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여호와의 집이 높이 들어올려지다
1, 2. 국제 연합 광장에 있는 한 벽에는 어떤 말이 새겨져 있으며, 그 말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그들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가지치는 낫을 만들 것이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칼을 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 뉴욕 시의 국제 연합 광장에 있는 한 벽에는 이러한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이 인용문의 출처를 밝혀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국제 연합의 설립 목적이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므로, 이 말은 1945년에 국제 연합 창설자들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기 십상이었습니다.
2 하지만 1975년에, 그 벽의 인용문 밑에 이사야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 말이 현대에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사실은 2700여 년 전에, 현재 이사야서로 알려진 책 2장에 예언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이사야가 예언한 일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매우 궁금하게 여겨 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궁금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고대의 예언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놀랍게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3. 어떤 나라 사람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있습니까?
3 어떤 나라 사람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있습니까? 물론, 현대의 정치 국가들이나 정부들이 아닙니다. 이러한 나라들은 지금까지도 칼 즉 무기를 개발하며, 전쟁을 벌일 뿐만 아니라 힘을 통해 “평화”를 보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나라들은 언제나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려는 경향을 나타내 왔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모든 나라들 가운데서 나온 대표자들 즉 “평화의 하느님” 여호와를 숭배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성취되고 있습니다.—빌립보 4:9.
순결한 숭배로 몰려드는 뭇 나라 사람들
4, 5. 이사야 2장의 첫머리에 나오는 성구들은 어떠한 일이 있을 것임을 예언하며, 무엇이 그 말의 확실성을 강조해 줍니까?
4 이사야 2장은 이러한 말로 시작됩니다. “아모즈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상으로 본 것이다. 말일에 여호와의 집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보다 높이 굳게 세워지고, 틀림없이 언덕들보다 높이 들어올려질 것이며, 그리로 모든 나라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이사야 2:1, 2.
5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내용은 단순한 추측의 산물이 아님에 유의하십시오. 이사야는 지시를 받아 “틀림없이” 일어날 일—반드시 일어날 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목적하고 계신 일은 무슨 일이든 “확실히 성공”합니다. (이사야 55:11) 하느님께서는 필시 자신의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사야와 동시대의 사람인 예언자 미가에게 영감을 주어, 미가서에도 이사야 2:2-4에 나와 있는 것과 동일한 예언이 기록되게 하셨을 것입니다.—미가 4:1-3.
6. 이사야의 예언은 언제 성취됩니까?
6 이사야의 예언은 언제 성취될 것입니까? “말일에” 성취될 것입니다. 「신 국제역」에서는 “마지막 날에”라고 번역합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이 기간을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특징들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한 특징 가운데는 전쟁, 지진, 역병, 식량 부족,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a 등이 있습니다. (디모데 둘째 3:1-5; 누가 21:10, 11) 이러한 예언들의 성취는 우리가 “말일에”, 즉 현 세계 제도의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는 풍부한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볼 때, 우리는 이사야가 예언한 일들이 우리 시대에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숭배가 행해지는 산
7. 이사야는 어떤 예언적 묘사를 합니까?
7 이사야는 단 몇 마디 말로 생생한 예언적 묘사를 합니다. 우리는 한 높은 산을 보게 되는데, 그 산 꼭대기에는 영광스러운 집인 여호와의 성전이 있습니다. 그 산은 주위에 있는 산들이나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산은 불길한 예감이나 두려움을 갖게 하는 산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산입니다. 모든 나라에서 나온 민족들이 여호와의 집이 있는 그 산에 오르기를 열망하여 그 산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머리 속으로 그려 보기 쉬운 장면인데, 이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8. (ㄱ) 이사야 시대에 언덕이나 산은 무엇과 관련이 있습니까? (ㄴ) 뭇 나라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의 산”으로 몰려드는 것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8 이사야 시대에 언덕이나 산은 흔히 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언덕이나 산은 우상 숭배를 하는 장소이며, 거짓 신들의 신성한 곳이 있는 장소입니다. (신명 12:2; 예레미야 3:6) 하지만 여호와의 집 즉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 산 꼭대기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 하느님을 숭배하기 위해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여 모리아 산에 올라갑니다. (신명 16:16) 따라서 뭇 나라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의 산”으로 몰려드는 것은 많은 민족들이 참 숭배를 위해 모이는 것을 상징합니다.
9. “여호와의 집의 산”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9 물론, 오늘날 하느님의 백성은 돌로 지은 성전이 있는 문자적인 산에 모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여호와의 성전은 기원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명확히 밝힌 바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이나 그 성전에 앞서 있었던 장막은 모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더 큰 영적 실체 즉 ‘여호와께서 세우신 것이며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닌 참된 천막’을 상징하였습니다. (히브리 8:2) 그 영적 천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에 근거한 숭배를 드리기 위해 여호와께 나아가기 위한 마련입니다. (히브리 9:2-10, 23) 이와 일치하게, 이사야 2:2에 언급된 “여호와의 집의 산”은 우리 시대에 드높여진, 여호와에 대한 순결한 숭배를 상징합니다. 순결한 숭배를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들은, 어느 특정한 지리적인 장소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숭배에 있어서 연합되어 있다는 의미로 모이는 것입니다.
순결한 숭배를 드높임
10, 11. 여호와에 대한 숭배는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로 드높여졌습니까?
10 이 예언자는 “여호와의 집의 산” 즉 순결한 숭배가 “산들의 꼭대기보다 높이 굳게 세워지고 ··· 언덕들보다 높이 들어올려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시대가 되기 오래 전에, 다윗 왕은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산으로 가지고 올라왔는데, 시온 산은 높이가 해발 760미터였습니다. 계약의 궤는 거기에 놓여 있다가 모리아 산 위에 완성된 성전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무엘 둘째 5:7; 6:14-19; 역대 둘째 3:1; 5:1-10) 따라서 이사야 시대에는, 그 신성한 궤가 이미 실제로 높이 올려져서 성전에 있었으며, 거짓 숭배를 위해 사용되던 주위에 있는 수많은 언덕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11 물론, 영적인 의미에서,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는 거짓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는 종교 행위보다 언제나 월등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에 대한 숭배를 하늘처럼 드높이셔서 모든 더러운 숭배 방식보다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언덕들”과 “산들의 꼭대기”보다 훨씬 높이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주로, “영과 진리로” 자신을 숭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함께 모음으로써 그렇게 하셨습니다.—요한 4:23.
12. “왕국의 아들들”은 누구며, 그들을 모으는 일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습니까?
12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사물의 제도의 종결”은 수확 때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때 천사들이 “왕국의 아들들”—하늘 영광 가운데 예수와 함께 통치할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들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 13:36-43) 여호와께서는 1919년 이래, 이 아들들 가운데 “남은 자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그들이 천사들과 함께 수확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계시 12:17) 그러므로 우선 “왕국의 아들들” 즉 예수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을 모으는 일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왕국의 아들들을 더 모으는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13. 여호와께서는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을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13 이 수확 때에 여호와께서는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이 그분의 말씀인 성서를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점진적으로 도와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도 순결한 숭배를 드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어둠이 땅을 덮고, 흑암이 나라들을 덮”고 있지만,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여호와에 의해 깨끗해지고 정련되어서 인류 가운데서 “빛을 비추는 사람들로서 빛나고” 있습니다. (이사야 60:2; 빌립보 2:15) “모든 지혜와 영적 이해력에 있어서 그분의 뜻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가득 차게” 된 이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해와 같이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골로새 1:9; 마태 13:43.
14, 15. “왕국의 아들들”을 모으는 일에 더하여 누구를 모으는 일이 진행되어 왔으며, 학개는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예언하였습니까?
14 이에 더하여, 또 다른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의 산”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른 양들”이라고 부르신 이 사람들은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 10:16; 계시 21:3, 4) 193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수천 명이더니, 그 후에는 수십만 명을 이루었고, 지금은 수백만 명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환상에서는 이 사람들을 ‘모든 나라와 부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계시 7:9.
15 예언자 학개도 이 큰 무리의 등장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다시 한 번—조금 있으면—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다. 또 내가 모든 나라를 진동시키겠고, 모든 나라의 보배로운 것[순결한 숭배에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는 사람들]이 정녕 이를 것이다.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겠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학개 2:6, 7)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이 “큰 무리”와 그들의 기름부음받은 동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집에서 행해지는 순결한 숭배를 드높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그 숭배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참 하느님을 숭배하는 일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연합했다는 기록을 이전에는 결코 찾아볼 수 없으며, 이것은 여호와와 그분의 즉위한 왕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솔로몬 왕은 이렇게 썼습니다. “백성이 많으면 왕에게 단장이 [된다].”—잠언 14:28.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서 드높여진 숭배
16-18. 일부 사람들은 여호와를 그분이 받아들이시는 방법대로 숭배하기 위해 어떠한 변화를 하였습니까?
16 여호와께서는 우리 시대에 순결한 숭배를 드높이신 일로 말미암아 모든 영예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그 일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데 노력이 드는 것처럼, 하느님의 의로운 표준을 배우고 그에 따라 생활하는 데도 노력이 듭니다. 일세기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오늘날의 하느님의 종들도 참 숭배와 조화되지 않는 생활 방식이나 행위들을 버렸습니다. 음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이나 간음하는 자들이나 도둑들이나 탐욕스러운 자들이나 술 취하는 자들이나 기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그들의 행로를 바꾸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깨끗이 씻겨졌”습니다.—고린도 첫째 6:9-11.
17 그 대표적인 예로 한 젊은 여자의 경험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여자는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저는 한때 아무런 희망도 없이 갈 바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부도덕하고 술에 취해 사는 생활을 하였지요. 여러가지 성병에도 걸렸습니다. 또한 마약도 팔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았습니다.” 이 여자는 성서 연구를 한 뒤 하느님의 표준에 따르기 위해 큰 변화를 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정신의 평화와 자중심을 느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고, 진정한 가족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로서, 우리 아버지 여호와와 좋은 관계를 누리고 있습니다.”
18 여호와 앞에서 승인받은 신분을 얻은 모든 사람은 그러한 신분에 도달한 뒤에도 순결한 숭배가 자신의 생활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게 함으로 순결한 숭배를 계속 드높여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수천 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서, 자신의 생활에서 그분에 대한 숭배를 가장 중요한 일로 삼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많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셨습니다. 당신도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까?
여호와의 길을 가르침받는 백성
19, 20. 하느님의 백성은 무엇을 가르침받으며, 어디에서 가르침받습니까?
19 이사야는 오늘날 순결한 숭배를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더 많은 점을 알려 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틀림없이 많은 백성들이 가며 말할 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올라가자. 그러면 그분이 우리에게 그 길을 교훈하실 것이니, 우리가 그 길로 걸을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이사야 2:3.
20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길 잃은 양처럼 이리저리 방황하게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여호와의 길을 배워 알 수 있도록, 성서와 성서에 근거한 출판물을 통해서 자신의 백성에게 여호와의 “율법”과 “말씀”을 주십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지식은 그들이 “그 길로 걸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해 줍니다. 인식이 가득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들은 하느님의 인도와 일치하게 서로 여호와의 길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길에 대해 듣고 배우기 위해, 큰 대회에 함께 모이거나 그보다 작은 집단으로—왕국회관이나 개인 집에서—함께 모입니다. (신명 31:12, 13) 그렇게 하여 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본받는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훌륭한 일”이 많아지도록 서로 격려하고 고무하기 위해 함께 모였습니다.—히브리 10:24, 25.
21. 여호와의 종들은 어떤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21 그들은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드높여진 숭배로 “올라가자”고 다른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과 참으로 일치 조화를 이룹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마태 28:19, 20)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느님의 후원을 받아, 순종적으로 지구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제자로 삼아 침례를 베풉니다.
칼을 보습으로
22, 23. 이사야 2:4은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며, 유엔의 한 관리는 그 일과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22 이제 국제 연합 광장에 있는 벽에 구절 일부가 새겨져 있는 다음 성구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사야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그분은 반드시 나라들 가운데서 심판을 하시고 많은 백성들에 관한 문제들을 바로잡으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가지치는 낫을 만들 것이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칼을 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도 않을 것이다.”—이사야 2:4.
23 이러한 일은 결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의 사무총장인 페데리코 마이오르는 한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 시청각 기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전쟁의 모든 추악상으로도, 여러 세기 동안 끊임없이 설치되고 사용되어 온 거창한 전쟁 무기들의 행진을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오늘날의 세대들에게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태곳적부터 발달되어 온 전쟁 본능을 평화를 희구하는 감정으로 바꾸라는, 성서에서 부과한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가 지워져 있다. 이 일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지구촌’에서 전시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도 가장 고상한 행위가 될 것이며,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유산이 될 것이다.”
24, 25. 이사야의 말은 누구에게 성취되고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성취되고 있습니까?
24 전반적으로 나라들은 이 고상한 목표를 결코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일은 나라들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이사야의 말을 성취시키고 있는 것은 많은 나라에서 나온 개인들이며, 이 사람들은 순결한 숭배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문제들을 바로잡”아 오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서로 평화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실상, 분열과 투쟁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여호와의 백성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가지치는 낫을 만들”어 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였습니까?
25 한 가지 방법으로, 여호와의 백성은 나라들의 전쟁에서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시기 얼마 전에, 무장한 사람들이 예수를 체포하러 왔습니다. 베드로가 칼을 휘둘러 자기의 주인을 보호하려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제자리에 도로 꽂으십시오. 칼을 잡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할 것입니다.” (마태 26:52) 그때 이후로,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어 왔으며, 무기를 들고 동료 인간을 죽이거나 기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전쟁에 쏟는 노력을 지원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과의 평화를 추구”합니다.—히브리 12:14.
평화의 길을 추구함
26, 27. 하느님의 백성은 어떻게 “평화를 찾아 그것을 추구”합니까? 예를 드십시오.
26 하느님의 백성의 평화는 단지 전쟁에 참여하는 일을 거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일을 이룩해 냅니다. 그들은 230여 개 나라와 지역에 흩어져 있고 수많은 언어와 문화를 대표하고 있는데도 서로 평화를 누립니다. 바로 그들에게, 예수께서 일세기에 제자들에게 하신 이러한 말씀이 현대에 성취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사랑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이것으로 여러분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 13:35)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평화 조성자들”입니다. (마태 5:9,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 참조) 그들은 “평화를 찾아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 첫째 3:11)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지원해 주시고 계십니다.—로마 15:33.
27 평화 조성자가 되는 법을 배운 사람들 가운데는 극적인 변화를 한 예들이 있습니다. 한 젊은 남자는 자기의 어린 시절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쓰라린 경험을 통해 나는 자기 방어를 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한 경험으로 인해 삶에 대해 표독스럽고 분노에 찬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싸움을 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웃에 있는 아이들 가운데서 싸움 상대가 매일 바뀌었으며, 어떤 때는 주먹으로 어떤 때는 돌이나 병을 들고 싸웠습니다. 나는 커가면서 매우 난폭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여호와의 집의 산”에 올라가자는 초대에 응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길을 배우고 평화를 사랑하는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28.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까?
28 여호와의 종들은 대부분 그러한 난폭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교적 사소한 일—친절한 행동, 용서, 감정이입—에서까지도 다른 사람들과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도 불완전한 사람들이지만, 성서의 교훈을 적용하여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불평할 이유가 있더라도, 계속 서로 참고 서로 기꺼이 용서하”려고 노력합니다.—골로새 3:13.
미래의 평화
29, 30. 이 땅의 전망은 어떠합니까?
29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즉 “말일”에 놀라운 일을 해 오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나라들 가운데서 그분을 섬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모아 오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길 즉 평화의 길로 걷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다가오는 “큰 환난”을 살아남아 평화로운 신세계로 들어갈 것이며, 그곳에서는 전쟁이 완전히 사라져 영원히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계시 7:14.
30 칼 즉 무기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필자는 그때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너희는 와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아라. 그분이 몹시 놀라운 일들을 땅에 두셨도다. 그분이 땅 끝까지 전쟁을 그치게 하시니, 활을 꺾고 창을 부러뜨리시며 수레를 불에 사르시는구나.” (시 46:8, 9) 이러한 전망을 생각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이사야의 권고는, 이사야가 이 말을 기록했을 때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적절한 권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집의 사람들아, 와서 여호와의 빛 가운데 걸어가자.” (이사야 2:5) 그렇습니다. 이제 여호와의 빛이 우리의 길을 비추게 합시다. 그리하여 영원무궁토록 여호와의 길로 걸어가도록 합시다.—미가 4:5.
[각주]
a 여호와의 증인 발행,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책 제9장 “우리는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