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prophecy)
영감받은 소식. 하느님의 뜻과 목적의 계시 또는 그것을 공포하는 일. 예언은 영감받은 도덕적 가르침, 하느님의 명령이나 심판의 표현, 다가올 일에 대한 선언일 수 있다. 예고 즉 미리 알린다는 사상은 원어의 어근 동사(히브리어, 나바; 그리스어, 프로페튜오)가 전달하는 기본 사상은 아니지만 성서 예언의 두드러진 특징이다.—예언자 참조.
원어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이런 예들이 있다. 에스겔은 환상 가운데서 ‘바람에게 예언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단순히 하느님의 명령을 바람에게 표현하였다. (겔 37:9, 10) 예수께서 심문을 당하실 때 몇몇 사람들이 그분을 덮어 가리고 때린 다음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예언하여라. 누가 너를 쳤느냐?”고 한 말은, 예수에게 앞일을 예고해 보라고 한 말이 아니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하느님의 계시로 알아맞혀 보라고 한 말이다. (마 26:67, 68; 누 22:63, 64)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를 “예언자”로 알아본 것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그 여자의 과거를 밝히셨기 때문이다. (요 4:17-19. 누 7:39 비교)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산상 수훈이라든가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질책하신 부분(마 23:1-36)도 마땅히 예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 역시 이사야, 예레미야 및 다른 옛 예언자들의 선언처럼 문제들에 대한 하느님의 생각을 영감받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사 65:13-16; 누 6:20-25 비교.
물론 미리 알리는, 예고하는 사례가 성서 전체에 아주 많이 나오는데, 얼마의 초기 예들을 창세기 3:14-19과 9:24-27 그리고 27:27-40과 49:1-28 및 신명기 18:15-19에서 볼 수 있다.
모든 참 예언의 근원은 여호와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자신의 성령을 통하여, 때로는 영의 인도를 받은 사자들인 천사를 통하여 예언을 전달하신다. (베둘 1:20, 21; 히 2:1, 2) 히브리어 성경의 예언들은 흔히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로 시작되며(사 1:10; 렘 2:4), “말씀”이라는 표현은 종종 영감받은 소식 즉 예언을 의미한다.—사 44:26; 렘 21:1; 겔 33:30-33. 사 24:3 비교.
어떻게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 예언하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서 천사가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 바로 예언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문자적으로는 ‘예언의 영’]”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계 19:10)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이라고 부르며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주의 깊이 감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골 2:2, 3) 이는 여호와 하느님이 자신의 웅대한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서 주된 역할을 자신의 아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란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땅과 그 주민을 사물에 관한 그분의 마련 안에서 올바른 위치로 회복시키는 일인데, 이 일은 ‘지정된 때의 기한이 찼을 때에 있을 관리 체제, 다시 말하면, 모든 것 곧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모으기 위한’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엡 1:9, 10. 고첫 15:24, 25 비교) 하느님의 위대한 목적의 성취는 모두 예수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므로(골 1:19, 20 비교), 하느님의 종들이 공포하는 모든 예언 즉 하느님에게서 나온 영감받은 소식은 모두 그분의 아들을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계시록 19:10에서 알려 주듯이 예언의 전체 “영”(전체적인 방향, 의도, 목적)은 여호와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게 하신 분인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요 14:6) 예수의 지상 봉사 이전의 예언만 아니라 그 이후의 예언도 그러할 것이다.—행 2:16-36.
에덴에서 반역이 일어났을 때, 여호와 하느님은 마침내 하느님의 적대자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씨”에 관한 예언으로 ‘예수에 대한 증언’을 시작하셨다. (창 3:15) 아브라함과의 계약은 그 씨에 관한 그리고 그 씨가 땅의 모든 가족을 축복하고 대적과 대적의 “씨”에게 승리를 거둘 것에 관한 예언이었다. (창 22:16-18. 갈 3:16 비교) “실로”(“그것을 가진 자, 그것이 속한 자”라는 의미)라 불리는 약속된 씨가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 예언되었다. (창 49:10)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통하여 “제사장 왕국과 거룩한 나라”를 가질 목적을 밝히셨다. (출 19:6. 베첫 2:9, 10 비교)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의 희생 제물은 하느님의 아들의 희생을 예표하였으며, 그 제사직은 그 아들의 천년 통치 중에 하늘에 있을 왕 겸 (보조 제사장들이 있는) 제사장 직분을 상징한다. (히 9:23, 24; 10:1; 계 5:9, 10; 20:6) 그 결과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가정 교사”가 되었다.—갈 3:23, 24.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에서 특징을 이룬 사건들에 대해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일들은 본보기로서[‘모형으로 보여 줄 목적으로’] 계속 그들에게 일어났으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사물의 제도들의 끝에 이른 우리[그리스도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첫 10:11) 이스라엘의 탁월한 왕 다윗은 하느님의 아들을 상징하는 예언적 인물이 되었고, 하느님이 다윗과 맺으신 영원한 왕국을 위한 계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속받으셨다. (사 9:6, 7; 겔 34:23, 24; 누 1:32; 행 13:32-37; 계 22:16) 충실한 왕들이 (대체로 하느님의 예언자들의 인도와 격려를 받아) 싸운 갖가지 전투는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의 왕국의 적들을 대항하여 싸우게 되어 있는 전쟁을 예표하였으며, 하느님이 그 왕들에게 승리를 주신 것 역시 그리스도가 사탄의 모든 군대에게 승리를 거두고 하느님의 백성에게 구출을 가져오실 것을 예표하였다.—시 110:1-5; 미 5:2-6; 행 4:24-28; 계 16:14, 16; 19:11-21.
이 기간의 예언 중 많은 예언은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메시아 즉 그리스도)의 통치와 그 통치의 축복을 묘사하였다. 메시아에 관한 다른 예언들은 하느님의 그 종이 당할 박해와 고통을 지적하였다. (사 11:1-10; 53:1-12; 행 8:29-35 비교) 사도 베드로가 알려 주듯이, 고대 예언자들 자신이 “자기 속에 있는 영이 그리스도[메시아]의 고난과 그에 뒤따르는 영광에 대하여 미리 증언할 때에, 그것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느 특정한 시기 또는 어떠한 시기를 지적하고 있는지 계속 조사”하였다. 이런 일은 그들 시대를 넘어 미래에 성취되어야 할 것으로 그들에게 밝혀졌다.—베첫 1:10-12. 단 9:24-27; 12:1-10 비교.
그 모든 예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실현되어, 예수께서 그 모든 것을 참된 것이 되게 하시므로, 어떻게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있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의 약속은 아무리 많더라도 그분에 의하여 ‘예’가 되었”다. (요 1:17; 고둘 1:20. 누 18:31; 24:25, 26, 44-46 비교) 베드로가 예수에 대해, ‘그분에 대하여는 모든 예언자가 증언을 한다’고 말할 만하였다.—행 3:20-24; 10:43. 행 28:23 비교.
목적과 성취 시기 예고이든 단순히 영감받은 교훈이나 책망이든 예언은 그것을 처음 들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이후 모든 시기에 하느님의 약속에 믿음을 두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하였다. 원래 예언을 받은 사람들은 그 예언으로 말미암아, 여러 해나 여러 세기가 지나도 하느님이 자신의 목적에서 흔들리지 않는 분, 자신의 계약 조항과 약속을 굳게 지키는 분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시 77:5-9; 사 44:21; 49:14-16; 렘 50:5 비교) 예를 들어 다니엘의 예언은 히브리어 성경 또는 그리스도인 시대 이전 성경의 기록이 끝난 때와 메시아가 도래한 때 사이를 이어 주는 귀중한 지식을 알려 주었다. 연이은 세계 강국들의 흥망을 포함하여 세계 사건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은 여러 세기에 걸친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지배 시대에 살던 유대인에게 (그 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예견에는 “사각지대”란 없으며,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참으로 예견되었고, 주권자이신 여호와의 목적은 틀림없이 성취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지배력이 일시적일 뿐인 그런 지나가는 세계 정권에 믿음이나 희망을 두지 않도록 보호를 받았고, 충실한 자들은 지혜롭게 자신의 행로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단 8:20-26; 11:1-20 비교.
많은 예언이 자신들의 시대에 성취되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진실한 사람들은 어떤 반대가 있어도 하느님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할 능력이 있는 분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분이, 아니 그분만이 그런 사건을 예고하고 이루실 수 있는 분이라는 그분의 비길 데 없는 신격에 대한 증거였다. (사 41:21-26; 46:9-11) 이 예언들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되고, 그분의 뜻과 그분이 행동하고 판단하시는 근거가 되는 도덕 표준을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어, 그와 일치하게 생활을 틀 잡을 수 있게 되었다.—사 1:18-20; 55:8-11.
상당수의 예언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최초로 적용되거나 성취되었는데, 많은 예언은 육적 이스라엘과 주변 나라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표현하면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무너지고 그 후 회복될 것임을 예고해 주었다. 하지만 이 예언들은 후대에도, 기원 1세기나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 회중과 관련해서도 가치를 잃지 않았다.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전에 기록된 모든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우리가 인내와 성경의 위로를 통하여 희망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로 15:4) 하느님은 도덕 표준과 목적에서 변하지 않는 분이므로(말 3:6; 히 6:17, 18), 그분이 이스라엘을 대하신 일은 어느 시대이든 그와 비슷한 상황을 어떻게 다루실 것인가에 대해 빛을 던져 주었다. 그러하기에 예수와 제자들이 여러 세기 전에 적용된 예언을 그들 시대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사용한 것도 타당한 일이었다. (마 15:7, 8; 행 28:25-27) 다른 예언들은 분명히 예고하는 내용이었는데, 일부는 구체적이고 독특하게 예수의 지상 봉사와 후속 사건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사 53장; 단 9:24-27) 메시아가 나타난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그 예언들은 메시아를 식별하고 그분의 사명과 소식이 믿을 만한 것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었다.—메시아 참조.
예수께서 지상을 떠나신 뒤, 히브리어 성경과 그 예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보충하는 매우 중요한 배경 지식을 제공하였는데, 그분의 추종자인 그리스도인들은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 지식에 비추어 고려하고 그 지식과 서로 맞추어 보며 그 의미와 의의를 배워 알 수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의 타당성을 느끼고 힘을 얻게 되었으며, 반대에 직면해서도 확신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행 2:14-36; 3:12-26; 4:7-12, 24-30; 7:48-50; 13:40, 41, 47) 그들은 고대의 영감받은 계시에서 “가르치고 책망하고 사물을 바로잡고 의로 징계하는 데” 사용할 만한 도덕 교훈을 상당히 발견하였다. (디둘 3:16, 17; 로 9:6-33; 고첫 9:8-10; 10:1-22) 변형 환상을 봄으로 예언의 확증을 받게 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욱 확실해진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등불에 하듯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일입니다.” (베둘 1:16-19; 마 16:28–17: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시대 이전의 예언은 예수의 교훈을 보충해 주는 것이었고, 이방인 신자들에 관한 결정처럼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그리스도인 회중을 인도하는 하느님의 수단이었다.—행 15:12-21; 로 15:7-12.
예언은 또한 긴급한 행동이 필요할 경우 알려 주는 경고 역할도 하였다. 이에 대한 강력한 예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임박한 멸망과 추종자들이 그 도시를 떠나 안전한 곳으로 도피할 때임을 알려 줄 상황에 대해 경고하신 일이다. (누 19:41-44; 21:7-21) 비슷한 예언적 경고가 그리스도의 임재에도 적용된다.—마 24:36-42 비교.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짐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언하는 일과, 배운 적이 없는 방언으로 말하는 능력과 같은 기적의 선물을 받았다. 어떤 경우(모든 경우는 아님) 예언의 선물로 말미암아 아가보가 한 것처럼 예고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행 11:27, 28; 21:8-11), 그리스도인 회중이나 회중 성원들이 특정한 비상 사태나 시련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도와 제자들의 정경 서한에도 미래에 대한 영감받은 예고가 들어 있다. 이를테면 다가오는 배교에 대해 경고하고, 배교의 형태에 대해 알려 주며, 하느님의 심판과 그 심판이 집행될 것을 경고하고, 이전에 이해되지 않은 교리상의 진리를 밝혀 주거나 이미 주어진 진리를 확대하여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예언들이 있다. (행 20:29, 30; 고첫 15:22-28, 51-57; 데첫 4:15-18; 데둘 2:3-12; 디첫 4:1-3; 디둘 3:1-13; 4:3, 4. 유 17-21 비교) 계시록은 사람들이 경고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예언적 지식으로 가득 차 있어서 “시대의 표징들”(마 16:3)을 분별하고 긴급한 행동을 취할 수 있게 한다.—계 1:1-3; 6:1-17; 12:7-17; 13:11-18; 17:1-12; 18:1-8.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영감받은 예언을 하는 선물을 포함하여 기적의 선물이 없어질 것임을 알려 준다. (고첫 13:2, 8-10) 증거로 보면, 사도들이 죽자 그런 선물은 더는 전수되지 않았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였으므로 그 이후 그리스도인 사회에서 점차 없어졌다. 물론 그 무렵에는 성서 정경이 완성되었다.
예수의 예 또는 비유 역시 이전 시대 예언자들의 일부 우의(寓意)적 선언과 비슷한 형태였다. (겔 17:1-18; 19:1-14; 마 7:24-27; 21:33-44 비교) 그런 것은 거의 모두 당시에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 어떤 것은 기본적으로 도덕 원칙을 제시하였다. (마 18:21-35; 누 18:9-14) 어떤 것은 예수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 때까지 이르는 시간 요소를 담고 있었다.—마 13:24-30, 36-43; 25:1-46.
다중 성취 예수와 제자들이 예언을 사용한 것을 보면, 예고하는 예언은 한 번의 성취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바울은 본래 바빌론이 유다를 황폐시켰을 때 성취된 하박국의 예언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그의 시대에 적용하였다. (합 1:5, 6; 행 13:40, 41) 예수께서는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이 당시 살아 있는 세대에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다니엘의 예언은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을 “마지막 때”와 연관시키기도 한다. (단 9:27; 11:31-35; 마 24:15, 16) 성서의 증거가 알려 주듯이, 미가엘이 ‘일어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의 종들을 위해 왕으로서 행동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단 12:1. 미가엘 1번 참조) 사물의 제도의 종결 기간에 관한 예수의 예언에도 그분이 왕국 권능을 갖고 오시는 것—기원 1세기에는 없었던 일—이 언급되어 있다. (마 24:29, 30; 누 21:25-32) 이것은 이중 성취를 시사한다. 따라서 예언의 이중 성취 문제를 설명하면서 매클린턱과 스트롱 공편 「백과사전」(Cyclopædia, 1894년, 8권, 635면)에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우리 주께서 산 위에서 예루살렘 함락과도 관련이 있고 그리스도교 천계법(天啟法) 시대의 끝과도 관련이 있는 예고를 하신 내용을 설명하려면 예언 성취를 그렇게 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예언의 여러 형태 여호와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직접 언명하는 방법(어쩌면 상징적 행동[왕첫 11:29-31]이 수반되거나 우의적 형태를 띠기도 함)에 더하여 다른 형태도 사용하셨다. 예언적 인물이 메시아 즉 그리스도 예수를 예표하였다. 그중에는 이미 언급된 다윗 외에도 제사장이자 왕이었던 멜기세덱(히 7:15-17), 예언자 모세(행 3:20-22) 및 다른 인물들이 있다. 예언적 인물과 관련하여 그 사람의 모든 면이 모형적이거나 예언적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간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스올에 계실 기간을 예표하였다. 그러나 요나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부면과 그 밖의 부면은 하느님의 아들의 행로를 예표한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지혜와 그분의 왕국 통치의 평화가 솔로몬의 지혜나 그의 통치의 평화에 비할 만하고 그보다 탁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솔로몬과는 달리 영적으로 죄에 빠지지 않으신다.—마 12:39-42.
또한 하느님은 예언적 드라마도 사용하셨는데, 개인과 민족의 삶의 세부점을 여호와의 목적 성취에서 미래 사건의 모형으로 기록해 놓으셨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사라와 여종 하갈에게서 얻은 두 아들이 관련된 그런 “상징적인 극”에 대해 말한다. 바울은 두 여자가 두 가지 계약 관계를 “의미”한다고 알려 준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런 계약을 상징하거나 예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언적인 극 또는 드라마에서 그 여자들은 그런 계약 아래 자녀를 낳은 상징적 여자들에 상응하였다. 따라서 하갈은 지상의 예루살렘에 상응하였다. 이 예루살렘은 율법 계약이 지적한 구출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느님이 율법을 끝내신 뒤에도 그 율법에 고착하였다. 이렇게 하여 지상의 예루살렘과 그 자녀는 율법에 예속되었다. 반면에 자유로운 여자인 사라는 하느님의 아내와도 같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하느님의 조직의 하늘 부분에 상응하였다. 이 예루살렘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에 예고되어 있는 바와 일치하게 아들들을 낳는다. (갈 4:21-31. 요 8:31-36 비교) 노아 시대의 대홍수와 그 이전의 상태는 미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임재 때의 상태와 하느님의 길을 배척하는 자들에게 임할 결과를 예언적으로 묘사해 주었다.—마 24:36-39. 고첫 10:1-11 비교.
장소도 예언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시온 산의 예루살렘 도시는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인 하늘 조직을 상징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갈 4:26) “새 예루살렘”은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인 회중의 성원들로 구성된, 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상징하였다. (계 21:2, 9-14. 엡 5:23-27, 32, 33; 계 14:1-4 비교) 하지만 예루살렘 주민이 전반적으로 불충실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부정적인 면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갈 4:25. 겔 16:1-3, 8-15 비교. 예루살렘 [이 도시의 의미] 참조) 분명히 예언적 의미를 띠고 사용된 그 밖의 장소로는 소돔, 이집트, 므깃도, 바빌론, 힌놈 골짜기, 게헨나가 있다.—계 11:8; 16:16; 18:2; 마 23:33.
예언적 모형은 목적과 절차가 관련된 것으로 장막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도는 장막의 시설과 기능 및 희생 제물이 하늘에 있는 실체의 모형,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적 표상과 그림자”였다고 알려 준다.—히 8:5; 9:23, 24.
예언과 그 해석을 시험하는 일 거짓 예언자들의 활동을 염두에 두고 요한은 “영감받은 표현”—기본적으로 예언을 가리킴—을 다 믿지는 말라고 경고하였다.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영감받은 표현들을 시험하여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아보”라고 권고하였다. (요첫 4:1) 요한은 영감받은 표현이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으로서 한 가지 교리 즉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언급한다. 하지만 이것을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 당시 주로 논란거리였던 문제를 사례로 언급한 것이었을 것이다. (요첫 4:2, 3) 필수 요소는 예언이 밝혀진 하느님의 말씀이나 뜻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인데(신 13:1-5; 18:20-22), 예언이나 예언의 해석이 정확한 것이 되려면 부분적으로만 아니라 온전히 일치해야 한다. (예언자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함] 참조)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일부 성원들은 “영감받은 말씀에 대한 분별력”을 선물로 받아서(고첫 12:10), 예언이 참된 것인지를 증명할 수 있었다. 기적으로 말미암은 이 능력 역시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회중을 통하여 하느님이 예언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 주신다고 보는 것이, 특히 예언된 “마지막 때”에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발생하는 사태나 사건을 예언과 비교하여 부지런히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로 이해하게 해 주신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단 12:4, 9, 10; 마 24:15, 16; 고첫 2:12-14; 요첫 4:6 비교. 해석, 통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