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형제 관계—꿈에 불과한가?
그 중대한 해, 1914년 12월의 마지막 며칠 동안의 일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시초의 치열한 전투는 단 5개월만에 350만의 사상자를 내고 한풀 꺾여 있었다.
12월 24일 밤에 ‘벨기에’ ‘와이퍼즈’ 근방의 전선에서 한 영국군 소대는 독일군 참호들로부터 37‘미터’되는 지점에 말뚝과 철망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놀랍게도, 독일군 진영으로부터 단 한발의 총탄도 발사되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양 진영의 수백명의 군인들은 참호에서 기어 나와 완충 지대에서 우애를 나누고 인사와 선물을 교환하였다.
어찌된 일이었는가? 다른 전선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축제철로 인해, 전쟁에 지친 사람들의 정신이 평화와 우호를 갈구하는 깊은 욕망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러나 욕망대로 될 수는 없었다. 나라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그 쓰라린 끝장을 볼 때까지 치루어 수백만의 인명을 앗아가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을 가져 왔다. 그 짧은 한 순간의 우애는 꿈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그 꿈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한층 더 깨지고 말았다. 오늘날 적대 세력들과 대량 살상 무기들은 꿈은커녕 끔찍한 악몽에 잠기게 하고 있다.
형제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들
인간의 역사는 연속적인 유혈과 폭력의 길고도 슬픈 기록이었다. 그러나 인류의 형제 관계를 고대해 온 사람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우애”라는 표어로 ‘프랑스’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단 몇년 후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유럽’을 피로 물들였다.
역사가 흘러 내려오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형제애 집단들과 자매애 집단들이 활동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는 진정한 세계적 형제 관계의 특성이 없었다. 예를 들어, 유명한 국제적 형제애 집단인 ‘프리메이슨’ 제도는 비밀 집단인데다 남자들에게만 개방되어 있다.
그러한 온갖 노력으로도 인류의 형제 관계는 결코 이루지 못하였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잠간 생각해 보라. 이러한 이념이 단순한 꿈에서 실질적인 현실로 바뀌어 질 수 있다면 어떠하겠는가? 참으로 세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진정한 국제적 형제 관계는 국경, 정치적 및 종교적 경쟁, 국가와 인종들 사이의 증오심에 종지부를 찍게 할 것이다. 전쟁, ‘테러’주의, 그리고 오늘날 세상 상태를 무서울 정도로 위험하게 만드는 온갖 요인들은 제거될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되는 것을 보고 싶은가? 물론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결코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가 입증하듯이,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된다는 이념은 꿈에 불과하다.’ 인간의 과거 및 현재의 기록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말은 옳은 말이다.
보다 높은 관점
그러나,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관점이 있는데, 그 관점에서는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밀림에서 길을 잃고 빠져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당신의 생명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공의 비행기에 타고 있는 사람이라면 빠져 나가는 길을 뚜렷이 보고 무선 연락으로 당신을 안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높은 관점은 생사의 차이를 의미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의 점증하는 문제들로부터 빠져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 상태를 높은 관점,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고려하는 것은 참으로 절박한 생사의 문제이다. 그분에 관하여 영감받은 한 예언자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니라.]”—이사야 55:9, 12.
그러나, 진정한 형제 관계 형성에 대한 창조주의 숭고한 견해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다. 즉 무엇 때문에 그것이 인간의 관점에서는 불가능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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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정복은 우애의 꿈을 깨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