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양들을 돌보는 “사람들로 된 선물”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에 포로들을 데려갔고, 그는 사람들로 된 선물을 주었다.”—에베소 4:8.
1. 한 그리스도인 자매는 자기 회중의 장로들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였습니까?
“우리에게 그처럼 많은 관심을 나타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미소와 따뜻함과 관심은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지요. 언제나 귀기울여 들어 주시고 우리의 영을 고무하는 성서 말씀을 들려 주시지요. 제가 여러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기도드립니다.” 한 그리스도인 자매는 자기 회중의 장로들에게 이와 같이 편지하였습니다. 관심을 갖고 돌봐 주는 그리스도인 목자들이 나타낸 사랑이 그 자매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이 분명합니다.—베드로 첫째 5:2, 3.
2, 3. (ㄱ) 이사야 32:1, 2에 의하면, 동정심 있는 장로들은 어떻게 여호와의 양들을 돌봅니까? (ㄴ) 어떻게 할 때 장로는 선물로 여겨질 수 있습니까?
2 장로들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양들을 보살피도록 마련해 주신 사람들입니다. (누가 12:32; 요한 10:16) 여호와의 양들은 그분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사실, 너무나 소중하기에 그분은 예수의 귀중한 피로 그들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이 여호와의 양 무리를 부드럽게 대할 때,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사도 20:28, 29) 이러한 장로들 곧 “방백”들에 관한 다음과 같은 예언적 묘사에 유의하십시오. “그 사람은[“그들 각자는”]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라].” (이사야 32:1, 2, 「신세」 참조)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양들을 보호하고 양들에게 새 힘을 주고 위로를 베풉니다. 이처럼 동정심을 가지고 양 무리를 치는 장로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기대하시는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3 성서에서는 그러한 장로들을 “사람들로 된 선물”이라고 부릅니다. (에베소 4:8) 선물이라고 하면, 어떤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혹은 그것을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주는 물건이 연상될 것입니다. 장로가 필요한 도움을 베풀고 양 무리의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때, 그는 선물로 여겨질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에베소 4:7-16에 나오는 바울의 말 가운데 들어 있는 대답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양들에게 나타내시는 사랑에 찬 관심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줍니다.
“사람들로 된 선물”—어디로부터?
4. 시편 68:18의 성취로, 여호와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며, 누가 “사람들의 형태로 된 선물”이었습니까?
4 바울이 사용한 “사람들로 된 선물”이라는 표현은, 다윗 왕이 여호와에 관해 하였던 이러한 말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시며 포로들을 데려가셨고, 사람들의 형태로 된 선물을 취하[셨습니다].” (시 68:18, 「신세」)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약속의 땅에 거주한 후에, 여호와께서는 상징적으로 시온 산에 “올라가시”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으시고 다윗이 왕으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사람들의 형태로 된 선물”이었습니까? 그 땅을 정복하는 동안 포로로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후에 그 포로들 가운데 일부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서 성막에서 수행하는 일을 돕게 하였습니다.—에스라 8:20.
5. (ㄱ) 바울은 시편 68:18이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어떻게 지적합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습니까?
5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편 필자의 말이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더 크게 성취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바울은 시편 68:18을 풀어 옮겨서 이렇게 씁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에게는, 거저 주는 선물을 그리스도께서 헤아려 주신 대로, 과분한 친절이 베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에 포로들을 데려갔고, 그는 사람들로 된 선물을 주었다.’” (에베소 4:7, 8) 여기에서 바울은 이 시를 하느님의 대표자이신 예수에게 적용합니다. 예수께서는 충실한 행로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요한 16:33) 하느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셨으므로, 그분은 죽음과 사탄에 대해서도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사도 2:24; 히브리 2:14) 기원 33년에,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모든 하늘보다 훨씬 높이”—하늘에 있는 다른 모든 피조물들보다 더 높은 위치로—올라가셨습니다. (에베소 4:9, 10; 빌립보 2:9-11) 이기신 분으로서 예수께서는 적으로부터 “포로들”을 사로잡으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6. 기원 33년 오순절부터,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예수께서는 어떻게 사탄의 집을 탈취하기 시작하셨으며, 그분은 “포로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6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악귀들에게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심으로써 사탄보다 강한 능력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께서 사탄의 집에 침입하여 그를 묶어 놓은 다음 그의 소유물을 빼앗으신 것과 같았습니다. (마태 12:22-29)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받으신 후로는 예수께서 무엇이든 빼앗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태 28:18) 기원 33년 오순절부터,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대표자로서 “포로들”—사탄의 지배 아래서 오랫동안 죄와 죽음의 종 노릇을 해 왔던 사람들—을 ‘데려가심’으로써 사탄의 집을 탈취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한 “포로들”은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영혼을 다하여 하느님의 뜻을 행”하였습니다. (에베소 6:6) 사실상 예수께서는 사탄의 지배에서 그들을 끌어내셔서, 여호와를 대신하여 그들을 “사람들로 된 선물”로 회중에 주셨습니다. 그들이 사탄의 코앞에서 붙잡혀 갈 때, 사탄이 얼마나 절망적인 분노를 느꼈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7. (ㄱ) “사람들로 된 선물”은 회중에서 어떤 자격으로 섬깁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장로로 섬기는 사람들 각자에게 무슨 기회를 주신 것입니까?
7 오늘날 회중에서도 그러한 “사람들로 된 선물”을 볼 수 있습니까?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전역의 8만 7000개가 넘는 하느님의 백성의 회중에서 장로로 섬기면서 ‘복음 전파자와 목자와 가르치는 사람’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 4:11) 장로들이 양 무리를 거칠게 대한다면 사탄은 더없이 좋아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회중에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회중의 복지를 위해 이 사람들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양들에 대해 그분에게 답변할 책임이 있습니다. (히브리 13:17) 당신이 장로로 섬기고 있다면, 당신이 동료 형제들에게 선물 즉 축복이라는 것을 증명할 훌륭한 기회를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입니다. 당신은 네 가지 중요한 책임을 수행함으로써 당신이 선물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바로잡는 일’이 필요할 경우
8.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때때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까?
8 첫째로, “사람들로 된 선물”은 ‘거룩한 자들을 바로잡는 일을 하게 하시려고’ 마련해 주신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에베소 4:12) ‘바로잡는 일’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는 어떤 사물을 “올바로 정렬된 상태로” 조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 모두는 때때로 바로잡을 필요가—우리의 생각과 태도와 행실을 하느님의 생각과 뜻에 맞게 “올바로 정렬된 상태로” 조정할 필요가—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사람들로 된 선물”을 사랑으로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도움을 줍니까?
9. 장로는 잘못을 범한 양을 바로잡기 위해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9 때때로 장로는 잘못을 범한 양을 도와 주라는 요청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양은 어쩌면 ‘미처 알지 못하고 잘못 내디뎠’을지 모릅니다. 그런 경우 장로는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갈라디아 6:1에서는 “그런 사람을 온화한 영으로 바로잡으려고 하”라고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장로는 충고를 베풀 때, 잘못을 범한 사람을 거친 말로 심하게 꾸짖지 않을 것입니다. 충고는 충고받는 사람에게 격려가 되어야지 “겁을 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 둘째 10:9; 비교 욥 33:7, 「신세」 참조) 그 사람은 이미 부끄러워하고 있을지 모르며, 따라서 사랑 많은 목자는 그러한 사람의 영을 억누르는 일을 피합니다. 엄한 책망이라 하더라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 사랑으로 베풀어지는 것이 분명할 때, 그 충고는 잘못을 범한 사람의 생각과 행실을 올바로 조정하여 그를 회복시켜 줄 수 있을 것입니다.—디모데 둘째 4:2.
10. 다른 사람들을 바로잡는 일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10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바로잡기 위해 “사람들로 된 선물”을 마련해 주시면서, 장로들이 영적으로 새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자신의 백성이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고린도 첫째 16:17, 18; 빌립보 3:17) 다른 사람들을 바로잡는 일에는 단지 그릇된 행로를 걷는 사람들을 시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충실한 사람들이 의로운 행로에 고착하도록 돕는 것도 포함됩니다.a 오늘날 낙담하게 하는 문제들이 매우 많으므로, 많은 사람들에게는 계속 견디기 위해 격려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일치하게 생각을 조정하려면 부드러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일부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자격이 없다거나 무가치한 존재라는 강한 느낌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울한 영혼들”은 여호와께서 결코 자신들을 사랑하실 리가 없으며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결코 그분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느낄지 모릅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5:14) 하지만 그런 식의 생각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숭배자들에 대해 실제로 느끼고 계신 것과 조화되지 않습니다.
11. 장로들은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11 장로 여러분,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신다는 성경적 증거를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고, 그 성구들이 그들 자신에게 적용된다는 확신을 심어 주십시오. (누가 12:6, 7, 24)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끌어’ 그분을 섬기게 하셨으므로, 그분이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계심이 분명하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요한 6:44)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충실한 여호와의 종들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고 안심시켜 주십시오. 예언자 엘리야는 한때 몹시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죽고 싶어하였습니다. (열왕 상 19:1-4) 1세기의 일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이 자신을 “정죄”한다고 느꼈습니다. (요한 첫째 3:20) 성서 시대의 충실한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위로가 됩니다. (야고보 5:17) 또한 낙담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파수대」와 「깨어라!」에 실린 격려적인 기사들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다시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 여러분이 기울이는 사랑에 찬 노력은, 여러분을 “사람들로 된 선물”로 주신 하느님의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히브리 6:10.
양 무리를 ‘세워 주는 일’
12.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며, 양 무리를 세워 주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12 둘째로, “사람들로 된 선물”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하게 하려고 주어진 것입니다. (에베소 4:12) 여기에서 바울은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운다’ 혹은 ‘세워 준다’는 표현은 건축하는 일을 연상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은 사람들—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 회중 성원들—을 가리킵니다. (고린도 첫째 12:27; 에베소 5:23, 29, 30) 장로들은 형제들이 영적으로 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장로들의 목적은 양 무리를 “허물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워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10:8) 양 무리를 세워 주는 비결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세워 주’기 때문입니다.—고린도 첫째 8:1.
13.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장로들이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장로들이 양 무리를 세워 주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랑의 한 가지 부면은 감정이입입니다.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그들의 한계를 고려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 첫째 3:8) 장로들이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사람들로 된 선물”을 주시는 분인 여호와께서 감정이입을 하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종들이 고난에 처하거나 고통을 받을 때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끼십니다. (출애굽 3:7; 이사야 63:9) 그분은 사려 깊게 그들의 한계를 고려해 주십니다. (시 103:14) 그러면 장로들은 어떻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습니까?
14. 장로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습니까?
14 장로들은 낙담한 사람이 자신들을 찾아올 때, 귀기울여 듣고 그 사람의 감정을 인정해 줍니다. 장로들은 형제들의 배경과 개성과 환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면, 장로들이 세워 주는 성경적 도움을 베풀 때, 양들이 그러한 도움을 받아들이기가 쉬울 것입니다. 진실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목자들이 베푸는 도움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16:23) 감정이입은 또한 장로들이 다른 사람들의 한계와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감정을 고려해 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노령이나 좋지 못한 건강 상태 때문에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낄지 모릅니다. 한편, 봉사의 직무에서 더 발전하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 5:12; 6:1) 감정이입은 장로들이 다른 사람들을 세워 주는 “기쁨을 주는 말”을 찾게 합니다. (전도 12:10, 「신세」 참조) 세움을 받고 의욕을 갖도록 고무받을 때, 여호와의 양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동기로 그분을 섬기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연합을 증진시키는 사람들
15. ‘믿음에 있어서 일치하게’ 된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5 셋째로, “사람들로 된 선물”은 “우리 모두가 믿음과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정확한 지식에 있어서 일치하게” 되도록 마련된 것입니다. (에베소 4:13) ‘믿음에 있어서 일치하게’ 된다는 표현은, 단지 신앙의 연합만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 사이의 연합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사람들로 된 선물”을 주신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분의 백성 사이에 연합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연합을 증진시킵니까?
16. 장로들 사이에 연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먼저, 장로들 사이에 연합을 유지해야 합니다. 목자들이 분열되면, 양들이 소홀히 취급되어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양 무리를 치는 일에 바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긴 모임과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빼앗길지 모릅니다. (디모데 첫째 2:8) 토의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장로들의 의견이 저절로 일치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로들 각자는 매우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합되어야 한다는 것은 장로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없다거나 심지어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토의 중에 균형 잡힌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장로들은 선입견 없이 존중심 있는 태도로 서로 잘 들음으로써 연합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성서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장로들 각자는 장로의 회에서 내린 최종 결정에 기꺼이 승복하고 그 결정을 지지해야 합니다. 양보하고 승복하는 태도는 그들이 “평화를 이루고, 합리적”인 “위에서 오는 지혜”의 인도를 받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야고보 3:17, 18.
17. 장로들은 회중 내에서 연합을 유지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17 장로들은 또한 회중 내에서 연합을 증진시키기 위해 깨어 살핍니다. 해로운 남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동기를 의심하려는 경향이나 경쟁적인 영과 같은 분열시키는 영향력이 평화를 위협할 때, 장로들은 즉시 도움이 되는 교훈을 베풉니다. (빌립보 2:2, 3) 예를 들어, 장로들은 지나치게 비평적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여 여기저기 간섭하고 다니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디모데 첫째 5:13; 베드로 첫째 4:15) 장로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도와서, 그런 행동 방식은 우리가 하느님께 가르침받은 것과 상반되며 각자가 ‘자기 자신의 짐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갈라디아 6:5, 7; 데살로니가 첫째 4:9-12) 장로들은 성경을 사용하여, 여호와께서 많은 것들을 우리 각자의 양심에 맡겨 두시며 따라서 우리 중 아무도 그러한 문제로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명해 줄 것입니다. (마태 7:1, 2; 야고보 4:10-12) 연합하여 함께 섬기려면, 회중 내에 신뢰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로 된 선물”은 필요할 경우 성경적인 교훈을 베풀어 우리가 평화와 연합을 유지하도록 돕습니다.—로마 14:19.
양 무리를 보호하는 일
18, 19. (ㄱ) “사람들로 된 선물”은 누구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줍니까? (ㄴ) 양들은 다른 무슨 위험들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으며, 장로들은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합니까?
18 넷째로,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책략에 의해서 그리고 잘못된 일을 꾀하는 교활함에 의해서 ··· 가르침의 온갖 풍조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로 된 선물”을 마련해 주십니다. (에베소 4:14) “책략”에 해당하는 원어는 “주사위 놀이에서 속임수를 쓰는 것” 혹은 “주사위를 다루는 기술”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배교자들이 얼마나 교활한 수를 쓰는지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지 않습니까? 배교자들은 그럴듯한 논증을 사용하면서, 참 그리스도인들을 유인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하려고 성경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장로들은 그러한 “압제적인 이리들”을 잘 살펴야 합니다!—사도 20:29, 30.
19 여호와의 양들은 다른 위험들로부터도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에 목자였던 다윗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아버지의 양 떼를 포식 동물들로부터 보호하였습니다. (사무엘 상 17:34-36) 오늘날에도, 여호와의 양들 특히 더 허약한 양들을 학대하거나 압제하려고 하는 자들로부터 양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양들을 염려하는 그리스도인 목자들이 담대함을 나타내야 할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장로들은 악을 행하려고 의도적으로 책략과 속임수와 계책을 사용하는 고의적인 죄인들을 회중에서 신속히 제거할 것입니다.b—고린도 첫째 5:9-13; 비교 시 101:7.
20. 우리가 “사람들로 된 선물”의 돌봄 가운데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우리는 “사람들로 된 선물”에 대해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들의 사랑에 찬 돌봄 가운데 우리는 안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부드럽게 우리를 바로잡아 주고, 사랑으로 세워 주며, 기꺼이 우리의 연합을 유지시켜 주고, 담대하게 우리를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로 된 선물”은 회중에서 자신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어떻게 여겨야 합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그러한 질문들을 검토할 것입니다.
[각주]
a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바로잡다’로 번역된 이 동사를 시편 17[16]:5(「신세」 참조)에서도 사용하였다. 그 구절에서 충실한 다윗은 자기의 발걸음이 여호와의 길에 고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b 예를 들어, 「파수대」(영문) 1979년 11월 15일호 31-2면 “독자로부터의 질문”과 「파수대」 1997년 1월 1일호 26-9면 “악한 것을 몹시 싫어하자” 기사 참조.
기억하십니까?
□ “사람들로 된 선물”이란 누구이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러한 선물을 회중에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장로들은 양 무리를 바로잡는 책임을 어떻게 수행합니까?
□ 장로들은 동료 신자들을 세워 주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 장로들은 어떻게 회중의 연합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10면 삽화]
감정이입은 장로들이 낙담한 사람들을 격려하는 데 도움이 된다
[10면 삽화]
장로들 사이의 연합은 회중 내의 연합을 증진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