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거리는 생활을 하게 되는 이유
그러나 우리 시대가 그처럼 허둥거리는 시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산업화가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했던, 충분한 여가 시간을 즐기는 한가한 생활이 될 것이라는 이상향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모두가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즐길 것”이라는 많은 경제학자, 사회학자, 미래학자의 예측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실상, 저술가인 A. 켄트 맥더갤은 이렇게 말한다. “일반 급료 생활자는 이전 세대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일하는 데 바치며, 출퇴근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생활을 단순하게 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허둥거리게 만들어 놓았다. 마케팅 전문 교수인 헤롤드 H. 캐서리언은 이렇게 말한다. “대중 통신 및 교통 수단이 우리에게 해롭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서둘러야 하는 인위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더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꼴이다.”
주된 요인들
오늘날 많은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시간 외 근무를 하거나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직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여자들도 엄청나게 많다. 폴 존슨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역사상 전통적으로 여자가 하던 잡일이 상업적 과학 기술에 의해 극적으로 줄어든 바로 이 시기에 ··· 여자가 이전에 했던 것만큼이나 힘들게, 어쩌면 그보다 더 고되게 일하고 있다는 점은 실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많은 여성은 하루 종일 직장 일을 하고 난 뒤에 집에 와서 제 2의 일인 가정과 자녀를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 연구가 지적하듯이, 남편은 아내의 늘어난 일의 부담을 별로 덜어주지 못한다. 그로 인해 , 직장을 가진 아내에게 있어 시간은 종종 부족하고도 갖기 힘든 자산이다. 「맞벌이 부부」(Working Couples)의 저자들은 한 직장을 가진 아내의 이같은 말을 인용한다.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없기 때문에 압력을 많이 느끼지요.”
성 관습의 변화와 치솟는 이혼율 역시,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허둥거리는 생활을 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어떻게 그러한가? 「가족 관계」(Family Relations)지의 한 기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사회[미국]에서 지난 9년간에 걸쳐 홀어버이 가정이 79 퍼센트나 증가하였다. ··· 오늘날 그 발생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다.” 혼자서 자녀를 훈련시키고 물건을 사고 요리하며 또 집안을 청소해야 하는 홀어버이에게, 생활은 쉴 사이 없이 허둥거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다른 요인들
오늘날 허둥거리는 생활을 하게 되는, 그외의 다소 불분명한 이유들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인생은 짧다—“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한다고 성서는 말한다. (욥 14:1, 2) 이 성서의 진리를 실감하는 많은 사람은, 할 만한 것은 다해 보자는 식으로 서둘러 마치는 생활을 한다.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는 것이 그들의 생활 철학이다.—고린도 전 15:32.
인생은 불확실하다—“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라고 현명한 왕 솔로몬은 말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시기와 우연[예기치 않은 일, 신세]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전도 9:11)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해 자신의 목표가 방해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서둘러서 목표에 도달하려는 것 같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두려움—어린 아이들처럼, 많은 어른은 안달을 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 그런 사람들은 앞일을 맛보려고 서두르기 때문에 현재를 느긋하게 즐기지 못한다.
성마름과 조바심—그외에도 성마름과 조바심이 있는데, 아마 우리가 이따금씩 백 미러로 뒤따라 오는 운전자를 보면 그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운전자는 자기 앞에 있는 차는 모두 무례하게 여기고 가능한 한 속히 모든 차를 앞지르려고 하는듯 싶은데, 흔히 아무 이유도 없이 그렇게 한다. 때때로 우리는 다음 신호등 앞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다!
권태—자신의 직장 일이나 판에 박힌 일과를 지루하고 재미없게 여기는 사람은 소위 필요악이라고 하는 그런 일을 가능한 한 빨리 해치워 버리고는 여가 활동에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시간은 돈이다”—어떤 사람은 앞서 언급한 자유 시간이나 휴가를 보내는 데 돈이 드는 것이 두려워서 이 원칙대로—그리고 시계에 매달려—생활한다. 그들은 거의 만족할 줄 모르며, 늘 물질적 소유물을 쌓는 데만 분주하고 그것을 써볼 시간은 거의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독자도 허둥거리는 생활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생기는 질문은 ···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한 가지는, 현대의 허둥거리는 생활 속도로 인해 압박감과 관련된 많은 병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는 격언의 참됨은 인간이 애쓰는 다른 분야에서도 실증되고 있다. 예로서, 독일의 「의료 실무」(Ärztliche Praxis)지가 보고하는 바를 보면 “교통 사고의 제일 원인은 여전히 과속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기본 기술을 습득하는 일을 서둘러 해치운 학생이라면 직업을 구하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식사를 급하게 하면 위를 해치며 소화도 잘 안 되고 여러 가지 신체상의 병에 걸릴 수 있다. “언어에 조급한” 사람은 난처한 일을 야기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며, 우정을 훼손시키기도 한다. (잠언 29:20) 그리고 결혼 배우자를 서둘러 찾는 사람은 이혼 역시 서둘러 할 수 있다.
물질적 소유물을 얻는 일이나 출세하는 일 또는 가정을 번듯하게 세우거나 인생에서 최대한의 것을 얻어내려고 서두르는 사람은 어떠한가? 사실상 그러한 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광적으로 추구한다면 결국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고대 솔로몬 왕은 그러한 것을 추구해 보고서 이렇게 결론내렸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도 2:11.
그렇다면 오늘날의 허둥거리는 생활 속도에 대처하고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5면 네모]
오늘날의 허둥거리는 생활 속도
“안절부절 못하는 과잉 성취가의 모습이 오늘날의 압박감을 주는 사회에 [항상 존재한다]”고 「뉴욕 타임스」지는 논평하면서, 이렇게 기술했다. “그 전형적인 예로서 몇분 안 있으면 다음 차가 올텐데도 지하철역에서 뛰는 사람, 목표에 도달하는 것만 아니라 초과 달성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경영 간부, 어떻게 해서든지 무리 중에서 특출나고자 하여 문책당할 위험을 무릅써가며 분수를 모르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