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참을성 있고 신심 깊은 사람이 되게 한다
“참을성을 나타내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십시오. 주의 임재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야고보 5:8.
1. 우리는 왜 야고보 5:7, 8을 숙고해 보아야 합니까?
오래 기다려 왔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이제는 실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태 24:3-14)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제자 야고보의 이러한 말을 숙고해 볼 이유가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주의 임재 때까지 참을성을 나타내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땅의 값진 열매를 계속 기다리면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얻을 때까지 그것에 대하여 참을성을 나타냅니다. 여러분도 참을성을 나타내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십시오. 주의 임재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야고보 5:7, 8.
2. 야고보가 편지를 쓴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직면했던 일부 문제들은 무엇이었습니까?
2 야고보가 영감받은 자신의 편지를 쓴 대상이었던 사람들은, 참을성을 나타내고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서 기대되는 것과 반대되게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라난 특정한 욕망들에 대하여 어떤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초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평온이 다시 회복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참을성 있고 신심 깊은 사람이 되는 일에 관해서도 교훈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야고보가 그들에게 한 말을 고려하면서, 그의 말을 우리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합시다.
그릇된 욕망은 파괴적이다
3. 회중 내의 분쟁의 원인들은 무엇이었으며,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3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일부 사람들 가운데는 평화가 부족하였으며, 그릇된 욕망이 이러한 상황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야고보 4:1-3)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특성 때문에 분열이 초래되고 있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사랑이 없이 자기 형제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관능적인 쾌락에 대한 갈망이 그들의 몸의 지체들 속에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우리 자신도 회중의 평화를 교란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도록, 명성과 권력과 소유물에 대한 육적인 갈망을 저항하기 위한 도움을 얻기 위하여 기도할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로마 7:21-25; 베드로 첫째 2:11) 1세기의 일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탐심이 자라나서 증오하는, 살기를 띤 영으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그릇된 욕망을 충족시켜 주려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계속 안간힘을 썼습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비슷한 그릇된 욕망이 있다면, 우리는 요청해도 받지 못할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의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애가 3:44; 요한 셋째 9, 10.
4. 야고보는 왜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부르며, 그의 말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합니까?
4 세상적인 태도와 시기와 교만이 어떤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존재하였습니다. (야고보 4:4-6) 야고보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이 세상의 벗이었고 따라서 영적인 간음이라는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16:15-19, 25-45) 확실히, 우리는 태도와 말과 행실에 있어서 세상적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적이 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시기하는 경향”이 죄 많은 인간 속에 있는 악한 성향 즉 “영”의 일부임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창세 8:21; 민수 16:1-3; 시 106:16, 17; 전도 4:4) 따라서 우리가 시기나 교만이나 그 밖의 어떤 나쁜 성향과 싸울 필요가 있음을 실감한다면, 성령에 의한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에 의해 공급되는 그 힘은, “시기하는 경향”보다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거만한 사람들을 대적하시지만, 우리가 죄짓는 경향과 싸운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과분한 친절을 베푸실 것입니다.
5.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무슨 요구 조건들에 달해야 합니까?
5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야고보 4:7-10)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그분에게 순종하고 그분의 마련을 받아들이고 무엇이든 그분이 의도하시는 것에 복종해야 합니다. (로마 8:28) 우리는 또한 마귀를 “대적”해야, 즉 ‘대항’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우주 주권의 지지자로서 굳건함을 유지한다면, 마귀는 ‘우리에게서 도망’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의 도움이 있는데, 그분은 세상의 악한 대행 기구나 대행자들에게 제약을 가하시어 우리에게 영구적인 손상을 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점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는 기도와 순종과 믿음을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가며, 그분은 우리 가까이에 계시게 된다는 점입니다.—역대 하 15:2.
6. 야고보는 왜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죄인들”이라고 부릅니까?
6 야고보는 왜 “죄인들”이라는 표현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공언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적용시킵니까? 그들에게 “전쟁”과 살기를 띤 증오—그리스도인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태도—라는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도 3:3) 악한 행위로 가득 차 있던 그들의 “손”을 깨끗이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동기가 들어 있는 곳인 자기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마태 15:18, 19) “우유부단한 사람들”은 하느님과의 벗 관계와 세상과의 벗 관계 사이에서 계속 머뭇거렸습니다. 그들의 나쁜 본보기를 통해 경고를 받았으므로, 그러한 일들이 우리의 믿음을 파선시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경계하도록 합시다.—로마 7:18-20.
7. 야고보는 왜 일부 사람들에게 ‘애통해하고 울라’고 말합니까?
7 야고보는 자신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에게 “비참해하고, 애통해하고, 우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경건한 슬픔을 실제로 나타냈더라면, 그것은 회개의 증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7:10, 11) 오늘날,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은 세상과의 벗 관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 그러한 행로를 추구하고 있다면, 우리의 약한 영적 상태에 대하여 애통해하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단계들을 즉시 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요한 조정을 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일은, 깨끗한 양심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기쁨에 찬 전망 때문에 큰 기쁨의 감정을 산출할 것입니다.—시 51:10-17; 요한 첫째 2:15-17.
서로 판단하지 말라
8, 9. 우리는 왜 서로 나쁘게 말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까?
8 동료인 믿는 사람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는 것은 죄짓는 일입니다. (야고보 4:11, 12)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비평하기를 좋아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들 자신의 독선적인 태도의 결과이거나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깎아 내림으로써 자기 자신을 높이려고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 50:20; 잠언 3:29) ‘··· 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적의를 가리키며, 과장하거나 거짓 비난을 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적의를 품고 형제를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하느님의 법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고 하느님의 법을 판단하는 일’이 됩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교묘하게 제쳐놓았’으며 그들 자신의 표준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마가 7:1-13) 그와 비슷하게, 여호와께서 정죄하지 않으실 형제를 우리가 정죄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법을 판단하는 일’이 되지 않겠으며 하느님의 법이 부적당하다고 암시하는 죄짓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형제를 부당하게 비평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법을 성취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로마 13:8-10.
9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합시다. “입법자이시며 재판관이신 분은 한 분”—여호와—“이십니다.” 그분의 “율법은 완전하”며, 결함이 없습니다. (시 19:7; 이사야 33:22) 하느님만이 구원을 위한 표준과 규칙을 세울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누가 12:5) 따라서 야고보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우리에게 속한 권한이 아닙니다. (마태 7:1-5; 로마 14:4, 10) 하느님의 주권과 공평함과 우리 자신의 죄짓는 경향에 관하여 숙고해 보는 것은, 우리가 독선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랑하는 자기 과신을 피하라
10. 우리는 왜 매일의 생활에서 여호와를 고려에 넣어야 합니까?
10 우리는 언제나 여호와와 그분의 법을 고려에 넣어야 합니다. (야고보 4:13-17) 자기 과신에 빠진 사람들은 하느님을 무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이나 내일 어떤 도시로 가서 일 년간 지내면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내겠다.’ 우리가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쌓아 두고 하느님에 대하여 부유하지 못”하다면, 우리의 생명은 내일 끝날지 모르며 우리에게는 여호와를 섬길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12:16-21) 야고보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역대 상 29:15)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일을 통해서만, 우리는 지속적인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바랄 수 있습니다.
11. “여호와의 뜻이라면”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1 자랑하면서 하느님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할 것이다.” “여호와의 뜻이라면”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뜻과 조화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장사를 하고, 왕국 활동차 여행하는 일 등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뽐내지 않도록 합시다. ‘그와 같이 자랑하는 일은 악한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께 의존하는 일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37:5; 잠언 21:4; 예레미야 9:23, 24.
12. 야고보 4:17에 나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12 야고보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아마도 자기 과신과 자랑하는 일에 관한 말을 끝맺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옳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에게는 죄가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에게는 죄가 됩니다.” 물론, 동일한 원칙이 어떤 일이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행하지 못한 일에도 적용됩니다.—누가 12:47, 48.
부자들에 대한 경고
13. 야고보는 자기들의 부를 오용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3 일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적이 되었거나 부를 칭송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고보는 어떤 부유한 사람들에 관하여 강력한 말을 합니다. (야고보 5:1-6) 자기들의 부를 그릇되게 사용하는 세상적인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시는 날에 ‘자기들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 때문에 울며 부르짖’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부는 주로 옷과 곡식과 포도주와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요엘 2:19; 마태 11:8) 이러한 소유물들 가운데 일부가 썩거나 “옷좀나방이 먹”을 수 있지만, 야고보는 부가 영속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니라 부의 무가치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과 은은 녹슬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쌓아 둔다 해도 그것들은 녹슨 물건처럼 무가치할 것입니다. “녹”은 물질적인 부를 잘 활용하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의 물질적인 소유물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분노가 그들 위에 임하는 때인 “마지막 날에 불과 같은 것을 쌓아 둔” 것임을,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으므로, 그러한 말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다니엘 12:4; 로마 2:5.
14. 부자들은 종종 어떻게 행동하며, 우리는 그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해야 합니까?
14 부유한 사람들은 종종 자기들의 수확하는 자들을 속여 빼앗는데, 그들에게 주지 않고 보류해 둔 삯이 보응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비교 창세 4:9, 10) 세상적인 부자들은 “사치스럽게 살아 왔”습니다. 관능적인 쾌락에 지나치게 탐닉함으로써, 그들은 마음이 살찌고 반응이 없어지게 만들며, 자기들을 살육하도록 정해진 “날”에도 여전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의로운 분을 정죄하고 살해합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다른 번역은 이러합니다. “의로운 분, 그분은 여러분을 대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부자들을 편애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관심사를 생활에서 계속 첫째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마태 6:25-33.
믿음은 우리가 참을성을 나타내는 데 도움이 된다
15, 16. 참을성을 나타내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15 세상의 압제적인 부자들에 관하여 설명한 다음에, 야고보는 압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을성을 나타내라고 격려합니다. (야고보 5:7, 8)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난관을 참을성 있게 견딘다면, 그들은 자기들을 압제하는 자들에게 심판이 닥치는 때인 그리스도의 임재 중에 충실함에 대하여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태 24:37-41) 그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씨를 뿌릴 수 있는 가을의 이른 비와, 열매를 산출하는 봄철의 늦은 비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농부처럼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요엘 2:23) 우리 역시 참을성을 나타내고 우리의 마음을 굳건하게 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지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중이기 때문입니다!
16 우리에게는 왜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까? (야고보 5:9-12) 참을성은 동료인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화나게 할 때 신음하거나 한숨을 쉬지 않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나쁜 영을 품고 “서로에 대하여 한숨을 짓”는다면, 우리는 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요한 5:22) 그분의 “임재”가 시작되었고 그분이 “문 앞에 서 계”신 지금, 많은 믿음의 시련에 직면하는 우리의 형제들에 대하여 참음으로 평화를 증진하도록 합시다. 욥이 시련들을 참을성 있게 인내하였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상을 주셨음을 우리가 기억할 때, 우리 자신의 믿음이 강해집니다. (욥 42:10-17) 우리도 믿음과 참을성을 나타낸다면, “여호와는 애정이 매우 부드럽고 자비로운 분”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미가 7:18, 19.
17. 야고보는 왜 “더는 맹세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까?
17 우리에게 참을성이 없다면, 우리는 압박을 받을 때 혀를 잘못 사용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급하게 서약을 할지 모릅니다. 야고보는 경박한 서약을 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더는 맹세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한 말을 끊임없이 서약으로 확약하는 것은 또한 위선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진실만을 말하면서, 우리의 예라는 말은 예를, 아니오는 아니오를 의미하게 해야 합니다. (마태 5:33-37) 물론, 야고보는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이 그릇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우리의 기도
18.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계속 기도”하고 “시를 노래”해야 합니까?
18 우리가 우리의 말을 제어하고 참을성을 나타내고 하느님에 대한 건전한 믿음을 유지하려면, 기도가 우리의 생활에서 주된 역할을 하게 해야 합니다. (야고보 5:13-20) 특히 시련 아래 있을 때 우리는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즐겁다면,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의 기념식을 제정하셨을 때 그분과 그분의 사도들이 했던 것처럼, “시를 노래”합시다. (마가 14:26, 「신세—참조주」 각주 참조) 때때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그러한 감사함으로 가득 차서 심지어 마음으로도 찬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고린도 첫째 14:15; 에베소 5:19) 그리고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노래로 여호와를 칭송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19. 우리가 영적으로 병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며, 왜 그러한 단계를 밟아야 합니까?
19 우리가 아마도 그릇된 행실이나 여호와의 식탁에서 정기적으로 먹지 못한 일 때문에 영적으로 병들어 있다면,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상태에 있다면, 겸손하게 장로들을 불러서 그들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게 합시다. (잠언 15:29) 그들은 또한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름을 바를’ 것입니다. 상처에 바른, 통증을 덜어 주는 기름처럼, 그들의 위로하는 말과 성경적인 교훈은 우울증과 의심과 두려움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으로 뒷받침된 기도일 경우, ‘믿음의 기도는 우리를 낫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병이 심각한 죄 때문에 생긴 것임을 장로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의 잘못을 친절하게 밝혀 주고 우리를 도와 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시 141:5) 그리고 우리가 회개한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장로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20. 우리는 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까?
20 ‘우리의 죄를 서로 숨김없이 고백하는 것’은 죄를 더 짓지 않도록 억제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것은 상호간의 동정심을 북돋워 줄 것이며, 동정심이라는 특성은 우리를 움직여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유익을 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데, ‘의로운 사람’—믿음을 나타내고 하느님께서 올바르다고 여기시는 사람—의 기도는 여호와와 관련하여 많은 일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첫째 3:12) 예언자 엘리야도 우리처럼 약점이 있었지만, 그의 기도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하자 삼 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시 기도하자, 정말 비가 내렸습니다.—열왕 상 17:1; 18:1, 42-45; 누가 4:25.
21. 동료 그리스도인이 “진리로부터 그릇 인도되었”을 경우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까?
21 어떤 회중 성원이 “진리로부터 그릇 인도되”어 올바른 가르침과 행실에서 벗어났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는 성서의 교훈과 기도와 그 밖의 도움을 통하여, 그가 잘못을 버리고 돌아서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공한다면, 그로 인해 그 사람을 그리스도의 대속 마련 아래 머물게 하고 영적인 죽음과 멸망의 정죄에서 구하는 것이 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도와 줌으로써, 우리는 그의 허다한 죄를 덮어 주게 됩니다. 책망을 받은 죄인이 그릇된 행로에서 돌아서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우리는 우리가 그의 죄를 덮어 주는 데 기여한 사실에 대하여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시 32:1, 2; 유다 22, 23.
우리 모두를 위한 편지
22, 23. 우리는 야고보의 말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야 합니까?
22 확실히, 야고보의 편지에는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의 편지는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편애를 하지 말라고 권고하며, 올바른 활동에 참여하도록 강력히 권합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혀를 제어하고, 세상의 영향력을 저항하고, 평화를 증진할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그의 말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참을성 있고 신심 깊은 사람이 되게 합니다.
23 야고보의 편지가 원래 기름부음받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편지에 들어 있는 교훈의 도움으로 우리의 믿음에 고착해야 합니다. 야고보의 말은 믿음을 강화시켜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에서 단호한 행동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이 편지는 믿음이 지속적인 것이 되게 해주어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기간인 오늘날, 참을성 있고 신심 깊은 여호와의 증인이 되게 합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일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왜 자기들의 태도와 행실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습니까?
◻ 야고보는 부자들에게 무슨 경고를 합니까?
◻ 우리는 왜 참을성을 나타내야 합니까?
◻ 우리는 왜 정기적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19면 사진 자료 제공]
Pictorial Archive (Near Eastern History) Est.
[23면 삽화]
일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동료인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 더욱 참을성을 나타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24면 삽화]
그리스도인들은 참을성 있고 사랑이 많으며 신심 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