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 13:24.
1. ‘길르앗 학교’ 졸업생들은 무슨 실용적인 충고를 받았읍니까?
몇해 전 ‘왙취 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 졸업식에서 기조 연사는, 새로 선교인이 될 졸업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하였읍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생활해 나가면서, 하루 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에 그날 열심히 한 일의 좋은 결과를 보고 기쁨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 부지런히 일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즐거워할 것입니다.” ‘왙취 타워 협회’ 회장의 이러한 연설은 실용적이기도 하였으려니와 성경상의 근거도 확실한 것이었읍니다. 힘든 노력은 행복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다가오는 새 사물의 제도를 선포하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2. 오늘날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일에 대한 태도를 묘사하십시오.
2 당신도 그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 봉사에 있어서 당신의 일을 어떻게 봅니까? 당신은 기꺼이 그리고 부지런히 그 일에 전념합니까? 그것은 생활에 있어서 기쁨의 주된 원천입니까? 당신은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맛보고 있으며, 기술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며, 그로 인한 유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대단히 좋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일에 대한 그릇된 태도에 빠져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누구이겠읍니까? 어디서나 사람들은 참으로 일에 몰두하기를 꺼리며, 그러한 일군을 고용한 사람들은 고용인들이 점점 꾸물거리고, 느리고, 무관심해가고 있다고 불평합니다. “천천히 하자. 남겨 두어야 또 할 일이 있을 것이다” 하는 말이 많은 상점 종업원들의 표어라고 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파업은 사회의 독소(毒素)라고 하며, 노동의 불안은 점차적으로 고용인들에게 난관을 증대시킨다고 합니다. 일에 대한 태도의 변질은 다음과 같은 어느 청년의 말에 잘 표현되어 있읍니다. “일하는 방법을 내게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들과 세대가 다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힘들여서 일을 하지 않습니다.”
3. 일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다른 부면은 무엇입니까?
3 열심히 일하는 것이 점차 인기가 없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때때로 일을 전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수단을 용납하는 것 같습니다. 일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이 부면은 1971년 2월 8일호 「유. 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에 “통제할 수 없는 복지 대책”이라는 제목에 잘 설명되었읍니다. 거기서는 만연되어 있는 상태를 개탄하였는데, 그 전형적인 예는 ‘뉴욕’ 시로서, 그 도시에서는 구호 대상자가 6명 중 한명 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로 일하기를 거절하고, 자기 자녀와 자녀들의 어머니를 부양하는 책임을 회피하는 아버지들의 “부양 포기” 때문입니다. 1971년 1월 22일에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그 심각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창하면서, “효과적인 노동 의욕과 효과적인 노동 의무를 설정합시다.” 하고 선언하였읍니다.
4. (ㄱ) 그리스도인들은 억지로 일을 해야 합니까? (ㄴ) 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맛보아야 합니까?
4 참 그리스도인들은 억지로 일을 하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게으름을 성서는 정죄합니다. 성서는 이렇게 교훈합니다.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데살로니가 전 4:11)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이 일에서 즐거움을 맛보고 일에서 만족감과 흡족함을 느끼도록 만드셨읍니다. 그러한 마련은 실로 여호와께서 주신 웅대한 선물이며 축복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전도 3:13, 22; 2:10, 24; 5:18.
5. 하나님의 백성은 왜 일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를 버려야 하는지 설명하십시오.
5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일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하여 일을 하고 또 가족을 위하여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해야 합니다. (고린도 후 8:21; 데살로니가 후 3:10; 디모데 전 5:8) 게으름이 빈곤과 파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압니다. 그것은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특히 영적으로 그렇습니다. (잠언 10:4; 24:33, 34; 21:25) 그러한 문제를 당연한 인생의 한 부면이라고 본다면, 해를 받을 것입니다. 특히 게으름이 자기의 영적 활동에 영향을 주고, 영적 상태에 해를 끼친다면 그러할 것입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잠언 19:15.
여호와의 증인들이 바쁘게 일하는 이유
6. (ㄱ) 왜 여호와의 증인들은 대단히 바쁜 사람들입니까? (ㄴ)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떻게 보호책이 되며 행복을 줍니까?
6 당연한 일이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은 대단히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에 불쌍합니까? 그들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일하는 외에도, 개인적으로 성서 공부를 많이 하며, 매주 다섯 가지 회중 집회에 참석하며, 매달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사람들로 제자를 삼는 일에 많은 시간을 바칩니다. 그들은 바쁘게 일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에 영예를 돌리고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위안을 가져다 주며 자신들이 영원한 생명의 보상을 약속받고 있기 때문에 즐거움과 만족을 얻고 있읍니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여러 가지 유혹과, 세상, 육신 및 마귀로부터 오는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보호책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의 회중을 방문해 보면 그들이 행복한 사람들임을 볼 수 있으며, 아마 그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시 144:15; 사도 20:35.
7. (ㄱ)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다른 일 때문에 열심히 일합니까? (ㄴ) 회중 내에서 종이 되는 것은 왜 특권이며, 다른 사람들은 종들의 열심한 노력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설명하십시오.
7 양심적이고 부지런한 그리스도인들을 바쁘게 만드는 또 다른 일로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돕고 여러 가지 집회를 준비하는 일 등이 있읍니다. 회중 내에서 종의 직책을 가진 자들은 직무가 또 있읍니다. 여호와의 겸손한 양무리를 돕는 일은 특권이며 자신에게 깊은 만족감을 가져다 줍니다. 그들은 감사함을 받습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 빌립보 2:3, 4; 고린도 전 10:24, 33; 로마 15:1, 2) 회중 내의 그러한 부지런한 감독자들은 형제들로부터 깊은 감사와 존경을 받습니다.—디모데 전 5:17; 히브리 13:7.
8.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일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말씀하십시오.
8 그러한 봉사자들이 할 일이 그처럼 많은 또 다른 이유는 이 사물의 제도에 대하여 남은 기간이 대단히 짧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여호와]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우리 시대의 긴급성 때문에 그들은 “마음을 다하여 주[여호와]께 하듯”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것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로마 12:11, 12; 골로새 3:23, 24; 요한 9:4.
9. (ㄱ) 이 봉사의 일은 왜 무미건조하지 않고 자극적입니까? (ㄴ)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어떤 종류의 직업을 구하고 있읍니까?
9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이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그 자체가 자극적이고 기분을 새롭게 해 주고 도전이 됩니다. 이 일은 무미건조하거나 틀에 박힌 듯하거나 재미없는 일이 아니며, 젊은이들이 추구할 만한 매혹적인 전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1970년도 ‘하바드’ 대학교 졸업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보고가 있었읍니다. “졸업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확실치 않은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으며, 많은 학생들은 육체 노동을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 최근의 많은 졸업생들은 자동차 운전사, 창고업, 서점 점원, 직공 등의 직업을 택하였다. 그것은 전통적인 직업 속에서 자기의 주체성이 상실되고 자기들의 정력이 잘못 사용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1971년 3월 3일자 「뉴욕 타임즈」지.
10. 예수께서는 젊은이로서 어떤 일을 택하셨으며, 그 일에 만족하셨읍니까?
10 손으로 하는 일은 유익하며 만족스럽습니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에게 성취감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깊은 일은 아닙니다. 사람의 창조주께서는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무슨 일이 필요한가를 잘 아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기 아들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하셨는가를 살펴보면 흥미가 있읍니다. 때가 되자 예수께서는 목수라는 세속적인 일을 버리고 훨씬 더 중요하고 무한히 의미깊은 일을 받아들였읍니다. 그는 그 일 행하기를 즐거워하였읍니다. (요한 5:17; 시 40:8; 히브리 10:7)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주신 일을 하셨으며, 그 일이 보람이 있고 음식과 같이 힘을 준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한때 자기의 제자들이 식사를 할 것을 권하였을 때에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일을 마쳤을 때면 그는 성취의 기쁨으로 기분이 좋았을 것이며, 참된 만족을 느꼈을 것입니다.—요한 4:34.
힘든 일은 만족을 준다
11. (ㄱ) 예수는 부지런한 일군이었읍니까? 그리고 그의 일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읍니까? (ㄴ) 마태 25:14-30에 나오는 그의 비유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11 “믿음의 창시자[수석 대행자, 신세]요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바라보고” 형주에서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는 정도까지 “참으셨읍니다.” (히브리 12:2, 새번역) 본이 되는 그의 생애는 행복 가운데 열심히 전도 봉사하는 그러한 생애였읍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조금도 하지 않아 그의 주인이 돌아 올 때에 아무런 이익도 남기지 않은 게으르고 무익한 종을 예수께서 강력히 단죄하신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그의 비유 가운데, 일을 하면 기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 주셨읍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부지런히 일하여 배로 늘렸고, 두 ‘달란트’를 맡은 종도 배로 늘렸읍니다. 그들이 받은 보상은 무엇이었읍니까?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그러나 일하지 않은 게으른 종에게는 어떻게 하였읍니까? 그는 ‘달란트’를 빼앗겼으며, 즐거워하기는커녕 울면서 쫓겨났읍니다. (마태 25:14-30) 행복을 맛보기 위하여는 일을 하고 책임을 이행할 필요가 있읍니다.
12. (ㄱ) 전통적인 직업들과 부지런히 일하는 것에 대한 젊은이들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ㄴ) 어떤 일은 헛 것이며, 어떤 일은 만족과 행복을 가져올 것입니까?
12 오늘날 젊은이들 가운데 전통적인 직업을 그대로 따르는 점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읍니다. 그것은 그러한 것을 추구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며 그렇게 하는 사람들 가운데 근심, 신경증 및 정신적, 신체적 질병이 증가하는 사실은 그들의 생활이 실패하였음을 선언해 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것에 대한 실망을 다음과 같이 풍자적으로 표현하였읍니다. “부지런히 일을 하여 저축합시다. 그렇게 해놓으면, 우리가 늙었을 때에 젊은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솔로몬’은 하나님께 충성하였을 때에 인간의 일들이 헛되고 실망을 주는 점에 대하여 많은 기록을 남겼읍니다. 「전도서」에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을 헛되고 결과없는 세상의 일로부터 멀리하고 그들이 헌신한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일 안으로 그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물질주의적인 추구는 결국 헛되며, 실망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청년들에게 힘차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때에 웅대한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교훈하였읍니다. 그러한 활동은 헛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가져올 것입니다.—전도 12:1; 시 128:1, 2.
13. (ㄱ) 예수께서는 비유(마태 25:14-30) 가운데서 무엇을 적극적으로 강조하셨읍니까? (ㄴ) 누가 13:23, 24에 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까?
13 노인에게나 어린 사람에게나 ‘구원을 받’도록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읍니까? ‘타국에 여행한 어떤 사람’에 관한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되돌아 왔을 때에 무익한 종을 밖으로 내어 쫓아버렸음을 말해 줍니다. 반면에 그는 비유 가운데서 적극적인 교훈을 강조하셨는데, 부지런한 종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알려 주셨읍니다. (마태 25:14-30)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라는 질문을 받고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대답을 하셨읍니다. 그에 대한 대답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마음을 다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누가 13:23, 24)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그 말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생각하고 그리스도인들이 힘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4. 예수께서 힘쓰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의미였읍니까?
14 예수께서,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이 우리의 앞길에 장애물을 많이 놓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 조건이 엄하여 자격없는 자들은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는 뜻이었읍니다. 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온 영혼을 다하여 헌신한 사람이 아니면 여호와께서는 원치 않으십니다.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언 24:30-34) 만일 어떤 사람이 참다운 일군이 아니라면, 여호와께서 그 사람을 새 사물의 제도 안에 살려두시겠읍니까?
15. 왜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런하기를 바라며, 그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15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근면하신 바와 같이 참으로 근면해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 앞에서 승인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일을 우수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목적으로 부지런히 노력합니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언 22:29) 그러한 사람들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최초의 열망과 봉사활동에서 처음 노력하던 목표를 넘게 발전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말한 예수의 사도들과 동일한 염원을 가지고 정확한 성서 지식을 증가시키고 영적으로 계속 진보함으로써 될 수 있읍니다.—누가 17:5; 잠언 27:11.
16. 여호와께서는 왜 온 마음을 다한 헌신과 노력을 요구하시는지 설명하십시오.
16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힘써 일해야 한다면, 누가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서 만족하겠읍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는 문제에 관하여 질문한 어떤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그가 여호와를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설명하셨읍니다. (누가 10:27) 의욕과 열정과 애착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일을 얼마나 성취할 수 있겠읍니까? 가치있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반쯤 노력을 기울이면, 결과가 반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적이고 근면하고 부지런한 노력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치적이다
17. 여호와께서는 지나치게, 너무 많이 요구하십니까?
17 구원을 받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나치지 않고 관대하며 친절하고 인자하고 사려 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커다란 인내와 오래참으심을 나타내시어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하셨읍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 2:2-4; 에스겔 33:10, 11) 생명은 보상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격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무한히 큰 보화입니다.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 사람들은 온 마음을 다한 그리스도 예수의 추종자들입니다. 재산이 많은 어느 부자 청년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마태 19:16, 21; 사도 4:12) 영원무궁토록, 말할 수 없는 축복 가운데, 완전한 건강을 누리며 생명을 즐긴다는 것은 대단히 크고 웅대한 일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다른 비유에 나오는 사람처럼 평가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이치적이 아닙니까?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태 13:44.
18. 왜 그러한 요구는 사랑에 찬 것이며 실용적입니까?
18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단연코 이치적입니다. (야고보 3:17; 미가 6:8) 뿐만 아니라, 아직도 “왕국의 좋은 소식”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이 있고 실용적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수도 많고, 지금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은 비교적 소수이며, 그 일을 할 만한 남은 시간은 감소되고 있으므로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있읍니다.—마태 24:14, 신세; 계시 12:17.
19. 힘쓴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왜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19 전도 봉사에 참여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우리는 더 할 수만 있다면, 단순히 약간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힘쓴다는 힘이란 효과적인 정력, 위력입니다. 힘쓴다는 것은 생기 있고 활력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하며, 강력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힘쓰는 것은 허약하거나 나태한 것과는 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제자를 삼아 침례를 준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마태 28:19, 20) 참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꾸준하고 강한 노력을 몇 개월 동안, 혹은 몇년 동안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또한 그 사람들이 진보하는 것을 보는 것은 크게 즐거운 일입니다. 건실하고 사랑이 있는 부모가 자기 자녀들이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 장성하도록 기꺼이 도와 주는 것처럼,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도 성서 연구생들이 발전하도록 도와주고자 갈망하며, 자기와 함께 성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지식과 이해면에서 발전하여 역시 하나님의 활동적인 종이 될 때에, 그들은 대단한 기쁨을 체험합니다.
20.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열성이 있었읍니까?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20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모범이 되시는 분을 따랐기 때문에 대단히 정력적인 일군, 참으로 열성 있는 복음 전도자가 되었읍니다. ‘베드로’가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한 결과 그날에 3,000명이나 들어왔던 기원 33년 오순절 이래, 그리스도교는 강력한 힘으로 힘차게 두려움없이 전진하였읍니다. 박해와 반대가 일어났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담대하게 이겨냈읍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었읍니다. 사도들은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풀려나와 여호와의 천사로부터 계속하라는 격려를 받은 다음 ‘예루살렘’에 그들의 가르침을 가득차게 한다는 비난을 받았읍니다. 그들은 매를 맞고 그 일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을 중지하지 않고 계속하였읍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 2:40; 4:33; 5:28, 41, 42)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때문에 흩어졌을 때에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 8:4; 9:31) 그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쁘고 흥분된 때이면서도 즐거운 때였읍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새로 힘을 내다
21. 현대 여호와의 증인들의 활동은 어떠한 정신이 특색을 이루고 있읍니까?
21 현대에 와서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특색이었던 힘써 일하는 정신이 되살아나고 회복되었읍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도다].” (시 110:2, 3) 여호와의 왕 아들은 이제 권세를 잡고 보좌에 앉으셨으며, ‘원수 중에서 정복’하고 계십니다. 현대의 어느 역사가는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활동을 광범하게 살펴본 다음,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기들의 증거 활동으로 문자 그대로 온 땅을 덮었다. ···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려고 노력한 점에 있어서 세상에서 단일한 종교 집단으로 여호와의 증인들보다 더 큰 열정과 성의를 나타낸 집단은 없다.”—「이들도 믿는다」, ‘시. 에스. 브레이든’ 저(뉴욕, 1950년, ‘맥밀란’ 사 발행) 370면.
22. 최근에 이루어진 이 사업의 세계적 확장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22 여호와의 백성들은 현대에 들어와서 자기들의 전도 활동을 문자 그대로 지구 사방에 확장시켰읍니다. 그러나 역사가 ‘브레이든’이 말한 범위는 시작에 불과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목적 아래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뉴욕 브루클린, 1959년: 왙취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특히 1945년 이후 참으로 세계적인 확장이 계속되었다. 수많은 큰 무리는 더욱 나타날 때가 이르렀다. 그들은 계속하여 실제로 수천명씩 나아와 전파 활동에 가담하였다. 이제 적어도 몇년 동안은 신권적 봉사의 문은 활짝 열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열심히 선포하는 이들 연합된 무리들은 완전히 성숙하여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풍요한 밭으로 무리지어 몰려왔다.” (221면) 영적 나태란 전연 없읍니다. 세계적인 확장 사업에 온전히 참여한 자들은 실로 복되고 행복한 때를 즐겼읍니다.
23. 왜 여호와의 증인들은 계속하여 참을성있게 열심히 일할 것입니까?
23 여호와를 충실하고 열정적으로 섬기는 데에는 일이 포함됩니다. 그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계속하여 힘쓰고 있으며, 그들 위에 계속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고 있읍니다. 그들은 단조로움이나 실증을 느끼지 않고 바쁘게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봉사의 특권에 대하여 감사하고 바쁜 것을 기뻐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전 생명을 여호와께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의 봉사에 참으로 온 영혼을 다하고 있읍니다. 그렇게 한다면 생명을 받을 것을 알고 그 일을 합니다. (누가 10:27, 28) 그들의 생활 가운데는, 물질적 소유나 개인적 안일이 첫째 자리에 오고 그리스도인 봉사에 최소의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 없읍니다. 그들은 이 “마지막 날”의 사태 진전에 깨어 있으며, ‘야고보’가 말한 농부가 참을성있게 추수 때를 기다리는 것 같이 열심히 일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야고보 5:7, 8.
24. 여호와의 일에 즐거움을 계속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결과는 어떠할 것입니까?
24 예수께서는 구원을 받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쓰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일의 긴급성을 상기시키면서 ‘바울’은 “게으르지 말”라고 외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일에 즐거움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손을 놓지 말고 생명이 있는 동안에 수행해야 할 일을 힘껏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스러운 새 사물의 제도를 가져오시기 전에 당신이 죽음을 체험하지 않고 계속 살아남든지 혹은 죽음에 잠들어 부활을 기다리게 되든지,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기억하여 “온전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룻 2:12; 고린도 전 15:58; 전도 9:7, 10.
[322면 삽화]
참 그리스도인은 게으르지 않다; 그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정직하게 일한다
[324면 삽화]
게으른 사람들은 실패한다.—물질적으로 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면에서도 그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속 깊이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325면 삽화]
당신은 관심있는 사람들을 다시 방문하고 제자를 삼는 일에 힘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