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찌어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평화, 신세]이 있을찌어다 [하시더라.]”—요한 20:19.
1. 세계 평화를 가져오려는 인간의 노력이 실패하게 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 (요한 1서 5:19) 요한의 시대에도 그러하였지만, 개인에 대한 폭력, 테러 행위, 전쟁 그리고 부패가 놀랄 정도로 증가하는 오늘날에는 분명히 더욱더 그러합니다. 요한의 영감받은 말은 또한 교황과 나라의 지도자들과 UN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노력으로는 세계 평화를 달성할 희망이 전혀 없음을 알려 줍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평화, 신세]이 없다 하셨느니라.”—이사야 57:21.
2. “평화”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특히 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희랍어에는 어떤 의미가 있읍니까?
2 그러나, “평화”라는 단어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할 수 있읍니다. 평화는 또한 “불안해 하거나 억누르는 생각 혹은 감정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적 혹은 영적 상태: 정신과 마음의 평온한 상태”일 수 있읍니다. 그러나, “평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샬롬)와 희랍어 단어(에이레네)는 훨씬 더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그 단어들은 또한 헤어지면서 하는 말인 “평안히 가라”에서와 같이 안녕(安寧)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무엘 상 1:17; 29:7; 누가 7:50; 8:48) 이 점은 우리가,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충격적인 기간 중에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사랑에 찬 관심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3. 예수께서는 부활되신 후에 제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어떻게 나타내셨으며, 그것은 어떤 영향을 주었읍니까?
3 예수께서는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금요일에 죽으셨읍니다. 그리고 니산월 16일, 일요일에 부활되셨읍니다. 늘 그랬듯이,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안녕에 깊은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에, 부활되시자 제자들을 찾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어디에서 그들을 찾게 되셨읍니까?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아 걸고 있었읍니다. 그들이 불안해 하고 두려워한 것도 당연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평화]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20:19-21, 26) 그후에, 성령을 통해 힘을 얻은 제자들은 잘 해나갈 수 있었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파 임명에 담대하게 착수하여, 많은 사람이 경건한 평화를 얻도록 도왔읍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경건한 평화
4. 여호와의 백성은 이 위험한 때에 어떻게 정신과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읍니까?
4 우리는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인 마지막 때에 살고 있읍니다. (디모데 후 3:1, 신세) 「계시록」에 예언된 말탄 자들이 온 땅을 마구 달리고 있으며—전쟁, 식량 부족, 병으로 인한 사망을 볼 때 우리는 그 점을 알 수 있읍니다. (계시 6:3-8) 여호와의 백성 역시 그들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정신과 마음의 경건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읍니까? 위로와 평화의 위대한 근원이신 분을 계속 가까이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앞의 기사에서 알려 주는 대로, 그렇게 하려면 자주 기도와 간구를 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렇게 할 때 “모든 생각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적 힘을 지켜줄 것입니다.”—빌립보 4:6, 7, 신세.
5.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다고 바울이 확신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5 그러한 말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이미 위험과 어려움을 견디는 경험을 직접 해보았읍니다. 그는 옥에 갇히기도 하고 유대인과 로마인들에게 매를 맞기도 하였읍니다. 돌로 침을 당하여 죽도록 내버려지기도 하였읍니다. 그 당시에는 여행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었읍니다. 바울은 세번이나 배가 파선되는 경험을 하였으며, 종종 강도의 위험을 당하였읍니다. 또한 그는 밤에 여러 번 자지 못하였으며, 자주 추위와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인해 고생하였읍니다. 이 모든 일 외에도, 바울은 매일 “모든 교회[회중, 신세]를 위하여 염려”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11:24-28)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는 “하나님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폭넓은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읍니다.
6. 우리의 창조주와의 따뜻하고 친밀한 유대 관계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것이 극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평화”는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반영하는, 평온하고 차분한 느낌이라고 설명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평화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며, 박해나 시련에 직면하게 될 때 특히 그러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며, 따라서 문제나 압박감, 반대 혹은 여러 가지 종류의 좌절감에 시달리게 될 때 쉽사리 두려운 마음이 들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충절을 고수하지 못하게 될 수 있읍니다. 그러한 일은 하나님의 이름에 비난을 돌리게 될 것이며, 우리는 여호와의 은총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잃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도전이 되는 일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하나님의 평화”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한 평화는 분명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주시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 중 하나입니다.—야고보 1:17.
7, 8. (ㄱ) “하나님의 평화”는 무엇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어떻게 “모든 생각보다 뛰어”납니까? (ㄴ) 한 아프리카 형제의 경우에 그러한 평화가 어떻게 예시되었읍니까?
7 평온하고 확신을 가진 생활을 영위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종종 그것은 타고난 재능, 가정의 영향, 부, 교육 혹은 그외 다른 요인들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화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환경이 좋은 것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으며, 인간의 능력이나 추리의 결과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모든 생각보다 뛰어난” 것입니다. 빌립보서 4:7의 J. B. 필립스역에는 “하나님의 평화는 ···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라고 되어 있읍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대단히 어려운 문제나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일, 심지어 죽음에까지 과감히 맞서는 것을 보고 종종 놀랍니다.
8 이에 대한 현대의 예로서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그리스도인 집회를 사회하고 있던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가 있는데, 이 나라에서는 주로 그 지방 가톨릭 교인들의 부추김을 받아 증인에게 테러 행위자들이라는 비난을 돌리고 있었읍니다. 갑자기, 총검으로 무장한 헌병들이 나타났읍니다. 그들은 여자들과 어린이들은 집으로 돌려 보냈으나, 남자들은 구타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증인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우리가 받은 대우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다. 그 군인들의 인솔자인 하사는, 우리를 때려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였다. 나는 나무 몽둥이로 심하게 맞아 그후에 90일 동안 피를 토하였다. 그러나 나는 동료들의 생명이 몹시 염려되었다. 나는 여호와께 그분의 양들인 이들 동료들의 생명을 돌보아 주실 것을 기도로 간청하였다.” 그들 모두는 살아 남았읍니다. 끔찍스러운 역경 가운데서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에 찬 관심을 나타낸 이 얼마나 훌륭한 본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인자하신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충실한 종들의 요청을 분명히 들어 주시며, 그들에게 그분의 평화를 허락하십니다. 그러한 일을 보고 당황한 병사들 중 하나는 증인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이 틀림없다”고 말하였읍니다.
9. 성서를 읽고 그 내용을 묵상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읍니까?
9 이 어려운 시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좌절하게 만들고 낙담하게 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읍니다. 정신의 평화를 계속 간직하는 훌륭한 방법은 성서를 읽고 그 내용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힘과 굳은 결의를 불어넣어 주어서 밀고 나가 확고한 입장을 취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읍니다.—히브리 4:12.
10. 성귀들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 어떻게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읍니까?
10 그러나, 역경이 갑자기 우리에게 닥쳐 성서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예를 들어, 어떤 그리스도인이 갑자기 체포되어 교도소로 끌려 들어가 성서를 전혀 볼 수 없게 될 수 있읍니다. 그런 경우에, 빌립보서 4:6, 7; 잠언 3:5, 6; 베드로 전서 5:6, 7 그리고 시편 23편과 같은 성귀들을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진정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귀절들을 기억해 내어 곰곰이 생각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해 깊이 감사하지 않겠읍니까? 교도소의 살벌한 환경에서, 그것은 마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에게 이야기하시는 것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신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소심한 사람들을 담대하게 해주며, 정신적 고통을 평화로 대치시켜 줄 수 있읍니다. (참조 시 119:165.) 그렇습니다. 아직 우리의 정신에 성귀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1. 네덜란드의 한 형제는 영적 양식의 필요를 어떤 방법으로 분명히 나타냈읍니까?
11 아서 윙클러는 성서를 깊이 인식한 사람이었는데, 특히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여 증인이 그리스도인 활동을 지하에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기에 그러하였읍니다. 게슈타포는 윙클러 형제를 추적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마침내 윙클러를 붙잡았을 때, 그를 타협하게 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읍니다. 그러자 그들은 의식을 잃게 할 정도로 윙클러를 구타하였읍니다. 윙클러는 이가 부러지고 아래턱이 빠지고 구타당하여 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어두운 감방에 던져졌읍니다. 그러나 그의 교도관은 동정심이 많고 우호적인 사람이었읍니다. 윙클러 형제는 기도로 여호와의 인도를 구하였읍니다. 그는 또한 영적 양식의 필요를 절실히 느꼈고 그 교도관에게 도움을 구하였읍니다. 나중에, 감방 문이 열리면서, 성서가 한권 던져졌읍니다. 윙클러 형제는 이렇게 회상하였읍니다. “진리의 유쾌한 말씀을 매일 즐길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 나는 영적으로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읍니다.”a
경건한 평화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
12. 우리의 마음과 정신적 힘을 지키는 것이 특별히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정신적 힘을 지켜줄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빌립보 4:7, 신세) 이것은 극히 중요한 점입니다! 마음은 동기와 감정의 바탕입니다. 이 마지막 날에, 우리의 마음은 두려움이나 염려로 인해 쉽사리 약해질 수 있으며, 또는 그릇된 일을 하도록 우리를 유도할 수 있읍니다. 전반적인 생활 방식이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강인한 마음이 필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회중을 통해 우리의 “정신적 힘”을 강화시키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13. 우리의 정신적 힘을 지킬 때 어떤 유익이 있읍니까?
13 W. E. 바인에 의하면, 희랍어 노에마(“정신적 힘”으로 번역된 단어)에는 “의도” 혹은 “계략”이라는 사상이 들어 있읍니다. (「신약 단어 해설 사전」) 따라서, 하나님의 평화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도를 강화시킬 수 있으며, 타당한 이유 없이 우리의 정신을 약화시키거나 변화시키려는 어떠한 경향으로부터도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담하는 일이나 문제들로 인해 우리는 쉽사리 동요하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 시간 파이오니아 봉사자가 된다거나 봉사자들이 더 크게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기 위해 이사하는 따위의 어떤 특별한 자격이나 방법으로 여호와를 섬기기로 의도하였다면, “하나님의 평화”는 우리가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데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비교 누가 1:3; 사도 15:36; 19:21; 로마 15:22-24, 28 ; 데살로니가 전 2:1, 18.) 우리의 정신적 힘이 더욱 강해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와 그리스도인 교제에 충분한 시간을 바치십시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깨끗하고 격려적인 생각을 주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감받은 “이르는 것”에 열중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바칠 수 있읍니까? 그러한 것들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입장에 있읍니까?
14. 우리는 무슨 영감받은 교훈에 주의 깊이 유의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마음과, 정신 혹은 “정신적 힘”은 모두 “하나님의 평화”를 갖게 되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는 일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그 점은 이러한 하나님의 충고를 볼 때 분명히 알 수 있읍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0-23.
15. 우리가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 일에 있어서 예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15 여호와와의 따뜻하고 친밀한 유대 관계에서 기인하는 “하나님의 평화”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과 정신적 힘을 지켜줍니다. (빌립보 4:7, 신세) 예수께서는 이 일에서 무슨 역할을 하십니까?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평화]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느니라.]” (갈라디아 1:3, 4)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랑의 동기에서, 우리를 대속할 수 있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읍니다. (마태 20:28)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우리는 헌신한 종들로서 여호와께 가납될 수 있으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경건한 평화를 누리는 위치에 있게 될 수 있읍니다.
경건한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 요소들
16.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평화”를 계속 간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슨 교훈을 하였읍니까?
16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평화를 받고 그 평화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그 평화를 계속 간직하기 위해 극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평화를 앗아갈 수 있읍니다. 가장 흔한 것들 가운데, 분명히 매우 위험한 것으로서 청년의 정욕이 있읍니다. 바울은, 당시 30대 초였을 디모데에게 보낸 그의 두번째 편지 내용 가운데 이러한 교훈을 포함시켰읍니다.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평화]을 좇으라.”—디모데 후 2:22.
17. 여호와께서 마련하신 성과 관련하여 흔히 어떤 일이 있어 왔읍니까?
17 그러한 정욕 가운데는, 결혼 생활 내에서 존귀한 위치가 있는 성적 충동이 있읍니다. 그러나 전 역사를 통하여 이 충동은 혼전 혹은 혼외 성관계로 잘못 표현되어 왔으며, 그러한 일은 모두 우리의 지혜로우신 창조주께서 승인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히브리 13:4; 창세 34:1-3) 성적 부도덕에 굴복할 위험성은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든 나이든 사람들이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읍니다. 방탕한 세상의 이 마지막 날에,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은 단순히 육체적인 정교(情交)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남성 및 여성 동성애자들간에 너무나 흔한 행위가 되었읍니다.—로마 1:24-27.
18. 왜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확고 부동하지 못하며, 그러할 때 어떻게 될 수 있읍니까?
18 우리가 그러한 풍조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여호와께 정성을 다하는 강인하면서도 확고 부동한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강조해 줍니다. 왕국 소식을 받아들이고 성서의 기본 진리를 믿고 여호와의 백성과 정기적으로 교제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세계적인 회중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발전시키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아직 확고 부동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청년의 정욕”으로 인해 쉽사리 탈선할 수 있읍니다. 그런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음행이나 간음을 범하게 하려는 유혹을 저항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바울이 경고한 대로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II 디모데 3:4, 새번역) 그런 사람들은 개인 연구, 그리스도인 집회 혹은 왕국 봉사에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TV 시청, 소설을 읽는 일 혹은 요란한 음악을 듣는 데 보내고 있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쉽사리 영적으로 무력해지게 하며, 결국 심각한 죄에 빠지게 합니다.
19. 우리는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19 닻 없는 배와 같은 그러한 사람들은 재난을 향해 흘러가는 물결에 따라 떠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바울은 이렇게 충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들은 일들에 대하여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다. 그러면 우리가 결코 떠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히브리 2:1, 신세) 그러므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리스도인 집회를 준비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왕국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좋은 충고지만, 나는 그런 위험에 처해 있지는 않으므로 그 말은 내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우리 각자가 우리의 마음과 가장 깊은 생각 및 욕망을 어떻게 더욱 정결하게 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평화]을 좇”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디모데 후 2:22) 그에 더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인도를 구하고, 기운을 돋우어 주는 그분의 영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20.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누구나 어떻게 해야 합니까?
20 누구든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 일을 숨긴다면, 여호와의 승인과 자신들이 소유하였던 “하나님의 평화”를 분명히 잃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들 자신의 정신의 평화도 잃게 될 것입니다. (비교 사무엘 하 24:10; 마태 6:22, 23.) 그렇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듯이, 심각한 죄에 빠진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영적 치유를 해줄 수 있는 여호와와 사랑에 찬 장로들에게 반드시 그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사야 1:18, 19; 32:1, 2; 야고보 5:14, 15) 벗어나기 어려운 죄의 행로에서 영적 균형을 잃었던 어떤 사람이 장성한 형제들의 도움을 구할 때, 그 사람은 양심이 괴로운 상태나 경건한 평화를 잃은 상태에 계속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21. 오늘날 우리에게는 여호와께 깊이 감사할 만한 무슨 이유가 있으며,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합니까?
21 오늘날 여호와의 헌신한 증인의 한 사람이라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우리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이 사단의 세상은 분열될 대로 분열되어 엉망 진창이 되어 가고 있읍니다. 이 세상은 곧 지나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구속[구출, 신세]이 가까왔”음을 알기 때문에 머리를 들 수 있읍니다. (누가 21:25-28) ‘모든 생각보다 뛰어난 평화’를 주신 데 대해 여호와께 참으로 감사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을 충실하게 섬기도록 합시다.—로마 15:33, 신세; 고린도 전 15:58.
[각주]
a 「1986 여호와의 증인의 연감」(영문) 154-7면 참조.
복습 요점
◻ “하나님의 평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며, 어떻게 그것은 “모든 생각보다 뛰어”납니까?
◻ 무슨 요소들이 우리가 정신의 평화를 계속 간직할 수 있게 해줍니까?
◻ 무슨 간교한 위험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읍니까?
◻ 그리스도인이 심각한 죄를 범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8면 네모와 삽화]
이 자매는 그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중에 나치는 그리스도교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엘자 압트의 남편을 작센하우젠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 그후 1942년 5월에 게슈타포는 엘자의 집에 와서, 어린 딸을 떼어 놓은 다음 엘자를 수용소로 보냈으며, 엘자는 수용소에서 수용소로 옮겨 다니며 노동을 하고 고통을 당하였다. 엘자는 이렇게 자신의 체험을 증언한다.
“독일 강제 수용소에서 지낸 세월은 내게 훌륭한 교훈을 주었다. 그것은 극도의 시험을 받을 때 여호와의 영이 얼마나 큰 힘을 주는가 하는 것이다. 체포되기 전에, 심한 시험을 받을 때 여호와의 영이 우리를 사로잡아 평온함을 느끼게 해준다고 쓴 자매의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내 생각에는 그 자매가 좀 과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직접 시험을 겪어 보니 그 자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내게 일어났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도와주신다.”
[16면 삽화]
바울은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19면 삽화]
당신은 영적으로 떠내려갈 위험에 처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