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우리의 힘
“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라.]”—이사야 12:2, 난외주 참조.
1. (ㄱ) 여호와의 증인이 그처럼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행해 오신 일을 이사야 12:2에서는 어떻게 표현합니까?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십니까? 그곳에서 보는 사람들은 누구와도 전혀 다른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누구며, 이들이 그처럼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친백성이며, 우리가 다른 이유는 모든 이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 곧 우리 주위 우주에 있는 온갖 경이로운 것들을 만드신 영광스러운 창조주의 이름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창조주의 이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즐거이 모여 하나님께서 그분의 조직을 통해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가장 좋은 영적 양식을 함께 섭취합니다. (누가 12:42)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고, 이사야 12장 2절의 말씀에 나오는 그 비길 데 없는 이름을 칭송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신뢰, 신세]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야 여호와, 난외주]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시련들을 이기게 해주셨읍니다. 이제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이 매우 가까와 오고 있으며, 이것 역시 야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읍니다!
2. (ㄱ) “야 여호와”라는 표현은 성서에 몇번 나오며, 어디에 나옵니까? (ㄴ) 이사야 12:2에 나오는 “노래”에 해당하는 다른 표현은 무엇이며, 그러한 표현들 역시 적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이름이 두번 겹쳐 있는 “야 여호와”라는 이 표현은 성서에 두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방금 인용한 성귀와 이사야 26:4에만 나옵니다. 심지어 「제임스 왕역」의 번역자들까지도 그 표현을 “주 여호와”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읍니다.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난외주에 따르면, 이사야 12:2에 나오는 “노래”에 해당하는 다른 표현은 “곡조,” 혹은 “찬양”입니다. 여호와를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활기 찬 힘을 공급해 주시는, 전능하신 야 여호와께서 우리의 찬양의 노래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사실은 진정 참됩니다!—이사야 40:28-31.
3. (ㄱ) 야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위한 길을 열어 놓으셨으며,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하셨읍니까? (ㄴ) 로마서 11:33-36에서 바울이 한 말은 여호와의 증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3 여호와의 능력은 그분의 지혜, 공의, 사랑으로 균형을 이룹니다. 이같은 자신의 특성을 나타내시면서, 야 여호와께서는 예수의 대속 희생을 근거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길을 열어 놓으셨읍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찬사를 발하였읍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여호와, 신세]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로마 11:33-36)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주권자이신 주, 야 여호와께 온전한 확신을 두고 그분을 신뢰하겠다고 선언하고 또 그분께 굳게 고착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일입니다!—비교 히브리 3:14.
4. (ㄱ) 왜 예언자 이사야에게는 ‘내가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고 선언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읍니까? (ㄴ) 현 20세기에 왜 여호와의 백성에게는 야 여호와를 신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읍니까?
4 이사야가 ‘내가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고 선언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그 예언자는 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취하시는 행동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앗수르와 오만한 왕 산헤립을 꺾으심으로써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을 목격하였읍니다. 단 하룻밤 사이에,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내신 단 한 천사에 의해 앗수르 군사 185,000명이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같은 놀라운 구원이 있게 된 것은, 바로 히스기야 왕과 유다의 모든 사람들이 야 여호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이사야 37:6, 7, 21, 36-38) 현 20세기에도 여호와께서는 압제, 금지령, 박해, 강제 수용소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구출해 오셨읍니다. 이사야 시대에 자만심에 가득 찼던 앗수르 사람들처럼, 나치 통치자 아돌프 히틀러는 여호와의 증인에게 악담을 퍼부었으며, 한번은 “이 종족을 독일에서 멸종시켜 버리겠다!”고 소리지르기까지 하였읍니다. 그러나 멸종된 것은 바로 히틀러와 그의 나치당이었읍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신뢰하였던 소수의 독일 증인은 현재 121,200명 이상으로 증가하였읍니다!—시 27:1, 2; 로마 8:31, 37.
5. 이사야 12:3-5의 말은 오늘날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5 여호와를 신뢰하는 백성은 박해가 어느 방향에서 닥치든지, 생명을 주는 진리의 물을 마심으로써 새 힘을 얻고 강화됩니다. 바로 이사야 12:3-5에 있는 하나님의 예언자의 다음과 같은 말과 같습니다.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찌어다.” 우리는 계속해서 왕국 진리를 깊이 들이마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이름을 드높이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순조로운 시기에도 곤란한 시기에도 긴급하게 말씀을 전파’합시다. (디모데 후 4:2, 신세) 반대자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야 여호와께서는 인자하게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
6, 7. (ㄱ) 이사야 25:1과 일치하게,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무슨 일로 인해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ㄴ) 이사야 25:2, 3은 한 특정한 성읍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ㄷ) 그 예언자는 어느 성읍을 가리키는 것이었을 것이며,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이제 이사야 25장을 펴봅시다. 1절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신뢰받으실 만하게, 신세] 행하셨음이라.” 여호와를 신뢰하는 숭배자들은 그분이 자기들 중에서 행하신 기사, 곧 놀라운 일들로 인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사야는 완전히 대조가 되는 내용을 이끌어 내어, 여호와께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견고한 성읍으로 황무케 하시며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영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여호와]를 경외하리이다.”—이사야 25:2, 3.
7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이 포학한 나라의 성읍은 무엇입니까? 아마 이사야는 항상 하나님의 백성의 적이었던 모압의 수도 아르를 가리킨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의 문맥은 사단의 조직의 또 다른 가지인—대적(大敵) 바벨론에 더 부합되는 것 같습니다. 때가 되면 바벨론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황폐시키고, 여호와의 숭배의 집을 파괴하고, 그 백성 중의 생존자들을 포로로 잡아갈 것이었읍니다. 이사야는 바벨론 왕이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자랑한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바사의 고레스를 일으켜 바벨론을 베어 쓰러뜨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회복시키실 것이었읍니다. 예언된 대로, 고대 바벨론이 있던 장소는 오늘날 “무더기”에 불과하며 “황무케” 되고 말았읍니다.—이사야 14:12-14; 13:17-22.
8, 9. (ㄱ)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다른 무슨 바벨론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은 어떻게 발전하여 그것이 되었읍니까? (ㄴ) 이사야는 그 바벨론을 어떻게 묘사하며, 그러한 묘사가 적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8 그러나, 바벨론이 전복된 지 2,5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여전히 또 다른 바벨론 곧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큰 바벨론’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계시 17:5) 그 큰 바벨론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입니다. 그 바벨론은 노아 시대의 홍수 직후, 니므롯이 최초의 바벨론을 건축하여 그것이 분파를 일으키는 거짓 종교의 요람이 되었을 때 시작되었읍니다. 예수와 사도들이 그리스도교를 설립한 후에, 배교자들은 이교적이고 바벨론적인 “귀신의 가르침”을 들여옴으로써 성서 진리를 더럽혔으며,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제도가 싹트게 되었읍니다. (디모데 전 4:1) 이 모조 그리스도교가, 땅에 널리 퍼져 인류의 모든 민족에게 이른 “큰 바벨론”의 주요 부분이 되었읍니다. 이사야는 큰 바벨론을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라고 묘사합니다.
9 4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최초의 바벨론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잔인한 독재자들은 평민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일에 포학한 교직자들을 앞잡이로 사용해 왔읍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였읍니다. (전도 8:9)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그러한 거짓 종교 목자들 때문에 “고생하며 유리”하는 일로 인해 연민의 정을 느끼셨읍니다. 오늘날의 “불법의 사람”으로 밝혀진,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자만심에 가득 찬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을 반대하고 박해하는 데 앞장 서 왔읍니다.—마태 9:36; 데살로니가 후 2:3, 4.
10. (ㄱ) 이사야 25:3과 일치하게,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은 어떤 면에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까? (ㄴ) 이사야 25:4, 5에서, 이사야는 여호와에 관해 말하면서 “빈궁한 자”와 “포학자”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10 여호와께서는 1919년에 자신의 참다운 백성을 “큰 바벨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읍니다. 그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숭배자들이 힘차게 활동하도록 회복시키시면서 이루신 “기사,” 곧 놀라운 일들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는 면에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거짓 종교인들은 또한 그들 앞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를 예감하면서 여호와를 경외, 즉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여러 세기 동안 포학한 교직자들은 평신도들 위에 군림해 왔읍니다. 그러나 이제 이사야는 여호와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외인의 훤화를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리움 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이사야 25:4, 5.
“바벨론”에서는 즐거운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11. “큰 바벨론”의 영역 전체에서 즐거운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 점이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범종교 회합에서 어떻게 예시되었읍니까?
11 오늘날 “큰 바벨론”의 영역 전체에 바로 그러한 상황이 존재합니다. 그곳에서는 즐거운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없읍니다. 그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숭배해야 할 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고 있읍니다. 1986년 10월 27일에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범종교 회합에서 이 점이 분명하게 증명되었읍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국제 연합이 제정한 국제 평화의 해와 관련하여 “큰 바벨론”의 주요 종교 지도자들을 그곳에 모이게 했읍니다. 그들은 모두 평화를 위해 기도하였으며, 일부 불교 승려들이 12시간 동안이나 기도한 날도 있었읍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에게 기도하였읍니까? 마리아에게 기도하였읍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교국의 성삼위일체 신에게 기도하였읍니까? 아니면 힌두교의 삼신에게? 아니면 수천에 달하는 불교의 신에게? 아니면 알라에게? 아니면 신도(神道) 신자들이 숭배하는 하등 동물인 여우에게 기도하였읍니까? 아니면 가장 가납될 만한 기도는 크로 족에 속한 한 아메리칸 인디언의 기도였읍니까? 보도된 바에 따르면, 그는 ‘위엄있는 머리 장식을 한 화려한 치장을 하고서,’ 평화의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는 “담배 연기가 향 연기처럼 차가운 공기 속으로 올라갈 때 그 연기에” 자기 기도를 말했다고 합니다.
12. 그 종교인들은 미가와 이사야가 한 어떠한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까?
12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불교의 달라이 라마승에서부터 그리스 정교회의 “예하”(猊下) 메소디우스에 이르기까지 그 종교인들 중 누구도 미가 4:5에 나오는 성서의 말씀, 곧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라는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사야가 영감을 받아 이사야 42장 5절과 8절에 기록한 다음과 같은 진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13. 아시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은 무엇이며,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이런 일을 정죄하는 무슨 말씀을 하셨읍니까?
13 아시시에서의 화려한 의식, 특이한 복장 그리고 장황하게 늘어놓은 기도는 사람들에게 크게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여호와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바로 그런 일을 정죄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직선적으로 말씀하셨읍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위선자인, 새번역]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 23:5, 13; 또한 마태 6:1-8 참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나 숭배 장소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로, 새번역] 예배할찌니라.”—요한 4:21, 24.
평화의 참다운 근원
14. (ㄱ) 평화를 위한 세계의 종교들의 기도가 위선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리스도교국의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입니까?
14 세계 종교들의 혼란을 생각해 볼 때, 그 종교 지도자들의 기도가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있겠읍니까? 종교 지도자들은 위선적인 기도를 수백년 동안이나 해왔으며, 동시에 나라들의 전쟁, 십자군 전쟁, 악명 높은 박해에 온전히 참여해 왔읍니다. 여호와의 예언자는 이렇게 의문을 제기합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13:23) “큰 바벨론”—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특히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는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부족함이 뵈인 애처로운 상태가 되었읍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멸망되게 되어 있읍니다!—예레미야 2:34, 35, 37; 5:29-31; 다니엘 5:27.
15. 여호와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실 것이며,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평화의 대의에 기여합니까?
15 “평화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유혈죄를 지은 모든 자들을 없애시고 참으로 진리와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땅을 채우심으로써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실 것입니다. (빌립보 4:9, 신세) 다윗 왕이 한 말에 따르면, 바로 “여호와를 의뢰[신뢰, 신세]하여 선을 행”하는 온유한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평화, 신세]으로 즐”길 것입니다. (시 37:3, 11) ‘여호와를 항상 신뢰하여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서로 상반되는 신들, 우상들, 형상들에게 뒤섞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결코 이룰 수 없는 방법으로 평화의 대의에 기여합니다.—시 115:2-8; 이사야 44:14-20.
16.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으로부터 나와서 모아지고 있는 온유한 사람들을 위해 여호와께서는 무슨 연회를 준비하고 계십니까?
16 하나님의 친백성의 기도 및 희망은 “큰 바벨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기도 및 희망과 참으로 큰 대조를 이룹니다!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실 것에 대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사야 25:5) 그러나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으로부터 나와서 모아지고 있는 온유한 사람들에 관해 말하면서, 계속해서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25:6) 오늘날 여호와를 숭배하게 되는 사람들이 즐기는 영적 잔치는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연회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여호와께서 새 땅에 대해 약속하신 좋은 것들로 연회가 베풀어지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우리가 여호와를 열심히 섬길 때 우리의 마음은 강화되어 견딜 힘을 얻고 우리의 즐거움은 넘치게 됩니다.—시 104:1, 14, 15; 마태 19:28.
17. 여호와께서는 무슨 “기사”를 행하실 것이며, 그 결과 무슨 즐거운 일들이 있을 것입니까?
17 조만간 야 여호와께서는 “큰 바벨론”만이 아니라 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를 덮고 있는 단죄의 “휘장”까지도 없애는 “기사,” 곧 놀라운 일들을 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25:7) 그렇습니다. 예수의 희생을 근거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25:8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성취시키실 것입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아담으로 인한 죄와 사망이 제거되는 것을 보는 것과,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의 손아귀에서 돌아올 때 환영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읍니까!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들이 대 비방자 사단 마귀에게 완전한 대답을 제시하였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얼마나 기쁘겠읍니까! (잠언 27:11) 이제는 증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충절에 있어서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성실하고 신뢰받으실 만하게,’ 예언된 일들 곧 “옛적의 정하신 뜻”을 친히 수행하실 것입니다. 온 땅은 의로운 백성으로 가득 찬 의로운 낙원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웅대한 전망입니까!
18. 압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사야 25:9과 일치하게 무슨 결심을 해야 합니까?
18 우리가 이 어두운 시대가 지나갈 때까지 여호와를 항상 신뢰한다면 확실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가족을 부양할 때, 혹은 학교에서 성서 원칙에 고착할 때, 혹은 어려운 구역에서 증거할 때—어떤 압력과 싸워야 하든지 간에, 여호와를 항상 신뢰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기도를 들으시는 주”이신 여호와와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시 65:2) 그러므로, 이사야 25:9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머무르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합시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복습 질문
◻ 야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힘이시며 우리의 노래이십니까?
◻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란 무엇입니까?
◻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은 어떤 면에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까?
◻ “큰 바벨론”에서는 즐거운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무슨 증거가 있읍니까?
◻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 앞으로 무슨 “기사”를 행하실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