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견해
“성인”에게 기도하는 것은 합당한가?
독실한 가톨릭교인이었던 마리와 테레사는 “성인들”에게 믿음을 두었습니다. 마리는 기도로 그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테레사는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고 그에게 기도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수호 “성인”에게도 정기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세계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마리와 테레사처럼 “성인”에게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신 가톨릭 백과사전」(New Catholic Encyclopedia)에서는 “성인들은 사람을 위해 중재하는 일”을 하며 “하느님의 은혜를 ··· 받기 위해 그들에게 간청하는 것은 ‘유익하고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인”에게 기도로 중재를 요청하는 것을 승인하십니까? 성서에서 이 점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인”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일부 성서 번역판에서 “성인”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거룩한 자”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충실히 섬긴 사람이 “성인”에게 기도했다는 언급은 성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 가톨릭 백과사전」은 “성인들이 중재 역할을 한다는 견해는 3세기 무렵에야 확립되었다”고 기술합니다.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지 약 200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가르침은 예수의 봉사의 직무에 대해 기록한 영감 받은 성서 필자들이나 예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성서에서 “성인”에게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께만 기도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가르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4:6, 성경[가톨릭판]) 이 분명한 말씀은 마태 6:9-13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하십시오.’” (마태 6:9) 의문의 여지없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유일한 분은 하늘에 있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서에 들어 있는 중요한 원칙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기도—숭배 행위
「월드 북 백과사전」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기도란 하느님이나 신과 같은 숭배의 대상을 향한 경외심 있는 말과 생각을 가리킨다. ··· 기도는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숭배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서체는 본지에서 변경) 그러므로 ‘생명을 주신 창조주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고 숭배 행위인 기도를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고 자문해 보십시오. (시 36:9)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참숭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를 숭배할 [것입니다]. ··· 사실, 아버지께서는 자기를 그와 같이 숭배할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요한 4:23) 그에 더해 성서는 창조주께서 우리가 “전적인 정성”을 바치기를 원하신다고 알려 줍니다.—신명 4:24; 6:15.
그리스도인인 사도 요한의 예를 고려해 보십시오. 그는 성서 계시록에 기록된 매우 인상적인 환상을 받은 후에 경외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환상을 보여 준 “천사의 발 앞에 숭배하려고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하여라! 이러지 말아라! 나는 단지 너와 ··· 너의 형제들[의] 동료 종일 뿐이다. 하느님을 숭배하여라.” (계시 22:8, 9) 그렇습니다. 성서는 우리가 여호와 하느님만 숭배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혀 줍니다.
이러한 점들과 일치하게 오직 하느님께서만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라고 불리십니다. (시 65:2) 또한 전능하신 그분만이 기도를 통해 하는 합당한 요청을 들어줄 권위와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욥 33:4)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에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마태 20:23; 24:36) 그렇지만 그분은 인류의 중재자로 일하는 책임을 포함하여 큰 권위를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이해하시는 중재자
성서는 예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탄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7:25)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자신을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들을 위해 동정심 많은 중재자 역할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께 기도해야 한다거나 그분이 기도를 전달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예수께서 가지신 권위를 인정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완벽한 중재자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예수께서 인간으로 생활한 경험이 있으시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하실 수 있었습니다. (요한 11:32-35) 또한 그분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고 죽은 자를 부활시키며 자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알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마태 15:29, 30; 누가 9:11-17) 더 나아가 죄를 용서해 주기까지 하셨습니다. (누가 5:24) 따라서 죄를 짓게 된다 해도 ‘우리에게는 아버지 앞에서 돕는 이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요한 첫째 2:1.
우리는 예수의 사랑과 동정심을 본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중재자로 일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사실 사랑이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야고보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 의로운 사람의 간구는 그것이 작용할 때에 많은 힘이 있습니다”라고 썼습니다.—야고보 5:16.
서두에서 언급한 마리와 테레사는 직접 성서를 알아보았으며 결국 귀중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당신도 그렇게 하도록 권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숭배해야 합니다.”—요한 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