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여호와의 승인을 받는 자가 될 것인가?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오. 여러분 속에서 활동하셔서 자기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여러분에게 의욕을 일으켜 일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립보 2:12, 13, 새번역.
1, 2. 예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승인을 받았다는 선언을 들으셨으며, 이 사실이 왜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까?
때는 역사의 전환점이었읍니다. 침례자 요한은 하나님의 소식을 전파하였고 회개한 사람들에게 물에서 침례를 베풀고 있었읍니다. 그러던 중에 요한이 의인이라고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다가왔읍니다. 그는 예수였읍니다. 그분은 회개할 필요가 있는 죄가 전혀 없는 분이었읍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침례를 베풀 것을 요구하셨읍니다.—마태 3:1-15.
2 요한이 겸허하게 순응한 후에, 예수께서는 물에서 나오시면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는 것을 보셨읍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읍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내가 그를 승인하였다, 신세] 하시니라.” (마태 3:16, 17; 마가 1:11) 얼마나 놀라운 발표였읍니까! 우리 모두는 우리가 존경하는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를 원합니다. (사도 6:3-6; 16:1, 2; 빌립보 2:19-22; 마태 25:21)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일 당신에게 ‘내가 너를 승인하였다!’라고 발표하신다면, 당신이 어떻게 느끼겠는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3. 하나님의 승인과 관련하여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3 오늘날 사람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자가 되는 일이 가능합니까? 예를 들어,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로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다. (에베소 2:12; 4:18) 이 사람은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여호와의 승인을 받은 축복된 상태로 옮겨질 수 있읍니까? 만일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어떻게? 그 점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분의 말씀의 뜻은 무엇이었는가?
4. (ㄱ)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승인하였다”라는 말의 희랍어 단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ㄴ) 이 경우에 그 단어의 사용이 특별히 흥미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내가 [예수를] 승인하였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복음서 기록은 희랍어 동사 유도케오를 사용합니다. (마태 3:17, 신세; 마가 1:11, 신세; 누가 3:22, 신세) 유도케오는 “대단히 기뻐하다, 호의적으로 고려하다, 기꺼워하다”를 의미하며 그 명사형은 “선의, 기쁨, 호의, 소원, 욕망”의 뜻을 가지고 있읍니다. 유도케오는 하나님의 승인에만 국한하여 쓰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마게도냐의 그리스도인들은 재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기뻐’하였읍니다. (로마 10:1; 15:26; 고린도 후 5:8; 데살로니가 전 2:8; 3:1) 그러나 예수께서 받으신 승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표현하신 것이었읍니다. 이 단어는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만 예수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읍니다. (마태 17:5; 베드로 후 1:17) 흥미롭게도, 누가 복음 2:52(새번역)에서는 예수께서 침례받지 않은 소년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의 “총애”를 받았음을 말하면서, 카리스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합니다.
5. (ㄱ) 불완전한 인간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수 있음을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읍니까? (ㄴ) “선의자들”은 누구입니까?
5 우리와 같이 불완전한 인간들 역시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일이 가능합니까? 다행히도 그 대답은 가능하다 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은 이렇게 발표했읍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선의자들, 신세, 유도키아스] 중에 평화로다.” (누가 2:14) 천사들은 문자적 희랍어로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사람들’에게 다가올 축복을 노래한 것이었읍니다.a 한스 비에텐하르트 교수는 여기서 엔 안드로포이스 유도키아스를 사용한 것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선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높고 은혜로운 뜻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뜻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구원받도록 사람들을 선택한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이 오랫동안 설명해 온 바와 같이 누가 복음 2:14은 헌신과 침례를 통하여 불완전한 인간들도 선의자들이 되는 것,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가능함을 알려 줍니다!b
6. 하나님의 승인에 관하여 우리는 아직도 무엇을 배워 알 필요가 있읍니까?
6 한편, 우리는 ‘악한 행실로 인해 마음으로 하나님의 원수된 것’과 공의로우시고 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과 연합한 자로서 승인을 받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골로새 1:21; 시 15:1-5)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듣고 안도감을 가질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는 데는 무엇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알기 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과거에 사람들을 대하신 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읍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환영하셨다
7. 출애굽기 12:38은 하나님의 태도와 관련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7 누가 복음 2:14의 발표가 있기 여러 세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와서 숭배하는 것을 환영하셨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헌신한 이스라엘 민족만을 전적으로 대하셨읍니다. (출애굽 19:5-8; 31:16, 17)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나왔을 때 “중다한 잡족[이] ··· 그들과 함께 하였”던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출애굽 12:38) 아마도 하나님의 백성과 가까이 지낸 일이 있었고 애굽에서의 재앙을 목격한 바 있었을 이들 비이스라엘인들은 이제 이스라엘과 함께 가는 길을 택하였읍니다. 일부는 아마도 온전한 개종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8. 어떠한 두 종류의 외국인들이 이스라엘에 거주하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대하는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율법 언약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분의 백성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비이스라엘인들의 상황을 인정하였읍니다. 일부 외국인들은 단순히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정착자들이었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살인을 금하고 안식일을 준수할 것이 요구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법에 순종해야 하였읍니다. (느헤미야 13:16-21) 이스라엘 사람은 이러한 정착자들을 형제들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대화할 때나 그들을 대할 때 이치적인 조심성을 발휘하였읍니다. 그들은 아직 하나님의 민족의 일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사람은 저절로 죽은 동물로서 피를 빼지 않은 것을 사먹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개종자들이 아닌 그러한 외국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읍니다. (신명 14:21; 에스겔 4:14)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외국인 정착자들의 일부는 할례받은 개종자가 된 다른 외국인들의 행로를 따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만 그들은 참 숭배에 있어서 형제들로서의 대우를 받았으며 전체 율법을 지킬 책임을 갖게 되었읍니다. (레위 16:29; 17:10; 19:33, 34; 24:22) 모압 여인인 룻과 아람의 문둥병자인 나아만은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 비이스라엘인들이었읍니다.—마태 1:5; 누가 4:27.
9. 솔로몬은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어떻게 확증하였읍니까?
9 솔로몬 왕 시대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비이스라엘인들에 대하여 환영하는 태도를 가지셨음을 보게 됩니다. 성전 낙성식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소서.]” (열왕 상 8:41-43)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찾는 진실한 이방인들의 기도를 환영하셨읍니다. 아마 이들도 또한 그분의 법을 배우고 할례를 받아 여호와의 축복받은 백성 중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10. 유대인들은 에디오피아 내시를 어떻게 대하였을 것이며, 할례가 그에게 유익하였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후에 이렇게 한 사람으로서 멀리 떨어진 곳인 에디오피아의 간다게 여왕의 재정관이 있었읍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 유대인과 그들의 숭배에 관하여 들었을 때 그의 생활 방식 혹은 종교적인 방식은 여호와께 가납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들 사이에 있는 이 이방인이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배우기 위하여 율법을 공부할 때 얼마의 관용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틀림없이 발전하였고 할례를 받을 자격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변화를 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행전 8:27은 그가 “예배” 곧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왔”었다고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출애굽 12:48, 49) 이것은 그때 그가 온전한 개종자였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읍니다. 따라서 그는 메시야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침례받은 제자가 될 입장에 있었으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점진적인 뜻과 조화하게 되었읍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그리스도인 회중
11, 12. (ㄱ) 에디오피아인이 침례를 받았을 때 무슨 변화가 더 일어났읍니까? (ㄴ) 이 사실은 어떻게 빌립보서 2:12, 13의 내용과 일치하였읍니까?
11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사람들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시오.” (마태 28:19, 20, 신세) 방금 언급한 에디오피아 개종자는 이미 여호와와 성령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빌립이 그에게 예수께서 하나님의 메시야 아들이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도움을 베풀자 그는 침례를 받을 수 있었읍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호와의 백성의 승인받은 성원이 되었읍니다. 그는 당연히 하나님 앞에 책임을 갖게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명령된 모든 것들을 지킬’ 것이 요구되었읍니다. 그러나 이 책임과 함께 놀라운 전망 곧 구원도 있게 되었읍니다!
12 나중에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 나’갈 필요가 있음을 편지하였읍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읍니다. “여러분 속에서 활동하셔서 자기의 기뻐하시는[유도키아스] 뜻을 따라 여러분에게 의욕을 일으켜 일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립보 2:12, 13, 새번역.
13. 그리스도인들은 에디오피아 내시와는 달리 신속히 침례를 받으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였읍니까?
13 참 그리스도인들과 접촉하게 된 사람들 모두가 이 에디오피아 사람처럼 침례받을 준비와 자격을 위하여 신속히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개종자가 아닌 일부 사람들은 여호와와 그분의 길에 대한 지식이 매우 희박하거나 전혀 없었으며, 그들의 도덕관은 여호와의 표준을 지침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들을 어떻게 대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본을 따라야 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죄를 격려하거나 심지어 묵인하시는 일조차 없었읍니다. (요한 5:14)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자신에게 가까이 와서 그들의 방식을 하나님의 방식과 일치시키기를 원하는 죄인들에 대하여 관용을 베푸셨읍니다.—누가 15:1-7.
14, 15.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 외에도 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고린도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그들의 영적 발전 상태는 어떻게 다양하였을 것입니까?
14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는 사람들에게 관용으로 대하였다는 사실을, 고린도에서 열린 집회들에 관하여 바울이 한 말을 볼 때 분명히 알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초기 표징으로서 영의 기적의 선물을 사용하는 문제에 관해 논하면서 바울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언급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4:22) “믿는 자들”이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었읍니다. (사도 8:13; 16:31-34)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사도 18:8.
15 고린도 전서 14:24(신세)에 의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보통 사람들’이 또한 고린도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환영을 받았읍니다.c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적용하는 면에서 그들의 발전 상태는 다양하였을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죄를 범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어느 정도 믿음을 가졌고, 자신들의 생활에서 이미 얼마의 변화를 하였으며 심지어 침례를 받기 전에도 자신들이 배운 것을 말하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16. 그러한 사람들은 회중 집회에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참석함으로써 어떠한 유익을 얻을 수 있었읍니까?
16 물론, 침례받지 않은 그러한 사람들은 아무도 “주 안에” 있지 않았읍니다. (고린도 전 7:39) 만일 그들이 과거에 심각한 도덕적, 영적 결함에 관련되어 있었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표준에 순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선 당분간 그들이 악의적으로 회중의 믿음과 깨끗함을 파괴하려고 하지 않는 한, 그들은 환영을 받았읍니다. 그들이 집회에서 보고 들은 것이 ‘그 마음의 숨은 일을 드러나게’ 함으로써 ‘그들을 책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14:23-25; 고린도 후 6:14.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승인받은 상태에 머무는 일
17. 누가 복음 2:14은 제 1세기에 어떠한 성취가 있었읍니까?
17 제 1세기에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공개적 전파를 통하여 아주 많은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들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이 들은 것에 믿음을 두었고 그들의 과거 행로를 회개하였으며, 침례를 받음으로 ‘구원을 위하여 공개적 선포’를 하였읍니다. (로마 10:10-15, 신세; 사도 2:41-44; 5:14; 골로새 1:23) 그 당시 침례받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승인을 받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성령으로 기름부으셨고 그들을 영적 아들들로 입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그 기쁘신[유도키안]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느니라.]” (에베소 1:5) 따라서 예수께서 출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예고한 것 곧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선의자들, 신세, 또는 하나님의 승인을 받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선언이 바로 그 세기 내에 참됨이 증명되기 시작하였읍니다.—누가 2:14.
18.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승인받은 신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없었읍니까?
18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의자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였읍니다. (빌립보 2:12, 새번역)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읍니다. 그들은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죄를 짓게 하려는 유혹과 압력을 직면해야 하였읍니다. 만일 그들이 죄를 범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승인을 상실할 것이었읍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시게도 영적 목자들을 마련하여 회중을 돕고 보호하게 하셨읍니다.—베드로 전 5:2, 3.
19, 20. 하나님께서는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하나님의 승인받은 종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떠한 마련을 하셨읍니까?
19 그러한 회중 장로들은 다음과 같은 바울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야 하였읍니다.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를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영적 자격을 가진 여러분은 온유한 영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려고 하십시오. 여러분 각자도 유혹을 받을까 두려우므로 자신을 계속 살펴야 합니다.” (갈라디아 6:1, 신세)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침례라는 중요한 단계를 밟은 사람은 더 큰 책임을 갖게 되었읍니다. 마치 이스라엘에서 할례받은 개종자가 된 외국인의 경우에 그러했던 바와 같았읍니다. 그렇지만, 만약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이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는 회중 내에서 인자한 도움을 발견할 수 있었읍니다.
20 회중의 일단의 장로들은 심각한 죄를 범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었읍니다. 유다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유다 22, 23) 이러한 방법으로 도움을 받은 회중의 침례받은 성원은 여호와의 승인과 예수의 탄생시에 천사들이 말한 평화를 계속 즐길 수 있었읍니다.
21, 22. 회개하지 않는 죄인의 결과는 어떠할 것이며, 충성스러운 회중 성원들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였읍니까?
21 흔한 일은 아니지만, 범죄자가 회개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읍니다. 그런 경우 장로들은 깨끗한 회중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를 추방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그런 일이 부도덕한 관계를 계속 가진 고린도의 한 침례받은 사람에게 일어났었읍니다. 바울은 회중에게 이렇게 충고하였읍니다.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린도 전 5:9-11.
22 이 고린도 사람은 이미 침례라는 중요한 단계를 밟고, 하나님의 승인을 받은, 회중의 한 성원이었으므로 그가 추방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었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와 계속 사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됨을 알려 주었읍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승인된 신분을 배척하였기 때문입니다. (비교 요한 2서 10, 11.) 베드로는 그러한 추방된 자들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간다 하는] ···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베드로 후 2:21, 22.
23. 제 1세기에, 하나님의 승인을 간직하는 면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적인 상황은 어떠하였읍니까?
23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그러한 자들을 더는 승인받은 자로 보실 수 없었읍니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은 범죄자로 추방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0:38; 비교 고린도 전 10:5.) 제명된 사람들은 분명히 소수였읍니다. 대부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얻고 ‘그 기쁘신 뜻대로 아들들이 되’어 충실히 머물렀읍니다.—에베소 1:2, 5, 8-10.
24. 이 제목의 어떤 면들을 더 고려할 만합니까?
24 그 점은 우리 시대에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오늘날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자들이 되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그들이 그러한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 그들을 돕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다음 기사가 그러한 문제들을 다룰 것입니다.
[각주]
a 조지 스원역 「신약」의 “그분이 승인하시는 사람들(men-whom-he-approves)”과 「개역 표준역」의 “그분이 기뻐하시는 사람들(men with whom he is pleased)” 비교.
b 참조 「파수대」 1965년 1월 1일호 10-13면.
c “ἄπιστος(아피스토스, “믿지 아니하는 자”)와 ιδιώτης(이디오테스, ‘이해력이 없는 사람,’ ‘묻는 사람’)는 모두 그리스도 교회의 구원받은 자들과 대조를 이루는 믿지 않는 자들에 속한다.”—「해설자의 성서 주석」(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제 10권 275면.
기억하십니까?
◻ 성경에 의하면, 언제부터 무슨 방법으로 인간들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읍니까?
◻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는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는 어떠하였으며,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심성과 관용에 있어서 균형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 고린도에서 열린 그리스도인 집회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참석하였던 사실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까?
◻ 하나님께서는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승인받은 종으로서 머물러 있도록 돕기 위하여 어떠한 마련을 하셨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