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자, 전파 활동
(preacher, preaching)
성서에 나오는 ‘전파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내려면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리스어 케릿소는 일반적으로 ‘전파하다’로 번역되는데, 기본 의미는 ‘전령으로서 공포하다, 전령이 되다, 전령의 임무를 수행하다, (정복자로서) 공포하다’이다. 관련 명사는 케릭스로서 ‘전령, 공식 사자, 공사, (공포를 하고 모임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포고자’를 의미한다. 또 하나의 관련 명사는 케리그마인데, 이것은 ‘전령이 포고한 것, 공포, (경기의 승리에 대한) 공표, 명령, 소집’을 의미한다. (「희영 사전」 A Greek-English Lexicon, H. 리델과 R. 스콧 공편, H. 존스 개정, 옥스퍼드, 1968년, 949면) 따라서 케릿소는 제자들로 구성된 한정된 집단에게 설교한다는 사상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널리 공포한다는 사상을 전달한다. 이 단어가 사용된 성구 가운데, “힘센 천사가 큰 음성으로 ‘누가 두루마리를 펴고 그 봉인을 떼기에 합당한가?’ 하고 공포하였다[케릿손타]”는 묘사에 그 점이 예시되어 있다.—계 5:2. 또한 마 10:27 비교.
유앙겔리조마이라는 단어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다’를 의미한다. (마 11:5) 관련 단어로서 디앙겔로는 ‘널리 선포하다, 알려 주다’를 의미하고(누 9:60; 행 21:26; 로 9:17), 카탕겔로는 ‘널리 전하다, 이야기하다, 공포하다, 널리 알리다’를 의미한다. (행 13:5; 로 1:8; 고첫 11:26; 골 1:28) 케릿소와 유앙겔리조마이의 주된 차이라면, 케릿소는 공포하는 방식 즉 권위를 부여받아 공개적으로 하는 선언이라는 사상을 강조하고, 유앙겔리조마이는 그 내용 즉 선언하거나 전달하는 유앙겔리온, 다시 말해서 좋은 소식 또는 복음이라는 사상을 강조한다.
케릿소는 ‘소식을 전하다, 공표하다, 소식 전달자 역할을 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사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삼첫 4:17; 삼둘 1:20; 대첫 16:23) 하지만 바사르는 공식 역할을 뜻하는 면에서 케릿소와 동일한 정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전파 활동 “전파자”로 소개된 첫 사람은 노아이다. (베둘 2:5) 물론 그보다 앞서 에녹이 예언한 일도 전파 활동으로 알려졌을 법하다. (유 14, 15) 대홍수 전에 노아가 의를 전파한 일에는 회개하라는 외침과 다가오는 멸망에 대한 경고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유의하지 않았다’고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을 볼 때 그 점을 알 수 있다. (마 24:38, 39) 그러므로 노아가 하느님에게서 권위를 받아 공개적으로 공포한 일은 주로 좋은 소식을 전한 것이 아니었다.
대홍수에 이어서 아브라함과 같은 많은 사람이 예언자로 봉사하면서 하느님의 계시를 말하였다. (시 105:9, 13-15) 하지만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 전에 전파 활동이 정기성을 띠거나 천직으로서 공개적으로 행해진 적은 없는 것 같다. 고대 족장들은 전령 역할을 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 예언자들은 공식 대변인으로 행동하여 공개 장소에서 하느님의 법령과 심판, 소집을 공포하였다. (사 58:1; 렘 26:2) 요나가 니네베에 공포한 일은 케리그마가 전달하는 사상에 잘 부합되며, 또 그렇게 묘사되어 있다. (욘 3:1-4; 마 12:41 비교) 하지만 예언자들의 봉사의 직무는 일반적으로 전령이나 전파자의 직무보다 훨씬 폭넓은 것이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예언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하기도 하였다. (왕둘 5:10; 9:1-3; 렘 36:4-6) 그들은 소식과 환상을 말로 공포하기보다 기록하기도 하였고(렘 29:1, 30, 31; 30:1, 2; 단 7-12장), 사적인 자리에서 전한 경우도 많았다. 또한 예언자들은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상징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예언; 예언자 참조.
공포된 것 중에는 훈계, 경고, 심판도 있고, 좋은 소식—승리·구출·축복의 소식—도 있었으며, 여호와 하느님을 찬양하는 내용도 있었다. (대첫 16:23; 사 41:27; 52:7. 이 성구들에서 히브리어 바사르가 사용됨)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 또는 곧 구제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여자들이 외치거나 노래한 적도 있었다.—시 68:11; 사 40:9. 삼첫 18:6, 7 비교.
또한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와 그리스도인 회중이 수행할 전파 활동을 예고해 놓았다. 예수는 자신이 전파하도록 하느님이 부여하신 사명과 권위를 예언해 놓은 이사야 61:1, 2을 인용하셨다. (누 4:16-21) 시편 40:9(이보다 앞선 구절들을 사도 바울은 히브리 10:5-10에서 예수에게 적용시켰음)의 성취로 예수는 ‘큰 회중 가운데서 의의 좋은 소식을 알렸다[바사르의 변화형].’ 사도 바울은 (시온이 포로 상태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소식을 알리는 사자에 관한) 이사야 52:7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의 공개 전파 활동에 적용하였다.—로 10:11-15.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침례자 요한은 주로 광야 지역에서 활동하였지만 전파자 또는 공식 사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에게 나오는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와 하느님의 왕국이 다가온다는 소식을 알리며 회개하라고 권하였다. (마 3:1-3, 11, 12; 막 1:1-4; 누 3:7-9) 동시에 요한은 예언자, (제자를 둔) 가르치는 자, 복음 전파자로 봉사하였다. (누 1:76, 77; 3:18; 11:1; 요 1:35) 요한은 “하느님의 대표자”이자 그분의 증인이었다.—요 1:6, 7.
예수께서는 40일간 단식한 뒤 유대 광야 지역에 머물러 있지도, 은둔 생활로 칩거하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하느님이 부여하신 사명에는 전파 활동이 요구됨을 인정하셨기에, 도시와 마을에서, 성전 지역에서, 회당이나 장터나 거리에서 그리고 시골 지역에서도 공개적으로 전파 활동을 하셨다. (막 1:39; 6:56; 누 8:1; 13:26; 요 18:20) 요한처럼 그분도 전파하는 일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을 하셨다. 그분의 가르치는 일은 전파하는 일보다 더 중시된다. 가르치는 일(디다스코)은 전파하는 일과 다른데, 가르치는 사람은 공포하는 일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을 한다. 즉 교훈하고 설명하며 논증으로 사물을 밝히고 증거를 제시하는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이나 후에, 예수의 제자들은 전파하는 일과 더불어 가르치는 일도 해야 하였다.—마 4:23; 11:1; 28:18-20.
예수의 전파 활동의 주제는 “회개하십시오. 하늘 왕국이 다가왔습니다”였다. (마 4:17) 예수께서는 공식 전령처럼 듣는 이들이 주권자인 하느님의 활동에, 기회와 결정의 때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셨다. (막 1:14, 15)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온유한 자, 마음이 상한 자, 애통하는 자에게 좋은 소식과 위로를 가져다주고 포로들에게 석방을 공포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하느님의 복수의 날”을 선포하기도 하셨다. (사 61:2) 예수께서는 통치자들과 백성 앞에서 하느님의 목적과 법령, 약속, 심판을 담대하게 공표하셨다.
예수의 죽음 이후 예수께서 죽으신 후, 특히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로 예수의 제자들은 먼저 유대인 가운데서 그리고 마침내 모든 나라 사람들 가운데서 전파 활동을 수행하였다. 그들은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아 자신들이 권위를 받은 전령임을 인정하였고 또 듣는 이들에게 그 사실을 거듭거듭 알렸다. (행 2:14-18; 10:40-42; 13:47; 14:3. 로 10:15 비교) 마치 예수께서 자신이 ‘하느님의 보냄’을 받았음과(누 9:48; 요 5:36, 37; 6:38; 8:18, 26, 42) “무엇을 알리고 무엇을 말할 것인지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음을 강조하신 바와 같다. (요 12:49)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전파 활동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변하였다. “하느님의 말씀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의로운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보다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행 4:19, 20; 5:29, 32, 42) 이 전파 활동은 그들의 숭배에서 필수적인 부분, 하느님을 찬양하는 수단, 구원을 얻는 데 필요한 조건이었다. (로 10:9, 10; 고첫 9:16; 히 13:15. 누 12:8 비교) 그러하기에 남녀 모든 제자가 “사물의 제도의 종결” 때까지 전파 활동에 참여해야 하였다.—마 28:18-20; 누 24:46-49; 행 2:17. 행 18:26; 21:9; 로 16:3 비교.
이들 초기 그리스도인 전파자들은 세상 표준으로 볼 때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산헤드린은 사도들인 베드로와 요한이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들”임을 알아보았다. (행 4:13) 예수에 관하여, “유대인들은 이상히 여기면서, ‘이 사람은 학교에서 공부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학식을 갖추고 있을까?’ 하고 말하였다.” (요 7:15) 세속 역사가들도 동일한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스도교를 반박한 첫 저술가 켈수스는 노동자들, 구두 만드는 사람들, 농부들, 지극히 학식이 없고 촌스러운 사람들이 복음의 열성적인 전파자들이 된다는 점을 조롱거리로 삼는다.” (「초기 삼 세기의 그리스도교 및 교회의 역사」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During the Three First Centuries, 아우구스투스 네안더, 헨리 존 로즈가 독일어에서 번역함, 1848년, 41면) 바울은 그 점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형제들이여, 그분이 여러분을 부르신 것을 보십시오. 육적인 면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일이 많지 않고, 강력한 사람도 많지 않으며, 귀족 출신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셔서 지혜로운 사람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고첫 1:26, 27.
하지만 세속 학교에서 고등 교육은 받지 않았더라도 초기 그리스도인 전파자들은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12사도를 전파하도록 보내기 전에 폭넓은 훈련을 베푸셨다. (마 10장) 이 훈련은 지시 전달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훈련이었다.—누 8:1.
그리스도인 전파 활동의 주제는 여전히 “하느님의 왕국”이었다. (행 20:25; 28:31)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 이전에 공포된 것에 비할 때 그들이 공포한 것에는 부가된 요소가 있었다. 하느님의 목적의 “신성한 비밀”이 그리스도를 통해 밝혀졌고, 그분의 희생적 죽음이 참 믿음에 필수 요소가 되었으며(고첫 15:12-14), 하느님의 은혜와 생명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이 임명하신 왕이자 재판관인 그리스도의 높여진 위치를 알고 인정하고 또 그 위치에 복종해야 하였다. (고둘 4:5)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흔히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한다’고 되어 있다. (행 8:5; 9:20; 19:13; 고첫 1:23) 그들의 전파 활동을 살펴보면,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해서 듣는 이들의 정신에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왕국 마련이나 전반적인 목적으로부터 다소 독립되거나 분리된 존재처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오히려 그들은 여호와 하느님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그리고 아들을 통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하느님의 목적이 예수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고 또 성취될 것인지를 공포하였다. (고둘 1:19-21) 그러므로 그런 전파 활동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로 16:25-27.
그들은 순전히 의무감에서 전파 활동을 수행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전령으로서 공포한 일이 단순히 형식적으로 소식을 외치는 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그들의 전파 활동은 마음을 다한 믿음에서 우러나온 것으로서, 하느님을 공경하려는 열망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을 전해 주려는 사랑 넘친 희망으로 수행된 것이다. (로 10:9-14; 고첫 9:27; 고둘 4:13) 그러므로 전파자는 기꺼이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유대인에게서 이단자로 박해받았다. (고첫 1:21-24; 갈 5:11) 이 때문에 그들은 전파하면서 추리력과 설득력을 사용하여 듣는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또 믿음을 나타내도록 도움을 주었다. (행 17:2; 28:23; 고첫 15:11) 바울은 자신이 “전파자와 사도와 가르치는 사람”으로 임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디둘 1:11) 이 그리스도인들은 봉급을 받는 전령이 아니라 헌신한 숭배자로서 자신을 바쳐, 자신의 시간과 힘을 바쳐 전파 활동을 한다.—데첫 2:9.
제자가 된 사람들이 모두 말씀의 전파자가 되기도 하였으므로, 좋은 소식은 신속히 퍼졌으며, 바울이 골로새 사람들에게 편지할 무렵(기원 60-61년경, 즉 그리스도가 죽은 지 약 27년 뒤)에는 좋은 소식이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창조물 가운데 전파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골 1:23) 따라서 ‘좋은 소식이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예언은 기원 70년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멸망되기 전에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 (마 24:14; 막 13:10; 2권, 744면 지도) 예수 자신의 말씀을 비롯하여 그 멸망 이후에 기록된 계시록에서는 그 예언이 더 크게 성취될 때를 지적하는데, 그때는 그리스도가 왕국 통치를 행사하기 시작하여 그 왕국의 적대자들을 모두 멸망시킬 준비 단계에 있는 때, 논리적으로 볼 때 대규모 전파 활동이 수행되어야 할 때이다.—계 12:7-12, 17; 14:6, 7; 19:5, 6; 22:17.
그리스도인 전파자는 자신이 기울인 노력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해야 하는가? 바울의 경험으로 보면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말한 것들을 믿기 시작하였으나 어떤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행 28:24)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진정한 그리스도인 전파 활동에는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 전파 활동은 활기차고 활력적인 활동으로서, 무엇보다 쟁점을 제시하는 활동이다. 그 쟁점에서 사람들은 어느 편인가를 택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왕국 소식을 몹시 반대하는 사람이 된다. (행 13:50; 18:5, 6) 그런가 하면, 한동안 듣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요 6:65, 66) 그렇지만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행 17:11; 누 8:15.
“집집으로” 예수께서는 왕국 소식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직접 가서 공중 앞에서든 개인 가정에서든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마 5:1; 9:10, 28, 35) 그분은 초기 제자들을 전파하도록 보내실 때, “어떤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곳에서 합당한 사람을 찾아 내”라고 지시하셨다. (마 10:7, 11-14) 합리적으로 볼 때 그렇게 ‘찾아내는 일’에는 사람들의 가정으로 가는 것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래야 거기서 “합당한” 사람들이 소식을 듣게 되고 제자들은 밤에 묵을 곳을 얻게 될 것이었다.—누 9:1-6.
나중에 예수께서는 “다른 칠십 명을 지정하여, 친히 가시려고 했던 모든 도시와 모든 곳으로 그들을 둘씩 앞서 보내”신 적이 있다. 이들은 공개 장소에서 전파하는 것만 아니라 개인 가정에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지시하셨다. “여러분이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십시오.”—누 10:1-7.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에도 계속해서 예수의 제자들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직접 사람들의 가정으로 갔다.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들은 “매일 성전에서 그리고 집집으로 쉬지 않고 가르치며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좋은 소식을 선포하기를 계속하였다”고 영감받은 기록은 알려 준다. (행 5:40-42. 「공동」, 「표준」, Dy, NIV 비교) “집집으로”라는 표현은 그리스어 카트 오이콘을 번역한 것으로, 문자적 의미는 ‘집을 따라’이다. 그리스어 전치사 카타는 배분적인 의미(“집집으로”)로 사용된 것이지 단순한 부사어(‘집에서’)가 아니다. (NW 각주 참조) 이렇게 사람들에게 이르는 방법—직접 그들의 집으로 가는 것—은 뛰어난 결과를 산출하였다.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의 수가 계속 크게 늘어났”다.—행 6:7. 행 4:16, 17 및 5:28 비교.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아시아 지역에 발을 들여 놓은 첫날부터 ··· 이익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여러분에게 알려 주기를 주저하지 않고 공중 앞에서 그리고 집집으로 여러분을 가르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 모두에게 하느님에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에 대한 믿음에 관하여 철저히 증거하였습니다.” (행 20:18-21. KJ, Dy, AS, RS, Mo, NIV, La 비교) 바울은 여기서 그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 아니었을 때, 말하자면 “하느님에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에 대한 믿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을 때 그들에게 전파하려고 기울인 노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시아에서 선교 봉사를 시작할 때부터 영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을 “집집으로” 찾아다녔다. 그런 사람을 찾게 되면 바울은 틀림없이 그런 사람들의 가정으로 다시 찾아가 그들을 더 가르쳤을 것이고, 그들이 믿는 사람이 되면 믿음 안에서 그들을 강화시켜 주었을 것이다. A. T. 로버트슨 박사는 저서인 「신약 단어 해설」(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에서 사도행전 20:20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집을 따라. 주목할 만한 점은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전파자였던 이 사람이 집집으로 전파하였으며 자신의 방문을 단순한 사교적 방문이 되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1930년, 3권, 349, 350면.
회중 내에서 전파하는 일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전파 활동은 대부분 회중 밖에서 공포한 일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십시오. 순조로운 시기에도 곤란한 시기에도 긴급하게 그 일을 하십시오”라고 권한 말에는 일반 감독자가 하듯이, 회중 내에서 전파하는 일이 포함된다. (디둘 4:2)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편지는 일종의 목회 서간 즉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목자로서 활동하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로서 그처럼 감독하는 봉사의 직무에 관한 조언을 담고 있다. “말씀을 전파하십시오”라는 이 권고를 하기 전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교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심각한 정도로 성행할 것임을 경고하였다. (디둘 2:16-19; 3:1-7) 바울은 전파하는 일에서 “말씀”을 굳게 잡고 빗나가지 말라고 디모데에게 권고한 다음, 그것이 긴급한 일임을 지적하여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참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욕망에 따라 가르쳐 주는 선생들을 찾아 “진리에서 귀를 돌이”킬 “시기가 올 것”이라고 함으로, 외부 사람들이 아니라 회중 내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디둘 4:3, 4) 그러므로 디모데는 회중 내에서 그릇된 경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어려움과 고난을 당할지라도, 영적 균형을 잃지 말고 (인간 철학이나 무익한 추론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형제들에게 담대히 선포해야 하였다. (디첫 6:3-5, 20, 21; 디둘 1:6-8, 13; 2:1-3, 14, 15, 23-26; 3:14-17; 4:5 비교) 그렇게 함으로 디모데도 바울처럼 배교를 막는 역할을 하고 유혈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었다.—행 20:25-32.
예수께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영의 생명으로 부활되셨음을 묘사한 뒤에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첫째 3:19, 20에서 이렇게 말한다. “또한 그 상태로 그분은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전파하셨습니다. 그들은 과거 노아의 날에 방주가 건축되는 동안 하느님께서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입니다.” 이 구절에 관해 설명하면서 「바인의 신구약 단어 해설 사전」(Vine’s Expository Dictionary of Old and New Testament Words)은 이렇게 알려 준다. “베드로 첫째 3:19에서, 필시 언급된 점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노아가 그런 소식을 전파했다는 실제 증거가 없고, 대홍수 이전 사람들의 영들이 실제로 ‘감옥에’ 있다는 증거도 없음) 그리스도가 부활된 후 타락한 천사 영들에게 자신의 승리를 공포하는 행동을 가리킬 것이다.” (1981년, 3권, 201면) 지적된 바와 같이, 케릿소는 좋은 소식만 아니라 나쁜 소식을 공포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요나가 니네베의 다가오는 멸망에 관해 공포한 경우와 같다. 성경 가운데 감옥에 있는 영들로 언급된 경우는 노아 시대의 천사들뿐인데, 그들은 “짙은 어둠의 구덩이에 두어”(베둘 2:4, 5), “큰 날의 심판을 위하여 영원한 결박으로 짙은 어둠 아래 보존”되어 있다. (유 6) 그러므로 부활되신 예수께서 그런 불의한 천사들에게 전파하신 것은 심판을 전파하신 것일 수밖에 없다. 주목할 만하게도, 기원 1세기 말엽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요한에게 환상으로 전달해 주신 내용을 담은 계시록은 사탄 마귀와 그의 악귀들 및 그들의 궁극적 멸망에 대해 많은 점을 알려 주므로 심판을 전파하는 소식을 담고 있다. (계 12-20장) 베드로가 과거 시제(‘전파하셨다’)를 사용한 것은 그가 첫째 편지를 쓰기 전에 그렇게 전파하는 일이 행해졌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