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3
에베소서—히브리어 성경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용하지 않은 부분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는 구절들
에베소서 2:21 “여호와를 위한 거룩한 성전”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주 안에서 거룩한 신의 처소”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한 근거: 문맥을 볼 때 이 구절에 나오는 “주”는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19절에서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하느님의 집안”으로 언급합니다. 20절에서는 예수께서 이 건물의 “기초 모퉁잇돌”이라고 알려 주며 22절에서는 이 성전이 “하느님께서 영으로 거하시는 장소”라고 말합니다. 또한 20절에서 바울은 이사야 28:16에 나오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인데, 그 구절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주권자인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내가 시험받은 돌 하나를 시온에 기초로 놓을 것이니, 확실한 기초가 되는 귀중한 모퉁잇돌이다.’” 그에 더해 히브리어 성경에서 “여호와를 위한 성전”, “여호와의 성전”과 비슷한 표현들에는 종종 테트라그람마톤이 사용됩니다. (열왕기하 18:16; 23:4; 24:13; 역대기하 26:16; 27:2; 예레미야 24:1; 에스겔 8:16; 학개 2:15. 누가복음 1:9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의 누가복음 1:9에 대한 설명 참조) 또한 유의할 만한 점으로, 이 구절에 나오는 키리오스(주) 앞에는 그리스어 정관사가 없습니다. 문법적으로 볼 때 정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관사를 넣지 않음으로 키리오스를 고유 명사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문맥과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리스어 정관사가 빠져 있다는 점을 볼 때, 이 표현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신 해설자의 성경」(The New Interpreter’s Bible, 2000년, 11권, 402면)에서는 에베소서 2:21에 나오는 “성전”이라는 표현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기서는 이 건물을 ‘성전’으로 언급함으로 18절에 나오는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내용과 다시 연관 짓는다.” 에베소서 2:18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그[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 양편 사람들이 한 영에 의해 아버지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세기 성서 주해: 에베소서」(New Century Bible Commentary: Ephesians, C. 레슬리 미턴, 1973년)에서는 이 구절에 나오는 “주 안에서”라는 표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표현은 그들이 하느님께 속해 있고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하느님의 성전으로서 거룩하다는 의미이거나 그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즉 교회가 확장되고 더욱 연합되는 것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의미이다.”—서체는 본지에서 변경.
「신 국제 성경 주석: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New 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Ephesians, Colossians, Philemon, 아서 G. 패치아, 1990년)에서는 에베소서 2:21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신자들을 하느님의 신성한 성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께서 거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시는 ‘영적인 건물’이라는 의미이다.”—서체는 본지에서 변경.
「신약 성경 주석」(Bibl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헤르만 올스하우젠 저, A. C. 켄드릭 개정, 1858년)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거처로 언급된다.” 이어서 이 책은 비슷한 표현이 하느님과 관련하여 사용된 것이 분명한 고린도 후서 6:16을 참조 성구로 제시합니다.
참고 문헌: J7, 8, 16-18, 22-24, 28-31, 33, 36, 41, 47, 65, 66, 93-96, 100, 106, 115, 144, 146, 250, 322-324
에베소서 5:17 “여호와의 뜻”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주의 뜻”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한 근거: “뜻”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텔레마)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주로 하느님의 뜻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마태복음 7:21; 12:50; 마가복음 3:35; 로마서 12:2; 고린도 전서 1:1; 히브리서 10:36; 베드로 전서 2:15; 4:2; 요한 1서 2:17) 따라서 이 표현에 나오는 키리오스(주)가 하느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이치적일 것입니다. 「칠십인역」에서 그리스어 텔레마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것;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들을 번역하는 데 자주 사용되며, 그 히브리어 표현들이 나오는 구절들의 문맥을 보면 하느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시편 40:8, 9[39:9(8), 10(9), LXX]; 103:21[102:21, LXX]; 143:9-11[142:9-11, LXX]; 이사야 44:24, 28; 예레미야 9:24[9:23(24), LXX]; 말라기 1:10) “뜻”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성경에서 사용된 방식과 이 표현의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 그리고 키리오스라는 표현이 쓰인 배경을 고려하여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에 더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다른 언어로 옮긴 일부 번역본에서는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NIV 신앙생활 연구용 성경」(NIV Faithlife Study Bible, 2017년)에는 에베소서 5:17의 주석에 “주의 뜻”이라는 표현에 대한 이러한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창조물을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로 모으는 것이다. (에베소서 1:9, 10)”
「앵커 바이블—에베소서, 4-6장의 번역과 주해」(The Anchor Bible—Ephesians, Translation and Commentary on Chapters 4-6, 마르쿠스 바르트, 1974년, 34상권)에는 584면에 이러한 각주가 나옵니다. “‘주의 뜻’(에베소서 5:17)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뜻’(에베소서 6:6; 로마서 12:2)이라는 표현과 바꿔 쓸 수 있는 표현인 것 같다.”
「신약 성경 주석」(Bibl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헤르만 올스하우젠 저, A. C. 켄드릭 개정, 1858년)은 이 구절이 “하느님의 뜻”을 언급하고 있다고 알려 줍니다.
「콘코디아 주석, 성경 신학 해설: 에베소서」(Concordia Commentary, a Theological Exposition of Sacred Scripture: Ephesians, 토머스 M. 윙거, 2015년)에서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뜻’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텔레마]가 에베소서의 다른 곳에서 사용될 경우 일반적으로 하느님 즉 아버지의 뜻을 가리킨다. … 모든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바울은 하느님(아버지)의 뜻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참고 문헌: J7, 8, 32, 65, 66, 94, 100, 101, 106, 115, 125, 139, 145-147, 309
에베소서 5:19 “여호와께 노래하십시오”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주께 노래하십시오”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한 근거: 여기서 “주”는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근거는 바울이 에베소서와 거의 같은 시기에 기록한 골로새서에서,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는 골로새서 3:16입니다. (“에베소서 소개” 참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골로새서 3:16을 보면 “마음으로 하느님께 노래하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3:16에 대한 설명 참조) 에베소서 5:19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그 밖에도 더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노래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와 연관 지어 언급하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5:1; 사사기 5:3 및 각주; 사무엘하 22:50 및 각주; 역대기상 16:23; 시편 13:6[12:6, LXX]; 96:1[95:1, LXX]; 104:33[103:33, LXX]; 149:1; 예레미야 20:13)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께 찬양을 드릴 때 영감받은 시들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이 구절 즉 에베소서 5:19에서 “시”로 번역된 그리스어(프살모스)는 누가복음 20:42; 24:44; 사도행전 1:20; 13:33에서 히브리어 성경의 시편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이 구절에서 “노래하다”, “음악에 맞추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들은 「칠십인역」에도 나오는데,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그에 해당하는 표현들이 하느님의 이름과 함께 사용된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 언급된 구절들 및 에베소서 5:19 연구 노트 참조) 따라서 이 구절과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골로새서 3:16 그리고 이 구절에서 바울이 사용한 표현의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을 볼 때 이 구절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앵커 바이블—에베소서, 4-6장의 번역과 주해」(The Anchor Bible—Ephesians, Translation and Commentary on Chapters 4-6, 마르쿠스 바르트, 1974년, 34상권) 584면에는 이러한 설명이 나옵니다. “‘주께 노래하다’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가져온 표현이거나 당시의 성전 숭배와 관련이 있는 표현일 수 있다. 따라서 ‘주’는 메시아가 아니라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약 성경 주석」(Bibl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헤르만 올스하우젠 저, A. C. 켄드릭 개정, 1858년)은 131면에서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찬양의 노래로 하느님께 공개적으로 경배를 드리는 것…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서한 강해」(An Exposition of the Epistle to the Ephesians, in a Series of Discourses, 조지프 래스럽, 1864년, 528면)에서는 이 표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노래하는 것이 종교적 숭배의 일부분이라면 기도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드리는 것임이 분명하다.”
「바울이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서한들에 관한 해설적·실용적 주해」(Notes, Explanatory and Practical, on the Epistles of Paul to the Ephesians, Philippians, and Colossians, 앨버트 반스, 1850년) 119면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우리는 노래하는 것을 하느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것으로 여겨야 하며, 따라서 위대하신 여호와께 그처럼 직접 말씀드리는 것에 걸맞는 엄숙함과 경외심을 담아 노래해야 한다.”
「교부들의 성경 주해」(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에서는 에베소서 5:19에 대해 해설하면서 성경 학자 제롬(히에로니무스, 4-5세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송은 하느님의 힘과 위력을 선포한다. 그러한 찬송에는 그분이 베푸시는 것들과 그분이 하시는 일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우리의 시에도 그처럼 감사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는데, 그 서두나 끝부분에 알렐루야라는 표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하느님께 노래하고 시와 찬양을 드린다.”—「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 8권,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New Testament, Vol. VIII, Galatians, Ephesians, Philippians, 마크 J. 에드워즈 편, 1999년, 192면).
참고 문헌: J7, 8, 16, 23, 28-32, 65, 93, 100, 101, 115, 138, 139, 145-147, 163, 309, 310, 323, 324
에베소서 6:4 “여호와의 징계”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주의 징계”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한 근거: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이 부분에 “주”(그리스어 키리오스)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록 다1에서 설명하듯이, 이 구절의 원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후에 “주”라는 칭호로 대치되었다고 볼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키리오스는 문맥에 따라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느님을 자신의 종들을 징계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신명기 11:2) 예를 들어, 바울이 히브리서 12:5에서 인용한 잠언 3:11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배척하지 마라.” 바울이 인용한 이 성구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옵니다. 따라서 「신세계역」에서는 히브리서 12:5의 본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서 12:5과 이 구절 즉 에베소서 6:4에 나오는 “징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칠십인역」의 잠언 3:11에 사용된 그리스어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여호와의 징계”라는 표현은 동일한 잠언의 사상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표현은 이사야 50:5의 「칠십인역」 표현을 언급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구절에 나오는 “주권자인 주 여호와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라는 히브리어 표현이 「칠십인역」에서는 “주의 징계가 내 귀를 열어 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유의할 만한 점은 에베소서 6:4에서 키리오스 앞에 그리스어 정관사가 없다는 점입니다. 문법적으로 볼 때 정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관사를 넣지 않음으로 키리오스를 고유 명사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 그리고 키리오스 앞에 정관사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이 구절에서 키리오스가 하느님의 이름을 대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혁신 신약」(A Non-Ecclesiastical New Testament, 프랭크 대니얼스, 2016년)에서는 에베소서 6:4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여러분,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말고 야훼의 훈련과 훈계로 키우십시오.” 번역자의 서문에는 “하느님의 이름” 제하에 이러한 설명이 나옵니다. “신약에 인용된 히브리어 성경 구절에 테트라그람마톤이 나오는 모든 경우, (LXX[칠십인역]에서는 Κυριος[키리오스, 주]로 표기됨) 이 번역판에서는 야훼라는 고유한 이름을 사용했다. 신약에서 Κυριος가 관사 없이 사용되어 하느님의 이름을 가리키는 경우들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도 야훼를 사용했다.”
「ΙΗΣΟΥΣ ΚΥΡΙΟΣ[이에수스 키리오스]—성경에서의 용법과 의미」(ΙΗΣΟΥΣ ΚΥΡΙΟΣ Their Usage and Sense in Holy Scripture, 허먼 하인페터, 1857년)에서는 “Κυριος[키리오스] 앞에 관사가 빠져 있으므로. . . 이 칭호가 전능한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구절 중 하나로 에베소서 6:4을 제시합니다.
「콘코디아 주석, 성경 신학 해설: 에베소서」(Concordia Commentary, a Theological Exposition of Sacred Scripture: Ephesians, 토머스 M. 윙거, 2015년)에서는 에베소서 6:4의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거나 어기는 것에 대한 책임과 YHWH에 대한 참숭배에 고착할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일관되게 말한다.”
참고 문헌: J7, 8, 22, 24, 32, 33, 65, 90, 94, 96, 100, 101, 106, 115, 309, 310, 322
에베소서 6:7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께 하듯이”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사람이 아니라 주께 하듯이”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한 근거: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에 “주께”(토이 키리오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키리오스(주)라는 칭호는 문맥에 따라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는 그리스어 키리오스(주; 주인)가 여러 번 사용되었습니다. 에베소서 6:5, 9에서는 키리오스의 복수형이 “주인”으로 번역되었으며, 에베소서 6:9에 나오는 “그들과 여러분 모두의 주인”이라는 표현 가운데도 키리오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구절 즉 에베소서 6:7에 나오는 키리오스는 인간 주인을 가리키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구절에서 주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기 위해서는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종인 사람들에게 한 비슷한 교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소개” 참조)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 따르면, 골로새서 3:22에서 바울은 “주에 대한 두려움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두려워하다”라는 그리스어 동사가 숭상심을 갖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다른 모든 경우에 그러한 숭상심 어린 두려움의 대상은 언제나 하느님입니다. 따라서 골로새서 3:22에 나오는 “주”도 당연히 하느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 표현과 비슷한 표현은 「칠십인역」에서 “두려워하다”라는 히브리어와 테트라그람마톤이 결합된 표현을 번역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신명기 6:13; 10:12, 20; 13:4(13:5[4], LXX)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다”라는 그리스어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사용된 방식과 이 표현의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신세계역」에서는 골로새서 3:22의 본문에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매우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이 구절 즉 에베소서 6:7에서도 “주”가 여호와를 가리킨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주가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킨다는 또 다른 근거로, 에베소서 6:6에 나오는 “영혼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행하십시오”라는 표현을 들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무언가를 영혼을 다해 한다는 표현은 항상 여호와 하느님과 관련하여 사용됩니다.—신명기 6:5; 마태복음 22:37.
뒷받침하는 자료:
「신약 성경 주석」(Bibl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헤르만 올스하우젠 저, A. C. 켄드릭 개정, 1858년)은 144면에서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따라서 종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을 인식한다. … 하느님을 섬기듯이 주인을 섬기는 종은 주인의 뜻을 따르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희생하려는 유혹에 결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서한들에 관한 해설적·실용적 주해」(Notes, Explanatory and Practical, on the Epistles of Paul to the Ephesians, Philippians, and Colossians, 앨버트 반스, 1850년) 137면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며, 자신이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봉사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 성실한 종은 하느님께 복종하는 데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참고 문헌: J7, 8, 32, 65, 100, 101, 106, 115, 125, 145-147, 310
에베소서 6:8 “여호와로부터 그대로 되돌려받으리라는 것을”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주 곁에서 자신을 위해 가져오게 되리라는 것을”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한 근거: 이 구절의 본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근거는 에베소서 6:7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근거와 전반적으로 동일합니다. (에베소서 6:7에 대한 설명 참조) 또한 유의할 만한 점으로, 이 구절에 나오는 키리오스(주) 앞에는 그리스어 정관사가 없습니다. 문법적으로 볼 때 정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관사를 넣지 않음으로 키리오스를 고유 명사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그에 더해 여기서 “여호와로부터”로 번역된 파라 키리우라는 그리스어 표현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다른 부분에도 몇 번 나오는데, 그 모든 경우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번역할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1:42; 마가복음 12:11; 누가복음 1:45; 디모데 후서 1:18) 그리스어 파라 키리우는 현존하는 「칠십인역」 사본들에 여러 차례 나오는데, 파라 키리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 표현들에는 대개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그중 일부 구절들에서는 에베소서 6:8과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자신을 충실하게 섬기는 자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선행에 대해 상을 주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룻기 2:12; 사무엘상 1:20; 시편 24:5[23:5, LXX]; 37:39[36:39, LXX]; 121:2[120:2, LXX]) 문맥과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리스어 정관사가 빠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NIV 신앙생활 연구용 성경」(NIV Faithlife Study Bible, 2017년)에는 에베소서 6:8의 주석에 “주께서 상을 주시리라는 것을”이라는 표현에 대한 이러한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나타내는 친절과 관대함에 유의하신다.”
「콘코디아 주석, 성경 신학 해설: 에베소서」(Concordia Commentary, a Theological Exposition of Sacred Scripture: Ephesians, 토머스 M. 윙거, 2015년)에서는 에베소서 6:8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
「바울이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서한들에 관한 해설적·실용적 주해」(Notes, Explanatory and Practical, on the Epistles of Paul to the Ephesians, Philippians, and Colossians, 앨버트 반스, 1850년) 138면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낄 때에도 하느님께서 바로잡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리스어 원문으로 보는 우리 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 성경: 서문과 주석 포함」(The New Testament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in the Original Greek: With Introductions and Notes, 크리스토퍼 워즈워스, 1867년, 2권)에서는 이 구절의 그리스어 원문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각 사람이 무엇을 했든 하느님으로부터 되돌려받을 것이다. … 하느님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고통을 당할수록, 하느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참고 문헌: J22, 24, 32, 33, 65, 90, 94, 100, 101, 106, 115, 125, 145-147, 309,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