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게 가치있는 인생의 목표를 부여함
어느 주부는 자기 집에 찾아온 방문객에게 말하였다. “청소년을 위한 모금 운동에 협조해 달라고 하시는 의도는 잘 알겠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대로 자선 활동을 하고 있어서 거기에 모든 헌금을 하고 있답니다. 그 자선 활동에는 청소년 훈련 계획도 들어 있지요.”
그 여자 방문객은 이렇게 말을 받았다. “잘하십니다. 어떤 단체신가요?”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아—” 모금 운동원은 잠시 멈춘다. “그러세요. 저도 여호와의 증인을 몇 사람 알고 있읍니다. 증인들은 청소년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증인들은 어떻게 청소년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가요?”
그 주부도 그것이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상당한 도전이지요. 훌륭하고 고상하고 영속적인 생의 목표를 청소년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 방문객도 그 점에 동의하면서 이렇게 부언한다. “우리는 청소년 ‘센터’를 운영하면 적어도 그들이 모여서 우정을 나누고 ‘레크레이션’을 즐길 장소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희망은, 그렇게 하여 그들이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마약 사용자들과 접촉하지 않게 하자는 것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고 그 주부는 칭찬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이상, 즉 가치 있는 어떤 것, 인생을 바칠 만한 어떤 것이 필요하지요. 우리가 해결 못한 점이 바로 그 점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동의를 표시하면서 주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성서가 젊은이에게나 어른에게나 똑같이 매우 고상한 것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사도 20:35)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관하여 배운 흐뭇한 내용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도록 젊은이들을 권고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을 젊은이들에게서 기대하기는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
그 주부는 그 점에 있어서는 의견이 다르다. “그렇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고상한 도전이 필요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멀지 않아 ‘땅을 망하게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고 그분의 의로운 왕국 통치를 가져오실 것을 배운 후에는 특히 그러하지요.”—계시 11:18; 베드로 후 3:13.
그 방문객은 어깨를 움칠하면서 “글쎄, ··· 그러한 것을 사실로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라고 말하였다.
개인적인 목표가 필요함
방문객이 떠난 후 그 주부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그분이 그 목적을 이루실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는 자기 남편이 ‘지미’와 같은 십대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던 것을 상기하였다. 그 때는 ‘지미’가 18세로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였다. 1973년 여름 어느 날 저녁 자기도 곁에 있을 때 남편은 이렇게 말을 꺼내었다.
“‘지미’, 너는 네가 전심을 기울일 만한 목표를 가지고 있니?”
“별로 없어요. ‘캠핑’, ‘보트’ 타기, 수영 등은 좋아하는 편이지요.”
아버지는 다른 방향에서 질문을 해본다. “혹시 야망 같은 것은 어떠냐? 말하자면 세속적인 사업가가 된다든가, 기술자가 되는 것 등 말이다.”
“없어요.”
“으음, 그러니까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아직도 앞날의 계획이 없다는 말이군. 여자 친구도 없는 것 같고, 헌신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는데 그럼 대답해다고. 어떤 중대한 문제가 있어서 그 때문에 오랫 동안 기도해본 적이 있니?”
“없어요”
“그러면 기도는 하니?”
“가끔하지요.”
“너는 기도할 때 그것이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천적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대화라고 생각하니?”
“그렇다고 봐야죠.”
“‘지미’, 너에게 솔직히 말한다마는, 너와 같은 사람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도전이 된단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내 말은 생애에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납득시키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너는 성공하고 싶니?” 하고 아버지는 말하였다.
“그렇죠.”
“네가 오늘 저녁에라도 생명을 잃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를 기억하시고 부활시켜 주실까?”
“그렇게 해 주시겠죠.”
“그렇게 하실 이유가 있을까?”
자신의 성서 지식을 인식함
그것은 어려운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하나님과의 훌륭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지미’에게 일깨워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지미’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면서 바로 이 세대 내에 이 사물의 제도의 종말이 온다는 명확한 성서의 증거를 듣고 보았음을 상기시켰다. (마태 24:1-34; 베드로 후 3:5-12; 계시 21:1-4)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확신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너의 인식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다. 예를 들어 에베소 4장 17절부터 19절을 읽어보자.”
‘지미’는 성서를 펴서 읽는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니라].”
“‘지미’, 몇가지 점들을 고려해보자. 세상 사람들의 총명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의 법을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왜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하나님의 길과 목적에 순응하고 있지 않죠. 그들은 부도덕하고, 성서적인 의미에서 옳고 그른 것을 모르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너는 어떠니?”
“조금은 알지요.”
“물론 너는 안다. 이제 너는 아주 고귀하고 거대한 영적 지식의 창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겠니? 영적으로 말해서 너는 부유한 젊은이인 것이다. 만약 우리 구역에서 천명 정도가 너와 같이 성서 지식을 얻게 된다면 그들 중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성서에서 경고하는 이 사물의 제도의 종말을 살아남을 수 있겠니?”
‘지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들 전부가 살아남겠지요. 만약 그들이 지식에 따라 행동한다면요.”
“요점을 이해하겠지? 네가 가진 지식을 나눠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도록 도울 기회가 너에게 있는 것이야. 단지 너는 그 일에 열정이 적을 뿐이지.”
무관심의 문제
‘지미’는 숨을 깊이 들이 쉰다. “저도 알고 있읍니다. 그 점이 문제입니다.”
“성공하기를 원하도록 우리가 어떻게 도와 줄 수 있겠니?”
“글쎄요”
‘지미’의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고 머리를 숙인다. “나도 그 점을 근심하고 있다. 부모들이 그리스도인이어서 너는 그리스도인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네가 여호와의 증인들과 교제하고 그 활동에 참여해왔지만 그것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없고 너 혼자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너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그냥 주저앉게 될지도 모르죠.”
“너는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이 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지 않니?”
“글쎄요.”
“그분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너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계시록 3장 16절을 읽어보자.”
‘지미’는 얼른 그 성귀를 펴서 읽는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하나님의 아들은 너에 대하여 거기서 뭐라고 하시니?”
‘지미’는 비로소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입에서 토해내 버릴 그런 것이라고 했군요.”
“그 말은 칭찬하는 소리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무관심한 사람, 우리를 위한 마련에 진실한 인식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지 않을 것임을 너는 인식해야 한다.”—히브리 10:28-31.
‘지미’는 당황한 듯이 엉클어진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저는 그것이 그렇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여호와와 예수께서 싫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아버지는 계속하였다. “자 그렇다면 네가 그분들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어떻게요?”
“무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너의 기도와 일치하게 행동함으로써이다.”
진정으로 성공하는 길
어린 아들에게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납득시키려고 그 아버지는 이렇게 물었다. “너는 무엇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하니?”
‘지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저, 세상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하면 돈을 많이 벌고 권세나 명성을 얻는 것을 말하지요. 큰 일을 하는 것이죠.”
“그러한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공하였다고 생각되니?”
“그렇지 않지요”라고 ‘지미’는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고 예수께서는 가장 위대한 일, 가장 중요한 일을 성취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가장 심한 시험아래서도 아버지의 이름을 옹호하셨으며 온 인류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고자 생명을 바치셨다. (로마 3:24, 25; 요한 3:16) 그런데 그 후에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마태 28:18.
아버지는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얻으신 것이다.”고 강조하면서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즉 부와 명성과 권세를 모두 가지신 것이다. 그러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다. 이제 너와 내가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겠니? 말하자면 유명해지기를 원한다고 하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스도께서 하신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방법으로 유명해져야 하겠지요.”
아버지는 표정이 밝아졌다. “바로 맞았다. 그런데 너는 좀 전에 우리 구역에 있는 사람 천 명이 너와 같이 성서 지식을 얻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들도 세상의 종말을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생명을 구하도록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있겠니?”
‘지미’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저로서는 그것이 생애에서 진정한 성공인가하는 점을 인정하기가 어렵군요.”
“이 지상에서 인간으로 계시던 때 예수께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을까?”
‘지미’는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지요. 기적과 기사를 행하셨지만 그분이 하신 주된 일은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이었죠.”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거리를 톡톡 치면서 강조하였다. “자, 잘 생각해 보아라.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가정을 방문할 때 하나님의 어떠한 주요 특성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 되니?”
“사랑이지요.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지요.”—마태 22:37-40.
“네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받들고 오류에 대항해서 진리를 옹호할 때 그것이 여호와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니?”
“그것은 우리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는 점에서 예수와 같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지요.”—히브리 1:9; 잠언 27:11.
“네가 성서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 그러한 모든 점과 그 이상의 것이 수행 된다는 점을 너도 잘 알 것이다.”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일을 행함
아버지는 어려운 질문들을 하였으나 아들은 건전한 답변을 하였다. 그러한 대화를 통해, 영적 지식이 많이 쌓여 있으나 그것이 젊은이의 머리속에서 단지 잠자고 있는 지식에 불과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가 너의 생각을 자극하였을 뿐만 아니라 너의 마음도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되니?”라고 아버지가 물었다.
‘지미’는 즉각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호와와 예수께 거슬리는 사람이 된다는 점 그것이 싫어요, 그래서 그 점을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예를 들어 어떻게?”
“저는 여호와께 헌신하고 싶어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러한 점을 상기 시킨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신을 제공하는 것을 물침례를 통하여 표상하셨다. 그리스도인이 그분의 본을 따르려면 그도 역시 침례를 받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미’ 너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데 있어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침례받기 전에 기본적인 성서의 가르침을 복습하도록 권고한다.”—마태 3:13-17; 28:19, 20.
“나와 함께 그러한 질문들을 복습해 볼까?”
“좋지요.”라고 ‘지미’는 답변하였다.
‘지미’ 어머니에게 그것은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복습하기 위한 시간을 정했다.
‘지미’ 어머니가 방문한 여자에게 그날 이야기한 내용은 사실 그대로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기들의 시간, 정력 및 자산을 가치있는 활동을 위해 바치고 있다. 그런 활동에는 젊은이들의 생애에서 가치있는 목표를 갖도록 돕는 일도 포함된다.—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