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 충돌 없이 세상을 이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 16:33.
1. (ㄱ) 무력 충돌 없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왜 놀라운 일일 것입니까? (ㄴ) 일부 성서 해석자들은 독재적 세계 지배에 관하여 어떠한 일을 기대하며, 그러한 일이 있을 것입니까?
무력 충돌 없이 인류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게 보일 것입니다. 더구나 현재 세상이 군사 기지화 되어 있으니 더욱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무력 충돌 없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현 정치 국가들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느 나라나 어떤 개인이 순전한 평화적 정치 외교를 통해 세상을 이기고 그 다음부터 세상을 지배하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랫 동안 존재해온 정부들은 국제 외교의 술책에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약습니다. 성서 예언들을 해석하고 있는 그리스도교국의 소수 종교 지도자들은 가까운 장래에 세계 독재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읍니다. 누구에 의한 독재입니까?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자, 곧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가 그렇게 하리라고 그들은 믿습니다. (데살로니가 후 2:3-10; 요한 1서 2:18) 그러나 그러한 믿음과는 달리 무력 충돌 없이 세계를 이기게 될 일개인의 적그리스도는 없을 것입니다.
2, 3. (ㄱ) 성경에 의하면 누가 세상에 대한 그러한 승리를 거둘 수 있으며, 그러한 승리에 대한 상은 무엇입니까? (ㄴ) 그것이 가능함을 알려주는 어떠한 역사적 예가 있으며, 그리고 그분은 어떠한 승리의 말씀을 하셨읍니까?
2 누가 유혈 전쟁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세상을 이길 것인가를 영감받은 성경은 명백히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가 그러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읍니다. 그러한 승리에 대한 상은 행복하고 의로운 새 사물의 질서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의 선물입니다. 그 때에는 현재와 같은 악한 세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고귀한 승리라면 그것을 획득할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비할 수 없는 상이 따르는 승리라면 우리는 모두 그것을 획득하고자 열망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것이 어마어마한 일 같이 보이겠지만, 그것은 달성될 수 있읍니다. 우리는 그것이 가능함을 알려주는 역사적 예를 가지고 있읍니다. 이 고무적인 예는 천구백년 전에 그 일을 해낸 한 사람의 예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인류 세상은 잘 알고 있읍니다.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으로서 지상에 살던 마지막 날 그는 승리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 16:33.
4.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고 주장하신 직후에 진전된 어떤 사태들을 생각할 때에 그가 어떤 면으로 세상을 이겼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까?
4 지금은 기원 1974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으로 다 개종시키지 못하였읍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면으로 세상을 이기셨읍니까? 예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다고 선언하신지 몇시간 후에 저주받은 죄인처럼 죽으셨읍니다. 이 때 그는 자기 민족 곧 ‘유대’인들이 자기를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약속된 ‘메시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그들을 이기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가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신지 51일 후에도 ‘예루살렘’에는 그를 성서 예언을 성취한 ‘메시야’로 받아들인 ‘유대’인이 약 120명 밖에 없었읍니다. (사도 1:15)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가 주장하신 승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읍니까? 이러한 점들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5. (ㄱ) 예수께서 처형당하신 방법을 생각하면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이 그분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읍니까?
5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금요일, 이교 ‘로마’인들이 단죄된 노예를 처형하는 방법대로 그분을 두 명의 악명높은 범죄자들 사이에 형주에 못박던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장면을 보면 그가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다 미움을 받은 사람이었음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읍니다. ‘유대’인들은 그를 매우 치욕적인 방법으로 처형하도록 ‘로마’인들에게 넘겨주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밖 ‘갈보리’에서 처형당하시기 몇시간 전에도 자기가 미움받고 있음을 인정하셨읍니다. 한 두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미움을 받아도 섭섭한 일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단히 많은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으셨읍니다. 본래의 열 두 사도들 중 충성을 지킨 열 한명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한 15:18, 19.
6. 사도들은 개인적으로 그들에 대한 세상의 증오에 대해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까?
6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세상이 자기를 미워한다는 것과 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리라는 것을 알리셨읍니다. 이에 대해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였읍니까? 온 세상이 한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은 온 세상을 대항해야 하며, 온 세상을 이겨야만 합니다. 온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든지 세상에게 패배를 당하든지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그가 정의의 편에, 진리의 편에 서 있다고, 그가 충실하다고 입증할 수 있겠읍니까?
세상이 미워하는 이유
7, 8. (ㄱ) 예수께서는 세상이 자기를 미워하는 것을 보고 놀라셨읍니까? (ㄴ) 기원 32년 초막절 직전에 그는 이부 생들과 함께 무슨 이야기를 하셨읍니까?
7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세상을 이기셨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세상이 그를 미워하였는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의 신분이 어떠하기에, 그가 어떤 일을 하였기에 그는 온 세상을 대항해야 하였읍니까? 그는 세상이 그를 미워하였을 때에 놀라지 않았읍니다. 그는 세상이 그를 미워하는 이유를 아셨기 때문에 그것을 감수할 수 있었고, 인내할 수 있었읍니다. 그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공개적 활동을 약 3년 동안 하신 후에 세상이 자기에게 그러한 태도를 나타내는 원인을 지적하셨읍니다. 이 일은 기원 32년 후반기에 ‘갈릴리’라는 ‘로마’ 행정 구역에서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라는 도시에서 30세 때까지 목수 일을 하셨읍니다. 예수께는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들인, 몇명의 이부(異父) 동생들이 있었읍니다. 그 이부 동생들은 그의 공개적인 활동에 대해 조언을 하였읍니다. 그때에도 미움으로 가득찬 ‘유대’인들은 그를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얼마 남지 않은 가을 초막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그 사람들 앞에 자신을 공공연하게 나타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였읍니다. 예언자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율법 하에 있는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예수께서는 그곳에 갈 의무가 있었읍니다. 자기 이부 동생들과 이야기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8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요한 7:1-7.
9. 예수께서는 어떻게 초막절에 참석하셨으며, 성전에서 어떠한 승리를 거두셨읍니까?
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충실하게 초막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운집하여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읍니까? 올라가셨읍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방법으로 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적절한 때에 그곳 성전 안에서 명절을 기념하던 자들에게 공공연하게 말씀을 하셨읍니다. ‘유대’ 관헌들은 예수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경찰관들은 그 일을 하지 못하였읍니다. (요한 7:10, 32-48)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아니었읍니까?
10. (ㄱ) 예수께서는 세상이 자기를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이부동생들에게 말씀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 ‘유대’ 나라 밖에는 나가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세상 전체의 행위에 대한 그의 증거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10 예수께서는 세상이 자기를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셨읍니까? 자기 이부 동생들에게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7:7) 예수께서 전도하셨던 그 ‘유대’인들의 행사가 “악”하였다면 ‘유대’인들 외에 이교 세상 사람들의 행사는 어떠하였겠읍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의를 품었던 ‘유대’인들의 행위보다 낫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온 인류 세상에 대하여 그들의 행위가 “악”하다고 증거할 수 있었읍니다. 세상의 증오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일이 아니었겠읍니까?
11. (ㄱ) 예수께서는 친히 어떠한 본을 보여 세상의 행위가 악함을 증거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공개적 활동을 시작하시기 직전, 성전에서 어떠한 일을 하시어 세상의 행위가 악함을 증거하셨읍니까?
11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떻게 세상에 대해 증거하셨으며, 세상의 행위가 “악”함을 나타내셨읍니까? 입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그렇게 하셨읍니다. 그 자신은 악한 행동을 범하지 않아야 하였읍니다. 그 당시 그가 단 한가지라도 악행을 저질렀다고 정당하게 고발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심지어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도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하고 도전하셨읍니다. (요한 8:46) 예수께서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하시기 직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돈바꾸는 자들과 장사군들을 몰아내시면서,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는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과 또 그것을 용납하던 ‘유대’ 당국자들에 대해 그들의 행위가 “악”함을 증거하신 것입니다.—요한 2:13-17.
12.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으로써, 악귀를 쫓아내심으로써, 하늘로부터의 징조를 보여주지 않으심으로써, 세상에 속하지 않으심으로써, 여러 가지 악행에 대해 어떻게 증거하셨읍니까?
12 ‘유대’인의 법적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선한 일을 할 입장이 되어 비난받고 욕당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 병을 고치셨을 때에 그는 비난하는 사람들이 “악”함을 증거하셨읍니다. (마태 12:9-16)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에게서 악귀들을 쫓아내신 다음 그것이 악귀의 통치자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으셨을 때에, 그는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악함을 나타내셨읍니다. (마태 12:22-37) 믿지 않는 ‘유대’인들로부터 하늘로부터의 징조를 보여서 ‘메시야’임을 증명하라는 요청을 받고 나서 부당한 징조로 그들의 불신감을 해소시켜줄 것을 거절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행위라고 증거하셨읍니다. (마태 16:1-4; 12:38-45) 예수께서 세상을 본받아 세상과 같이 되는 것 곧 세상에 속하는 것을 거절하셨을 때, 그것은 세상의 행위가 “악”하다고 증거하는 것이었읍니다.
13, 14. (ㄱ) 예수께서는 어떠한 두가지 방법으로 세상의 행위가 악함을 증거하셨읍니까? (ㄴ) 예수의 전파 활동은 어떤 면에서 요한 3:17의 말씀과 일치하였읍니까?
13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의 생활로만 이 세상이 악하다고 증거하심으로써 미움을 불러 일으키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직접 입의 말로도 그렇게 하셨읍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하셨읍니까?
14 예수께서는 ‘유대’인 권세자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고 친히 말씀하셨읍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불리한 심판을 내리거나 정죄하거나 인류에게 멸망의 선고를 내리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한 3:17)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 땅을 돌아 다니면서 보이는 모든 것을 정죄하시면서 언제나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만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고 정죄로부터 자유케 하는 적극적인 소식을 선포하셨읍니다. 이것은 왕국의 소식이었읍니다.—이사야 61:1, 2; 누가 4:16-41.
15, 16. (ㄱ) 왕국 소식의 서두의 말씀은 세상의 행위가 악함을 어떻게 증거하였읍니까? (ㄴ) 또한 왕국 소식의 내용 자체는 어떻게 그와 같은 동일한 증거를 하였읍니까?
15 그러나 이 적극적인 소식은 세상에 대해 그 행위가 악하다고 증거하였읍니까? 그렇습니다! 이 점은 그 왕국 소식을 소개하는 말에도 나타나 있읍니다. ‘마태’의 기록을 보면 침례자 ‘요한’이 왕국 소식을 어떻게 소개하였는가와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어떻게 하셨는가가 기록되어 있읍니다. 침례자 ‘요한’이 투옥된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의 소식을 이어 그 일을 확장해 나아가셨읍니다. 이에 대해 마태 복음 4:17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16 그 소식을 소개하는 서두의 말 곧 “회개하라”는 말이 그 왕국 소식을 듣는 사람들의 행위가 악함을 시사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러한 악한 행위를 회개하고 돌아서서 다가오는 왕국을 위해 대비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왜 그랬읍니까? 왜냐 하면, 그 하나님의 정부는 그의 백성들이 악행하는 것을 용납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악행을 하는 사람들은 그 왕국 정부에서 직책을 맡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 전 6:9, 10) 그 왕국은 의로운 왕국이 될 것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러한 왕국의 필요성을 느끼셨다는 것 자체가 이 세상 왕국들이 악함을 명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들 세상적 통치 제도들이 악하므로 하나님께서 정한 때에 멸망될 것을 증거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천국”을 선포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정치에 개입할 수 없고, 인간 정부의 직책을 가질 수 없고, 그러한 세상적 통치권을 유지하기 위한 무력 전쟁에 개입할 수가 없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대사와 공사로서 부정한 인간 정치를 멀리합니다.
17. 왜 세상 통치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던 자들은 예수께서 왕국 소식을 전파하시는 것을 미워하였읍니까?
17 “천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한다고 세상이 예수를 미워하였읍니까? 증거를 보면 세상이 그 때문에 예수를 미워하였음을 알 수 있읍니다. 세상 통치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은 지구와 그 위의 백성들을 통치하는 방법에 관한 자기들 나름의 계획과 견해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에 그들의 왕국과 통치권을 멸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그 소식을 그들은 미워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 인간 정부를 후원하고 승인하고 발전시키고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켜주신다는 소식을 듣고싶어 하였읍니다. 따라서 자기들의 통치 제도에 협조하지 않는 왕국, 그들을 통해 일하지 않는 왕국을 광고하는 소식을 이 세상 정치 요소들은 좋아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그 소식과 그 소식을 선포하는 사람들을 다 미워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천국”에서 권력을 받을 자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미워하였읍니다.
세계적 미움을 극복함
18, 19. (ㄱ) 예수께서 왕국 소식을 전파한다고 세상이 미워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ㄴ) 세상이 미워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없이 그렇게 한 것임을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읍니까?
18 예수께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전파하신다는 이유로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이 타당하였읍니까? 예수께서는 온 인류에게 해가 되는 어떤 것을 전파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인류에게 영원한 유익이 되는 것을 전파하셨읍니다. 개인적 자존심과 이기심 때문에, 세상은 좋은 소식, 복음이 되는 그 왕국 소식을 선포한다고 예수를 미워한 것입니다. 세상이 예수를 미워한 것은 사실상 정당한 이유도 없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충실한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확히 말씀하셨읍니다.
19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요한 15:22-25; 시 35:19; 69:4.
20. 예수께서 왕국 소식을 전파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빌라도’ 앞에서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20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의로운 왕국을 전파한다고 세상이 예수를 미워하였기 때문에, 예수의 원수들은, 그 당시 종교 문제엔 관심이 없던 ‘로마’인들로 하여금 그를 처형하도록 정치적 술책을 사용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인류를 위한 완전한 정부를 전파하는 것이 당시의 세계 강국인 ‘로마’ 제국에 대한 정치적 범죄 행위라고 고발하였읍니다. ‘유대’ 지방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의 고발자들에게 그 문제를 그들의 종교법에 의한 순수한 종교 문제로 다루도록 권유하면서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하자, 그들은 대답하기를 “[‘가이사’의 법률 하에서]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요한 18:31) 예수께서 전파하신 내용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위해서 예수의 고발자들은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누가 23:1-5.
21. 예수의 고발자들은 ‘빌라도’ 자신이 그 문제에 관련된 것처럼 하기 위해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21 결국 총독 ‘빌라도’가 그 문제에 직접 관련된 것처럼 하기 위해 예수의 고발자들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한 19:12-15
22, 23. (ㄱ) 그 다음 어떻게 하여 예수께서는 직접 “세상”의 미움의 대상이 되었읍니까? (ㄴ) 후에 예수의 제자들은 기도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지적하였읍니까?
22 이렇게 이 “천국” 선포자를 처치하도록 그 이교 ‘로마’인들에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유대’인 고발자들은 ‘로마’ 제국이 예수에 대해 가증한 행동을 저지르도록 하였읍니다. ‘로마’ 병졸들이 그를 ‘예루살렘’ 밖 ‘갈보리’라는 처형 장소로 끌어가기 전에 그들은 그를 선동 죄인 처럼 험하게 취급하였읍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직접 세계적인 미움의 대상이 된 사실을 후에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읍니다.
23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사도 4:24-28.
24. 예수께서 승리적으로 극복하여야 하였던 세계적 미움의 배후 의도는 무엇이었읍니까?
24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미움을 받으셨다는 점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읍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예수께서 세계적인 미움에 굴복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결국 패배하여 무릎을 꿇었읍니까?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넘어뜨리려고 압력을 가한 그 세계적 미움은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은 ‘사단’ 마귀가 그를 놀라게 하여 굴복시키려고 일으킨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그를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기적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그를 설득시켜 더 이상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좋은 소식을 선포하지 못하게, 또 선생으로서, 전파자로서 더 이상 계속하지 않고 잠잠하게 하려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그를 ‘메시야’로 기름붓고 또 사명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계적 미움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 일으킨 것은 그가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어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바치는 희생적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세계적인 미움은 예수로 지상의 인간 생명을 아까와하게 하여 그의 영혼을 상실하고 영원한 생명으로의 부활의 희망을 상실하게 하려는 획책이었읍니다.
25. 예수께서는 사형당하시기 몇시간 전에도 무슨 일을 하심으로써 세계적 미움에 굴복하거나 강력한 기적을 행하는 일을 중지하지 않았음을 보이셨읍니까?
25 세계적 미움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이 모든 일들을 달성하는 데 성공하였읍니까? 그는 패배를 자인하고 ‘메시야’로서 행하도록 되어 있는 기적과 선한 일을 중지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사형 선고를 받기 몇시간 전까지도 그분은 기적을 행하여 자기가 무력 충돌을 반대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셨읍니다. ‘예루살렘’ 근처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시던 때에, 사도 ‘베드로’는 어둠을 타서 예수를 잡으러 온 무장 폭도들 중 한 사람의 귀를 칼로 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칼의 사용을 승인하지 않음을 나타내시고 그 사람의 귀를 고쳐주셨읍니다. 그렇게 하여 ‘유대’인들의 대제사장에게 증거를 베푸셨읍니다. 고침을 받은 이 사람 ‘말고’는 대제사장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마태 26:48-54; 누가 22:47-51; 요한 18:10, 11.
26. 예수께서 마지막 반년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미움 때문에 왕국 전파 활동을 확장하지 않으셨읍니까?
26 계속적인 세상의 미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굴복시켜 입을 다물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더 이상 전파하지 못하게 하였읍니까? 목격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고 대답합니다. 침례자 ‘요한’이 투옥된 다음 왕국이 가까왔다는 선포 활동을 앞장 서서 행하고 또 제자들을 모아 항상 자기와 함께 할 열 두명을 택하여 사도라고 부르셨읍니다. 그가 공개적 봉사 활동을 시작하신 후 세번째 유월절이 가까왔을 때에 그분은 열 두 사도를 둘씩 보내시고 자기가 전파하였던 그 동일한 소식을 전파하게 하셨읍니다. 그분은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10:1-7) 예수께서 공개적 봉사를 시작하신 후 세번째로 ‘유대’인의 장막절을 기념하신 후 예수께서는 70명의 제자들을 두명씩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누가 10:1-9) 이것은 자기 인간 생명의 마지막 반년 동안에 있었던 일입니다.
27, 28. (ㄱ) 예수께서는 어떻게 전국적인 왕국 전파 활동을 극적으로 절정에 달하게 하셨읍니까? (ㄴ) 왜 예수께서는 요청을 받고도 그때 왕국 외침을 중지시키지 않으셨읍니까?
27 이제 그의 공개적 봉사 기간 중의 네번째이자 마지막 유월절이 다가왔읍니다. ‘예루살렘’ 도시를 종교적으로 들뜨게 한 흥분의 날이 다가온 것입니다. 기원 33년 ‘니산’월 9일, 일요일, 곧 그가 충격적인 죽음을 당하시기 5일 전이었읍니다. 그 날 예수께서는 극적인 일을 하시어 전국적으로 하나님의 왕국 전파 활동을 절정에 달하게 하셨읍니다.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서 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고 ‘메시야’ 왕처럼 그 도시안으로 들어가셨읍니다. 거기에는 창을 든 당당한 기병대의 호위도 없었고, 땅을 진동하는 전차 부대의 호위도 없었고, 완전 무장을 한 보병대의 호위도 없었읍니다. 그 도시 성전의 북서 쪽에 위치한 ‘안토니아’ 성의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몰려 나오게 할 만한 군대의 호위가 없었읍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스가랴 9:9의 예언의 성취로 예수께서는 평화스럽게 승리의 행렬을 이끌고 들어오셨읍니다. 무장을 하지 않은 남자 여자 및 어린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 따라왔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자기를 위해 왕국을 선포하게 하셨읍니다.
28 행진하는 군중의 입에서는 함성들이 터져 나왔읍니다.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는 소리가 울려 나왔읍니다. 증오심에 가득찬 반대자들이 ‘메시야’에 대한 이러한 백성들의 함성을 반대하자 예수께서는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고 하시면서 예언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마태 21:6-16; 마가 11:4-11; 누가 19:32-40; 요한 12:12-16.
29.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어떤 예언을 성취시키셨으며, 무엇을 전영하셨읍니까?
29 이와 같이 500여년 전에 이미 기록된 스가랴 9:9의 다음과 같은 예언은 헛 것이 아니었읍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예수께서는 단순히 구경거리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예언에 순종하여 담대하게 세상의 미움을 직면하셨으며,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극적으로 증거하셨읍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예언적으로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다음에 그리고 하늘의 전쟁이 끝난 다음에 여호와의 신권 조직의 정당한 왕으로서 그 조직에 등장할 것을 보여주셨읍니다.—누가 21:24; 계시 12:5-10.
세상을 이겼다는 정당한 주장
30. (ㄱ)예수께서는 자신의 의향과 태도가 세계적 미움으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으셨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왕국과 관련된 종교적 위선을 어떻게 비난하셨읍니까?
30 세계적 미움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증거로 기적을 행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을 막지도 못하였읍니다. 그것은 예수도 그들과 같은 정신 상태를 가져 자기가 대속하려 했던 인류에 대해 악독한 증오심을 갖게 하지 못하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도록 하지 못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속임을 받고 압제받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성전에 계실 때에 종교적 위선자들을 이렇게 공박하셨읍니다. “화있을 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 23:1-13) 3일 후에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정신이 조금도 없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함께 ‘유대’인들의 유월절을 지키셨읍니다. 그 직후에 예수께서는 어떤 새로운 기념식, 새로운 저녁 식사, 인간 희생으로서의 자기의 죽음에 대한 기념식을 가지셨읍니다.
31. 예수께서는 포도주 잔에 관하여, 그리고 왕국과 관련하여, 세상을 이기셨다는 말씀이 참됨을 나타내는 무슨 말씀을 하셨읍니까?
31 예수께서는 이 기념의 저녁 식사에서 마신 포도주 잔의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충실한 사도들에게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6:26-28)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의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찾아볼 수 없으며, 자기의 희생적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점도 찾아볼 수 없읍니다. 그 다음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계속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누가 22:28-30) 후에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요한 16:33.
32. (ㄱ) 왜 예수께서는 그 저녁에 세상을 이겼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었읍니까? (ㄴ) ‘빌라도’ 앞에서 하신 그의 증언은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뒷바침하였읍니까?
32 ‘니산’월 14일 저녁 바로 그 시각에 예수께서는 온 세상을 이겼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으셨읍니까? 그 시각에 이르기까지의 그분의 충실하고 사랑에 찬 인생 행로를 볼 때에, 우리는 그렇다! 하고 대답할 수 있읍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하신 그 말씀은 터무니없는 자만(自慢)이 아니었읍니다. 그 다음에도 계속 하나님께 순종의 행동을 하신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합니다. ‘로마’ 제국 ‘가이사’의 최고의 지방 대표자 앞에 서셨을 때에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임을 부인하지 않으시고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예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로마’인들로 하여금 그를 합법적으로 처형할 근거로 그의 ‘메시야’ 왕권을 들어서 고발하였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부인하지 않으셨읍니다.—요한 18:36, 37.
33. (ㄱ) 형주에서 예수의 승리는 어떻게 완성되었으며, 3일도 못되어 이 점이 어떻게 입증되었읍니까? (ㄴ) 이 세상에 대한 어떠한 승리가 영광스럽게 된 예수 앞에 놓여 있읍니까?
33 조금 후에 예수께서 ‘갈보리’에서 형틀에 못박혀 매달려 있는 동안 그를 미워하는 자들이 지나면서 욕설을 할 때에도 예수께서는 그들과 같이 행동하거나 똑 같이 보복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날 오후 세시쯤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을 때에 예수께서는 과연 세상을 이기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무력 충돌이 없이 이기신 것입니다. (요한 19:30; 베드로 전 2:22-24) 세상은 인간으로서의 그를 죽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죽으시면서까지도 패배하지 않으셨읍니다. 미움에 가득찬 세상은 그의 죽음에 대해 만족을 얻지 못하였읍니다. 세상은, 그분이 세상을 이긴 데 대한 영광스런 상을 받지 못하게 하지 못하였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었읍니다. 3일도 채 못되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시어 죽음에 대해 굉장한 승리를 거두셨으며, 그 다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오른편으로 높이시어 하나님의 발등상에 불과한 이 지상에 있는 미움으로 가득찬 세상이 도달 할 수 없게 하셨읍니다. (빌립보 2:5-11; 베드로 전 3:22) 또 하나의 승리가 그분을 기다리고 그분 앞에 있는데, 이것은 ‘아마겟돈’에서 장차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날에 전쟁”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더불어 이룩하실 승리입니다.—계시 16:14, 16; 19:11-21.
[60면 삽화]
예수께서는 세계적 미움에 굴복하여 기적과 선행을 행하는 것을 중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형당하시기 몇시간 전에 ‘베드로’가 칼로 쳐서 떨어뜨린 어떤 사람의 귀를 기적으로 고쳐주셨다