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 3:17.
1, 2. (ㄱ) 성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무슨 간단한 진리를 가르칩니까? (ㄴ)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들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0세 때 물에 잠기심으로써 침례를 받으셨읍니다.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이러한 소리가 들렸읍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태 3:17) 그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읍니다. 또 다른 경우에,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소리”를 내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한 12:28.
2 이러한 기록을 볼 때, 어린이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가 별개의 두 개체인 아버지와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 사이의 관계임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진리를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들은 부인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면서, 성령이 세째 위인 삼위일체 신의 둘째 위라고 주장합니다.
3. 삼위일체 교리에 관해 혼란이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3 그러한 가르침은 그리스도교국 종교들의 교인들 사이에서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였으며, 그것이 「신 가톨릭 백과사전」이 삼위일체를 신비라고 부른 한 가지 이유입니다. 참으로, 그 가르침은 교직자들 사이에서조차 혼란을 야기하는데, 동 백과사전에서 또한 이렇게 지적하는 것을 볼 때 그 점을 알 수 있읍니다. “로마 가톨릭 신학교에서 삼위일체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러면 어떤 식으로 삼위일체를 설교하면 좋은가?’라는 질문을 받고 한두 차례 곤혹을 치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이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혼란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느끼는 그에 못지 않은 비슷한 혼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4.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교회들의 공식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4 그처럼 혼란을 주는 교리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종교들의 중심 신앙입니다.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삼위일체란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를 알리는 데 사용되는 용어다. ··· 따라서 아타나시오스 신경에 의하면 이러하다. ‘성부도 신이시며, 성자도 신이시며, 성신도 신이시다. 그러나 세 신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신이 계시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의 여호와의 증인이 관련된 한 소송 사건에서 그리스 정교회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교리로서 ··· 종파나 교의에 관계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고백하는 신앙은, ··· 하나님이 세 위로 이루어진 분이라는 삼위일체 신앙이다.” 그리스 정교회는 또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가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그 교회는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이단이라고 하였읍니다.
5, 6. 이 문제에 관한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이 “기본적”인 삼위일체 가르침이 사실이 아니고 거짓이라면, 상황은 그 반대일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 가르침을 배척할 것입니다. 그 가르침에 고착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교로부터 배교한 사람일 것입니다. 후자의 사람들에게는 무슨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곧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성서의 마지막 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러한 기록을 읽게 됩니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시 1:1; 22:15, 사체로는 본지에서.
6 이 문제의 중요성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삼위일체 개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왜 시작되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 배후에는 과연 누가 있읍니까? 현대 성서 학자들은 삼위일체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읍니까? 그러나 이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하나님 자신의 영감받은 말씀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좀더 조사해 보도록 합시다.—디모데 후 3:16, 17.
‘아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다
7. 편파적인 생각 없이 성서를 연구한다면 예수에 관해 무엇을 알게 됩니까?
7 예수께서는 자신이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 적이 결코 없었읍니다. 삼위일체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전혀 편파적인 생각 없이 성서를 읽는다면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 복음 3:16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느니라.]” (사체로는 본지에서.) 바로 다음 다음 절에서, 예수께서는 또다시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3:18) 유대인들이 예수가 신성 모독죄를 지었다고 비난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 보내신 자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말을 가지고 어찌하여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요한 10:36, 새번역)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들 하나님’이라고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읍니다.
8. 백부장 및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증언하였읍니까?
8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곁에 서 있던 로마 군인들까지도 예수가 하나님이 아님을 알았읍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태 27:54) 그들은 ‘이는 하나님이었다’라거나 ‘이는 아들 하나님이었다’라고 말하지 않았읍니다.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쳤지 인간의 형태를 취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9, 10. 하나님과 예수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무슨 강력한 증언이 복음서들에 나와 있읍니까?
9 성서 필자 마태가 예수께서 침례받으셨을 때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친히 예수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임을 증언하셨읍니다. (마태 3:17) 다른 성서 필자들도 동일한 점을 지적하였읍니다. 마가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가 1:11) 누가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 3:22) 그리고 예수에게 침례를 베푼 침례자 요한은 이렇게 증언하였읍니다. “[내가] 그[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요한 1:3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네 복음서 필자 모두가 그리고 침례자 요한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께서 변형되셨을 때, 그와 비슷한 이러한 일이 있었읍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하나님의 목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시니라.]”—누가 9:35.
10 이러한 기록들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곧 자신의 아들이고 자신이 자신을 보낸 것이며 자신이 자신을 기뻐한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읍니까? 그런 것이 아니었읍니다.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도록 독립된 개체인 자신의 아들 예수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희랍어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예수를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아들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단 한번도 볼 수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읍니다. 그 두분은 별개의 두 인격체이시며, 어떠한 신학적 “신비”도 그러한 진리를 변경시킬 수 없읍니다.
아버지는 아들보다 우월하다
11.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자기보다 우월하신 분임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11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으며 모든 면에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음을 알고 계셨읍니다. 그분은 자신이 사랑받는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가진 아들임을 아셨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재삼 재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읍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요한 5:19)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니라.]” (요한 6:38)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한 7:16) “나는 [하나님을]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요한 7:29) 보내는 일을 한 분이 더 우월한 분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는 보다 못한 자 곧 종입니다. 하나님은 보내신 분입니다. 예수는 보냄을 받은 분입니다. 그 두분이 동일한 분일 수 없읍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표현하신 바와 같습니다.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라.]”—요한 13:16.
12. 예수가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는 위치에 있음을 무슨 예가 분명히 알려 줍니까?
12 이 점은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한 예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타국에 간 포도원 주인에 비하셨읍니다. 농부들은 분명히 유대교 교직자들을 상징하였을 것입니다. 때가 되어, 주인은 포도원의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그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읍니다. 그래서 주인은 두번째 종을 보냈고, 똑같은 일이 벌어졌읍니다. 주인은 세번째 종을 보냈고, 그 종도 동일한 대우를 받았읍니다. 그러자 주인(하나님)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예수]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그러나 그 부패한 농부들은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라고 말하며 그 아들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읍니다. (누가 20:9-16) 또다시, 이 예를 통해 예수가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는 분 곧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아버지에 의해 보냄을 받은 분임을 분명히 알 수 있읍니다.
13. 무슨 분명한 성서 기록을 볼 때 하나님이 예수보다 더 우월한 분임을 알 수 있읍니까?
13 예수께서는 친히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28) 우리는 예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관한 진리를 분명히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하나님이 예수보다 우월한 분임을 알았기 때문에 ‘아들[예수] 자신도 하나님에게 복종케 되리라’고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5:28) 이 점이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고린도 전서 11:3에 나오는 바울의 말에 더욱 분명히 나타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자신보다 더 우월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요한 20:17.
14. 무슨 다른 성구들을 볼 때, 예수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읍니까?
14 두 제자의 어머니가 예수께서 왕국에 들어가시면 자신의 아들들을 그분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우월성을 언급하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마태 20:23) 만일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었다면, 주는 일은 그분에게 속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에게 속한 일이 아니었읍니다. 주는 일은 그분의 아버지께 속한 일이었읍니다. 그와 비슷하게, 예수께서는 이 사물의 제도의 끝에 관한 예언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 13:32) 만일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었다면, 그분은 그 날과 그 때를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모든 것을 아는 하나님이 아니었으므로 모르셨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아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었읍니다.
15. 예수께서는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하나님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15 예수께서는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기도하시는 가운데 자신이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이렇게 나타내셨읍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누가 22:42)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기도하신 것이었읍니까? 자신에게 한 것이었읍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자신의 아버지께 기도하고 계신 것이었읍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에 그 점이 분명히 나타나 있읍니다. 그후 예수께서는 죽으시면서 이렇게 부르짖으셨읍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가 15:34)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부르짖으신 것이었읍니까? 자신에게 한 것이었읍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자신의 아버지께 부르짖으신 것이었읍니다.
16.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어떻게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일 수 없었음을 알려 줍니까?
16 예수께서는 죽으신 후에 약 삼일 동안 무덤에 계셨읍니다. 예수를 부활시킨 분은 누구였읍니까? 예수는 죽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부활시킬 수 없었읍니다. 그리고 만일 예수께서 실제로 죽지 않았다면, 그분은 아담의 죄를 위한 속가를 치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실제로 죽었으며, 따라서 약 삼일 동안 존재하지 않으셨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를 부활시킨 분이 누구인지에 관해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풀어 그를 부활시키셨읍니다.” (사도 2:24, 신세) 더 우월하신 분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보다 못한 자인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셨읍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죽은 자로부터 부활시키셨을 때, 누가 더 우월하였읍니까? 예수께서 더 우월하였읍니다. 그분이 나사로를 죽은 자로부터 돌아올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 11:41-44)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읍니다. 하나님이 더 우월하였읍니다. 그분이 예수를 죽은 자로부터 돌아올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7. 예수께서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다른 무슨 증거가 있읍니까?
17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 될 수 없었읍니다. 하나님께 창조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벤저민 윌슨의 「엠파틱 다이아글롯역」 묵시록(계시록) 3장 14절의 번역을 유의하도록 하십시오. “아멘이요 충실하고 참된 증인[예수]이요 하나님의 창조물의 시작이 이러한 것들을 말한다.” 그와 비슷하게, 골로새서 1:15, 16(신세)은 예수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 태어난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들과 땅 위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 ···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자신의 아들을 직접 창조하신 다음, “그분에 의해서” 혹은 “그분을 통해서” 다른 것들을 창조하셨읍니다. 마치 숙련된 기술자가 어떤 훈련받은 고용인을 시켜서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에 의해서” 창조된 그러한 것들 가운데 예수 자신은 포함되지 않았읍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처음 태어난 분,” 즉 “독생자”라고 불립니다. 어떤 아들이 처음 태어난 유일한 아들일 때, 그것은 결코 그 아들이 아버지와 같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별개의 두 인격이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령—인격체인가, 활동력인가?
18. 성령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18 삼위일체의 세째 위로 간주되는 성령이 능력, 품성, 영원성에 있어서 아버지 및 아들과 동등하다고 하는 말은 어떠합니까? 성서 어디에도 성령이 하나님 및 그리스도와 동등한 것으로 함께 언급되어 있는 곳은 없읍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침례받으셨을 때, 마가 복음 1:10은 성령이 인간 형태로가 아니라 “비둘기 같이” 예수에게 내려왔다고 알려 줍니다. 성령은 예수에게 임한 어떤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력이었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러한 능력이 예수께서 아픈 사람들을 고치고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킬 수 있게 해주었읍니다. 누가 복음 5:17이 이렇게 알려 주는 바와 같습니다. “병을 고치는 주[하나님]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하더라.” 그후 오순절에, 사도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었읍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어떤 “신격”의 일부가 되었읍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보통 인간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았을 뿐입니다.
19. 성령이 삼위일체 신의 세째 위 혹은 인격체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그 동일한 활동력이 에베소서 5:18에 언급되어 있는데, 그 구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교훈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사도 행전 7:55은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예수의 추종자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읍니다. (사도 2:4) 사람이 다른 인격체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읍니까? 그럴 수 없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는 있읍니다. 그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힘과 동일한 힘입니다. 창세기 1:2(신세)이 이렇게 알려 주는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활동력은 물의 표면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20. 스데반은 삼위일체가 진리가 아님을 더욱 증명하는 무슨 환상을 보았읍니까?
20 예수께서 부활되신 후에, 스데반은 하늘에 관한 환상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읍니다. (사도 7:55) 그러므로, 독립된 두 인격체가 하늘에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었읍니다. 곧 (1) 하나님과 (2)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이 환상에서 성령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읍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신의 세째 위 혹은 인격체가 결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활동력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독립된 존재가 아니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데반은 세 인격체가 아니라 두 인격체만 보았던 것입니다.
21, 22. (ㄱ) 한 종교 백과사전은 성령에 관하여 어떤 점을 인정합니까? (ㄴ) 다음 기사에서는 어떤 점들을 다룰 것입니까?
21 성령에 관하여, 「신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렇게 인정합니다. “구약에서는 분명히, 엄밀히 철학적인 의미로도 셈어의 의미로도 하나님의 영을 한 위 혹은 한 인격체로 나타내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일 뿐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과 구별되는 존재로 묘사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야훼의 호흡이 겉으로 보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백과사전은 또한 이렇게 기술합니다. “신약의 대부분의 성구들은 하나님의 영을 어떤 인물이 아니라, 어떤 것으로 나타낸다. 특히 그 사실을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능력이 대응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22 이 모든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교국의 이 “기본적”인 삼위일체 교리는 사실일 수 없읍니다.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 그러한 주장을 반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은 인자하신 아버지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 곧 기꺼이 죽기까지 순종할 정도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임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성구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기사에서 그러한 성구들 몇 가지를 검토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교리가 그리스도교국의 그처럼 중요한 부분이 된 이유와 이 교리의 기원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입니다.
어떻게 대답하겠읍니까?
◻ 성서는 하나님과 예수에 관해 무엇이라고 가르칩니까?
◻ 성경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어떻게 알려 줍니까?
◻ 하나님이 예수보다 우월하신 분임을 알려 주는 성구들로서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 왜 성령은 삼위일체 신의 일부일 수 없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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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라고 선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