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편파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편파적이 아니시고, 신세]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느니라.]”—사도 10:34, 35.
1. 고대 아테네에서, 바울은 인종에 관해 무슨 중요한 말을 하였읍니까?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의 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전에서 살지 않으십니다. ··· 그분은 한 조상을 통해 온갖 인종의 사람들이 온 지면에 살도록 창조하셨읍니다.” (사도 17:24-26, 필립스역) 이러한 말을 한 사람은 누구였읍니까?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이었읍니다. 그는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마르스 언덕 즉 아레오바고에서 행한 그의 유명한 연설 가운데서 그런 말을 하였읍니다.
2. 무엇이 인생을 다채롭고도 흥미 진진한 것이 되게 해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한 한 일본인은 무엇에 깊은 인상을 받았읍니까?
2 바울의 말이 우리에게 창조물 내에 존재하는 놀라운 다양성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 동물, 새, 곤충 및 식물을 창조하셨으며, 그것도 매우 다양하게 창조하셨읍니다. 그 창조물들이 모두 비슷하다면 인생은 얼마나 단조롭겠읍니까! 창조물의 다양성은 인생을 다채롭고도 흥미 진진한 것이 되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한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서 온 한 방문객은 자신이 대회장에서 관찰한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에 깊은 인상을 받았읍니다. 그는, 대다수가 동일한 인종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말하였읍니다.
3. 일부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른 것을 어떻게 보며, 그러한 견해는 무엇을 불러일으킵니까?
3 그러나 인종간의 피부색의 다양성은 종종 심각한 문제들의 원인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증오심이 생기게 하고 인종적 편견의 참극을 빚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 이렇게 되도록 의도하신 것입니까? 어떤 인종은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우월합니까? 여호와는 편파적인 분입니까?
우리의 창조주—편파적인 분인가?
4-6. (ㄱ) 여호사밧 왕은 편벽됨 즉 편파성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모세와 바울은 여호사밧의 말을 어떻게 확증하였읍니까? (ㄷ) 일부 사람들은 무슨 의문을 제기할지 모릅니까?
4 우리는 과거 역사를 고려해 봄으로써 온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견해를 얼마간 알 수 있읍니다. 기원전 936년부터 911년까지 유다를 통치한 여호사밧 왕은 여러 가지 개선을 하였고 하나님의 법에 근거한 사법 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하였읍니다. 그는 재판관들에게 이러한 훌륭한 교훈을 하였읍니다. “너희는 행하는 바를 삼가하라 너희의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위함이니 ···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니라.]”—역대 하 19:6, 7.
5 이보다 수백년 앞서, 예언자 모세는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읍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 사람을 외모로 보지[아무도 편파적으로 대하지, 신세] 아니하시[느니라.]” (신명 10:17) 그리고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한 편지 가운데서 이렇게 훈계하였읍니다.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이 있을 것인데, 먼저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또한 희랍인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편애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로마 2:9-11, 신 영어 성서.
6 하지만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한가?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었는가? 그분은 그들을 편파적으로 감싸시지 않았는가? 모세는 온 이스라엘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다고 하지 않았는가?’—신명 7:6.
7. (ㄱ)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배척하였을 때 무슨 결과를 당하였읍니까? (ㄴ) 오늘날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으며, 어떻게 누릴 수 있읍니까?
7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시는 데 있어서 편파적이 아니었읍니다. 메시야를 산출하는 통로가 될 백성을 선택하는 일에서, 여호와께서는 충실한 히브리 족장들의 후손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그분을 죽였을 때,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였읍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느 인종이나 나라에 속한 사람이든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읍니다. (요한 3:16; 17:3) 확실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에게 편파적인 데가 전혀 없음을 증명해 줍니다. 더우기,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나그네[외국인 거주자, 신세]를 사랑”하고 “그를 학대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읍니다. (신명 10:19; 레위 19:33, 34)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의 인자하신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편파적이 아닙니다.
8. (ㄱ)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편애하신 것이 아니었음을 무엇이 증명해 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사용하셨읍니까?
8 이스라엘 백성이 각별한 특권을 누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또한 막중한 책임이 있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법을 지킬 의무 아래 있었으며, 그 법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았읍니다. (신명 27:26)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한 일로 인해 거듭거듭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편애하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는 예언적 모형을 만들고 경고의 본을 제공하기 위해 그들을 사용하셨읍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 구속자 즉 되찾는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산출하셨으며, 그것은 온 인류의 축복을 위한 것이었읍니다.—갈라디아 3:14; 비교 창세 22:15-18.
예수는 편파적이었는가?
9. (ㄱ) 여호와와 예수는 어느 정도나 흡사합니까? (ㄴ) 예수에 관하여 무슨 질문들이 생깁니까?
9 여호와에게 편파적인 데가 전혀 없는데 예수께서 편파적일 수 있겠읍니까? 이 점을 고려해 봅시다. 예수께서는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읍니다. (요한 5:30) 여호와와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 사이에는 완전한 연합이 존재하며, 예수께서는 모든 점에서 아버지의 원대로 하십니다. 사실, 그분들은 예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견해와 의도에 있어서 매우 흡사하십니다. (요한 14:9) 예수께서는 33년간이나 이 땅에서 인간으로서 실제로 살아 보셨으며, 성서는 그분이 동료 인간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알려 줍니다. 다른 인종에 대한 그분의 태도는 어떠하였읍니까? 그분은 편견을 나타내거나 편파적이셨읍니까? 예수께서는 인종 차별주의자였읍니까?
10. (ㄱ) 예수께서는 도움을 구하는 어떤 페니키아 여자의 요청에 어떻게 대답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이방인들을 가리켜 “강아지”라고 하심으로써 편견을 나타내신 것이었읍니까? (ㄷ) 그 여자는 이의를 어떻게 극복하였으며, 무슨 결과가 있었읍니까?
10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의 대부분을 유대 민족과 함께 보내셨읍니다. 그러나 어느 날 페니키아 여자인 어느 이방인이 예수께 다가와서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그런데도, 그 여자는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하였읍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셨읍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강아지, 새번역]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유대인들에게, 개는 부정한 동물이었읍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이방인들을 가리켜 “강아지”라고 하심으로써 편견을 나타내신 것이었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돌보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명을 언급하신 것뿐이었읍니다. 더우기, 예수께서는 비유대인들을 야생 개가 아니라 “강아지”에 비하심으로써 자신의 비유적 표현을 부드럽게 하셨읍니다. 물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이 여자에게 시험이 되었읍니다. 그 여자는 이러한 이의를 극복할 결심을 하고는 있었지만 겸손한 태도로, 재치있게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강아지]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 여자의 믿음에 깊은 감명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그 여자의 딸을 즉시 고쳐 주셨읍니다.—마태 15:22-28.
11. 예수께서 관련되신 한 사건이 예시하듯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읍니까?
11 또한 예수께서 어떤 사마리아인들과 관련하여 직면하셨던 일을 생각해 봅시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뿌리 깊은 적대감이 있었읍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사자(使者)들을 보내 어떤 사마리아 마을에서 자신을 위해 준비하게 하셨읍니다. 그러나 그 사마리아인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읍니다. 이 일로 인해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멸하기를 원할 정도로 감정이 격해졌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꾸짖으셨으며, 그들 모두는 다른 마을로 갔읍니다.—누가 9:51-56.
12. 어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의 요청에 놀란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예수께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적대 감정에 동참하셨읍니까? 또 다른 경우에 있었던 일에 유의하십시오.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여행하는 도중에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여행으로 인해 지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음식을 사러 수가 성으로 간 사이에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쉬고 계셨읍니다. 그 사이에,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왔읍니다. 그런데, 다른 경우에 예수께서는 직접 사마리아인들을 “다른 인종에 속한” 사람으로 분류하신 적이 있었읍니다. (누가 17:16-18, 왕국 행간 번역 희랍어 성경)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읍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여자는 놀라서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한 4:1-9.
13. (ㄱ)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의 이의에 어떻게 대응하셨으며, 그 여자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ㄴ) 최종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13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제기한 이의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읍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 기회를 포착하여 증거하셨으며, 자신이 메시야임을 인정하시기까지 하였읍니다! (요한 4:10-26) 놀란 그 여자는 우물 곁에 물 항아리를 두고 성으로 달려가서,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여자는 부도덕한 생활을 하긴 하였지만,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함으로써 영적인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읍니다. 최종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그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가 한 훌륭한 증거로 인해 예수를 믿게 되었읍니다. (요한 4:27-42) 흥미롭게도, 조합 교회 신학자 토머스 O. 피가트는 그의 저서 「인종 문제에 대한 성서의 시각」(A Biblical Perspective on the Race Problem)에서 이렇게 해설하였읍니다. “우리 주께서 인종에 대한 잘못된 전통을 은혜로운 제스처로 무시하실 정도의 일로 보셨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인종 차별주의에 동화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14. 여호와가 편파적인 분이 아니라는 무슨 증거가 복음 전파자 빌립의 전도 봉사 중에 나타났읍니까?
14 여호와 하나님은 편파적인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에 속한 사람들이 유대교 개종자가 되도록 허락하셨읍니다. 19세기 전에 예루살렘과 가사 사이의 사막길에서 있었던 일을 또한 생각해 봅시다. 에디오피아 여왕을 섬기는 한 흑인이 병거를 타고 가면서 이사야의 예언을 읽고 있었읍니다. 이 관리는 할례받은 개종자였읍니다.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었던 것을 볼 때 그 점을 알 수 있읍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유대 복음 전파자 빌립에게 나타나서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말하였읍니다. 빌립은 “그것은 안 됩니다! 그 사람은 다른 인종에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였읍니까?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빌립은 병거에 올라타라는 그 에디오피아인의 초대를 흔쾌히 수락하여 그와 함께 앉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을 설명해 주었읍니다. 그들이 물 웅덩이에 다가갔을 때, 그 에디오피아인은 이렇게 물었읍니다. “내가 침례를 받지 못하게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세)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빌립은 기쁜 마음으로 그 에디오피아인에게 침례를 주었으며, 여호와께서는 그 행복해 하는 사람을 편파적이 아닌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로 받아들이셨읍니다. (사도 8:26-39) 그러나 하나님이 편파적인 분이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가 곧 나타났읍니다.
커다란 변화
15.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 무슨 변화가 있었으며, 바울은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15 그리스도의 죽음이 세상의 인종적 편견을 없애지는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희생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의 이방인 추종자들에 대한 그분의 유대인 제자들의 관계에 분명히 변화를 가져오셨읍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을 때 그 점을 지적하였읍니다.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라] ···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느니라.]” “담” 즉 분리의 상징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경계 역할을 한 율법 언약 마련이었읍니다. 그 담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근거로 허물어졌으며, 그 결과 그분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읍니다.—에베소 2:11-18.
16. (ㄱ) 베드로에게 왕국 열쇠들이 주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몇개나 되는 열쇠들이 있었으며, 그 열쇠들을 사용함으로 무슨 결과가 있었읍니까?
16 뿐만 아니라, 사도 베드로에게 “하늘 왕국의 열쇠들”이 주어졌으며 그 결과 어느 인종에 속한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배워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 후사가 될 수 있게 되었읍니다. (마태 16:19, 신세; 요한 3:1-8) 베드로는 세개의 상징적인 열쇠들을 사용하였읍니다. 첫 번째 열쇠는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고, 두번째 열쇠는 사마리아인을 위한 것이었으며, 세번째 열쇠는 이방인을 위한 것이었읍니다. (사도 2:14-42; 8:14-17; 10:24-28, 42-48) 그러므로 편파적이 아닌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온갖 인종 가운데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영적 형제들과 왕국의 공동 후사들이 되는 특권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읍니다.—로마 8:16, 17; 베드로 전 2:9, 10.
17. (ㄱ) 베드로는 무슨 이상한 환상을 받았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 찾아온 사람들은 베드로를 누구의 집으로 안내하였으며, 그곳에서는 누가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읍니까? (ㄷ) 베드로는 그 이방인들에게 무엇을 상기시켰으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미 무엇을 분명히 가르치셨읍니까?
17 세번째 열쇠—이방인을 위한 것—를 사용할 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베드로는 부정한 동물들에 대한 이상한 환상을 받았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읍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교훈점은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것이었읍니다. (사도 10:9-16) 베드로는 이러한 환상의 의미에 대해 크게 당혹하였읍니다. 그런데 곧 세 사람이 도착하여 베드로를 가이사랴에 주둔해 있는 로마군 장교 고넬료의 집으로 데려갔읍니다. 그 성은 유대에 있는 로마 군대의 본거지였으므로, 고넬료가 그곳에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읍니다. 바로 그 이방인의 거처에서 고넬료는 가족을 포함한 친척 및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상기시켰읍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사도 10:17-29.
18. (ㄱ)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의 손님들에게 무슨 중대한 선언을 하였읍니까? (ㄴ) 베드로가 예수에 관해 증거하고 있던 중에, 무슨 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읍니까? (ㄷ) 그런 다음 그 믿는 이방인들과 관련하여 무슨 단계가 취하여졌읍니까?
18 고넬료가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설명한 후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편파적이 아니시고, 신세]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 (사도 10:30-35; 사체로는 본지에서.) 그런 다음 사도 베드로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를 하자, 극적인 일이 벌어졌읍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니라.]” 베드로의 유대인 동료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늘에 계신 편파적이 아닌 하나님의 성령이 그 믿는 이방인들에게 부어졌으므로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겠읍니까?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명령하였읍니다.—사도 10:36-48.
‘각 나라에서’
19. 인종간의 적대감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느 정도로 증가하고 있읍니까?
19 우리는 현재 “마지막 날”에 살고 있으며, 현실은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독단적이고, 거만하고, 혈육간의 애정이 없고, 쉽게 합의점에 이르지 않고, 자제력이 없고, 사납고, 완고하고, 자존심으로 우쭐해 합니다. (디모데 후 3:1-5, 신세) 그러한 사회 풍토에서, 인종간의 적대감과 충돌이 세계 전역에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나라에서, 다른 인종에 속하거나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멸시하거나 심지어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이로 인해 일부 나라나 지역에서는 실제로 전투를 벌이거나 끔찍한 참극을 빚기까지 하였읍니다. 소위 계몽된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인종적 편견을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리고 이 “병폐”는 한때는 평화로운 가운데 거의 목가적인 풍경을 자랑하던 바다의 섬들 같은, 그런 일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던 지역들로 번지고 있는 듯합니다.
20. (ㄱ) 요한은 무슨 영감받은 환상을 보았읍니까? (ㄴ) 이 예언적 환상은 어느 정도로 성취되고 있읍니까? (ㄷ)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온전히 극복해야 할 무슨 어려움이 있으며, 그들은 해결책을 어디에서 구해야 합니까?
20 그러나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인종간의 조화가 결핍되어 있는 데도 편파적이 아닌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모든 인종과 나라에 속한,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을 주목할 만한 국제적인 연합 안으로 모아들일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각 나라와 족속[인종, 예루살렘 성서]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오는’ 것을 보았으며, 그 큰 무리는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었읍니다. (계시 7:9) 이 예언은 이미 성취되고 있읍니다. 오늘날 210개 나라와 지역에 있는 모든 나라와 인종에 속한 3,300,000명 이상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연합과 인종간의 조화를 즐기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 사람들까지도, 비록 그들이 이 점을 의식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인종적 편견을 온전히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있읍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읍니까? 우리는 다음 기사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며, 이 논의는 편파적이 아닌 하나님 여호와의 영감받은 말씀으로부터의 유익한 교훈에 근거한 것입니다.
어떻게 대답하겠읍니까?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신 일이 편파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종 문제에 편견을 나타내거나 편파적이 아니셨다는 무슨 증거가 있읍니까?
◻ 베드로는 “하나님은 편파적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도록 어떻게 도움을 받았읍니까?
◻ 이 세상에 인종간의 조화가 결핍되어 있는데도, 연합을 암시하는 무슨 예언이 지금 성취되고 있읍니까?
[10면 삽화]
사도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온갖 인종의 사람들이 온 지면에 살도록 창조하셨”다고 말하였다
[12면 삽화]
예수께서는 편파적이 아니셨기 때문에, 수가 근처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증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