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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이익을 ‘생각함’파수대—1987 |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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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ㄱ) 노인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누구에게까지 확대되어야 합니까? (ㄴ) 연로한 부모를 부양하는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읍니까?
19 또한 노인들에 대한 우리의 염려는 그들을 부양하는 가족에게까지 미쳐야 하지 않겠읍니까? 노부모를 부양하는 한 부부는 이렇게 보고하였읍니다. “회중의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격려가 되기커녕 매우 비평적인 경우가 있읍니다. 한 자매는 ‘집회에 계속 빠지면 영적으로 병들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우리가 집회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우려는 아무런 마련도 하지 않았읍니다.” 똑같이 실망을 주는 것은,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 주세요’라는 등의 애매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흔히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읍니다. (야고보 2:16) 우리의 염려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한 부부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형제 자매들은 참으로 훌륭하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읍니다. 어떤 분들은 한번에 2, 3일씩 어머니를 간호함으로 우리로 이따금씩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였읍니다. 다른 분들은 어머니를 성서 연구에 동반합니다. 다른 분들이 우리 어머니가 건강하신지 물어 올 때는 우리에게 참으로 격려가 됩니다.”
20, 21. 노인들은 그들을 부양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협조할 수 있읍니까?
20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의 노인들은 잘 돌봄을 받고 있읍니다. 그러면 연로한 증인들은 형제 자매들이 그러한 일을 즐거움으로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비교 히브리 13:17.) 노인들을 돌보기 위한 장로들의 마련에 협조하도록 하십시오. 무엇이든지 베풀어진 친절에 대해 감사함을 나타내고,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비평적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노령의 아픔과 고통이 심하기는 하지만, 유쾌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나타내도록 노력하십시오.—잠언 15:13.
21 많은 노인들이 ‘형제들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들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알 수 없읍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렇지만 노인들을 부양할 주된 책임은 그들의 자녀에게 있읍니다. 여기에는 무엇이 관련되며, 이 도전에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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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한 부모에게 경건한 정성을 다함파수대—1987 |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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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한 부모에게 경건한 정성을 다함
“저희[자녀나 손자녀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경건한 정성을 다하여, 신세]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디모데 전 5:4.
1, 2. (ㄱ) 성서는 연로한 부모를 부양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말합니까? (ㄴ) 그리스도인이 이 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왜 심각한 일입니까?
어린 자녀는 부모의 양육과 보호를 받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부모에게서 충고와 지원을 구합니다. 그러나 이제 부모는 노년이 되어, 누군가 지원해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경건한 정성을 다하여, 신세]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 전 5:4, 8.
2 오늘날 수만명의 여호와의 증인은 연로한 부모를 부양합니다. 그들이 부양하는 것은 단순히 “친절”(리빙 바이블)이나 “의무”(예루살렘 성서) 때문이 아니라 “경건한 정성” 곧 하나님에 대한 공경심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도움이 필요한 때에 그들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배반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인정합니다.—비교 디도 1:16.
부양의 ‘짐을 지라’
3. 부모를 부양하는 일이 참으로 도전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연로한 부모를 보살피는 일은 참으로 도전이 따르는 일이 되었읍니다. 특히 서양에서 그러합니다. 가족들은 흔히 흩어져 삽니다. 생활비는 억제할 수 없이 올랐읍니다. 가정 주부들도 흔히 직장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리하여 노년의 부모를 부양하는 일은 큰 부담이 될 수 있읍니다. 특히 부양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 더는 젊은 사람이 아닐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한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도 50대가 되었고, 성장한 자녀들과 우리가 도와야 할 손자녀들이 있읍니다.”
4, 5. (ㄱ) 성서는 부양의 짐을 흔히 누구와 분담할 수 있음을 알려 줍니까? (ㄴ) 예수 당시에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부모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였읍니까?
4 바울은 “자녀나 손자들”이 책임을 분담할 수 있음을 알려 주었읍니다. (디모데 전 5:4) 그러나 때때로 친형제 자매들이 그들의 부양의 ‘짐을 지’기를 서로 꺼리는 경우가 있읍니다. (비교 갈라디아 6:5.) 한 장로는 “내 누님은 상황을 본체만체할 뿐입니다”라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모른 체하는 것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할 수 있읍니까? 예수께서 한때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마가 7:10-13.
5 만일 어느 유대인이 빈곤한 부모를 돕는 데 관심이 없다면, 그는 다만 자기의 소유물을 “고르반” 곧 성전 사용을 위하여 바쳤다고 선포하기만 하면 그만이었읍니다. (비교 레위 27:1-24.) 그러나 그는 헌물하겠다고 한 이 물건을 즉시 바쳐야 할 의무 아래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소유물을 무한정 가지고 있을 수 (틀림없이 사용할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재정적 도움을 필요로 할 때라도, 그는 자기의 모든 소유가 “고르반”이라고 경건하게 선언함으로써 그의 의무를 그럭저럭 피할 수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행위를 사기로 단죄하셨읍니다.
6. 오늘날 부모에 대한 의무를 회피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는 어떤 일들이 있읍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읍니까?
6 그러므로 자기 의무를 회피하려고 구실만을 대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읍니다. (예레미야 17:9, 10) 재정 문제나 건강의 쇠퇴 혹은 이와 비슷한 환경 때문에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제한받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부 자녀들은 단순히 자산, 시간 그리고 사생활을 부모의 복지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읍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면서, 나태한 태도로 부모를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은 얼마나 위선적인 일입니까?
가족적 협조
7. 어떻게 가족들이 연로한 부모를 부양하는 일에 협조할 수 있읍니까?
7 일부 전문가들은 노년의 부모와 관련된 어려운 문제가 일어나면 가족 회의를 열 것을 권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주된 책임을 져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허심 탄회하게 “의논”하면 가족들은 흔히 책임을 분담하는 방안을 짜낼 수 있읍니다. (잠언 15:22) 멀리 떨어져서 사는 가족이라면 재정적으로 기여하고, 주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가족들은 자질구레한 일을 돌보거나 교통 수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부모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데 동의하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읍니다. 80대의 한 자매는 자녀들의 방문에 관하여 “그것은 마치 좋은 약과 같다”고 말합니다.
8. (ㄱ) 전 시간 봉사를 하는 가족 성원은 부모를 부양하는 일에서 제외됩니까? (ㄴ) 일부 전 시간 봉사자들은 부모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나 노력하였읍니까?
8 그렇지만 전 시간 봉사를 하는 성원이 있다면 미묘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읍니다. 전 시간 봉사자들이라고 해서 그러한 의무를 피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전 시간 봉사자들은 부모를 부양하는 일에 보통 이상의 노력을 바쳐왔읍니다. 한 순회 감독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를 부양한다는 것이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전혀 상상조차 못했읍니다. 특히 동시에 전 시간 봉사의 임무를 다하려고 할 때 그러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인내의 한계에 도달했으며, ‘정상적인 것을 초월한 능력’이 필요하다고 느꼈읍니다.” (고린도 후 4:7, 신세) 여호와께서 그러한 전 시간 봉사자들에게 계속 힘주시기를 기원합니다.
9. 부모를 부양하기 위하여 전 시간 봉사를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격려할 수 있읍니까?
9 그렇지만 때때로 모든 가능성들을 조사한 후에 어떤 가족 성원이 전 시간 봉사를 중단하는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읍니다. 이해할 만하게도, 그러한 형제는 그의 봉사의 특권을 포기하는 데 대해 착잡한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이전에 선교인이었던 한 형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로하고 병약하신 어머니를 부양하는 것이 우리의 그리스도인 책임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매우 이상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읍니다.” 그러나, ‘집에서 경건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디모데 전 5:4, 신세 참조.) 또한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히브리 6:10) 오랜 세월의 전 시간 봉사를 떠난 한 부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우리가 전 시간 봉사를 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 (ㄱ) 일부 사람들이 전 시간 봉사를 성급하게 떠나는 일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가족들은 전 시간 봉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10 그렇지만 성급하게 전 시간 봉사를 떠난 일부 그리스도인들도 있읍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친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직장이나 가족에 얽매여 있지 않으니까 네가 부모를 부양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나 오늘날 수행되어야 할 가장 긴급한 일은 전파하는 일이 아닙니까? (마태 24:14; 28:19, 20) 그러므로 전 시간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 4:16) 또한 예수께서도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봉사가 가족 문제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일이 있읍니다.
11, 12. (ㄱ) 예수께서 어떤 사람에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전 시간 봉사자가 있는 가족은 어떠한 마련을 할 수 있읍니까?
11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예수의 추종자가 되라는 초대를 사양하면서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말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왕국]를 전파하라.” (누가 9:59, 60, 신세 참조.)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을 죽은 당일에 장사하였으므로, 그 사람의 아버지가 실제로 죽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단순히 연로한 부친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 살기를 원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를 부양할 다른 자녀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므로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하라’고 격려하셨던 것입니다.
12 일부 가족들은 모든 가족 성원들이 협조할 때, 전 시간 봉사를 하는 성원도 그 봉사를 중단하는 일이 없이 부모를 부양하는 일을 분담하도록 마련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예를 들면 어떤 전 시간 봉사자들은 주말이나 휴가 기간에 부모를 돕습니다. 흥미롭게도 상당한 수의 연로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전 시간 봉사를 계속하도록 강권하였읍니다. 부모 자신이 상당한 희생을 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왕국 권익을 첫째로 두는 사람들을 풍부히 축복하십니다.—마태 6:33.
부모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필요한 “지혜”와 “분별력”
13. 자녀들과 함께 살도록 부모를 모셔왔을 때 어떠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읍니까?
13 예수께서는 과부가 된 자기 어머니가 믿는 친족들과 함께 살도록 마련하셨읍니다. (요한 19:25-27) 많은 증인도 이처럼 부모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 들였으며, 그 결과로 즐거운 시간과 축복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맞지 않는 생활 방식, 제한받는 사생활 환경 그리고 매일같이 부양하는 일을 하면서 오는 긴장감은 흔히 부모를 집으로 모셔 들인 집안 식구 모두에게 좌절감을 갖게 하는 일이 있읍니다. 알쯔하이머 병이라는 노인병으로 고생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안이라는 자매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긴장하게 만듭니다”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때로는 참지 못해서 어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말하는 일이 있읍니다. 그러고 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14, 15. 이러한 환경하에서 “지혜”와 “분별력”은 가족을 건축 곧 세우는 일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14 솔로몬은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분별력, 신세]로 말미암아 견고히” 될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잠언 24:3) 예를 들어 안은 시어머니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읍니다. “나는 시어머니가 병 때문이고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였읍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므로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일 것입니다. (야고보 3:2) 그러나 충돌이 생길 때라도 화를 키우거나 감정이 폭발하게 하는 일이 없게 함으로 지혜를 나타내십시오. (에베소 4:31, 32) 가족적으로 문제를 이야기하고 타협하거나 조절할 길을 찾도록 하십시오.
15 분별력 역시 효과적으로 의사 소통을 하도록 돕습니다. (잠언 20:5) 아마 부모는 새로운 집의 생활 방식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울지 모릅니다. 또는 판단력의 결함으로 인하여 비협조적인 경향이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환경에서는 아주 단호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을지 모릅니다. (비교 창세 43:6-11.) 한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어머니는 자기 돈을 다 써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한 장로는 때때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에 호소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치적으로 이야기해도 안 될 때에는 많은 경우 ‘어머니 제발 저를 위해서 그렇게 해 주시겠읍니까?’하고 말하면 어머니는 잘 들어주십니다.”
16.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왜 아내에 대해 “분별력”을 나타내야 합니까? 그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16 흔히 부모를 부양하는 짐의 대부분을 지고 있는 것은 아내이기 때문에 분별력있는 남편은 아내가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지치는 일이 없도록 깨어 살필 것입니다. 잠언 24:10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환난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남편은 아내의 열정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한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두 팔로 나를 감싸 주면서 나의 노고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말해 줍니다. 이런 남편이 없이는 내가 도저히 이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에베소 5:25, 28, 29) 남편은 또한 아내와 함께 정기적으로 성서를 연구하고 기도할 수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아래서도 가족은 “건축,” 곧 세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
요양원 의탁
17, 18. (ㄱ) 일부 가족들은 무슨 단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까? (ㄴ) 그러한 경우 성장한 자녀들은 부모가 적응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읍니까?
17 노화 현상 연구가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를] 집에서 모시는 일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고, 그렇게 할 충분한 돈도 없는 가족의 경우가 문제입니다.” 한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어머니를 24시간 간호하려고 하기 때문에 아내의 건강이 견디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의탁하였읍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우리 마음은 매우 괴로왔읍니다.”
18 현재의 환경으로서는 요양원에 의탁하는 것이 최선책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관에 의탁되는 노인들은 흔히 당황하고 불쾌감을 갖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유기된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레타(가명)라는 한 자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조심스럽게 설명하였으며, 어머니는 이제 잘 적응하여 그곳을 집처럼 생각하게 되었읍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방문하면 부모가 적응하는 동안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며, 당신이 부모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비교 고린도 후 8:8.) 거리가 문제일 경우에는 전화나 편지 그리고 주기적인 방문을 통해서 계속 접촉하십시오. (비교 요한 2서 12.)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히 불리한 점입니다. 부모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십시오. (마태 5:3, 신세) 그레타는 “어머니에게 읽을 서적을 마련해 드리고, 가능한 대로 영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19. (ㄱ) 요양원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간호하는 것을 살펴보는 일에 어떠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까? (ㄴ) 그리스도인이 부모를 부양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어떻게 유익합니까?
19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미국에 있는 406개 요양원에 대한 연구를 보고한 바 있는데, 그 보고에 의하면 “약 5분의 1은 거주자들에게 위험성이 잠재하며 거의 반만이 최소한의 표준에 달하는 것으로 고려”된다고 합니다. 서글프게도 그러한 보고가 괴로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요양원 의탁이 불가피하다면 선택하는 데 조심해야 합니다. 직접 방문해서 깨끗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지, 직원들은 자격있는 사람들인지, 가정같은 분위기인지, 식사는 적절한지 등을 살펴볼 것입니다. 부모를 어떻게 간호하는지 최선을 다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 세상적 명절이나 오락과 관련하여 생길 수도 있는 거북한 상황을 피하도록 그들을 도우십시오. 당면한 환경 아래서 최선을 다해 부모를 간호함으로써, 죄책감을 갖는 일이 없도록 극진한 노력을 다 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괴로움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읍니다.—비교 고린도 후 1:12.
기쁨으로 주는 자, 기쁨으로 받는 자
20. 자녀들이 기쁨으로 주는 자가 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20 부모를 보살펴 드리는 일에 관하여 한 그리스도인 부인은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식사 준비와 청소를 해야 하고, 심한 증세가 일어날 때 간호하는 일, 뒤를 가리지 못할 때 이부자리를 바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의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든지 즐거이, 기쁨으로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부양하는 일을 원망스럽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부모님이 결코 갖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노력합니다.” (고린도 후 9:7) 노인들은 흔히 도움을 받는 일을 마음 내켜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나타내는 태도가 결정적 요인입니다.
21. (ㄱ) 부모는 어떻게 기쁨으로 받는 자가 될 수 있읍니까? (ㄴ) 부모가 노년을 위하여 미리 계획하는 것이 왜 현명한 일입니까?
21 동시에 부모가 나타내는 태도 역시 중요합니다. 한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를 위하여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는 결코 만족하는 일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부모 여러분, 사리에 맞지 않는 지나친 요구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성서의 교훈은 이런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고린도 후 12:14) 어떤 부모는 그들의 자원을 낭비하여 불필요하게 자녀들에게 짐이 됩니다. 그러나 잠언 13:22 (현대인의 성경)은 “선한 사람은 자기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준다고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가능한 한 미리 저축하고 대책을 마련하여 노년을 위하여 미리 계획할 수 있읍니다.—잠언 21:5.
22. 연로한 부모를 부양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22 바울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보답”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 (디모데 전 5:4) 한 형제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어머니는 20년이나 나를 양육해 주셨읍니다. 내가 한 일을 그것에 비길 수 있겠읍니까?” 연로한 부모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처럼 “집에서 경건한 정성을 다”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에게서 풍부한 상을 받을 것입니다.—에베소 6:3.
기억해야 할 점들
◻ 예수 당시에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부모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였읍니까?
◻ 연로한 부모들을 누가 돌보아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부모를 모시고 살게 되면 가족들은 어떠한 문제를 경험할 수 있으며, 그들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읍니까?
◻ 요양원에 의탁하는 것이 왜 필요하게 될 수 있으며, 부모가 그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까?
[15면 삽화]
부모를 부양하는 일을 어떻게 분담할 수 있는지 가족 회의에서 토의할 수 있다
[17면 삽화]
요양원에 의탁하는 것이 필요할 때,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노인의 감정적 영적 복지에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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