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도움이 될 수 있는가?
「깨어라!」 브라질 통신원 기
“이것은 서구 세계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믿음의 전시가 될 것이다.” ‘브라질’을 방문한 최초의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기간중 동정녀 ‘마리아’ 성당의 봉헌식 때 이와 같은 발표가 있었다. ‘브라질’의 1억 2천만 인구 중 90‘퍼센트’가 ‘가톨릭’ 교도라고 공언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있었다. 그리고 교황을 보기 위해 운집한 수많은 군중들은 위의 발표를 뒷받침하는 것 같이 보였다.
12일간의 교황 방문은 일정이 꽉찬 방문이었다. 이 나라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황은 13개 도시를 방문했다. 그는 ‘리오데자네이로’에서 74명의 사제를 서임했고, ‘포르탈레자’에서 성체 대회(聖體大會)를 개회했고, ‘브라질리아’의 교도소 하나를 방문했고, ‘리오데자네이로’의 빈민가 하나, 그리고 ‘살바도르’와 ‘벨렘’의 나병원들을 방문했다. 교황은 사회 정의, 폭력, 물질주의, 젊은이, 가족 계획 등의 광범위한 주제로 약 70개의 연설을 했다. 그러나 ‘브라질’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절정은 ‘리오데자네이로’와 ‘사웅파울로’ 중간의 작은 도시 ‘아파레시다’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국민적 성당의 봉헌식을 올린 일이었다.
성모 ‘마리아’ ‘아파레시다’ 성당은 1717년에 조그마한 ‘마리아’상이 발견된 방법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아파레시다’는 “나타남, 갑자기 발견됨”을 의미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나라 총독에게 물고기를 바치도록 세명의 어부가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한동안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그물을 끌어올렸으나 물고기 대신 머리가 없는 조그마한 상이 하나 올라왔다. 또 다시 그물을 던지니 그 상의 머리가 걸려 올라왔다. 이 때부터 어부들은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잡았던지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이 “기적”이 ‘아파레시다’의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지는 숭배의 시작이 되었는데, 43‘센티미터’ 크기의 이 상은 현재 이 ‘바실리카’ 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이 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버금가는 크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이 성당의 봉헌식은 매우 중대한 행사로 광고되었다.
그러나 교황의 방문에서 이 이상의 것이 기대되었다.
한 신문은 “교황의 방문 목적은 교회의 연합을 증진시키기 위함이다”라고 선언하고 “전국민은 그를 평화를 전파하는 목사로 영접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브라질’ ‘가톨릭’ 교회의 연합과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데 대해서는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교황의 방문 전 수 주일 동안,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역할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브라질’의 추기경들과 주교들이 벌이는 분쟁에 대해 많은 보도가 있었다. 교황의 사절에 따르면 ‘그(교황)는 이러한 분쟁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의 방문 목적은 신도들간의 연합과 우의를 고무하기 위함이다.’ 「데이리 포우스트」지는 “교회의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투쟁”에 관해 보도하면서 이렇게 결론지었다. “교회와 교황이 취하게 될 조치는 ‘브라질’ 교회의 생존을 보증하기 위함이다.”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를 강조하면서 ‘브라질’ 주재 교황 사절 ‘카르미네 로코’는 “우리는 사제 서품(叙品)을 거의 못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 점에 관해 논평하면서 「베하」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국가일지 모르나 ‘브라질’ 국민은 확실히 오늘날 교회를 섬기는 면에 있어서는 가장 냉담한 국민들 중의 하나이다. ‘가톨릭’ 교도라고 공언하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9천만명이나 되는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제 서품을 받도록 마련할 수 있었던 시민의 수는 74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 사제의 부족은 ··· 오늘날 ‘브라질’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사제가 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염두에 두고 ‘아파레시다’의 ‘마리아’ 성당 봉헌식을 고려할 때 진실한 ‘가톨릭’교인들은 이치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리아’가 교회의 이러한 위기를 도와줄 수 있는가? ‘마리아’는 나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나를 도와 줄 수 있는가? ‘마리아’가 이미 어떠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잠간 생각해 보자.
오늘날 온 인류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으로 탄생시키는 데 사용되었으므로 그에게 은혜를 입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대속을 마련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마리아’는 자신의 정결, 겸손, 믿음 및 순종으로 그리스도인 여자들에게 훌륭한 본을 세워 놓았다.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 보라. 성령으로 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전갈을 받았을 때 ‘마리아’는 겸손하게 응낙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 1:38.
그 후, “잉태”한 ‘마리아’는 남편과 함께 둘의 고향 도시로 등록하러 가야 했을 때 불평하지 않았으며, 마굿간에 묵어야 했을 때도, 그래서 아이가 거기서 태어나게 되었을 때도 그랬었다. 며칠 후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이 여자는 순종적으로 성전에 나아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행했다. (누가 2:1-7, 22-24; 레위 12:1-6) 그렇다. ‘마리아’는 이미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마리아’는 우리가 도움을 받으러 가야 할 여자인가? 많은 사람은 그렇다고 믿는다. 한 신문은 이렇게 논평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러한 믿음의 증거를 ‘바실리카’ 성당의 존재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기적의 회당에는, ··· 지팡이들의 무더기, 거대한 십자가들, 사진들 및 순례자들이 이 수호 성도가 베푼 은총과 기적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백개의 물건들이 있다.” 한 ‘뉴우스’ 잡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교황은 ‘마리아’의 전형적인 상징 즉 ‘마리아’를 나타내는 ‘엠’(M)자를 새겨 넣은 방패꼴의 흉패(胸牌)를 착용함으로써 성모 ‘마리아’에 대한 헌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그는 봉헌사에서 ‘마리아’를 가리켜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말했으며 또한 어머니, 수호 성도, 중재자, 변론자로서 숭배와 간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마리아’의 도움을 호소한 많은 사람들은 환멸을 느꼈다. 예로서 ‘칠레’와 ‘페루’에 있는 ‘가톨릭’교인들의 입장을 고려해 보라. 이들의 수호 “성도”는 ‘칼멘’의 동정녀 그리고 ‘산타 로자’이다. 많은 ‘칠레’ 여인들은 ‘칼멘’의 동정녀에게 헌신했다는 표시로 일생 동안 다갈색 옷을 입는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1879-1883)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칠레’와 ‘페루’의 군사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칠레’인들은 ‘칼멘’의 동정녀에게 그리고 ‘페루’인들은 ‘산타 로자’에게 서약과 기도를 드렸다. ‘칠레’가 ‘페루’를 패배시켰다. 이것은 ‘칼멘’의 동정녀가 ‘산타 로자’보다 더 강력함을 의미하는 것인가? 둘이 다 동일한 동정녀 ‘마리아’를 대표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기도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 즉 가납될 수 있는 기도는 누군가 다른 분에게, 누군가 다른 분을 통하여, 그리고 매우 다른 어떤 것을 위하여 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가 11:2; 빌립보 4:6; 요한 14:6; 15:16; 야고보 4:1-3; 요한1서 3:22; 5:14에서 성서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직접 찾아 보기 바란다.)
‘브라질’에서 이에 못지않게 곤란한 문제는 ‘마리아’에 대한 헌신과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의 여신 ‘이에만하’에게 바치는 헌신을 혼합하는 문제이다. ‘도미니’ 수도사 ‘라이문도 드 알메이다 신트라’는 ‘부우두우’교의 일종인 ‘칸도블레’ 숭배자들에게 있어서 “‘이에만하’와 성모 ‘마리아’는 그 개념이 ··· 온전히 동일하다”고 말했다.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동 수도사의 말에 의하면, 제2차 ‘바티칸’ 공회의 문서는 “[상이한 종교들의] 이러한 요소들 중 얼마를 흡수하여 편입시키라고 권한다.”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그러므로, ‘마리아’와 ‘이에만하’의 상들을 동일한 숭배의 제단에서 찾아보는 일이나 ‘이에만하’에게 드리는 기도의 어조 및 ‘리듬’이 ‘가톨릭’ 교회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숭배의 혼합은 이러한 질문을 일으킨다. 숭배를 받는 대상은 누구인가, ‘마리아’인가 ‘이에만하’인가? 게다가, 한 보고는 ‘브라질’의 명목상의 ‘가톨릭’교인 중 70‘퍼센트’가 어떤 종류의 영매술을 함께 행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교황의 방문 목적들 중 하나가 왜 “‘브라질’ 교회의 생존을 보증하기 위함”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성당 봉헌식을 위해 대군중을 운집시키면 ‘많은 충실한 자들이 ‘아파레시다’로 돌아와 믿음을 새롭게’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됐든 다른 것이 됐든 피조물을 공경하는 것과 관련하여, ‘가톨릭’교인들은 사도 ‘요한’이 천사를 숭배하기 위해 엎드렸을 때 그 천사가 한 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삼가 그리하지 말[라] ··· 하나님께 경배하라.”—계시 19:10.
이상의 점들을 고려할 때, 그리고 교황의 방문중에 교황을 보기 위해 운집한 군중들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마리아’가 당신이나 ‘브라질’ 교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굳건한 기초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도움의 근원
동정녀 ‘마리아’에게 헌신했던 한 ‘칠레’ 여인의 경험은 성실한 ‘가톨릭’교인들을 참으로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예시한다. 성서를 연구하고 있는 이 여인의 딸이 자기 어머니에게 “성모 ‘마리아’, 하나님의 어머니”에게 간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하루는 딸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누가 세상을 만들었죠?” “물론 하나님이지”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어떻게 어머니가 있을 수 있을까요?”
얼마 동안 이 질문에 대해 숙고한 후 어머니는 질문들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딸은 이렇게 제안했다. “다음 번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들리면 그들에게 그 질문을 성서로 대답해 달라고 부탁하시는게 어떨까요?” 이 여인은 그렇게 했으며 자신의 ‘가톨릭’ 성서를 사용하여 몇번의 토론을 한 후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여인은 또한 하나님은 숭배에서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형상들을 모두 없앴다. 이 여인은 시편 121:1, 2에 있는 성서 말씀의 가치를 인식하게 됐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당신은 진실한 ‘가톨릭’교인으로서, 왜 당신의 교회에 불화가 있는지, 왜 “신도들간의 우애”가 결핍되어 있는지, 또 왜 이교 의식과 ‘가톨릭’ 의식이 심하게 혼합되어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성서에 대한 지식은 당신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도록 도와 줄 것이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여호와의 증인’들은 수천명의 ‘가톨릭’교인들, 영매술사들 및 기타 사람들이 이 지식을 얻도록 도와 왔다. 이들은 당신에게도 기꺼이 도움을 베풀고자 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칠레’ 여인이 한 것과 같이, 다음 번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당신이 사는 구역에 들르면 시간을 내어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