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하나님의 자비를 본받는 일
“여호와께서는 긍휼[“자비”, 「신세」]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노라.]”—사무엘 하 24:14.
1.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에 관해 어떻게 느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윗 왕은 여호와께서 사람보다 자비가 많으신 분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혹은 길이 최상의 것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그분의 방법을 배우고 그분의 진리 안에서 걷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역대 상 21:13; 시 25:4, 5) 당신도 다윗처럼 느낍니까?
2. 예수께서는 마태 복음 18:15-17에서 심각한 죄를 다루는 일과 관련하여 무슨 충고를 베푸셨습니까?
2 성서는 하나님의 생각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해주며,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갖게 해줍니다. 예수께서는, 후에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이 될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라.]” 여기에서 관련된 잘못은 단지 개인적인 사소한 잘못이 아니라, 사기나 중상과 같은 심각한 죄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단계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또 증인들을 내세울 수 있다면, 죄를 범한 사람에게서 해를 입은 사람은, 잘못이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증인들을 데리고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취할 수 있는 최후 단계입니까? 아닙니다. “만일 [죄를 범한 사람이]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회중”, 「신세」]에 말하고 교회[“회중”]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태 18:15-17; 사체로는 본지에서.
3. 예수께서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를 “이방인과 세리와 같”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3 사도들은 유대인들이었으므로 죄인을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피하였으며, 로마의 세리로 일하는 유대인들을 멸시하였습니다.a (요한 4:9; 사도 10:2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회중이 어떤 죄인을 배척한다면 그와의 교제를 중단해야 한다고 충고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점은 예수께서 때때로 세리들과 함께 계신 사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4. 마태 복음 18:17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예수께서는 왜 일부 세리와 죄인들을 가까이하셨습니까?
4 누가 복음 15:1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라.]” (사체로는 본지에서) 세리나 죄인 개개인 모두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모든” 세리와 죄인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비교 누가 4:40) 어느 세리와 죄인들이 그곳에 있었습니까? 자신들의 죄가 사해지는 데 관심이 있는 세리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세리와 죄인들 중에는 앞서 침례자 요한의 회개의 소식을 듣기 위해 그에게 나아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누가 3:12; 7:29) 그러므로 다른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나아올 때, 그분이 그들에게 전파하신 일은 마태 복음 18:17의 자신의 교훈을 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 예수를 좇”았다고 한 점에 유의하십시오. (마가 2:15; 사체로는 본지에서) 이들은 어떤 도움도 거절하면서 나쁜 생활 방식을 계속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예수의 소식을 들었으며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그들이 변화하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를 짓고 있을지라도, “선한 목자”께서는 그들에게 전파하심으로써 그분의 자비하신 아버지를 본받으셨습니다.—요한 10:14.
용서, 그리스도인의 의무
5. 용서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기본 입장은 무엇입니까?
5 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기꺼이 용서하심에 대해 이러한 진심 어린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 1서 1:9; 2:1) 용서받는 일은 제명된 사람에게도 적용됩니까?
6. 제명된 사람은 어떻게 용서받고 복귀될 수 있습니까?
6 그렇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를 범한 사람을 제명 처분할 때, 회중을 대표하는 장로들은 그에게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이 가능한 일임을 설명합니다. 그는 왕국회관 집회에 참석할지 모르며, 그곳에서 그가 회개하는 데 도움이 될 성서 교훈을 들을 수 있습니다. (비교 고린도 전 14:23-25) 시간이 흘러 그는 깨끗한 회중 안으로 복귀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그와 만날 때, 그가 회개하고 죄지은 행로를 떠났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려고 할 것입니다. (마태 18:18) 그가 회개하고 그러한 행로를 떠난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고린도 후서 2:5-8의 본과 일치하게 복귀될 수 있습니다. 제명된 지 여러 해가 된 사람의 경우에, 그는 발전하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또한 그 후에 영적으로 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성서 지식을 쌓고 인식을 높이기 위해 상당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는 일
7, 8. 하나님께서는 유배당한 자신의 백성과 관련하여 무슨 본을 세우셨습니까?
7 그러나 장로들 자신이 먼저 어떤 방법으로인가 제명된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습니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성서는, 자비가 단지 처벌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로만이 아니라 종종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본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불충실한 백성을 유배당하게 하시기 전에, 그들이 돌아올 전망이 있음을 이렇게 예언적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이사야 44:21, 22; 사체로는 본지에서.
8 그후, 유배되어 있는 동안에 여호와께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적극적인 방법으로 행동하셨습니다. 그분은 예언자들 곧 대표자들을 보내시어 이스라엘에게 ‘그분을 찾고 찾으’라고 권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 10-14) 에스겔 34:16에서 그분은 자신을 목자에,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을 잃어버린 양에 비하셨습니다.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 오게 하[리라.]” (사체로는 본지에서) 예레미야 31:10에서, 여호와께서는 또한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라는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잃어버린 양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양 우리에 있는 목자로 묘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잃어버린 양들을 찾는 목자로 나타내셨습니다. 일반 백성이 회개하지 않고 유배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이 돌아오도록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리고 말라기 3:6과 일치하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마련 안에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변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9. 그리스도인 회중은 어떻게 하나님의 본을 따랐습니까?
9 이것은 제명되어 있는 사람들과 지금 회개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부 사람들에게 먼저 접근하는 단계를 취할 이유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악한 사람을 고린도 회중에서 제거할 것을 지시한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후에, 그 사람이 결국 회중 안으로 복귀되게 한 회개로 인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확증할 것을 회중에게 권면하였습니다.—고린도 전 5:9-13; 고린도 후 2:5-11.
10. (ㄱ) 일부 제명된 사람들과 접촉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그 동기가 무엇이어야 합니까? (ㄴ) 왜 그리스도인 가족이나 친척들이 먼저 접촉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까?
10 앞서 인용한 백과 사전은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파문의 근본 이유는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는 집단 규범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린도 전 5:6). 이러한 동기는 대부분의 성서와 경외서 문장들에 분명히 나타나 있지만, 심지어 추방된 후에도 나타내는 개개인에 대한 염려는 고린도 후서 2:7-10에 있는 바울의 청원에 근거한 것이었다.’ (사체로는 본지에서)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볼 때, 오늘날에도 양떼의 목자들이 이러한 유의 염려를 나타내야 합니다. (사도 20:28; 베드로 전 5:2) 이전의 벗들과 친척들은 제명된 사람이 돌아오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린도 전서 5:11의 명령에 대한 존중심으로 인해, 추방된 사람과 교제하지 않습니다.b 그들은, 그러한 사람이 돌아오는 일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행동을 취하는 일을 임명된 목자들에게 맡깁니다.
11, 12. 어떤 유의 추방된 사람들은 장로들까지도 접촉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나 장로들은 어떤 유의 사람들을 방문할 수 있을 것입니까?
11 배교자들과 같은 어떤 추방된 사람들의 경우, 먼저 접근하는 것은 장로들이라 해도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배교자들은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합니다. 그들은 ‘멸망케 할 이단을 끌어들이고 지은 말을 가지고 회중으로 이를 삼으려고 하는 거짓 선생들’입니다. (사도 20:30; 베드로 후 2:1, 3) 성서는 또한 호전적이거나 범죄 행위를 적극 권장하는 제명된 사람들을 찾으려고 노력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습니다.—데살로니가 후 2:3; 디모데 전 4:1; 요한 2서 9-11; 유다 4, 11.
12 그러나 제명된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명되게 했던 심각한 범죄 행위를 중단한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담배를 피웠거나 과거에 과음하는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을 범죄 행위로 인도하려고 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유배당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향하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대표자들을 보내시어 돌아오도록 강력히 권하신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바울이나 고린도 회중의 장로들이 어느 정도로 먼저 제명된 사람을 살펴보는 행동을 취하였는지 성서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회개하고 부도덕을 청산하였을 때, 바울은 그 사람을 복귀시킬 것을 회중에 지시하였습니다.
13, 14. (ㄱ) 무엇을 볼 때 자비롭게 먼저 행동을 취하는 것에 일부 추방된 사람들이 응할지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ㄴ) 장로의 회는 어떻게 만나기 위한 마련을 할 수 있습니까?
13 최근에 한 장로가 제명된 사람을 우연히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c 적절한 기회에, 그 목자는 복귀하기 위해 취해야 할 단계들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부 제명된 사람들은 회개하였고 복귀되었습니다. 그러한 즐거운 결과는 목자들의 자비로운 접근에 응하는 제명된 혹은 이탈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면 장로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까? 많아야 1년에 한 번 정도, 장로의 회는 구역 내에 그러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d 장로들은 추방된 지 1년 이상 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고려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적절할 경우, 장로의 회는 두 명의 장로(상황을 잘 아는 장로들이 바람직함)를 임명하여 그러한 사람을 방문하게 할 것입니다. 비평적이고 위험한 태도의 증거가 있거나 도움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온 사람은 누구도 결코 방문하지 않을 것입니다.—로마 16:17, 18; 디모데 전 1:20; 디모데 후 2:16-18.
14 두 목자는 간단한 방문을 하는 일에 관해 물어보는 전화를 하거나, 적절한 때에 잠시 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방문중에, 그들은 엄숙하거나 심지어 냉정한 모습을 할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관심을 따뜻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기보다는, 이사야 1:18과 55:6, 7 그리고 야고보서 5:20과 같은 성서 구절들을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양떼로 돌아오는 데 관심이 있다면, 그들은 그가 무슨 단계들을 취해야 하는지, 이를테면 성서와 워치 타워 협회 출판물들을 읽는 일 및 왕국회관 집회에 참석하는 일과 같은 것을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 제명된 사람을 만나는 장로들은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까?
15 이 장로들은 회개의 증거가 있는지 그리고 계속 더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지혜와 분별력을 나타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일부 제명된 사람들은 결코 ‘새롭게 되어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히브리 6:4-6; 베드로 후 2:20-22) 방문한 후에, 두 장로는 회중 봉사 위원회에 간단한 구두 보고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회중 봉사 위원회는 다음 장로의 회의 모임 때 장로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입니다. 장로들이 자비롭게 먼저 행동을 취하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라기 3:7.
그 외의 자비로운 도움
16, 17. 우리는 가족이나 친척이 제명된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16 제명된 사람들에게 그처럼 먼저 행동을 취할 수 없는, 감독자들이 아닌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이러한 마련과 조화되고 여호와를 본받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17 어떤 사람이 제명되거나 이탈한 상태에 있는 한,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고린도 전 5:11) 그러나 이러한 성서의 지시가 제명된 사람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 가족 성원들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세리에 대해 매우 강한 반응을 보인 나머지 세리의 가족에게까지 증오심을 나타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승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도움을 거절하는 죄인을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리스도인 가족 성원들에게까지 그렇게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 18:17.
18, 19. 우리가 추방된 사람의, 충실한 가족이나 친척에 대해 우리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는 무엇입니까?
18 우리는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인 그 가족 성원들을 특별히 지원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영적 추구에 사실상 실망을 줄 수 있는 추방된 사람과 한집에 사는 일로 인해 이미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추방된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이 집을 방문하지 않게 하기를 더 좋아할지 모르며,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충성스러운 가족 성원들을 만나러 온 것이 분명한 경우라 하더라도 방문객들과 정중하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할지 모릅니다. 그 사람은 모든 그리스도인 집회와 대회에 참석하려는 가족의 노력을 방해할지도 모릅니다. (비교 마태 23:13) 그러한 불리한 처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우리의 자비를 받아 마땅합니다.—고린도 후 1:3, 4.
19 우리가 포근한 자비를 보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런 가정 내의 그러한 충실한 사람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고 그들과 격려적인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 「신세」) 또한 집회 전후나 야외 봉사중에 혹은 다른 때 함께 있을 때 지원할 좋은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제명 처분을 언급할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세워주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잠언 25:11; 골로새 1:2-4) 장로들이 그러한 가정의 그리스도인들을 양치는 방문을 계속하는 동안, 우리도 추방된 사람들을 가까이하는 일 없이 방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었는데 우연히 제명된 사람을 만나거나 제명된 사람이 전화를 받을 경우,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지 간단히 물어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 그리스도인 가족 성원들은 우리가 교제를 위해 집으로 초대할 경우 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곧 노소를 막론하고 그들은 우리의 동료 종들, 고립되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회중의 사랑받는 성원들이라는 것입니다.—시 10:14.
20, 21. 복귀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느끼고 행동해야 합니까?
20 자비를 보이는 다른 부면은 추방된 사람이 복귀될 때 열립니다. 예수의 예들은 “죄인 하나가 회개”할 때 하늘에서 있는 즐거움을 강조합니다. (누가 15:7, 10) 바울은 제명 처분된 사람에 관하여 고린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주기를 바랍니다. 그가 너무 심한 슬픔에 빠질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그에게 사랑을 보이기를 권합니다.” (II 고린도 2:7, 8, 「새번역」) 복귀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얼마간 그러한 충고를 진지하고 사랑스럽게 적용하도록 합시다.
21 탕자에 관한 예수의 예는 우리가 피할 필요가 있는 위험을 일깨워 줍니다. 맏아들은 탕자가 돌아온 것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분개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처럼 과거의 잘못에 대해 악의를 품거나 복귀된 사람을 못마땅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오히려, 우리의 목표는 여호와의 반응을 예시한 아버지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잃었고 죽은 것 같았던 아들을 찾은 것에 대해, 곧 아들이 살아난 것에 대해 기뻐하였습니다. (누가 15:25-32) 따라서, 우리는 복귀된 형제에게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그를 격려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용서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러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자비를 보이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야 합니다.—마태 5:7.
22.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는 데는 무엇이 관련됩니까?
22 의문의 여지 없이,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고자 한다면 그분의 명령 및 공의와 일치하게 자비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편 필자는 그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자비”, 「신세」]을 베푸시는도다.” (시 145:8, 9)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참으로 인자하신 본입니다!
[각주]
a “세리들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에게 특히 멸시를 당하였다. (1) 그들은 이스라엘 땅을 점령한 외국 세력을 위해 돈을 징수하였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이러한 침략 행위를 지원하였다는 점; (2) 그들은 비양심적인 행위로 유명하였으며, 동포인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부를 축적하였다는 점; (3) 그들은 업무상 이방인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함으로 인해 의식상 불결한 사람이 되었다는 점. 세리를 멸시하는 것을 신약과 랍비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랍비 문헌에 따르면, 증오심은 세리의 가족에게까지 확대되었다.”—「국제 표준 성서 백과 사전」(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b 그리스도인 가정 내에 제명된 가족이나 친척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은 여전히 매일매일의 정상적인 가정 일과 활동에 참여할 것이다. 가족이 영적인 내용을 고려할 때 참석하는 것도 그중에 포함될 수 있다.—참조 「파수대」 1988년 11월 15일 호 19-20면.
d 어떤 증인이 호별 방문 전파를 하다가 혹은 다른 방법으로 제명된 사람이 구역 내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그 사실을 장로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러한 점들에 유의하였습니까?
◻ 유대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어떻게 대하였으며, 예수께서는 왜 그러한 사람들을 가까이하셨습니까?
◻ 길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자비의 행동을 취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성경적 근거가 있습니까?
◻ 장로의 회는 어떻게 먼저 그러한 행동을 취할 수 있으며, 누구에게 취할 수 있습니까?
◻ 우리는 복귀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명된 사람들의 가족에게 어떻게 자비를 보여야 합니까?
[23면 네모]
한때 하나님의 깨끗하고 행복한 회중에 속하였다가 지금은 제명이나 이탈 상태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상태에 계속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람은 회개하고 먼저 회중 장로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은 열려 있다.
[24면 사진 자료 제공]
Garo Nalban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