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게 함
(sanctification)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봉사를 위해, 혹은 그분에 의해 사용되도록, 거룩하게 하거나 구별하는 혹은 분리하는 행동이나 과정. 거룩하거나 성별된 혹은 정결하게 된 상태. “거룩하게 함”이라는 말은 거룩함이 산출되게 하거나 나타나게 하는, 혹은 유지되게 하는 행동에 주의를 이끄는 말이다. (거룩함 참조) “거룩한”, “거룩하게 된”, “신성하게 된”, “구별된”으로 번역된 단어들로는, 히브리어 동사 카다시에서 파생된 단어들과 그리스어 형용사 하기오스와 관련된 단어들이 있다.
본 주제를 더 잘 이해하려면 그 단어들이 원어에서 사용된 용법을 고려해야 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들이 적용된 대상은 (1) 여호와 하느님, (2) 예수 그리스도, (3) 천사, (4) 인간과 동물, (5) 사물, (6) 특정한 기간이나 행사, (7) 소유지이다. “거룩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때때로, 준비하거나 태세를 갖춘다는 혹은 자신을 적합한 상태로 만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불평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여라. 너희가 정녕 고기를 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 11:18)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을 건너기 전에 여호수아는 이렇게 명령하였다. “여러분 자신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내일 여호와께서 여러분 가운데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수 3:5) 모든 경우에 그 용어는 종교적이고 영적이며 도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신체적인 부정함 등 여호와를 불쾌하시게 하거나 그분이 보시기에 악한 것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성에게로 가거라. 너는 오늘과 내일 그들을 거룩하게 해야 하며, 그들은 자기들의 망토를 빨아야 한다. ··· 셋째 날에 여호와가 모든 백성의 눈앞에서 시나이 산 위로 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출 19:10, 11) 그 단어는 정결하게 함이나 깨끗하게 함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일례로 사무엘 둘째 11:4에는 “그 여자는 부정함으로부터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 중이었다”고 되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은 세상 나라들과 구별되어야 하며 그들의 행습에 물들지 않고 깨끗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이스라엘에게 먹기에 깨끗한 것이 무엇이고 부정한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법 등 그들을 구별되어 있게 해 주는 율법을 주셨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그 이유를 이렇게 알려 주셨다. “나는 너희 하느님 여호와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 11:44.
여호와 하느님 여호와 하느님은 거룩하시고 절대적으로 깨끗하시다. 그분은 창조주이시자 우주 주권자로서 모든 피조물의 전적인 숭배를 받으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다. 그래서 그분은 모든 피조물이 보는 앞에서 자신과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행동하심으로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틀림없이 나 자신을 드높이고 거룩하게 하여 많은 나라들의 눈앞에 나를 알릴 것이니, 그들은 반드시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겔 38:23) 그분의 은혜와 생명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분과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 이름을 다른 어떠한 것과도 구별되고 더 높은 것이 되게 함으로 올바른 위치에 두어야 한다. (레 22:32; 사 8:13; 29:23) 예수께서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해지게[혹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게, 거룩한 것으로 대우받게”] 하십시오.”—마 6:9, 각주.
예수 그리스도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택하셔서 하느님의 이름을 위하여 특별한 일을 하고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 생명을 바치도록 그분을 땅으로 보내셨다. 그러나 유대인 나라는 그분을 그렇게 보냄을 받은 분으로 받아들이거나 존중하지 않고, 도리어 그분이 아들로서 그리고 아버지와 관련하여 누리셨던 신분을 부인하였다.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여러분은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하여,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세상에 파견하신 나에게 ‘신성을 모독한다’고 말합니까?”—요 10:36.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로서 거룩하게 하”라고 말한다. 그가 알려 주듯이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악한 것에서 떨어져 있고 선을 행할 것이다. 이방 나라 사람들은 마음속에 인간과 기타 사물들에 대한 위압감과 두려움을 품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애정과 동기 속에서 올바른 위치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직분, 곧 하느님이 정하신 생명의 으뜸 행위자, 메시아 왕, 하느님의 대제사장,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바치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또한 그리스도의 좋은 행실의 본을 계속 따름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의 행실과 관련하여 선한 양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처럼 마음속으로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 심지어 어떤 통치자가 희망의 이유를 거칠게 묻더라도 온화한 성품과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훌륭하게 변호할 것이다.—베첫 3:10-16.
천사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천사들을, 여호와의 거룩한 용도를 위하여 구별된 즉 성별된 “거룩한” 천사들이라고 부르셨다. (막 8:38; 누 9:26. 시 103:20 비교) 그들은 여호와께서 계시는 신성한 곳에 나타나 그분의 얼굴을 뵙고 있다.—마 18:10; 누 1:19.
인간과 동물 지나간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전적인 봉사를 위하여 사용하고 싶으신 특정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셨다. 일례로 신성한 장막과 그 봉사를 돌보는 데 레위 지파 남자들을 사용하기로 하셨을 때 그분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레위 사람들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태를 여는 모든 처음 난 자를 대신하게 한다. 레위 사람들은 나의 것이다. 처음 난 것은 모두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땅에서 그 처음 난 것을 모두 치던 날, 나는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처음 난 것을 모두 내게로 성별하였다. 그들은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나는 여호와이다.” 다른 11지파의 처음 난 자들은 면제되도록 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대가로 레위 지파의 모든 남자를 바쳐야 하였다. 그리고 레위 지파 남자의 총수를 초과하는 처음 난 각 남자에 대해서는 신성한 곳에 오 세겔(11달러)씩 바쳐야 하였다. 그렇게 하여 처음 난 자들은 여호와에 대한 전적인 봉사를 위하여 구별되는 것에서 면제되었다.—민 3:12, 13, 46-48.
그 후로는, 태를 여는 처음 난 남자들은 모두 성별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성전에서 바쳐졌다가 구속되는 값으로 오 세겔(11달러)을 내야 하였다. (출 13:2; 레 12:1-4; 민 18:15, 16) 나실인 서원 아래 있는 자들은 그들의 서원 기간 동안 성별된 상태에 있었다. (민 6:1-8) 가축의 처음 난 것들 역시 성별되어, 경우에 따라 희생으로 바쳐지거나 구속되었다.—신 15:19. 맏아들, 맏배, 처음 난 자, 처음 난 것 참조.
제사직 여호와께서는 또한 레위 지파 중에서도 희생을 바치는 제사장으로 봉사할 사람들로 단 하나의 가족을 구별할 목적을 세우셨는데, 그 가족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 및 그들의 남자 자손들이었다. (출 28:1-3, 41) 그래서 그들은 탈출기 29장에 설명되어 있는 일련의 상징적 행동을 하는 가운데 적절한 희생을 바침으로 성별되었다. 여호와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동료 제사장 곧 보조 제사장,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로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되도록 기름부으시는 자들도 성별된 즉 거룩하게 된 자들이다.—데둘 2:13; 계 1:6; 5:10.
거룩하게 하는 과정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로서 거룩하게 되려면 특정한 과정 혹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거룩하게 하다라는 말을 하느님 보시기에 죄로부터 정결하게 하다 혹은 깨끗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염소와 수소의 피와 어린 암소의 재를 더럽혀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육체를 깨끗하게 할 정도로 거룩하게 된다면,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께 신성한 봉사를 드리게 하겠습니까?”—히 9:13, 14.
“그리스도의 피”는 그분의 완전한 인간 생명의 가치를 의미하며 바로 이것이 그분을 믿는 사람의 죄의 죄과를 씻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정결하게 될 정도로 하느님의 관점에서 (단지 예시적으로가 아니라 [히 10:1-4 비교]) 실제로 거룩하게 되므로, 깨끗한 양심을 갖게 된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그처럼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보조 제사장 중 하나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 (로 8:1, 30) 그러한 사람들은 하기오이, 곧 “거룩한 자들”, “성도들”(「개역」), 다시 말해 하느님을 위해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불린다.—엡 2:19; 골 1:12. ‘거룩하게 된 사람들[토이스 헤기아스메노이스]’을 언급하는 행 20:32 비교.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가 될 사람들이 밟게 되는 절차는 이러하다. 우선, 여호와 하느님은 하느님의 말씀의 진리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 의거하여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끄신다. (요 6:44; 17:17; 데둘 2:13) 여호와께 받아들여진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며, 의롭다고 선언’된다. (고첫 6:11)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지혜요, 또한 의와 거룩하게 함과 대속물에 의한 석방”이 되신다. (고첫 1:30) 이들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그리스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 모두 한 분에게서 나옵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히 2:11) 그들은 영으로 출생하는 일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들’이 되고 하느님의 으뜸가는 아들의 “형제들”이 된다.—로 8:14-17; 요 3:5, 8.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거룩하게 하는 과정에는 한쪽의 일방적인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룩하게 된 상태는 유지되어야 하고 바로 여기에 믿음을 가진 사람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는 자신의 거룩하게 된 상태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고 굳게 지키게 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거룩하게 된 자들을 위해 본을 세워 놓으셨다. (요 13:15) 그분은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그들을 위하여 제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 17:19) 예수께서는 나무랄 데 없는 상태를 지키셨으며 자신의 추종자들을 거룩하게 할 목적으로 구별된 신분을 유지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룩해진 상태를 지상 행로를 마칠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불명예스러운 일들과 그러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로부터 떠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귀하게 쓰일 그릇 곧 거룩하게 되어 자기 주인에게 유용하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준비된 그릇이 될 것”이다. (디둘 2:20, 21) 그들은 자기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었다는 점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 거룩하게 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히 10:10) 그들은 ‘거룩해지기를 힘쓰라’는 교훈을 받고 있는데, “그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다.—히 12:14.
거룩하게 된 자들은 여전히 죄로 향하기 쉬운 불완전한 육체로 있기는 하지만 성공할 수 있다. 바울은 거룩하게 된 상태를 상실할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면서 거룩하게 된 자들에게 그들을 ‘거룩하게 한 것은 [새] 계약의 피’였음을 상기시킨다. (히 10:29; 누 22:20)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로서, 그들이 순종과 깨끗한 행실을 통해 그 계약의 조항들을 이행하여 거룩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신다. “그는 한 번의 희생을 바치심으로써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하셨”다. (히 10:14) 그리스도께서는 중개자와 대제사장으로서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히 7:25) 그러나 그들이 죄의 행습으로 되돌아간다면 두 번째 희생은 없으며 심판과 멸망을 예상해야 할 뿐이다.—히 10:26, 27.
그러므로 거룩하게 된 자들은 거룩하게 되기 전에 살던 방식대로 계속 살도록 혹은 그러한 행로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사도는 이렇게 훈계한다. “하느님이 뜻하시는 것은 이것이니,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곧 여러분이 음행을 멀리하고, 각자 자기 자신의 그릇을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소유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더러움을 염두에 두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함과 관련하여 부르셨습니다.”—데첫 4:3, 4, 7.
하느님의 말씀과 영 하느님의 말씀은 거룩하게 하는 일에서 큰 역할을 하는데, 거룩하게 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밀접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행 20:32) 하느님께서는 또한 신자로서 거룩하게 된 사람에게는 자신의 성령을 보내 주시는데, 그것은 그 사람 안에서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그것은 거룩하게 된 사람이 순종적이 되어 깨끗한 생활의 길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베첫 1:2) 하느님의 영의 인도로 말미암아 그런 사람들의 제물은 거룩해지고 깨끗해져서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것이 된다. (로 15:16) 어떠한 것이든 부정한 것은 하느님의 영을 무시하는 것이며 그 영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다. (엡 4:30; 데첫 4:8; 5:19) 그것은 성령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유도할 수 있는데, 그러한 모독은 용서받지 못할 죄이다.—마 12:31, 32; 누 12:8-10.
장소를 거룩하게 함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곳, 혹은 그분이 상징적으로 거하시는 곳은 어느 곳이든 성별된 혹은 거룩한 장소로서 신성한 곳이다. 광야에 있던 장막과 나중에 솔로몬과 스룹바벨이 건축한 (그리고 헤롯 대왕이 재건하고 확장한) 성전들은 믹다시 혹은 코데시, 즉 ‘구별된’ 혹은 ‘거룩한’ 곳이라고 불렸다. 죄 많은 백성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장소들은 희생 동물의 피를 뿌림으로 더러움으로부터 (상징적 혹은 예시적 방법으로) 정결케 하는 일을 주기적으로 해야 하였다.—레 16:16.
예루살렘 그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왕의 도시인 예루살렘과(시 48:1, 2; 135:21) 그 도시가 서 있던 장소는 성별된 것으로 여겨졌다. (사 48:1, 2; 52:1; 느 11:1; 단 9:24) 따라서 하늘의 도시인 새 예루살렘은 신성한 곳으로서, 거룩하게 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고 어떠한 형태로든 (영매술, 음행, 살인, 우상 숭배, 거짓말 같은) 더러운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도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계 21:2; 22:14, 15, 19.
에덴동산, 신성한 곳 여호와께서는 대리자를 통해 에덴동산에 나타나셔서 아담과 하와와 대화하시고 지시를 하셨다. 깨끗하고 죄가 없고 완전한 곳이었던 그곳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누렸다. (창 1:28; 2:8, 9; 3:8, 9; 신 32:4)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반역했을 때 그곳에서 쫓겨났다. 이 낙원은 하느님께서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차지하도록 구별하신 혹은 거룩하게 하신 장소였던 것이다. 이제 아담과 하와는 죄인이 되었으므로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는 죄인이면서도 영원히 살게 되는 일이 없도록 쫓겨났다.—창 3:22-24.
불타는 덤불과 시나이 산 여호와께서 모세를 그분의 기념 이름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보내시어 그에게 이집트로 다시 내려가 자신의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구출하라는 사명을 주실 때(출 3:15, 16),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천사를 파견하셨고 그 천사는 불타는 덤불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났다. 모세가 다가가자 여호와를 대리하여 나타난 천사는 모세에게 샌들을 벗으라고 명령하였는데, 그 천사는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코데시] 땅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출 3:1-5.
훗날 시나이 산 기슭에 모인 백성에게 율법 계약을 주실 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산에 경계를 정하여 그것을 신성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그분을 대리하는 천사를 통해 그곳에 계셨기 때문이다. (출 19:23; 갈 3:19) 그 경계를 넘어가는 자는 누구든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는데, 권한이 없는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계신 곳에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출 19:12, 13) 그러나 하느님의 임명된 중개자인 모세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모세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시온 산에 나아갈 때 그들을 위해 위대한 중개자 역할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적으로 예표하였다.—히 12:22-24.
도피 도시들과 군 진영 이스라엘에는 고의성 없는 살해자가 도피할 곳이 되도록,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된 특정한 도시들이 있었다. 그 도시들은 성별되었다. 즉 “신성한 지위”가 주어졌다.—수 20:7-9.
이스라엘의 군 진영은 성별된 곳들이었다. 하느님께서 그 “진영 안을 두루 다니”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적·영적·신체적 깨끗함을 유지해야 하였다.—신 23:9-14; 삼둘 11:6-11.
사물을 거룩하게 함 장막과 성전은 성별된 건축물이었으므로, 그 안에 있는 물건들도 그와 비슷하게 거룩해야, 즉 성별되어야 하였다. 성별된 물품들로는 계약의 궤, 분향 제단, 진설빵 상, 등잔대, 번제 제단, 대야, 모든 기구, 향과 기름부음용 기름, 심지어 제사장들의 옷 등이 있었다. 그 물품들을 다루거나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성별된 사람들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뿐이었다. (출 30:25, 32, 35; 40:10, 11; 레 8:10, 11, 15, 30; 민 4:1-33; 7:1) 장막에서 봉사한 제사장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적 표상과 그림자가 되는 신성한 봉사를 드”렸다. “모세가 천막을 완성하려고 할 때에,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것과 같[다]. 그분은 ‘산에서 네게 보여 준 그 모형대로 모든 것을 만들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히 8:4, 5.
희생과 음식 희생 및 제물도 성별된 제단 위에서 규정된 방식에 따라 바쳐졌다는 점으로 인해 거룩하게 되었다. (마 23:19) 제사장들이 받는 부분도 거룩하였으므로 제사장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이 먹어서는 안 되었다. 심지어 제사장들도 “부정한” 상태에 있는 동안에 그러한 것들을 먹어서는 안 되었다. (레 2:3; 7:6, 32-34; 22:1-13) 진설빵 역시 그와 비슷하게 거룩한 곧 성별된 것이었다.—삼첫 21:4; 막 2:26.
여호와께서 제사장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음식이 거룩하게 된 것처럼, 그분이 그리스도인 종들을 위하여 마련하시는 음식 역시 그와 비슷하게 거룩하게 된다. 그분의 거룩해진 종들이 참여하거나 관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게 되어 있는 바와 같다. 사도 바울은 양심 없는 사람들이 거짓된 거룩함을 전시할 것에 관하여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결혼을 금하고, 음식을 멀리하라고 명령할 것입니다. 음식은, 믿음이 있고 진리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감사함으로 먹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은 좋은 것이며, 감사함으로 받는다면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그것에 대한 기도를 통하여 거룩해집니다.” (디첫 4:1-5) 하느님의 말씀에서 깨끗하다고 선언하는 것이라면 깨끗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그에 대해 기도로 감사함으로써 그것을 거룩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먹는 사람을 깨끗한 사람으로 간주하신다.
십일조 이스라엘인들이 따로 구별해 놓는, 곡식이나 열매나 가축 떼의 십분의 일은 성별된 것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레 27:30, 32) 그러므로 성별된 것을 오용하고도, 혹은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을 포함하여 하느님이 거룩하게 하신 자 누구에게라도 해를 입히거나 악담을 하고도 하느님 앞에서 죄과를 면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그분에게 신성을 모독한다고 비난하였을 때 그 점을 알려 주셨다. (요 10:36) 사도 베드로는 악한 사람들에게 닥치게 되어 있는 멸망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들은 대담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여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하신] 영광스러운 이들에 대하여 떨지 않고 도리어 모욕적으로 말”한다고 묘사하였다.—베둘 2:9-12. 유 8 비교.
기간 혹은 행사 성서 기록은 하느님께서 땅과 관련하여 창조하는 일을 마치셨을 때 어떻게 하셨는지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준다. “일곱째 날이 될 때까지는 하느님이 ··· 일을 완성하셨으며, ··· 쉬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하느님이 일곱째 날을 축복하시고 그것을 신성하게 하기 시작하셨다.” (창 2:2, 3) 그러므로 인간은 이“날”을 여호와께 신성한 봉사를 드리고 순종하는 “날”로 사용해야 하였다. 인간이 자신의 일을 하여 그날을 더럽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주권자이신 여호와로부터 독립하여 땅에서 자기 좋을 대로 행하기 위해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을 따르기 시작한 것은 그“날”을 범하는 것이었다. 히브리 3:11, 13과 4:1-11의 기록에 의하면 하느님의 ‘쉬시는 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하느님께서 그“날”을 거룩하게 하시어 자신의 목적을 위해 구별해 두셨으므로, 땅에 대한 그 목적은 이“날” 중에 의 가운데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사 55:10, 11 비교.
안식일과 특별한 축제일들도 거룩하게 되었는데, 희년과 같은 다른 기간들 역시 그러하였다.—출 31:14; 레 23:3, 7, 8, 21, 24, 27, 35, 36; 25:10.
땅을 거룩하게 함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상속지의 일부를 하느님을 위하여 성별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토지의 산물이 신성한 곳으로 돌아가도록, 혹은 제사장의 추산에 따른 그 토지(즉 그 수확)의 가치를 지불할 수 있도록 따로 구별해 놓음으로 그렇게 하게 되어 있었다. 그 토지를 도로 사기로 결정했다면, 제사장이 추산한 (희년까지 남아 있는 수확 횟수에 좌우되는) 그 밭의 평가액에다가 오분의 일을 보태서 지불해야 하였다. 물론 희년에는 그 밭이 원소유자에게 되돌아가게 되어 있었다.—레 27:16-19.
그다음 구절들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 밭을 도로 사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리는 소유자에 관한 것인 듯한데, 그러면 법적으로 그 밭은 희년이 되었을 때 신성한 곳의 영구적인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레위기 27:20, 21에 나오는 이 법에 관하여 쿠크의 「주석」(Commentary)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밭을 신성한 곳에 바친다고 서원해 놓고는 부당하게도 밭의 이권을 팔아서 그 대금을 착복한 사람의 경우를 가리켜 말한 것일 수 있다.” 또는 밭의 사용권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매년 소작료로 소정의 구속 값을 지불함으로 한동안은 자신의 서원을 이행하다가, 나중에 얼마의 현금을 얻기 위해서 이권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한 사람의 경우를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한 밭은 “바쳐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신성한 곳을 위해 성별된 것을 자신의 것처럼 취급하여 그것을 가지고 상거래를 함으로 그 신성함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그 원칙은 신명기 22:9에 나오는 이러한 법과 유사한 것일 수 있다. “당신의 포도원에 두 종류의 씨를 뿌려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뿌리는 씨의 풍성한 소출과 포도원의 산물이 신성한 곳에 몰수될까 염려됩니다.” 일찍이 레위기 19:19에 언명된 법을 범하면 그 결과로 그처럼 몰수당하게 되어 있었다.
‘성별된’ 사물과 ‘바쳐진’ 사물의 차이점은 ‘바쳐진’ 것은 구속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금령 참조) 집도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레 27:14, 15)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상속 재산 중에서 사들인 밭을 성별하면 그 밭은 희년에 원소유자에게로 되돌아갔다.—레 27:22-24.
결혼 생활에서 사도 바울은 결혼한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믿지 않는 남편이 자기 아내와 관련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않는 아내가 그 형제와 관련하여 거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자녀가 참으로 더러울 것인데, 지금은 그들이 거룩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인을 존중하시므로, 남녀 그리스도인과 믿지 않는 배우자의 결혼 관계는 더럽히는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거룩하게 된 자가 깨끗하다고 해서 그 배우자가 하느님의 거룩한 자들 중 하나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관계는 깨끗하고 영예로운 것이다. 믿지 않는 배우자는 믿는 배우자의 그리스도인 행로를 관찰함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있으며 그 자신 역시 구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고첫 7:14-17) 믿는 배우자의 ‘공적’으로 인해 그 결합 관계의 어린 자녀들 역시 거룩하다고 간주되어 하느님의 돌봄과 보호를 받게 된다. 자녀의 부모 중 누구도 믿음을 갖지 않은 경우처럼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거룩함 (여호와의 축복을 받는 거룩한 신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