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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생각”을 알게 됨파수대—2000 |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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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생각”을 알게 됨
“‘누가 여호와의 생각을 알게 되어 그분을 교훈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고린도 첫째 2:16.
1, 2.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예수에 대한 어떤 점을 밝혀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예수의 외모는 어떠하였습니까? 머리카락과 피부와 눈은 무슨 색깔이셨습니까? 키는 얼마나 크셨습니까? 몸무게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오랜 세월 동안 예수를 묘사한 미술품들 가운데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에서부터 전혀 터무니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남자답고 활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나약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묘사한 것들도 있습니다.
2 하지만 성서는 예수의 외모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는 훨씬 더 중요한 것 즉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밝혀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복음서 기록은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무슨 행동을 하셨는지를 알려 줄 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과 행동 이면에 있는 감정의 깊이와 사고 방식도 보여 줍니다. 그 네 개의 영감받은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생각”이라고 언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 첫째 2:16) 우리가 예수의 생각과 감정과 성품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의 생각을 잘 알게 되면 어떤 통찰력을 가질 수 있습니까?
3 첫째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살펴보면 여호와 하느님의 생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매우 잘 알고 계셨으므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들과 또 아들이 계시해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누가 10:22) 그것은 마치 예수께서 ‘여호와께서 어떤 분인지 알고 싶으면 나를 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요한 14:9) 그러므로 예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셨는지에 관해 복음서에서 알려 주는 내용을 연구할 때, 사실상 우리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시는지에 관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식은 우리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 줍니다.—야고보 4:8.
4. 진실로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무엇을 배워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둘째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아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발걸음을 밀접히 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베드로 첫째 2:21) 예수를 따르는 것은 단지 그분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반복하고 그분이 하신 행동을 그대로 모방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말과 행동은 생각과 감정의 영향을 받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그분이 가지셨던 것과 같은 “정신 태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 2:5) 다시 말해서, 진실로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분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음서 필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생각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먼저 예수께서 생각하고 느끼셨던 방식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검토해 볼 것입니다.
인간이 되시기 전
5, 6. (ㄱ) 우리가 교제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ㄴ) 하느님의 맏아들은 땅에 오시기 전에 하늘에서 어떤 교제를 나누셨으며, 그것은 그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5 우리가 친밀하게 교제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좋게든 나쁘게든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a (잠언 13:20) 예수께서 땅에 오시기 전에 하늘에서 나누셨던 교제에 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의 복음서는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 하느님의 “말씀” 곧 대변자로 계셨던 사실에 주의를 이끕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신이셨다. 그분은 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요한 1:1, 2) 여호와는 시작이 없으신 분이므로, 말씀이 “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활동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 90:2) 예수께서는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 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다른 영적 피조물들과 물질적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존재하셨습니다.—골로새 1:15; 계시 3:14.
6 일부 과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물질적 우주는 적어도 120억 년 전부터 존재하였습니다. 그러한 추산이 얼마나 정확하든지 간에, 하느님의 맏아들은 아담이 창조되기 전에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비교 미가 5:2) 그 결과 두 분 사이에는 부드럽고 깊은 유대가 발전하였습니다. 인간이 되시기 전에 이 맏아들은 의인화된 지혜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내가 ··· 날마다 [여호와께서] 각별히 좋아하시는 자가 되어 그분 앞에서 언제나 즐거워하[였다].” (잠언 8:30) 사랑의 근원이신 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면서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을 보낸 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아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요한 첫째 4:8) 이 아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생각과 감정과 길을 더 잘 알고 반영하게 되셨습니다.—마태 11:27.
지상 생애와 주변 환경의 영향
7. 하느님의 맏아들이 땅에 오실 필요가 있었던 이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7 하느님의 아들은 배워야 할 것이 더 있었는데, 여호와의 목적은 그분의 아들이 “우리의 약함을 동정”할 수 있는 동정심 많은 대제사장이 될 준비를 갖추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4:15)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땅에 오신 이유 한 가지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요구 조건에 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께서는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서, 전에는 하늘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환경에 처하게 되셨으며 그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되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인간의 느낌과 감정을 직접 체험하실 수 있었습니다. 때때로 그분은 피곤함과 목마름과 배고픔을 느끼셨습니다. (마태 4:2; 요한 4:6, 7) 더 나아가, 그분은 온갖 형태의 난관과 고난을 인내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순종을 배우셨”으며,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할 자격을 온전히 갖추게 되셨습니다.—히브리 5:8-10.
8. 우리는 예수의 지상 생애 초기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8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 초기에 어떤 경험을 하셨습니까? 그분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은 매우 간략합니다. 사실, 마태와 누가만 그분의 탄생 전후로 있었던 일들을 기술하였습니다. 복음서 필자들은 예수께서 땅에 오시기 전에 하늘에서 사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이 되셨는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분이 인간이 되시기 전에 존재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틀림없는 인간이셨습니다. 완전하기는 하셨지만 그분은 유아기로부터 시작하여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야 하셨으며, 그 기간 내내 배워야 하셨습니다. (누가 2:51, 52) 성서에서는 예수께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그분의 생애 초기에 관한 몇 가지 일들을 알려 줍니다.
9. (ㄱ) 무엇을 볼 때 예수께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까? (ㄴ) 아마도 예수께서는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셨을 것입니까?
9 예수께서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신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지 약 40일 후에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에 가져간 제물을 보면 그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그리고 어린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가져간 것이 아니라,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 중에 어느 한쪽을 가지고 갔습니다. (누가 2:24)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그러한 제물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마련이었습니다. (레위 12:6-8) 세월이 흐르면서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이 가족에게는 식구가 늘었습니다. 기적에 의해 예수께서 태어나신 후에 요셉과 마리아는 정상적인 출산 과정을 통해 적어도 여섯 명의 자녀를 더 두었습니다. (마태 13:55, 5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식구가 많은 가정에서, 아마도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하셨을 것입니다.
10. 무엇을 볼 때 마리아와 요셉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까?
10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부모에 의해 양육되셨으며, 그들은 예수를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는 훌륭한 여성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인사하면서, “크게 은혜받은 자여, 안녕하시오? 여호와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오”라고 말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1:28) 요셉 역시 신심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해마다 요셉은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까지 150킬로미터를 충실하게 여행하였습니다. 남자들만 그렇게 하도록 요구되어 있었지만, 마리아도 함께 갔습니다. (탈출 23:17; 누가 2:41) 그러던 중 한번은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부지런히 찾아 다니다가, 열두 살 된 예수가 성전에서 교사들 가운데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는 염려를 하고 있던 부모에게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을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누가 2:49) “아버지”라는 표현은 어린 예수에게 따뜻하고 긍정적인 느낌을 주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선 예수는 자신의 실제 아버지가 여호와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에 더하여 틀림없이 요셉은 예수에게 좋은 양아버지였을 것입니다. 분명히 여호와께서는 거칠거나 무자비한 남자를 선택하여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양육하도록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1. 예수께서는 무슨 기술을 배우셨으며, 성서 시대에 그러한 직업에 종사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하였습니까?
11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 여러 해를 보내시면서 목공 기술을 배우셨는데, 아마도 양아버지인 요셉에게 배우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기술이 좋으셨으므로, 그 자신이 “목수”라고 불리기도 하셨습니다. (마가 6:3) 성서 시대에 목수들은 집을 짓거나 가구(식탁, 의자, 벤치 따위)를 만들거나 농기구를 제작하는 일에 종사하였습니다. 기원 2세기의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저서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에서 예수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 계시면서 목수 일을 하여 쟁기나 멍에를 만들곤 하셨다.” 그러한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대의 목수들은 목재를 사다가 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직접 가서 나무를 고르고 도끼로 벤 다음, 집에까지 나무를 운반해 와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생활비를 벌고 손님들과 흥정하고 생계를 꾸려 나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12. 무엇을 볼 때 아마도 요셉이 예수보다 먼저 사망하였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이것은 예수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을 것입니까?
12 예수께서는 장남으로서 분명히 가족을 돌보는 일을 도왔을 것입니다. 특히 그렇게 보는 이유는 요셉이 예수보다 먼저 사망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b 「시온의 파수대」 1900년 1월 1일호에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전승에서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요셉은 예수가 아직 어렸을 때 사망하였으며, 예수는 목수 일을 맡아서 가족을 부양하게 되었다. 그 점을 어느 정도 지지해 주는 성경적 증거는, 예수 자신이 목수라고 불렸으며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언급되어 있지만 요셉은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마가 6:3) ··· 그러므로 [누가 2:41-49에 기록된] 사건이 있었던 때부터 그분이 침례를 받으신 때까지 우리 주의 생애 중 18년이라는 긴 기간은 그분이 일반적인 생활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보내셨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예수를 포함하여 마리아와 그의 자녀들은 아마도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버지가 사망함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13. 예수께서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셨을 때, 다른 어떤 인간도 가질 수 없었던 지식과 통찰력과 풍부한 감정을 소유하고 계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분명히 예수께서는 아무 문제 없는 편안한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일반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셨습니다. 이제 기원 29년이 되자, 하느님께서 예수 앞에 임명해 두신 일을 예수께서 수행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해 가을에, 그분은 물침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영적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때 ‘그분에게 하늘이 열’렸는데, 이것은 이제 그분이 과거 하늘에서 가졌던 생각과 감정을 포함하여, 인간이 되시기 전에 하늘에서 누렸던 삶을 다시 회상하실 수 있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3:21, 22) 그러므로 예수께서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셨을 때 그분은 다른 어떤 인간도 가질 수 없었던 지식과 통찰력과 풍부한 감정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복음서 필자들이 그들의 기록의 대부분을 예수의 봉사의 직무에서 있었던 일들에 할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분이 말씀하고 행하신 모든 것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한 21:25)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을 통해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하신 분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예수의 성품
14. 복음서에서는 어떻게 예수를 부드럽고 따뜻하며 감정이 풍부한 사람으로 묘사합니까?
14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성품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감정이 풍부한 한 남자의 성품입니다. 그분은 상당히 폭넓은 감정을 나타내셨습니다.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기셨고(마가 1:40, 41), 반응이 없는 사람들을 보시고는 비탄해하셨으며(누가 19:41, 42), 탐욕스러운 돈 바꿔 주는 사람들에게는 의분을 나타내셨습니다(요한 2:13-17). 감정 이입을 잘 하시는 분이셨던 예수께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으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벗인 나사로가 죽었을 때,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우는 것을 보시고 너무나 감정이 북받쳐서 사람들이 다 보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우셨습니다.—요한 11:32-36.
15. 예수의 부드러운 감정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견해와 그분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신 방법에서 어떻게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까?
15 예수의 부드러운 감정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견해와 그분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신 방법에서 특히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가난하고 압제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나타내셔서, 그들이 “자기 영혼에 새 힘을 얻”도록 도우셨습니다. (마태 11:4, 5, 28-30) 그분은 너무 바빠서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의 필요에 반응을 보이지 못하시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살며시 그분의 옷을 만졌던 출혈 증세로 고생하던 여자에게도, 잠잠히 있으려고 하지 않았던 눈먼 거지에게도 그러하셨습니다. (마태 9:20-22; 마가 10:46-52)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아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경우에는 기꺼이 책망하기도 하셨습니다. (마태 16:23; 요한 1:47; 8:44) 당시는 여자들에게 거의 권리가 없던 시절인데도 예수께서는 균형 잡힌 방식으로 품위 있게 그리고 존중하는 태도로 여자들을 대해 주셨습니다. (요한 4:9, 27) 일단의 여자들이 자기 소유로 기꺼이 그분을 섬겼던 것도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누가 8:3.
16. 예수께서 생활과 물질적인 것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가지고 계셨음을 무엇이 분명히 보여 줍니까?
16 예수께서는 생활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그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질적으로 말하자면, 그분은 가진 것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8:20) 그러면서도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더해 주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결혼 잔치—으레 음악과 노래와 즐거움이 있는 행사—에도 참석하셨는데, 분위기를 깨려고 그 자리에 가신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그 잔치에 가셔서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자 그분은 물을 좋은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는데, 포도주는 “멸성인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음료입니다. (시 104:15; 요한 2:1-11) 그 덕분에 흥겨운 연회가 계속 진행될 수 있었고, 틀림없이 신랑과 신부도 난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균형 잡힌 태도는, 그분이 봉사의 직무를 오랫동안 열심히 수행하셨다고 언급된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에서 한층 더 잘 나타납니다.—요한 4:34.
17. 예수께서 탁월한 선생님이셨던 것이 놀랄 만한 일이 아닌 이유는 무엇이며, 그분의 가르침은 무엇을 반영하였습니까?
17 예수께서는 탁월한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 중 상당수는, 그분이 잘 알고 계셨던 일상 생활의 현실을 반영하였습니다. (마태 13:33; 누가 15:8) 그분이 가르치신 방식은 언제나 명확하고 간명하며 실용적이라서,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보다도 훨씬 더 의미 깊은 것은 그분이 가르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생각과 감정과 길을 알려 주려는 진심 어린 열망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요한 17:6-8.
18, 19. (ㄱ) 예수께서는 어떤 생생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묘사하셨습니까? (ㄴ)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무엇을 살펴볼 것입니까?
18 흔히 예를 사용하셨던 예수께서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밝혀 주셨습니다. 평범한 말로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 설명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그분은 여호와를 용서를 베푸는 아버지에 비하시면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깊이 감동되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부드럽게 입맞추’는 분으로 묘사하셨습니다. (누가 15:11-24) 예수께서는 일반 사람들을 멸시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완고한 문화를 배척하시면서, 자신의 아버지는 자랑하기 좋아하는 바리새인의 과시하는 기도보다 겸손한 세금 징수원의 간구를 더 좋아하시는 접근하기 쉬운 하느님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누가 18:9-14) 예수께서는 여호와를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알고 계시는, 많은 관심을 나타내시는 하느님으로 묘사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제자들을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많은 참새들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마태 10:29, 31)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치는 방법”에 크게 놀라서 그분에게 이끌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마태 7:28, 29) 그래서 한번은 “큰 무리”가 사흘 동안이나 그분 곁에 머물렀는데, 심지어 음식이 다 떨어졌는데도 그렇게 하였습니다!—마가 8:1, 2.
19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각을 밝혀 주신 데 대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대하는 면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분명히 나타낼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그 점을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a 영적 피조물들도 교제를 통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계시록 12:3, 4에 지적되어 있다. 그 구절에서 사탄은 “용”으로 묘사되는데,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하여 다른 “별”들 곧 영자(靈子)들이 그의 반역적인 행로에 가담하게 할 수 있었다.—비교 욥 38:7.
b 요셉이 직접 언급된 마지막 경우는, 열두 살 된 예수를 성전에서 발견한 때이다. 예수께서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셨을 때, 가나의 결혼 잔치에 요셉이 참석했다는 언급은 없다. (요한 2:1-3) 기원 33년에 기둥에 못박히신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돌보도록 맡기셨다. 그때까지 요셉이 살아 있었다면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요한 19:2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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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파수대—2000 |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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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인내와 위로를 주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정신 태도를 여러분이 ··· 갖게 하[시기를 빕니다].”—로마 15:5.
1.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그림들은 예수를 어떻게 묘사하며, 그러한 묘사가 예수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은 웃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대 로마의 관리가 썼다는 허위 주장이 들어 있는 한 문서에서는 예수를 그렇게 묘사합니다. 11세기경부터 지금의 형태로 알려져 있던 그 문서는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a 많은 그림들을 보면, 예수는 웃는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은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묘사는 결코 예수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일 수 없습니다. 복음서에서는 그분을 따뜻하고 마음이 친절하며 감정이 풍부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2.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정신 태도”를 발전시킬 수 있으며,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까?
2 진정으로 예수를 알게 되려면, 분명히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실제로 어떤 사람이셨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가득 채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각”—다시 말해서, 그분의 감정과 지각력과 사고 방식과 추리력—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해 주는 얼마의 복음서 기록들을 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고린도 첫째 2:16)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정신 태도”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겠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로마 15:5)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생활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면에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세워 놓으신 본을 따를 준비를 더 잘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요한 13:15.
접근하기 쉬움
3, 4. (ㄱ) 마가 10:13-16에 나오는 기록의 배경은 어떠합니까? (ㄴ) 어린아이들이 예수께 오는 것을 제자들이 막으려고 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3 사람들은 예수께 마음이 끌렸습니다. 갖가지 상황에서, 나이와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담 없이 그분에게 접근하였습니다. 마가 10:13-16에 기록되어 있는 일을 고려해 봅시다. 그 일은 그분의 봉사의 직무가 끝나 갈 무렵, 그분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되실 예루살렘을 향해 마지막으로 가고 계실 때 있었던 일입니다.—마가 10:32-34.
4 그때의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려 보십시오. 사람들은 유아들을 포함하여 아이들을 데려오기 시작하는데, 예수께서 그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고 그렇게 합니다.b 하지만 제자들은 아이들이 예수께 오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예수께서 틀림없이 그 중대한 몇 주 동안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귀찮게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잘못 생각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아시자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아이들을 자신에게로 부르십니다. “어린아이들을 내게로 오게 하고 그들을 막으려 하지 마십시오.” (마가 10:14) 그리고 나서 그분은 참으로 부드럽고 사랑 넘친 태도를 보여 주는 행동을 하십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분은 아이들을 팔로 안으시고 ··· 축복하셨다.” (마가 10:16) 예수께서 부드럽게 팔로 안아 주시자 분명히 아이들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5. 마가 10:13-16의 기록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이셨는지에 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5 이 간단한 기록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이셨는지에 관해 많은 점을 알려 줍니다. 그분이 접근하기 쉬운 분이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하늘에 계셨을 때 높은 지위에 있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은 불완전한 인간들에게 위압감을 주지도 그들을 업신여기지도 않으셨습니다. (요한 17:5) 아이들조차도 그분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한 번도 미소를 짓거나 웃지 않는 냉정하고 재미없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온갖 연령층의 사람들이 예수께 접근하였는데, 그것은 그분이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 따뜻한 사람임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이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6. 장로들은 어떻게 좀더 접근하기 쉬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6 이 기록을 숙고해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접근하기 쉬운 사람인가?’ 이 위급한 때에, 하느님의 양들에게는 접근하기 쉬운 목자들, “바람을 피하는 피신처”와 같은 남자들이 필요합니다. (이사야 32:1, 2; 디모데 둘째 3:1) 장로 여러분, 여러분이 형제들에 대해 진지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관심을 발전시키고 형제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주려고 한다면, 형제들은 여러분이 자기들에게 관심이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형제들은 여러분의 얼굴 표정을 보고 여러분의 말소리를 듣고 여러분의 친절한 태도를 관찰함으로 그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한 진정한 따뜻함과 관심은 신뢰감이 생기게 해 줄 수 있으며, 그리하여 아이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한 그리스도인 여자는 자기가 한 장로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형제는 부드럽고 동정심 있는 태도로 나에게 말하였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더군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려 깊음
7. (ㄱ)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려 깊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ㄴ) 예수께서 한 눈먼 사람의 시력을 점진적으로 회복시켜 주신 이유는 무엇일 수 있습니까?
7 예수는 사려 깊은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셨습니다. 그분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깊은 동정심을 느끼셨으며, 그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셨습니다. (마태 14:14) 그분은 또한 다른 사람들의 한계와 필요에도 사려 깊으셨습니다. (요한 16:12) 한번은 사람들이 예수께 눈먼 사람을 데려와서는 그를 고쳐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는데, 점진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처음에 그 사람은 단지 흐릿하게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나무 같은 것들이 보이는데 그것들이 걸어다”닌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그의 시력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분이 그 사람을 점진적으로 고쳐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어둠 속에서만 살던 사람이 햇빛과 복잡한 세상을 갑자기 보고 받게 될 충격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마가 8:22-26.
8, 9. (ㄱ)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이 데카폴리스 지역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ㄴ) 예수께서 한 귀먹은 남자를 고쳐 주신 일을 설명해 보십시오.
8 또한 기원 32년 유월절 후에 있었던 일을 고려해 보십시오.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동쪽에 있는 데카폴리스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그곳에서 큰 무리가 예수 일행을 발견하고는, 병들고 장애가 있는 많은 사람들을 예수께 데려왔고, 그분은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마태 15:29, 30) 흥미롭게도 예수께서는 특히 한 남자에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셨습니다. 이 일에 관해 기록한 유일한 사람인 복음서 필자 마가는 그때 있었던 일을 알려 줍니다.—마가 7:31-35.
9 그 남자는 귀먹고 거의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특히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잘 탄다는 것을 감지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다소 이례적인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사람을 무리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몇 가지 몸짓을 사용하여 그분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그 사람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손가락을 그 사람의 두 귀에 넣고 침을 뱉으신 다음 그의 혀를 만지셨”습니다. (마가 7:33)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기도하는 듯 한숨을 쉬셨습니다. 이러한 묘사하는 행동은 그 사람에게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일은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라는 취지를 전달하였을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께서는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 7:34) 그러자 그 사람은 청력이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 11. 회중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사려 깊게 고려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10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참으로 사려 깊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셨으며, 또한 그러한 동정심 있는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훈계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생각을 품고, 동료감을 보이며, 형제 애정을 가지고, 부드러운 동정심을 나타내며, 겸손한 정신을 가지십시오.” (베드로 첫째 3:8) 이 말씀은 분명히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합니다.
11 회중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함으로, 우리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함으로 그들의 감정을 사려 깊게 고려한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마태 7:12) 그렇게 하는 데는 우리가 말하는 내용에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방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포함될 것입니다. (골로새 4:6) ‘생각 없이 하는 말은 칼로 찌르는 것과 같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잠언 12:18) 가족 내에서는 어떠합니까? 서로 진실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합니다. (에베소 5:33) 그러한 남편과 아내는 거친 말이나 가혹한 비평이나 신랄하게 빈정대는 말을 피하는데, 그러한 것들은 모두 쉽게 치료되지 않는 감정적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자녀들 역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이 많은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도 사려 깊게 고려합니다. 시정이 필요할 경우, 그러한 부모들은 자녀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방법으로 그리고 불필요하게 창피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시정을 베풉니다.c (골로새 3:21) 우리가 그처럼 다른 사람을 사려 깊게 고려한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꺼이 신뢰하는 태도
1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 대해 어떤 균형 잡힌 현실적인 견해를 가지고 계셨습니까?
1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 대해 균형 잡힌 현실적인 견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사람의 마음을 읽으실 수 있었습니다. (요한 2:24, 25) 그런데도 그분은 제자들의 불완전성만이 아니라 그들의 좋은 특성들도 보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여호와께서 이끄신 그 사람들의 잠재력을 보셨습니다. (요한 6:44)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긍정적인 견해는 그분이 그들을 대하신 방법에서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일례로, 그분은 그들을 기꺼이 신뢰하는 태도를 나타내셨습니다.
13. 예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을 신뢰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13 예수께서는 그러한 신뢰하는 태도를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그분은 이 땅을 떠나시면서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에게 막중한 책임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손에 전세계의 왕국 권익을 돌볼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마태 25:14, 15; 누가 12:42-44) 그분은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시면서, 사소한 일에서까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제자들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기적으로 음식의 양을 늘려서 무리를 먹이셨을 때, 제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책임을 위임하셨습니다.—마태 14:15-21; 15:32-37.
14. 마가 4:35-41에 나오는 기록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습니까?
14 또한 마가 4:35-41에 나오는 기록도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그때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동쪽으로 건너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이 해변을 떠난 직후에 예수께서는 배 뒤편에 누우셔서 깊은 잠이 드셨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 ‘크고 격렬한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러한 폭풍이 이는 일은 갈릴리 바다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저지대(해수면보다 약 200미터 낮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주위 지역보다 공기가 훨씬 더 따뜻하며, 그로 인해 대기가 불안정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에 더하여 북쪽에 있는 헤르몬 산에서 요르단 골짜기 쪽으로 강한 바람이 몰아칩니다. 잠잠하다가도 한순간 갑자기 맹렬한 폭풍이 불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자라셨으므로, 흔히 있는 그러한 폭풍에 대해 틀림없이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제자들의 기술을 신뢰하고 편히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는 어부도 있었습니다.—마태 4:18, 19.
15. 우리는 제자들을 기꺼이 신뢰하는 예수의 태도를 어떻게 본받을 수 있습니까?
15 우리는 제자들을 기꺼이 신뢰하는 예수의 태도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항상 배의 키를 잡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이 제대로 되게 하려면, 내가 직접 해야 돼!’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직접 해야 한다면, 우리는 지치게 될 위험이 있으며 어쩌면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을 불필요하게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적절한 일과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경험을 쌓고 훈련을 받을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위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정직하게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것임을 신뢰하고 그들에게 얼마의 일을 기꺼이 위임하는가?’
그분은 제자들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셨다
16, 17.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의 마지막 밤에, 사도들이 그분을 버리게 될 것임을 알고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확신을 주는 어떤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16 예수께서는 또 다른 중요한 면으로 제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그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그분이 자신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밤에 사도들에게 하신 확신을 주는 말씀 가운데서 명백히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17 그 저녁은 예수께 매우 분주한 저녁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도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실례를 통해 겸손에 관한 교훈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될 만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그 후 사도들은 자기들 중 누가 가장 크냐 하는 문제를 두고 다시 한 번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몹시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계속 참을성을 나타내시면서 그들과 함께 추리하셨습니다. 그분은 무슨 일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지를 이렇게 알려 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밤에 나와 관련하여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내가 목자를 치겠다. 그러면 양 떼는 흩어질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 26:31; 스가랴 13:7) 그분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벗들이 그분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그분을 버릴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들을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일으킴을 받은 후에, 여러분에 앞서 갈릴리로 가겠습니다.” (마태 26:32)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을 버리더라도 그분이 그들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언하셨습니다. 그러한 혹독한 시련이 지나간 후에 그분은 그들을 다시 만나실 것이었습니다.
18. 갈릴리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슨 중대한 사명을 맡기셨으며, 사도들은 어떻게 그 사명을 철저히 이행하였습니까?
18 예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후에 갈릴리에서,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11명의 충실한 사도에게 나타나셨는데, 아마 그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 28:16, 17; 고린도 첫째 15:6)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중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마태 28:19, 20)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들이 그 사명을 철저히 이행하였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1세기에 사도들은 앞장서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활동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사도 2:41, 42; 4:33; 5:27-32.
19. 예수께서 부활되신 후에 하신 행동들은 그리스도의 생각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19 이러한 의미 깊은 기록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각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서 가장 나쁜 점들까지 보셨지만,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 13:1) 사도들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신이 그들을 믿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의 확신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분이 사도들에게 표현하신 확신과 믿음은 틀림없이 그들을 강화시켜 주어 그분이 그들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수행하려고 결심하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20, 21. 우리는 동료 신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20 우리는 이 면에서 그리스도의 생각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동료 신자들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도록 하십시오. 가장 나쁜 점만 생각한다면, 아마 당신의 말과 행동에 그것이 반영될 것입니다. (누가 6:45) 하지만 성서는 우리에게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고 알려 줍니다. (고린도 첫째 13:7) 사랑은 긍정적이지 부정적이 아닙니다. 사랑은 허물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워 줍니다. 사람들은 위압감을 줄 때보다는 사랑과 격려에 더 쉽게 반응을 보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확신을 표현함으로 그들을 세워 주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5:11)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형제들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형제들을 세워 주는 방식으로 대할 것이며 형제들에게서 최상의 것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21 그리스도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분명히 나타내는 데는 단지 예수께서 하신 특정한 일을 본받는 것만이 아니라 더 많은 점들이 관련됩니다. 앞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진실로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행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분이 보신 것처럼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우리는 그분의 성품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즉 임명받은 일에 대해 그분이 가지셨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그 점을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a 그 위조 문서를 만든 사람은 그 문서에서 예수의 머리카락, 수염, 눈의 색깔을 비롯하여 그분의 외모를 상상한 모습을 묘사한다. 성서 번역자 에드거 J. 굿스피드는 그 위조 문서가 “예수의 외모에 관해 묘사한 화가용 지침서에 들어 있는 내용을 널리 유포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b 아이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던 것 같다. 여기에서 “어린아이들”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야이로의 열두 살 된 딸에게도 사용되고 있다. (마가 5:39, 42; 10:13) 하지만 그와 평행하는 기록에서 누가는 유아들에게도 사용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누가 1:41; 2:12; 18:15.
c 「파수대」 1998년 4월 1일호 “당신은 타인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가?”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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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동하는가?파수대—2000 |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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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동하는가?
“그분은 ···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마가 6:34.
1. 감탄할 만한 훌륭한 특성들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일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역사를 살펴보면 감탄할 만한 훌륭한 특성들을 나타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친절과 관대함을 비롯하여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특성들을 소유하고 계시며 그러한 특성들을 나타내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사랑과 친절과 동정심을 비롯하여 하느님을 닮은 특성들을 어느 정도 나타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 1:26; 로마 2:14, 15) 하지만 당신은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그러한 특성을 더 잘 나타낸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2. 일부 사람들이 자기들이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선행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어쩌면 당신은 병든 사람들을 자주 방문하여 도움을 베풀거나 장애인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베푸는 남녀들에 대해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또한 동정심에서 우러나와 자신의 생애를 바쳐 나환자촌이나 고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병원이나 호스피스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는 사람들이나, 집 없는 사람들이나 난민이 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필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들이 예수를 본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본을 남기셨는데, 복음서를 읽어 보면 그리스도께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신 기록이 나옵니다. (마가 1:34; 8:1-9; 누가 4:40) 예수께서 사랑과 부드러움과 동정심을 나타내신 것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반영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의 아버지를 본받으셨던 것입니다.—고린도 첫째 2:16.
3. 예수께서 하신 선행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갖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까?
3 하지만 예수께서 나타내신 사랑과 동정심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생각의 한 가지 주요 특징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마가 6장을 주의 깊이 살펴보면 그 점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치료를 받게 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자신에게 온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굶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자 기적으로 그들을 먹이셨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마가 6:35-44, 54-56)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고 굶주린 사람을 먹이신 것은 사랑에 찬 동정심을 탁월하게 나타낸 것이었지만, 그것이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을 도우신 주된 방법이었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 여호와를 본받으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께서 세워 놓으신 사랑과 친절과 동정심의 완전한 모범을 어떻게 가장 잘 본받을 수 있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와 영적인 필요에 반응을 보이셨다
4. 마가 6:30-34에 나오는 기록의 배경은 어떠합니까?
4 예수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신 것은 주로 그들의 영적인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인 필요가 가장 중요한 것, 신체적인 필요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마가 6:30-34에 나오는 기록을 고려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기원 32년 유월절이 가까워 올 무렵 갈릴리 바닷가에서 있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은 흥분해 있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넓은 지역을 여행하는 일을 이제 막 마치고 예수께 온 그들은 틀림없이 자기들이 경험한 것들을 그분에게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규모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예수와 사도들은 식사를 할 수도 없었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십시오.” (마가 6:31) 아마도 가버나움 근처에서, 예수와 사도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서 조용한 곳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무리가 해변을 따라 달려가서 배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그분은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당했다고 화를 내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5.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온 무리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으며,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5 예수께서는 병자들을 포함하여 그분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무리를 보시자 마음에 동정심을 느끼셨습니다. (마태 14:14; 마가 6:44) 마가는 예수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무엇이고 그분이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렇게 썼습니다. “그분은 ···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마가 6:34)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단지 하나의 집합적인 무리로 여기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 있는 개개인들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그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거나 보호해 줄 목자도 없이 길을 잃고서 어쩔 줄 모르고 헤매고 있는 양들과 같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냉정한 종교 지도자들이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 목자가 되어야 마땅한데도 실제로는 일반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에스겔 34:2-4; 요한 7:47-49) 예수께서는 그와는 다르게 사람들을 대하시면서,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행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왕국에 관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6, 7. (ㄱ)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사람들의 필요에 반응을 보이신 것과 관련하여 무엇이 우선 순위에 있음을 알려 줍니까? (ㄴ) 예수께서는 무슨 동기로 전파하고 가르치셨습니까?
6 이 기록과 평행하는 다른 기록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일이 일어난 순서와 우선 순위에 관해 시사하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록을 쓴 사람은 누가인데, 그는 의사로서 다른 사람들의 신체적 복지에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무리는 ··· [예수를] 따라왔다. 그분은 그들을 친절하게 맞이하여 하느님의 왕국에 대하여 말씀하기 시작하셨으며, 병 고침이 필요한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누가 9:11; 골로새 4:14) 기적에 관해 상세히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이 경우에 누가가 영감받아 쓴 기록에서는 무엇을 먼저 언급하였습니까?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먼저 언급하였습니다.
7 이 기록은 우리가 마가 6:34에서 살펴본 강조점과 사실상 일치합니다. 그 구절에서는 예수께서 주로 무엇 때문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셨는지를 명확히 보여 줍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에 반응을 나타내셔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봉사의 직무 초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다른 도시들에도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이 일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4:43) 하지만 예수께서 자신이 해야 할 전파 활동을 마지 못해 시늉만 하듯이, 단지 의무감에서 왕국 소식을 선포하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찬 동정심이 그분이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신 주된 동기였습니다. 예수께서 하실 수 있었던 최고의 선행은—심지어 병든 사람들이나 악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굶주린 사람들에게도—사람들이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진리를 알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중심이 되는 중요한 진리였는데, 왕국이 여호와의 주권을 입증하고 인류에게 영구적인 축복을 가져다 주는 일에서 하게 될 역할 때문에 그러하였습니다.
8. 예수께서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8 예수께서 수행하신 활발한 왕국 전파 활동은 그분이 땅에 오신 근본 이유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상 봉사의 직무가 끝나갈 무렵,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내가 세상에 왔으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든지 진리의 편에 있는 사람은 내 음성을 듣습니다.” (요한 18:37) 우리는 앞서 살펴본 두 기사에서, 예수께서 부드러운 감정을 가지신 분—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나타내고, 접근하기 쉽고, 사려 깊고, 남을 신뢰하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사실에 유의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그분의 성품의 그러한 부면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각에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우선 순위에 두는 태도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라고 강력히 권하셨다
9. 누가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였습니까?
9 사랑과 동정심의 표현으로서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은 예수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추종자들에게 그분의 동기와 우선 순위와 행동을 본받으라고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12사도를 선택하신 후에, 그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하였습니까? 마가 3:14, 15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분은 열둘로 된 집단을 구성하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이름지으셨다. 그것은 그들을 자기와 함께 계속 있게 하고, 또 그들을 내보내어 전파하게 하며 악귀들을 쫓아내는 권위를 갖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사도들에게 무엇이 우선 순위에 와야 하였는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10, 11. (ㄱ)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내보내시면서 무슨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ㄴ) 사도들을 내보내신 것과 관련하여,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10 때가 되자 예수께서는 12사도에게 다른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고 악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마태 10:1; 누가 9:1) 그리고 나서 그분은 그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들”에게로 보내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도록 보내셨습니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지시하셨습니다. “가면서 전파하기를 ‘하늘 왕국이 다가왔다’고 하십시오.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죽은 사람들을 일으키며,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하고, 악귀들을 쫓아내십시오.” (마태 10:5-8; 누가 9:2) 사실상 그들은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래서 그들은 떠나가 [1]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전파하였다. 그리고 [2] 많은 악귀들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고쳐 주곤 하였다.”—마가 6:12, 13.
11 가르치는 일이 매번 먼저 언급되는 것은 아니므로, 앞의 문장들을 검토하면서 관련된 우선 순위나 동기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아닙니까? (누가 10:1-9) 하지만 가르치는 일이 병 고치는 일보다 먼저 언급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 경우와 관련된 문맥을 고려해 보도록 하십시오. 예수께서는 12사도를 내보내시기 전에 무리가 처한 상황을 아시고 동정심을 느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로 여행을 떠나시어,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시며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 주셨다. 그분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찢겨지고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때에 그분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그러므로 수확하는 “주인”에게 수확하는 일에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십시오.’”—마태 9:35-38.
12. 예수와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은 어떤 부가적인 목적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까?
12 사도들은 그분과 함께 있음으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이 진실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동정심을 나타내려면 왕국에 관해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은 그들이 하는 선행의 주된 부면이 되어야 하였습니다. 그러한 취지와 일치하게,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는 일과 같이 신체적인 면으로 돕는 훌륭한 일들은 단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 이상의 일을 하였습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병 고침이나 기적으로 마련된 식품 때문에 마음이 끌린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 4:24, 25; 8:16; 9:32, 33; 14:35, 36; 요한 6:26) 하지만 그러한 일들은 신체적으로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러한 일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모세가 예언한 그 “예언자”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요한 6:14; 신명 18:15.
13. 신명기 18:18의 예언은 오게 될 “예언자”의 무슨 역할을 강조하였습니까?
13 예수께서 그 “예언자”였다는 사실이 의미 심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언된 그 예언자의 주된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예언자”는 병 고치는 기적을 행하거나 동정심을 나타내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었습니까? 신명기 18:18의 예언은 이러합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킬 것이다. 내가 진정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넣어 줄 것이니, 그는 정녕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부드러운 감정을 소유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것처럼, 그들 자신의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에도 그리스도의 생각이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행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병든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의 짧은 수명이나 한두 끼의 식사만으로 얻는 한정된 유익이 아니라 영속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요한 6:26-30.
지금 그리스도의 생각을 발전시키라
14.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전파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까?
14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생각을 1세기만의 독특한 것, 다시 말해서 예수와 초기 제자들—사도 바울이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썼던 그 사람들—만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2:16)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제자를 삼을 의무가 있음을 기꺼이 인정할 것입니다. (마태 24:14; 28:19, 20) 그러나 그 일을 하는 우리 자신의 동기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단지 의무감에서 그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가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는 주된 이유이며, 진실로 예수와 같이 되려면 동정심에서 우러나와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마태 22:37-39.
15. 동정심을 가지고 우리의 공개 봉사를 하는 것이 적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사실,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특히 냉담이나 거절이나 반대에 직면할 때—동정심을 느끼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을 상실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동기를 상실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동정심을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보신 것처럼,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찢겨지고 내던져”진 것으로 보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마태 9:36) 그러한 묘사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적절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거짓 종교의 목자들에 의해 소홀히 취급되어 왔으며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성서에 나오는 건전한 지침에 대해서도, 머지않아 하느님의 왕국이 이 땅에 가져올 낙원 상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왕국 희망도 없이, 가난과 가정 불화와 병과 죽음을 비롯하여 일상 생활의 문제들에 직면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하늘에 설립되어 있는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생명을 구하는 좋은 소식입니다!
16. 우리가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16 이처럼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영적 필요에 관해 숙고해 보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사랑에 찬 목적에 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려는 열망으로 당신의 마음이 가득 차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은 동정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느끼신 것처럼 사람들에 대해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의 말소리와 얼굴 표정과 가르치는 방식에 분명히 반영될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의 소식이 “영원한 생명에 합당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욱 호소력이 있는 것이 되게 해 줄 것입니다.—사도 13:48.
17. (ㄱ)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동정심을 나타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ㄴ) 선행을 하는 것과 공개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물론 우리의 사랑과 동정심은 우리의 전체 생활 행로를 통해 분명히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나 병든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친절을 나타내는 것,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우리가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의 슬픔을 덜어 주기 위해 우리의 말과 행실에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포함됩니다. (누가 7:11-15; 요한 11:33-35) 하지만 그러한 사랑과 친절과 동정심을 나타내는 것이 일부 인도주의자들의 경우처럼 우리의 선행의 주된 부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훨씬 더 지속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은, 그와 같이 하느님을 닮은 특성들이 동기가 되어 그리스도인의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에 참여하는 일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노력들입니다. 예수께서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들은 박하와 딜과 쿠민의 십분의 일은 드리지만, 율법의 더 중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무시해 왔기 때문이오. 이것들도 행해야 하지만, 다른 것들도 무시해서는 안 되오.” (마태 23:23) 예수의 경우, 이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신체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든지 아니면 생명을 주는 영적인 것들을 가르치든지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두 가지 일을 모두 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로 인해 그분이 거두게 되는 유익은 영원히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요한 20:16.
18. 그리스도의 생각을 살펴봄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까?
18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의 생각을 우리에게 밝혀 주신 데 대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분의 생각과 감정과 특성과 활동과 우선 순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성서에서 예수에 관해 알려 주는 것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처럼 행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불완전한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사물을 평가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에 더하여 그리스도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분명히 나타내겠다고 결심하도록 합시다. 삶을 영위하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며 사람들을 대하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도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반영하신 분인 부드러우신 우리 하느님 여호와께 가까이 가는 최상의 방법이기도 합니다.—고린도 둘째 1:3; 히브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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