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라
“사랑 안에 머무는 자는 하나님과 연합해 있[읍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 1서 4:16, 신세; 5:4.
1, 2. 요한 1서 4:7-5:21에는 무슨 특성들이 특히 강조되어 있읍니까?
여호와께서는 사랑의 구현체이시며,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경건한 특성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영감받아 쓴 첫 번째 편지의 뒷부분에서 이 점을 밝힙니다.
2 참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세상을 이기고 여호와의 은총 가운데 안전히 거할 수 있읍니다. 이제 요한의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연구하면서,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는 일의 중요성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3, 4. 사랑을 나타내는 일과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3 요한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요한 1서 4:7, 8을 읽을 것.) “사랑하는 자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강력한 권고를 받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 곧 여호와께서 사랑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영으로 출생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특성들과 목적들 그리고 여호와께서 사랑을 나타내시는 방법을 잘 알게 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다른 양들”의 “큰 무리”도 이같이 “하나님을 알”아 왔읍니다.
4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성들을 진실로 인식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우리의 주권자이신 그분께 고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여호와의 탁월한 특성이며, 여호와께서 인류를 위해 베푸신 영적, 물질적 마련들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 있읍니다.
5.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나타내주는 가장 큰 증거는 무엇입니까?
5 다음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나타내 주는 가장 큰 증거가 언급되어 있읍니다. (요한 1서 4:9, 10을 읽을 것.)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죽어 마땅한 죄인들인]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예수는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유일한 창조물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독생자”이십니다. (요한 1:1-3, 14; 골로새 1:13-16)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간이 되사 봉사의 직무를 공개적으로 수행하시고, 그 다음에 희생의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세상에 보내심”을 받으셨읍니다. (요한 11:27; 12:46) 하늘에서나 땅에서 ‘저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예수의 대속 희생의 가치를 믿어야 합니다.
6.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읍니까?
6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읍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될 수 있게 되었읍니다. (로마 3:24, 25; 히브리 2:17) 당신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과분하시게도 이 비할 데 없이 큰 사랑을 나타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까?
7. (ㄱ) 우리가 여호와를 보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ㄴ) 우리가 나타내는 형제 사랑은 무엇을 증명해 줍니까?
7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마땅히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요한 1서 4:11-13을 읽을 것.)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보았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읍니다. (출애굽 33:20; 요한 1:18; 4:24) 그러나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우리는 이 특성의 근원되시는 분을 사랑함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형제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룬다’는 것, 즉 온전히 표현된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그와 연합하여, 신세] 거하”는 줄을 압니다. 우리가 나타내는 형제 사랑은 여호와의 영이 우리 가운데서 작용하고 있음을 증명해 줍니다. 사랑은 여호와의 영의 열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5:22, 23)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8.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해 있다는 또 다른 증거는 무엇입니까?
8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해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읍니다. (신세) (요한 1서 4:14-16ㄱ을 읽을 것.) 예수께서 지상에서 하신 일과 인류를 위해 어떻게 고통을 당하셨는지를 “보았”기에, 요한은 “아버지가 아들을” 죄많은 인류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증거’할 수 있었읍니다. (요한 4:42; 12:47) 더우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시인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연합하여 거하시고 우리도 하나님과 연합하여 거’합니다. (신세 참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실천하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공개적으로 증거할 필요가 있읍니다. (요한 3:36; 로마 10: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확신한다면, 우리가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에 속해 있든지 “다른 양들”에 속해 있든지, 여호와와 연합해 있다는 부가적인 증거를 갖게 됩니다.
9. (ㄱ)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 점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까? (ㄴ) ‘온전한’ 사랑은 어떻게 하게 합니까?
9 그 다음에 요한은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알려 줍니다. (요한 1서 4:16ㄴ, 17을 읽을 것.)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사랑 안에 거”하여, 여호와의 영의 열매인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하나님과 연합하여, 신세] 거”합니다. 여호와께 대한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 여호와께 대해 온전히 표현되었다면, 우리는 동료 신자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비교 12절.) ‘온전한’ 사랑은 또한 현재 하나님께 기도로 “거리낌 없이 말”하게 하며(신세), 그리스도의 임재와 관련되어 있는 “심판 날”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그때에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나타낸다면, 그런 의미에서 “주[예수]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이 인류 세상에서, 예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총을 누리고 있읍니다.
10. 자기 안에서 사랑이 “온전”하게 된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는 일이 없읍니까?
10 자기 안에서 사랑이 “온전”하게 된 사람들은 기도에 방해가 되는 두려움을 느끼는 일이 없읍니다. (요한 1서 4:18, 19을 읽을 것.) “두려움에는 형벌[억제하는 것, 신세]이 있”으며, 그 억제하는 것은 우리가 여호와께 거리낌없이 나아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었다면, 우리 마음에 이 특성이 가득차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만들 것이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기도로 늘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게 해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께 기도할 분명한 이유가 있읍니다. 요한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랑함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1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이치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요한 1서 4:20, 21을 읽을 것.) 자기의 영적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보고 그 형제의 경건한 특성들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 형제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마땅히 더 쉬워야 합니다. 참으로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읍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이치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누가 세상을 이기는가?
12.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히 무슨 다른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까?
12 그 다음에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요한 1서 5:1-5을 읽을 것.) 먼저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메시야, 곧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여호와께서 영으로 출생시키신 자라고 지적합니다. 더우기 낳으신 분인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서 난” 다른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녀들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며, 당연히 서로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형제 사랑은 땅의 희망을 가진 “다른 양들”의 “큰 무리”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는 특성입니다.—요한 10:16; 계시 7:9.
13. (ㄱ) 하나님의 계명들이 우리에게 “무거운 것”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이깁’니까?
1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사실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의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쁘게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이 우리에게 “무거운 것”이 아닌 이유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모든 것이, 신세]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고 요한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란 “세상을 이기”도록, 곧 여호와의 계명들을 범하게 하려고 유혹들을 뻗치는 불의한 인간 사회에 대해 승리를 거두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의미할 수 있읍니다. (요한 16:33) “세상을 이긴 이김은” 하나님, 그분의 말씀, 그분의 아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면, 세상의 잘못된 생각과 부도덕한 행로를 배척하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세상을 이깁’니다.
14. (ㄱ) 예수께서는 어떻게 ‘물로’ 임하셨읍니까? (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어떻게 “피로” 나타났읍니까? (ㄷ) 성령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였읍니까?
14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이 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요한은 ‘세 증거하는 이’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제시하는 증거를 언급합니다. (요한 1서 5:6-8을 읽을 것.) 요한은 먼저 예수께서 ‘물로 임’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께 자신을 제공하는 것을 상징하는 침례를 물에서 받으셨을 때,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읍니다. “이는 내 아들, 사랑하는 자이다. 내가 그를 승인하였다.” (마태 3:17, 신세) 또한, 그리스도께서 대속물로 죽으시면서 흘리신 “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나타났읍니다. (디모데 전 2:5, 6) 더우기 요한은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침례받으실 때 성령이 내려온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해 주었읍니다. (마태 3:16; 요한 1:29-34) 여호와의 영은 예수께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고 강력한 일들을 행할 수 있게 해주었읍니다. (요한 10:37, 38; 사도 10:38)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영을 사용해서 이례적으로 어두워지고, 지진이 일어나고,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그후 하나님께서는 그 동일한 영으로 예수를 부활시키셨읍니다.—마태 27:45-54.
15. ‘증거하는 이 셋’은 무엇입니까?
15 따라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이가 셋” 있읍니다. 그것은 (1) 성령, (2) 예수께서 침례받으신 물과 침례가 의미하는 것 (여호와께 자신을 제공하는 것), (3) 예수께서 대속물로서 죽으시면서 흘리신 피입니다. 이 세 가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면에서 “합하여 하나”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아들을 참으로 믿어야 합니다.—비교 신명 19:15.
하나님의 증거
16. 여호와께서는 예수에 관하여 어떻게 증거하셨읍니까?
16 하나님 자신도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셨읍니다. (요한 1서 5:9-12을 읽을 것.) “만일 우리가 [불완전한] 사람들의 증거를 [우리가 통상 대화할 때나 법정에서 하듯이 진실하게]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요한 8:17, 18)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디도 1:2; 마태 3:17; 17:5) 더우기 하나님께서는 ‘증거하는 이 셋’ 곧 자신의 성령, 예수께서 침례받으신 물,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 배후에 계십니다.
17.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17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읍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증거들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자신의 아들에 관하여 신뢰할 만한 증거를 하시는 분으로 “믿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자인 것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주어진 증거를 집약해 놓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영원한 생명, 신세]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음으로써만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읍니다. (요한 11:25, 26; 14:6; 17:1-3)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써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과분하신 선물이 있읍니다. (요한 20:31) 그러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이 생명”을 즐기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이 있다!
18. 요한이 “이것”을 쓴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8 다음으로 요한은 그가 편지를 쓴 기본 목적을 제시하고, 기도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요한 1서 5:13-15을 읽을 것.) 요한이 “이것”을 쓴 것은 ‘우리에게 영생[영원한 생명, 신세]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읍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우리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비교 요한 1서 3:23.) 그리고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배교자들은 그 믿음을 깨뜨릴 수 없읍니다.—요한 1서 2:18, 19.
19. (ㄱ) 요한 1서 5:14, 15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무슨 “확신”을 가지고 있읍니까? (ㄴ) 우리가 합당하게 기도로 구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19 우리는 기도로 무엇이든지 “그의 뜻대로” 구하면 ‘들으신’다는 “확신” (새번역), 곧 ‘담대함’을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 여호와의 영, 경건한 지혜, 악한 자로부터 구출되는 것과 같은 것들을 합당하게 기도로 구합니다. (마태 6:9, 13; 누가 11:13; 야고보 1:5-8)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기도를 들으시는 주”이신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을] 줄을 또한 아느니라.” (신세 참조)—시 65:2.
20, 21. (ㄱ)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란 무엇입니까? (ㄴ) “사망에 이르는 죄”에 관하여 기도하는 것이 잘못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그 다음에 요한은 기도와 두 가지 형태의 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요한 1서 5:16, 17을 읽을 것.)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는 고의적인 것이 아니며, 회개한 범죄자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사도 2:36-38; 3:19; 야고보 5:13-18)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에 관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죄는 성령을 거스르는 고의적인 죄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죄를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태 12:22-32, 새번역 참조; 히브리 6:4-6; 10:26-31) 그러한 죄인들은 게헨나에 가서 “둘째 사망”의 영원한 멸망을 당합니다. (계시 21:8; 마태 23:15, 새번역)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최종 심판관이시긴 하지만, 우리는, 고의적으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는 경우에 죄인을 위하여 기도함으로써 여호와를 불쾌하시게 할 위험을 무릅쓰지 않습니다.
21 그러므로 “누구[특히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장로]든지 형제가 사망[“둘째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십시오. “그러면 ··· [하나님이] 저[그 죄인]에게 생명을 주시”어, 그 죄인을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의로운 표준과 관련해서 볼 때 “모든 불의가 죄,” 곧 과녁을 빗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읍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죄가 우리의 불완전성으로 인한 것이며, 우리가 그 죄에 대해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그 죄를 덮어 주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편지의 요점들
22. 누가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을 “만지지도 못”하며, 그러한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무엇을 기도로 구할 수 있읍니까?
22 요한은 이제 자기 편지의 기본적인 점들을 요약합니다. (요한 1서 5:18-21을 읽을 것.)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은 모두 “범죄치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지, 신세] 아니”합니다. 성령에 의해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사단]가 저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그같이 충성스러운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은 악한 자로부터 구출해 달라고 확신있게 기도할 수 있으며,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사단의 “화전”이 가하는 영적 해를 피할 수 있읍니다.—마태 6:13, 난외주; 에베소 6:16.
23. 어떻게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읍니까?
23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자신들이 여호와의 영적 아들들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읍니다. 기름부음받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들이 사단이 “만지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나 “온 세상[불의한 인간 사회]은 악한 자[사단 마귀] 안에 처”해 있읍니다. (에베소 2:1, 2; 계시 12:9) 세상은 사단의 악한 영향력 아래서 그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습니다.
24. 예수께서는 무슨 목적으로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읍니까?
24 어떤 거짓 선생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읍니다. (요한 2서 7) 그러나 이 편지에 언급된 증거를 통해서 요한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음을 안다’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신세) (요한 1서 1:1-4; 5:5-8) 그에 더해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도록 즉 하나님에 관해 점진적으로 이해하도록 하셨읍니다. (마태 11:27)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참되신 분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해 있읍니다.” (신세)—비교 요한 17:20, 21.
25.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요한 1서 5:21에 나오는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읍니까?
25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에 속해 있든지 “다른 양들”에 속해 있든지 간에, 참 하나님 여호와와 연합해 있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제 1세기에도 오늘날처럼 우상 숭배에 가담하게 하려는 유혹들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아버지가 베푸는 듯한 다음과 같은 교훈으로 자기 편지를 끝맺은 것은 적절하였읍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형상 앞에서 절하지 않습니다. (출애굽 20:4-6)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계실 자리에 우리 자신이나 쾌락이나 그외의 어떤 다른 것을 두는 것은 잘못이리라는 것을 압니다. (디모데 후 3:1, 2, 4)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은 정치적 “짐승”과 그 “형상”을 숭배하지 않도록 막아 줍니다. (계시 13:14-18; 14:9-12, 신세)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여 영원한 생명이라는 아버지의 선물을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모든 우상 숭배를 피하려는 굳은 결의를 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갖게 된 여호와와의 고귀한 관계를 우상 숭배로 인해 깨뜨리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합시다.
우리를 위한 지속적인 도움
26. 「요한 1서」의 특징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26 요한이 영감을 받아 쓴 첫 번째 편지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우상 숭배를 피하도록 도와주었읍니다. 그 편지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배교자들의 거짓말을 물리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오늘날에도 동일한 목적을 달성합니다. 예를 들어, 그 편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간으로 생활하셨으며, 죄를 위해 “화목 제물”로 죽으셨음을 증명해 줍니다. 그 편지는 “적그리스도”의 신분을 밝혀 주며,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사이의 차이를 알려 줍니다. 또한 “영감받은 표현들”이 여호와께 속한 것인지를 알아 보기 위해 시험하는 방법도 알려 줍니다. 요한의 말은, “하나님은 사랑”이며, 참다운 믿음은 세상을 이기며,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충성스러운 증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로 확신하게 해줍니다.
27. 요한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쓴 첫 번째 편지는 우리에게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27 세상의 유혹을 직면하고 있는 지금, 세상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요한의 경고를 염두에 두는 것은 얼마나 지혜로운 일입니까! 개인적 불화로 인해 우리와 어떤 동료 신자들과의 관계에 긴장이 초래되는 경우, 사도 요한의 말은, 우리가 형제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줄 수 있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요한의 교훈을 적용함으로써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는 일을 피할 수 있으며,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계속 행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 생활하고, 항상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면서, 이 영감받은 편지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나타냅시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읍니까?
◻ 우리가 여호와를 사랑한다면, 이 사실이 우리와 동료 신자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합니까?
◻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읍니까?
◻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는 셋’은 무엇입니까?
◻ 기도와 관련하여, 우리는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읍니까?
◻ 「요한 1서」는 어떤 면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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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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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독생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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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예수께서 침례받으신 물, 예수께서 흘리신 피,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