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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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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 내는 석회질 퇴적물. 따뜻한 바닷물에서 사는 이 자그마한 생물은 군체를 이루고 살며, 바다에서 칼슘염을 흡수하여, 그것으로 돌처럼 단단하며 관목 비슷하게 생기고 아름답게 가지를 친 구조물을 만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몇 종류의 산호로 구성된 산호 군은 거대한 산호초를 이루거나 산호섬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산호는 흰색, 검은색, 빨간색 등 색깔이 다양한데, 고대에는 빨간색이 가장 값도 비싸고 가장 귀하게 여겨졌다. (애 4:7 비교) 티레는 한때 지중해와 홍해와 인도양에서 채취한 산호를 거래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겔 27:16) 장인들은 산호 원석으로 매우 높이 평가되는 다양한 장식품들을 예술적으로 만들어 냈다.
산호는 가치가 높이 평가되기 때문에, 성서에서는 흥미로운 비교 표현을 몇 차례 사용한다. 지식과 지혜는 분명 산호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 (욥 28:18; 잠 3:15; 8:11; 20:15) 유능한 아내도 마찬가지인데, “그 가치는 산호보다 훨씬 더 귀하”다.—잠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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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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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flesh; meat)
육체, 살, 고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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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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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Salamis)
키프로스에 있던 중요한 도시. 바울과 바나바와 요한 마가는 기원 47년경 바울의 일 차 선교 여행 시초에 이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였다.’ 그들이 이 도시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곳에 회당이 하나만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아, 이곳에는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행 13:2-5.
일반적으로 살라미스는 현대 도시인 파마구스타에서 북쪽으로 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의 유적지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곳이 맞다면 이 도시는 비옥한 넓은 평원의 동쪽 끝에, 그리고 페디아스(페디아이우스) 강 바로 북쪽에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살라미스는 바울이 시리아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인 셀레우키아에서 지중해를 가로질러 서남서쪽으로 200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었던 셈이다. 성서는 바울이 탄 배가 살라미스에 있는 항구에 정박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이 도시에는 한때 훌륭한 항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 항구는 지금 침적토로 덮여 있다.
살라미스는 적어도 하나의 도로를 통해 섬 반대편 끝에 있던 파포스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더 용이하게 여행하면서 ‘파포스에 이르기까지 온 섬을 두루’ 다니며 전파 활동을 할 수 있었다.—행 13:4-6.
바나바와 요한 마가는 기원 49년경에 살라미스를 다시 방문하였을 것이다.—행 15: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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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랍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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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랍
(Zalaph)
적어도 여섯 아들을 두었던 아버지. 그중 한 아들은 느헤미야를 도와 예루살렘 성벽을 보수하는 일을 하였다.—느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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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겟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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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겟
(Shallecheth)
예루살렘의 신성한 곳의 서쪽에 있던 문.—대첫 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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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렘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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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렘
(Salem) [평화]
멜기세덱이 왕과 제사장을 겸임했던 고대 도시. (창 14:18)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에 포함된 “살렘”의 히브리어 철자를 보면 그것이 쌍수형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그 단어는 “두 겹의 평화”로 정의될 수 있다. 그 이름이 “평화”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히브리 7:2의 영감받은 말씀으로 확증된다.
고대 유대인의 전승은 살렘을 예루살렘과 동일시하며, 성경적 증거도 그 점을 뒷받침한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과 멜기세덱을 “왕의 저지 평야”에서 만났다.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이 여러 세기 후에 그 평야에 기념비를 세웠기 때문에, 이 저지 평야는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 근처에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창 14:17, 18; 삼둘 18:18) “살렘”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에 포함되어 있으며, 시편 필자는 살렘을 “시온”의 대구 표현으로 사용했다. (시 76:2) 또한 후에 다윗 가계의 왕들과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일했던 바로 그 장소, 그리고 “멜기세덱의 방식을 따라” 왕 겸 제사장으로 선택되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으로 바쳐진 바로 그 장소에서 멜기세덱이 왕 겸 제사장이었던 것은 적절한 일이었을 것이다.—히 3:1; 7: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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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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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Salome) [아마도 “평화”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어근에서 유래]
1. 마태 27:56과 마가 15:40을 비교해 보면, 살로메는 세베대의 아들들—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었던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였던 것 같다. 마태 27:56은 두 마리아 즉 막달라 마리아와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이 두 사람과 함께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예수께서 못 박히신 장소에 있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마가 15:40은 두 명의 마리아와 함께 있던 여자의 이름이 살로메라고 알려 준다.
유사한 근거로 살로메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친자매이기도 했다는 추측도 있다. 이러한 추측이 제시된 이유는, 성경이 요한 19:25에서 그 동일한 두 마리아 즉 막달라 마리아와 “글로바의 아내”(일반적으로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로 이해되는 인물)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또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의 고통의 기둥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가] ··· 서 있었다.” 이 성구가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에 더하여) 마태와 마가가 언급한 것과 동일한 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살로메는 예수의 이모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한편, 마태 27:55과 마가 15:40, 41은 예수를 따르던 다른 많은 여자들도 그곳에 있었다고 기술하므로, 살로메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살로메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으며, 마태와 마가와 누가(8:3)가 암시하는 것처럼, 그분을 따르며 자기의 소유로 그분을 섬기던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살로메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였던 것이 정확하다면, 살로메는 예수에게 가까이 와서 자신의 아들들이 예수의 왕국에서 그분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한 사람이다. 마태는 그 어머니가 요청했다고 묘사하지만, 마가는 야고보와 요한이 요청했다고 알려 준다. 그 아들들이 그 욕망을 품고 자기들의 어머니가 그분에게 요청하도록 시켰던 것 같다. 마태의 보고도 이 점을 지지하는데, 다른 제자들이 그러한 요청에 관해 들었을 때 그 어머니에게가 아니라 그 두 형제에게 분개했다고 알려 주기 때문이다.—마 20:20-24; 막 10:35-41.
예수께서 죽으신 뒤 셋째 날의 새벽 동이 틀 때, 살로메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수의 시체에 향료를 바르려고 그분의 무덤에 갔다가, 돌이 굴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무덤 안에서 한 천사가 그들에게 이렇게 알려 주었다. “그분은 일으킴을 받으셔서 여기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분을 뉘었던 곳이오.”—막 16:1-8.
2. 헤롯 빌립의 딸이자, 헤로디아의 무남독녀. 후에 헤롯 안티파스가 살로메의 어머니와 결혼했는데, 이것은 이복형제 빌립에게서 그 여자를 가로챈 간음 행위였다. 기원 32년 유월절이 되기 조금 전에, 안티파스는 자기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티베리아스에서 저녁 식사를 마련하였다. 그는 이제 자기의 의붓딸이 된 공주 살로메를 불러서 “자기의 고관들과 사령관들과 갈릴리의 주요 인사들”로 이루어진 집단 앞에서 춤추게 하였다. 헤롯은 살로메의 춤을 보고 매우 기뻐서 그가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자기 왕국의 절반까지도—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살로메는 악한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였다. 헤롯은 근심했지만, “자기의 서약과 또한 함께 기대앉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여 그것을 주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래서 그의 머리를 쟁반에 얹어 가져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마 14:1-11; 막 6:17-28.
성경에는 그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지만, 요세푸스의 저술물에 그 이름이 보존되어 있다. 요세푸스는 또한 살로메가 헤롯 안티파스의 또 다른 이복형제인 지역 통치자 빌립과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었다고 말한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살로메는 빌립이 죽은 뒤에 자기의 사촌인 아리스토불루스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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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루, II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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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루, II
(Salu)
시므온 사람으로서, 그의 아들 지므리는 모압 평원에서 부도덕으로 인해 처형되었다.—민 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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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룬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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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룬
(Shallun) [근심 없는, 걱정 없는, 염려 없는]
미스바 지역의 방백. 골호세의 아들. 느헤미야를 도와 예루살렘 성벽의 일부를 재건하고 ‘샘 문’을 보수하였다.—느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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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룸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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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룸
(Shallum) [“평화를 이루다, 배상하다, 갚다”를 의미하는 어근에서 유래]
1. 납달리의 아들 가운데 이름이 마지막으로 열거되어 있는 사람. (대첫 7:13) 다른 성구들에는 실렘으로 표기되어 있다.—창 46:24; 민 26:49. 실렘 참조.
2. 샤울의 아들. 시므온의 손자이자 밉삼의 아버지.—대첫 4:24, 25.
3. 유다의 여라므엘 가계에 속한 시스매의 아들이자 여가먀의 아버지.—대첫 2:4, 5, 9, 25, 40, 41.
4. 신성한 곳의 수석 문지기로서 한때 동쪽에 있는 왕의 문에 배치되었던 고라 자손. 그 이름은 주로 바빌론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살게 된 사람들의 명단에 나오지만(대첫 9:2, 3, 17-19, 31, 34; 라 2:1, 42; 느 7:45), 예레미야 시대의 “문지기 살룸의 아들 마아세야의 식당”과 같은 언급(렘 35:4)은, 유배 기간 이후의 명단들에 나오는 그 이름이 과거에 살았던 살룸의 자손인 문지기들의 부계 가문이나 가족을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그가 역대기 첫째 26:1, 2, 9, 14에서 다윗 통치 기간에 신성한 곳의 동쪽의 문지기로 언급되어 있는 셀레먀와 므셀레먀와 동일 인물이라면, 그것은 위의 사실에 대한 부가적인 확증이 될 것이다.
5. 열 지파 왕국의 열여섯 번째 왕. 야베스의 아들. 살룸은 모반을 꾸며 예후의 자손 가운데 마지막 통치자인 스가랴를 죽이고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기원전 791년경에 음력으로 한 달 동안 다스리다가 므나헴에게 살해되고 말았다.—왕둘 15:8, 10-15.
6. 에브라임 사람. 유다에서 끌고 온 자기의 형제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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