물질적 “하늘”은 지구의 대기권 너머로, 해와 달과 별들과 별자리들 등의 천체들 곧 “하늘의 모든 군대”가 있는 우주 공간까지 뻗어 있다. (신 4:19; 사 13:10; 고첫 15:40, 41; 히 11:12) 성서의 첫 번째 구절에서는 인간이 살 땅에 일어난 일을 기술하기에 앞서서, 별이 빛나는 그러한 하늘이 창조된 것에 관해 기술한다. (창 1:1) 이 하늘은 하느님이 “손가락”으로 만드신 것이며, 대기권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시 8:3; 19:1-6) 하느님이 정하신 “하늘의 법규”는 그러한 모든 천체를 제어한다. 천문학자들은 현대적 장비와 고등한 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러한 법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욥 38:33; 렘 33:25)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 사실들은 인간이 그러한 하늘을 측량하거나 천체들을 계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렘 31:37; 33:22. 별 참조) 하지만 하느님은 천체들의 수를 세시고 그 이름을 부르신다.—시 147:4; 사 40:26.
“하늘 한가운데”와 “하늘 끝” “하늘 한가운데”라는 표현은 독수리와 같은 새들이 날아다니는 지구 대기권의 공간 안에 있는 영역을 가리킨다. (계 8:13; 14:6; 19:17; 신 4:11[히브리어, “하늘의 심장”]) “땅과 하늘 사이”라는 표현도 다소 그와 비슷한 표현이다. (대첫 21:16; 삼둘 18:9) 바빌론을 공격하는 자들이 “하늘 끝”에서 전진해 오는 것은, 그들이 먼 지평선(땅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이며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부터 바빌론으로 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사 13:5. 시 19:4-6 비교) 그와 비슷하게, “하늘의 네 끝에서부터”라는 표현은 아마도 나침반의 네 방향을 가리키며, 따라서 땅의 네 방위를 다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렘 49:36. 단 8:8; 11:4; 마 24:31; 막 13:27 비교) 하늘이 땅을 모든 방향에서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온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을 보시는 여호와의 시각은 지구 전역에 미친다.—욥 28:24.
구름 낀 하늘 히브리어 샤하크라는 또 다른 단어도 “하늘” 또는 하늘의 구름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신 33:26; 잠 3:20; 사 45:8) 이 단어는 낮에는 파랗고 밤에는 별이 반짝이며, 땅 위에 있는 둥근 천장 또는 둥근 지붕처럼 보이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시 89:37) 대부분의 경우에 성서 필자는 “하늘”의 어느 곳이 관련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단순히 사람 위에 있는 높은 곳을 가리키는 듯하다. (시 57:10; 108:4) 이 히브리어 단어는 이사야 40:15에 나오는 “얇게 앉은 먼지”(샤하크)처럼 곱게 빻아지거나 분쇄된 것을 의미하는 어근을 가지고 있다. (삼둘 22:43) 이러한 의미는 확실히 적절하다. 따뜻한 공기가 땅에서 올라가서 이슬점으로 알려진 온도까지 냉각되면 그 안에 있는 수증기는 응결되어, 운립(雲粒)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입자가 될 때 구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욥 36:27, 28 비교. 구름 참조) 그에 더하여, 대기 중에 있는 미세한 먼지 알갱이와 수증기 분자가 햇빛을 산란시키고 또한 대기 중에 있는 산소, 질소, 이산화탄소 등 다른 가스의 분자도 어느 정도 햇빛을 산란시켜서 둥근 지붕 같은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시각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의미는 적절하다. 하느님은 그러한 대기권을 조성하심으로써, 사실상 ‘주조한 거울처럼 단단한 하늘을 펴’셨으며, 사람 위에 있는 대기권의 파란 둥근 천장에 명확한 한계 곧 분명한 경계를 설정하셨다.—욥 37:18.
대기를 구성하는 알갱이들은 실제로 중력의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압착되어 있으며, 중력은 그 알갱이들이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 주기 때문에, 그 알갱이들의 바깥 한계는 정해진 경계 안에 있다. (창 1:6-8) 그 알갱이들은 거울에 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햇빛을 반사한다. 이 때문에 하늘은 밝게 보인다. 반면에 대기가 없다면, 지상에서 하늘을 보는 사람에게는, 대기가 없는 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검은 배경에 천체들이 밝게 빛날 뿐 하늘은 검게만 보일 것이다. 우주 공간에서 우주 비행사들은 지구의 대기가 밝게 빛나는 둥근 고리처럼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들의 하늘”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표현은 가장 높은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늘은 지구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뻗어 있으므로 물질적 하늘의 그 전체 영역이 아무리 광대하다 해도 하늘들의 하늘에 포함될 것이다.—신 10:14; 느 9:6.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은 “하늘들, 아니,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느님을 모실 수 없다고 말하였다. (왕첫 8:27) 하늘의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지위는 하늘보다 높고, “그분의 이름만 홀로 도달할 수 없게 높[으며] 그분의 위엄은 땅과 하늘 위에 있”다. (시 148:13) 사람이 손을 펴서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으로 물체의 크기를 재는 것만큼이나 쉽게 여호와께서는 물질적 하늘을 측량하신다. (사 40:12) 솔로몬의 말은 하느님이 명확한 거처를 가지고 계시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그분이 편재(遍在)하시다는, 문자적으로 어디에나 어느 것에나 계시다는 의미도 아니다. 이 점은 솔로몬이 또한 여호와께서 “하늘 곧 당신의 정해진 처소에서”—영계의 하늘에서—들으신다고 말한 사실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왕첫 8:30, 39.
따라서 “하늘”이라는 단어에는 물질적 의미에서 넓은 영역이 포함된다. 이 단어는 우주 공간의 끝을 포함한 영역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그냥 보통 이상으로 높은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일례로, 폭풍우에 휩싸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가기도 하고 밑바닥으로 내려가기도” 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시 107:26) 따라서 바벨탑의 건축자들도 “하늘에 그 꼭대기가 닿는” 구조물, 이를테면 “마천루”를 세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창 11:4. 렘 51:53 비교) 아모스 9:2의 예언에서는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헛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높은 산간 지방에서 도피처를 찾으려 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영적 하늘 물질적 하늘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바로 그 원어들은 영적 하늘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물질적 하늘에 거하시지 않는다. 하지만 그분은 “높은 곳”에 거하는 “높고 높은 분”이시므로(사 57:15), 또한 하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의 기본 의미가 “높여진” 것 또는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하늘을 하느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높은 거처’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다. (사 63:15; 시 33:13, 14; 115:3) 여호와는 물질적 하늘을 만드신 분으로서(창 14:19; 시 33:6), 하늘의 주인이기도 하시다. (시 115:15, 16) 그분은 이 하늘에 기적을 포함하여 자신이 기뻐하는 일은 무엇이든 행하신다.—시 135:6.
따라서 여러 성구에서 “하늘”은 하느님 자신과 그분의 주권적 지위를 나타낸다. 그분의 왕좌는 하늘에 곧 영적 영역에 있으며, 그분은 이 영역도 통치하신다. (시 103:19-21; 대둘 20:6; 마 23:22; 행 7:49) 여호와는 최고 또는 지고의 지위에서, 사실상 물질적 하늘과 땅을 “내려다보시”며(시 14:2; 102:19; 113:6), 이 높은 지위에서 말씀하시고 청원에 응답하시며 심판을 내리신다. (왕첫 8:49; 시 2:4-6; 76:8; 마 3:17) 따라서 히스기야와 이사야는 커다란 위협에 직면하여 “계속 기도하고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도움을 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둘 32:20. 대둘 30:27 비교) 예수께서도 종교 지도자들에게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인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인지 물으셨을 때, 하느님을 나타내는 단어로 하늘을 사용하셨다. (마 21:25. 요 3:27 비교) 탕자는 “하늘”과 자기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였다. (누 15:18, 21) 따라서 “하늘 왕국”이라는 표현은, 그 왕국이 영적 하늘에 기반을 두고 있고 영적 하늘에서 통치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그 왕국이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단 2:44; 마 4:17; 21:43; 디둘 4:18.
또한 하느님이 하늘에 계시므로, 사람과 천사 모두 하느님께 행동해 주실 것을 요청할 때(출 9:22, 23; 10:21, 22), 맹세할 때(단 12:7), 기도할 때(왕첫 8:22, 23; 애 3:41; 마 14:19; 요 17:1) 하늘을 향해 손이나 얼굴을 들었다. 신명기 32:40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하늘로 손을 들어 맹세”한다고 말씀하신다. 히브리 6:13과의 조화를 고려해 볼 때, 이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두고 맹세하신다는 의미인 듯하다.—사 45:23 비교.
천사들의 처소 영적 하늘은 또한 하느님의 영자(靈子)들의 “적절한 처소”이다. (유 6; 창 28:12, 13; 마 18:10; 24:36) ‘하늘의 군대’라는 표현은 대개 창조물인 천체를 가리키지만, 때때로 하느님의 이 천사 아들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왕첫 22:19. 시 103:20, 21; 단 7:10; 누 2:13; 계 19:14 비교) 따라서 “하늘”은 또한 천사들 곧 “거룩한 자들의 회중”을 나타내는 것으로 의인화되어 있다.—시 89:5-7. 누 15:7, 10; 계 12:12 비교.
통치권을 나타냄 살펴본 바와 같이, 하늘은 주권적 지위를 가지신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바빌로니아의 황제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에게 그가 겪게 될 일로 인해 ‘하늘이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을 때, 이 말은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 왕국의 통치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단 4:25, 26.
하지만 “하늘”이라는 단어는 최고 주권자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신민들 위로 높여진 다른 통치 권력을 가리킬 수도 있다. 느부갓네살로 대표되는 바빌로니아 왕조는 이사야 14:12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자, 새벽의 아들”로 묘사되어 있다. 이 바빌로니아 왕조는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하느님의 별들 위로” 왕좌를 높였는데, 이 “별들”은 다윗 가계의 유다 왕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계 22:16에서 다윗의 왕좌의 상속자인 그리스도 예수가 “밝게 빛나는 새벽 별”이라고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민 24:17 비교) 바빌로니아 왕조는 하느님이 권위를 부여하신 다윗의 왕좌를 전복함으로써 사실상 자신을 하늘 높이 높였다. (사 14:13, 14) 이러한 당당한 위엄과 광대한 영토는 또한 느부갓네살의 꿈에서 그 높이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은 상징적 나무로 표현되었다.—단 4:20-22.
새 하늘과 새 땅 “하늘”이 통치권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표현은 이사야 65:17과 66:22에 나오며,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둘째 3:13에서 인용한 바 있다. 매클린턱과 스트롱 공편 「백과사전」(Cyclopædia, 1891년, 4권, 122면)에서는 그러한 관련성에 관해 기술하면서, “이사야 65:17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정부, 새 왕국, 새 백성을 의미한다”고 해설한다.
“땅”이 인간 사회를 가리킬 수 있듯이(시 96:1. 지구, 땅 참조), “하늘”은 그러한 “땅”을 다스리는 우월한 통치권 또는 정부를 상징할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약속을 제시하는 이사야의 예언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빌론 유배에서 회복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토로 돌아오자 그들에게는 새로운 사물의 제도가 시작되었다. 하느님은 그처럼 회복시키는 일에 키루스 대왕을 탁월하게 사용하셨다. 당시에 예루살렘에서는 스룹바벨(다윗의 후손)이 총독으로 봉사하였고,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였다. 여호와의 목적과 일치하게, 이 새로운 정부 마련 곧 “새 하늘”은 신민들을 지도하고 감독하였다. (대둘 36:23; 학 1:1, 14) 그렇게 하여 이사야 65장 18절에 예언된 바와 같이, 예루살렘은 “기쁨의 이유가 되[고], 그 백성[은] 크게 기뻐할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베드로가 인용한 곳에서는 하느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이 예언이 미래에 성취될 것을 고대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베둘 3:13) 4절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이 경우에 하느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의 임재와 관련이 있으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느님의 메시아 왕국 그리고 순종하는 신민들에 대한 그 왕국의 통치와 관련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스도 예수는 부활되어 하느님의 오른편으로 올라가심으로써, “하늘들보다 더 높게” 되셨다. (히 7:26) 그것은 그 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이 사물의 제도에서뿐 아니라 오게 될 사물의 제도에서도 모든 정부와 권위와 권세와 주권[보다] ··· 훨씬 높”여지셨기 때문이다.—엡 1:19-21; 마 28:18.
하느님은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하는 자들”(히 3:1)인 예수의 그리스도인 추종자들을 그리스도와 결합한 “상속자들”로 정하셨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다시 모으’려는 의도를 가지셨다. “하늘에 있는 것들” 곧 하늘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아져서 하느님과 연합하게 되는 최초의 사람들이다. (엡 1:8-11) 그들의 상속 재산은 “하늘에 예비”되어 있다. (베첫 1:3, 4; 골 1:5. 요 14:2, 3 비교) 그들은 하늘에 “등록”되어 있으며,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히 12:20-23; 빌 3:20) 그들은 요한의 환상에서 “하느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묘사된 “새 예루살렘”을 구성한다. (계 21:2, 9, 10. 엡 5:24-27 비교) 이 환상은 서두에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계 21:1), 뒤에 기술되는 내용 가운데는 당연히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이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새 하늘”은 틀림없이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에 해당하며, “새 땅”은 3, 4절에 묘사된 바와 같이, 새 하늘의 신민이 되어 그 통치로부터 축복을 받는 ‘사람들의 백성’ 가운데서 볼 수 있다.
셋째 하늘 고린도 둘째 12:2-4에서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과 ‘낙원으로 이끌려 간’ 사람에 대해 기술한다. 성경에는 그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것은 아마도 사도 바울 자신의 경험인 듯하다. 일부 사람들은 바울이 셋째 하늘을 언급한 것을 하늘이 여러 층을 이루고 있어서 총 “일곱 하늘”이 있다는 초기 랍비들의 견해와 관련시키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하늘이 몇 개의 단계 또는 층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곳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것이 지구의 대기가 있는 공간 안의 하늘을 가리키는지, 우주 공간의 하늘을 가리키는지, 영적 하늘을 가리키는지 또는 그 외 다른 것을 가리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문맥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셋째 하늘”에 대한 언급은 최상의 통치 형태인 메시아 왕국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사야 6:3, 에스겔 21:27, 요한 21:15-17, 계시록 4:8에서, 아마도 강도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말이나 표현이 세 번 반복되어 있는 것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전의 하늘과 땅이 사라지다 요한의 환상에는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졌다고 언급되어 있다. (계 21:1. 계 20:11 비교)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땅의 정부들과 그 백성이 사탄의 통치를 받고 있음을 알려 준다. (마 4:8, 9; 요 12:31; 고둘 4:3, 4; 계 12:9; 16:13, 14) 사도 바울은 정부들과 권위들과 세상 통치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의 세력들”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엡 6:12) 따라서 “이전의 하늘”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탄과 그의 악귀들의 영향을 받는 정부들이 끝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베드로 둘째 3:7-12에 “지금 있는 하늘”이 마치도 불로 멸망되듯 멸망되는 것에 관해 기록되어 있는 것과 조화가 된다. 마찬가지로, 계시록 19:17-21에서는 지상의 정치 제도가 그 지지자들과 더불어 멸절되는 것을 묘사한다. 그 성구에서는 상징적 야수가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 던져”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계 13:1, 2 비교) 계시록 20:1-3에 의하면, 마귀 자신은 “무저갱에” 던져져서 천 년 동안 있은 후에 “잠시 풀려날 것이다.”
높여진 것이 낮추어짐 하늘은 높여진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높여진 것들이 낮아지는 것은 때때로 하늘이 뒤집히거나 ‘요동’하거나 ‘진동’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스라엘이 황폐될 때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던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아름다움 가운데는 이스라엘 왕국과 그 방백들과 그들의 권력이 포함되었는데, 그러한 아름다움은 불에 타 버리듯이 삼켜졌다. (애 2:1-3) 그러나 이스라엘을 정복하였던 바빌론도, 후에 그 자신의 “하늘”이 요동하고 “땅”이 진동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은 메디아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이 바빌론을 함락시켜서, 바빌론이 섬긴 하늘의 신들은 거짓이며 그 나라가 땅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구원해 줄 수 없음이 증명되었을 때 일어났다.—사 13:1, 10-13.
마찬가지로, 에돔도 하늘 높이 있다고 해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심판의 칼이 그의 높은 곳 곧 “하늘”에서 흠뻑 젖을 것이며, 그 어떤 천적인 즉 높여진 근원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사 34:4-7. 옵 1-4, 8 비교) 크게 자랑하며 마치도 “그 입을 하늘에 두”고 거드럭거리며 악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파멸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시 73:8, 9, 18. 계 13:5, 6 비교) 가버나움 도시는, 예수께서 봉사의 직무를 행하면서 그 도시에 주의를 기울이셨으므로, 크게 은혜를 받았다고 느낄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도시가 그분의 강력한 일들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네가 혹시 하늘까지 높여지겠느냐?”라고 물으신 다음, 오히려 “네가 하데스까지 내려갈 것이다”라고 예언하셨다.—마 11:23.
하늘이 어두워짐 하늘이나 천체들이 어두워진다는 표현은 대개, 순조롭고 유리한 상황이 없어지는 것과, 먹구름이 낮과 밤의 모든 빛을 가려 버릴 때와 같이 순조롭고 유리한 상황이 불길하고 비관적인 전망과 상황으로 대체되는 것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사 50:2, 3, 10 비교) 사람이 생각하는 전망과 관련하여 물질적 하늘이 사용되는 이러한 용법은, “그의 하늘이 땅에 떨어졌다”라는 옛 아랍어 표현과 다소 비슷하다. 이 표현은 어떤 사람의 탁월함 또는 번영이 크게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때때로 하느님은 분노를 표현하시면서 천체 현상을 사용하시며, 그 가운데는 하늘이 문자적으로 어두워지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출 10:21-23; 수 10:12-14; 누 23:44, 45.
여호와께서 예언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심판의 성취로 유다에는 그러한 어둠의 날이 왔는데, 그날은 유다가 바빌론에 의해 황폐됨으로써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욜 2:1, 2, 10, 30, 31. 렘 4:23, 28 비교) 천적인 근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어떠한 희망도 말라 없어져 버린 것처럼 보였으며, 신명기 28:65-67에 예언된 바와 같이, 그들은 햇빛이 비치는 아침이나 달빛이 비치는 저녁으로부터 위안이나 희망을 얻지 못하고 “밤낮으로 무서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동일한 예언자 요엘을 통하여, 자신이 유다의 적들에게 심판을 집행하실 때 그들도 동일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욜 3:12-16) 에스겔과 이사야는 각각 이집트와 바빌론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예언하면서 이 동일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였다.—겔 32:7, 8, 12; 사 13:1, 10, 11.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여서, 듣고 있던 무리에게 “이 구부러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강력하게 권하였다. (행 2:1, 16-21, 40)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그 세대 사람들은 40년도 지나지 않아서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마침내 파괴하였을 때 짙은 어둠의 때를 경험하였다. 하지만 오순절 전에 예수께서는 그와 비슷한 예언을 하시면서 그 예언이 자신의 임재 때에 성취될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마 24:29-31; 누 21:25-27. 계 6:12-17 비교.
물질적 하늘의 영속성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하느님에 관하여 이와 같이 말하였다. “여보게! 그분은 자신의 거룩한 자들도 믿지 않으시고, 하늘도 실제로 그분의 눈에는 깨끗하지 않다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엘리바스에게 그와 그의 두 동무가 “내 종 욥처럼 나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욥 15:1, 15; 42:7) 그와는 대조적으로 탈출기 24:10에서는 순수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늘을 언급한다. 따라서 성서에는 하느님이 물질적 하늘을 멸망시키실 이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물질적 하늘이 영속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으로는, 영원한 것들, 이를테면 하느님의 아들이 상속받은 다윗의 왕국을 통해 오게 되는 평화롭고 의로운 상태 등을 표현하는 데 물질적 하늘을 비유 표현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 72:5-7; 누 1:32, 33) 따라서 하늘이 “없어지”고 ‘해어진 의복처럼 대체’될 것이라고 알려 주는 시편 102:25, 26과 같은 성구를 문자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누가 21:33에서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성구들에서는 “하늘과 땅”이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알려 준다. (창 9:16; 시 104:5; 전 1:4) 따라서 이 성구에서 “하늘과 땅”은, 계시록 21:1에 나오는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상징적이다. 마태 24:35을 비교하기 바란다.
시편 102:25-27에서는 하느님의 영원성과 불멸성을 강조하는 데 반해, 그분의 물질적 창조물인 하늘과 땅은—만일 하느님의 목적에 의해서라면—없어질 수 있음을, 다시 말해서, 멸망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하느님의 물질적 창조물의 어떤 부분이든 그 영속성은, 그분의 영원한 존재와는 달리, 다른 것에 의존해 있다. 지구에서 볼 수 있듯이, 물질적 창조물은 계속 존속하거나 그 존재하는 형태를 유지하려면 계속적인 갱신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시편 148편에서는 물질적 하늘의 존속이 하느님의 뜻과 유지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거기에서는 해와 달과 별들에 더하여 하느님의 창조물의 다른 부분을 언급한 후, 6절에서 이렇게 알려 준다. “[하느님]은 그것들이 영원히, 한정 없는 때까지 서 있게 하시는 분. 그분이 규정을 주시니, 사라지지 않으리라.”
시편 102:25, 26의 말씀은 여호와 하느님께 적용되지만, 사도 바울은 그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인용한다. 이것은 하느님이 물질적 우주를 창조하실 때 하느님의 독생자를 자신의 대리자로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아들의 영속성을 물질적 창조물의 영속성과 대조한다. 하느님은 원하신다면, 물질적 창조물을 ‘외투처럼 말아’ 두실 수 있다.—히 1:1, 2, 8, 10-12. 베첫 2:3, 각주 비교.
여러 가지 시적·비유적 표현들 물질적 하늘은, 햇빛과 비와 이슬과 상쾌한 바람과 그 밖의 대기가 주는 혜택을 통해 지상의 생명 유지 및 번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므로, 시적으로 여호와의 “좋은 창고”로 표현된다. (신 28:11, 12; 33:13, 14) 여호와께서는 “하늘의 곡식”인 만나를 땅에 내리게 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문들”을 열어 자신의 종들을 축복하신다. (시 78:23, 24; 요 6:31) 구름은 그 창고의 위층 방에 있는 “물항아리”와 같으며, 비는 “수문”을 통해 나오는 것처럼 쏟아져 내린다. 수문과도 같은 특정한 요인들, 곧 산들이나 심지어 기적을 통한 하느님의 개입 등으로 인해 수분이 응결되며 그 결과 특정한 지역에 비가 내리게 된다. (욥 38:37; 렘 10:12, 13; 왕첫 18:41-45) 한편, 하느님의 축복이 거두어지면 그 결과 때때로 가나안 땅의 하늘이 ‘닫히고’, 그 모습은 철처럼 단단하고 철처럼 물이 통과할 수 없게 되며, 대기에는 먼지가 가득하고 비가 없어서 구릿빛의 금속성 광택이 나게 된다. 틀림없이 그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상태에서, 구름 없는 ‘닫힌’ 하늘은 붉은 구리 같은 색깔을 띠게 된다. 대기 중에 먼지 알갱이가 증가하면, 파란빛을 산란시켜서 붉은 파동이 훨씬 두드러지게 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가 질 때 햇빛이 훨씬 더 두꺼운 대기를 통과하기 때문에 석양이 붉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레 26:19; 신 11:16, 17; 28:23, 24; 왕첫 8:35, 36.
이와 같은 비유적 표현은 호세아 2:21-23에 나와 있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불충실하였기 때문에 황폐될 것을 예언하셨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그로 인한 축복의 때에 관해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날에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단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 응답할 것이다.” 이런 표현은 여기에 언급된 일련의 여호와의 창조물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축복해 주시도록 이스라엘이 청원한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런 이유에서 이런 것들은 의인화되었으며, 따라서 요청이나 청원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스라엘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요청하면, 이런 산물들은 땅에게서 각 산물을 산출하는 식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과 물을 구한다. 땅이 이런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 위하여 하늘에게 해와 비와 이슬을 요구하면(또는 비유적으로 요청하면), 하늘은 (이제까지는 하느님의 축복이 거두어졌기 때문에 ‘닫혀 있’었지만) 응답한다. 이 일은 하느님이 청원을 받아들이시고 그 나라에 은혜를 회복시키실 경우에만 가능하게 되며, 그렇게 하여 생산적인 순환이 작동하게 된다. 이 예언은 하느님이 그렇게 하실 것임을 보증해 준다.
사무엘 둘째 22:8-15에서 다윗은 엄청난 폭풍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하느님이 다윗을 위하여 개입하셔서 적들을 피할 수 있게 하신 일을 표현하는 듯하다. 이 상징적 폭풍은 맹렬하기 때문에 하늘의 기초가 요동하고, 낮게 깔린 깜깜한 구름으로 인해 하늘은 ‘굽혀’졌다. 탈출기 19:16-18에 묘사된 문자적 폭풍이 불 때의 상황과 이사야 64:1, 2에 나오는 시적인 표현도 비교하기 바란다.
“천적인 빛들의 아버지”이신 여호와(야 1:17)는, 사람이 천막 천을 펴듯이, ‘하늘을 펴신’ 분으로 몇 차례 표현되어 있다. (시 104:1, 2; 사 45:12) 하늘은, 낮에 볼 수 있는 대기가 있는 공간이든 밤에 볼 수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든, 지상의 인간의 관점에서는 거대한 반구형 덮개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사야 40:22에는 거친 천막 천이 아니라 “고운 망사”를 펴신다는 비유 표현이 있다. 이것은 그러한 하늘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맑은 날 밤에 수많은 별들은 참으로 검은 벨벳 같은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레이스 직물처럼 펼쳐져 있다. 태양계가 위치해 있는 우리 은하 즉 은하수로 알려진 거대한 은하도, 지구에서 보면 망사처럼 얇게 보인다는 점도 유의해 볼 만하다.
위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비유적 표현의 의미를 확인할 때는 항상 문맥을 고려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일례로, 모세가 이스라엘에 선포한 것들에 대해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웠을 때, 모세가 염두에 둔 증인은 무생물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과 땅에 사는 지성 있는 거주자들임이 분명하다. (신 4:25, 26; 30:19. 엡 1:9, 10; 빌 2:9, 10; 계 13:6 비교) 예레미야 51:48에서 바빌론이 함락되자 하늘과 땅이 기뻐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계 18:5; 19:1-3 비교) 그와 마찬가지로, 이사야 45:8에 ‘의를 뚝뚝 떨어뜨린다’고 묘사되어 있는 것도 영적 하늘임에 틀림없다. 또한 문자적 하늘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비유적 의미로 기뻐하거나 크게 외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시편 96:11-13에 묘사되어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 땅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실 때에, 하늘은 땅과 바다와 벌판과 더불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 44:23 비교) 아름답게 설계된 작품이 그것을 만든 장인에게 영예를 돌리듯이, 물질적 하늘도 창조주께 찬양을 돌린다. 사실상 하늘은 여호와의 능력과 지혜와 위엄을 알리고 있다.—시 19:1-4; 69:34.
하늘로 올라감 열왕기 둘째 2:11, 12에서 예언자 엘리야는 “폭풍 가운데 하늘로 올라갔다”고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언급된 하늘은 폭풍이 일어나는 대기권의 하늘이지, 하느님이 계시는 영적 하늘이 아니다. 엘리야는 그처럼 올라갔을 때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후임자 엘리사를 떠나 하늘을 가로질러 옮겨진 뒤에도 여러 해 동안 살아 있었다. 또한 엘리야는 죽을 때 영적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아무도 하늘로 올라간 적이 없”다고 분명하게 언명하셨기 때문이다. (요 3:13. 엘리야 1번 [엘리사를 계승자로 임명하다] 참조) 오순절 날 베드로 역시 다윗에 관해 그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행 2:34) 실제로 성경에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하느님의 종들에게 하늘 희망이 제시되었음을 알려 주는 곳이 전혀 없다. 그러한 희망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처음으로 나오는데(마 19:21, 23-28; 누 12:32; 요 14:2, 3), 제자들은 기원 33년 오순절이 지난 후에 비로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행 1:6-8; 2:1-4, 29-36; 로 8:16, 17.
성경에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처음으로 땅에서 하느님이 계신 하늘로 올라가신 분임을 알려 준다. (고첫 15:20; 히 9:24) 예수께서는 그처럼 하늘로 올라가셔서 그곳에서 자신의 대속 희생을 바치심으로써, 그분을 따르려는 자들—그분의 회중에 속한 영으로 출생한 성원들—에게 ‘길을 열어’ 주셨다. (요 14:2, 3; 히 6:19, 20; 10:19, 20) 이런 성원들이 영계인 하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부활될 때 “하늘에 속한 그분[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을 반드시 지녀야 한다. “살과 피”는 이 하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첫 15:42-50.
“하늘”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여전히 땅에 있을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에 땅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예수와 결합하여 일으킴을 받고 하늘에 함께 앉아서’ 이미 천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엡 1:3; 2:6) 문맥에서는 하느님이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아들과 함께 하늘의 상속 재산을 받을 “상속자로 정”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보신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들은 아직 땅에 있지만 그와 같이 정해짐에 따라 높여졌다. 다시 말해서, ‘들어 올려졌다.’ (엡 1:11, 18-20; 2:4-7, 22) 이러한 점은 계시록 11:12에 나오는 상징적 환상에 빛을 던져 준다. 마찬가지로 다니엘 8:9-12에 들어 있는 예언적 묘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데, 이 성구에서는 앞부분에서 정치 강국을 나타내는 것으로 묘사된 것이 “하늘의 군대에 이르기까지 커지”고 그 군대의 일부와 별들의 일부를 땅에 떨어뜨리기까지 하였다고 알려 준다. 다니엘 12:3에서는 예언된 마지막 때에 지상에 있는 하느님의 그 종들이 “별처럼 한정 없는 때까지” 빛난다고 알려 준다. 계시록 1장부터 3장에서 별들을 상징적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곳의 문맥에서는 그러한 ‘별들’이 분명히 땅에 살고 있고 땅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겪고 있으며 유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려 주는데, 이 ‘별들’은 회중을 돌볼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계 1:20; 2:1, 8, 12, 18; 3:1, 7, 14.
하늘 생명에 이르는 길 하늘 생명에 이르는 길에는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의 교훈에 순종하는 믿음의 행위 이상의 것이 관련되어 있다. 사도들과 제자들의 영감받은 기록들에서는, 하느님이 아들을 통해서 부르시고 택하시는 일이 반드시 있을 것임을 알려 준다. (디둘 1:9, 10; 마 22:14; 베첫 2:9) 이러한 초대에는 몇 가지 단계 또는 조처가 관련되어 있는데, 초대받은 그 사람이 하늘의 상속 재산을 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런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러한 단계는 대개 하느님이 밟으시지만,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밟아야 하는 단계도 있다. 그러한 단계 또는 조처 가운데는,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로 3:23, 24, 28; 8:33, 34), 그를 성령으로 낳는(‘태어나게 하는’) 것(요 1:12, 13; 3:3-6; 야 1:18), 그가 그리스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는 것(로 6:3, 4; 빌 3:8-11), 그에게 기름을 붓는 것(고둘 1:21; 요첫 2:20, 27), 그를 거룩하게 하는 것(요 17:17)이 포함되어 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죽기까지 충절을 유지해야 하며(디둘 2:11-13; 계 2:10),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해 충실함을 증명한 후에(계 17:14) 마침내 영의 생명으로 부활된다.—요 6:39, 40; 로 6:5; 고첫 15:42-49. 거룩하게 함; 기름부음; 부활; 의롭다고 선언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