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보십시오! 지금은 특히 받아들일 만한 때입니다. 보십시오!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고린도 둘째 6:2.
1. 하느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승인받은 신분을 누리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여호와께서는 인류를 심판할 날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사도 17:31) 그 날이 우리에게 구원의 날이 되려면, 우리는 그분과 그분이 임명하신 심판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승인받은 신분을 누릴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 5:22) 그러한 신분을 누리려면, 하느님의 말씀과 일치한 행실과 우리를 강요하여 다른 사람들이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되도록 돕게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 인류 세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유전받은 죄 때문에, 인류 세상은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습니다. (로마 5:12; 에베소 4:17, 18) 그러므로 우리가 전파하는 소식을 듣는 사람들은 그분과 화해할 경우에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였을 때 그 점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심판과 하느님과 화해하는 일과 구원에 관해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하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린도 둘째 5:10-6:10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사람들을 계속 설득합니다’
3. 바울은 어떻게 “사람들을 계속 설득”하였으며,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바울은 심판과 전파 활동을 연관짓는 이러한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은 선한 일이든 사악한 일이든 각자가 몸으로 한 일, 곧 자기가 행한 일에 따라, 보응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두려워할 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을 계속 설득합니다.” (고린도 둘째 5:10, 11) 이 사도는 좋은 소식을 전파함으로써 “사람들을 계속 설득”하였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끝이 목전에 다가와 있으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의 호의적인 심판을 받고 구원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느님의 승인을 얻는 데 필요한 단계들을 밟도록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4, 5. (ㄱ) 우리가 여호와의 봉사에서 이룩한 일들에 대해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바울은 어떤 이유로 ‘하느님을 위해’ 자랑하였습니까?
4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의 봉사의 직무를 축복하신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에서 일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긍지로 인해 우쭐해졌으며, 그리하여 회중 내에 분열을 초래하였습니다. (고린도 첫째 1:10-13; 3:3, 4) 바울은 그러한 상황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을 여러분에게 추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에게 우리에 관하여 자랑할 계기를 주어, 마음이 아니라 겉모양을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정신이 나갔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위한 것이며, 정신이 건전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5:12, 13) 그 거만한 사람들은 회중의 연합이나 영적 복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동료 신자들이 하느님 앞에서 좋은 마음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도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겉모양을 자랑하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회중을 책망하였고, 그 편지의 뒷부분에서 “자랑하는 사람은 여호와 안에서 자랑하십시오”라고 썼습니다.—고린도 둘째 10:17.
5 바울 자신도 자랑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이 자신을 사도라고 언급하였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위해’ 자랑해야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도로서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들에 대해 자랑하였는데, 그것은 고린도 사람들이 여호와를 저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짓 사도들이 그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하려고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11:16-21; 12:11, 12, 19-21; 13:10)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이룩한 일들을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이 감명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잠언 21:4.
그리스도의 사랑이 당신을 강요하는가?
6.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합니까?
6 바울은 참된 사도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의 대속 희생에 관해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사랑이 우리에게 강요합니다.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이것이니, 곧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도리어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일으킴을 받으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5:14, 15)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심으로 참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확실히 그 사랑은 우리의 생활에서 강요하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신 예수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우리는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 마련하신 구원에 관한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활동을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 (요한 3:16; 비교 시 96:2)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사랑”이 왕국 전파 활동과 제자를 삼는 일에 열심히 참여하도록 당신을 강요하고 있습니까?—마태 28:19, 20.
7. “아무도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7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위해 해주신 일에 대해 감사를 나타냄으로, ‘더 이상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도리어 그분을 위하여 삽’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육체대로 알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았을지라도, 확실히 지금은 더 이상 그분을 그렇게 알고 있지 않습니다.” (고린도 둘째 5:16) 그리스도인들은 육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평가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방인들보다 유대인들에게 혹은 가난한 사람보다 부유한 사람에게 더 많은 호의를 보임으로써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아무도 육체대로 알지 않”는데, 중요한 것은 동료 신자들과의 영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았”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을 본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메시아를 바라던 일부 사람들 가운데 한때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즉 단순한 인간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람들은 더는 그분을 그렇게 여기지 말아야 하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제공하시고 생명을 주는 영으로 부활되셨던 것입니다. 하늘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육체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본 적이 없으면서도 자신들의 육체를 포기하게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었습니다.—고린도 첫째 15:45, 50; 고린도 둘째 5:1-5.
8.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와 결합”해 있게 되었습니까?
8 계속해서 바울은 기름부음받은 자들에게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결합해 있다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낡은 것은 사라졌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존재합니다.” (고린도 둘째 5:17) “그리스도와 결합”해 있다는 것은 그분과 하나로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17:21) 여호와께서 그 사람을 자신의 아들에게로 이끄셔서 성령으로 태어나게 하셨을 때, 이러한 관계가 그 사람에게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영으로 태어난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할 전망을 가진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요한 3:3-8; 6:44; 갈라디아 4:6, 7) 그러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봉사의 웅대한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9. 하느님께서는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무슨 일을 해 오셨습니까?
9 여호와께서는 “새로운 창조물”들에게 참으로 큰 은혜를 베풀어 오셨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으며, 우리에게 화해의 봉사의 직무를 주셨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으며, 그들의 범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고린도 둘째 5:18, 19) 아담이 죄를 지은 이래, 인류는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게도 솔선하셔서 예수의 희생을 통해 화해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로마 5:6-12.
10. 여호와께서는 화해의 봉사의 직무를 누구에게 맡기셨으며, 그들은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해 왔습니까?
10 여호와께서 기름부음받은 자들에게 화해의 봉사의 직무를 맡기셨으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대사들이며,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간청하고 계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부탁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고린도 둘째 5:20) 고대에 대사들은 전쟁을 막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 주로 파견되었습니다. (누가 14:31, 32) 죄 많은 인류 세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은 자신의 기름부음받은 대사들을 보내셔서 화해하는 데 필요한 그분의 조건들을 사람들에게 알려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이렇게 부탁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이러한 간청은, 하느님과 평화를 추구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하도록 마련하신 구원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자비로운 권고입니다.
11. 대속에 대한 믿음을 통해, 누가 마침내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얻게 됩니까?
11 대속에 대해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 3:36)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죄를 알지 못했던 그분[예수]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5:21) 완전한 사람이셨던 예수께서는 유전받은 죄 상태에서 구출받는 아담의 후손 모두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통하여 “하느님의 의”가 됩니다. 이러한 의 즉 하느님 앞에서의 의로운 신분은, 먼저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들인 14만 4000명이 얻게 됩니다. 그분의 천년 통치 동안에는, 영원한 아버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자녀들이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의로운 신분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온전히 의로운 신분을 얻도록 그들을 끌어 올리실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하느님께 충실함을 증명하고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이사야 9:6; 계시 14:1; 20:4-6, 11-15.
“특히 받아들일 만한 때”
12. 여호와의 대사들과 공사들은 무슨 중요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까?
12 구원받기 위해 우리는 바울이 한 이러한 말과 일치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분[여호와]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또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받아들이고 그 목적에서 빗나가지 마십시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받아들이실 만한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어 주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 주었다.’ 보십시오! 지금은 특히 받아들일 만한 때입니다. 보십시오!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고린도 둘째 6:1, 2)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대사들과 그분의 공사들인 “다른 양들”은 하늘의 아버지의 과분한 친절을 받아들이고 그 목적에서 빗나가지 않습니다. (요한 10:16) 이 “받아들일 만한 때”에 올바른 행실을 하고 열심히 봉사의 직무를 수행함으로, 그들은 하느님의 은혜를 구하며 지상 거민들에게 지금이 “구원의 날”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13. 이사야 49:8의 요지는 무엇이며, 그 말씀이 어떻게 처음으로 성취되었습니까?
13 바울은 이사야 49:8(「신세」 참조)을 인용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선의”]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계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다가 자유롭게 되어 그 후 황폐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성취되었습니다.—이사야 49:3, 9.
14. 이사야 49:8은 예수의 경우에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14 이사야의 예언의 더 큰 성취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인 예수를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할 이방[“사람들”]의 빛’으로 주셨습니다. (이사야 49:6, 8, 「신세」 참조; 비교 이사야 42:1-4, 6, 7; 마태 12:18-21) 예수께서 지상에 계신 동안에는 “선의의 때” 즉 “받아들일 만한 때”가 분명히 그분에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분은 기도하셨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 기간은 예수께 “구원의 날”이 되었는데, 그분이 온전히 충절을 유지하셨고 그리하여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영원한 구원을 책임지게 되셨”기 때문입니다.—히브리 5:7, 9; 요한 12:27, 28.
15. 언제 이후로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받기에 합당함을 증명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해 왔습니까?
15 바울은 이사야 49:8을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면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시는 “받아들일 만한 때”이자 “구원의 날” 동안 그분의 선의를 구하지 않음으로써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의 목적에서 빗나가지 않’게 하라고 간청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보십시오! 지금은 특히 받아들일 만한 때입니다. 보십시오!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고린도 둘째 6:2)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로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받아들일 만한 때”가 자신들에게 “구원의 날”이 되도록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받기에 합당함을 증명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함’
16. 어떤 시련이 되는 상황에서 바울은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하였습니까?
16 고린도 회중과 연합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받기에 합당함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아무 것도 결코 제공”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사도로서의 바울의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바울을 중상하였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하였는데, “많은 인내와 환난과 궁핍한 경우와 어려움과 매질과 감옥과 무질서와 수고와 잠 못자는 밤[으로 그리고] 음식이 없는 때”로 추천하였습니다. (고린도 둘째 6:3-5) 그 편지의 뒷부분에서 바울은 자신의 반대자들이 봉사자라면, 자신은 “더욱 두드러지게 그러”하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더 많은 투옥과 구타와 위험과 궁핍으로 고통을 겪었기 때문입니다.—고린도 둘째 11:23-27.
17. (ㄱ) 우리는 어떤 특성들을 나타냄으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할 수 있습니까? (ㄴ) “의의 무기들”이란 무엇입니까?
17 바울과 그의 동료들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정결”함으로 즉 순결함으로 그리고 정확한 성서 지식과 일치하게 행동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당하거나 화가 나는 일들을 참을성 있게 인내하는 “오래 참음”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친절”로 우리 자신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그에 더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들이고, “위선 없는 사랑”을 나타내며, 진실하게 말하고, 하느님께 의지하여 봉사의 직무를 수행할 힘을 얻음으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바울 역시 “오른손과 왼손에 있는 의의 무기들을 통하여” 봉사자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였습니다. 고대 전쟁에서 오른손으로는 대개 칼을 휘둘렀으며, 왼손으로는 방패를 잡았습니다. 바울은 거짓 선생들을 상대로 영적인 전쟁을 치르면서, 죄 많은 육체의 무기—사기나 속임수나 책략—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둘째 6:6, 7; 11:12-14; 잠언 3:32) 바울은 의로운 “무기들”, 다시 말해서 참 숭배를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들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18. 우리가 하느님의 봉사자라면, 어떻게 처신할 것입니까?
18 우리가 하느님의 봉사자라면, 우리는 바울과 그의 동료 일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의 신분에 맞게 처신할 것입니다. 우리는 존중을 받든지 멸시를 받든지,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할 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비방이 우리의 전파 활동을 중단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좋은 평판을 듣더라도 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말할 것이며, 그리하여 경건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적들의 공격을 받아 극심한 위험에 처할 때, 우리는 여호와를 신뢰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징계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고린도 둘째 6:8, 9.
19. 영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19 화해의 봉사의 직무에 대한 검토를 마치면서,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슬퍼하는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하며, 가난한 것 같으나 많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며,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고린도 둘째 6:10) 그러한 봉사자들은 그들이 겪는 고난 때문에 슬퍼할 이유가 있었는데도, 내적인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하였지만, 영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였습니다. 사실상 그들의 믿음이 그들에게 영적인 부를, 심지어 하느님의 하늘의 아들들이 되는 전망까지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인 봉사자로서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사도 20:35) 그들처럼 우리도 화해의 봉사의 직무에 바로 지금 참여함으로—이 구원의 날에—“많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신뢰하라
20. (ㄱ) 바울은 무엇을 간절히 열망하였으며, 그 당시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가 현재 구원의 날에 살고 있음을 알리는 표는 무엇입니까?
20 바울이 기원 55년경에 고린도 사람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썼을 때, 유대 사물의 제도는 불과 15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사도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 때는 구원의 날이었으며, 낭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도 1914년 이후로 그에 상응하는 사물의 제도의 종결 기간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인 왕국 전파 활동은 지금이 구원의 날임을 알리는 표가 됩니다.
21. (ㄱ) 1999년 연표어로 어떤 말씀이 선택되었습니까? (ㄴ) 이 구원의 날에 우리는 무슨 일을 수행하고 있어야 합니까?
21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는 하느님의 마련에 대해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고린도 둘째 6:2에 나오는 이 말씀은 여호와의 증인의 1999년 연표어가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적절한데, 우리가 예루살렘과 그 성전의 멸망보다 훨씬 더 극심한 멸망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 사물의 제도 전체의 끝이 눈앞에 다가와 있으며, 그 끝은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 행동할 때입니다. 우리가 구원이 여호와께 속해 있다고 믿고, 그분을 사랑하며, 영원한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의 목적에서 빗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여호와께 영예를 돌리기를 원하는 우리는, 우리가 진실로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증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외칩니다. “보십시오!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화해의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는 대사들과 공사들은 누구입니까?
□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할 수 있습니까?
□ 여호와의 증인의 1999년 연표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7면 삽화]
바울처럼 당신도 열심히 전파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돕고 있는가?
미국
프랑스
코트디부아르
[18면 삽화]
이 구원의 날에, 당신은 여호와 하느님과 화해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