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army)
땅에서의 전쟁을 위해 조직되고 훈련받은 사람들의 대규모 집단. “군대”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히브리어(차바)는 대개 인간의 군대와 관련하여 사용되지만(민 1:3), 하늘의 영적 피조물들(왕첫 22:19)과 물질적인 천체(신 4:19)를 가리키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지속되다”(욥 20:21)를 의미하는 어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 히브리어 하일은 “군대”와 “전투 부대”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지만(삼둘 8:9; 대첫 20:1), 또한 “능력, 활력, 유능함, 재물, 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첫 9:13; 신 33:11; 잠 31:29; 사 8:4; 겔 28:4) 히브리어 게두드는 “약탈대”나 “부대”를 가리킨다. (삼둘 22:30; 대둘 25:9) 성경에서 군대를 가리키는 그리스어는 네 단어가 있는데, 그중 셋(스트라티아, 스트라튜마, 스트라토페돈)은 그리스어 어근 스트라토스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표현은 기본적으로 전투 대열을 형성한 군대와 대비가 되는, 진을 친 군대를 가리킨다. 페돈(땅)이라는 요소를 함유한 스트라토페돈은 “진을 친 군대”로 적절히 번역되어 있다. (누 21:20) 그리스어 파렘볼레(파라[곁에]와 발로[던지다]에서 파생됨)는 문자적으로 군인들을 전투 대열에 분배하거나 배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군대”나 “병영” 혹은 “진영”을 의미할 수 있다.—히 11:34; 행 21:34; 계 20:9.
아브라함 시대부터,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의 여호와의 종들은 무장을 하고 전투에 참여하였다. 엘람 사람 그돌라오멜과 그의 제휴자들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집안사람들을 끌고 간 후에, 아브라함은 ‘훈련받은 사람들, 곧 종들 삼백십팔 명’으로 구성된 자기의 군대를 소집하여 인접한 동맹자들과 함께 북북동쪽으로 200킬로미터쯤 떨어진 단까지 추격하였다. 이어서 아브라함은 병력을 나누어 야습했는데, 이것은 성서 시대에 반복적으로 사용된 전술이었다.—창 14:13-16.
이스라엘 사람들 그로부터 400여 년 뒤에, 이스라엘 민족은 대단히 급하게, 그러나 잘 조직된 “전투 대형”을 이루며 이집트를 떠났다. 아마도 다섯 부분 즉 본대와 전위대, 후위대 그리고 좌우익 부대로 구성된 군대와 같았을 것이다. (출 6:26; 13:18) 추격하던 이집트 군대는 “선별한 병거 육백 대와 이집트의 다른 모든 병거”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병거에는 보통 세 사람이 탔다. 한 사람은 말을 몰았고 다른 두 사람은 전투를 하였는데, 이 두 사람은 아마도 궁수였을 것이다. 활은 이집트인의 주된 공격용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 뒤를 기병이 따랐다. (출 14:7, 9, 17) 요세푸스에 의하면(「유대 고대사」 Jewish Antiquities, II, 324 [xv, 3]), 히브리 사람들은 “육백 대의 병거에 더하여 5만 명의 기병과 그 수가 20만 명에 달하는 중무장한 보병의 추격을 받았다”고 한다.—부관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유민으로서 최초의 군사적 전투를 하게 되었다. 아말렉 사람들이 시나이 산 지역에 있는 르비딤에서 그들을 공격하였다. 모세의 지시에 따라 여호수아는 급히 전투 부대를 소집하였다. 전투는 그날 내내 계속되었고, 그들이 전술과 관련하여 경험이 없었는데도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다.—출 17:8-14.
이집트에서 나온 지 1년쯤 뒤에, 군 복무 대상자들 즉 20세부터 그 이상인 남자들을 계수하였다. 인구 조사 결과 총 60만 3550명이 계수되었다. (민 1:1-3, 45, 46) 광야 방랑 기간이 끝나 갈 무렵 행해진 비슷한 인구 조사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병력은 60만 1730명으로 약간 감소하였다. (민 26:2, 51) 레위 사람들은 병역에서 면제되었으며, 따라서 이 숫자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별도로 계수되었다.—민 1:47-49; 3:14-39; 26:57, 62.
면제 레위 지파 외에도 다음의 경우는 군 복무에서 면제되었다. (1) “새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사람. (2)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따먹지 못한 사람”. (3)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맞아들이지 못한 사람”. (4) 결혼하는 사람은 “군대에 나가서는 안 되며, ··· 일 년 동안 면제되어 자기 집에 있[어야 한다].” (5) “두려워서 겁을 내는 사람”.—신 20:5-8; 24:5.
가나안 정복 후의 군 편제 모든 지파가 전반적으로 가나안에 다 정착한 후에는 대규모의 상비군을 둘 필요가 거의 없었다. 국경 부근의 작은 충돌은 관련된 그 지방의 지파가 대개 해결하였다. 통합된 대규모 전투 부대를 여러 지파로부터 소집할 필요가 있을 경우, 여호와께서는 재판관들을 일으켜 지휘하게 하셨다. 군대를 동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는데, 나팔 신호나 사자들 혹은 증거물을 보내어 투사들을 분기시켰다.—민 10:9; 판 3:27; 6:35; 19:29; 삼첫 11:7.
전사들은 칼, 장창, 창, 표창, 무릿매, 활, 화살 등의 무기들을 스스로 마련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병사들은 자신이 먹을 양식을 마련할 책임이 있었다. 따라서 이새는 사울의 군대에 있는 자기 아들들에게 식량을 보내 주었다. (삼첫 17:17, 18) 하지만 한번은 지원병들 가운데서 10퍼센트를 따로 세워 그 나머지 사람들을 위하여 식량을 조달하게 하였다.—판 20:10.
이스라엘의 진영에 여호와께서 임재해 계셨기 때문에 군인들은 거룩함과 의식상의 깨끗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신 23:9-14) 율법 아래서 사람이 성 관계를 가지면 다음 날까지 부정했으므로, 다윗과 우리아 두 사람 모두 전시 근무 중에는 신중히 성 관계를 피하였다. (레 15:16-18; 삼첫 21:1-6; 삼둘 11:6-11) 이교 나라들의 군대는 정복한 도시들의 여자들을 강간하기 일쑤였지만, 이스라엘의 승리한 군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달 안에는 포로 신분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신 21:10-13.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승리는 여호와께 달려 있었지만 군대를 잘 지휘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책임은 임명된 관원들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있었다. 제사장들은 병사들을 격려하고 군사 작전의 방향과 목적을 알려 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민 31:6, 14; 신 20:2-4, 9) 재판관들의 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일으키신 재판관이 직접 군대를 인솔하여 전투에 나갔다. 재판관은 전술과 전략을 세우기도 하였다. 자신이 인솔하는 병력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렸는데, 이를테면 부대를 여럿(보통은 세 부대)으로 나누고, 기습 공격을 하고, 매복하고, 정면 공격을 하고, 강의 여울목을 장악하는 일 등을 하였다.—수 8:9-22; 10:9; 11:7; 판 3:28; 4:13, 14; 7:16; 9:43; 12:5.
군주제 아래서 재판관들을 통한 신권적 마련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나라처럼” 되어 자기들 앞에 나가 싸움을 할 왕을 갖기를 원하였다. (삼첫 8:20) 하지만 사무엘은 그들에게 경고하기를, 그러한 왕은 단독으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것으로 삼아 그의 병거에 태우고 그의 마병들 가운데 둘 것이며, 얼마는 그의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삼첫 8:11, 12. 달리는 자 참조) 왕은 최고 사령관이었고, 군대 대장은 권위에 있어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였다.—삼첫 14:50.
사울의 군대의 규모와 병력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였다. 한번은 3000명을 선발하였는데, 그중 1000명은 아들 요나단의 지휘를 받게 하였다. (삼첫 13:2) 또한 33만 명이 소집되어서 큰 공적을 쌓기도 하였다. (삼첫 11:8) 그러나 고도로 기계화된 블레셋 군대와 비교하면 이스라엘이 갖춘 장비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마소라 본문에 따르면,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을 칠 때 3만 대의 병거와 6000명의 마병과 ‘모래알같이 많은 백성’을 소집할 수 있었다. 사울과 요나단을 제외하면, “전투가 있던 날에 ··· 백성 중에 그 누구의 손에도 칼이나 장창이 없었다.”—삼첫 13:5, 22.
다윗의 재위 기간에 이스라엘 군대는 규모와 효율성 면에서 모두 크게 향상되었다. 전쟁을 위해 준비를 갖춘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헤브론으로 와서 사울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주었다. (대첫 12:23-38) 비이스라엘인들도 다윗의 군대에서 복무하였다.—삼둘 15:18; 20:7.
다윗은 이전의 군대 조직 편제를 많은 부분 그대로 따랐다. 예를 들어, 자신은 최고 사령관의 지위를 차지하고, 요압과 아브넬과 아마사 같은 야전 사령관들을 임명하였으며, 또 그들 밑에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두었다. (삼둘 18:1; 왕첫 2:32; 대첫 13:1; 18:15) 그러나 다윗은 독자적인 새로운 편제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각각 2만 4000명으로 구성된 12개의 그룹(합계 28만 8000명)이 매달 교대하는 제도를 도입한 결과, 각 군인은 보통 일 년에 한 달씩만 복무하면 되었다. (대첫 27:1-15) 이것은 한 달간 일하는 2만 4000명 전원이 하나의 지파에서 나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각 지파는 일 년 내내 매달 할당된 몫을 제공하였다.
기병대와 병거대 이동식 발사대인 병거는 그 속도와 기동성 때문에 바빌로니아인들, 아시리아인들,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따라서 병거는 주요 세계 제국들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데 적절하였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군사령관인 다윗의 지휘 아래서 이스라엘의 군대 전체는 손을 사용하는 무기—칼, 창, 활 혹은 무릿매—를 갖춘 보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윗은 틀림없이, 승리를 위해 말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여호와의 교훈을(신 17:16; 20:1), 여호와께서 파라오의 말과 병거를 “바다에 던지셨”음을(출 15:1, 4), 그리고 여호와께서 시스라의 “철낫이 달린 병거 구백 대” 위에 하늘의 수문을 여시어 ‘키손의 급류가 적을 휩쓸어 갔’음을 기억했을 것이다.—판 4:3; 5:21.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사로잡은 말들의 오금줄을 끊고 적의 병거를 불살랐던 것처럼, 다윗도 소바의 왕 하닷에셀에게서 빼앗은 말들에게 똑같은 일을 하였다. 다윗은 소바 왕에게서 빼앗은 많은 말들 가운데서 백 마리만 제외하고는 모든 말의 오금줄을 끊었다. (수 11:6-9; 삼둘 8:4) 한 노래에서 다윗은 자기 적들의 관심사는 병거와 말이지만,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느님의 이름에 관하여 말할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말은 구원에 있어서 속이는 것이[다].” (시 20:7; 33:17) 잠언에서도 이렇게 알려 준다. “전투의 날을 위하여 말을 준비하지만, 구원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잠 21:31.
솔로몬의 통치와 더불어 이스라엘 군대의 연대기에는 새로운 장이 쓰여지게 되었다. 솔로몬의 재위 기간은 비교적 평화로웠지만 솔로몬은 말과 병거를 늘렸다. (병거 참조) 이 말들은 대부분 이집트에서 구입하고 수입한 것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군부대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영토 전역에 대단히 많은 도시들을 세워야 하였다. (왕첫 4:26; 9:19; 10:26, 29; 대둘 1:14-17)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의 이런 새로운 제도를 결코 축복하시지 않았으며, 솔로몬이 죽고 왕국이 분열됨에 따라 이스라엘의 군대도 쇠퇴하게 되었다. 후에 이사야가 이렇게 기록한 바와 같다. “도움을 구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그들은 한낱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수가 많다고 그것을 신뢰하고, 군마가 매우 위력 있다고 그것을 신뢰하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바라보지 않고 여호와를 찾지 않았다.”—사 31:1.
분열된 왕국 시대 왕국이 분열된 후로는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항상 적의가 있었다. (왕첫 12:19, 21) 여로보암이 80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공격하러 왔을 때, 르호보암의 계승자인 아비야의 군대에는 단지 40만 명의 병사만 있었다. 2대 1의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남쪽 왕국은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는 유다 자손이 ··· 여호와께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50만 명의 병사를 잃었다.—대둘 13:3-18.
지파 간의 내부 분쟁에 더하여, 주위에 있는 이교 나라들로부터 오는 외부적인 적대 행위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북쪽에 있는 시리아와 긴장된 외교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상비군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왕둘 13:4-7) 유다도 이교 군대들의 진출에 저항해야 하였다. 한번은 이집트가 유다를 침공하여 많은 전리품을 탈취해 갔다. (왕첫 14:25-27) 또 한번은 100만 명의 병사와 300대의 병거를 거느린 에티오피아의 군대가 유다를 치러 왔다. 아사 왕의 병력은 58만 명밖에 안 되었지만, 아사가 “그의 하느님 여호와께 부르짖”자 “여호와께서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 패하게 하시”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대둘 14:8-13.
또다시, 모압과 암몬과 암모님 사람들이 여호사밧을 대적하여 올라왔을 때 여호사밧은 116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있었지만 “여호와를 찾으려고 그 얼굴을 그분에게로 향하였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 싸움은 너희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심시켜 주셨다. (대둘 17:12-19; 20:1-3, 15) 그때에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일이 있었는데, 훈련받은 합창대가 “무장한 사람들 앞에 나가면서 ‘여호와께 찬양을 드려라’” 하고 노래하였던 것이다. 적군은 혼란에 빠져 서로를 멸망시켰다.—대둘 20:21-23.
로마 군대 로마 군대는 아우구스투스 재위 중에 그 수가 3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전 제국들의 군대와는 조직상 상당히 달랐다. 로마군 편제의 주요 부분은 군단이었다. 군단은 큰 군대에 소속된 특수화된 부분이 아니라 크고 독립된 단위, 곧 그 자체로 완전한 군대였다. 때로는 여러 군단이 하나의 중앙 지휘소 아래 자원과 힘을 합쳐 싸우기도 했는데, 예로서 기원 70년에 네 개의 군단이 티투스의 지휘 아래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한 일이 있다. 그러나 군단은 대개 독립되어 있으면서 별도의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군단병을 보충한 것은 제국 전역에서 온,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아욱실리아(보조군)를 구성한 그들은 흔히 그 지방 출신의 지원병이었다. 군단의 지원을 받는 보조 부대들이 국경선에 배치되었다. 아욱실리아에 속한 병사가 명예 제대하면 로마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군단의 수는 25개 이하에서부터 많게는 33개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달랐다. 그와 비슷하게 군단을 구성하는 군인들의 수도 약 4000명에서 6000명까지 변동을 보였는데, 1세기에는 보통 600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성경에 사용된 “군단”이라는 말은 정해지지 않은 큰 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 26:53; 막 5:9; 누 8:30) 각 군단에는 황제에게만 책임을 지는 군단장이 있었고, 군단장 밑에는 천인대 대장(사령관, 「신세」)이라고 불리는 여섯 명의 군사 호민관이 있었다.—막 6:21; 요 18:12; 행 21:32–23:22; 25:23. 사령관 참조.
군단은 10개 대대, 곧 부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예로서 성경에서는 “이탈리아 부대”와 “아우구스투스 부대”를 언급한다. (행 10:1; 27:1. 아우구스투스 부대 참조) 기원 44년 헤롯 아그리파가 죽을 무렵 카이사레아에는 5개 대대가 있었다. 대대를 더 세분하여, 군단에는 대개 각각 100명으로 이루어진 60개의 백인대(百人隊)가 있었는데, 백인대는 백인대 대장(장교, 「신세」)의 지휘를 받았다. 이 장교들은 특히 귀중한 존재였으며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마 8:5-13; 27:54; 행 10:1; 21:32; 22:25, 26; 23:17, 23; 24:23; 27:1, 6, 11, 31, 43. 장교 참조) 각 군단에는 호위병과 파발꾼으로 일하는, 그리고 때로는 형 집행관으로 일하는 10명의 특별 계급을 가진 장교들이 있었다.—막 6:27.
로마 군단에는 독수리나 다른 동물의 형상이 있는 다양한 기치와 기장이 있었는데, 후에는 그 가운데 황제의 작은 상(像)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군기들은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숭배할 정도로 신성하고 거룩한 것으로 여겨져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켰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로마 군기들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을 격렬히 반대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로 알려진 사람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군단이든 아욱실리아(보조군)이든 로마 군대에서 복무하기를 거부하였으며, 그러한 군 복무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전적으로 상치되는 일로 여겼다. 기원 2세기 사람인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저서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CX)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쟁과 상호 살육과 온갖 악으로 가득했던 우리는 각자 지상 전역에서 자신의 전투용 무기를—칼을 보습으로, 창을 경작용 도구로 바꾸었다.” (「니케아 종교 회의 이전의 교부들」 The Ante-Nicene Fathers, 1권, 254면) 테르툴리아누스(기원 200년경)는 “관(冠)에 관하여”(De Corona, XI)라는 자신의 논문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연 전쟁이 합당한가”를 논하면서 군인으로서의 삶 자체의 비정당성을 성경으로부터 논증하며 이렇게 결론지었다. “나는 우리 가운데서 군인으로서의 삶을 추방한다.”—「니케아 종교 회의 이전의 교부들」 1957년, 3권, 99, 100면.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주의 깊이 검토해 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기원 121-180년] 시대까지는 군인이 된 그리스도인이 없었으며,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계속 군 복무를 한 군인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출현」 The Rise of Christianity, E. W. 반스, 1947년, 333면) “곧 알게 되겠지만, 주후 60년과 165년경 사이에 그리스도인 군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음을 나타내는 증거는 극히 보잘것없다. ··· 적어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 때까지는, 어떤 그리스도인도 침례받은 후에는 군인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초기 교회와 세상」 The Early Church and the World, C. J. 카두, 1955년, 275, 276면) “2세기에 그리스도교는 ··· 군 복무와 그리스도교가 양립할 수 없음을 확인했었다.” (「간추린 로마사」 A Short History of Rome, G. 페레로와 C. 바르바갈로 공저, 1919년, 382면)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은 로마인들과 매우 달랐다. ··· 그리스도가 평화를 전파했기 때문에, 그들은 군인이 되기를 거부했다.” (「시대별로 본 우리의 세계」 Our World Through the Ages, N. 플랫과 M. J. 드러먼드 공저, 1961년, 125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싸우는 것이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심지어 제국에 군인들이 필요한 때에도 군 복무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구세계에 놓인 신세계의 기초」 The New World’s Foundations in the Old, R. 웨스트와 W. M. 웨스트 공저, 1929년, 131면) “그리스도인들은 ··· 공직과 군 복무에서 물러났다.” (「유명한 역사가들이 말하는 대사건들」 The Great Events by Famous Historians에 실린 “갈리아에서의 그리스도인 박해, 주후 177년” 편집 서문, R. 존슨 편, 1905년, 3권, 246면) “그들[그리스도인들]은 무저항 복종의 원칙을 열심히 가르쳤지만 제국의 내정이나 방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일절 거부하였다. ··· 그리스도인들이 군인이나 행정관 혹은 방백의 지위를 맡는다는 것은 더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로마 제국 쇠망사」(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에드워드 기번, 1권, 416면.
하늘 군대 잘 조직된 다수라는 의미에서, 하늘 군대는 물질계의 별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느님의 최고 명령 아래 있는 천사라는 영적 피조물로 구성된 강대한 군대를 가리키는 경우가 흔하다. (창 2:1; 느 9:6)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사무엘 첫째 1:3을 시작으로 히브리어 성경에 283회 나오며, 그리스어 성경에는 그 동의어가 2회 나온다. (로 9:29; 야 5:4. 만군의 여호와 참조) 천사 전사(戰士)들에 관해 언급하면서 “군단”, “병거”, “마병” 등의 군사 용어가 사용된다. (왕둘 2:11, 12; 6:17; 마 26:53) 규모 면에서 여호와의 보이지 않는 군대의 진영에는 “참으로 수만 수천”의 병거가 포함된다. (시 68:17) 그들은 무적의 전투 부대이다. 칼을 뽑아 든 “여호와의 군대의 군왕”은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예리코를 함락시킬 방법에 관한 지시를 하였다. (수 5:13-15) 이 하늘 군대에 속한 한 천사가 하룻밤 사이에 아시리아군 18만 5000명을 살육하였다. (왕둘 19:35)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은 사탄과 그의 악귀들을 지구 근처로 내던졌다. (계 12:7-9, 12) 게다가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왕들의 왕’, ‘주들의 주’”를 따라서 “야수와 땅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들”을 멸망시킬 것이며, 그때에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계 19:14, 16, 19, 21) 그러나 동시에, 여호와의 보이지 않는 이 강대한 군대는 하느님의 충실한 지상 종들을 보호해 준다.—왕둘 6:17; 시 34:7; 91:11; 단 6:22; 마 18:10; 행 12:7-10; 히 1:1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