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 생활함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한 1서 3:10.
1, 2. 우리가 「요한 1서」의 연구를 계속함에 있어서, 그 사도의 어떤 교훈을 고려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는 우주적인 가족을 가지고 계시며, 지금 얼마의 사람들은 그 가족에 속해 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릅니까?
2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쓴 첫 번째 편지에서, 크게 은총을 받은 이 사람들의 신분을 밝혀 줍니다. 또한 요한은 이 은총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훈을 해줍니다. 그리고 요한의 말은 여호와의 헌신한 증인들 모두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참으로 크나큰 하나님의 사랑!
3.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세상은 그들을 어떻게 봅니까?
3 요한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을 언급합니다. (요한 1서 3:1-3을 읽을 것.) 여호와께서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영적 아들들로 입양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어 참으로 크나큰 사랑을 나타내셨읍니다! (로마 5:8-10) 그들이 가진 경건한 영, 목표, 희망을 불의한 인간 사회인 “세상”은 갖지 못합니다. 그러한 세상적인 사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추종자들을 미워하며, 따라서 세상은 아버지도 미워합니다. (요한 15:17-25) 그러므로 세상은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개별적으로는 알지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모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린도 전 2:14.
4. 하늘 생명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현재,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충실한 가운데 죽어 영의 몸을 가진 하늘 생명으로 부활된 후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빌립보 3:20, 21)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타내심이 되면,”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그와 같”게 될 것이며, “그의 계신 그대로,” 곧 “영이신 주[여호와]”를 “볼 것”입니다. (II 고린도 3:17, 18, 새번역, 신세 참조) 하늘 생명의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여호와]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현재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하늘 영역에 계신 깨끗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소망과 일치하게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시 99:5, 9; 고린도 후 7:1.
의를 실천하라
5, 6.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는 자마다 무엇을 행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 점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거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5 하나님의 자녀로 생활하는 것은 또한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한 1서 3:4, 5을 읽을 것.) 여호와의 관점에서 볼 때, “죄를 짓는 [습관적으로 범하는, 신세] 자마다 불법을 [습관적으로, 신세] 행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바로 여호와의 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33:22; 야고보 4:12) 모든 “죄는 불법,” 곧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영에 반대되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인간으로 “나타내신 바 된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그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전혀 모자람이 없는 충분한 속죄 희생을 하나님께 바치실 수 있었읍니다.—이사야 53:11, 12; 히브리 7:26-28; 베드로 전 2:22-25.
6 “그[아들]와 연합하여 거하는 자는 누구나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지 않습니다.” (신세) (요한 1서 3:6을 읽을 것.)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때로 한번의 죄를 범하는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죄짓는 것이 아들과 연합한, 그래서 아버지와 연합하여 거하는 사람들에게는 습관적인 것이 아닙니다.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는 자들은 믿음의 눈으로 예수를 “보지” 못하였읍니다. 그리고 배교자들과 같은 습관적인 죄인들은, 죄를 속해 주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그리스도를 “알지”도, 인식하지도 못합니다.—요한 1:36.
7, 8. 요한 1서 3:7, 8에 따르면, 고의적으로 습관적인 죄를 짓는 자는 누구에게 속한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이 점과 관련하여 무엇을 하기 위해서였읍니까?
7 요한은 미혹당하는 일에 대해 경고합니다. (요한 1서 3:7, 8을 읽을 것.) 사도 요한은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 다음 이렇게 부언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써] 의를 행하는 자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로우니라.]” 우리의 죄의 상태로 인해, 우리는 위대하신 본 되시는 분만큼 의로와지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과분하신 친절로 인해, 예수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은 현재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 생활할 수 있읍니다.
8 고의적으로 습관적인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여 있읍니다. 마귀는 여호와께 반역하던 “처음부터” 범죄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죄와 악을 조장하는 사단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였읍니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 가운데는,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 마련으로 아담의 죽음의 영향을 제거하고, 스올(하데스)에 있는 자들을 부활시키고,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일이 있읍니다. (창세 3:15; 고린도 전 15:26) 그때까지, 우리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큰 무리”는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고 불의를 행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
9.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의미에서 “죄를 습관적으로 범할 수 없”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9 요한은 그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다른 점을 말합니다. (요한 1서 3:9-12을 읽을 것.)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합니다. 즉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재생하는 씨,” 곧 사람이 하늘 소망으로 “거듭나게” 하는 성령은, 개개인이 그 영을 거슬러 “근심”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거두시게 하지만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머뭅니다. (베드로 전 1:3, 4, 18, 19, 23, 신세; 에베소 4:30)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이 계속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갖기 위해서는 “죄를 습관적으로 범할 수 없읍니다.” (신세) “새 성품”을 가진 “새로운 창조물”로서 그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힘씁니다. 그는 “정욕에서 오는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피”하였으며, 습관적인 범죄자가 될 마음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고린도 후 5:16, 17; 골로새 3:5-11, 신세; II 베드로 1:4, 새번역.
10.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10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이것입니다.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는] ···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마귀의 자녀들을 두드러지게 해주는 특성은 불의이기 때문에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 합니다. 배교자들은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로 그렇게 하고 싶어합니다.—잠언 4:14-16.
11. (ㄱ)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 사람들을 식별하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ㄴ) 가인의 행로를 숙고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함을 알게 됩니까?
11 더우기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합니다. 사실상,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생활한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13:34) 그러므로 우리는 “가인같이 하지” 않습니다. 가인은 살인자인 사단의 특성을 나타내어 난폭하게도 ‘그 아우를 죽임’으로써 자신이 “악한 자에게 속”하였음을 나타냈읍니다. (창세 4:2-10; 요한 8:44)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는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왔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가인의 행로를 숙고해 봄으로써 우리의 영적 형제들을 그와 같이 미워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
12.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어떻게 “알”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2 우리가 가인을 본받는다면, 영적으로 죽게될 것입니다. (요한 1서 3:13-15을 읽을 것.) 가인은 자기 동생을 너무나도 미워한 나머지 죽였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이 그와 같이 우리를 미워한다해도 놀라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그러리라고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가 13:13)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형제[곧, 우리의 동료 여호와의 증인들]를 사랑함으로 [영적] 사망에서 옮겨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고, 즉 확신하고 있읍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그 형제 사랑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범과와 죄 안에서 “사망”해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내린 단죄를 우리에게서 거두시어, 영적 사망 상태에서 일으키시고,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주셨읍니다. (요한 5:24; 에베소 2:1-7) 사랑이라곤 전혀 없는 배교자들에게는 그러한 희망이 전혀 없읍니다.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영적] 사망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13.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는 경우, 이 문제를 기도로 아뢰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참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입니다. (가인이 질투와 미움 때문에 아벨을 죽였을 때처럼) 실제로 목숨을 뺏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미움을 품은 자는 자기의 영적 형제가 살아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마음을 읽으시므로, 미움을 품은 자는 단죄받은 상태에 있읍니다. (잠언 21:2; 비교 마태 5:21, 22.) 회개하지 않는 그런 ‘살인자,’ 곧 동료 신자를 미워하는 자마다 “영생[영원한 생명, 신세]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누구든지 동료 ‘증인’을 은밀하게 미워한다면, 우리의 영을 형제 사랑의 영으로 바꾸기 위해 여호와의 도움을 기도로 구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14. 우리는 어느 정도나 형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까?
14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 생활하려면, 말과 행동으로 형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요한 1서 3:16-18을 읽을 것.) 그렇게 하는 것은 분명히 가능합니다. “그[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 정도로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같은 원칙에 근거한 사랑(희랍어, 아가페)을 동료 신자들에게 나타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박해받을 때,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사도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은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로마 16:3, 4; 요한 15:12, 13.
15. 만일 어떤 형제가 궁핍하고 우리에게 “이 세상 재물”이 있다면, 사랑은 우리로 어떻게 하게 할 것입니까?
15 우리가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도 내 놓는다면 형제들을 위해 해야 할 더 적은 일들은 더욱 기꺼이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재물”—세상이 제공할 수 있는 돈, 음식, 옷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궁핍한 형제를 “보”게 될 수 있읍니다. 그 형제를 그냥 무심코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주시하게 될 수 있읍니다. 그가 처한 곤경으로 인해 우리의 “부드러운 동정심,” 곧 깊은 감정의 “문”이 열릴 수 있읍니다. (신세) 그러나 그 형제를 도우려는 우리의 의도가 이기심으로 꺾이게 함으로써 그 “문”을 굳게 닫는다면 어떠하겠읍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우리 속에 거하겠읍니까? 단순히 형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형제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만일 어떤 형제가 굶주리고 있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이지, 단순히 몇 마디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야고보 2:14-17.
우리를 단죄하지 않는 마음
16. (ㄱ)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 마음보다 크”십니까? (ㄴ) 요한의 말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그 다음에 요한은 우리가 여호와의 자녀임을 확증해 주는 것들을 지적합니다. (요한 1서 3:19-24을 읽을 것.) “이로써,” 곧 우리가 형제 사랑을 나타낸다는 사실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되고, 배교자의 망상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 있”읍니다. (현대인의 성경) (시 119:11) 혹시 우리가 동료 숭배자들에게 사랑을 충분히 나타내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단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거짓이 없는 형제 사랑’과, 우리가 죄를 저항해서 싸우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자비를 보이십니다. (베드로 전 1:22; 시 103:10-14) 우리가 행함으로 형제 사랑을 증명하고 있고 죄를 숨기지 않아 떳떳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단죄, 신세] 할 것이 없으면,” 기도로 ‘우리는 하나님께 향하여 거리낌없이 말합니다.’ (신세) (시 19:12)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데,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17. 하나님의 “계명”에는 무슨 두 가지 요구 조건이 들어 있읍니까?
17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기대한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구 조건이 포함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1)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믿고, 대속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예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빌립보 2:9-11) (2) 우리는 또한 예수께서 명령하신 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 15:12, 17)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믿음을 실천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18.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와 연합하여 거하시는 줄을’ 어떻게 압니까?
18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주 안에 거”하는, 곧 여호와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비교 요한 17:20, 21.)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우리와 연합하여, 신세] 거하시는 줄을” 어떻게 ‘우리가 압’니까?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고 형제 사랑을 포함하여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가 여호와와 연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갈라디아 5:22, 23.
경계하라!
19, 20. ‘영감받은 표현들을 시험’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이 점과 관련하여 요한은 무슨 도움을 줍니까?
19 다음으로 요한은 우리가 어떻게 경계해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요한 1서 4:1을 읽을 것.) 우리는 모든 영, 곧 모든 “영감받은 표현”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신세) 도리어 “영들[영감받은 표현들, 신세]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이 기만적인 선생들 중 적어도 얼마는 당시 여기 저기 여행하면서 여러 회중들과 연합하고 있었으며,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하였읍니다. (사도 20:29, 30; 요한 2서 7) 그러므로 충실한 사람들은 경계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20 제 1세기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영감받은 말에 대한 분별력,” 곧 하나님의 활동력의 기적의 선물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분명히 그러한 선물을 통해서 영감받은 표현들이 여호와께 속한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 12:4, 10, 신세) 그러나 요한의 경고는 전체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것 같으며, 오늘날 배교자들이 ‘여호와의 증인’의 믿음을 파괴하려고 할 때 ‘증인’에게 도움이 됩니다. ‘영감받은 말을 분별하는’ 영의 선물이 지나가긴 했지만, 요한의 말은 가르치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지, 악귀적인 영향력의 인도를 받는지 분별하는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21. “영감받은 표현들”을 시험하는 한 가지 방법은 무엇이었읍니까?
21 시험하는 한 가지 방법을 살펴 봅시다. (요한 1서 4:2, 3을 읽을 것.)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영감받은 표현, 신세]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우리는 예수께서 한때 인간으로서 생활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며, 우리의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진리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합니다. (마태 3:16, 17; 17:5; 20:28; 28:19, 20)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영감받은 표현, 신세]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오히려 “이것이” 그리스도를 적대하고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들에 반대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영감받은 표현, 신세]”입니다. 요한과 다른 사도들이 그 ‘적그리스도의 영감받은 표현’이 오고 있다고 경고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고린도 후 11:3, 4; 베드로 후 2:1) 당시에 거짓 선생들이 참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22. “영감받은 표현들”을 시험하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22 “영감받은 표현들”을 시험하는 또 다른 방법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4-6을 읽을 것.) 여호와의 종들로서 우리는 거짓 선생들을 ‘이겨,’ 즉 물리쳐, 우리를 하나님의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려는 시도들을 꺾었읍니다. 이러한 영적 승리가 가능했던 것은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해 계신 하나님께서, 불의한 인간 사회인 “세상에 있는 이[마귀]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 4:4) 배교자들은 “세상에 속”하고, 세상의 악한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교자들의 “영감받은 표현들”이 비성경적인 특성을 띠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표현들을 배척합니다.
23.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고 있음을 식별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23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아는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우리의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양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비교 요한 10:4, 5, 16, 26, 27.) 물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거짓 선지자들, 곧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께 속하”여 영적으로 건전한 교훈을 베푸는 요한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으로 진리의 영[영감받은 표현, 신세]과 거짓의 영[영감받은 표현, 신세]을 분별할 수 있읍니다.”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의 숭배자들의 가족을 이루는 우리는 하나님의 조직을 통하여 공급되는 성경의 진리의 “순결한 언어”를 말합니다. (스바냐 3:9, 신세) 그리고 양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말로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24. 다음에 요한은 무엇을 알려 줄 것입니까?
24 여기까지,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 생활하고자 한다면 달해야 할 몇 가지 기본적인 요구 조건들을 설명하였읍니다. 다음에 요한은 우리가 항상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야 할 이유를 알려 줄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읍니까?
◻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읍니까?
◻ 가인의 행로를 숙고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함을 알게 됩니까?
◻ 우리는 어느 정도나 형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까?
◻ “영감받은 표현들”을 어떻게 시험할 수 있읍니까?
[17면 삽화]
가인의 행로를 숙고해 보면 우리는 형제들을 결코 미워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게 된다
[18면 삽화]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하나님의 조직을 통하여 공급되는 성경의 진리의 “순결한 언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